백제의 능묘는 금강유역으로 천도 후 송산리식의 횡혈식석실묘 ${\rightarrow}$ 남조식의 전실묘 ${\rightarrow}$ 능산리식의 횡혈식석실묘로 변천하였다. 이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천장 구조의 변화이다. 천장은 궁륭천장(송산리식) ${\rightarrow}$ 터널천장(전실묘와 능산리식 과도기) ${\rightarrow}$ 집지붕천장(능산리식으로 제형, 삼각형, 평천장 세 아류의 형식)으로 변천했다. 이러한 변천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능산리식 횡혈식석실로 이는 백제에서 창출된 특수한 형식이다. 백제의 능묘는 봉분을 중시하지 않아 현저하지 않았다. 이는 개별 능묘를 과시하여 표지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능원의 영역을 중시하는 가족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화된 것이고 남조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능원은 백제가 남천한 후 왕가의 능원에서 단독의 독립능원으로 변천한다. 전자는 송산리와 능산리의 능원이고, 후자는 익산의 쌍릉이다. 전자는 완벽한 풍수지리와 함께 남조의 영향으로 볼 수 있고, 후자는 중국이 재통일된 수와 당초의 능원제 영향이다. 왕가의 능원에는 왕릉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관련된 인물을 배장하였다. 그리고 능원에는 제의시설이 존재했다. 송산리 능원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시조묘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능산리 능원에는 공동의 능묘에 대해 제의를 시행할 수 있는 노천의 제의 공간이 마련되었고, 이 제의를 담당하면서 선왕에 대한 명복을 빌기 위한 능사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나 구조는 신라의 서악동 능원과 아주 유사하다.
단종(端宗, 1441~1457) 장릉과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 사릉은 매우 간소하게 조성되어 있다. 1698년에 단종을 복위하면서 원래 묘제로 조성되어 있던 무덤을 능제로 추봉하였는데, 특이하게도 석물의 크기가 작을 뿐 아니라, 왕위에 오른 적이 있는 왕의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무석인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석수도 1쌍씩만 조성되어 있다. 이렇듯 장릉과 사릉은 매우 간소하게 조성된 탓에 석물연구에서 그간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두 능의 추봉과정 및 석물 조성과 관련된 문헌기록을 검토하고 현장답사를 통해 석물을 면밀히 분석하였는데, 이와 더불어 본고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은 조선시대 왕릉석물 간소화의 문제이다. 그간 조선 왕릉석물의 축소는 1701년에 조성된 명릉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간소화의 계기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 본 논문에서는 간소화가 장릉과 사릉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간소화가 일어난 것은 단순히 서인으로 폐위되었던 왕의 무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두 능이 추봉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 즉 오랜 기근과 역병에 따른 피폐된 경제와 혼란에서 기인했음을 밝혔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men's coat of Jikryeongkoim style that were excavated from the tombs of the Yeosan Song family. Findings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Except Dapho, all of the above mentioned coat were usually worn in the late 15th and late 16th centuries. Jikryeong and Cheolik were often worn in both of the centuries. But Aekjureum was often worn in the late 15th century and Jikryeong with no side hem and Jikryeong of Dopo style, in the late 16th century. Generally, the men's coat of Jikryeongkoim style had a short fore part and a long rear part, doubled kalgit of banmokpan style and a narrow sleeve in the late 15th century, while fore and rear parts of the same length, kalgit of ordinary style and the sleeve of bean chaff shape in the late 16th century. In both of the centuries, the coat had the outer Seop that was doubled and used short, narrow coat strings to be adjusted. Samgakmu was used to Jikryeong with no side hem and Aekjureum. Out of the coat, those which were lined or padded or quilted with cotten used Samgakmu, but those which were unlined didn't. To adjust the coat, usually, a pair of short, narrow coat strings was used. The coat had the coat strings directly stitched on them or indirectly connected to them by means of the coat string hanger.
익산 쌍릉은 대왕릉과 소왕릉을 포함하는 명칭으로 백제 사비기(538~660 AD)의 횡혈식석실묘이다. 소왕릉의 발굴과정에서 노출된 봉분 동측 토층은 하부로부터 기반층, 정지층, 백제시대 판축층, 도굴층 및 일제강점기 복토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연구를 위해 층준을 세분하여 시료를 확보하고 재료학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토층의 입도분석 결과, 대체로 사양토의 토성을 보이며, 백제시대 판축토층에서는 양질사토가 성토되어 있고 그 위로 사양토가 판축의주를 이룬다. 백제층의 중앙부와 최상부에는 점토 함량이 많고 일정한 입도를 가진 양토를 사용하였다. 모든 토층은 층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지구화학적 거동특성을 보여 토양의 모재와 성인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X-선 회절분석으로 모든 층위에서 카올리나이트를 동정하였으며,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카올리나이트와 할로이사이트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소왕릉 봉분의 백제시대 판축토층은 유적 일대에서 조달한 고령토가 함유된 사양토로 성토하였으며, 중상부에 점성이 강한 양토를 사용하여 불투수층을 조성하고 봉분 최상부를 밀실하게 마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This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nounce the research for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and the constructive characteristics for the 23 pair of pan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Yeosan Song's family at Mokdal Dong in Daejeon. Men and women wore the open-type over the close-type pants. Song Hyo-sang and Chungjoo Park wore the 1 or 2 pairs of the open-type pants over the 3 pairs of close-type pants. Song Hee-jong and his wife Sonhung An wore a pair of the open-style pants over the 1 or 2 pairs of pants. It was due to the shortage of goods by the war that Song Heejong had less shrouds than Song Hyosang. The pants were almost made of the cotton and the silk. The open-type pants worn inside was made of the cotton but outside was made of the silk. That time the cotton was used for the unlined underwears for the health and the protection against the cold and the hot. The silk was used for the outwear. In the construction type, 12 pairs of pants were unlined, 6 pairs of pants were quilted, 4 pairs of pants were padded, and 1 pair of pants was lined. All unlined were the close-type and the quilted and padded pants were the open-type, which were worn inside. Lined type was just one. In the wearing order of shrouds, type, textile, and constructive type, Song Hyosang and Chungjo Park were similar, Song Heejong and Sonhung An were similar.
The Suchon-ri tomb No. 1 is the earliest one among the Suchon-ri tombs excavated in 2003. The Suchon-ri tomb No. 1 yielded a number of valuable artifacts furnished with burial goods such as gilt bronze items of a crown, a pair of earrings and shoes and a loop-handled sword with inlaid silver decoration. In particular, a loop-handled sword drew scholarly attention in that it showed characteristics of Baekje such as wave patterns on a silver plate decorated in the handle and sheath and inlaid dragon design on the loop-handle. In the process of the reproducing the loop-handled sword, classification methods of the loop-handled swords, iconography decorated on the swords, unearthed loop-handled sword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have been investigated along with studying the reproduction cases in Japan. In addition to the study focused on the shape of the swords, manufacturing techniques have been thoroughly analyzed through scientific methods. Finally, based on the synthesis of a series of studies and analyses, traditional manufacturing techniques employed by Baekje artisans had been inferred and a replica of the loop-handled sword was manufactured with the traditional methods.
Bokam-ri site was excavated from July 1996 to September 1998 and archaeologically assumed to be grouped with tombs of Mahan period. Among these groups, Tomb No. 3 had built up with stone chamber and found one pair of gilted footware near the jar coffin. This footware was severely corroded and cracked so transfered it gently with soil. Radiography film of this footware showed spike decorations on the bottom and fish-shapped ornament. Gilted footware was consolidated with soil using Paraloid B72 10%~15%solution and cleaned using small tools and microscope. SV427 and HV427 as epoxy resin and Araldite(rapid type) used for joining and restoring. The fore part of gilted footware was connected with nails and folded “L” shape to introduce the bottom material. Tortoise-shell design and flower ornaments appeared on the surface and fish-shaped ornaments, spikes and spangles on the bottom. It was found that 7 spikes and 5 fish-shaped ornaments remained well. Especially, Fish-shaped ornaments were firstly found in the gilted footware and appraised archaeologically important materials.
In this study, the shapes of po worn by military officers who served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1592-1598) were investigated. Findings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Various types of po that military officers usually wore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cludes jikryeong, dapho, dopo, cheolik, aekjureum, jangeui, jungchimak and bangryeongpo. Out of these types, cheolik and jungchimak were most often used by the officers. Po that were usually worn by military officers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as above mentioned is characterized as no difference in length between the front and back of the costume, kalgit and a pair of coat strings which are directly attached to po. The sleeves of the costume are bean chaff-shaped in some cases and just narrowly shaped in other cases. Similarly, the outer seop of po was either double-layered or single-layered. For jikryeong and dapho, mu is usually type of outside wrinkle. For dopo, its rear kit has the inner hem whose right and left edges are usually distant, respectively by 6~16cm, from the back center of the costume. Cheolik and aekjureum usually have either fine or broad pleats. For jangeui and jungchimak, mu is usually trapezoid in shape. Among various types of po which were usually worn by military officers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most representative are jikryeong from the tombs of Bae Cheon jo, dapho from Shin Yeo Gwan, dopo from general Bak and Bae Cheon Jo, cheolik from Nam Yoo and Cho Gyeong, aekjureum from Shin Yeo Gwan, jangeui from Kim Ham, jungchimak from Bae Cheon jo and bangryeongpo from Cho Gyeong.
삽(?)은 유교 예법에 따른 상장례(喪葬禮) 도구로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백포(白布)나 두꺼운 종이를 붙여 그림을 그린 후, 자루를 달아 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례기(禮記)"에 따르면 삽은 주대(周代)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나타난 삽의 용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회격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삽의 발굴 사례 및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용례와 제작방식, 시기에 따른 유물의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삽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개수와 그리는 문양이 다른데, 사대부가에서는 주로 '아(亞)'형의 불삽 1쌍과 구름 문양을 그린 화삽 1쌍을 사용하였다. 삽의 크기는 너비가 2자[척(尺)], 높이 2자[척(尺] 4치[촌(寸)]로 만들었는데 초주지나, 저주지로 두 번 싸고, 세 번째는 연창지로 쌌다. 그리고 나서 백저포, 마포, 무명, 공단 등으로 덮었다. 그 양면에 보불을 그리고 구름 변아(邊兒)에 운기를 그리는데 대개 주사 또는 진사를 사용하였다. 사대부가 회격 회곽묘에서 출토되는 삽은 광중에 부장된 것으로, 삽자루와 분리된 형태이다. 즉, 출토되는 삽은 발인행렬시 삽을 매달았던 5자 길이의 삽자루는 태워 없애고, 관의 좌우에 세워 넣은 것이다. 출토 유물의 검토를 통해서도 제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각(角)의 개수에 따라 각이 3개 달린 것과 2개 달린 것으로 대별된다. 먼저 각이 3개 달린 것(유형 I) 중에는 나무 통판을 사용하거나 대나무를 납작하게 갈라, 바구니처럼 엮은 것도 있다. 각이 3개인 삽은 비교적 조선 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에 비해 그 제작방식이 다양한 편으로 생각된다. 반면 각이 2개 달린 삽의 경우에는 비교적 정형화된 제작방식이 보인다. 직사각형이나 역사다리꼴로 몸통부분을 만든 후, 2개의 각이 달린 삽의 윗부분을 연결한 형태이다. 다만 상단면을 곡선(유형 II) 또는 직선(유형 III)으로 처리하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각이 3개 달린 것에 비해 간단하며, 제작기법 상의 차이는 크지 않다. 특히 상단면을 직선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분석에 사용된 30건 중 묘주의 몰년, 즉 삽의 제작 연대가 명확한 것만 선택하여 분석한 결과, 유형 I은 16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유형 II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 유형 III은 17세기 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요컨대 삽의 형태는 유형 I에서 유형 II로, 다시 유형 II에서 유형 III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는 변화의 시기로 유형 II III이 혼재되어 있다. 유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였으나 유형 II III은 각이 2개인 측면에서 그 형태가 유사하다고 볼 때 주목할 만한 전환기는 16세기 중반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유형 I은 유형 II III에 비해 제작 과정상 공이 더 많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며, 후대로 내려올수록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삽의 형태 및 제작방법도 간소해진 것으로 보인다. 상장례의 간소화 경향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예장(禮葬)이 몇 차례 중지되는 사건들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에 가속화된 변화로 볼 수 있다. 삽의 경우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간소화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18세기에는 삽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구의(柩衣) 및 관(棺)에 직접 그리는 현상까지 초래하였다. 그러나 형태적으로 단순화 되는 과정에도 "례기(禮記)"의 삽 사용 규정은 지켜지고 있어, 그 의례의 형식은 합리적으로 간소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제7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뿔을 본떠 흙으로 만든 것으로 액체를 담아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며 신라·가야 지역의 무덤에서 여러 형태의 뿔잔이 다수 출토되었다. 뿔잔 2점이 한 쌍으로 출토되었으며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전체적인 형태와 제작 기법은 거의 동일하다. 이번 처리를 마친 유물은 발굴된 두 개의 뿔잔 중에 큰 형태에 해당하며 구연부를 중심으로 말머리장식 쪽으로 균열이 두 군데에 있었으며 소실된 편도 관찰되었다. 뿔잔은 말의 가슴을 바닥에 닿게 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쪽은 말머리를 장식하고 반대쪽은 원추형의 뿔잔 입구가 있고 뒤쪽에 2개의 다리를 붙여 뿔잔의 균형을 맞춘 U자형의 형태이다. 뿔잔의 표면은 물레로 성형하고 말머리와 연결된 부분은 깎아 다듬은 자국이 있다. 말머리의 형상은 간결하게 귀·눈·코와 입 등 특징을 잘 파악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색은 회색이다. 이 연구에서는 비파괴 상태조사를 통하여 내부 구조를 알아보는 등 제작 특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C·T영상을 통하여 제작 기법을 알아보고 상태를 진단하여 과학적 보존처리를 통해 유물을 안정화 하였다. 보존상태 정밀진단 결과, 구연 두 곳에 결손부분이 있고 균열이 연장된 것을 확인하였다. 이 중 한 곳은 균열에 이격이 더해진 상태로 접합이 된 상태였다. 과거 접합이 이루어진 재료를 수습하여 적외선 분광분석을 실시한 결과, 질산셀룰로오스계 수지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보존처리는 과거의 재료를 제거하고 균열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하였다. 보존처리 전 상태조사 및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여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보존처리 방안 모색, 기존 접착제의 안전한 제거 및 복원 재료의 가역성을 고려하여 선택하고 보존처리는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최상의 방법으로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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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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