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aishan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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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luation of the Non-use Values of Taishan Mountain Cultural Heritage

  • Song, Xiu-hua;Lang, Xiao-xia;Ham, Kwang-min
    • 한국환경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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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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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7-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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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The contingent valuation method (CVM) is one of the most commonly used and effective methods to evaluate non-use value of resources. Reasonable application of CVM to value the cultural heritage is the key process of evaluation. CVM was used to evaluate the non-use value of cultural heritage of Taishan Mountain combined with questionnaire survey and field research in this study. The results indicated that the importance of the degree of the three components of non-use value was heritage value ranked highest (40.22%) > followed by existence value (38.58%) >then option value (21.20%). In addition, the rate of willingness to pay was 54.52%, the average and median values of per person were 40.17 CNY·a-1 and 20.00 CNY·a-1 and the non-use values of Taishan Mountain cultural heritage was 33 million CNY·a-1. The median value of WTP was consistent with Asian countries but was lower than European and American countries. Factors influencing WTP showed that monthly income and satisfaction with Taishan Mountain were correlated to WTP, and family location and willingness to revist were correlated remarkably with WTP. In addition, monthly income was correlated remarkably with WTP value, however other factors were not. The results showed the importance and necessity of protective development of Taishan Mountain cultural heritage, which would be used as an important reference for decision makers.

한국 전통 석가산에 표상된 함의성 (The Implications Representated in Korea's Traditional Sokgasan)

  • 최우영;윤영조;서옥하;윤영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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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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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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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한국의 전통 석가산(石假山)은 고려시대 창안되어 조선시대로 계승된 우리의 우수한 석정문화(石庭文化)이다. 이 연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석가산 문화가 시대 흐름에 따라 석가산 내면에 어떠한 함의성(含意性)을 표상하며 계승되어 왔는지를 분석하였다. 고려시대 산악형 풍경을 모사해 창안한 한국의 전통 석가산은 괴석을 소재로 진산(眞山)을 모사한 작은 인공가산(人工假山)을 만들었다. 그리고 산수풍경을 축경적(縮景的)으로 재현하고 심산유곡의 흥취를 집안에서 와유(臥遊)하며, 풍류를 즐기는 동시에 정서적 안정과 치유라는 실용적 측면의 경물(景物)로서의 심미적 풍경의 산수체험을 석가산을 통해 경험하였다. 이러한 석가산은 내향적으로는 경물 자체의 형식미를 초월하며 불로장생을 염원하는 삼신산(영주, 봉래, 방장)과 도교적 신선사상이 응축된 오악(숭산, 태산, 화산, 항산, 형산)을 표상하며, 신선계(神仙界)를 이상향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또한 석가산을 대하며 유교의 요산요수(樂山樂水)의 교훈을 실천해 심성을 가다듬고, 중국의 명산명호(名山名湖)를 모방하는 등 석가산 내면에 다양한 함의성을 포용하며 변천, 발달하였다. 한국의 전통 석가산은 심미적 풍경의 산수체험은 물론 실용적 경물로서의 형식미를 초월하며, 석가산의 심오한 상징적 함의성을 표상하여 무한한 상상의 관념적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조선초 고승 만공(滿空)과 적휴(適休)의 요동(遼東) 월경(越境)과 중국사찰 중창 (The crossing the border into Liadong by Mangong and Jeokhyu, the high priest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rebuilding of the Chinese, Buddhist temples)

  • 황인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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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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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7-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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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한국 불교사에서 거의 주목되지 않은 조선초 요동 월경과 월경승 만공(滿空)과 적휴(適休)의 중국 불교행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조선초 태종과 세종대의 대대적인 불교탄압 시책에 대하여 불교계가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교계 나름대로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특히 조계종의 나옹혜근과 태고보우의 문도 계열이 두드러졌다. 보우의 문도들이 주로 신문고를 치거나 불교의 자정을 주창하였으며, 나옹의 문도 계열은 무학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재편하거나 탄압에 맞섰으며, 명(明)의 황제의 도움을 받아 불교계를 수호하고자 하거나 아예 요동으로 월경(越境)하기도 하였다. 월경을 시도하다가 해선(海禪)처럼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태종대 만공(滿空)과 세종대 적휴(適休)처럼 월경하여 중국 불교계에 뚜렷한 행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만공(滿空)은 태종대 요동으로 월경한 11명 가운데 한 고승으로 홍도(洪道) 홍인(洪因) 등과 함께 하였는데 무학의 문도이자 나옹의 문손인 듯하다. 나옹의 문도인 듯한 만공은 월경후 북경에서 다시 해로로 이동하여 금릉 금릉(金陵) 천계사(天界寺)에 주석하다가 조선과 친근하며 유서가 있는 산동(山東) 태안(泰安)으로 이주하여 죽림사(竹林寺)와 보조선사(普照禪寺)를 중창하면서 불법을 널리 홍포하였다. 적휴(適休)는 세종대에 승려 신내(信乃)와 신휴(信休) 신담(信淡) 혜선(惠禪) 홍적(洪迪) 해비(海丕) 신연(信然) 홍혜(洪惠) 신운(信雲) 등 총 10명과 함께 요동으로 월경하여 북경에서 명 황제의 보호속에 산해관을 거쳐 금릉 천계사(天界寺)에 이주하였다. 그후 그들의 행적은 더 알 수 없으나, 적휴는 북경 곡적산(穀積山)에서 고려 승속이 거주하였던, 특히 나옹과 문도 무학 등이 머물렀던 영암선사(靈巖禪寺) 근처에 반야선사(般若禪寺)를 창건했다. 이와같이 이와같이 조선초 승려들은 국가의 탄압에 저항하거나 월경하였는데 태종과 세종대 만공과 적휴는 중국 불교계를 유력하면서 사찰을 중창하며 중국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