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Nangn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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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지역 토제칠기의 자연과학적 분석 -평양 남정리 53호분 출토 토제칠기- (Scientific Analysis for the Lacquered Pottery wares Uncovered from Nangnang Region - Tomb No. 53 at Namjeong-ri in Pyongyang -)

  • 황현성;윤은영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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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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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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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일제 강점기 조사 미등록 유물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한 낙랑 고분인 평양 남정리 53호분에서 출토된 토제칠이배와 칠반에 대한 과학적 조사내용이다. 남정리에서 출토된 유물은 소지가 목심이 아닌 토제라는 것과 토제칠이배와 토제칠반, 토제칠안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는 것이 크게 주목할 만하다. 그중 이번 분석에서 토제칠이배와 토제칠반은 적색 안료 또는 흑색 안료를 칠과 함께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적색 안료는 진사(HgS)로 확인되었고 흑색 안료는 탄소계통의 안료로 추정되었다.

낙랑칠기(樂浪漆器)의 칠기법(漆技法) 조사(調査)(I) (A Study on the Manufacturing of Lacquer Ware Objects of Nangnang(I))

  • 김경수;유혜선;이용희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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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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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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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보존처리한 낙랑칠기 7점의 칠기법을 조사하였다. 현미경과 SEM-EDS 등을 사용하여 조사한 결과 칠막은 하지층과 상부 칠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층은 골분(骨粉)과 광물질(鑛物質)등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 제작하였으며 골분(骨粉)의 여러 형태도 관찰되었다. 안료로 황화수은(HgS), 산화납(PbO), 황화은(AgS)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사대상의 수가 작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작시 일정한 공정과 재료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무이묘 출토 명문전(銘文塼)의 고고학적 검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An Archaeological Review of the Inscribed Bricks Excavated from the Tomb of Jang Mui: A Focus o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나경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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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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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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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황해도 봉산군에 위치한 장무이묘에서는 피장자의 이름과 직책, 축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명문전이 출토되어 조사 초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돌에 찍힌 '대방태수장무이(帶方太守張撫夷)'와 '무(戊)', '신(申)'과 같은 명문은 한강 지역에서 황해도 봉산군 일대로 대방군 치지가 옮겨 왔다는 이동설의 근거가 되었으며, 장무이묘는 지탑리 토성과 함께 조사 초기부터 대방군의 유적으로 소개되었다. 장무이묘 출토 명문전은 여러 지면을 통해 사진 및 탁본 자료가 공개되어 명문의 해석을 중심으로 축조 연대, 피장자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져 왔으나, 도쿄대학교 공학부 건축학과 소장품을 제외하고 실물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아 명문전의 종류나 명문 내용에 대한 일관된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외에 장무이묘의 구조와 축조 재료 등을 재검토한 선행 연구 이후 장무이묘의 축조 시기를 대방군 멸망 이후인 348년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루게 되었지만, 출토 유물의 전부를 차지하는 전돌에 대한 충분한 검토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장무이묘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실묘 출토 전돌은 명문전과 문양전만 수습되었으며, 이 중에서도 측면에 찍힌 명문과 문양만 자료화되어 전돌 자체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장무이묘 출토 전돌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1종 61점을 중심으로 명문 내용을 재정리하고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성형과 건조, 소성에 이르는 제작기법을 검토하여 건축 부재로서의 장무이묘 전돌을 살펴보았다. 이 결과를 2~4세기에 걸친 낙랑군·대방군, 그리고 낙랑군·대방군 축출 이후 전실묘 전돌과 비교하는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장무이묘 전돌에 대한 관찰 결과, 기본적인 제작기술은 낙랑 전돌 제작기술을 계승하고 있으나 크기나 석회 사용, 명문전의 수량 등에서는 4세기 중반 경 축조된 전실묘 혹은 전석혼축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요소가 확인되어 장무이묘 축조시기를 348년으로 본 기존의 견해가 타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무이묘는 전실묘라는 기존의 묘제를 고수하고 있지만 천장은 석재를 사용하여 마무리하였고, 낙랑·대방군의 제작 기법을 이은 전돌을 사용하였지만 그 위를 석회로 덮어버리는 등 기존 낙랑·대방군의 전실묘 전통과 새로운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대방군 축출과 고구려의 진출이라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무덤의 구조나 재료, 무덤의 축조 위치와 같은 고고학적 자료로 보면 고구려와의 관련성이 높다. 그러나 명문전의 형태나 명문의 내용 등은 오히려 3~4세기대 강소성과 절강성 지역의 전실묘와 유사한 점이 많다. 향후 석회의 사용이 고구려의 영향인지 아니면 대방군 지역의 전통이 이어진 것인지에 대한 검토, 그리고 동시기 석개천장묘와의 비교 검토 등과 같은 추가 연구가 이어진다면 보다 선명하게 '장무이(張撫夷)'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칠화(漆畵)의 전통 형성과 특징 연구 (A Study of Tradition Formation and Characteristic of Korean Ottchil Painting)

  • 임승택
    • 한국가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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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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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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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is study analyzes traditional form and figurative characteristics of Ottchil Painting based on objective relics about long lasted Ottchil Painting and related literature as our country's national culture. Study range is among Lolang (Nangnang), Three Kingdom Dynastys (Koguryo, Baekje and Shilla), Unified Shilla Dynasty, Koryo Dynasty, Joseon Dynasty, Modern times and Contemporary. The method of study is after theoretical consideration of Ottchil Painting through related literature, adduced figurative characteristics of related Ottchil Painting by time period with case-study methods such as excavated relics and historical basis. Ottchil Painting consists of color, which is derived from Ottchil mixed with a mineral pigment of powder and various patterns and drawings using different techniques. The methods of Ottchil Painting are Myohoi, Yanggam, Gakhoik, Younma, Balsoa and Toiso. The techniques of Ottchil Painting of our country is established by splendid and unique for about 1,600 years revolved around Myochilchaehoi technique and Myoyuchaehoi technique started at Unified Shill a Daynasty and through Koryo, Joseon Dynasty, Modern times and Contemporary. Also, such this Ottchil Painting form of red in the inside and black in the outside, which is wood based, the rest is bamboo sheath and framework from Geonchil based and the figurative characteristics presented the traditional Patterns of Lotus, Phoenix, arabesque, bird, animal, cloud, marble and letter with red Ottchil, yellow Ottchil, or five colors Ottchil.

단야구 소유자에 대한 연구 (A Study on Owners of Smith's Tools)

  • 차순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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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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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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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smith's tool is a tool used for the forging that directly heat-treats and treats ironware. Smith's tools have been thus far excavated from 58 archaeologic sites in Korea, which include 46 hammers, 40 nippers, 5 tweezers, 17 chisels, and 12 anvils, totaling to 120 items. The historic sites from which smith's tools have been excavated indicate 2 sites in Nangnang, 6 in Goguryo, 30 in Silla, 3 in Baekjae, 15 in Gaya, and other 2 sites. Those smith's tools excavated from tumuli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Korea are known to be those from the Silla and Gaya areas, and some have been found in the Goguryo and Baekjae areas but require more accumulation of artifacts. Furthermore, the result of having investigated those smith's tools burnt with the corpse in tumulus revealed that smith's tool owners are classified into the blacksmiths who were directly engaged in manufacture and the ruling class who controlled them. Moreover, the smith's tools excavated from large-sized tumulus are presumed to have the potential that symbolically exhibits smithy-iron working, as compared with other funerary objects. Key words: smith's tool, blacksmith, manager.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청동유물의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베이스 구축(II) (Lead Isotope Ratio Data Base for Bronze Object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I))

  • 강형태;안주영;전효수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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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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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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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는 금속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얻은 청동 녹의 과학적 연구로서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로부터 청동기 원료의 산지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청동 녹의 납동위원소비 분석을 위한 분석 장비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열이온화질량분석(Thermal ionization mass spectromer ; TIMS)를 활용하였다. 본 연구의 일환으로 2차 년도인 2008년에는 백제시대의 금동환형좌금 2점, 낙랑시대의 동전두 2점, 통일신라시대의 청동제화형접시 10점, 원풍통보(元豊通寶)(1078년-북송)의 청동기 4점(1점은 시대미상)등 총 18점의 납동위원소비를 분석하였다.

김해 대성동 88호분 출토 칠도막 분석 (Analysis of Lacquer Coating Found from Daesungdong No.88 Tomb of Gimhae)

  • 임지영;오카다 후미오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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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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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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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김해 대성동 88호분에서 출토된 칠기편을 분석하고 조사한 내용이다. 잔편으로 수습된 칠기편을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고, SEM-EDS와 FT-IR 분석을 통하여 제작기법과 칠기의 구조를 파악하였다. 조사결과 목제바탕에 직물을 바르고 바탕칠을 한 목심저피칠기(木心苧被漆器)로 나타났다. SEM-EDS 분석 결과 바탕칠에는 골분이 혼합된 것이 확인되었다. 칠기 제작에 골분을 사용하는 기법은 중국 한대 칠기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낙랑칠기와 삼국, 통일신라시대 칠기에서도 확인된다. 칠기제작에 사용된 목재의 수종은 서안 동한묘(西安 東漢墓)에서 출토된 칼집의 수종 특징과 상통하며, 칠기 내면에 견직물이 부착된 특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88호분 출토 칠기편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확인된 골분 혼합 칠기 중 가장 선행하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당시 금관가야의 대외교류 관계를 알려주는 자료로도 주목된다.

서북한 지역 전축분(塼築墳) 연대의 하한 재검토 -기년명전(紀年銘塼)을 중심으로 (Re-examination of the Latest Dates of the Brick Chamber Tombs in the Western Region of North Korea: A Focus on Dated Inscribed Bricks)

  • 장병진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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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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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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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서북한에서 출토된 명문전에서 낙랑·대방군이 완전히 축출된 314년 이후의 연호, 심지어는 5세기 초의 연호가 확인되었다. 2군 소멸 이후에 전축분 조영의 전통이 1세기 동안 이어진 셈인데, 전축분은 고구려 지배층의 묘제로 채택된 바가 없다. 348년 조영된 장무이묘나 353년에 제작된 동리묘는 전형적인 전축분 양식에서 벗어나 석실분의 요소가 가미된 사실이 지적되었고, 장무이나 동리와 비슷한 성격의 존재인 동수의 무덤(안악 3호분)은 357년 석실봉토분으로 조영되었다. 그럼에도 반세기 동안 전축분 조영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다소 의문이었다. 기년명전이 중요한 근거가 되었지만, 선행 연구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했던 문제가 있었다. 357년 이후로 파악했던 일부 기년명전의 경우에는 연호 해석에 오류가 있었음이 지적되기도 했다. 전진 시기인 386년으로 파악했던 '대안(태안) 2년' 명문전은 서진 혜제 시기인 303년으로, 후연 시기인 407년으로 파악한 '건시 원년' 명문전도 301년 서진 혜제를 몰아내고 사마윤이 잠시 제위를 차지했던 시기에 사용한 연호라는 견해였다. 이들 사례를 제외하면 357년 이후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기년명전은 '원흥 3년' 명문전만 남는다. 그런데 명문전을 재검토한 결과 '원흥'은 '영흥'의 오독임을 확인했다. 영흥 3년은 서진대인 306년이나 후조대인 352년에 해당하는데, 306년의 가능성이 크다. 4세기 말, 5세기 초까지 전축분이 조영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결국 장무이나 동리의 무덤은 서북한 지역에서 조영된 가장 늦은 시기의 전축분으로 볼 수 있으며, 안악 3호분이 조영될 무렵을 기점으로 서북한 지역에서는 더 이상 전축분의 조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당대의 역사적 상황에도 부합한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금속유물의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베이스 구축(I) (Lead Isotope Ratio Data Base for Metal Object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

  • 강형태;안주영;허일권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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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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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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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는 금속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얻은 청동 녹의 과학적 연구로서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로부터 청동기 원료의 산지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청동 녹의 납동위원소비 분석을 위한 분석 장비는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열이온화질량분석기(Thermal ionization mass spectromete ; TIMS)를 활용하였다. 본 연구의 일환으로 2007년에는 낙랑시대의 청동기 11 점, 통일신라시대의 청동화형접시 등 6점, 고려시대 동종에서 4점의 청동 녹을 입수하였고 납동위원소비를 분석하였다. 기 분석한 한국, 중국 및 일본의 방연석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를 기초로 산지를 추정하였다. 앞으로 보존과학팀에서는 금속 유물의 보존처리를 수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청동 녹을 최대한 수집하고 분석하여 이들 자료를 모아 유물의 종류별, 시기별, 지역별 산지연구를 위한 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장무이묘 출토 명문전의 내용과 작성 의도 (The Content and Underlying Intentions of the Inscribed Bricks Excavated from the Tomb of Jang Mui)

  • 안정준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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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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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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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4세기 중반 황해도 봉산군에서 발견된 장무이묘에서는 많은 수의 명문전들이 발견되었다. 2023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러 차례 실견회를 가진 결과, 명문전은 총 10개의 유형으로 파악되었다. 본고에서는 장무이묘의 명문전에 기록된 내용과 그 작성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전체 문구들을 자세히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명문전들의 각 문구가 갖는 상관관계와 전체 문장의 기재 순서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명문전들은 내용상 무덤의 조영에 대한 정보를 외부 관람자에게 보이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조주부(趙主簿)로 칭해진 화자가 장무이묘의 조영에 관여하였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서진·동진대에 묘주의 가족이 아닌, 정치·사회적 인연으로 고분 조영에 참여한 인물들이 제작한 명문전들과도 비교된다. 4세기 중반 당시 낙랑·대방군 고지 내에는 고구려의 허용 속에서 중국인 사회의 전통에 따른 장의(葬儀) 문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고분 내에 표현된 벽화·묵서, 명문전 등 외부에 공개된 다양한 전시물들은 묘주 일가가 이주민 집단과의 정서·지향을 공유하는 가운데, 서로 간의 결속을 강화하려는 목적과 관련 있다. 장무이묘에서 발견된 명문전들의 내용 역시 바로 그러한 맥락 속에서 기재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