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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기관 부설 교육원의 교양교육 프로그램 현황분석과 방향성 검토 - 전통문화 자원에 기반을 둔 교양교육 프로그램 실행 방안을 중심으로 - (Studies on the analysis of current situation and the directions of humanities programmes practising in the education center affiliated with the religious institution : focusing on the applicability of humanities program based on the traditionalcultural resources)

  • 이창일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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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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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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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글은 사찰 부설 교육원에서 종교적 교리의 교육이 아닌, 전통문화자원에 기반을 둔 일반 교양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철학적 배경과 실천적 방안에 대해서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교양교육은 한 개인과 관련된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존 사회교육원 및 평생교육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반적인 커리큘럼을 참고로 하여, 구체적으로 고전언어교육, 동양고전교육, 동양철학의 한 분파인 역술(易術) 등의 3부분으로 구분하여 효과적인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고전언어교육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에 따라, 한자와 한문 교육을 의미한다. 동양고전교육은 근대이전 한 개인의 평생교육을 담당해 왔던 지식의 집적체이자, 인간의 삶과 세계의 이해를 깊게 하여, 인격을 성숙하게 발달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실체로서, 고전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을 가리킨다. 마지막 동양철학에 대한 교육은 현대인들에게 특별히 결여 되어 있는 자연과 인간의 동질적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과도한 유물론적 인식을 지양하고, 일생을 통해 추구하고 성취해야 할 뜻과 사명을 부여받은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데 유용한 교육내용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특히 역술은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일반인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며, 민족 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는 지식체계라는 점에서 선택되었다. 사찰 부설 교육원에서 일반교양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청뿐 아니라, 불교의 오래된 전통적 교화의 새로운 실현의 장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론의 연원과 전개, 철학사상과 현실인식 (An origin and development, the thought and understanding of actual world of Noron)

  • 김문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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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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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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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노론(老論)은 숙종대에 결성된 이후 조선의 정국을 주도한 집권 세력으로서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조선의 정국을 주도했다. 노론의 학문과 사상의 전개는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17세기 후기에서 18세기 초에 이르는 숙종대의 붕당 정치 시기, 둘째 18세기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영정조대의 탕평 시기, 셋째 19세기 이후의 세도 정치 시기, 넷째 19세기 후기에서 구한말에 이르는 시기 등이다. 이렇게 구분하여 노론의 연원과 전개 양상을 개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노론의 전반적인 특징은 노론의 정신적 지주로 송시열을 존숭하였고, 존주자 양이적을 추구하는 조선중화론에 의한 군자당론을 주장하였으며, 일도설(一途說)과 기질지성(氣質之性)에 관한 학설에 대해 율곡 성리학을 보완적으로 계승하였고, 이단 배척과 정학 수호를 중시하여, 결국 천주교 탄압으로 표출된 양상으로 요약 정리할 수 있다. 노론계의 특징적인 학자로는 학문과 정치 양 측면에서 보았을 때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1641~1721),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 등이 주목되는 인물이다. 17세기 이후의 치열한 권력 쟁탈 가운데에 사상적 맥락이나 학문사상이 정국 변화의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광조의 지치주의 이후 조선시대 공론(公論)은 누구나 동의하는 보편적인 논의를 지칭하지만 사림이 분열한 이후에는 당파적 이해를 반영하는 당론(黨論)과 구분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송시열을 추숭한 노론 계열의 학자들은 존주자(尊朱子) 양이적(攘夷狄)을 기치로 삼고 왕이나 권세가들의 권력 남용을 제어하고 강력한 정치적 통일을 이루어 도의(道義) 사회를 구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점차 17세기에 수립한 당시의 정치적 동기와 목표는 상실하고 결국 탕평에 반대한 노론 벽파가 정조(正祖) 사후에 세도정권(勢道政權)을 만들어 내면서 정국을 장악하고 권세를 전횡하는 폐해로 귀결되었다. 노론의 현실 대응 논리와 행적은 정학일치(政學一致)라는 한국 도학정치의 특성이 극단화되어 표출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진단의 내단이론과 삼교회통론 (The Theory of Chen tuan's Internal Alchemy and Intermixture of Taoism, Buddhism and Neo-Confucianism)

  • 김경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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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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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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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진단은 도교 내단이론의 정립자이며, 북송 이래 사상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다른 종교의 장점을 자신의 이론체계에 받아들이고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는 도교 수련과정의 논리적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유교의 역학(易學)을 도교 비전(秘傳)의 역학으로 대치하고, 육신과 정신의 이중구조를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불교의 마음수행법을 자신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진단의 내단이론은 정기신(精氣神)의 개념에 기반하여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의 단계로 수련하는 도식이다. 진단이 말하는 내단수련이란, '도교 방식으로 해석한 "주역"의 근본원리에 바탕을 두고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선(禪)의 수행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고요함의 끝에서 온갖 변화에 신묘하게 통할 수 있고 지혜가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미묘한 정(精)의 흐름을 간취하여 이것을 기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복귀무극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그는 "무극도"를 그려서 표현했다. 동양철학은 인간을 '현상적 존재'와 '본원적 존재'로 구분한다. 이러한 '존재 규정'으로부터 수도론의 논리가 성립된다. '자아' 또는 '자기'라는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현상적 존재'로부터 '본원적 존재'로의 회귀 내지는 도약 방법이 결정된다. 도교 내단이론의 정립자라 할 수 있는 진단은 이런 측면에서 독특한 내단수련론과 삼교회통론의 체계를 확립한 인물이다. 오늘날은 '자아상실의 시대' 또는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생기는 '난치병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자아의 회복과 건강한 삶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연결짓는 진단의 수련론에 대한 검토와, 여기에 기초한 새로운 수련법의 모색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금동침통의 과학적 보존처리를 통한 제작기법 연구 (Study of the Production Techniques Used in the Goryeo-period Gilt-Bronze Case for Acupuncture in the Collection of the Royal Museums of Art and History, Belgium)

  • 이재성;박영환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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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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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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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전 세계 22개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20만 여점에 이른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게 된 우리 문화재 중 일부는 해외 기관에 소장되어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있지만 훼손되어 전시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은 한국과 벨기에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금동침통을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했다. 보존처리의 기본 방향은 원형을 보존하고 부식이 지속되는 것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기 때문에 표면 부식물제거, 안정화처리, 강화처리를 거치는 기본적인 보존처리 순서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지원 사업 중 금속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보존처리된 사례이기 때문에 국외 기관과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X선 투과조사, 컴퓨터단층촬영, 3차원 현미경 조사 등 과학적인 조사·분석법으로 고려시대의 다양한 금속 공예기술을 파악하였다.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연꽃, 넝쿨 등의 다양한 문양은 끝이 둥근 정을 이용해 점선으로 시문했다. 또한 문양이 새겨진 구리판을 원통형으로 말기 위해서 양끝을 약 2~3mm 정도 겹쳐지게 은땜으로 접합하였으며, 겹친 부위의 단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평평하게 단접하였다. 제작공정의 마지막 과정에서는 금분을 이용한 아말감 도금법으로 표면을 화려하게 도금하였다.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인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금동침통에 대한 보존처리로 원형을 보존하고, 더 이상의 추가적인 부식을 예방하였다. 특히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를 되살릴 수 있었다.

정읍 무성서원과 선비문화 원류 최치원 (Choi Chi-won, the Originator of Jeongeup Museongseowon and Scholar Culture)

  • 안영훈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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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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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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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전라북도 정읍은 한국 사상사에서 주목을 요하는 지역이다. 또한 정읍은 문학사에서 '최초'를 기록한 작품이 많은 지역이다. 백제 노래 <정읍사>가 그렇고 조선시대 사대부 가사 <상춘곡>이 그렇다. 그리고 이 지역 태수를 지낸 최치원(857~?)의 선정과 풍류의 전통이 전해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 논문에서는 정읍의 무성서원의 성립과정과 선비문화에 있어서 최치원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최치원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고을 사람들이 선정에 보답하는 의미로 태산사라는 생사당을 건립하였고 그것이 근원이 되어 후대에 무성서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치원은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정읍에서 실현하였다. 특히 조선중기 무성서원의 건립과 사액 과정에 최치원의 역할은 결정적이었기에 최치원은 이 지역의 상징적 인물로 되살아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영정의 이안(移安) 작업을 통해서 최치원의 형상도 보다 유학자, 유학적 선비의 모습으로 좌정해나가는 것도 볼 수가 있다. 최치원이 남긴 시문을 통해서도 유학적 선비(지식인)로서 자각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시세계가 다양하지만 특히 유학자 지식인으로서 현실에서 오는 시름과 고뇌, 비판적인 내면의식 등을 표출한 작품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남다른 포부와 각고의 노력으로 당대의 우뚝한 문사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는 하였으나, 그 자신 주변국의 한 시인으로서의 지역적, 정신적 소외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세계인식 면에서의 치열성은 자연히 내면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의 작품으로 하여금 강한 서정성을 가지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치원의 문집에는 당대의 말기적 현상에서 초래된 다양한 형태의 병리적 현상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는 가난하고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왜곡된 생산관계 속에서 결국 희생되고 마는 가련한 백성들의 삶의 실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당대의 잘못된 사회의 단면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로 읽을 수 있다. 선비의 사전적 정의가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특히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유교용어'이고, 오늘날 의미로는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의 모범이요, 시대사회의 양심으로서 인간의 도덕성을 개인 내면에서나 사회질서 속에서 확립하는 원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할 때, 최치원의 문학에서 고뇌하는 모습은 곧 선비(지식인)의 고뇌이고 '선비(士)'로서의 책무를 자각하였기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최치원은 가장 이른 시기의 선비(지식인)의 원류라고 보아도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고문 포르노까지 -괴물화하는 테크놀로지와 호러영화 (From Frankenstein to Torture Porn -Monstrous Technology and the Horror Film)

  • 정영권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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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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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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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은 브라이언 N. 두채니(Brian N. Duchaney)의 『공포의 불꽃: 테크놀로지, 사회, 호러영화 The Spark of Fear: Technology, Society and the Horror Film』(2015)를 중심으로 호러영화의 사회문화사를 테크놀로지라는 키워드로 고찰한다. 영화장르에서 테크놀로지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장르는 SF이다. 이에 반해 호러는 테크놀로지와 반대되는 자연/초자연으로 주로 설명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공포의 불꽃』이 호러영화의 역사를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고딕 소설의 영향 하에서 제작된 초기 호러영화는 산업자본주의가 야기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1931)에서 성난 군중들은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괴물을 가혹하게 린치하는데, 이는 테크놀로지가 주는 이질감과 공포에서 비롯한 행동이다. 이 군중행동은 또한 대공황 시기 산업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된 대중의 봉기를 연상시킨다. 전후 호황기에 등장한 SF호러 영화들에서 외계인으로 상징되는 타자들은 전후 미국의 번영의 가치를 파괴하는 존재이다. 이 때 번영은 교외화에 따른 중산층의 삶과 관련되며, 그들은 TV, 냉장고 등 생활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순응주의적 삶을 살아간다. 베트남전 시대에 호러영화는 고립과 폐쇄의 공간인 집을 무대로 반문화 세대인 아이들을 악마화한다. 여기에서 공포는 테크놀로지의 완전한 부재에서 발생한다. 1980년대 이후 비디오,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미디어는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강화했지만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외부 영향력이 되었다. 9.11 이후 호러 영화에 만연하는 '파운드-풋티지'와 '고문 포르노'는 관음/감시와 노출/전시의 테크놀로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공포의 불꽃』은 테크놀로지 진보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있는 오늘날 시의적절한 통찰을 제공한다.

프랑스 미식 문화의 사례를 통해 본 음식 문화의 유산화(heritagization)와 활용 및 가치증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heritagization of food culture and its utilization and value enhancement through the case of the Gastronomic meal of the French)

  • 박지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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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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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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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사회적으로 창조된 유산으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랑스의 미식 문화의 사례를 통해 유산화(heritagization)의 개념 및 과정, 나아가 유산적 차원에서의 음식 문화의 지속가능한 가치 증진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유산은 한 사회가 전승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산은 한 사회가 보존하기로 선택한 대상이자 그 사회 또는 집단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프랑스는 19세기에 역사적 기념물의 보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유산을 지정 및 보호하기 시작하였으며, 유산은 사회적 구축의 창조물로서 가치를 보존·증진하는 대상이 되었다. 세계화와 함께 확산된 유산에 대한 관심은 1972년 유네스코의 국제기구 협약을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점차 자연 및 도시적 관점의 경관이나 무형문화유산에까지 확장되었고, 2003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 채택되면서 세계 각국의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한편 음식 관련 유산의 경우 등재기준 설정의 어려움과 잠재적 상업화 가능성의 이유로 목록에서 배제되어왔다. 그러나 2010년에 지중해·멕시코·프랑스의 음식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됨으로써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음식 유산 등재에 대한 노력을 촉발시켰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은 자국의 문화유산이자 국가적 정체성으로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미식가들과 협회 등 민간단체는 물론 정부차원에서도 국가적 정체성과 유산으로서 미식 문화의 보전 및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이론적 논의는 물론 유산목록 작성과 관련 정책을 통해 미식 문화를 유산으로 구축하였다. 그리고 미식도시 네트워크, 국가 식품 프로그램, 프랑스 미식의 해 추진 및 라벨링 등 제도적 접근을 통해 유산의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 상황에서 영적 지도 연구 (Research on Spiritual Direction in the Korean Protestant Context)

  • 권진구
    • 기독교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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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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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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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연구 목적 : 본 연구는 한국 개신교 상황에서 영적 지도에 관한 연구가 초기부터 현재까지 영적 지도의 정의, 역사, 적용 등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분석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영적 지도를 중심 주제로 연구를 시작한 학자들과 이후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연구의 내용을 분석하고 한국 개신교회 상황에서 이들의 연구가 보여주는 영적 지도에 관한 함의를 논의하고자 한다. 연구 내용 및 방법 : 1980년대 이래로 한국 개신교회에서 기독교 영성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었고 영성은 신학과 목회의 중요한 주제로 연구되고 적용되었다. 영성에 관한 연구가 학문과 목회의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고 영성에 관한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지면서 영적 지도에 관한 연구 또한 시작되었다. 북미에서 공부한 김외식과 유해룡은 1990년대부터 한국 개신교에서 영적 지도를 연구하기 시작한 초기 학자에 속하고 이들의 연구는 한국 개신교 학자와 목회자가 영적 지도를 이해하고 신학교육과 교회에 적용하는 데 영향을 준다. 영적 지도는 신앙 교육, 영적 훈련, 경건 훈련, 제자 훈련, 소그룹, 목회 상담 등의 내용과 형식으로 한국 교회에서 실천되었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동방교회, 서방교회, 수도원 전통이 행해온 영적 지도와 같은 개념, 내용, 형식의 것은 아니다. 한국 개신교는 한국적 토양에서 독특한 영적 전통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 영적 지도의 내용과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는 관상 기도나 관상적 삶과 같은 관상 전통과 개인 영적 지도보다 통성기도, 새벽기도, 성경 공부나 묵상, 소그룹에 더 익숙하고 이를 통해 신앙생활을 유지해 왔다. 영적 지도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상황에서 영적 지도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한국 개신교회는 지금까지의 연구와 실천을 비판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영적 지도를 연구한 학자들의 논문과 서적을 분석하고 영적 지도를 어떻게 정의하고 신학의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특히 영적 지도에 관한 초기 한국 교회의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들과 현재 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함께 살펴보면서 영적 지도의 변화와 흐름을 재구성한다. 결론 및 제언 : 영적 지도는 다양한 개념과 형태로 여러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독교 역사와 전통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을 통해 한국 개신교 영성에 적합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영적 지도의 개념과 적용에 대한 유연한 이해와 관점이 필요하다.

유가 공부론과 명상 - 퇴계 활인심방(活人心方)을 응용한 수양치료 모형 - (Confucian Cultivation of Mind and Meditation - The Care Model of Cultivation Applied by Toe-gye' 『The Method on Preservation of Human mind (活人心方)』)

  • 이연도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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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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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3-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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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논문은 유가 공부론과 명상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마음의 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흔히 세계관과 인생관, 가치관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은 정신의학적 방법으로 치료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경정신과적 질병과는 구분된다. 철학을 비롯하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인문학을 활용한 대체치료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명상 또한 이들 가운데 하나이다. '명상'은 흔히 불교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생각되지만, 유학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명상은 현실의 삶을 부정하지만, 유가의 명상 철학은 현실과 자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또한 유가의 수양론과 명상 철학은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정신치료나 심리치료는 그 방법이 대개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화치료(talking cure)'는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현 상황을 인지하고, 그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일반적으로 현재 인문학을 응용한 치료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교정기관이나 군부대와 같은 특수기관 수용자에게는 사용하기에도 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이 점에서 '마음 다스리기'를 강조한 유가의 공부론과 명상법은 응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서는 유가 공부론과 명상의 관계가 이론적으로 어떤 관계인가를 살펴보고, 퇴계의 『활인심방』을 응용하여 인문치료의 한 모형을 제시하였다. 동양의 수양론이 '마음의 병'에 대해 의미있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응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수양론 자체가 일생을 두고 수행해야 할 지침이며, 그 성격상 일시적인 수행이나 실습을 통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수양 치료 모형은 이러한 한계를 전제로 한 것으로, 인문치료의 한국적 모형 개발이라는 목적에 따른 시도이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기후변화의 영향과 그 대책 (Effects of climate change on biodiversity and measures for them)

  • 안지홍;임치홍;정성희;김아름;이창석
    • 한국습지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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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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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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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에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생물다양성의 성립 배경과 그동안 일어난 변화 그리고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 및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 그 영향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생물다양성은 생명체의 풍부한 정도이며, 생물을 구분하는 모든 수준에서의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의미한다. 즉, 생물다양성은 유전자, 종 그리고 생태계 전반과 그들의 상호작용을 아우른다. 이는 생태계의 기반을 구성하며, 모든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물다양성은 주로 인간 활동에 의해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지구상의 생물은 생명이 탄생한 이래 약 40억년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한 결과, 약 1000만 내지 3000만종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물다양성을 구성하는 무수한 생명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관계 속에 얽혀 있다. 우리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지구의 환경도 이러한 생물체의 방대한 연관성과 상호작용에 의해 긴 세월 동안 만들어져 왔으며, 인류도 하나의 생물로서 다른 생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위의 생물들이 없다면 사람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인류는 최근 수 백 년 간 과거의 평균 멸종속도를 1000배 가량이나 가속시켜 왔다. 우리는 미래 세대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한편, 지속가능하게 이용할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어왔으나, 동시에 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 국가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본래 풍부했던 생물다양성을 빠르게 소실시키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농업, 임업 그리고 어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통해 독특한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러나 근래 서구문명의 유입과 과학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되었으며, 자연과 문화 사이의 조화로운 조합에 의해 창출된 고유한 풍토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과는 반대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구 감소에 의한 자연의 회복에 발맞추어 급속한 인구 증가 및 경제 성장으로 인해 훼손된 생물다양성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다섯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다. 현대의 대멸종은 매우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인간 활동에 의한 영향이 주요 원인인 점에서 이전의 것과 구분된다. 기후변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은 이러한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만약 생명체가 변화하는 환경에서 '진화를 통한 적응', '생존가능한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등과 같은 생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들은 절멸할 것이므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생물다양성은 극도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훼손정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적극적이고 심도있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생물계절의 변화, 식생 이동을 비롯한 분포 범위의 변화, 생물 간 상호작용의 부조화, 먹이 사슬 이상에 기인한 번식 및 생장률 감소, 산호초 백화현상 등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으로 등장하고 있다. 질병의 확산, 식량 생산 감소, 작물 경작지 범위 변화, 어장 및 어업시기의 변화 등은 인간에 대한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우리는 온실 가스 배출량을 감소시켜 기후변화 완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추더라도, 기후변화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변화 적응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 될 수 있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의 지속적 모니터링 및 보다 적합한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선행과제가 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이 성립할 수 있는 생태적 공간의 확보, 이동 보조 및 남북을 이어주는 수평 및 저지대와 고지대를 이어주는 수직적 생태네트웍이 기후변화에 따른 생물다양성의 적응을 돕는 대안으로 추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