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orean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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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기록 관리 방안 연구 (A Study on the Management of Manhwa Contents Records and Archives)

  • 김선미;김익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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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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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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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만화는 대중매체이며 대중예술의 한 분야이다. 만화기록은 1차 문화인프라이기 때문에 팬시, 캐릭터, 게임, 영화, 드라마, 테마파크, 광고 사업 등으로 연결되어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해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능동적이고 체계적인 수집 절차의 부재로 해마다 소중한 만화 원고가 소실되고, 전자기록형태의 만화기록 등 보존이 힘든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어 만화기록관리에 대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만화기록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고, 만화기록의 특징 및 구성요소를 분석하였다. 이와 함께 해외의 여러 만화아카이브 사례를 분석하여 만화기록의 특징을 반영한 기록관리 프로세스의 기능을 추출하였다. 이후 이들을 검토하여 기록관리체계의 틀에서 수집 관리 서비스 영역을 각각 나누어 만화기록을 관리하는 일반적인 만화기록 아카이빙 전략을 구성하여 제시해보았다. 수집을 한 만화기록은 다중분류와 계층적 기술요소를 반영하여 기록 사이의 연계를 보장하고 기록의 보존을 담보하며 다채로운 접근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지적 정리가 끝난 만화기록은 보존설비가 갖추어진 환경에서 보존처리를 하여 보존되기도 하고, 전자기록이나 훼손의 위험이 있는 기록의 경우 디지털 포맷을 사용하여 보존하기도 한다. 만화기록은 활용이 목적이기 때문에 전시 배포 기록정보콘텐츠개발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화기록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기록관리의 관점에서 연구된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만화기록의 수집 전략이나 관리, 서비스 전략을 소개하고 간단한 예시를 보여주는 것에 그친 것이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학적 접근을 통한 만화 기록관리 전략을 만화 매뉴스크립트 보존소에 실용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면 만화기록의 체계적 보존, 수집, 정리가 가능하여 훗날 한국의 문화 콘텐츠 관리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의 업종, 영업형태, 조직문화가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삼원분산분석(3-way ANOVA)을 중심으로 (An Empirical Study on Classification, Business Type, Organizational Culture on Performance of Korean IT SMEs·Venture)

  • 노두환;황경호
    • 벤처창업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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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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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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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 수의 99.8%, 종사자 비중의 87.8%, 전체 생산액의 48.4%를 차지하는 등 국가경제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고용창출, 기술혁신, 산업의 다양성, 지역균형개발 등 여러 측면에서 국민경제 발전에 있어서 실질적인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기술혁신을 통해서 기술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더 필요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자금부담 능력은 물론 R&D인력, 연구장비 등 R&D 역량이 대체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서 정부 출연(연)을 통해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즉, 정부출연연구소는 산업 전반의 혁신활동을 증진시키고, 기업의 기술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R&D를 통해 창출된 지식과 기술을 꾸준히 시장에 제공하고 있으며, 중소 중견기업이 견실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인력지원, 장비지원/연구시설 등을 통해 기업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 영향력이 커서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국가적인 주요 정책목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전략, 조직문화 등과 같은 추상화된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중소 벤처기업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환경과 전략, 조직구조의 일치성(fit)을 추구할 때, 중소 벤처기업의 업종별, 영업형태별로 어떠한 조직문화가 기업성과(영업이익)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665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증분석을 하였다. 삼원분산분석(3-way ANOVA)을 통해 기업성과(영업이익)에 대한 중소 벤처기업의 업종, 영업형태, 조직문화의 주효과 및 상호작용효과를 검증한 결과, 중소 벤처기업의 업종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주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영업형태와 조직문화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소 벤처기업의 세 가지 독립변수 간의 상호작용효과를 분석한 결과, 업종, 영업형태, 조직문화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호작용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ICT 서비스의 경우, B2B 기업은 관계지향적 문화, B2C 기업은 위계지향적 문화, ICT 기기의 경우는 B2B와 B2C 기업 모두 과업지향적 문화에서 기업성과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SW 기타의 경우, B2B와 B2C 기업 모두 위계지향적 문화에서 기업성과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기업의 업종과 영업형태별로 적합한 조직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향후 중소 벤처기업의 육성 및 기업성과와 관련된 촉진정책을 수립할 때 의미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투표행태 분석: 제18대, 제19대 국회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Voting Behavior of National Assembly Members: Focused on the FTA Ratification of the 18th and 19th National Assembly)

  • 강신재;가상준
    • 의정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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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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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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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제18대 국회와 제19대 국회에서 제출된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표결에서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무엇보다 의원들은 표결 결정에 있어 지역구, 소속 정당의 당론, 정치적 이념 중 무엇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았다. 과거 의원들의 행태에 대해 분석한 연구들은 소속 정당과 의원들의 이념이 의원 표결 결정에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FTA 비준동의안 표결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지 분석해 보았다. 분석결과 가장 놀라운 발견은 의원들의 지역구 변수가 다른 무엇보다 항상 중요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국 정당의 강한 규율 때문에 정당 영향력이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해보았지만 지역구 변수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통해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표결에서는 지역구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의원들의 선호도를 볼 수 있는 이념 변수의 경우 사안별로, 모형별로 다르지만 투표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들의 투표행태 분석에서 이념 변수의 측정과 표결에 미치는 영향력을 심층적이고 다각도로 분석해야만 하는 이유라고 하겠다. 여야 변수의 경우 몇몇 모형에서 통계적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모든 사례에서 여-야 균열의 영향력은 꾸준하게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위의 연구는 다른 연구와 달리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위의 결과가 의원들의 다른 표결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5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의원들의 일반적 특징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본 연구는 제16대 국회부터 꾸준히 국회에 제출된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에 있어 의원들 표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원들의 이념측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의원들의 이념을 다각적 차원에서 조명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범진과 사마광의 악(樂)·율(律) 논쟁 (A Debate of Fan-Jin(范鎭) and Sima-Guang(司馬光) about Le(樂) and Lu(律))

  • 주용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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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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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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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제왕의 정치에서 악(樂)은 중요하다. 북송 시대에도 악은 중요했다. 북송의 태조부터 악에 대한 제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5대 10국이란 혼란기를 겪은 탓인지 몰라도 북송시대에 악에 대한 개정 작업이 6번 이루어진다. 그 당시 인종시기부터 철종시기까지 악에 대한 연구를 했던 인물이 바로 범진이다. 그는 인종 때부터 악에 대한 상서를 올리고, 철종 때는 자신이 만든 악기 및 음악을 올리기까지 한다. 한편 범진과 더불어 악 율에 대해 논쟁했던 인물이 사마광이다. 둘 사이의 논쟁은 30여 년이 지속된다. 논쟁은 끝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범진은 도량형의 기준을 율(律)로 두며, 율의 기준을 황종(黃鍾)으로 본다. 반면에 사마광은 율의 기준을 도량형으로 본다. 범진은 당시에 통용되던 누서법(累黍法)과는 다른 적서법(積黍法)을 주장한다. 사마광은 당시에 통용되던 누서법을 주장하나 그것이 선왕(先王)의 법도는 아니라고 본다. 범진의 적서법은 기존의 도량형 기준을 정하는 방법과 다르다. 하지만, 그의 방법을 통해 얻은 도량형은 당시에 통용되던 제도들과 합치한다. 범진은 자신의 방법이야말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서 선왕의 악을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범진은 또한 당시 남아 있던 문물들이 선왕시대의 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적서법을 통해 황종을 구하고, 황종을 통해 율을 구하고, 율을 통해서 악을 만들면, 선왕의 법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에 사마광은 선왕의 도량형은 모두 없어졌다고 여기며, 선왕의 악 또한 없어졌다고 여긴다. 선왕의 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중화(中和)를 얻는 것 밖에 없다. 그가 보기에 범진의 방법은 이미 틀린 것이다. 사마광은 틀린 방법으로 악을 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범진의 방법으로는 그 당시의 악도 이룰 수 없는데, 선왕의 악은 더욱 찾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범진은 중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자이며,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 사마광은 중화를 모든 사람 및 만물이 해야 하며 또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논쟁의 핵심은 율과 중화다. 범진은 율을 악의 근본으로 보지만 사마광은 중화를 악의 근본으로 본다. 율은 유형의 법칙이고, 중화는 무형의 법칙이다. 둘 사이의 논쟁은 비록 일치점을 보지 못한 채 끝났지만, 유형과 무형의 법칙만들기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당시 학자들의 견해차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논쟁을 통해서 북송 시대에 사마광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 논의의 시작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춘추정신(春秋精神)과 도학사상(道學思想) (The thought and spirit of Sunbi of Kwon Sang-Ha(1641-1721))

  • 김문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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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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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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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수암 권상하(1641-1721)는 우암 송시열(1607-1689) 이후 조선 후기의 학계와 정치계를 대표하는 山林이다. 그는 송시열 이후 노론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우암학파의 학문과 사상 및 사업을 전승하였으며, 그 학문과 사상을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권상하의 사상과 학문은 조광조-송시열로 이어지는 한국정통 도학의 '명천리(明天理) 정인심(正人心)' '벽리단(闢異端)' '양이적(攘夷狄)' '존왕도(尊王道)' '천패술(踐覇術)' '상정학(尙正學)' '척리교(斥異敎)' 정신으로 집약할 수 있다. 권상하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평생 사업은 위와 같은 정신에 입각하여 송시열의 학문과 사업을 계승하여 직(直)의 심법(心法)과 춘추의리(春秋義理)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는 스승인 송시열이 생존할 당시에는 그를 도와 주자서를 정리하여 오류 없는 의뢰서(義理書)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송시열의 사후에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짓고 대보단을 쌓는 등 대의를 드러내는 일에 일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권상하는 이러한 사업이 구세(救世)하는 도(道)(세도(世道))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존주자(尊朱子)와 명천리(明天理) 정인심(正人心)의 학문정신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등 그의 문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인물성동리(人物性同異) 논쟁에서 한원진의 인물성 이론을 찬성하여 엄정한 가치 판별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송시열을 옹호하는 변론에 적극 나섰는데, 그 이유는 스승에 대한 사정(私情) 때문만이 아니라 '세도(世道)'와 '사문(斯文)'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권상하는 직(直)의 심법과 춘추사상(春秋思想)으로 자신의 내적 도덕성을 삼았으며, 현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부조리에 대항했다. 적극적으로 불의(不義)에 항거했던 송시열의 직(直)철학이나 북벌(北伐)의지는 권상하를 통하여 기호학파 노론 계열의 상전(相傳) 심법(心法)과 사업(事業)이 되었다.

신라성덕대왕신종(新羅聖德大王神鍾)의 명문(銘文) 연구(硏究) -'사상성(思想性)' 탐색을 겸하여- (Study on the Words Carved on Seongdeokdaewang-Shinjong (Divine Bell of King Seongdeok) with a New Viewpoint)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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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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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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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중대(中代)의 사상사, 불교사, 정치사, 공예사, 한문학사, 서예사, 금석학사 등 여러 면에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그러나 신종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에 비추어 명문(銘文)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명문에 대한 판독과 번역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초한다. 부제(副題)를 '사상성의 탐색'으로 한것은 제2차 연구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종래의 판독과 역주(譯註)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였다. 변려문(騈儷文)의 문체적 특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약 20건 정도의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특히 '工匠?模', '日月?暉' 등 중요한 문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은, 명문 해석의 중요성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종의 명문은 사상사의 측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높다. 명문에는 불교사상, 유교사상, 도가사상은 물론 우리나라 고유사상 등이 서로 걸림이 없이 무르녹아 있다. 전반적으로 철학성이 높은 글이다. '원공(圓空)'을 주제어로 신종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울러 불교사상의 핵심과 통치철학을 제시한 것이 돋보인다. 한편 성덕왕의 정치이념, 통치원리가 우리 고유의 풍류도(風流道)에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 것은, 풍류도 전승의 맥락을 추적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혜공왕 대에 유교사상에 입각한 개혁파와 민족 고유사상에 기반을 둔 보수파와의 대결을 시사한 대목도 함께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일본 고학파(古學派)의 정치관 - 이등인재(伊藤仁齋)와 적생조래(荻生?徠)의 위민(爲民) 개념을 중심으로 - (The Political Views of Kogakuha(古學派) in Japanese Confucianism - Focused at the concept of 'For the People' of Ito-Jinsai(伊藤仁齋) and Ogyu-Sorai (荻生?徠))

  • 이용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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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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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9-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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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유가 정치사상에서 중심 개념은 천天과 인人(=민(民))이다. 특히 유가 사상에서 천이 갖는 의미가 결코 작을 수 없음은, 그것이 형이상학적으로 인간과 천을 설명하는 리理와 결부되면서 정치의 분야에 까지 그 논의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명'의 개념을 배제하고서 동양의 정치사상의 본질을 논의하기 어렵다. 본고는 18세기 초의 일본에서, 그 동안 도덕적으로 정당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던,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군주의 사적私的 차원이었던 '천天'의 정치화가 어떻게 공적公的인 '민民'의 차원으로 전환되었는가에 초점을 두어, 일본사상사에서 고학파古學派로 분류되는 대표적 사상가 이토 진사이(이등인재(伊藤仁齋))와 오규 소라이(적생조래(荻生?徠))의 학설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동양 정치사상사에서 주자학이 지녔던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권위가, 일본의 에도(강호(江戶)) 시대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당연히 배태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동안 억눌렀거나 억눌렸던 '민'에 대한 새로운 차원에서의 해석과 개념 정립이 어떤 사유 과정과 논쟁 과정을 거치며 부상했는가를 탐구해 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토 진사이에 대해서는 그가 보았던 '민民'에 대한 관념을 재검토하여 인仁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살펴보았다. 오규 소라이의 경우는 '선왕의 도'에 대한 개념과 ""육경"은 곧 물物이다"고 선언한 의미를 규명하면서 그의 안민천하의 정치론을 논했다. 이들 두 사상가가 펼친 정치관의 의미는 과거의 가치관을, 당대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일종의 치유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사이에게서는 '인'의 새로운 해석에 바탕한 '왕도의 구현'으로 나타났고, 소라이에게서는 '선왕의 도'에 바탕한 도덕으로부터의 정치의 독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밀납본의 보존상태 조사 (Investigation of conservation state on the waxed volumes of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 정소영;이혜윤;정용재;홍정기;엄두성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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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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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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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is the authentic record of the historical facts and events taken place throughout the entire period of 472 years(25 generations, 1392~1863)described in a chronological order. The tremendous volume of the records contains the factual events taken place in almost all the fields of the Joseon Dynasty ranging from politics, economy to history of the dynasty. Not only because of its affluent contents but also with the precision of its records, it was designated as the National Treasure No. 151 in1973 by the Korean government and also registered as the Memory of the World by UNESCO in October 1997.This study is to report a exhaustive investigation results on the conservation state of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especially Mt. Jeongjoksan edition, under the storage of the Kyujanggak in order to obtain the current condition, and thereby to estimate the any deterioration of the waxed volumes in the future. According to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we are going to verify damage causes of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to consider scientific conservation methods for the permanent preservation of invaluable cultural heritage. The major problem with the preservation of annals has arisen particularly from the deterioration of the waxed volumes of the Mt. Jeongjoksan edition. In order to provide for the counter measures for this problem, we have conducted twice investigations(first :1998~1999, second : 2003) to the internal and external conditions of waxed volumes(Annals of King Taejo~Annals of King Myeongjong).The result of the investigation has indicated that the paper quality of the some of the waxed volumes (Annals of King Taejong~Annals of King Sejong) is cracked and folded and the pages are imbedded to each other due to the hardened or congealed wax on the paper. Some of the pages are even getting moldy. And in order to detect as to whether“ there has been any deterioration progressed to the waxed books in the modern storage facility of the Kyujanggak equipped with constant temperature and humidity condition, the first investigation(1998~1999) and the second investigation(2003) have recorded the values of acidity, whiteness and moisture rate of the waxed paper, reporting an observation that there has been no difference on the measuring items. This indicates that no virtual deterioration has been progressed so far to the waxed volumes preserved in the Kyujanggak. Also, except for the causes of deterioration to the paper by insects and microorganisms, the major cause for the paper damage seems to the change of moisture of the paper caused from the alteration of the temperature and humidity of the storage environment. With this understanding in mind, we have conducted an environmental investigation on the three selected points of the storage in the aspects of the temperature, humidity, air current, $CO_2$,HCHO, and $SO_2$.It has been observed that the temperature stood at $16.9^{\circ}C~20.2^{\circ}C$ and the humidity was stable between 53%~56% during the period of the investigation. The concentration of the carbon monoxide and carbon dioxide of the storage were very similar to those in the air. These data lead to presume that there is no problem in the aspect of carbon oxidization. But the concentration of sulfur dioxide, hydrogen sulfide and formaldehyde of the storage were detected a little higher than those of standard. Therefore, we consider that it is necessary to ventilate the internal air of the store room by means of operating air purification de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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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회화에서의 형태와 물질 -Digital Transfiguration에 관한 연구- (Digital painting: Image transfonnation, simulation, heterologie and transfonnation)

  • 정숙영
    • 조형예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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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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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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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e words which appeared in my theoretical study and work are image transformation to digital painting, simulation, heterologie and transfiguration, etc. Firstly, let's look into 'digital era' or 'new media era'. Nowadays, the image world including painting within the rapid social and cultural change, which is called as digital era, is having the dramatic change. Together with the development of scientific technology, large number of events which was deemed to be impossible is happening as real in image world Moreover, these changes in image world is greatly influencing to our life. The word which compresses this change of image world and shows is 'digital'. Digit, which means fingers in Latin, indicates separately changing signal, and to be more narrow, it indicates the continual signal of '0' and ' 1' in computer. The opposite word is 'analogue'. As analogue is the word meaning 'infer' or 'similarity', it indicates the signal or form which continuously changes along the series of time when it is compared to digital. Instead of analogue, digital is embossed as a major ruler along the whole area of our current culture. In whole culture and art area, and in whole generalscience, digital is appearing as it has the modernism and importance. The prefix, 'digital', e.g. digital media, digital culture, digital design, digital philosophy, etc, is treated as the synonym of modernism and something new. This advent of digital results the innovative change to the image world, creates the new beauty experience which we could not experience before, and forecasts the formation of advanced art and expansion of creative area. Various intellectual activities using computer is developing the whole world with making the infrastructure. Computer in painting work immediately accomplishes the idea of painters, takes part in simulation work, contingency such as abrupt reversal, extraction, twisting, shaking, obscureness, overlapping, etc, and timing to stimulate the creativity of painters, and provides digital formative language which enables new visual experience to the audience. When the change of digital era, the image appeared in my work is shown in 'transfiguration' like drawing. The word, 'transfiguration' does not indicate the completed and fixed real substance but indicate endlessly moving and floating shape. Thus, this concept is opposite to the substantial consideration, so that various concepts which is able to replace this in accordance with the similar cases are also exist such as change, deterioration, mutation, deformity of appearance and morphing which is frequently used in computer as a technical word. These concepts are not clearly classified, and variably and complicatedly related. Transfiguration basically means the denial of "objectivity' and '(continual) stagnation' or deviation from those. This phenomenon is appeared through the all art schools of art ever since the realism is denied in the 19th century. It is called as 'deformation' in case of expressionism, futurism, cubism, etc, in the beginning of the century, which its former indication is mostly preserved within the process of structural deviation and which has the realistic limit which should be preserved. On the contrary, dramatic transfiguration which has been showing in the modern era through surrealism is different in the point that dramatic transfiguration tends to show the deterioration and deviation rather than the preservation of indicated object. From this point, transfiguration coming out from morphing using computer deteriorates and hides the reality and furthermore, it replaces the 'reality'. Moreover, transfiguration is closely approached to the world of fake or 'imaginary' simulation world of Baudrillard. According to Baudrillard, the image hides and deteriorates the reality, and furthermore, expresses 'not existing' to 'imaginary' under the name of transfiguration. Certain reality, that is, image which is absent from the reality is created and overflowed, so that it finally replaces the reality. This is simulation as it is said by Baudrillard. In turn, Georges Bataille discusses about the image which is produced by digital technology in terms of heterologie. Image of heterologie is the visual signal which is established with the media. Image of media is to have the continuous characteristics of produce, extinction, and transformation, and its clear boundary between images becomes meaningless. The meaning of composition, excess, violation, etc of digital image is explained to heterological study or heteologie suggested as important meaning of Georges Bataille who is a heretic philosopher. As the form and image of mutation shows the shape in accordance with mechanical production, heterologie is introduced as very low materialism (or bas materialisme), in this theory. Heterologie as low materialism which is gradually changing is developing as a different concept and analysis because of the change of time in the late 20s century beside high or low meaning. Including my image, all images non-standardizes and transforms the code. However, reappearance and non-standardization of this code does not seem to be simple. The problem of transformation caused by transfiguration which appears in my digital drawing painting, simulation, heterologie, etc, are the continual problems. Moreover, the subject such as existence of human being, distance from the real life, politics and social problems are being extended to actual research and various expressing work. Especially, individual image world is established by digital painting transfiguration technique, and its change and review start to have the durability. The consciousness of observers who look at the image is changing the subject. Together with theoretical research, researchers are to establish the first step to approach to various image change of digital era painting through transfiguration technique using our realistic and historical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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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1966년 시기 중국 선전화 연구 - 유화와 포스터를 중심으로 (Study of Chinese Propaganda Paintings from 1949 to 1966: Focusing on Oil Paintings and Posters)

  • 전희원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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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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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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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or in forms of posters made from 1949 to 1966 have gone through some changes experiencing the influence of the Soviet Union Art and discussion of nationalization, while putting political messages of the time in the picture planes. The propaganda paintings which have been through this process became an effective means of encouraging the illiterate people in political ideologies, production, and learning. Alike other propaganda paintings in different mediums, the ones which were painted in oil colors and in the form of posters have been produced fundamentally based on Mao Zedong's intensification of the literary art on the talks on literature at Yenan. Yet, the oil paintings and posters were greatly influenced by the socialist realism and propaganda paintings of the Soviet Union, compared to other propaganda paintings in different mediums. Accordingly, they were preponderantly dealt in the discussions of nationalization of the late '50s. To devide in periods, the establishment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1949 as a diverging point, the propaganda paintings made before and after 1949 have differences in subject matters and styles. In the former period, propaganda paintings focused on the political lines of the Communists and enlightenment of the people, but in the latter period, the period of Cultural Revolution, the most important theme was worshiping Mao Zedong. This was caused by reflection of the social atmosphere, and it is shown that the propaganda painters had reacted sensitively to the alteration of politics and the society. On the side of formalities, the oil paintings and posters made before the Cultural Revolution were under a state of unfolding several discussions including nationalization while accepting the Soviet Union styles and contents, and the paintings made afterwards show more of unique characteristics of China. In 1956, the discussion about nationalization which had effected the whole world of art, had strongly influenced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more than anything. There were two major changes in the process of making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One was to portray lives of the Chinese people truthfully, and the other was to absorb the Chinese traditional styles of expression. After this period, the oil painters usually kept these rules in creating their works, and as a result, the subject matters, characters, and backgrounds have been greatly Sinicized. For techniques came the flat colored surface of the new year prints and the traditional Chinese technique of outlining were used for expressing human figures. While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achieved high quality and depth, the posters had a very direct representation of subject matters and the techniques were unskilled compared to the oil paintings. However, after the establishment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posters were used more than any other mediums for propagation of national policy and participation of the political movements, because it was highly effective in delivering the policies and political lines clearly to the Chinese people who were mostly illiterate. The poster painters borrowed techniques and styles from the Soviet Union through books and exhibitions on Soviet Union posters, and this relation of influences constantly appears in the posters made at the time. In this way, like the oil paintings, the posters which have been made with a direct influence of the Soviet Union had developed a new, sinicised process during the course of nationalization.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or in forms of posters, which had undergone the discussion of nationalization, had put roots deep down in the lives of the Chinese people, and this had become another foundation for the amplification of influences of political propaganda paintings in the following period of Cultural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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