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mall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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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의 분류 체계에 대한 시론 (The Classification System and its Code on Archives of the Government-general Museum of Joseon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오영찬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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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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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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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에 대해 '기능적 출처'의 개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분류 체계와 분류 기호를 제시하였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기관이므로 조선총독부 공문서 체계에 부합되고 편입이 가능하도록 문서 분류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점, 기능적 출처주의에 입각하여 총독부박물관의 조직과 기능에 부합하는 분류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점, 그러한 분류 체계에 기반하여 체계적이고 간명한 분류 기호가 부여됨으로써 문서의 검색과 활용에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공문서 분류 체계에 맞춰 총독부박물관의 대기능은 학무국으로, 중기능은 학무국 산하의 과 단위로 설정하였다. 아울러 '기능별 출처' 개념에 입각하여 총독부박물관의 업무 기능은 서무, 고사사, 명승천연기념물, 고적, 박물관으로 분류하였으며, 각 계별 문서는 업무 내용에 따라 다시 2차 분류를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대기능, 중기능, 소기능, 세부기능의 순으로 분류 기호를 설정하였다. 총독부박물관 문서는 조선총독부 공문서의 분류체계에서 'A 학무'에 해당된다. 중기능 분류 기호는 학무국 내 과별 조직의 변천과 기능을 고려하여 학무(01), 편찬(02), 종교(03), 사회교육(04), 박물관(05), 기타(06) 등으로 설정하였다. 소기능은 총독부박물관의 기능을 분석하여 추출하였으며, 2자리 숫자를 부여하였다. 서무(01), 고사사(02), 명승천연기념물(03), 고적(04), 박물관(05)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계별 업무에 해당된다. 세부 기능과 그 아래 하위 기능은 계 내에서 업무 분장과 연결하여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분류 체계가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를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Cleaning Fabricated Metal Thread: A Post-treatment Stability Assessment after Artificial Deterioration and the Application of Synthetic Soil

  • Park, Hae Jin;Hwang, Minsun;Chung, Yong Jae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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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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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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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o study the cleaning effects and post-treatment stability assessment of various methods of cleaning textiles with metal thread, six naturally-soiled historical textiles with metal thread were investigated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rior to the cleaning of fabricated gold, silver, and copper thread that had been glued onto a paper substrate, the artificial deterioration was carried out in a controlled environment with light(UV and daylight), and temperature and humidity factors which would weaken and damage the samples. A synthetic soil mixture was applied to the samples to imitate soil found on the historic and archaeological textiles with metal thread; the cleaning effect and post-treatment assessment were investigated by use of three textile cleaning methods: mechanical cleaning, wet cleaning, and solvent cleaning. While investigating the naturally-soiled textiles with metal thread, it was determined that the soil colors and sizes of contaminating particles of each textile were different due to the diversity of original environmental factors and conditions. After cleaning with kneaded rubber, Stoddard solvent, n-decane or n-hexane, a bright, clean effect was apparent. Kneaded rubber was successful in picking up both large and small particles, but its stickiness caused some of the metal leaf to peel off. Stoddard solvent produced a good cleaning effect, but after use of n-hexane and n-decane in the cleaning process, a white layer of residue remained on the textile's surface. Wet cleaning was not effective and the rapid humidity changes between wet and dry conditions caused the edges of the paper substrate to lose their original shape.

한국전쟁기 문화재 부산 소개(疏開)와 국립박물관의 부산 활동 연구 (A Study on the Evacuation of the National Treasures an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s Activities in Busan during the Korean War)

  • 장상훈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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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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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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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1950년 12월 국립박물관이 국립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의 중요 소장품을 부산으로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김재원 관장의 기민한 조치로 미군의 차량과 철도 등 가용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은 소장품 수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임시수도 부산에서 박물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쟁 중에 국립박물관이 진행한 학술강연회와 연구발표회는 전쟁 중인 한국의 임시수도에서 학술 연구와 대중 강연이 재개되었음을 알려준다. 국립박물관은 이러한 소식을 언론을 통해 홍보함으로써 전쟁 중에도 국립박물관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1953년 국립박물관이 개최한 <현대미술작가초대전>과 <이조회화전>은 국립박물관 기능을 정상화함으로써, "피란민의 도시" 부산에 "문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업들은 전쟁으로 위축되어 있던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국내의 인식을 제고하고, 나아가 국립박물관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미국 등 외국 외교사절과 공공재단 등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빌헬름 볼러트의 주택 작품에 나타난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 - 프로그램 구성, 공간구축, 다차원적 경험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patial Characteristics in the Residential Designs by Vilhelm Wohlert - Focusing on Program Composition, Spatialization, Multidimensional Experience -)

  • 김종진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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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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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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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Vilhelm Wohlert is the Danish architect who designed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near Copenhagen. Because of Louisiana Museum's popularity, Vilhelm Wohlert's name was started to be aware since 1990s. Although he is a well-known architect in Denmark, unfortunately his name is unknown in other countries. He designed various design projects from small scale furniture design to large scale museum and public projects. There are three programmatic categories in his architecture: exhibition programs including Louisiana Museum, residential program including private houses, and public programs including churches and schools. This thesis focuses on his residential design projects. Even though he designed a multi-family houses, Wohlert's house design consists of mainly one-off large private houses located in a nice natural environment. In chapter 3, the general history of his house projects was studied. Among them, the first exhibition house for Forum was explained more deeply to show Wohlert's early house design philosophy. In chapter 4, three built house projects were analyzed in detail. Analytical diagrams were used to show the key elements in the residential space. They are program composition, circulation, spatialization elements, final construction. His buildings have been compared with Alvar Aalto, Frank Lloyd Wright, and other Scandinavian architects. But there are some major differences that make Wohlert's design unique. In chapter 5, the case analysis results were summarized together to highlight the specific design characteristics found in Wohlert's residential design process. The universal spatial quality found in his residential projects can be applied in contemporary spatial desi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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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아방가르드 소(小)극장 고찰 (A Reflection on the Avant-garde Small Theater in Paris, France)

  • 박형섭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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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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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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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is study is about small theaters in Paris which produced the theater of the avant-garde(or theatre of the absurd) in the 50s. Paris was at the center of astonishing passion by small theaters in terms of spectacle. Small theaters actively embraced young actors/actresses, theater troupe and playwrights who created a new way to express their plays. They were mostly obscure but showed talent and genius. So playwrights came from abroad such as E. Ionesco, S. Beckett, A. Adamov and others were able to create a new type of comedy and experience theatrical realization. On the other hand, a great many drama creators such as R. Blin, N. Bataille, J.-M. Serreau, J. $No{\ddot{e}}l$ and others appeared. We focused on studying about life of small theaters in Paris as mentioned earlier. The space of representation were limited. They were mostly about ridiculing of dramaturgy of comedy and theatrical realization. The substandard situations and conditions of small theaters fell far short of advantages of spectacle. Some of the theaters - Babylone, Noctambules, Nouveau Lancry, Quartier-latin - have not been able to survive up to this day. Other Theaters - Huchette and Poche-Montparnasse - have been able to last by performing creative activities. The theaters of the avant-garde are historic places of Drama Art. It is quite astonishing that some of the monuments did not last any longer. These were the places where La Cantatrice chauve by Ionesco and En attendant Godot by Beckett were premiered. When will they be restored to their original state? Meanwhile, the theater of Huchette have performed the comedies of Ionesco for last 60 years without a break. It becomes the museum of theater of the absurd that is the cradle of modern play. In conclusion, a great many play creators like playwrights, directors and set designers saw the light of day because of small theaters when there were not enough support fund. Their passion and curiosity still make us look forward to emerging of new drama.

조선말기 백선도(百扇圖)의 새로운 제작경향 -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百扇圖)>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百扇圖) 초본(草本)>을 중심으로 - (New Trends in the Production of One Hundred Fans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One Hundred Fans Painting in the 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in Germany and Its Original Drawing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권혜은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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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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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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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고는 19세기 이후 형성된 서화(書畫)의 유통과 확산의 양상을 당시 활발히 제작된 장식병풍 중 하나인 <백선도(百扇圖)>의 예를 통해 살펴본 글이다. 백선도는 화면에 다양한 형태의 부채를 겹쳐서 배치하고 각각의 선면(扇面) 안에 여러 종류의 화제(畫題)를 그린 것을 말한다. 부채와 선면화(扇面畫)라는 소재는 이전부터 존재하였지만 장식용 회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호사취미 경향을 반영하여 주로 병풍(屛風)으로 활발히 제작되었다.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서 독일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가 새로이 소개된 바 있다. 6폭으로 구성된 이 병풍에는 한 폭 당 5개 이상의 다양한 종류의 부채들이 등장하고 각 부채 면에는 단순히 채색한 것 뿐 아니라 다양한 화목(畫目)의 그림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동일한 초본(草本)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향유하였던 서화(書畫)는 민간으로 확산되었고 시장을 통한 유통의 단계로 넓어졌다. 집안을 꾸미고 장식하는 풍조에 따라 화려한 장식그림들이 선호되었고, 한 폭에 다양한 형태의 화면과 다채로운 畫目(화목)의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백납도병풍 제작이 성행하였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한국 컬렉션의 상당수는 독일 주재 조선국 총영사이자 독일의 사업가였던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 1841~1926)의 수집품이다. 그는 1890년대 후반부터 1905년까지 조선과 독일을 오가며 다양한 유물들을 수집하여 독일에 돌아가 1909년까지 순차적으로 수집품을 로텐바움박물관에 전달하였으며, <백선도>도 그 중 하나이다. 새롭고 장식미가 돋보이는 <백선도>는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납도>는 제2폭의 뒷면에 "동현(銅峴)"이라는 지명이 적힌 종이조각이 거꾸로 붙어있어 흥미를 끈다. 동현은 지금의 서울 을지로 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위치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화서(圖畫署)를 비롯한 혜민서(惠民署)·장악원(掌樂院) 등의 관청과 시전(市廛)이 있어 가내수공업이 성하던 지역이었다. 실제로 1900년대 초 이곳에는 서화를 유통하는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어가 수집했던 서화들의 구입처가 동현에 위치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는 총 6폭의 병풍으로, 1980년대에 한국 서화 소장품들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 초본>은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국립민족박물관에 입수된 작품이다. <백선도 초본>은 총 7점으로, 7점 중 6면 화면의 여백에 화면의 순서까지 정해져 있어 본래 총 8폭 병풍용 초본임을 알 수 있다. 한 화면에는 5개 이상의 다양한 접선(摺扇)과 단선(團扇)들이 배열해있는데, 작은 장식에서부터 부챗살의 문양까지 초본부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석간주(石間朱)', '홍(紅)', '묵(墨)', '청(靑)' 등과 같이 부채에 들어갈 색 대부분을 지정하고, 빈 부채에는 '유(油)'라고 적거나 비워두었으며 이 중 10개의 부채에는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나 고사인물도의 밑그림이 남아있다. 이를 실제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와 비교하면 화면의 크기와 비례까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어, 초본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펼쳐진 부채 면에는 산수, 고사인물, 화조, 영모, 초충, 어해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화접도(花蝶圖)나 어해도(魚蟹圖) 등은 19세기 유행하였던 소재로 당시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김홍도(金弘道)의 전형적인 화풍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백선도나 백납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작은 화면에 그려야 하는 백납도나 백선도의 특성상 잘 다루지 않는 소재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병풍과 화면의 구성이나 화풍 모두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백선도>병풍의 몇몇 장면은 김홍도의 작품 중에서도 1796년작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과 유사한 화면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사인암(舍人巖)>과 흡사한 산수도(山水圖)를 비롯하여 <서원아집도>, <쌍치도(雙雉圖)> 등에서 김홍도 화풍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부채 속 그림을 그린 인물은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받은 직업화가일 것으로 보이며, 작가는 《병진년화첩》을 직접 감상한 적이 있거나, 서화시장에 《병진년화첩》을 베껴 그린 부본(副本)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까지 알려진 병풍으로 된 백선도는 10점 내외인 것으로 파악되며, 이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화면의 구성이 부채 1개 정도 차이가 있거나 비례와 좌우가 바뀌었을 뿐 화면구성이 매우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일정한 패턴의 화면구성은 같은 시기 민간에서 성행한 책가도(冊架圖)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19세기 서화의 수요층이 넓어짐에 따라 세밀한 표현과 화려한 장식성이 요구되는 회화들의 대량 제작을 위한 초본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도안이 복잡하여 범본이 필요한 곽분양행락도나 요지연도, 백동자도, 해학반도도 등의 규모가 큰 장식병풍에서 적극 활용되었으며, 실제 남아있는 작품에서 몇 가지의 도상들이 반복하여 등장하고 있어 초본을 참고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대량 제작할 수 있는 초본 활용이 성행했던 당시의 경향은 화면을 다채로운 부채들로 채우고 그 부채 면에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야하는 백선도 제작에 있어서도, 초본을 요긴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테두리를 그은 후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담는 백납도에 비해 백선도는 다양한 형태의 부채들을 먼저 그려야하는 공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대량 제작이 어렵고 그만큼 남아있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 병풍과 국립중앙박물관 <백선도 초본>은 새로운 화풍이 수용되어 시도되었던 조선 말기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다수의 백선도들이 박기준의 작품과 유사한 화풍과 화면 구성 보이는 것에 비해, 김홍도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는 매우 이례적인 예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더욱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의 제작기법 고찰 및 원형 연구 (A study on the production techniques and prototype of the mother-of-pearl chrysanthemum pattern box from the Goryeo Dynasty)

  • 이희승;이민혜;김성훈;이현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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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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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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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고려시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미세한 자개표면에 문양을 세기거나, 금속선을 이용해 넝쿨의 줄기를 표현하고, 금속선을 꼬아 각 문양의 경계를 구성하는 등 고려나전칠기의 대표적인 특징이 아주 세밀하게 표현되어있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경함 및 합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이번 연구대상인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뚜껑과 몸체가 분리되는 상자의 형태를 하고 있어 제작목적 혹은 보관된 내용물을 추정하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에서는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의 원형을 확인하기 위해 조형적인 특징을 확인하고, X선 투과촬영과 X선 형광분석을 통해 구조와 제작기법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기존에 알려진 고려시대 나전칠기를 유형별로 분류 및 비교분석해 상자의 용도와 제작목적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조사결과 X선 이미지 상 바닥면과 속상자에서 직물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기물을 직물로 감싸는 목심저피칠기기법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목리를 통해 복원부분으로 추정되는 부분의 판재구성과 기존 장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결구부에서 맞대임 방식으로 연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양에 사용된 금속선은 X선 형광분석 결과 황동으로 판단된다. 조사결과를 근거로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 경함류 9점, 상자류 3점, 소상자류 2점 등 총 14점을 유형별로 분류해 유사성을 조사하였다. 이중 일본 개인소장 국화넝쿨무늬경함, 도쿠가와미술관 흑칠지국당초문나전경상, 영국박물관의 나전국당초문경함, 국내소장 나전칠국당초문합(소상자) 등 5점의 문양구성이 본 연구대상과 가장 유사하였다. 그리고 손상양상, 조형적 특성, 구조적 특징 등을 부위별로 대조한 결과 영국박물관의 나전국당초문경함의 형태가 나전넝쿨무늬상자의 원형으로 현재 형태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상자의 용도, 즉 제작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고려의 사회분위기와 비슷한 시기 제작된 고려대장경 인경본의 사례를 조사하였다. 당시 무신정권 이후 몽골의 침입을 겪으면서 국가의 안정과 개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사경이 출현, 그리고 13세기 국내 인쇄술과 종이의 발전으로 점차 두루마리에서 절첩식 형태로의 전환기와 맞물려 경함에서 상자의 형태로 보관방식이 변경된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예술상품 소비자의 가치인식이 추구혜택과 상품속성에 미치는 영향 (The Effects of Consumer Value Cognition on Benefits and Attributes of Culture-Art Products)

  • 신은주;이영선
    • Asia Marketing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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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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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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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문화예술상품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소비자의 가치인식에 따라 중요한 소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특별한 상품이다. 물질적 소비재나 서비스 상품은 상품속성이 주는 물질적 및 비물질적 혜택을 상정하여 상품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마케팅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상품 소비는 소비자의 경험과 교육 등에 의해 형성된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인식에 따라 소비추구혜택이 달라질 수 있고, 가치인식과 추구혜택은 문화예술상품의 속성을 선택하는 기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가치인식과 추구혜택에 관한 질적 연구'의 후속연구로서 질적 연구에서 나타난 개념구조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 및 추구혜택과 상품속성의 하위차원을 규명하고, 수단-목적 사슬이론을 역으로 적용하여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이 추구혜택과 상품속성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문화예술상품 생산 및 문화예술 정책기관과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기업의 문화마케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실무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실시되었다. 10대 이상 50대 남녀 662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요인분석과 경로분석을 실시하였다. 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과 추구혜택의 하위차원은 질적 연구 결과와 유사하게 나타났으며, 가치인식은 대부분 추구혜택을 매개로 하여 상품속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질적 연구결과와 마찬가지로 수단-목적사슬을 역방향으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함을 입증하였다. 즉,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이 실제적 편익으로 구체화되고, 소비자는 이러한 추구혜택에 따라 상품속성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구매의사를 결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을 긍정적으로 형성·강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비 촉진 요인임을 입증하였으며, 문화예술상품 생산기관에서 소비자 중심의 상품개발과 기업의 효율적인 문화예술마케팅 전략을 개발하기 위한 소비자 정보와 실무적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본 연구 결과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국가기관의 정책 수립을 위한 유용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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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 기념행사와 음악 (The celebration events and music on the celebration day of national foundation(開國紀元節) during the Daehan Empire Period)

  • 이정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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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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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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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기리는 경축일이다. 줄여서 기원절이라고도 하였다. 이를 기념한 행사가 1895년부터 1910년 한일병합 직전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대규모 혹은 소규모로 설행되곤 하였다. 설행 시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개국기원절은 조선의 전통적인 궁중 행사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아니며, 개항(1876) 이후 새롭게 제정된 경절(慶節)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항 이후 세계 각국과 교류하게 되면서 근대화에 매진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경축일의 성격을 지닌 각종 경절 기념행사를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전통적인 궁중 행사와 별도로 혹은 일부 교차되면서 경절 기념 경축 행사가 1895년부터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본고에서는 근대식 경축일을 의미하는 경절의 하나인 개국기원절을 살펴보았다. 이를 기념하여 행사를 펼쳤던 모습이 1895년 7월 16일 경복궁에서부터 포착된다. 그리고 독립협회에서도 개국기원절 기념을 행사를 설행하였다. 개국기원절을 기념하여 설행된 행사는 전통적인 하례 방식이 일부 지속되는 토대 위에 현저히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특히 독립협회에서 펼쳤던 개국기원절 경축 예식에는 축사, 연설 같은 근대적인 축하 방식이 도입되고, 궁중음악 창가(唱歌) 등 다양한 음악이 함께 어울리는 등 새로운 요소가 많았다.

고려 후기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의 해석과 의미 (Interpretation and Meaning of Celadon Inlaid with Sanskrit Mantras in the late Goryeo Dynasty)

  • 이준광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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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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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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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청자에는 불교문화의 여러 단면이 담겨 있다. 그중 범자(梵字)가 새겨진 상감청자는 불교 중에서도 밀교와 밀접한 영향 관계에 있을 것이란 점은 익히 알려져 왔으나 판독을 통한 구체적인 연구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전하고 있는 자료의 수가 적은 데다 잔존 범자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강진 사당리 23호 요지에서 이루어진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 자료들을 판독하여 기존 자료들도 몇 가지 유형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범자 판독과 해석을 통해 얻은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자에 상감된 범자는 진언(眞言)을 이루는 글자들이었다. 범자 한 자만 남아 있는 경우 해석을 유보해야 했지만, 그 밖의 범자들은 동심원 구조인 자륜진언(字輪眞言) 방식 속에서 '정법계진언', '육자대명진언', '감로수진언', '보루각진언', '구보살원주', '무량수여래심주', '멸악취진언'을 표기하고 있었음을 판독했다. 각 진언은 실담(悉曇, Siddham) 범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둘째, 제작 시기는 범자 배치 방식과 '감로수진언'이 40수 진언에 포함되는 양상을 근거로 13~14세기에 걸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진언이 있는 동심원 구조의 상감청자 자료들은 제작 특징을 보아 13세기 말~14세기 전반으로 편년했다. 셋째, 상감된 진언들의 해석을 통해 모두 파지옥(破地獄)과 정토왕생(淨土往生)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를 근거로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들 중 일부는 시아귀회(施餓鬼會)와 같은 망자(亡者)를 위한 불교 의례에 사용했으리라 판단했다. 또한 사당리 23호 요지와 '가'구역이 왕실용 자기 생산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의례 또한 왕실 혹은 그 영향력 안에 있는 사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넷째,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들은 원대 자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원의 불교문화와 고려가 이미 품고 있던 밀교적 요소가 더해져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다섯째,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들은 고려 후기 사회에 퍼져 있던 개인적 밀교 의례의 한 측면을 보여 주는 자료였다. 당장의 불안을 해소해 주길 바라는 데서 촉발된 밀교의 변화는 묘지(墓誌), 관등에서도 찾을 수 있었는데 파지옥과 극락왕생에 대한 염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여섯째, 다른 공예품과 비교할 때 공통점으로 실담 범자를 사용했다는 점, '육자대명진언'을 중심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기와와 배치 방법이 유사하다는 점, 범종·목관·묘지의 진언과 의미상 상통한다는 점이 있었다. 차이점으로는 '멸악취진언'과 '감로수진언'은 다른 공예품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상감청자 특유의 경제성과 제작의 용이성은 다른 공예품과 차별되는 장점으로, 바로 이 점 때문에 범자 진언을 새길 기명으로 청자가 채택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본 연구에서 판독하지 못한 자료들은 추후 잔존 상태가 양호한 자료가 보고된다면 새로운 유형을 수립하여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