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ounting of a folding sc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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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수백수백복자도 병풍(百壽百福 字圖屛風)의 보존 - 미국 포틀랜드박물관 소장 《자수백수백복자》10폭 병풍을 중심으로 - (Conservation Treatment of a Modern-period Folding Screen with Embroidered Character Design)

  • 박미선;천주현;장연희;박지원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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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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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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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2016년 한국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수행한 미국 포틀랜드박물관 소장 자수백수백복자도병풍의 보존과 조사 결과이다. 자수백수백복자도병풍은 10폭으로 이전에 표구되어 원래의 장황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존처리 과정에서 이전 병풍 장황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면 상·하단에 청색으로 상·하 회장을 두르고 각 폭에 사용한 보라색 띠를 사용하는 등 조선시대 병풍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배색을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원형의 장황이 많이 남지 않은 백수백복자도병풍의 장황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다. 다만 본 연구는 한 병풍에 관한 연구이므로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병풍의 장황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문효세자 보양청계병의 보존과 채색 분석 (Conservation and Analysis of Pigments and Techniques for Crown Prince Munhyo Boyangcheong Folding Screen Painting)

  • 안지윤;천주현;김효지;지주연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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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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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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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은 정조의 첫 번째 아들 문효세자(1782-1786)가 1784년 1월, 보양청에서 주관하여 첫 스승으로 모시게 될 보양관과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의식을 기록한 조선시대 궁중행사도이다. 전체 8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에 수리된 적 없이 18세기 조선 궁중행사도병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원본 장황의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병풍의 형태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보존처리를 하였다. 안료분석 결과 채색 안료로 연백, 연단, 진사, 석청, 석록, 황단, 먹 등을 사용하였고, 현미경 확대 관찰한 결과 거의 대부분이 화면의 뒷면에서 배채법으로 채색한 후, 앞면에서 세부묘사 및 부분적으로 엷은 안료를 이용하여 채색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궁중 의례용 일월오봉도 병풍의 장황에 관한 고찰 - 초록색 회장 비단과 금박 장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Methods of Mounting the Five Peaks Screen - With the focus on green bordering silk and gilt ornamentation)

  • 박윤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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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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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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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조선 왕실에서는 영원불멸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일월오봉도로 병풍을 만들어 왕의 공간마다 설치하였다. 일월오봉도는 궁궐의 가장 대표적인 의장물로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형태로 제작했던 병풍의 실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다. 이것은 현재 전하는 유물이 기록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의궤를 중심으로, 왕실 의례에 사용했던 일월오봉도 병풍의 다양한 생김새와 장황 재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월오봉도 병풍의 원형과 변형 과정까지 함께 고찰하였다. 의례용으로 제작한 왕실의 병풍들은 예식과 법도에 따라 엄격하게 제작되었고, 각각이 갖는 위상에 따라 장황에 사용하는 재료 또한 차등을 두었다. 궁궐의 정전(正殿)과 빈전(殯殿), 혼전(魂殿), 진전(眞殿)에 설치했던 오봉병과 궁중연향을 위해 제작했던 오봉병은 생김새와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병풍을 꾸미는 비단 회장(回粧)은 일치하였다. 대체로 초록색 비단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그 위에 꽃문양의 금박을 장식하였다. 쪽풀로 염색한 초록색 비단은 원료를 수입해야 하는 값비싼 붉은 색 비단을 대신하였으며, 영조22년 '문단(紋緞) 금지 조치' 이후에는 무늬없는 초록색 평직 비단을 사용했다. 그나마 비단에 올린 금박 첩금으로 인해 사대부가의 병풍과 차별되는 궁중 의례용 병풍의 장식미를 더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방치되었던 조선왕실의 병풍들은 1960년대부터 유물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보존처리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장황이 개장(改粧)되었고, 원형의 모습을 많이 잃게 되었다. 이것은 전통의 장황 문화가 단절된 것이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과거에는 고증의 부족으로 문화재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각 분야에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증을 철저히 하고, 문화재의 수리 이력에 대한 정보까지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영희전 감실 및 이안소의 공간 구성과 오봉산병풍의 특징 (Interior Settings of a Chamber and a Temporary Place of Enshrinement at Yeonghuijeon and Features of the Five Peak Screens for the Hall)

  • 손명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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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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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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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설립된 영희전 감실 및 이안소의 공간 구성과 이곳에 사용된 오봉산병풍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18세기 중엽 태조진전이 영희전의 예를 따라 오봉산병풍을 배설한 내용과 18세기 이전 태조진전의 감실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영희전 감실 구성의 연원도 살펴보았다. 영희전 감실은 태조진전 및 선원전과 달리, 당가 없이 온돌바닥 위로 난간이 달린 평상 형태를 한 대형의 용상을 놓았다. 이 용상 위로 4첩 오봉산병풍을 가운데 2첩은 뒤로 펴고 좌우 각 1첩은 나누어 펴 '⊓' 형태로 배설하였다. 난간을 단 평상 위로 첩병풍을 펼치는 배설 방식은 영희전 감실 조성 당시 태조진전이 아닌, 빈전 영침의 구성을 참조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어진의 이안 시에는 용상보다 규모와 장식을 간략하게 한 난간평상을 사용했다. 이안소에는 감실과 같이 4첩 오봉산병풍을 '⊓' 형태로 설치했으나 평상 위에 올리지 않고 뒤편에서 난간평상을 감싼 형태로 펼친 후 어진을 봉안한 흑장궤를 그 위에 올렸다. 이 같은 배설 방식이 반영된 감실과 이안 소용 오봉산병풍은 모두 대형의 4첩 왜장 병풍으로 가운데 두 폭이 넓고 좌우로 접어 펴는 1·4폭이 좁은 형태였다. 장황은 별도의 하회장 없이 병풍 가장자리를 따라 회장을 둘렀다. 감실과 이안 소용 오봉산병풍은 장황과 배접 등의 재료에 일부 차이를 두어 배설 장소의 위상을 반영하였다. 문헌 기록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근현대기를 거치며 본래의 이력과 기능을 잃은 채 전하는 병풍 중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와 <인정전오봉산병풍>이 영희전 병풍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두 병풍은 배설 방식을 고려해 세 개의 봉우리와 해·달 등을 가운데 2·3폭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두 봉우리와 적송을 1·4폭에 그렸다. 한편, <인정전 오봉산병풍>은 병풍틀의 배접지로 1840년 답안 일부를 포함한 감시낙폭지를 사용해, 1858년 영희전 증건 시 향후 순조어진의 이안을 대비해 만든 이안청 병풍으로 추정되었다.

경복궁 구(舊) 선원전 모란도2폭장지(牡丹圖二幅障子)의 보존 (Conservation on Jang-ji(障子) of two-peony paintings in the old Seonwonjeon of Gyeongbokgung Palace)

  • 박경임;천주현;김재휘;신용비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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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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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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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란도2폭장지(牡丹圖二幅障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보존처리를 진행한 결과이다. 모란도2폭장지는 병풍과 유사하나 크기와 형태, 용도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림을 벽에 붙이기 위해 두꺼운 장지(壯紙)가 사용되었고, 장지의 후면에는 격자틀의 흔적과 건물 구조물에 주로 사용되었던 석간주(石間硃)가 남아있었다. 건물의 벽면이나 문을 장식하는 장지(障子)의 형태로 지금은 훼철되어 사라진 1867년 경복궁 선원전 내부를 장식하던 모란도임이 밝혀졌다. 또한 현존하는 창덕궁 선원전 모란도 장지의 장황과 다른 색상으로 마무리하여 19세기 조선시대 장황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안료 분석과 문헌 조사를 바탕으로 궁중 모란도에 사용된 채색 안료에 대해 재접근하고자 하였고,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향후 조선시대 궁중회화의 참고자료로써 장지(障子)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궁중 장식화의 채색 분석과 장황 고찰 (A study in pigment analysis and original mounting of the decorative painting at court)

  • 안지윤;김수연;천주현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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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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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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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궁중장식화는 궁궐의 안팎을 장식했던 것으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는 왕의 권위와 수복을 기원하여 제작된 대표적인 궁중장식화 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일월오악도와 해반도도 중 19세기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명확한 제작시기와 배설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공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는 보존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그 제작시기와 배설위치 그리고 제작기법 등을 확인하게 된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원과정에서 확인한 2곡병 형태의 양면 장황과 장자문의 귀갑창은 지금까지 궁중장식화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첫 연구 사례이다. 또 원형 장황 복원에 의한 실측과 현존하는 궁궐 건축물의 대조 그리고 의궤 자료의 조사 등으로 창경궁영건도감의궤(1834년)에 기록된 함인정에 배설되었던 것임을 밝혀냄으로 19세기 초반의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