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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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gesic effects of eucalyptus essential oil in mice

  • Lee, Ganggeun;Park, Junbum;Kim, Min Sun;Seol, Geun Hee;Min, Sun Seek
    • The Korean Journal of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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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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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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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Background: The use of aroma oils dates back to at least 3000 B.C., where it was applied to mummify corpses and treat the wounds of soldiers. Since the 1920s, the term "aromatherapy" has been used for fragrance therapy with essential oil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etermine whether the essential oil of Eucalyptus (EOE) affects pain pathways in various pain conditions and motor coordination. Methods: Mice were subjected to inhalation or intraperitoneal injection of EOE, and its analgesic effects were assessed by conducting formalin, thermal plantar, and acetic acid tests; the effects of EOE on motor coordination were evaluated using a rotarod test. To determine the analgesic mechanism, 5'-guanidinonaltrindole (${\kappa}$-opioid antagonist, 0.3 mg/kg), naltrindole (${\delta}$-opioid antagonist, 5 mg/kg), glibenclamide (${\delta}$-opioid antagonist, 2 mg/kg), and naloxone (${\mu}$-opioid antagonist, 4, 8, 12 mg/kg) were injected intraperitoneally. Results: EOE showed an analgesic effect against visceral pain caused by acetic acid (EOE, 45 mg/kg); however, no analgesic effect was observed against thermal nociceptive pain. Moreover, it was demonstrated that EOE did not have an effect on motor coordination. In addition, an anti-inflammatory effect was observed during the formalin test. Conclusions: EOE, which is associated with the ${\mu}$-opioid pain pathway, showed potential effects against somatic, inflammatory, and visceral pain and could be a potential therapeutic agent for pain.

노산 이은상 시조의 병치 기법 연구 - 노산 시조집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Juxtaposition Technique in Nosan Lee Eun-sang's Sijo - Focusing on the Nosan Sijojip(時調集) -)

  • 이순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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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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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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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노산시조집에 실린 작품에서 발견되는 병치에 주목하여, 이은상 시조의 주된 창작 태도가 병치 기법에 있으며 이러한 창작 태도는 독자들에게 이해의 수월성을 제공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병치기법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텍스트의 의미를 명료화하고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병치 기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이은상의 창작태도는 독자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또한 병치기법으로 인한 의미의 확장은 시조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간결미와 정제미의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이러한 창작태도는 '시조 정체성의 혼란과 난해성으로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 오늘날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은상이 "노산시조집"을 발간한 시기는 한국 시조가 노래 장르에서 문학 장르로 그 발판을 굳건히 다지는 때였다. 문학 장르의 발판을 굳히기 위한 도구로 영미의 이미지즘을 수입하여 전통시가의 근대화를 꾀했다. 1920년대 창작된 시조 작품에는 이미지즘 시 이론이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었지만 "노산시조집"에는 개성적인 면도 있었다. 이은상의 시조에는 병치 기법이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은상 시인이 추구한 시작태도라고 할 수 있다. 로스, 피네간, 유협, 속요에 서술된 병치 이론을 참조하여 "노산시조집"에 나타난 병치 기법의 유형을 의미의 조응과 의미의 대립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의미의 조응에서는 동의적 병치, 종합적 병치, 구체적 병치, 통사적 병치로 나누었으며 의미의 대립은 대립적 병치에서 살펴보았다. 이은상 작품 대부분이 이러한 병치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병치에 의해 나타나는 이미지의 역동성은 영미 이미지즘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오늘날까지 독자들이 이은상 시조 작품을 널리 애송하고 있는 까닭은 병치 기법과 이미지의 역동성으로 그의 작품이 쉬우면서 감동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은상이 추구했던 병치 기법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수월성을 제공하고 리듬 창출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시조의 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인들이 시조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병치 기법이나 역동적 이미지를 잘 살려낸다면 현대 시조가 지닌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며 시조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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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arent metabolizable energy, growth performance and carcass traits of Japanese quail fed select modern grain sorghum varieties

  • Moritz, A.H.;Krombeen, S.K.;Presgraves, J.;Blair, M.E.;Buresh, R.E.;Bridges, W.C.;Arguelles-Ramos, M.;Wilmoth, T.A.
    • Animal Bio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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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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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1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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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Objective: This study was performed to determine the apparent metabolizable energy (AMEn) content of tannin-free red/bronze, white/tan and U.S. No. 2 varieties of grain sorghum for feeding Japanese quail and validate their nutrient profile by evaluating effects on performance and carcass traits with full-substitution of corn. Methods: Experiment 1 determined the AMEn content of red/bronze, white/tan, and U.S. No. 2 grain sorghum varieties fed to mixed-sex Japanese quail (Coturnix japonica) (n = 314) at 3 and 6-weeks of age. Analyses were based on a 2×4 factorial treatment design with age and grain types defining the treatments, and a randomized complete block experiment design with cage and trials defining the block. AMEn values were validated by evaluating the performance and carcass traits of Japanese quail (n = 644) from 1 to 40 days of age in Experiment 2 with birds were fed 1 of 4 complete diets. Statistical analyses were conducted on performance data and select individual carcass trait measurements. Results: Determined AMEn values at 3-weeks of age were 3,524±122.03 (red/bronze), 3,252±122.03 (white/tan), and 3,039±123.44 (U.S. No. 2) kcal/kg. At 6-weeks of age, determined AMEn were 3,373±297.35 (red/bronze), 3,279±297.35 (white/tan), and 2,966±298.64 (U.S. No. 2) kcal/kg. Carcass traits showed live body weight (p = 0.0409) and hot carcass weight (p = 0.0234) were greatest in U.S. No. 2; however, carcass yield (p<0.0001) was lowest. No significant differences were observed among treatments for feed intake, feed conversion ratio, breast weight and breast yield (p>0.05). Conclusion: These studies demonstrated that tannin-free grain sorghum varieties may be a potential alternative to corn in quail diets while maintaining growth performance and carcass parameters.

일제강점기 경주 남산 삼릉계 약사여래좌상 반출 경위에 대한 고찰 (A Study of the Removal of the Seated Medicine Buddha from the Samneung Valley at Namsan, Gyeongju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 아라키 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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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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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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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경주 남산의 불적에 대한 본격적 조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경주 남산 불적조사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경주 남산 불적을 심도 있게 고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선행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경주 남산의 불적조사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일병합을 전후한 초기 조사는 예비 조사 정도로 간주되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초 조사로 후속 조사의 발판이 되었고, 1910년대에 남산이 불적의 보고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1915년 경주에서 반출되어 경성 경복궁에서 개최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에 출품된 삼릉계 약사여래좌상은 관람객의 눈길을 가장 끄는 미술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세간에 불적으로서의 경주 남산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약사여래좌상은 남산 불상 중에서 가장 원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공진회에 출품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그 반출은 한일병합을 전후하여 구상된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진행되었다.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은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중심이 되어 구상된 식민 이데올로기인 '일선동조론'과 '조선정체성론'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해체하고 그 한복판에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석굴암을 안치시킴으로써 일본 제국에 의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려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그 구상이 무산되자 석굴암 본존불 대신에 경성으로 반출된 것이 다름 아닌 삼릉계 약사여래좌상이었다. 약사여래좌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11년 세키노 다다시가 실시했으나 그 위치를 세키노에게 알린 것은 모로가 히데오나 고다이라 료조와 같은 경주 거주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 현지인은 총독부로부터 요청을 받아 공진회에 출품할 만한 불상을 찾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약사여래좌상은 총독부와 세키노 다다시, 그리고 경주 거주 일본인들 사이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경성으로 반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경주 남산의 불적이 그 신비의 베일을 벗기는 과정이기도 했다. 요컨대 초기 남산 불적조사는 기초 조사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과 1915년 공진회의 성공적 개최라는 데라우치 총독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깊은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 순수한 학문적 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기 어렵다. 한편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이 좌절되고 경성으로 반출될 가능성이 컸던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 현지에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경주 조선인의 저항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자세히 논할 수 없었으나 그들을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로 부각시킬 연구가 요구된다.

만경강유역의 개간과정과 취락형성발달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ultivation Processes and Settlement Developments on the Mangyoung River Valley)

  • 남궁봉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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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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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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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만경강유역을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고 연구한 결과, 그 공간상에서 역사와 더불어 형성발달해온 시공연속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만경강상류에서 하류 하구연안에 이르는 면장공간상에서의 개간과정은 여말에서 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지-지향지] 지향가설에서 본 개간과정에서 개간의 기원지는 만경강상류 산간계곡의 지류곡지 개간을 효시로 하여 기원지가 이루어지고, 조선조 중기까지는 수방대책의 발달과 더불어 하천 중류까지 진출하고, 하천 본류에 대한 하류지역의 계간은 하천의 규모와 유수량의 증가로 인한 하안의 홍수와 범람을 극복할 수 있는 인공제방을 축조할 수 있는 기술수준에 이른 192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화되고, 그후 연이어 하구연안의 간석지 개간도 시행되어 개간의 개척첨단이 이들 지향지인 해안간석지일대에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각 시기마다 공간의 변화도 수반되어 시공연속체가 발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취락의 경우 개간과정에 따라 산간계곡 산록일대에서는 주변입지적 집촌, 하천중류와 하류에서는 중앙입지적 집촌, 하천하구 간석지에서는 중앙입지적 열촌형태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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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of-School Educatin for the Gifted and Talented around the World

  • Freeman, Joan
    • 영재교육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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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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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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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No educational provision for the gifted and talented works in a cultural vacuum, and this is as true for out-of-school activities as for what happens in school itself. There is evidence that excellence in children's achievements can come from widely differing special provision or from no special provision at all. Cultural influences affect attitudes as to who might be gifted and talented and what might be done for them. Whatever the size and influence of special centres anywhere, there is always overlap between in-school and out-of-school activities. For all styles of provision, cooperation between the two is a vital aspect of success. The major cultural dichotomy in this field is between the perception, usually found in the Far East that 'most children have gifted potential' and the largely Western view that 'few children have gifted potential'. It is safe to say that children who are selected for aptitude and ability, and who are keen to learn, will get more from special enrichment than those who of equal potential who have not had that experience. But this does not necessarily show the provision as the best possible method for enhancing gifts and talents. In fact, I do not know of a single scientific investigation, either cross-culturally or within one country, which compares any aspect of an out-of-school programme with another. As a result it is hard to say what type of provision would be most appropriate and effective in any given situation. Outcomes are also dependent on the enthusiasm, organisation and money put into any scheme - as well as the way youngsters are chosen for it. Some of the largest and most influential out-of-school American institutions were founded on the psychological understanding of human abilities that was current in the 1920s. These early influences of seeking an IQ cut-off point (or equivalent) to identify the gifted still affect their practice. in addition, the big American Talent Searches so often select youngsters for summer-schools not only by their high-level achievements, but also by their parent's ability to pay the sometimes high fees. Opinions about the identification of the brightest children and consequential educational practice underlie all provision for their education, whether in or outside school hours. Because of cross-cultural differences, it would not seem wise to copy any action directly from one culture to another without recognising these influences and possibly modifying the model. The growing trend around the world is to offer high-level opportunities to as many youngsters as possible, so that no keen learner is turned away without even a change of sampling them.

일제강점기의 신라고분조사연구에 대한 검토 (An Study on Cognition and Investigation of Silla Tumuli in the Japanese Imperialistic Rule)

  • 차순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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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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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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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근대 초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를 비롯한 일본인 관학파 연구자들은 신라고분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유적 전반에 대한 조사연구와 자료수집활동을 했다. 이들은 초기에는 메이지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한국이 식민지화된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와 유관기관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고고, 미술, 건축, 인류학, 민속학 등 전 분야에 걸친 조사를 하였다. 이들이 신라고분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유산을 조사한 목적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와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지역적으로 편중되고 왜곡된 시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1886년부터 한국의 고분과 출토유물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한 방한 조사가 계속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904년 세키노가 한국에서 조사한 건축조사 보고서인 "한국건축조사보고(韓國建築調査報告)"에는 오릉을 비롯한 여러 고분에 대한 내용이 간단하게 소개되었고, 1906년에는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최초로 소금강산에 위치한 '북산고분(北山古墳)'과 황남동 남총(南塚)에 대한 발굴조시를 한 후, 적석목곽분(積石木樹墳)과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의 구조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이 이루어졌다. 1909년 건축학을 전공한 야츠이 세이이치(谷井第一)는 서악동 석침총(石枕塚) 발굴조사에서 작성한 석실의 평면도와 단면도는 한국에서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최초로 제작된 유구실측도면으로 수치가 표현된 점에서 이전의 스케치된 그림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또한 이후 발굴조사에서는 이러한 유구 실측도면의 작성은 계속 이어진다. 이마니시와 야쯔이는 신라고분의 입지적 특징, 분구의 형태와 규모, 출토유물 등에 대한 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적석목곽분과 횡혈식석실분은 서로 연대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조선총독부는 1916년에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과 "고적조사위원회규정"을 시행하고 고적조사위원회와 박물관협의회를 설치했다. 박물관이 활동하게 되면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유적을 조사하는 사업들은 모두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얻어야 됐다. 1921년에는 금관총(金冠塚)이, 1927년에는 서봉총(瑞鳳塚)이 각각 발굴조사되면서 경주의 대형 적석목곽분은 화려한 출토유물로 주목을 받게 되지만, 전국 각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여러 고분들에 대한 보고서 발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최근 몇몇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미발간 보고서가 간행되었지만, 서봉총과 같이 중요한 고분들에 대한 보고서가 아직 출판되지 못한 점은 당시의 한계로 볼 수 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노모리 켄(野守健)이 지적도를 기초로 제작한 경주고분 분포도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155기의 고분의 규모와 위치를 명기한 자료로 시내에 소재한 여러 고분의 전체 모습을 확인시켜준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930년대부터 아리미츠 쿄이찌(有光敎一)와 사이토 타다시(齋藤忠)는 다수의 적석목곽분과 횡혈식석실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서 한 묘제에 여러 가지 형식의 분묘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특히 복잡하게 중복된 모습으로 노출된 적석목곽분에 대한 발굴조사경험은 이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와 보고서간행 등에 있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 지난 근대~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된 신라고분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을 살펴본 결과, 이때 조사된 여러 유적들에 대한 조사내용을 재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는 한국고고학사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실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및 영화에 등장하는 정서교감형 로봇의 캐릭터라이징 전략 - 외형과 행동 경향성 분석을 중심으로 - (Characterizing Strategy of Emotional sympathetic Robots in Animation and Movie - Focused on Appearance and Behavior tendency Analysis -)

  • 류범열;양세혁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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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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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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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애니메이션 및 영화와 같은 영상저작물에서 묘사되는 로봇이 핵심인물과 교감하고 애착을 형성하는 조건을 분석하여 정서교감형 로봇의 캐릭터라이징 전략을 정리하고자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분야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이상 공상과학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영상저작물에서 창조된 정서교감형 로봇의 표현적 특성이, 향후 널리 보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간친화적 서비스 로봇계열의 표현적 구현 즉, 캐릭터성 구축에 있어서 의미 있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내릴 수 있었으며, 그 기초를 세우기 위한 목적에서 본 연구가 시작되었다. 분석 대상은 현대적인 로봇의 개념을 천명한 1920년대 이후 제작된 영화와 애니메이션 중에서, 핵심인물과의 정서적 친밀성이 명확히 관찰되는 로봇 캐릭터로 한정했다. 그리고 로봇의 외형과 행동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해, (1) 로봇의 외현적 인상을 5가지(인간적, 만화적, 도구적, 인공적, 애완동물적) 분류에 의해 유형화하고, (2) 성격의 외적 구현으로 여길 수 있는 행동 경향성은 DiSC 행동유형 진단도구를 활용하여 유형화했다. 한편, 정서적 친밀성이 높은 로봇은 감정 수용력과 임무로부터의 독립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교형과 안정형의 행동유형이 감정수용성이 높고, 사교형의 독립성이 높은 편이며, 신중형은 감정 수용성과 독립성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만, 외현적 인상 분석을 통해 파악한 외형요인은 정서교감 능력에 대해 유의미한 관계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정서적 교감 능력이 강한 로봇의 조건은, 현실의 인간 관계형성 과정과 유사하게, 첫인상보다는 소통을 통한 정서적 교감이 주요한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었다. 끝으로, 로봇의 캐릭터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로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통섭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로봇 캐릭터를 디자인적 요인과 성격적 요인만으로 재단하기에는 인간과의 교감에 요구되는 방대한 정보를 온전하게 분석하기 어렵다는 한계 역시 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초석으로서, 간학문적 연구가 필요한 로봇의 개발에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종합예술적 가치가 값지게 활용되기를 기대하며 연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수영만 퇴적물의 퇴적속도와 중금속 오염 (Pollution of Heavy Metals and Sedimentation Rate in the Sediments of Suyeong Bay, Pusan)

  • 양한섭;김성수
    • 한국수산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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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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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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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
  • 수영만 퇴적물중 중금속 원소의 오염역사와 인위적 오염부하량을 알아보기 위하여 1993년 5월 수영만에서 4개의 주상퇴적물을 채취하여 $^{210}Pb$, TIL, TOC, TON 및 중금속 원소(Fe, Mn, Pb, Zn, Cu, Co, Cd, Ni)를 측정하였다. 1. 퇴적속도는 정점 S3에서 2.4 mm/yr($0.12g/cm^2/yr$)로 가장 느리고, 나머지 3개 정점에서는 $3.5{\sim}4.0 mm/yr(0.18{\sim}0.20g/cm^2/yr)$ 범위로 정점별 차이가 크지 않았다. TIL과 TOC의 농도는 가장 바깥 정점인 정점 S4에서 가장 높고, 용호만 입구쪽에 위치한 정점 S3에서 가장 낫은 반면에 TON은 정점 S2에서 가장 높고, 정점 S1에서 가장 낮았다. 반면, Co를 제외한 중금속의 농도는 대체적으로 수영강 하구쪽에 가장 가까운 정점 S1에서 가장 높고, 정점 S3에서 가장 낮았다. 2. 수영강 하구에 가까운 정점 S1과 정점 S2에서는 Pb, Zn 및 Cu의 농도가 1930년대부터 점차 증가하고 $1960{\sim}1970$년경에 극대값을 보이다가 그 이후에 점차 감소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Fe, Mn, Cd은 대체적으로 상부퇴적층에서 높고 하부퇴적층에서 낮으나, Co와 Ni은 오히려 하부퇴적층에서의 농도가 상부퇴적층보다 높다. 3. 4개 정점에 대한 인위적인 오염 총부하량은 Pb이 $9{\sim}291{\mu}g/cm^2$, Zn이 $165{\sim}1,122{\mu}g/cm^2$, Cu가 $20{\sim}208{\mu}g/cm^2$의 범위로 Zn이 가장 컸으며, 정점별로는 정점 S1과 S2가 정점 S3와 S4에 비해 수십 배 크다. 1900년 이후의 총퇴적량(anthropogenic+natural)에 대한 인위적 오염부하량의 비율은 정점 S1과 S2의 경우 Pb과 Cu는 $28{\sim}35\%$이고, Zn은 $32{\sim}42\%$에 상당한다. 그러나, 정점 S3와 S4에서는Pb이 $4\%$ 이하이고, Cu가 $11\%$ 이하이나 Zn은 $10{\sim}22\%$의 수준이다. 4. 성분 상호간의 관계를 보면, C/N비값은 TON과 좋은 정의 상관성(r=0.68)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C/N 비값의 수직분포는 TON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인위적인 오염이 많은 Pb, Zn, Cu은 상관계수 0.7 이상으로 비교적 좋은 상관성을 보여 이들 물질의 공급원 및 지구화학적 거동이 유사함을 의미한다. 또한, Cd-Ni 및 Cd-TON은 상관계수 0.8 이상으로 좋은 정의 상관성을 보인다. 특히, Cd은 퇴적물내에서도 수주중에서와 마찬가지로 TON과 비슷한 거동을 한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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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저고리 소고 (A study on the upper garment of Korean women, Jugori)

  • 이경자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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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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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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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
  • A study on the upper garment of Korean women, JUORI The upper garment of Korean women. JUGORI, is an inherited mode from the ancient clothing style in the various aspects based on the particulars of Korean clothes. The ancient style of clothes is originated from KWAMDUI belonging to inhabitants of Northern Territory of Korea. And it is quite different from Chinese clothes in lineage. However, this unicque mode of clothes has been much influnced by the Chinese culture and also by the climate of Korea. And it is quite different from Chinese clothes in lineage. However, this unicque mode of clothes has been much influnced by the Chinese culture and also by the climate of Korean penynsula. The changes of the pattern of JUGORI, in a word, is a sign of shortening tendency of size. This tendency of JUGORI is remarkably seen in the shortening of length and other parts are decreased in size. The JUGORI in the ancient age was fallen below the weist of woman, which is similar to Robe, and was worn with band. However, the length of the JUGORI has been gradually shortened, and therefore, GORUM took place of the band. The shortening tendency of JUGORI is seemed to be shown its sign in the initial time of its origin, because there are some evidences that the women in Sylla Dynasty, and this tendency has been much expedited during the period of Koryu Dynasty with influences of Monggorian culture (Won Lynasty of China) The oldest sample for data of JUGORI in nowaday is one the remains of Yi Dynasty, and this sample for data provides all the particulars of the modern pattern of JUGORI. The tendency of JUGORI had been continued even in Yi Dynasty, and at the end of the Dynasty, the clothes was shortened that the women felt inconvenient wearing it in the status of the shortened JUGORI which was even hardly cover the initial time of epoch of modernization induced from the Western civilization, and after 1920s and 1930s JUGORI become a larger tendency. This is a sing of revival of practical use and rationalization of JUGORI become a shortening tendency again, and the size is similar with that of early age of Yi Dynasty. Instead of these similarities, the particulars of modern JUGORI is weighing on much emphasis on curve beauty and expression of experior beauty. The reason is that, together with westernization of clothes, JUGORI became a special pattern of clothes as a traditional Korean women wears. The very thing explaining this pattern of JUGORI is the "ARIRANG DRESS". And there are some fashion using button instead of GORUM and half sleeve JUGORI for summer use which is regarded as a part of improved aspect of life in Korea.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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