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Unca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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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James's The Turn of the Screw: The Subject and the Ontological Status of the Real Gaze

  • Kim, Kyung-Soon
    •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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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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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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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In The Turn of the Screw, the go'erness encounters with the apparitions that harrow her throughout the story: she sees a frightening male ghost that Mrs. Grose identifies as Peter Quint, deceased former 'alet of the children's uncle, who had pre'iously shared the charge of the children with the pre'ious go'erness, Miss Jessel. The appearance of the ghosts hails the go'erness and thereby forces her to be jarred out of the comfortable habits of indi'iduality and plunged into a negati'ity de'oid of the socio-normati'e directi'es and guarantees. Such an encounter shows the idea that consciousness is a plenum of existence e'ocati'e of human mind as a decentered pandemonium. For the go'erness in The Turn of the Screw, the foundation to force her to experience the uncanny, as an inconsistency in the symbolic order, is particular. Its particularity is absolute in the same way e'ery one of us dreams his or her world. It resists mediation and cannot be made part of a symbolic medium. Just as Lacan's conceptions of desire, feminine sexuality, 'Object a,' not-whole, sla'ery, mastery, self-deception, authenticity, and act of psychoanalysis help us understand our contradictory social reality, so does The Turn of the Screw help us make sense of the way the go'erness, as the being who is capable of raising the question of being, questions the idea of being. In conclusion, the particular way the go'erness dreams her world is e'ocati'e of an excessi'e being, an anatomical complement, and a particular experience, such as the go'erness's encounter with the ghosts testifies to a knowledge that escapes the knowledge of the speaking being.

카니발 그로테스크 미학과 이애림 감독의 애니메이션 (Grotesque Aesthetics with a Focus on Animations of Lee, ae-rim Director)

  • 오진희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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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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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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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애니메이션은 허구의 매체이지만 또한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사회, 문화,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사회와의 관계, 문화전반과 예술매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해석되어야 할 중요한 텍스트이다. 한국 사회는 식민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고속 성장기를 거친 사회라는 독특한 상황을 안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일상적 긴장과 경직, 타자에 대한 경계심과 극단의 경쟁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폐쇄적이면서도 격동적인 특이성을 보인다. 그로테스크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일컫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비주류의 감성으로 독특하게 표현하여 혼란된 사회에서 다수 발견되는 미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로테스크에 대한 미학적 논의는 메리 루소의 언캐니그로테스크와 미하일 바흐찐의 카니발 그로테스크로 나뉘며 기존 질서와 관습, 그리고 주류 사회의 권위를 부정하며 해학과 풍자를 통해 변화와 해체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지닌 특이성에도 애니메이션에서 그로테스크 표현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그 자체가 민감한 문제를 관습적 차원에서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번 논의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애림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 <연분>과 <육다골대녀>는 한국에서 쉽 게 찾아보기 어려운 유형의 기괴한 이미지와 비선형적 서사, 강렬한 표현을 주요특성으로 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 두 작품은 특히 카니발 그로테스크 미학의 예술적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경직된 사회를 거부하며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전복적 구조를 비선형적 서사로 표현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독특한 표현으로 카니발 그로테스크 미학을 표현하고 있는 이애림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중심으로 그로테크스 미학의 예술적 발현과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 논의하였다.

디지털 시대: 디지털 캐릭터와 리얼리즘 -ACM 시그래프 아시아 출품작을 중심으로- (Study on the Digital Character and Realism in the Digital Age -Focused on the CG Works of the ACM SIGGRAPH Asia-)

  • 추혜진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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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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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9-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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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예술은 시대마다 새로운 표현 도구를 탄생시켜 온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예술 형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이미지의 '환상성'을 내세우며 그 시작부터 과학 기술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영화와 유사한 영상 매체라는 점에서 기술적인 측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성을 갖는 대표적인 예술 장르이다. 이런 이유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미학적 접근은 기술매체 발전을 전제로 고찰되는 측면이 강하기도 하다. 지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모태가 된 컴퓨터 그래픽스 아트의 선구자인 존 휘트니는 기술적 실험을 통해 테크놀로지를 하나의 도구가 아닌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시도로 이어 나갔다. 이러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단순히 표현을 위한 도구나 수단 뿐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수용방식과 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980년대를 전후로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컴퓨터 기술과 본격적인 접목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앞세워 새로운 영상미학을 열게 된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애니메이션의 사실주의적 환영을 더욱 견고히 해나가기 위해 극사실주의적 디지털 캐릭터 구현 방식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양식인 이미지의 왜곡이나 변형을 강조한 고전적 카툰 캐릭터 방식을 내세워 사실적 환영효과를 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시그래프 아시아에 출품된 작품들을 토대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정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디지털 리얼리즘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디지털 캐릭터 스타일의 수용방식을 통해 기술 변화에 따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상호 보완적 가능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동화 "백설 공주"를 영화화한 작품들의 비교분석 (A Comparative Analysis of Movie Versions of "Snow White")

  • 이윤희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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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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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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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영화라는 매체는 크게 내러티브와 스펙터클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내러티브라도 스펙터클이 달라지거나 혹은 비슷한 스펙터클이라도 내러티브가 달라지면 총체로서의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본 논문은 비슷한 내러티브의 영화들이 관객에게 주는 경험의 차이를 논하기 위해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이야기에 기반 하여 만들어진 디즈니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타셈 싱의 <거울아 거울아>, 루퍼트 샌더스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트맨>, 세 편의 영화들을 내러티브와 스펙터클로 나누어 비교분석하였다. 그 결과 디즈니의 <백설 공주>가 내러티브적인 면과 스펙터클적인 면에서 모두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의 원형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디즈니의 <백설 공주>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에서 차용한 키스신이나 백설 공주가 동물들과 교감한다는 설정, 일곱 난쟁이 각각의 이름과 성격묘사 등은 그림 형제의 원작에는 없는 부분인데 이후의 영화들은 모두 이 변화를 채택했다. 특히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트맨>의 경우 백설 공주의 의상도 디즈니 버전과 흡사하고, 일부 샷들은 설정과 구도까지도 거의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은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의 스펙터클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디즈니의 <백설 공주>가 이후 많은 영화들의 원형이된 마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거울아 거울아>는 타셈 싱만이 가능한 눈속임 그림과도 같은 독특한 마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트맨>는 친숙한 것 사이의 섬뜩함이라는 언캐니의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한다. 즉 비교적 예측 가능한 단순한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세 영화가 박스 오피스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것은 많은 부분 스펙터클의 힘이다.

식민지 '미디어 효과론'의 구성 대중 통제 기술로서 미디어 '영향 담론' ('Media Influence' Discourses Articulated for Crowd Control in Colonial Korea)

  • 유선영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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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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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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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사진, 환등, 영화는 20세기 전반기의 경이롭고 마술적인 시각 기술, 1910년대 중반 상업적 가능성을 확인시킨 시기를 거쳐, 1920~1930년대 내내 문화적 패권을 향유한 유일한 미디어였다. 처음부터 근대적 오락으로 소비된 시각 미디어들에 대한 담론은 1920년대 초반까지 영화보다는 관객이 집합하는 공간인 극장 통제, 즉 군중 통제에 역점을 두고 구성되었다. 그러다 영화 자체가 현대적 문화와 미학의 표준이 된 1920년대 중반 이후 무성영화시대에는 당대의 지배적 학문 분야들인 심리학, 사회학, 대중 심리학의 개념과 이론을 적용하여 영화가 대중에게 미치는 강력한 도덕, 심리, 정신면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게 된다. 이데올로기 도구이자 동시에 근대 리얼리즘의 재현 매체로서 가능성을 지닌 시각 기술과 그것의 정점에 있는 영화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규정해 간 것이다. 이 연구는 이러한 '식민적 미디어 영향 담론'이 처음부터 통치의 문제였으며 상업적 소비대중과 저항적 군중 통제를 위한 담론이었음을 주장하였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 통치성이 부단히 세계적, 보편적 사유와 지적흐름을 수용하면서 구성되어 갔지만 식민지 대중의 동의를 얻는 데는 실패한 담론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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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사랑, 행위 그리고 정치 - 와즈디 무아와드의 <그을린 사랑> - (A Study on Wajdi Mouawad's 'Incendies' based on Lacanian Thoughts of the Woman)

  • 김숙현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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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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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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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is article re-reads the messages of the text, 'Incendies', the uncanny actions and the strange words of protagonist Nawal, through the ideas of Jacques Lacan, particularly his notion of sexuation with posing questions about most of the previous reviews which are based on femininity or motherhood. For Lacan, masculinity and femininity are not biological essences but symbolic positions, and the assumption of one of these two positions is fundamental to the construction of subjectivity. So 'man' and 'woman' are merely signifiers that stand for these two subjective positions. Each side is defined by both an affirmation and a negation of the phallic function, by both an inclusion and exclusion of absolute non-phallic jouissance. Unlike the man, the woman is 'not-all' identified with the phallic function, demonstrating the undecidability and impossibility of totalising the woman. Although the woman is bound to do castration through being subject to the phallic function, she is also related to the signifier of the barred Other, S(Ⱥ) which stands for a gap or lack in the Other. Thus, as a consequence of not being entirely within the symbolic, she has an Other Jouissance, Feminine Jouissance, because it's possible to face emptiness of the Symbolic, the Real only in the place of the woman for new Ethics/Politics. This paper finds that Nawal is not completely defined by the phallic function and she is a subject of death drive that practices the signifying cut with passing through the fantasy as a screen for the desire of the Other. Nawal is situated on the position of the woman as 'not-all' unlike masculinity in Lacanian sexuation. This article shows that her strange acts are love, that is the true ethical acts. Above all her acts are related to the ethics of pure desire beyond the ethics of the Good of Aristotle. In that sense the character of Nawal of 'Incendies' is similar to the one of 'Antigone' as a character in all aspects. In psychoanalysis they all are true subjects that face a void, emptiness in a symbolic structure. They assume underlying impossibility of being/the Symbolic. They don't represent the images of compromise and peace in the normally accepted meaning of the word. A love that they show is not compassion but blind recognition of the excluded, embracing uniqueness of the excluded. This thesis finds resultingly Nawal's acts which can't be understood from viewpoint of feminism practice the ethics of the real, the politics of the real.

<블랙 스완>(2013)의 몰핑 기술을 통해 본 포스트 시네마의 신경-이미지적 특징 (The Characteristics of Neuro-image in Post-cinema through Morphing Technique in (2013))

  • 장미화;문재철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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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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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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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디지털 몰핑은 영화의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 현실 넘어서는 상상을 사실로 구현한다. <블랙 스완>(2013)에서 디지털적으로 구현된 몰핑 이미지는 포스트 시네마로서 오늘날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컴퓨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술 같은 환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디지털 몰핑 기술은 주인공이 발레를 추는 동안 기괴하게 변형되어 가는 신체를 현실과 환영이 구분되지 않게 제시함으로써 충격을 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트랙션 효과로 그치지 않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강도를 정동의 흐름으로 가시화해 낸다. 신체 변형의 기이한 효과는 신자유주의 현실의 징후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몰핑 이미지는 파트리샤 피스터스가 말한 신경-이미지 체제의 부상을 말해준다. 디지털 스크린에 나타난 신경 병리학적인 양상들은 신경-이미지에 해당되는 것으로,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체제를 넘어서 미래의 시간성을 띤다. <블랙 스완>의 몰핑의 경우 니나의 신체가 흑조와 혼종화 되어서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동안 신경-이미지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경 이미지로서 이 영화의 디지털 몰핑은 주체가 겪는 현실의 충격을 조절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 영화의 몰핑은 디지털 시대의 사회적 통제의 효과이자 그 통제를 조절하는 포스트 시네마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좀비, 엑스 니힐로의 주체와 감염의 윤리 (Zombie, the Subject Ex Nihilo and the Ethics of Infection)

  • 서동수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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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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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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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의 목적은 좀비서사를 대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교 분석하는데 있다. 기존의 연구는 좀비를 후기 자본주의의 영혼 없는 노예-소비자나 사물화 된 노동자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환멸의 세계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도입시킬 주체로 보고자 했다. 첫째, 좀비는 후기 자본주의의 소비주체의 표상을 넘어 체제 외부를 욕망하는 각성한 주체로 볼 수 있다. 언캐니의 관점에서 보았듯이 좀비는 우리가 억압해야 할 그 무엇(thing)이었다. 좀비의 속성은 대타자를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그렇기에 반드시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해야 했던 그 무엇이었다. 그런 면에서 좀비를 환대하는 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곧 '인간다움의 근본'을 만나는 것이자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엑스 니힐로의 주체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둘째, 좀비로 인한 감염의 사태는 새로운 윤리적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좀비의 식인행위는 산 노동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의 이기주의적 사랑과는 다르다. 좀비의 식인행위는 감염이라는 사건과 더불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각성의 시간과 순간을 나누는 것이며 연대의 시작이다. 그런 면에서 좀비의 어슬렁거림은 연대를 위한 기다림이며, 인간을 향한 공격성은 적극적인 환대의 다른 이름이다. 셋째, 좀비 서사의 종말론적 상황은 새로움을 향한 또 다른 사건이 시작이다. 좀비의 분노는 단지 괴물성을 드러내는 장치에 멈추지 않고 세계의 파국을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좀비들의 분노와 폭력은 기만적인 가상의 세계를 정지시켜 새로운 미래를 가능케하는 메시아적 폭력의 은유이다. 좀비의 출현과 이에 대한 대중의 호응은 대안 주체와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열망이다.

<판의 미로>에 나타난 환상성과 미궁의 모티프 (The Fantastic and Labyrinth Motif in Pan's Labyrinth)

  • 노시훈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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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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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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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의 목적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2006)를 환상영화로 평가하게 해주는 특성과 그것에 밀접하게 결부되어 나타나는 미궁의 모티프의 의미와 기능을 고찰하는 데 있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환상적인 것'을 현실에 침입한 초자연적인 사건에 직면하여 자연적 해석과 초자연적 해석 사이에서 겪는 망설임이라고 정의하였는데, <판의 미로>는 그 망설임이 사라져 환상적인 것이 '기이'장르나 '경이'장르로 들어가도록 하지 않고 그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환상성이 계속해서 잘 드러난다. 이때 미궁은 환상계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그것을 대표하는 공간으로서 예술을 상징한다.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이 "문화적 속박으로부터 비롯된 결핍을 보상하려고 하는 욕망의 문학"이어서 무의식적 제재들을 반복적으로 다룬다고 보았는데, 델 토로의 영화는 환상 세계에서 가족 로맨스가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욕망의 표현으로서의 환상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때 미궁은 욕망의 장소로서 마음을 상징한다. 캐스린 흄은 환상이 미메시스와 같이 현실에 대한 반응이자 '일치된 현실로부터의 이탈'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이 영화는 '비전'장르로서 '대조'의 방법을 통해 환상계가 현실계를 비추도록 함으로써 그 정의를 충족시키고 그것이 가진 환상성을 돋보이게 한다. 이때 미궁은 현실계의 거울로서 세계를 상징한다. 이처럼 <판의 미로>는 환상적인 것이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환상영화를 대표할 만하며, 이 영화에 나타난 미궁은 예술, 세계, 마음의 세 가지를 모두 상징하여 의미가 충만한 모티프라고 평가할 수 있다. 본고의 의의는 위와 같은 고찰을 통해 한 모티프가 특정 장르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조명한 데 있다.

괴물서사란 무엇인가? - 괴물서사에서 파국서사로 나아가기 위한 일곱 개의 단편 - (What Is a Monster Narrative? Seven Fragment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 Monster Narrative and a Catastrophic Narrative)

  • 문형준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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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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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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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우리시대에 '괴물'은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좀비, 휴머노이드, 바이러스, 외계인, 연쇄살인범 등을 다루는 수많은 '괴물서사'들이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이 논문은 '괴물서사'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질문하면서 괴물서사의 양상들을 점검한다. 괴물이라는 단어는 유일하고 명확한 정의를 빠져나가는 하나의 개념적 원형범주로 사용되며, 그런 의미에서 '은유'로, 아마도 오늘날 가장 익숙한 은유 중 하나로 활용된다. 괴물이 정의를 빠져나가는 이유는 수많은 괴물 형상들을 공통적으로 묶는 요소가 '기이하다, 의심스럽다, 정상이 아니다'라는 추상적 의미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상성과 기준을 뛰어넘는 괴물이라는 존재는 몸에서 떨어져 나오고 배설된 것을 뜻하는 비체(abjection)와 통해있다. 혐오와 공포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괴물과 비체는 서로를 참조한다. 이 비체적인 것은 인간 범주 바깥의 '다른 것들'(others)을 의미하는 포스트휴먼적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주의가 확립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포스트휴머니즘이 경계의 무너짐을 나타나는 괴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하다. 좀비, 휴머노이드, 사이보그, 로봇 등 포스트휴먼적 존재들은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괴물의 표상들인 것이다. 요컨대 괴물은 인간적, 인간주의적 범주를 뒤흔드는 모든 존재들이고, 괴물서사는 근대적-인간중심적-남성중심적 범주 바깥의 타자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프로이트가 '낯설은 두려움'(Das Unheimliche)이라는 용어로 말하듯이, 괴물이라는 낯선 존재들은 사실 우리에게 원초적으로 낯익고 익숙했던 것들의 회귀이기도 하다. 괴물서사가 결국 인간주의를 뒤흔들고 비판하고 극복하는 서사라는 점에서 볼 때, 오늘날 괴물서사는 '파국서사'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파국서사가 인류 현재 문명의 몰락과 그 이후 상황을 서술하는 이야기라고 할 때, 파국서사의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가치들을 회의하거나 재사유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파국서사와 괴물서사는 공히 인간주의적 현재를 비판하면서 그 이후를 사유하며, 이는 오늘날 생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인류세와 자본세가 파국서사와 연관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파국서사는 기존의 인간주의적 리얼리즘 서사를 넘어서는 곳에서 시작하고, 그런 점에서 그 자체로 괴물서사이며, 현재의 주요한 서사양식과 사유방식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괴물적 서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