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historical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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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의 현실적 사회개혁론 - 경(敬)·의(義)를 중심으로 - (Nammyeong Jo-Sik's Practical Social Reformism)

  • 이미림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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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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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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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남명의 경(敬) 의(義)철학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유학에서 지향하는 자신에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상통한다.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먼저 바로 보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수양은 곧 사회 전체의 수양, 사회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맥락이 전제되는 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수신(修身)'에서 출발해 '평천하(平天下)'로 가는 길, '수기(修己)'이후에 '안인(安人)'이 되고, '극기(克己)'이후에 '부례(復禮)'가 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개인과 사회를 분별하지 않고, 개개인의 모습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고, 개인이 바로 설 수 있을 때 사회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유학의 사회체계의 원리는 상호적, 또는 층차적 분화와 통합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를 개인 혹은 국가와 대립시키지 않으며, 같이 이루어나가는 도덕 공동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명에 있어서 경(敬) 의(義)철학이 가지는 실천성은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실천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성이 남명의 경(敬) 의(義)철학에서 '행의(行義)'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행의(行義)'는 후에 그의 문도들이 국가적 위기에 보인 행동으로 입증된다. 이 점에서 그는 퇴계나 율곡과는 다른 또 하나의 조선조 성리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행의(行義)의 사회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성리학자나 실천성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명은 특히 현실의 당면 문제에 구체적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관념적, 내면 지향적 사유가 갖는 기만성을 경고한다. 결과적으로 남명의 경의(敬義)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수양과 단련은 사회 역사적 장과 상관없는 진공상태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세적 공효 내지는 사회적 실천의 맥락에서만 평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남명의 경의(敬義)의 실천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 개혁론'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학사를 가로지르는 언어·문화·역사의 계기들 - 일본 저술 한국문학사의 한국근현대문학 인식과 서술양상을 중심으로 - (Linguistic, Cultural, and Historical Momentums through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Focused on the Recognition and Descriptive Aspects of Korean Modern Literature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Written in Japan-)

  • 윤송아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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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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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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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일본에서 저술된 한국문학사 중에서 임전혜의 "일본에서의 조선인문학의 역사-1945년까지"와 시라카와 유타카의 "조선근대문학의 발자취", 그리고 사에구사 도시카쓰의 "한국문학을 맛본다"를 중심으로 각 문학사에 나타난 한국근현대문학의 인식방법 및 서술양상을 '문화횡단'이라는 관점 아래 고찰하고 있다. 먼저 임전혜는 일본유학생들의 문학 활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산출된 조선인 문학을 시기별로 고찰하면서 한 일간의 능동적인 문화교섭과 상호이해, 정치적 연대의 지점들을 짚어낸다. 시라카와 유타카는 근대문학 형성과정에서의 한중일 삼국의 동시성과 연관성에 주목하고 일본어 문학과 친일문학 등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충돌하는 매개적 연구자로서의 중층적 위치성을 보여준다. 사에구사 도시카쓰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비교문학적 고찰,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학적 형식과 주제의 구현, '친일문학'을 바라보는 탈경계적 시선 등을 통해 한국문학의 내적논리와 외연을 두루 살피는 흥미로운 문화횡단적 계기들을 제공한다. 이들 문학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문화횡단적 실천 양상은 첫째, '민족문학사'를 근간으로 한 기존의 한국근현대문학사를 '식민지 경험'과 '국가민족주의'라는 자장에서 이화(異化)시켜 다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점, 둘째, 기존 한국문학사의 서술양상을 보완하는 입체적이고 미시적인 문학사 서술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 셋째,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비교문학적 관점의 수용을 통해 확장되고 열린 문학사 서술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 넷째, 재일조선인문학, 일본어 문학의 발견을 통해 한국근현대문학사의 외연을 넓히고 토대를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매킨타이어의 현대 도덕 다원주의 비판 (MacIntyre's Critique of Modern Moral Pluralism)

  • 김영기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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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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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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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논문은 현대 도덕 다원주의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살펴보고 그의 비판이 갖는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중요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좀처럼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낙태나 안락사와 같은 문제, 분배적 정의나 재산권 같은 문제, 전쟁과 평화와 같은 문제를 두고 일어나는 논쟁들은 곧장 주장과 반대 주장의 대립으로 귀착되고 만다. 왜냐하면 서로 대립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통된 기준에 의해 평가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도덕적 전제들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흔히 도덕적 다원주의라고 부르며, 이러한 상황은 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발휘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현대의 이러한 도덕적 다원주의 상황을 격렬히 비판하며, 그 원인은 이른바 '계몽주의적 기획'의 실패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지난 삼백년간 철학을 지배했던 계몽주의의 기획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성과 목적에 대한 특정한 이해에 좌우되지 않는 합리성의 개념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현실적으로 달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도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결코 달성될 수가 없다. 그 결과 현대의 도덕과 정치 사상은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혼란은 우리가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에만, 그 본질적 요소인 목적론에 토대하여 실천 이성에 대한 설명을 구성할 때에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덕의 상실"에서의 그 주장이 갖는 가장 어려운 난점 하나는 우리가 상황 속에 있는 존재, 이야기 속의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의 인생의 주인이자 나의 이야기의 저자라는 점에 주목할 때, 과연 현대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가 옹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생각을 다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아울러 자유로운 제도를 지속시키려고 한다면 도덕적 다원주의는 재앙이라기보다는 인간이성이 행사된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는 점이다.

독일 경제아카이브즈의 형성과 유형 (The Formation and Types of Business Archives m Germany)

  • 김영애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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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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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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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term 'Business Archives' is not familiar with us in our society. Some cases can be found that materials are collected for publishing the history of a firm on commemoration of some decades of its foundation. However, the appropriate management of these collected materials doesn't seem to be followed in most of companies. The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 is inevitable in order to maximize the utility of Information and knowledge in the business world. The interest in records management has been grown, especially in the fields of business management and information technology. However, the importance of business archives hasn't been conceived yet. And also no attention has been paid to the business archives as social resources and the responsibility of the society as a whole for their preservation. The company archives doesn't have a long history in Germany although the archives of the nation, the aristocracy, communes and churches have a long tradition. However the company archives of Krupps which was established in 1905, is regarded as the first business archives in the world, It means that Germany has taken a key role to lead the culture of business archives.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business archives in Germany and its characteristics. The business archives in Germany can be categorized in three types: company archives, regional business archives and branch archives. It must be noted here that each type of these was generated in the context of the accumulation of the social resources and its effective use. A company archives is established by an individual company for the preservation of and use of the archives that originated in the company. The holdings in the company archives can be used as materials for decision making of policies, reporting, advertising, training of employees etc. They function not only as sources inside the company, but also as raw sources for the scholars, contributing to the study of the social-economic history. Some archives of German companies are known as a center of research. A regional business archives manages materials which originated m commerce chambers, associations and companies in a certain region. There are 6 regional business archives in Germany. They collect business archives which aren't kept in a proper way or are under pressure of damage in the region for which they are responsible. They are also open to the public offering the sources for the study of economic history, social history like company archives, so that they also play a central role as a research center. Branch business archives appeared relatively late in Germany. The first one is established in Bochum in 1969. Its general duties and goals are almost similar with ones of other two types of archives. It has differences in two aspects. One is that the responsibility of the branch business archives covers all the country, while regional business archives collects archives in a particular region. The other is that a branch business archives collects materials from a single industry. For example, the holdings of Bochum archives are related with the mining industry. The mining industry-specialized Bochum archives is run as an organization in combination with a museum, which is called as German mine museum, so that it plays a role as a cultural center with the functions of exhibition and research. The three types of German business archives have their own functions but they are also closely related each other under the German Association of Business Archivists. They are sharing aims to preserve primary materials with historical values in the field of economy and also contribute to keeping the archives as a social resources by having feed back with the public, which leads the archives to be a center of information and research. The German case shows that business archives in a society should be preserved not only for the interest of the companies, but also for the utilities of social resources. It also shows us how business archives could be preserved as a social resource. It is expected that some studies which approach more deeply on this topic will be followed based on the considerations from the German case.

일본 문화유산의 연속적 활용에 관한 연구 - '군마 실크유산'과 세계유산, 일본유산 사업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tinuous Utilization of Japan's Cultural Heritage Through the Cases of Silk Heritage, World Heritage, and the Japan Heritage Project in Gunma Prefecture)

  • 이정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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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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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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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2015년 3월 일본 문화청은 2020년 도쿄 올림픽 패럴림픽 개최까지 각 지역의 매력적인 유 무형 문화재를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가미하여 홍보하는 '일본유산 매력 발신 추진사업(日本遺産魅力發信推進事業, 이하 '일본유산 사업')'을 도입했다. 이는 문화청에서 표방하고 있는 21세기 "문화재판의 쿨 재팬 전략(文化財版のク-ルジャパン戰略)"으로, 지역의 문화유산과 관광을 효과적으로 접목한 하의상달식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2018년 12월 현재까지 4회에 걸쳐 총 67건의 일본유산 프로젝트가 공식 인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에 소개되어 연구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 같은 배경과 일본유산 사업에 관한 국내 학술적 연구 부족을 전제로 본고는 군마현(群馬?)의 세 가지 사례를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는 2011년 지역의 로컬리티 관점에서 출범한 '군마 실크유산(ぐんま絹遺産)'과 글로벌리티 관점에서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도미오카 제사장과 실크산업 유산군(富岡製사?場と絹産業遺産群)', 그리고 글로컬리티 측면에서 이듬해 2015년 3월 최초의 일본유산 사업으로 인증된 "부인 천하 -군마의 실크 이야기-(かかあ天下 -ぐんまの絹物語-)"의 스토리를 활용한 지역성과 세계성의 융합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각각의 유산 사업 간의 연계성을 논고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사업의 실무 부서인 군마현 기획부 세계유산과와의 서면 질의 및 문헌조사를 통해 군마현의 제각기 다른 일련의 문화유산 활용 사례는 결코 우연히 출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고 상승작용을 지향하는 전략임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본 연구는 군마현의 사례가 명주실과 비단산업에 스토리를 가미한 유 무형의 콘텐츠로 나선형 시너지 효과와 "인정의 연쇄"를 지향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종합하면 본 사례는 쿨 재팬 전략의 맥락에서 "문화재 보호라는 현상 유지의 행정에서 더 나아가 성장성을 지닌 적극적인 문화행정으로서의 전환"을 모색하는 최근 문화유산 활용의 동향을 제시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역적 글로벌 글로컬 차원의 중층적인 유산 제도와 사업을 긴밀히 연결시키는 연쇄사슬적 효과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국내 역사문화자원의 활용과 관련 정책 입안에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판단된다.

러버쉬팅변환을 통한 「동궐도(東闕圖)」의 평면도 제작 가능성 연구 - 창덕궁 금천교 주변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Producing a Floor Plan of 「Donggwoldo(東闕圖)」 through the Use of Rubber Sheeting Transformation - With a Focus on the Surroundings near the Geumcheongyo Bridge in Changdeokgung Palace -)

  • 이재용;김영모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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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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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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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동궐도(東闕圖)"의 작도원리를 기반으로 러버쉬팅변환(Rubber Sheeting Transformation)을 통해 조선후기 창덕궁 금천교 주변의 평면도 제작을 시도하였으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궐도(東闕圖)" 제작 당시부터 현존하는 주요 전각의 실제 크기와 그림에 묘사된 크기를 비교하여 전각의 정입면이 약 1/200으로 축소되어 작성되었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측입면에서는 동일한 제작 비율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측입면의 길이가 실제의 약 절반 정도로 그려지고, 사선 각도가 평균 $39^{\circ}$로 파악됨에 따라 캐비닛 투영(Cabinet Projection)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동궐도(東闕圖)"의 작도 원리를 역추적하여 "사투영평면도"를 작성하고 러버쉬팅변환을 통해 "동궐도(東闕圖)"의 창덕궁금천교 주변 평면도를 제작하였다. 변환 시 투영변환(projective transformation)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표준 오차는 2.1208m로 비교적 높은 정확도를 나타냄으로써 "동궐도(東闕圖)"의 평면도 제작이 유의미하였다. 이는 "동궐도(東闕圖)"뿐만 아니라 평행사선도법으로 작성된 각종 기록화의 평면도 제작 가능성을 시사한다. 셋째, 작성된 평면도가 제공하는 공간 정보의 정확성을 검토하기 위해 금천교의 위치, 금천교와 진선문의 배치, 금천의 석축 위치를 시기에 따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작성된 평면도의 내용이 금천교 발굴조사결과와 그 맥락을 함께 함으로써 러버쉬팅변환이 "동궐도(東闕圖)" 제작 당시 모습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검증되었다. 본 연구는 러버쉬팅변환을 적용하여 "동궐도(東闕圖)"에 수록된 공간정보를 2차원 평면도로 제작하기 위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조선후기 동궐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미술 아카이브의 미술기록관리 방안 연구 (A Study on Management of Records of Art Archives)

  • 정혜린;김익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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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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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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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세계화의 과정이 미술관의 활동에 반영되면서 미술관은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맥락을 재현하는 장소로 재정의 되었다. 급속히 변하는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유기적인 존재로서의 미술관은 주체적으로 변화를 맞이하고, 변화의 속도와 방향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대중은 미술작품이라는 물리적 대상의 관람을 통해 작품의 진본성, 아우라와 대면해 왔다. 그러나 새롭게 디지털 객체의 등장에 따라 관람의 주도권은 미술작품에서 대중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제 대중은 작품을 보기위해 미술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화면 앞으로 작품을 끌어오는 역발상의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작품만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면서 이를 지식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으로의 진입은 미술관에도 또 다른 방식의 공공성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미술관의 공공성이란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미술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실현되어야할 공통의 목표이다. 이 모든 것을 실현하고 또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미술사 전반에 걸쳐 생산되었지만 지금까지 작품의 아우라에 가려 소홀히 관리되었던 미술기록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미술기록의 가치가 고양되고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되는 지금 시점에서 미술기록에 대한 정의와 범주를 설정을 통하여 유형 및 특성을 도출하고, 미술아카이브의 조직과 조직의 수행 기능에 따른 기록 관리 방안을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특히 기록 관리 전반 체제의 기조가 '보존'보다 '접근'의 패러다임에 있음을 강조하여 디지털화된 미술기록의 다양한 활용방안에 대하여 구상하였다. 그 중에서 미술작품의 디지털 객체를 작품 실물의 제1의 재현물로서 인정하며, 실질적으로는 디지털 원본의 개념으로 제안함으로서 이를 미술기록의 핵심기록으로 설정하였다. 물리적 지적 통제 하에 관리된 미술기록은 디지털 환경에서 핵심기록인 미술작품의 디지털 원본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재구성됨으로서 이용자들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될 수 있다. 이러한 미술기록의 체계적인 관리의 시작은 기록자체의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고양하고 넓게는 미술문화의 정체성 확립과 미술문화를 진정으로 향유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실록(實錄) : 등록(謄錄)의 위계(位階) (The Sillok as National Supreme Archives : An archival interpretation)

  • 오항녕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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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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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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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History always be re-interpreted as the time flows. 'The Sillok', Which was registered in Memory of World of UNESCO in 1997, is comprehensive documents of the Chosun Dynasty, which had been compiled after kings' death, The Sillok encompasses 473 years of the reign in their 848 volumes(1,893 chapters). It was a history itself and has been main source in studying Korean history. Due to the rise of studies on the Sillok, time has come to explore the nature of the Sillok and to criticize the text, which would be called 'The Sillok-Study'. In this context, this paper examined three concepts that categorize the nature of the Sillok as historical materials ;Is it book or record?; The Sillok in register system in pre-modern society; And the Sillok as the National Archives. Korean historians, including myself, haven't yet examined the question whether the Sillok is the Book or Record in terms of archival science. At first, I regarded it as history book, and with this presupposition, wrote several papers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Sillok. However, I recognized that the Sillok are close to record rather that history book as I examined the definition of glossary of librarian study, OED (Oxford English Dictionary) and Encyclopedia of Britannica, etc. Definitely, the Sillok was neither compiled and published to be read and sold publicly, nor meant to the works of literature or scholarship. one may say that the court-historians wrote comments on the facts and therefore it was just scholarly work. However, because the court-historians produced their comments on their own businesses, the outcome of 'their scholarly works' were also records conceptually, as were daily court-journalists in Rome. Its publication also had a absolutely different meaning from that of modern society. It was a method to preserve the important national records and distributed each edition of them to plural repositories for its safety and security. How can we explain its book-like shape and the procedure of compilation after a kings' death. The answer is as follows ; In pre-modern society, it was a common record-keeping system in the world to register records materials in order to arrange the materials of different sizes and to store them conveniently. And the lack of scientific preservation or conservation skill also encouraged them to register original records. Actually, the court-historians who participated in the compiling process called themselves "registering officers". On the other hand, similar to social hierarchy, there was a hierarchical system of records, and the Sillok was placed at the top of this hierarchy. In conclusion, the Sillok was a kind of registered records in the middle ages and the supreme records in the records-world. In addition to this we can also conceptualize the Sillok as archives. Through the compiling process, the most important and valuable records were selected to be the parts of Sillok. This process corresponds to the modem records appraisal. In the next step, it was preserved in the Four Archives(史庫) which located at remote site as archives and only accessible by the descendents in the future, who might be the people of the next dynasty. And nobody could access or read the documents at that time except the authorized court-historians who were archivists of the Chosun Dynasty. From this perspective, I conclude that Sillok was the supreme confidential archives in the register system. I work for the Government Archives as a historian and archivist. Whenever I entered the exhibition hall of the Government Archives and Records Service(GARS) and saw the replica of the Archives of Taebeak Mountain built during Chosun period, I always asked to myself a question whether the Sillok can be a symbol of the archival tradition of Korea and the GARS. Now, I can say, 'Yes!' definitely.

마쓰리(祭)와 신찬(神饌): 이세신궁과 천황의 제사를 중심으로 (Matsuri and Shinsen : Centering on the Rites of Ise Shrine and Emperor)

  • 박규태
    • 종교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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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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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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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12만 개소에 달하는 일본 신사(神社)의 총본산이라 할 만한 미에현 이세시(伊勢市) 소재 이세신궁(伊勢神宮)은 황조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를 모시는 내궁(內宮=황대신궁(皇大神宮)) 과 식물신 도요우케(豊受大神)를 모시는 외궁(外宮=풍수대신궁(豊受大神宮))으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천황가의 조상신이라 말해지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제사지내는 신사라는 점에서 역사상 천황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일본 신도에서 신에게 바치는 음식물 즉 신찬을 다루는 본 연구는 연간 약 1,500회나 거행되는 상기 이세신궁의 마쓰리 중 매일 조석으로 행해지는 일별조석대어찬제(日別朝夕大御饌祭)를 비롯하여 가장 대표적인 대제(大祭)인 신상제(神嘗祭, 간나메사이), 20년마다 한차례씩 행해지는 식년천궁제(式年遷宮祭),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고대 이래현대에 이르기까지 천황이 집전하는 각종 제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상제(新嘗祭, 니이나메사이) 및 대상제(大嘗祭, 다이죠사이)를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때 본고의목적은 기본적으로 신찬의 유형과 주요 특징 및 그 신화적 배경과 역사적 변천과정 등을개략적으로 살펴본 후, 구체적으로 상기 마쓰리에 등장하는 신찬의 품목과 절차 등을 검토하면서 궁극적으로 신찬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가령 신도 신찬의 사회적 의미는 농경사회적 특징, 고대 식생활과의 관계, 일본요리와의연관성, 현대사회에 있어 신찬의 의미 및 그것과 관련된 신불(神佛)관념의 문제등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신찬은 특히 신성, 생명, 재생의 관념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종교적 의미를 말할 수 있다. 한편 고대일본에서 정치는신에 대한 제사를 뜻하는 '마쓰리고토'라고 불렸으며, 천황의 최대 역할은 바로 신을 모시는 데에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정치란 신에게 신찬과 공물을 바치고 그 가호를 기원하는 데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신찬이 본래 정치와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끝으로 본고는 고대 한일간 문화교류의 뚜렷한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찬의 문화적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조선후기 백동의 재료 구성과 변화 (Material composition and change of baekdong alloy in the late Joseon period)

  • 공상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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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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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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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백동(白銅)은 구리에 다른 금속을 섞어 녹여 만든 합금으로, 현재 구리와 니켈의 합금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 대상과 시기에 따라 백동은 구리에 일정 비율 이상의 주석을 더한 금속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구리에 주석과 아연과 납을 합금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백동은 그 정의에 차이가 있어 용어의 해석과 표기에 혼란이 있어 왔다. 본 연구는 문헌 기록을 토대로 시론적으로나마 백동의 구성 재료를 정리하고 그 흐름을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먼저 백동 합금의 바탕 재료가 되는 구리의 이용과 구리 합금의 종류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문헌의 백동 기록을 통해 그 사용과 인식을 정리해 보았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백동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기까지 꾸준히 보이는데 관직의 상징물부터 교역품, 생활기물, 화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쓰였다.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백동의 합금 재료는 현재 합금의 재료로 정의되고 있는 구리와 니켈뿐이 아닌데,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구리를 합금의 바탕 금속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구리 외의 합금 재료로는 주석, 비석 및 비상, 아연, 납 등이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합금을 의미하는 백동과, 백색의 금속을 의미하는 백동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정의되고 있는 백동의 합금 재료인 니켈은 비교적 발견 시기가 정확한 금속으로 현대 공업과 산업 분야의 소재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니켈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 이용과 사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근대기 신문기사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니켈의 수용과 그 이용을 함께 살피고, 장인들의 증험을 토대로 니켈을 이용한 백동 합금이 공예품에 사용된 시기를 추정해 보았다. 재료는 기술의 발전과 퇴보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며, 기술의 발달은 문명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시론적으로나마 합금의 재료를 중심으로 백동을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니켈이라는 재료의 이용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