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emple building

검색결과 195건 처리시간 0.029초

팔공산(八公山) 동화사(桐華寺)의 풍수(風水) 및 가람배치( 伽藍配置)의 특징(特徵) (A study on the location of Donghwa temple from feng-shui perspective)

  • 성동환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 /
    • 제7권4호
    • /
    • pp.65-80
    • /
    • 2001
  • 본 연구는 팔공산의 지형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동화사(桐華寺)의 입지와 가람배치의 풍수지리적 특성을 밝히는 것이다. 동화사의 풍수지리적인 특성에 대한 해석과 연구는 향후 동화사의 토지이용이나 건물의 증 개축, 진입로의 개설, 가람의 변경 유지 등에 참고할 수 있는 기초적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동화사는 산과 물이 에워싸인 지세로 풍수지리적인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곳으로 종교적 장소성을 확보하기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었다. 봉황과 관련된 안온한 지세와 어울리게 가람이 배치되었으며, 봉황을 상징하는 시설물들이 누각과 문, 비에 남아있고,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많이 식재(植栽)되어 있다. 동화사의 중심공간이 잘 부각되고, 사찰의 경역(境域)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주 진입로의 복원, 주차장의 폐쇄, 새로운 진입로의 개설 등과 같은 방안을 제안하였다.

  • PDF

백제(百濟) '정림사(定林寺)'의 창건연대(創建年代) (The Establishment Year of 'Jeongnimsa' Temple in Buyeo)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5권4호
    • /
    • pp.38-53
    • /
    • 2012
  • 이 글에서는 부여 정림사지로 추정되는 백제 '정림사'의 창건 연대를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즉, 본격적인 대지 조성은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 일대와 연동되어 있는데, 그 시기는 6세기 늦은 단계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찰 건립을 위한 대지 조성 이전에 사용된 소형 노 등과 그와 관련하여, 구지표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참고할 때 사비 천도 후 일정 기간 공방이 운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방은 정림사지 북쪽에 인접한 관북리유적에서 본격적인 대지조성과 함께 이루어진 기와기단건물의 조영 이전에 운영된 것이 확인되었다. 대지 조성토에 혼입된 토기, 기와, 중국자기를 통해서도 정림사의 조영 연대가 사비 천도 직후까지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 점은 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구조는 지하기초부가 없는 높은 지상기단일 가능성과 연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림사지 가람배치는 동 서 건물과 강당 좌우의 건물이 하나로 통합되어 강당지 북편 기단보다 북쪽으로 좀 더 돌출되어 대규모 승방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익산 미륵사지와 유사하여 정림사지가 능산리사지나 왕흥사지보다 늦게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강당과 동 서 건물의 배치 관계 등으로 살펴본 이러한 견해는 그동안 정림사지의 창건 연대를 사비 천도 전후로 보아 온 것과 배치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볼때, 정림사는 사비 천도 전후가 아니라 도시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6세기 후엽 이후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제 사찰 부속건물지의 구조와 기능 - 부여 왕흥사지를 중심으로 - (Studies on the Structure and Function of the Subsidiary Baekje Temple Building Attachments - Focusing on the Buyeo Wangheungsa Temple -)

  • 이상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4권1호
    • /
    • pp.138-163
    • /
    • 2021
  • 부여 왕흥사지는 2015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15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중심가람과 함께 동·서에 부속건물지를 배치하였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사역 서편구역의 경우 별도의 대지를 설정하고 내부에 다양한 건물지가 배치되었으며 동편구역에도 이러한 양상이 추정되는 대규모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본고에서는 왕흥사지 부속건물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평면 구조와 출토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왕흥사지 부속건물지의 가장 큰 특징은 중심가람과 함께 초축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부속건물지가 단계적으로 확장된 능산리 사지와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중심가람 공간의 경우, 동·서부속건물지는 독방을 사용하는 승려의 거주공간으로 추정되며 동·서건물지는 행정행위, 의례 준비, 접견 등 공적인 업무공간과 생활공간이 조합된 복합적 성격일 것이다. 중심가람 외부 공간에 대해 알아보면, 서편대지는 대지 조성 양상과 초축 수막새 출토를 고려하면 중심가람과 함께 조영되었을 것이다. 다만, 내부의 서편건물지를 살펴보면 단계별 기능 변화가 추정된다. 1단계는 제의공간으로서 별도의 진입시설과 보도시설을 갖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2단계에는 공방시설이 설치되는 등 승역의 기능이 부여된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현재 구체적인 양상을 확인되지 않았으나, 동편대지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삼원식 구조라는 추정이 있었으나, 서편대지와 동일한 구조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어 승방 등 사찰 운영과 관련한 구조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향후 사찰 구조에 대한 재검토와 추가된 발굴자료의 해석에서 부속건물지를 포함한 넓은 범위에서의 접근이 실시된다면 백제 사찰의 전반적인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시대 건축으로부터 재생된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 - 초기 르네상스시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Revived from the Roman Architecture - Focused on the early Renaissance Architecture Building -)

  • 김석만
    • 건축역사연구
    • /
    • 제18권2호
    • /
    • pp.7-26
    • /
    • 2009
  •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he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revived from the roman architecture, focused on the early renaissance architecture building. The results of study are as follow: 1. The composition system of Domus which is formed of urban house in the Roman period is presented by spatial arrangement of palace architecture centering around atrium in the Renaissance period. Thus plan type of Domus is used by atrium from which is composed of peristyle from the palace and villa in the Renaissance period. 2. The circular temple in the Roman period is composed of element such as podium, stair, peristyle centering around the basic circular plan. Bramante planed to revive above elements for the Tempietto to concept from the circular temple in the Roman period. 3. The triumphal arch in the Roman period is strong monument to the independent building in the city, but thus arch is used of church facade as the important example which is composed with building elevation in the Renaissance period. 4. The composition system and element of Roman temple which is planned to rectangular plan is composed of high podium, stair, portico, prostyle and pediment. The facade plan of church is used by the partial elements and total elements perfectly from the temple in the Roman period. 5. The linearly successive and repetitive composition which is composition system and element of aqueduct arches of same dimension shows to the palace facade, arcade for gallery space and side elevation plan of S.Fracesco church. 6. Such as background of Colloseum, Rucellai palace can be called good example which is created by the new architectural form to the creative starting point from the classical architecture from.

  • PDF

능산리절터 제3건물지 출토 청동덩어리에 대한 금속학적 분석 (The metallurgical Analysis of a Bronze-Lumps from the Third Building Site at Neungsan-ri Temple Site)

  • 노태천
    • 보존과학회지
    • /
    • 제10권1호
    • /
    • pp.31-37
    • /
    • 2001
  • 부여 능산리절터 제3건물지(공방)의 북측 공방터에서 수습된 청동덩어리 시료 4개에 대한 금속학적 조사를 실시하였다. 시료 단면의 미세조직은 SEM을 이용하여 관찰하였고, 시료의 정성 및 정량분석은 EDS를 이용하였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절터 제3건 물지 내의 북측공방터에서 수습된 청동덩어리 시료 1과 시료 2는 동제련 과정에서 형성된 동피(matte)를 제련하여 만든 조동(粗銅)로 추정되고, 시료 3은 구리 제련 과정에서 만든 정동(精銅)에 주석만을 첨가하여 합금했을 가능성이 있는 Cu-Sn계 청동덩어리이고, 시료 4는 정동에 주석과 납을 함께 첨가하여 합금했을 가능성이 있는 Cu-Sn-Pb계의 청동덩어리였다. 이 제3건물지(공방)에서는 동광석을 제련하여 동피를 만들거나, 외부에서 반입된 동피를 녹여 조동을 만들고, 이것들을 다시 정련하여 정동을 만든 다음에, 주석과 납을 첨가시켜 조성이 다른 여러 가지 청동제품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PDF

신라사천왕사(新羅四天王寺) 건립과정(建立過程) 재고(再考) (Reconsideration on the construction process of the Sacheonwangsa Temple in Silla)

  • 이정민;미조구치 아키노리
    • 건축역사연구
    • /
    • 제28권2호
    • /
    • pp.77-90
    • /
    • 2019
  • The Sacheonwangsa temple in Silla was completed in 679, just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recent years, we have been critically considering the history of the chronology based on the existence of 'Geumdang of the previous generation', which has emerged through the research report of the Sacheonwangsa temple. It is the one to reconsider the construction process of the Sacheonwangsa temple centering on the re-interpretation of the construction time and the character of the first stage of the foundation which was confirmed from within the Geumdang site.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 1)The "Chang(創) of Sacheonwangsa temple" in [Three Affairs that Queen Seondeok had already known] that it is presumed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Sacheonwangsa temple, which was designed by Anham before 640 years ago, will convey the fact that the first of the King Munmu's reign (661 ~) has been finalized after the initial discussion. 2)Although the theories after excavations are predicated on the existence of 'Geumdang of the previous generation', there is no reason to believe that a lasting predecessor building with roof and pillar walls on predecessor buildings is considered to have been built. The foundation was associated with the "build a temple out of coloured silk(以彩帛營寺)" i.e. 'Jochang(祖創)' in 670 years before the construction plan was formally finalized. However, it is presumed that the remains of the platform construction on the premise that it will be used on the construction of Geumdang. 3)The decision to 'rebuilding( ??)' based on a formal construction plan is determined to be from 670 to 672 years. The maintaining of the original cathedral axis line, to the north on the boundary of the southern limit of the foundation flat portion, the result of developing and embodied the relative position of the Geumdang in the newly determined cathedral unfold and embody, the center of the building base and Geumdang, it is presumed that the centers of them are divided into North and south. 4)The completion of the Sacheonwangsa temple in 679 is understood as the conclusion of 'rebuilding' to "build a temple out of coloured silk" i.e. 'Jochang' in 670 years. The pent roof of the Geumdang was initially considered not to be in the plan, but it is judged to be before the completion of the Sacheonwangsa temple.

인도 평지사원 탑형부조(塔形浮彫) 연구 (A Study on the Relief-Stupa in Flatland Temple in India)

  • 김준오;천득염
    • 건축역사연구
    • /
    • 제20권4호
    • /
    • pp.135-156
    • /
    • 2011
  • Stupa in India divides into two: stupa in flatland temple with a character of tomb, and devotional stupa made for offering. The difference of such character is made by whether there is any Sari, and main center for worship is flatland stupa where Sari is settled. Stupa in flatland temple is targeted to that with Sari, whose character is applied into Relief-stupa. The characteristics of Relief-stupa can be divided into two: a relief with similar type of flatland stupa in the form, and a devotional relief in which drum and upper part of tower are developed. The Relief-stupa of flatland temple could be confirmed at tower gate of Sanchi tower, decoration of handrail, and the wall attached to Amaravati and Nagarjunakonda stupa. To the contrary, drum and upper wheel part in the Relief-stupa are developed in the votive stupa. Such characteristics had different features according to usage: The example of former is that there is an expression of landscape of stupa built at that time, and the example of latter is those which had similar type of stone cave temple or offering tower near stupa. Thus, the meaning is subject to the existing of Sari. Stupa building developed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Buddhist structural activity with the existing popular tradition. And its influence was expanded along with various cultures locally. And, the structure and tower reflected various types and thoughts. Stupa reflected its building site and method according to types, and was created in a new form by its usage.

백제(百濟) 목탑지(木塔地) 편년(編年)과 축기부(軸基部) 축조기법(築造技法)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Chronological Recordings and construction method of Wooden Pagoda Sites of Baekjae)

  • 조원창
    • 건축역사연구
    • /
    • 제17권4호
    • /
    • pp.65-82
    • /
    • 2008
  • The wooden pagoda sites which have been confirmed in Baekjae's former territory so far have flattened surface of the earth or foundation pert made by digging up the earth. In particular, the latter is found more often in the pagoda sites of Baekjae, which is essential and absolutely necessary because of the characteristics of pagoda structure. The wooden pagoda sites with foundation part made by digging up the earth under the stylobate are found at Yongjeongli ruined temple site of Woongjin area, and at Neung-sa temple site, Wangheung-sa temple site, Geumgang-sa temple site, and Mireuk-sa temple site of Sabi period. They are also observed at Hwanglyong-sa nine-storied wooden pagoda of Shilla and at Biin five-storied stone pagoda of early Goryeo. They are important data improving that the construction technologies of Baekjae continued to be applied to build stone or wooden pagodas, transcending time and space. Recently, the site assumed as a wood pagoda site of Hanseong area was examined in Gyeongdang sect ion of Pungnap mud fortification. If this is proved to be a real wooden pagoda site, this digging-up construction technology of foundation part ann be concluded to be a traditional engineering technology of Baekjae which was frequently used from Hanseong period to Sabi period. On the other hand, this digging-up construction technology of foundation part has been found only at pagoda sites and main building sites of temple ruins, and it helps examine their symbolism.

  • PDF

한국 사찰 산신각(山神閣)의 건축적 특성과 성격 연구 (A Study on Sansinkak of Korean Temple)

  • 양상현;김예정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 /
    • 제11권10호
    • /
    • pp.3982-3987
    • /
    • 2010
  • 산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토착 신앙이 불교 내부에 수용된 것으로 사찰 안에 산신각이 건립된 것은 17세기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불교 고유의 신격이 아닌 까닭에 산신각의 입지는 불전의 배후에 떨어져 산과 가까운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다수의 사찰에서 산신각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에도 그 크기가 작은 까닭은 산신 신앙의 개인성에서 비롯한 것이며 또한 이러한 간결한 형태를 통하여 산천 정기가 집약, 응축된 장소임을 강하게 표현하려는 상징적 의도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신각은 산천의 정기가 사찰 안으로 흘러 모여드는 통로이자 불교의 고유한 신앙체계가 무한한 자연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출구이기도 하다.

진표계 법상종 사원의 가람 구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Building Composition of Buddhist Temples Belonging to Jinpyo's Beobsang School)

  • 한지만
    • 건축역사연구
    • /
    • 제30권4호
    • /
    • pp.53-66
    • /
    • 2021
  • In the study of Buddhist architecture before the Goryeo Dynasty, the analysis of sectarian viewpoints is one of the effective means. In the study of Buddhist architecture before the Goryeo Dynasty, analyzing from the point of view of a Buddhism sect is one of the effective means. Until now, compared to the importance of the Beopsang school before the Goryeo period in the field of research on the history of Buddhist architecture, research on its temples was the least compared to those of other denominations. In this study, as one of the studies on Beopsang school temples, Geumsansa(金山寺), Beopjusa(法住寺), and Donghwasa(桐華寺), which were built as the Jinpyo's Beopsang school temple in the late 8th century and maintained until the Goryeo Dynasty, were targeted. And I tried a rudimentary analysis on the building composition of those temples from the viewpoint of the beliefs and teachings of Beopsang school.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is the first attempted study in the field of architectural history on the Buddhist temple of the Beopsang school, which led non-Zen sects of Buddhism along with the Hwaeom school until the Goryeo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