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Urban expa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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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을 통해 본 부여 정림사지 문화재 조경의 특성 (A Characteristics of Cultural Heritage Landscaping of Jeongnimsa Temple Site in Buyeo from Perspective of Maintenance Project)

  • 김미진;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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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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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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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정림사지 정비사업은 사찰을 구성하는 건물의 원형복원을 목표로 하였으나 점차 사역의 경관을 조성하는 조경 정비로 이행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정림사지 문화재 조경의 특성을 정리하였다. 첫째, 문화재 조경은 문화재보호법상 지정된 문화재와 주변에 지정된 문화재 보호구역을 공간적 범위로 하여 경관을 조성, 유지, 관리하는 조경 행위로서 유구 보호 및 정비, 기능별 공간 배치와 동선계획,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구조물 설치, 방문자 편의를 위한 시설물 도입, 식생경관 조성을 포함하는 작업이다. 둘째, 정림사지 문화재 경관은 일제의 문화재 지정과 발굴조사로 사찰명이 밝혀진 '고적조사사업', 광복 이후 '백제탑공원 조성', 사적으로 지정된 '백제문화권 개발사업', 고증의 어려움으로 전각의 복원 대신 공원과 박물관 건립으로 이행된 '백제문화권 특정지역 종합개발사업', 백제 창건 당시 가람 배치를 회복하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정림사지 복원사업'으로 전개되었다. 셋째, 부여신궁(扶餘神宮) 외원(外苑)과 연계된 기념공원 조성, 일제강점기의 시가지계획 실현, 발굴 유구와 사역의 보호환경 조성, 가람 배치의 원형복원, 문화재의 진정성 회복과 활용이라는 정림사지 경관 변화의 배경을 확인하였다. 넷째, 정림사지 경관은 문화재 지정대상과 범위, 토지이용, 동선·포장, 유구정비 수법, 구조물, 시설물, 식생으로 결정되는데 이들의 정비 양상을 고찰한 결과, 문화재 영역의 시각적 차별화로 위계성 부여, 문화재 지정 범위 확장을 고려한 과정적 경관 조성, 가역성을 고려한 유구 정비로 진정성 확보, 역사문화경관에 어울리는 식생경관 조성, 오픈스페이스 제공으로 문화유산 향유가치 증진이라는 정림사지 문화재 조경의 특성을 도출하였다.

통일신라~고려시대 황룡사 사역의 변화과정 검토 (A Review of the Changes Made to the Sites of Hwangnyongsa Temple during the Unified Silla and Goryeo Periods)

  • 정여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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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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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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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황룡사는 약 68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법등이 이어진 대사찰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1탑 3금당식의 가람배치가 밝혀진 후 크게 네 차례에 걸쳐 창건부터 최종까지의 가람추정도가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황룡사 가람구조에 대한 연구는 회랑내곽(佛地)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사찰의 건립 이유를 생각한다면 금당지 등 중심건물지에 대한 연구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사찰 전체의 가람구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회랑외곽(僧地)에 대한 연구도 선행되어야 한다. 신라 사찰의 회랑내·외곽을 포함한 전체 가람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라시대 대표사찰인 황룡사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까지 조사된 삼국시대 사찰은 회랑외곽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고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추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황룡사는 사방으로 주변과의 경계인 담장이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회랑내곽과 외곽, 회랑외곽과 사역외곽과의 공간을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 사역 전체 가람 구조의 변화를 추정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황룡사 사역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어떠한 변화를 거쳤는지 확인하고 전체 가람 구조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황룡사 사역 남쪽으로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는 남문지의 건립시기와 사역 경계인 사방 담장의 축조시기와 변화과정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회랑내곽의 가람변화와 함께 회랑외곽 역시 1~3차에 걸쳐 변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황룡사의 전체 가람구조가 변화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사찰 규모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신라왕경의 중심지에 창건된 지리적 중요성과 함께 주변으로 도시유적이 들어서면서 사찰의 경관 역시 변화를 같이 한 것으로 생각된다.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커뮤니티디자인 제안 - 커뮤니티퍼니쳐를 중심으로 - (Suggestion of Community Design for the Efficiency of CPTED - Focused on Community Furniture -)

  • 이호상
    • 한국과학예술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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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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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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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도시공간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도시환경설계와 관련하여 범죄예방에 관한 공간 디자인연구와 각종 지침 작성 등 구체적 접근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CPTED 셉테드' 라고 표기)"의 연구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염리동 소금길은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서울시 범죄예방 디자인프로젝트'가 적용된 첫 대상지이다. 사업시행주체와 커뮤니티 구성원의 협업 및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역 환경개선이라는 사업목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의 효율성이 입증되어 이후 대상지가 확대되며 각 지자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해결 노력은 공공미술을 도입하여 낙후지역의 문화증진과 주민참여 유도 등 쾌적한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2009년부터 시행되어오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와 목적과 방향에서 같은 맥락을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커뮤니티의 기능과 가치라는 특성을 중심개념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본 연구는 거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CPTED의 효율성 증대 방안으로 커뮤니티퍼니쳐 적용방안을 제안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CPTED와 커뮤니티디자인, 공공미술 관련 문헌과 선행연구를 고찰하고 '범죄예방디자인 프로젝트'와 '마을미술프로젝트'의 대표적 성공 사례지 서울 염리동과 부산 감천문화마을 현장답사를 토대로 문제점과 시사점을 확인했다. 본 연구에서 확인한 두 사례지 공통적 요소는 첫째, 환경의 물리적 조성 외 협업에 의한 커뮤니티 활성화로 지역주민의 '삶'이 중심에 놓이는 환경으로 발전하였다. 둘째. 커뮤니티디자인과 공공미술 도입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여 많은 이들의 방문으로 마을의 활기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었다. 셋째, 이로 인해 CPTED 요소중 자연적 감시와 영역성과 통제력, 활동성 증대를 강화시켰다. CPTED의 심리적 측면과 공공미술의 정서적 기능이 '커뮤니티퍼니쳐'와 융합됨으로써 지역민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특정한 지역적 맥락을 통해 공공공간에 대한 막연하거나 거창한 접근을 지양하고 모두에게 유익한 환경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CPTED와 공공미술의 융복합 성과의 개연성과 시사점은 도시재생을 위한 디자인 전략으로 CPTED 적용 공간 확장 등 범죄예방 인프라 구축을 통한 사회적 비용의 절감 및 시각적 어메니티 구현 방안 제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강 내수로 항만의 물류 수요 예측에 관한 연구 (A Study on Predicting the Logistics Demand of Inland Ports on the Yangtze River)

  • 오진;김현중
    • 무역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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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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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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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장강 내수로 항만의 물류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항만 물류 수요를 예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강 상류의 충칭항, 이빈항, 중류의 징저우항, 우후항, 하류의 난징항, 쑤저우항 등 총 6개 항만을 대상으로, 시스템 다이내믹스 기법을 활용한 물류 수요 예측을 수행하였다. 모든 항만의 물류 수요는 2026년까지 중단기 예측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충칭항의 물류 수요는 배후지 경제 규모의 영향을 주로 받았으며, 이빈항은 항만의 자동화 수준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상류 및 중류 항만의 경우, 배후지의 에너지 소비량 증가와 대기 오염 상황이 심각할수록 물류 수요가 증가하였다. 중류 항만의 물류 수요는 배후지 인프라의 영향을 주로 받았으며, 하류 항만은 도시 건설 면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감도 분석 결과, 대도시에 의존하는 항만의 물류 수요는 영향 요인들의 증감폭에 대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으나, 배후지 도시 규모가 작은 항만은 영향 요인들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충칭항을 장강 상류의 핵심 항만으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주변 항만들이 충칭항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상류 항만은 충칭항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중하류 항만과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입항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장강 내수로 항만의 개발 전략은 한국의 항만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직항로의 개설과 교통 네트워크의 확장을 시사한다. 배후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물류허브와 연계된 효율적인 교통 체계의 구축을 제시할 수 있다. 협력을 통해 두 지역 모두에서 물류 효율성이 향상될 수 있으며, 이는 각 항만의 국제적인 위치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의 귀화식물 분포현황 및 관리방안 (A Study on the Distribution Status and Management Measures of Naturalized Plants Growing in Seongeup Folk Village, Jeju Island)

  • 노재현;오현경;한윤희;최영현;변무섭;김영숙;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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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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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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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제주시 성읍민속마을을 대상으로 관속식물상 및 귀화식물의 현황을 조사하고, 여타 민속마을과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는 귀화식물의 분포양상 및 발생특성과 비교 고찰함으로써 이곳의 귀화식물의 관리방안을 모색할 목적으로 시도된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성읍민속마을의 관속식물상은 93과 260속 298종 44변종 12품종으로 총 354분류군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귀화식물은 22과 46속 53종 2변종의 총 55분류군으로 이는 제주도 전역에서 확인된 총 254분류군의 21.7%에 해당된다. 이에 따른 성읍민속마을의 귀화율은 15.5%로서 이는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 성주의 한개마을, 강원 고성의 왕곡마을 그리고 충남 아산의 외암마을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마을내 발생한 귀화식물 중 분포지가 제주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양장구채, 국화잎아욱, 애기달맞이꽃, 긴잎달맞이꽃, 솔잎미나리, 자주풀솜나물, 선풀솜나물, 큰참새피, 등심붓꽃 등 9분류군으로, 귀화식물의 이입 관문이자 선구 발생지로서의 특성을 살린 적절한 관리전략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본 연구를 통해 제주도 기준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까락빕새귀 리, 삼, 눈개불알풀 등 3분류군이 성읍민속마을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단위문화재 정원내 발생한 귀화식물은 총 20분류군으로 이 중 유럽점나도나물의 출현율이 62.5%로 가장 높았으며, 미국자리공 선개불알풀 망초 방가지똥 큰방가지똥(37.5%)도 비교적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속마을과 레크레이션공간의 공통된 특성으로 보인다. 한편 경관관리적 취급이 요망되는 식물군락은 유채를 비롯하여 귀화식물인 코스모스, 토끼풀, 잔개자리, 긴잎달맞이꽃, 애기달맞이꽃, 서양벌노랑이, 호밀풀, 양장구채, 서양금혼초, 미국질경이, 큰이삭풀, 유럽점나도 나물 등으로 분석되었다. 성읍민속마을의 단기적 귀화식물 관리방안으로는 경관농업적 차원에서 식재되고 있는 코스모스와 유채의 임내 침투 현황과 개화 후 활용 방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교란야생식물인 돼지풀과 서양금혼초는 우선적으로 제거하고, 재발에 대비한 추가 발생과 확산과 팽창을 염두에 둔 모니터링의 실시를 제안한다. 특히 서양금혼초는 서식밀도 파악 및 제근 등 물리적인 방제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시각적으로 녹시율이 높은 정의읍성 외벽에 자생하는 방가지똥, 약모밀, 주홍서나물, 개망초, 자주광대나물의 제거가 시급하다. 이와 함께 폐 공가에 귀화식물의 분포와 우점도가 높음에 따라 공가에 대한 보존관리 및 민박 활용방안 등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집경제영시(集景題詠詩)'를 통해 본 전통주택의 조경문화 향유양상 (A Study on the Traditional House Landscape Styles Recorded in 'Jipkyungjaeyoungsi(集景題詠詩, Series of Poems on Gardens Poetry)')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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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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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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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한국고전번역원 DB자료에 근거하여 전통주택 관련 '집경제영시(集景題詠詩)'를 통해 본 정원의 식물요소와 상징성, 그리고 조경문화를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집경제영시'는 고려중기에 유입되어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는데, 주로 문신의 길을 택한 상류계층에 의해 향유되었다. 총 165책에서 주택정원을 대상으로 25책의 33제영시가 추출되었는데, 최초로 관련 제영시를 남긴 인물은 고려후기의 문신 이규보(1168~1241)로 판단된다. 그는 '퇴식재팔영', '가분중육영', 그리고 '가포육영' 등 경물소재의 확장과 영물시를 팔경시로 대입하여 향유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한 최초의 인물이라 하겠다. 둘째, 제영시 표제는 사랑채 당호가 많이 활용되었으며, 경물은 8영(詠)이 전체 33개소 중 19개소(57.5%)였으며, 4영, 6영, 10영, 14영, 15영, 16영, 36영 등의 빈도순으로 제영되었다. 제영에는 소상팔경류의 전형성을 벗어나 (1)경물명 중심 (2)지명과 경관명의 결합 (3)경관명 중심으로 차별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셋째, 소표제는 (1)자연 및 정원식물 중심의 자연경관소재(22개소, 66.7%)가 주를 이루었고 (2)사랑채 건물 및 연못과 정자 등 조경시설 중심의 인문경관소재(3개소) (3)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행위요소 중심의 복합 문화경관소재(8개소)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양상은 정원식물의 심미적 취향, 실경을 뛰어넘어 관념화된 경물을 향유하며 주목받지 못했던 채소류와 약초류에도 관심을 두는 정감 표출로 이어진다. 넷째, 정원식물은 상록수(4종)에 비해 낙엽수의 개체수(17종) 비중(80.9%)이 월등히 높았다. 이러한 양상은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상록수 18종(21.2%) : 낙엽수 67종(78.8%)의 비율, 그리고 선행연구[변우혁(1976), 정동오(1977), 이선(2006) 등]와 유사한 결과이다. 다섯째, 정원식물의 출현빈도는 매화(14회), 대나무(14회), 소나무(11회), 연(11회), 국화 10회, 버드나무(5회), 석류(4회), 단풍나무(3회), 오동나무, 배롱나무, 밤나무, 모란, 파초, 갈대, 맨드라미(각각 2회) 등이었다. 즉, 의미론적으로 (1)유교적 규범(소나무, 측백, 매화, 국화, 대나무, 연꽃 등) (2)안빈낙도의 생활철학(국화, 버드나무) (3)은일사상과 태평성대 희구(오동나무, 대나무 등) 관련 상징식물의 도입이 상대적으로 높은 출현빈도를 보였다. 여섯째, 안뜰과 바깥뜰, 채원과 약포, 그리고 사랑뜰 화분에 도입된 식물류 추적이 가능하였다. 즉, 안뜰에는 심미적 취향을 뛰어넘어 문화경관으로 승화시킨 상징식물의 도입, 채원과 약포에는 채소류, 과실수, 약용식물의 이용후생적 도입 양상이 뚜렷하며, 사랑뜰에 화분을 놓아 완상한 석창포, 석류화, 서상화, 국화, 대나무, 연꽃, 매화 등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일곱째, 정자, 연못, 계류, 분경(盆景), 괴석, 후원(後園), 과원(菓園), 약포(藥圃), 화오(花塢), 국리(菊籬), 범주(泛舟), 조어(釣魚), 계음(?飮), 탁족, 간화(看花), 행림(杏林), 도원(桃源), 무송(撫松), 설중매, 상국(霜菊) 등의 시어(詩語)를 통해 조경소재와 관련한 정원 문화의 향유 양상을 추적할 수 있었다.

구주오소경과 명주(하서주) - 그 도시구조를 중심으로 - (9 Provinces and 5 Secondary Capitals, Myeong-ju(Haseo-ju) - Revolve Around Urban Structure -)

  • 야마다 타카후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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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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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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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신라는 문무왕 18년(678) 당나라군이 철수함에 따라 명실공히 한반도를 통일한 뒤, 그 판도를 중국 지방행정구획 제도를 모방하여 아홉 개의 주로 구분하고, 거기에 소경 군 현을 배치한 지방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이른바 9주5소경(九州五小京)이라 불리는 지방행정제도이다. 주는 현재의 대한민국(이하 한국)의 도(道)에 해당하며, 소경은 광역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16년(757) 겨울 12월조에 의하면 5소경, 117군, 293현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연구는 문헌사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주성(州城)과 소경성(小京城)의 위치와 그 도시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껏 크게 논의되었던 적이 없어 명확치 않은 점이 많다. 고고학적 도시구조의 복원연구는 박태우의 논고("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에 대한 연구" 1987년)와 필자의 논고("新の九州五小京城郭の構造と實態について-統一新による計畵都市の復元硏究-"2009년) 정도이다. 강원도 강릉시는 원래 예(濊)의 고국(古國)으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선덕왕 8년(639)에 북소경 하서양주(北小京; 河西良州))으로 되었는데, 무열왕 5년(658)에 하서주(河西州)로 소경에서 주로 바뀌었다. 이후 경덕왕 16년(757)에는 명주로 개칭되었고 그 뒤, 고려시대 이후로도 명칭은 여러 가지로 변하였다. 박태우는 나성 흔적이 남은 도시로 분류하여 명주동에 있었던 성지로 비정하고 있는데, 현재는 시가지화로 인하여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관동대학교에서는 강릉시 중심부로부터 서남서 약 3km에 위치하는 명주산성을 주치(州治)로 보는 설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일제시대의 측량도에서 볼 수 있는 유존(遺存) 토지구획로 보아 경주시의 신라금경이나 다른 많은 도시와 같이 방격의 가구, 즉 방리(坊里)를 갖춘 도시로 복원하였다. 다음은 그 구조에 대해 서술하였다. 강릉의 시가지는 시내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흐르는 남대천의 왼쪽 기슭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부근에 그다지 높은 산은 없으나 시가지의 북측에는 산이 동서로 이어져 있으며, 남대천으로부터의 평지부분 너비는 최대가 1km 정도로 그다지 넓지는 않다. 현재는 강릉시의 중심부로 시가지화가 진행되어 강릉역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의 구획정리 등도 이루어져 옛 토지구획이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지형도 등을 보면 시가지 중심부인 옥천동, 임당동, 금학동, 명주동 등의 일대에 한 변 약 190m를 기본으로 하는 방격의 토지구획이 북서-남동에 약 0. 8km, 북동-남서에 약 1. 7km의 범위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 가능하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은 다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사례를 통해 보면 통일신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단, 방격 한 변의 길이가 190m로 신라의 금경이나 다른 도시유적에서 볼 수 있는 한 변 160m나 140m의 규격과는 다르다는 점이 앞으로의 검토과제이다. 토지구획의 방위는 지형에 준하여 북서-남동 축에서 북쪽으로부터 약 $37.5^{\circ}$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남대천의 방위와 북측의 산지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잔존하는 범위로부터, 최소로 보더라도 북서-남동 4방${\times}$북동-남서 7방 크기라는 장방형으로 복원하였다. 단,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퍼지는 정도로 보아, 남서측과 북서측에 각각 1방 씩 늘어난 북서-남동 5방${\times}$북동-남서 8방(북서-남동 약 $950m{\times}$북동-남서 약 1520m)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체의 형상은 장방형으로, 당의 장안성(長安城)이나 일본의 평성경(平城城)과 같은 중축대로(주작대로)가 상정 가능한 토지구획은 확인되지 않는다. 명주의 도시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이제껏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도시유적 추정지 내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강릉읍성이나 관아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류, 토기류 중에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만한 것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관아지에서 검출된 조선시대의 건물지는 모두 정방위가 아닌 크게 기울어진 방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강릉에서 볼 수 있는 방격 유존 토지구획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명주성"의 명문 막새기와가 출토된 명주산성의 역할로, 이것이 주치였던 것을 필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고대도성은 평지성과 산성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일신라가 되어도 방리제 도성인 금경 주위로 명활산성, 남산산성, 서형산성의 산성군이 계속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구주오소경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도시유적 부근에 산성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명주도 평지의 도시와 산성이 세트가 되어 주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