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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에 나타난 운동표현에 관한 선 연구 (A line study on movement expression in Dragonball of Toriyama Akira)

  • 조대호;박경철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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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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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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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20세기 초 미래주의 화가 중 일부는 2차원 그림에 '속도감'과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림 속 이미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한 속도감과 역동성의 표현은 다양한 시각적 기호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시각적 기호는 만화에서 중요한 운동표현의 선으로 정착하였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은 속도감과 역동성이 강조되어 있는 액션장르의 만화로써, 운동표현에 관한 선을 연구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용어사전과 <만화 애니메이션 사전>에는 운동표현에 관한 선으로 속도선, 동작선, 효과선의 세 용어가 있지만 문맥적으로 의미가 유사해서 구분해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드래곤볼>의 운동표현에 관한 선을 연구하기위해 기존의 운동표현에 관한 선의 의미상 문제점을 밝히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운동표현에 관한 선을 기호적인 관점에서 분류하고 쓰임에 맞추어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였으며, 기존의 속도선, 동작선, 효과선에서 잔상선을 추가하여 네 가지 선으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속도선은 '움직이는 대상의 운동표현을 속도성의 개념으로 표현한 선'으로 정의하였다. 표현함에 있어서 속도선이 대상의 형태와 결합했을 때는 직접속도선, 대상의 배경과 결합했을 때는 간접속도선으로 세분하였다. 두 번째, 동작선은 '움직이는 대상의 이동형태나 이동경로를 단순화시킨 선'으로 정의하였다. 세 번째, 효과선은 '움직이는 대상의 운동표현을 감각적 표현 혹은 감정적 표현으로 강조하는 선'으로 정의하였다. 네 번째, 잔상선은 '느리게 움직이거나 흔들리는 대상의 운동표현을 잔상효과로 표현한 선'으로 정의하였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용어는 <드래곤볼>의 운동표현에 관한 선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광장의 생성과 특성 - 조선은행 앞 광장을 중심으로 - (Creation of the Plaza and Its Featur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ed on the Plaza in Front of Joseon Bank -)

  • 서영애;심지수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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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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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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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광장은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은 시민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대표적인 광장이다. 서울 도심 내 주요 광장들은 근대 도시계획이 시행된 일제강점기에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중에서 조선은행 앞 광장은 현재까지 '광장'이라고 부르지만, 광화문 광장이나 서울 광장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음에도, 이 광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본 연구는 조선은행 앞 광장의 생성 과정과 변화를 통해 광장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 결과, 첫째, 조선은행 앞 광장은 토지 매입과 설계 공모를 통해 완성된 기획의 결과물이다. 1910년대에 총독부가 도로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조선은행 앞의 일곱 필지를 매입하여 광장의 공간적 기틀을 마련했다. 1930년대 후반에는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순환식 회전교차로 시스템이 도입되고, 설계 공모를 통해 분수대를 설치하면서 현재의 광장형태가 완성되었다. 광장으로 기획되었으나, 점차 로터리로 변화했다. 둘째, 조선은행 앞 광장은 일제의 권력과 근대성을 과시하는 랜드마크이자 상징 광장이다. 자동차 중심의 교차로와 대형 분수대는 초점 경관을 형성했다. 서양식 대형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을 중심으로 상업 광고와 네온사인이 설치되었다. 조선은행 앞 광장은 당시 근대 도시문화를 체험하는 첨단의 공간이었다.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스펙터클한 경관은 경성의 대표 이미지로 소비되었지만, 피지배자에게는 낯설고 소외된 경관으로 인식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은행 앞 광장 자체에 집중하여 생성 과정을 추적하였고, 그 특성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울의 도시변화와 함께 정치 경제적 여건을 반영한 공간 연구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수복(壽福) 중심의 전통적인 디자인 콘텐츠 개발에 대한 방향성 연구 - 문화상품디자인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the Traditional Design Content in health and longevity based on the Lucky Signs)

  • 정수연;홍동식
    •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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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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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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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한국은 6.25, 일제식민통치 및 남북분단, 군사독재 정치로 인해 정체성을 형성한 독자적 국가 이미지를 창출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에는 각종 행사와 K-POP등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한국의 정체성을 찾고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문화상품들이 여전히 부재이기에, 고유문화와 관련된 디자인 콘텐츠 개발 및 전문적인 문화상품 디자인 개발이 필요하다. 프랑스, 일본 등 디자인 강국들은 국가적 디자인 정책 사업에 자국의 전통문화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디자인 사업에 집중하는 내용이 국가적 핵심 디자인사업이다. 한국의 전통 콘텐츠도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이미지 디자인 개발 및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길상문화인 오복(五福) 중에서 옛사람과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염원하는 수복강녕(壽福康寧) 즉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과 관련된 옛사람들의 예술품을 연구하여 이를 통해 문화상품 디자인 적용 및 디자인 콘텐츠의 활용으로 발전시켜 현대의 '100세시대' 라는 트렌드에 맞는 한국의 주체적인 디자인 상품과 이미지를 제작함에 있어 다양성과 방향성을 제시함에 고찰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전통예술품에 나타나는 길상문화 중에서 대표적인 수복강녕의 이미지를 국립민속박물관의 수복(壽福) 관련 특별전에 근거한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연구하여, 주요하게 사용된 특징과 의미를 발견하고, 반복되는 패턴 및 문양콘텐츠를 연구하여, 현대적 문화상품디자인에 적용되고 있는 디자인 사례를 조사하여 분석한다. 또한 수복과 관련된 디자인 콘텐츠를 통해 한계점을 알고 활용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첫째, 문화상품은 디자인 상품 개발 부족, 홍보처와 판매처 부족,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이라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의식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시장의 요구에 맞는 가격의 합리화가 필요하다. 셋째, 실용성을 갖춘 문구류와 생활용품 위주로 전통적 디자인을 활용 및 보급시켜야 문화상품 디자인과 전통관련 콘텐츠가 더욱 쉽게 정착화 되고 보급화 될 수 있다. 넷째, 한국문화사상과 미의식 연구가 바탕이 된 다양한 한국적 이미지의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조형적 이미지만 개발할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한국적 문화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전통적 제작방식과 소재도 현대에 존중받아야 하나, 전통을 소재로 현대적 제작방식의 제품들이 경제성과 내구성도 함께 갖추며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대동(大同)'과 '도화원(桃花源)'이후 유토피아는 어떻게 재현되는가 - 격비(格非)의 「인면도화(人面桃花)」에 대한 일고(一考) (A Study on Chinese Utopia Literature - TaohuaYuanji & Renmiantaohua)

  • 김경석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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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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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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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공자의 대동(大同)과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桃花源) 이후 중국의 유토피아 상상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유토피아 상상은 다양한 문학텍스트로 형상화되어 왔으며 이 작품들은 유토피아 상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화원(桃花源)'은 동아시아적 유토피아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도화원(桃花源)은 노자의 소국과민을 바탕으로 하는 무정부주의 성격이 강한 유토피아이다. 도화원(桃花源)은 통치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공자가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대동(大同)세상은 덕치(德治)를 전제로 상상 가능한 세상이다. 청말(淸末)에 이르러 강유위(康有爲)는 "대동(大同)서"를 저술하고 이 가운데 제도를 통해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문학텍스트로 정전화 되었던 유토피아는 신해혁명 이후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문학 속의 '상상'을 일상의 '현실'로 구현하고자하는 실험이 계속되었다. 거페이의 "인면도화(人面桃花)"는 바로 그 실험의 지점에 대한 성찰적 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거페이의 "인면도화(人面桃花)"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상상의 구현과정과 좌절을 묘사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선봉파 작가로서 거페이는 "인면도화(人面桃花)"를 통해서 유토피아적 상상의 욕망과 좌절을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서 유토피아는 끊임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대 중국 이후 지속되어온 유토피아적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흔적들을 문학텍스트 가운데서 탐색하고자 한다. 공자의 대동(大同)과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桃花源) 이후 21세기에 이르러 거페이는 작품가운데서 다양한 인물형상을 통해 전통적 유토피아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좌절의 과정을 묘사하였다. 작가는 그 좌절과 욕망의 과정이 바로 인간의 유토피아 상상의 생명력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의성 지역 역사문화자원 활용을 위한 제안 : 조문국 금동관과 토기를 중심으로 (Suggestions for Using Historical and Cultural Resources in Uiseong : Focusing on the Gilt-bronze Crown and the Earthenware of Jomunguk)

  • 이은주;김미경;김영선
    • 지역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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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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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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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삼한시대 조문국(召文國)이 존재하였던 의성지역의 금성산 고분군에서는 금속제 장신구, 의성양식 토기 등 다수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나 출토된 유물을 문화상품 개발에 활용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의성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중 조문국 문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대표 유물을 선정하여 다양한 문화상품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 디자인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상징 유물을 선정하기 위하여 탑리리 고분군과 대리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속제 유물의 조형적 특성을 살펴보았으며, 고찰 결과, 탑리리 고분 출토 금동관을 의성 조문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유물로 선정하여 기본 디자인을 도출하였다. 기본디자인은 세움 장식 가장자리의 새 깃털 형상과 봉의 서식지인 봉대(鳳臺) 기록을 근거로 새 모습으로 표현하였으며 새의 얼굴 표정에 변화를 준 응용디자인을 제시하여 일례로 책갈피 도안에 적용해 보았다. 한편 의성지역 출토 토기는 토분으로 활용하여 실내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식물에 적용하였으며 금동관에서 도출한 디자인을 토분 팻말에 적용하여 식물 이름과 식물의 공기정화 효과, 그리고 식물의 관리법 등을 적는 용도로 활용한 사례를 제시하였다.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본 연구의 결과는 조문국의 문화상품 개발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의성지역에 소재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여 문화상품을 위한 기초적 디자인을 제시하고 접목한 사례에 불과하지만 의성지역 문화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추후 의성지역 문화상품개발의 활용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동중국해 북부대륙붕에 발달한 니질 퇴적체의 탄성파 연구 (A Seismic Study on Muddy Sediment Deposits in the Northern Shelf of the East China Sea)

  • 최동림;이태희;유해수;임동일;허식;김광희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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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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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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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동중국해 북부 대륙붕에 발달한 후기 홀로세 니질 퇴적체의 분포양상과 층서의 발달 특성을 밝히기 위해 고해상도 Chirp 탄성파 단면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고해상 탄성파 단면도상에서 음향기반암(기저 경계면 B)위에 2개의 퇴적층서(Unit 1과 2)가 나타나며 이들은 침식 경계면(중간 반사면 M)으로 경계된다. 하위 퇴적층서 Unit 1은 음향학적으로 평행 또는 준평행 반사층리와 수로 충진 퇴적상이 나타난다. 상위 퇴적층서 Unit 2는 반투명 내부 퇴적상과 7m 이하 퇴적두께의 렌즈형태로 발달해 있다. 시퀀스 층서분석으로부터 이들 퇴적층서는 마지막 저해수준 이후 형성되었다. 해침 퇴적체(Unit 1)는 최후 빙기동안 형성된 층서 경계면위에 바로 분포한다. 해침 퇴적체는 침식곡의 염하구 환경하에서 하천, 델타, 그리고 조간대 환경의 복합 퇴적물로 구성된다. 해침 퇴적체 바로 위는 침식 저지형의 최대 범람면이 나타난다. 최대 범람면위에 발달한 고해수준 퇴적체(Unit 2)은 저지대를 충진하는 니질 퇴적체로 구성된다. 니질 퇴적체는 제주도 남쪽 약 140km 떨어진 곳에 마치 태풍 같은 모양의 원형 형태로 수심 약 60-90m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달해 있다. 이 퇴적체의 분포 면적과 부피는 각각 약 $3,200km^2$와 약 $10.7\times1109m^3$이다. 니질 퇴적체의 기원은 고황하와 양자강에서 배출된 부유퇴적물의 혼합기원으로 해석된다. 원형의 분포형태는 북부 동중국해에 발달한 반시계 방향의 와류 순환계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삼태극의 의미고찰 (Reconsideration of the Meaning of Sam-Tai-Ji)

  • 김명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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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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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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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서울 올림픽의 휘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문양 중의 하나로 삼태극이 사용되고 있다. 삼태극은 태극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철학적 규명없이 일부 종교단체나 지식인들에 의해 '천지인'이라는 삼재론으로 혹은 '천지인 조화사상'이라는 넓은 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삼태극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조선은 건국과 더불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나, 이념의 테두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곳에서는 노장과 불교, 무속 등을 묵인하여왔다. 그리하여 태극 문양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유교적 이념이 드러나야 하는 공식적인 곳에서는 이태극 문양을 사용하고, 왕릉과 같은 사적인 곳에서는 삼태극 문양을 새겨왔음을 밝혀 놓았다. 이와 같이 문양을 분리 사용한 이유를 규명해보기 위하여 태극의 변화 발전 과정을 고찰해 보았다. 동양(한 중 일)에서는 태극 문양을 우주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문양은 한당시대까지는 삼태극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도 "한서" "율력지" 속에서'음양덕(陰陽德)'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후 중국사에서 등장한 "고태극도" 속에서는 이태극 속의 흰점으로 문양이 변화되어 나타나며, 그 의미도 '음양과 생기'로 표현된다. 그러다 유가 사상이 자리 잡은 송대 이후로는 '음양과 리'로 그 해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리는 '생기'와 달리 비실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음양과 리'를 문양으로 표현할 때는 이태극으로 표현하게 되었음을 논해 놓았다. 결론적으로 삼태극은 '음양덕' 혹은 '음양생기', '음양무극' 등을 문양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영(靈)의 세계를 인정하는 도가와 불교의 사상 속에서 주로 발달하였으며 '기'를 본체로 하는 세계관이다.

초등 수학 문제해결 과정에 사용되는 표현 방법에 대한 연구 (A Study of the Representation in the Elementary Mathematical Problem-Solving Process)

  • 김유정;백석윤
    • 한국초등수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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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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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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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시각적 표현은 문제해결을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문제해결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수학과 교수-학습에서 교사는 시각적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여야 하며, 아동은 문제상황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아동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사용하는 시각적 표현의 특징을 분석하고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학생들의 표현 유형을 정리하여, 아동이 문제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적절한 시각적 표현 방법으로 조직화하게 하는데 시사점을 주고자 하는데 있다. 이러한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아동의 문제해결지를 분석한 결과, 초등 수학 문제해결 과정에서 대부분의 아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조건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하였으며 시행착오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처음 선택한 전략을 끝까지 사용하는 경향을 보여 문제를 읽고 생긴 처음 이미지가 문제해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아동은 계산식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정보를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여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문제해결 과정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명료하고 조직화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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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함허정(涵虛亭)의 경관짜임과 의미경관 (The Landscape Configuration and Semantic Landscape of Hamheo-pavilion in Gokseong)

  • 이현우;심우경;노재현;신상섭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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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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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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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곡성 함허정(전남유형문화재 제160호)을 중심으로 '현장조사 문헌조사 인터뷰' 등의 연구방법을 토대로 연구대상 일원의 풍수형국과 경관짜임 및 조영의도 그리고 의미경관의 특성을 추적한 것이다. 함허정 일원의 입지 및 조망적 조영특성의 분석과 해석의 일환으로, 함허정 일원의 경관상에 드러난 호혜적 자연관과 경관짜임이 어떠한 형태 및 방식으로 표출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축약된다. 첫째, 함허정은 심광형(沈光亨, 1510~1550)이 중종30년(1535)에 군촌(현(現).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 처소 및 강학을 위한 군지촌정사를 창건한 이후, 지근거리에 1543년 학문연구와 유식(遊息)을 위해 지은 누정이다. 함허정과 군지촌정사가 자리한 군촌마을은 순자강(섬진강)을 마주한 전형적인 배산임수 국면인데, 진산인 동악산은 소가 강가에 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 하는 와우형(臥牛形)으로 해석되며, 함허정 일원은 목동(牧童)이 강가에서 피리를 부는 형국으로 와우(臥牛)가 적초(積草案, 풀더미)를 구비하여 평안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처로 회자된다. 특히, 함허정 뒷동산은 거북이 용궁으로 입수하는 혈맥으로 거북(또는 자라)의 등 위에 앉은 건물[구형(龜形)]이 함허정이며, 절벽 아래 남측의 하중암도(河中巖島)인 구암조대(龜巖釣臺)와 용암(龍巖)은 거북이 지향한 해중 신선경(海中 神仙景)으로 해석된다. 둘째, 함허정은 곡성8경의 제3경 순강청풍과 제9경 설산낙조(雪山落照)의 풍광시점장이면서, 곡성 입면8경의 제2경 함허순자와 제3경 천마귀암(天馬歸岩)의 풍광시점이기도 하다. 한편 음양접합과 같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으로 배열된 순자강5곡의 제4곡 경물로서 도학 및 성리학적 토포스로 본 초월적 풍경이자 감각적 투시를 통한 굽음의 미학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비변사인방안지도(18C 중엽)와 옥과현지(1788년) 등에 순자강5곡 중 제2곡 합강정과 제4곡 호연정(함허정), 그리고 제3곡 무진정이 묘사되었음을 볼 때 순자강5곡 경물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세계를 넘나들며 선경세계로 귀의하는 장소정체성은 물론 조선후기 명소적 연계경관으로서의 지명도를 엿볼 수 있다. 셋째, 비워둠의 미학이 절묘하게 드러난 함허정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 수림경관, 구암조대와 용암, 첩석(疊石) 등 바위경관, 군촌마을 문화경관 등이 지근경(至近景)으로 펼쳐지고, 중경요소로 순자강 평호(平湖)와 마산봉, 고리봉 등이 산악경관으로 조망되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리봉 마산봉 무등산 설산 등이 개방성 강한 $180^{\circ}$ 조망범위로 펼쳐진다. 특히 군지촌정사의 사랑채인 망서재(望瑞齋)의 당호는 "서석산(瑞石山)을 전망하는 집"이라는 뜻을 갖는데, 조산인 무등산과 설산을 앙경(仰景)하는 등 다채로운 차경(읍경(揖景), 환경(環景), 원근(遠近), 앙부경관(仰俯景觀))에 대한 조망지향적 의도가 중층적(中層的) 경관짜임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넷째, 실존[주거(住居) 강학처(講學處)]과 이상향[누정(樓亭) 재실(齋室)]이 접합된 군지촌 정주환경의 살림집[제월당], 강학처[군지촌정사], 누정[함허정], 재실[구암사, 청송심씨 4현 배향] 및 묘역 등은 '생성-풍요-초월-회귀'로 이어지는 사대부들의 생애주기와 관련한 의미론적 연계경관으로 인식된다. 특히 함허정 관련 시문은 순자강 일대의 가경 예찬과 유유자적한 삶에 대한 호혜적 자연관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주지할 때, 함허정은 자연귀의와 안분지족의 요체이자 거점처이며, 수심양성(修心養性)하는 은일지소로서의 현학성이 형이상학적 의미경관으로 표출된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 안사국(安邪國) (A Study of Dohang-Ri wooden coffin and Anya-Kuk)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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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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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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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격과 성립시기(成立時期)에 대하여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는 상황이나 모두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헌자료의 기록과 고고자료상에서 서로 공통적으로 관련지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연(燕)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갖춘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성립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 뿐 만 아니라 중 남부지역에 이르기까지 큰 파장을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기문화(鐵器文化)의 도입단계에는 철기(鐵器)의 실용적이고 희소적인 가치에 의해서 매장유구(埋葬遺構)에는 쉽게 부장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기원전 2세기 전반경부터는 일부 한정된 철기(鐵器)만이 매장유구(埋葬遺構)에 부장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립시기는 철기의 도입과 보편적인 활용으로 보아야하며 목관(木棺)을 사용한 서북한지방(西北韓地方)의 토광묘문화(土壙墓文化)를 포함하여 중남부지역(中南部地域)에 있어서 목관(木棺)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 단계, 즉 기원전 3세기전반대의 어느 시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한편 함안(咸安) 도항리고분군(道項里古墳群)에서 확인된 목관묘(木棺墓)는 목관(木棺)의 형태에 있어서 판재조립식목관(板材組立式木棺)과 통나무목관(木棺)의 2종류가 확인되며, 판재목관(板材木棺)의 사용 비율이 3배 이상 높은 편이다. 출토유물(出土遺物)은 비교적 단순한 조합상(組合相)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영남지역(嶺南地域)을 중심으로 한 목관묘유적(木棺墓遺蹟)에서도 모두 확인되고 있는 특징이므로 전반적으로 변(弁) 진한사회(辰韓社會)의 매장문화는 동일한 흐름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나무로 제작한 목관(木棺)은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므로 한국식동검문화(韓國式銅劍文化)와 함께 목관(木棺)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되며,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과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만 이러한 목관(木棺)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는 것은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양지역간(兩地域間)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피는데 있어서 주목되어야 한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 출토되고 있는 철기류((鐵器類)도 거의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그것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항리(道項里) 67호묘(號墓) 출토 주조철부(鑄造鐵斧)는 다호리 1호분에서 출토된 주조철부(鑄造鐵斧)와 같은 지금(地金)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소형철부(小形鐵斧)의 구성비율이 다른 철기류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것과 기경구(起耕具)로 이용되는 철제따비의 출토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단계에는 목제농기구(木製農器具)의 제작과 사용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 비해 절대적으로 빈약한 철기유물은 안사국(安邪國)의 내적(內的)인 한계(限界)를 보여주는 것이며 소국(小國) 수장(首長)의 신분적(身分的)인 상징(象徵)으로서 사용하였던 동경(銅鏡)과 의기류(儀器類)의 출토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를 조영한 집단(集團)은 당시 대외문화교류(對外文化交流)의 중심적인 선진지역(先進地域)에 비해서 사회문화적(社會文化的)인 변동(變動)이 덜한 주변 지역적인 성향이 강한 집단(集團)일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후 2세기 후반경 영남지역의 목관묘(木棺墓)는 목곽묘단계(木槨墓段階)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서도 목관묘(木棺墓)는 2세기대를 종점(終點)으로 사라진다. 고고자료상으로도 3세기에서 4세기대에 해당되는 적극적인 유구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3세기 전반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일어났던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과 관련지어 합리적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즉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양집단(兩集團)은 낙동강(洛東江)과 남강수계(南江水系)를 장악한 교역(交易)의 중심지(中心地)로서 서로 경제적(經濟的) 정치적(政治的)인 공조체제(共助體制)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에 보이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대상국은 가나(加羅)와 아라국(砑羅國)이며, 가나(加羅)는 다호리집단(茶戶里集團)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시기도 기원 3세기 전반대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3세기 전반대 이후의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4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양지역(兩地域)에서 뚜렷한 목곽묘(木槨墓)의 축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두 집단(集團)이 전쟁(戰爭)의 피해를 직접 받은 당사자였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