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서양 문화의 이해에서 핵심적인 코드 중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선물에 대한 연구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긴 모스, 데리다, 리쾨르의 선물론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선물 자체에 대한 이해와 이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용서' 개념의 이해를 위한 초석을 놓고자 한다. 모스에 따르면 선물은 없다. 선물은 주는 것, 받는 것, 갚는 것이라는 세 가지 의무의 지배를 받는 경제적 교환으로 이해된다. 다만 모스는 주는 것이 의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도덕 정립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데리다는 이론적으로 선물 이해의 폭을 최대한 확장시키고 있다. '시간'이라는 요소에 주목하면서 선물은 찰나적으로만 존재하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경제적 교환이 되고 만다는 점, 곧 선물의 아포리아를 지적한다. 리쾨르는 선물 개념에 적용되는 등가성의 논리와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정의'를 벗어나 넘침의 논리에 입각한 '사랑'과 '초윤리' 정립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리쾨르는 또한 이런 선물 개념을 토대로 '용서'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다수의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윤리가 힘을 얻고, 도덕과 인간성이 회복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기획에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 대학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기획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고 영향력 있는 것은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론이다. 대학의 평준화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는 이 담론은 대학서열화를 완화하고 입시지옥을 해소한다는 명분 하에 제기되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많은 논의를 낳았고 특히 개혁지향적인 현 정부 들어와서 그 실행여부가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논문은 이 담론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되어온 해외 사례와 비교하여 현 시점에서 이 대학통합론의 이념적 기반과 현실성 문제를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대학통합론은 프랑스 파리대학의 통합사례와 캘리포니아 주립대체제를 모델로 하여 이를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적용시도는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면이 있다. 1) 이 두 대학의 통합이 1960년대 학생 수가 급증하고 대학이 팽창하던 시기에 이를 관리하고 근대화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나온 것인 반면 한국의 대학통합논의는 학생 수의 급감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기획으로 요구되고 있고, 2)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국공립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이같은 통합이 대학 및 교육 일반의 변화에 전체적인 영향을 준 반면 한국의 경우는 사립이 대다수이므로 국공립대 통합이 주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국공립대 통합안이 전제하고 있는 대학평준화의 이념을 추구하기보다 대학특성화에 역점을 두는 것이 사회문제로서의 대학문제에 대처함에 있어서도 더 시대상황에 맞고 현실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국립대 통합보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사학들을 공영화하여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공교육적 기반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더 일차적인 개혁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귀족적인 18세기 문화를 과도하게 애호했던 공쿠르 형제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들은 작품에서 로코코, 로카이유, 왕의 애첩, 골동품 등의 주제를 주로 다뤘는데 이는 두 형제가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시절의 귀족적 세계를 되살리려는 의도에서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18세기 귀족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정당할까? 그들이 18세기 문화를 탐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이 연구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그런 문화에 대한 두 형제의 집착에는 미학적인 편애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우리는 먼저 이념적인 원인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귀족적 문화에 대한 그들의 집착과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의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거부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집중되었다. 그런 다음 1848년 혁명 직후 그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연구한 이유와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이 탐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유쾌하고 활력 있는 18세기 문화를 특화했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1848년의 끔찍했던 기억을 잊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공쿠르 형제가 자신의 시대가 안고 있었던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시베리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연결되는 알타이 인문벨트는 문명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한반도의 교대문명 형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고고학을 비롯하여 민속학과 인류학 등에서는 이에 관해 그동안 다양한 연구를 해왔고, 그 가운데 하나가 구비서사시다. 구비서사시는 한국에서 독특한 전승의 양식으로 남아있지만, 알타이 인문벨트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주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에 우리에게 중앙아시아와 몽골, 그리고 시베리아의 일부 서사시가 소개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론의 목적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야쿠티아의 구비서사시 올롱호를 국내 학계에 소개하는 데 있다. 올롱호는 최근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중하다. 그동안 서사시 연구가 서구중심의 시각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올롱호는 서사시 연구에 있어서 보다 글로벌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그 내용이나 구연방식이 서구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고,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새로운 연구 실마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화시대에서 영웅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인류의 사고와 행동양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야쿠티아의 민족역사 뿐만 아니라 10세기를 전후한 알타이 제 국가들의 형성과정까지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론은 방대한 서사시 올롱호 원문의 한국어 번역을 촉진하고, 본격적인 내용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특히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와 한반도의 구비서사시 전통을 비교하여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살필 수 있다면 알타이 인문벨트 형성을 위한 중요한 담론이 될 뿐만 아니라 문명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츠리(池莉)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집'이 어떻게 의미화 되고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츠리는 신분의 상징으로서 집과 젠더수행의 장소로서 집에 주목한다. 첫째, 개인의 신분을 상징하는 부호로서 '집'은 지식인(적)/소시민(적), 문명/비문명, 지식/지식 없음, 정신/반(反)정신, 우/열로 이항 대립항을 구성하고 있다. 츠리는 우월성을 속성으로 하는 집의 이면에 자리한 불합리성과 불공정을 발견함으로써, 신분의 부호로서 이분화된 집의 경계를 허문다. 그녀는 이러한 경계 허물기를 통해, 지식인(적)/소시민(적)으로 이분화된 '집'을 각각 정신과 물질에 상응하는 것으로 배치하고 우열을 논하는 데에서 비껴가면서, 화해를 모색한다. 둘째, 젠더가 (재)생산되는 장소로서 집을 해체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사적영역인 집을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적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때 집은 여성이 경제적인 주체로서 재탄생하는 장소가 된다. 이로부터 수동적이고 종속적으로 인식되어 온 여성성은 주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남성다움의 동일시로서 집을 재구성한다. 남성다움과 유착한 집은 강력한 남성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남성성의 훼손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집'의 이러한 양가성은 사적영역인 '집'에서는 은닉되고 배제되었던 공적영역에서의 여성(성)을 드러내면서, 남성다움을 전유하는 '집'에 각인된 젠더질서 및 젠더관념을 전복한다. 공적영역에서의 여성(성)의 발견을 통해, 젠더화된 '집'의 해체를 넘어 젠더화된 '일상'에 대한 해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츠리 서사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화된 식민지 조선에서 기생은 위기감 속에서 경제적 구원자가 될 남성에 의존해서 사는 처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와 자본주의가 부여한 변신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사회주의자 정칠성도 정치적 각성을 통해 그러한 변신의 기회를 활용한 사람 중 하나였다. 정칠성의 정치적 각성은 3.1운동이라는 역사적 계기와 십여 년 간 기생으로서 경험했던 개인의 노동 체험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3.1운동은 민족주의라는 외연을 띤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었지만 정칠성이라는 한 여성의 개인적인 분노의 감정을 이끌어낸 계기이기도 했다. 또한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직무 상의 역할 이외에도 순종적이면서도 아량이 넓어야 한다는 정서적인 역할을 강요받았다. 즉 초기 직업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젠더 위계와 젠더 권력 속에 무방비로 노출됨으로써 분노와 수치, 모멸감 등의 감정을 겪어야 했고 이러한 감정들이 정칠성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어떤 정치적 각성에 이르게 함을 알 수 있다. 노동 경험과 감정의 문제를 매개로 한 정치적 각성은 정칠성으로 하여금 다른 여성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라는 이슈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언어는 정칠성에게 자신의 체험을 설명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절한 언어였지만 그녀의 체험은 엘리트 사회주의 언어로서는 설명될 수 없는 지점들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삶은 엘리트 중심의 사회주의 운동을 넘어서, 하층민 여성의 삶이 새로운 감성으로 분할되고 등재되어 정치적으로 가시화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본 논고는 근대한국 문학의 전위인 이상(李箱)의 시작품에 구사되는 프랑스어와 탈 지방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상의 시편들 속에 쓰인 기호와 외래어는 한글로는 표현이 어려운 물리학, 건축학, 수학, 기하학, 이국의 문명과 같은 초감각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내고, 의미생성과 확장을 불러오는 파생의 시어로 작용한다. 이상의 시작품에서 프랑스어는 알파벳 철자와 한글식의 표기로 나누어지고, 문장들은 고딕 적이며, 병렬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어 단어들은 "${\Box}$, ${\triangle}$, ${\nabla}$" 등의 기호들과 조화를 이루어 상형적인 이미지로 기술된다. 문법의 규범을 이탈한 문장들은 해체와 재조합을 불러오고, 이때 프랑스어는 한글을 대체하고, 모국어가 갖는 한계를 초극하여 이국의 과학문명과 사상, 예술을 차용하는 포스트모던의 시어로 활용된다. 나아가 "ESQUISSE" 등의 프랑스어는 시인 자신의 열등의식을 초월하고, 자유와 상상력, 현대의 예술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전위적인 시어로써, "향토"(鄕土)의 조선 문단에 세계의 신경향을 이식하여 성숙시켜 놓은 탈 지방의 시어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번역된 텍스트들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적 특성들인 번역 보편소(translation universals)에 관한 코퍼스 기반 연구이다. 지금까지의 번역 보편소 연구는 언어계통상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어와 다른 유럽어 사이의 번역에 집중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 주로 문학 장르의 분석에 치중되어 있다는 아쉬움을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관련 연구가 지닌 이러한 두 가지 주요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어를 원문으로 하는 영어 번역 가운데 비문학 장르인 신문언어 텍스트를 분석대상으로 선택하였다. 먼저, 번역된 신문영어 텍스트와 비번역 신문영어 텍스트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수집하여 번역과 비번역 영어(translated and non-translated English)로 구성된 대응코퍼스(comparable corpora)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대응 코퍼스를 바탕으로 기존 문헌에서 논의된 번역 보편소 가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단순화(simplification), 명시화(explicitation), 규범화(normalization), 평준화(leveling-out) 현상이 한국어 신문의 영어 번역 텍스트에서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지 살펴봄으로써 각 가설들이 지니는 타당성을 검증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결과를 종합해보면, 단순화와 규범화를 제외한 나머지 하위가설의 언어적 특성들은 모든 언어쌍과 모든 텍스트 장르에 걸쳐 일반화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번역 보편소의 개념 규정이나 분석지표의 정교화, 그리고 결과의 일반화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메모리'는 역사적 상흔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이후 세대의 기억으로, 현재의 고민과 관심사가 깊숙이 투영되면서 과거를 재해석하는 행위 혹은 서사를 지칭한다. 칠레 영화 는 피노체트의 연장집권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1988년으로 돌아가 당시 반대캠페인 내부를 들여다본다. 이들은 효과적인 홍보 전략과 광고 언어를 사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하고 민주화에 기여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독은 민주주의를 상품화의 논리로 치환시키는 소비사회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하는 이행기 칠레사회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한편, 한국의 <변호인>은 1980년대 초반 군부독재 시절, 한 세금변호사가 국가보안법 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는 국가주의에 의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상식과 공감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역사적 맥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두 영화는 민주화 이후 나타난 민주주의의 위기를 과거 역사를 통해 포착하며, 이와 함께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위해 지식인과 전문가집단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다.
중국의 미디어 영역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변화에 따라 생성적 변화의 흐름이 존재해왔다. 드라마 생산 영역에서 시장체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정부 대리인이자 시장 관리의 역할을 하는 '제편인(制片人)'이라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출현하게 되었으며 국가는 곧 이 '제편인'에게 합법적 자격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제도화하여 제도권 내로 흡수시켰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제편인 제도'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특수한 환경 하에서 정부의 직접관리에서 간접관리, 그리고 자아검열로의 변화 과정을 잘 드러내는 중국식 관리 모델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풀뿌리 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였고, 네티즌들의 참여와 생산 활동으로 문학 영역에 인터넷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영상과 풀뿌리 미디어의 플랫폼으로 역할했던 일부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콘텐츠 생산을 하게 되면서 미디어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본래 인터넷을 IT 산업의 일부로 양성하였지만 인터넷이 미디어로서 기능하며 새로운 미디어 지형을 형성하게 되자 점차적으로 이에 대한 규제와 제도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전면적인 인터넷 미디어 콘텐츠 관리 및 규제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디어 영역에서 생성적 변화의 흐름이 출현하고 이것이 관방의 미디어 정책에 수렴되는 생성-수렴의 양상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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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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