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agon of the East was an object of worship and an authority to make rain, unlike the West. The dragon image, one of the positively accepted Chinese motifs with the blue-and-white porcelain of the Ming dynasty by the Ottoman Empire in the 16th century, was combined with gigantic saw-edged leaves to create a genre in Saz style. By combining Eastern dragons with plant motifs instead of clouds, dragons were no longer accepted as authority and nobility but as symbols of life and longevity. Unlike Iran and other countries, the image of dragons in Turkish miniature paintings has evolved into a unique style using Turkish calligraphy. The stylistic feature is that a thick black line that gives the impression of calligraphy forms the dragon's back or a huge saz leaf stalk and forms the axis of the screen. Most of the work was black ink drawing, not painting, and partly lightly painted. In the development stage, the dragon appears as a protagonist on the screen of the early works, but the dragon retreats to the latter half and the saz leaves play a leading role on the screen. A common feature in all paintings, whether early or late, is that they have a militant character and create tension on the screen. From the viewpoint of comparative culture, Turkish dragon miniature drawings of the 16thcentury Ottoman period and the Joseon dynasty are somewhat similar in that they are based on calligraphic character and desire for longevity and loyalty, and are drawn according to certain iconic principles.
Objectives : As for the effect of Polygonum multiflorum on malaria treatment, this study analyzed the characteristics of Herenyin use in Korea and the contents mentioned in major Herbs books of the past. Methods : This study searched, collected and analyzed in the literature and data DB including the contents in herbs books on the treatment of malaria with Polygonum multiflorum, and the contents of various medical books about Herenyin used in Korea, etc. Results :Since Ming and Qing dynasties, Polygonum multiflorum was used mainly for patients with malaria, whose vitality gets weakened with time. Such effects are described in numerous Herbs books. Herenyin, consisting of major medicinal materials of Polygonum multiflorum and ginseng, was also frequently used in malaria treatment in Korea in late Joseon, rather than in China since it was listed in "Jingyuequanshu". Conclusions : Based on the mechanism studies of Polygonum multiflorum with malaria treatment effects and the study of malaria treatment medication including Polygonum multiflorum, it is hoped that the development of new therapies for complete eradication of malaria will be made in the future.
In the digital era, large archives of information and Internet accessibility make information search, including image search, easier and affordable, even from remote locations. Information transmission and sharing can be performed instantly, at any moment. In the case of images, there are risks of transmitting and recklessly sharing intentionally modified images. Such modified images can also be transmitted and used as an additional source of information by followers. In this study, historical portraits of Yu Kil-Chun are shown, who was the first Korean student to study in both Japan and the United States. He was an intellectual, writer, politician, and independence activist of Korea's late Joseon Dynasty. Using image processing software, the portrait images were compared to investigate aging effects and artificial modifications. Statistics of red (R), green (G), blue (B), and L*, a*, and b* values of every pixel in the selected identical areas of the portraits were compared to identify possible causes of variations, including aging effects and artificial modifications. Sepia toning, used in black and white photographs until the 1930s, and modern digital sepia toning can be very confusing owing to their aging effects. The importance of preservation of physical copies and preservation of context (interconnections between data and between documents) is discussed from archiving and conservation science perspectives.
This study covered the Mulmae, architectural drawing recorded on Yeonggeon-uigwes and Sanleung-uigwe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In uigwes, the term 'Mulmae' was used as a mixture until the 17th century, but from the 18th century, the term 'Mulmae(勿乙每, 勿每, 水每)' was unified into 'Mulmae(水每)'. The paper of the Mulmae was made to be used during the construction period by using a thick oil paper called Yudun. Four Yudun were connected, and its size was 197.4×141cm, which was rather large. The Yingzaofashi(營造法式) of Song Dynasty describes how to draw a longitudinal section on a scale of 1/10. The scale of 1/10 was the maximum when comparing the size of the Mulmae with the buildings in uigwes. A sectional drawing of Gongpo in Geunjeongjeon was drawn on a scale of 1/10. There is a testimony that a senior carpenter drew a cross-section on a scale of 1/10. Therefore, it was determined that the scale of the longitudinal section drawn on the Mulmae paper was 1/10. The term 'the Mulmae' was used equally by carpenter active in Japanese colonial era. The scope of the painting was clarified from pillar to rafter. Uigwes records that the Mulmae was made for wood processing. Through this, it can be understood that the Mulmae painted the entire structure as a longitudinal section.
조선후기 민심을 업고 반군이 등장하게 된다. 홍경래는 지역, 신분적 차별 등을 내세워 불만세력들을 규합하여 관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초전에 가산군수 정시에게 항복을 권하고 함께 반란에 참여하기를 강요하였으나 정시는 죽음으로 거부하였다. 주변 관리들은 항거하지 않고 반군에 항복하는 행태를 보였다. 홍경래의 난이 평정되었을 때 가장 피해를 본 부류는 홍경래의 선전선동에 속아 가담한 백성 2천여 명의 죽음이었다. 반란 초기에 관군의 책임자들이 적극적으로 방어하였다면 무고한 백성들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반군에게 항복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대항한 가산군수 정시에 대해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
This research starts based on the purpose to investigate the evolution and nature of 48 divinity depends on Gu-Cheon-EungWon-Nweh-Seong-Bo-Hwa-Cheon-Jon(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Highest ruling Entity and Majesty of Heaven by lightning and thunder raising and ruling all the universe which response to the Supreme) as well as to look at the iconography of that. Ogchugyeong(玉樞經) still exercise enormous influence on Korean folk belief neither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nor till now. The reason for authority of Ogchugyeong(玉樞經) is because Ogchugyeong(玉樞經) was the sutras of being used in the original royal families 48 divinity depends on Gu-Cheon-Eung-Won-Nweh-Seong-Bo-Hwa-Cheon-Jon which appears in Ogchugyeong(玉樞經) is created in Korea. 48 divinity is finally approved at 1888, after it started from 41 at the beginning of the deity general theory(神將論) through developing 47. The figure of 48 seems the result of the syncretism with 48 wishes of Buddhism. Okuchugyong was originally China Taoist scripture, but Okuchugyong entered Korea and reproduced a different look. In China Okuchugyong has two volumes and 44 stature of the deity general(神將) but in Korea Okuchugyong changed to have three volumes and 48 stature.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방어시설로 추정되고 있는 목책(木柵)은 조선시대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까지 군사적인 방어기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城)이나 병영(兵營) 외부에 설치되는 성책(城柵), 영책(營柵)의 개념으로 정립되면서 방어를 위한 필수시설로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문헌조사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방시설로 이용되었던 목책을 연구한 결과로, 녹각성(鹿角城)과 수중목책(水中木柵)의 용도와 기능 그리고 설치 방법 그리고 목책의 소재 등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말선초 외적의 침략이 빈번해짐에 따라 목책은 주요 성외 방어시설(防禦施設)로써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목책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관방정책, 입지 환경에 따라 목책성, 녹각성 그리고 수중목책 등 다양한 유형으로 변용(變容)되어 설치되었다. 둘째, 목책은 요충지(要衝地)의 산성(山城)이나 영(營), 진(鎭), 보(堡), 성(城) 등 군사적 목적의 관방시설(關防施設)에 설치되었으며, 유사시 방어의 시급성에 따라 농번기(農繁期)를 피해 인력의 동원이 수월한 농한기(農閑期)에 맞춰 설치되었다.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조선시대 목책의 규모는 포백척(布帛尺)으로 환산한 결과 그 둘레가 4,428척(2,066m)부터 55척(25m)까지 매우 다양한 규모였다. 또한, 목책의 재료는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주로 사용되었다. 셋째, 녹각성은 일반적인 목책보다 공격성을 겸비한 효율적인 전투 지원시설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녹각성기록은 세종대에 20회로 가장 많은 기록이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4군 6진 지역인 평안·함길도(12) 등 변방(邊防) 험지(險地)에 주로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15세기 초반 조정에서 남해안 연해지역(沿海地域)의 해상 방어 전략을 수립하게 되면서부터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 이후 본격적으로 읍성(邑城)을 비롯한 주요 치소(治所)나 진, 보 등 여러 관방시설 주변에 왜적의 병선(兵船)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시설로서 수중목책의 설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다섯째, 삼포왜란을 전후한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 남해안과 강화도에 수중목책이 설치되었다. 특히 15세기에 제포와 같은 경남 해안 요해처(要害處)에 수중목책이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수중목책의 재료는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지만 이 밖에도 합다리나무, 서어나무류, 칠덩굴도 목책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본 연구는 경화세족의 원림을 대상으로 조선후기 원림문화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고문헌과 옛 그림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원림 향유 행태를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후기 한양에 조성된 원림의 주요 향유 주체는 경화세족으로 한양도성 내부 혹은 도성 인근에 원림을 조성하였다. 이는 좋은 주거지의 조건으로 번잡한 도회지라도 좋다는 관념이 형성된 점에서 기인하며, 이에 따라 도성에서의 문화혜택을 유지하기 위한 주거와 원림향유에 대한 의도가 동시적으로 나타났다. 둘째, 원림의 입지선정에 있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도성 내에 경치가 빼어난 장소를 점유하고자 하는 성시산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원림의 입지는 대부분 산수에 위요된 형국을 보이고 있었으며, 기록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구곡의 설정이나 장소의 명명과 함께 각자를 새기는 행위로 이어졌다. 셋째, 원림 내부에 각종 소품을 수집함으로서 이를 완상하고 품평하는 등의 수집문화가 형성되었다. 경관을 조망하거나 원림 내부에 비치된 소품을 완상하는 행위는 원림기 또는 소품문의 형식으로 기록하였으며, 주변 교유인물과의 아회를 통해 그들의 취미활동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넷째, 화훼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분재의 성행 및 이국적 풍미의 수종이 원림 내에 도입되는 등 원예취미의 발달로 나타났다. 원림 내 식물요소의 도입은 조망대상으로서 식물이 애호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와 관련된 시설물이나 채마밭 또한 원림에 배치되었다. 다섯째, 중국의 원림문화 유입은 조선후기 원림의 공간구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호중천지(壺中天地)의 원림미학은 원림을 이상적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당시 중국에서 애호되었던 경물이나 소품 등을 자신의 원림에 도입하고 그들의 향유문화를 모방하는 행위가 나타났다.
본 연구는 함양 남계천변에 돌출한 바위 대고대의 경관성과 향유 주체에 주목하였다. 옛 시문과 석벽에 의탁(依託)된 인명 등 바위글씨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이곳의 장소 특성을 밝히고, 대고대에서 벌어졌던 경관 향유와 장소 패권 양상을 조명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고지도에서 나타난 대고대는 지근거리에 5개소의 서원이 집중 포치(布置)되고 있으며, 대(臺) 자체의 입체적 볼륨감과 기괴함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16C 옥계(玉溪) 노진(1518~1578)에 의해 최초로 명명된, 대고대(大孤臺)의 쓰임새를 고대(孤臺) 정경운(鄭慶雲: 1556~?)의 고대일록(孤臺日錄)에 근거해 분석한 결과, 남계서원 등의 임원과 유생의 조망 놀이 휴양 회의 계회 등 다양한 용도의 정치 사회적 소통의 장으로 활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고대의 공간구성을 살펴보면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 1515~1581)의 신도비를 중심으로 상단 암벽에는 청근정(淸近亭)이, 그 서측에는 산앙재(山仰齋)가 위치한다. 동서로 펼쳐진 높이 11m, 넓이 약 $350m^2$의 대고대 반석 상부는 강론과 음영을 위한 장소로 널리 활용되었다. 반석 북서측에 '석송(石松) 추사(秋史)'라고 음각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서체의 바위글씨와 그 옆의 일명 '석송'이라 불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사목의 잔해는 이곳의 역사성과 진정성을 한층 강화시켜 주는 경관요소이다. '대고대(大高臺) 개은서(介隱書)'와 '묵헌(默軒)' '정근상('鄭近相)' 바위글씨는 각각 개은(介隱) 정재기(鄭在箕: 1811~1879)와 그의 증손(曾孫) 정근상(鄭近相: 1893~1934)에 의해 기록된 배타적 공간 향유와 장소패권의 산물이자 조선 말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그들이 이곳 대고대의 향유 주체였음을 알리는 낙관(落款)이다. 요컨대 대고대는 조선 중기 이후 '구졸양선생장구소'로서 장소 선점의 묵시적 의미를 지녀왔으며,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정재기와 정근상의 연이은 장소패권 과정을 거치면서도 '동북강회소 천령제선현장구소'라는 범함양(凡咸陽)의 다자(多者) 강회 및 추념공간으로 변형 계승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벽에 쓰여진 다수의 인명 바위글씨는 '하동정씨(河東鄭氏)'와 '풍천노씨(豊川盧氏)'가 대고대의 경관 향유 및 장소패권의 주체였음을 묵언한다. 대고대에서 새긴 '바위글씨'는 경관향유 의지의 표상이자 장소 주도권 쟁탈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문화경관이자 정원 경영의 사례이다.
본고는 박물관 소장 조선후기 박쥐상징 회화와 공예품의 특징적 경향에 따른 잠재적 활용 및 재인식을 배경으로, 박쥐상징 공예품의 원천적 의미를 조선시대의 박쥐관념과, 이와 연관된 박쥐상징 회화의 의미체계에 두고, 그 외연과 내포적 함의관계를 조형.숫자.색채상징의 특성으로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박쥐상징 공예품은 소장연원이 분명한 박물관 소장품을 분류, 주생활 공예품으로 한정하였고 궁수용.민수용으로 구분하여 분석해 보았다. 조선시대의 박쥐관념은 박쥐의 형태적.생태적.어원적 속성을 기반으로 긍정적.중간적.부정적 측면이 공존하였다. 또한 박쥐상징 회화는 그 예가 드물었으나, 대개 박쥐의 형태적.생태적 속성에 대한 긍정적 관념을 바탕으로 한 도교의 의미체계와 결부, 신선.장생.천신의 수호자.장수의 축원을 의미하였다. 한편 궁수용 주생활 공예품의 박쥐상징은 회화의 의미체계와 연관된 장수의 상징물로, 왕실의 만대장수 및 번영을 축원하였다. 이러한 상징의미는 청나라 황실의 길상풍속인 오복관념의 동음이자에 의거, 숫자상징 '5'.'4' 와 '수자변형문' 의 결합을 기본으로 한 '박쥐[蝙蝠]$\rArr(蝙)蝠$\rArr$福$\rArr$五福' 와, 숫자상징 '1'을 특성으로 蝠倒$\rArr$福到$\rArr$福運의 도래' 를 함의하였으나, 보다 장수 상징에 치중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이에 비해서 민수용 주생활 공예품은 대부분 여성용 가구류의 금구장식과 지공예품에 등장하였다. 금구장식의 박쥐상징은 백색-은색의 색채상징과 숫자상징 '1' 의 '비행형' 을 특성으로 길상적 오복관념과 벽사적 '지킴이'를 의미하였다. 또한 지공예품의 박쥐상징은 박쥐 1쌍의 숫자상징 '2'와 삼태극의 결합형식을 기본으로, 오색의 색채상징 특성을 통해서 '쌍복' 과 여성들의 현세적 염원인 화목, 다남자의 기본적 측면을 투영하였다. 이러한 민수용 주생활용품의 박쥐상징은 도교적 의미체계나 길상적 동음이자보다는 외연의 시각적 이미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박쥐$\iff$복.지킴이' 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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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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