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Old book

검색결과 220건 처리시간 0.022초

대구시내(大邱市內) 국민학교(國民學校) 놀이터의 안전성(安全性) 조사(調査) (Assessment of Safety of Playground Equipment in Elementary Schools in Taegu)

  • 박정한;윤순길
    •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 /
    • 제24권3호
    • /
    • pp.414-427
    • /
    • 1991
  • 국민학교 놀이터 시설의 설치현황과 안전성을 조사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하여 1991년 4윌 1일부터 4월 30일까지 대구시내 국민학교 총 119개교 중 117개교를 현장 조사하였다. 각 놀이시설의 안전성 판정기준은 Massachusetts 주의 Playground Safety Check List와 우리 나라 $6{\sim}12$세 아동의 발육표준치와 놀이기구 건축설계 자료집을 참고하여 만들었다. 설치된 놀이시설의 종류는 그네를 비롯해 11종이었으나 그 수는 철봉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국민학교 체육장 설비기준의 $50{\sim}60%$ 정도만 설치되어 있었다. 기존의 시설 가운데 그네는 47.3%, 평행봉은 16.6%, 지구공은 20.0%, 미끄럼틀은 16.0%가 사용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네, 미끄럼틀, 시이소, 지구공, 씨름장은 안전성이 양호한 상태가 하나도 없고, 철봉은 59.0%, 평행봉은 31.4%, 그리고 그루터기는 13.5%가 양호한 상태였다. 미끄럼틀 26.4%, 지구공 20.0%, 시이소 11.6%, 평행봉 10.4%, 씨름장 9.8%, 그네와 그루터기는 각각 7.4%, 철봉은 3.9%가 위험한 상태로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 나머지는 사용불가 또는 보완을 요하는 상태였다. 이처럼 대구시내 국민학교에서는 놀이시설이 많이 부족하고, 기존의 시설도 안전성 기준이 없어 규격이 일정치 않으며, 사용 불가능한 것과 위험한 것도 많아 어린이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놀이시설의 확충과 안전성 기준의 설정이 요망되며 기존시설의 보완작업이 시급한 일이다.

  • PDF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에서의 PET BOTTLE에 대한 사용성 평가 연구 -어린이 음료용기를 중심으로- (In a Universal Design Viewpoint Usability Evaluation Research to PET Bottle)

  • 김상식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 /
    • 제5권5호
    • /
    • pp.124-132
    • /
    • 2005
  • 최근 가볍고 사용이 편리한 PET용기의 사용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PET용기에 대한 사용자도 어린이부터 노인, 여성과 남성, 일반인과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확산되어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PET용기의 설계도 건강하고 평범한 남자를 기준으로 표준화되어있어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 즉, 어린이나 장애인은 CAP을 열 수 없거나 외부의 도움 없이는 마실 수 없는 막연한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PET라는 소재의 특성과 생산 COST의 원가절감 때문에 편리성이 강조되더라도 쉽게 디자인을 선택하여 일반인이라 해도 사용시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는 점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착목하여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에서 우선 어린이음료를 대상으로 취학 및 미취학 남여 어린이를 구분하여 사용사례를 통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연구결과로는 문제점에 대한 정성적 분석을 하기 위하여 신뢰성 높은 관찰 방법과 유니버설디자인 원칙에서 결과를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써 PET BOTTLE 디자인을 유니버설디자인의 개념적 접근에서 제시하였다.

  • PDF

심의고(深依考)

  • 김인숙
    • 복식
    • /
    • 제1권
    • /
    • pp.101-117
    • /
    • 1977
  • This thesis is a study of the Simui(深衣) system which was a dress regulation peculiar to old China with skirt and coat. The origin of Simui is a very long time, that is, before Ju dynasty in China. Its wearing range had a large circle irrespective of rank and good or bad luck. This was a ordinary dress to the Emperor or the lords, a below court attire or a below sacrificial rites attire to the illustrious officials, and good luck dress to the common people. But this was a funeral rites attire or coming-of-age ceremony attire in domestic behaviour. In the times of Song dynasty, lots of confucian scholars had put on this simui because of Juhi's recommendation for domestic behaviour. This Simui had been put on through all the times of China and was the original text of all the dress. Especially the court attire and silkworm working dress of Empress, and the court attire and underwear court attire of Emperor is also made out of this Simui, therefore this is a origin of the ceremonial dress which formed into long coat. In Korea it is said that this Simui was brought in prior to the middle of Goryeo dynasty. But we can't tell the correct transmitted age. According to the following records in Goryeo History, "King had put on the Simui as a sacrificial rite attire in the times of Yejong". It is sure that this Simui was brought in prior to the times of Yejong. In fact, lots of confucian scholars had put on the Simui since the introduction of confucianism in the end of Goryeo dynasty and after that time this was taken by many confucian scholars through Yi dynasty. Korean Simui system was complied with Chinese system through confucian domestic behaviour, This was respected for court dress of confucian scholars, as it were, Chumri, (an ordinary dress of scholars), Nansam (a uniform of upper student), and Hakchangui (a uniform of confucian student). There are many deta about Simui system in the book of Yeki, chapter Okcho and Simui, and other many canfucian books. But we didn't demonstrate the theory about it till now. Especially there are diversifies of opinions about the phrase of "Sok Im Ku Byun" in Yeki. Simui was cut in separate and then was stitched together in one piece. Generally its shape had round sleeve and angled lapel, its length reaches to the anklebone. And it has a line around the lapel, the sleeve band, and the edge of skirt. It is called Simui because the body can be wrapped deeply in broad width and large sleeve. The Simui was made of white fine linen and was cut by the natural size of body. Every part of Simui had a profound meaning; the round sleeve in compliance with regulation can keep a courtesy when a walker moves his hands and the angled lapel like a carpenter's square in compliance with square keeps them front loosing their Justice and a string of the back also keeps them loosing from their righteousness and the flat lower part of Simui makes their heart and mind calm. This Simui was usually attendant on a head cover and belt made cloth, and black shoes. This thesis was made a study of documents and portrait from Yi dynasty, for the actual object was not obtained.

  • PDF

사람 뇌의 3차원 영상과 가상해부 풀그림 만들기 (Manufacture of 3-Dimensional Image and Virtual Dissection Program of the Human Brain)

  • 정민석;이제만;박승규;김민구
    • 대한의용생체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대한의용생체공학회 1998년도 추계학술대회
    • /
    • pp.57-59
    • /
    • 1998
  • For medical students and doctors, knowledge of the three-dimensional (3D) structure of brain is very important in diagnosis and treatment of brain diseases. Two-dimensional (2D) tools (ex: anatomy book) or traditional 3D tools (ex: plastic model) are not sufficient to understand the complex structures of the brain. However, it is not always guaranteed to dissect the brain of cadaver when it is necessary. To overcome this problem, the virtual dissection programs of the brain have been developed. However, most programs include only 2D images that do not permit free dissection and free rotation. Many programs are made of radiographs that are not as realistic as sectioned cadaver because radiographs do not reveal true color and have limited resolution. It is also necessary to make the virtual dissection programs of each race and ethnic group. We attempted to make a virtual dissection program using a 3D image of the brain from a Korean cadaver.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an educational tool for those interested in the anatomy of the brain. The procedures to make this program were as follows. A brain extracted from a 58-years old male Korean cadaver was embedded with gelatin solution, and serially sectioned into 1.4 mm-thickness using a meat slicer. 130 sectioned specimens were inputted to the computer using a scanner ($420\times456$ resolution, true color), and the 2D images were aligned on the alignment program composed using IDL language. Outlines of the brain components (cerebrum, cerebellum, brain stem, lentiform nucleus, caudate nucleus, thalamus, optic nerve, fornix, cerebral artery, and ventricle) were manually drawn from the 2D images on the CorelDRAW program. Multimedia data, including text and voice comments, were inputted to help the user to learn about the brain components. 3D images of the brain were reconstructed through the volume-based rendering of the 2D images. Using the 3D image of the brain as the main feature, virtual dissection program was composed using IDL language. Various dissection functions, such as dissecting 3D image of the brain at free angle to show its plane, presenting multimedia data of brain components, and rotating 3D image of the whole brain or selected brain components at free angle were established. This virtual dissection program is expected to become more advanced, and to be used widely through Internet or CD-title as an educational tool for medical students and doctors.

  • PDF

조선시대 설인귀 서사의 대중화 양상과 그 시대의식 (A Popularise Aspects and Consciousness of Times about Seol-In-Gui's narrative in the Joseon Dynasty)

  • 서혜은
    • 동양고전연구
    • /
    • 제67호
    • /
    • pp.35-67
    • /
    • 2017
  • 이 논문은 <설인귀전>의 여러 이본과 <당태종전> <울지경덕전> <천개소문전> <서정기> <설정산실기> <번리화정서전>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설인귀 서사의 대중화 양상과 시대의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설인귀는 여 당 전쟁 당시 활약했던 당나라 장수이다. 적국의 장수였던 설인귀에 대한 서사가 조선시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임병양란 이후 강성한 국력을 지녔던 고구려사를 재인식하고 고토회복 담론의 부각으로 인해 가능했다. 또한 설인귀 서사와 유사하게 전개되는 <소대성전>이 인기를 확보하고 있었고 설인귀와 함께 여 당 전쟁에서 활약했던 당태종과 울지경덕에 대한 고사가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설인귀의 요동 정벌 서사와 영웅성이 점진적으로 부각되고 <설인귀전>에 등장한 당태종 울지경덕 합소문에 대한 독립 서사가 형성되며 여성 영웅들이 서번을 정벌하는 서사로 확장된 설인귀의 후속 서사가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설인귀 서사의 대중화 양상에는 민중과 여성의 등용과 이민족 세력 통합의 필요성과 국력이 약화된 조선의 현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국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시대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러시아 이코노스타시스(iconostasis)와 한국 감로탱화(甘露幀畵)의 특수성과 서사구조 (A Specificity and Narrative Structure of the Russian Iconostasis and Korean Amrtakundalin(amrita painting, 甘露幀畵))

  • 이규영
    • 비교문화연구
    • /
    • 제42권
    • /
    • pp.419-449
    • /
    • 2016
  • 이 글에서는 러시아정교회의 이코노스타시스와 한국 감로탱화의 특수성과 서사구조를 비교 고찰하였다. 1장에서는 일반 종교회화와 다른 이콘과 탱화의 도상-지표적 특성을 바탕으로 두 종교예술의 공통점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러시아 종교문화의 이원론적 구조에서의 일원론적 성격, 한국 불교의 밀교적 성격을 토대로 러시아 이콘과 한국 탱화의 현세 이익, 신비적 속성을 보았다. 3장에서는 1-5단의 이코노스타시스와 상,중,하 3단의 감로탱화의 서사구조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코노스타시스와 감로탱화에 담긴 시공간성과 내세에 대한 세계관을 탐구하였다. 과거, 현재, 미래와 천상, 현세, 지옥이 공존하는 감로탱화의 하단의 특징과 러시아정교회 성당 안에서 이코노스타시스와 마주보고 있는 최후의 심판 벽화를 비교하였다.

아프리카 가나의 상징철학 '아딘크라(Adinkra)' - 아딘크라 심벌을 통한 사유체계의 확장성 탐구 (The Adinkra, Ghanaian Philosophy Symbols - The Expansion of the Speculation System in Adinkra Symbols)

  • 조지숙
    • 비교문화연구
    • /
    • 제44권
    • /
    • pp.343-372
    • /
    • 2016
  • 본 연구는 가나의 심벌 '아딘크라(Adinkra)'를 소개하고,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사유의 확장, 다시 말해서 세계관, 가치관, 일상적 삶에서 형성되는 철학 등에서 나타나는 사유의 확장성을 보고자 함에 있다. '아딘크라(Adinkra)'는 일종의 심벌로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칸족 아산티 왕국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딘크라'는 기야만의 왕이었던 나나 코피 아딘크라(Nana kofi Adinkra)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 의미는 '딘크라'는 '이별하다', '작별하다' 혹은 '이별을 고하다'로, 이러한 의미 때문인지 아딘크라 모티브가 새겨진 천으로 만든 의상들은 장례식복장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딘크라 심벌들은 장례식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모티브와 의미로 인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 여러 다른 대륙의 국가들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일찍이 아딘크라의 창조적인 독특함과 그 진화과정 그리고 확장의 가능성을 간파한 아딘크라 사전의 편찬자인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아딘크라 스토리는 진화중이고 전개 중이다. 나는 여러분의 안내자로 나와 함께 여러분이 이 여행을 즐기기를 바라고 그 전개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윌리스의 바람대로 아딘크라 심벌은 그의 저서 이후 또 다시 다른 저서가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그 활용에 있어서는 쉼 없는 전개와 진화 그리고 확장을 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아딘크라 심벌의 의미와 그 내용의 발견, 그리고 분석에 있어서는 여전히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고전고고학(古典考古學) 재론(再論) (A review of Classical Archaeology)

  • 이민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1권4호
    • /
    • pp.170-191
    • /
    • 2018
  • 그간 국내 고고학계에서는 서양에서 발달했던 고전고고학을 소개하는 차원에만 머물렀을 뿐 개념 정립과 학문적 성과는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서양에 비해 고고학이 늦게 태동한 한국고고학은 초기부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라는 고전을 통하여 고대사 및 관련 유물과 유적에 대한 분석을 해왔으며, 현재에도 조선시대의 고전, 그리고 "삼국지", "후한서" 등 중국의 고전과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의 고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고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고대 정치체의 형성, 국가의 교체와 국가간의 교섭과 교류 등에 대해 각론이 많으며, 풀리지 않는 쟁점이 즐비하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전고고학을 환기시킬 필요성을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고전의 개념은 광의의 의미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모든 기록물'을 말하며, 협의의 의미는 '전통적으로 옛 책의 분류법을 따른 과거의 기록물'을 말한다. 고전에 담겨진 내용을 분석하여 고고자료를 해석하고 과거문화를 연구하는 분야가 고전고고학이다. 본고에서는 고전의 범주를 넓게 설정하고, 그 중 "공자가어"를 통해 고전고고학에서 고전이 의미있게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고전고고학에서 고전을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기관 및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고전 DB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기법을 적용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주역참동계주해(周易參同契註解)』에 인용된 도교서와 그 유통 정황 (A Study on Taoist Books Quoted in Juyeokchamdonggyejuhae and the Circumstances of Their Circulation)

  • 최재호
    • 한국철학논집
    • /
    • 제50호
    • /
    • pp.235-268
    • /
    • 2016
  • 권극중은 조선시대에 "참동계"를 주석한 "주역참동계주해"를 통해 자신의 내단사상을 체계적으로 확립했다. 그런데 "주해" 내에 인용된 도교서들과 인물들을 볼 때, 그 내단사상의 체계에는 중국 도교사상의 영향이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권극중 내단사상의 특징과 의의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교사상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비교 연구의 첫걸음으로 "주해"의 인용문을 통해 저술할 당시의 참고 도교문헌을 유추해 보고, 이를 통해 조선시대 유통된 도교서의 정황을 재확인하였다. "주해"에 드러난 인용문을 보자면, 도교서명으로 시작하는 경우, 도교 인물명으로 시작하는 경우, 그 외 '옛 시결왈' 등으로 시작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도장"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 결과 권극중이 저술할 당시 참고한 도교서의 목록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참고 도교서들의 판본은 당시 조선에 유통되던 "참동계"주석서와 도교총서류 내의 도교서인 것으로 판단되며, 목록들을 비교해 본 결과 권극중은 "도서전집" 내의 도교서를 많이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인용문을 통해 드러난 도교서를 통해 볼 때, 권극중은 진치허와 남종의 내단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은상(殷商)시기 갑골문(甲骨文)에 나타난 커뮤니케이션 속성(屬性) (A Study of Communication Factor in the Chinese augury bone)

  • 이범수
    • 동양고전연구
    • /
    • 제43호
    • /
    • pp.305-328
    • /
    • 2011
  • 갑골문이 커뮤니케이션 속성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텍스트인 이유는 갑골문니 커뮤니케이션 개념 및 구성 요소 모두를 갖추고 있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으로서 커뮤니케이션 연구 대상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기 때문이다. 송신자는 갑골에 새길 내용을 정한 사람이고, 메시지는 새겨진 문자이며, 매체는 거북이나 짐승의 뼈이고, 수용자는 갑골문을 읽은 사람이며, 효과는 독해를 통한 인지(認知) 및 그에 따른 행동이고, 커뮤니케이션 상황은 이러한 일련의 시공간적 환경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그 근거이다. 중국 은상(殷商)시기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갑골문이 문자성 및 전래성을 갖는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역사 텍스트로서 손색이 없음을 뒷받침한다. 갑골문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문양 부호 문자로서의 속성을 갖추고 있고, 왕실 기록과 같은 내용 면에서 당시 사회 현상 전반이라는 메시지나 콘텐츠를 담고 있으며, 갑골 관리자였던 정인(貞人)이나 구인(龜人)의 역할은 오늘날 언론인의 역할과 유사하고, 문서처럼 정리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관리 보관되었다는 점 등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사회의 의식과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갑골문은 커뮤니케이션 사상사 연구의 텍스트가 된다. 갑골문 서체 및 그 힘의 강약 변화가 종교적 가치관의 강약에 따라 달라졌다든가, 갑골문 기록인 왕명에서 정치 이데올로기를 분석해 낼 수 있다든지, 갑골문에 새겨진 10간 12지가 음양오행설과 결부되어 중국 철학 원리의 구성 요인이 된 것 등이 그 근거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갑골문에 대한 연구 시각 넓히기를 위해 던지는 화두에 그치는 초보적 시론인 만큼, 분석의 심층성 및 방법론의 정치성 등에서 부족한 부분은 갑골문에 대한 학제간 연구, 인구의 양적 확산 및 질적 발전으로 인하여 보다 생산적으로 극복 가능하리라고 믿기 때문에 이후의 연구 과제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