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orea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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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의 경설(經說)과 그 특징(特徵) (Noju Oh Hui-sang's ConfucianismDoctrine and its Characteristics)

  • 김영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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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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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9-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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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노주 오희상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활약한 유학자로서 당시 산림의 종장이었다. 그는 절충파 성리학자로서 알려져 있으나 생부 오재순과 백형 오윤상으로 이어지는 가학을 계승하여 경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노주의 경설과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노주 경설의 경학방법론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주목된다. 첫째, 전체적으로 분석이 정밀하며 경서해석에 있어서 주로 성리설과 관계된 장절을 주석하였다. 둘째, 주자주에 대한 견해는 물론 사서집주대전의 소주(小注)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탐구를 하고 있다. 다만 노주는 주자설의 경우 반대하기 보다는 주자설(朱子說)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는 선에서 경서를 해석했다. 소주의 제가의 견해에 대해서는 찬동 보다는 비판적인 학설을 많이 개진하고 있다. 셋째, 중국 유학자는 물론 우리나라 유학자의 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이율곡을 비롯하여 남당 한원진의 학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한원진의 "경의기문록"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넷째, 노주는 선배 유학자설을 인용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학설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과감하게 그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우암, 율곡은 물론 심지어는 맹자설에 대해서도 그 오류를 낱낱이 변파하고 있다. 다섯째, 특히 "주역"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정자의 "역전"에 대해서는 비판을 주자의 "본의"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주역"의 개략적인 설명이 많고 건괘를 제외하고는 괘를 직접 설명한 것은 적으며 특히 "계사전" 설명이 상세하다.

담양소쇄원(潭陽瀟灑園)과 소주창랑정(蘇州滄浪亭)의 조영사상과 경관구성요소에 관한 의미(意味) 비교연구 (A Semantic Comparative Study of Formative Idea and Landscape Elements Composition of Damyang 'Soswaewon(潭陽瀟灑園)' & Suzhou 'Canglang Pavilion(蘇州滄浪亭)')

  • 위첨첨;김재식;김정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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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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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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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신흥유학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영된 조선시대 별서원림인 소쇄원과 중국 송대 성리학 생성기(生成期)에 조영된 창랑정을 비교 고찰하여 원림문화의 조영사상과 구성요소의 의미론적 해석에 관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쇄원은 한국 별서원림 중에서도 성리학사상을 오롯이 구현하였으며, 중국 창랑정은 현재까지 잘 보존된 가장 연원이 깊은 중국의 사가원림으로서, 조영 시기는 소쇄원보다 약 500년가량 앞서며 조영자인 소순흠 또한 송대의 사대부로서 창랑정 조영배경에는 성리학이라는 뿌리 깊은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둘째, 소쇄원과 창랑정 두 원림 모두 은일사상(隱逸思想)에 뿌리든 둔 자연친화(自然親和)성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소쇄원은 산림에 입지한 형태로 은일(隱逸) 중에서도 '소은(小隱)'이며 창랑정은 도시에 입지한 '중은(中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소쇄원과 창랑정의 명명(命名)에 상징의미가 배태된 원림요소들을 비교분석하면, 소쇄원은 자연합일(自然合一)된 원림으로서 유불선(儒佛仙)의 다양한 사상들이 습합되어 발전된 중국 송대 성리학 사상이 원림조영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으며, 현재 창랑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상징요소들의 의미해석의 밑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사상적인 변화는 반드시 원림의 형식적 양식이나 요소들에 체현(體現)됨으로 원림요소를 비교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소쇄원은 최대한 자연을 활용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하여 조영된 원림임을 알 수 있다. 즉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결합함으로써 공간의 의미적인 특징을 표출하고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소쇄원의 대봉대는 조영자의 이상을 표현하는 장소이며, 창랑정은 높은 담장 내에는 원내의 경치가 새롭게 창출되고 속세와의 단절감을 둔 채 재현된 자연을 구축함으로써, 창랑정은 가산 위에서 주변의 가경을 관조하며 삶을 성찰하는 공간으로서의 장소성이 감지된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림의 양식이나 성격에서는 다양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각 민족의 특성과 결합하여 원림을 형성하였고, 상이한 결과를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의 전통 죽음관 (Koreans' Traditional View on Death)

  • 권복규
    • Journal of Hospice and Palliativ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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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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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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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한국인의 전통적 죽음관은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샤머니즘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유교에서는 죽음이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스러운 운명이며, 죽음을 고민하기보다는 현세의 삶에 충실할 것을, 도교에서는 삶과 죽음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갈 것을, 그리고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이 모두 허상임을 깨달으면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여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웠다. 이러한 사상들은 한민족 고유의 샤머니즘과 결합하여 현세를 중시하지만 사후세계와 윤회전생을 믿는 태도를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은 역사를 통해서 매우 다양한 내러티브들로 나타나며 현대 한국인들이 죽음을 맞는 모습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동(安東) 임청각(臨淸閣)의 문자형태(文字形態)에 나타난 의미(意味)와 택법(宅法)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Meaning of Letter-Shaped House Plan and the Housing Principles of the Imchonggak in Andong)

  • 장백기;조성기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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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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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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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meaning of letter-shaped house plan of the Imchongak in Andong and to Analyze its housing principles. The letter-shaped house plan of the Imchongak lays its root in the traditional Eastern thoughts, showing feature of Taolsm. The Imchongak applied the principles of a good land and a good house, which are originated from the Yonyang theory, Five elements theory, Poongsochiri, housing principles and letter shapes of good fortune. The letter shape of the Imchongak is 用(as below), and 日, 月, and 明 are contained in it. The lette 明means brightening the mind and life of human being by himself. The letter 用 is shaped to express the idea of Cheayong Theory of Confucianism, which refer to everlasting interaction of all thing in the universe. In applying the housing principles, Potaebob was used for the orientation of the house. Samhabbob, Jungeomjungyangbob and Dongsusataecbob were utilized to locate the gate. In addition, Dongsusataecbob was used for the positioning of rooms in most cases. The Imchongak succeeded traditional Eastern thoughts and it realized the concept and philosophical idea of Confucianism as a house. What is importan in the house plan of the Imchongak is that it repesents the ideal of Confucians in Chosun Dyansty that the man, house, nature, and universe are one. It also advocates ideology of Confucianism which emphasizes that a human life can be completed when man live together with the nature and harmonize themselves wit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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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파(退溪學派) 상주학맥(尙州學脈)의 건축관(建築觀) 변천(變遷)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Changes of Architectural View of the Sangju academic clique of the Taegae School)

  • 윤일이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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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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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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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Through 16-17th century, Neo-Confucianism was accepted and extended to Chosun Dynasty. The architecture of the Taegae school made buildings of Yongnam area rich by adding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based on Taegae's thought of architecture. The following is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academic clique around Sangju. Transformation such as separation and combination of the Jeongsa space by function, lifted floor type reflecting local feature or high platform was appeared, and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Taegae school, that is, a small scale, a moderate figure, a type of side-attached floor, landscape, were still maintained at the same time. The characteristics of the Taegae school and regional figure of Sangju were well joined. The upper class houses, Seodang, Jeongsa and Seowon, built by Confucianist had shared common Confucian characteristics in spite of their different purposes. The world view of the Confucianism such as sacrifice for sages, cultivation, devoting for study, teaching disciples, and education for villagers was revealed through the Confucian architecture including dwelling houses during the 16-17th century. Buildings of Confucianist were focused on the space for men. Seoae and Kyumam built two different Jeongsa's inside and outside of the boundary of the nakdong river. While Seodang and Jeongsa located outside of the boundary of the river were built excluding spaces for living, the function of the Jeongsa located inside of the boundary of the river was assimilated by Sarangcahe. However, both buildings kept the function for cultivation, devoting for study and t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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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연향 공간의 지의(地衣) 연구 (A Study on the Function of Mats the Banquet space in the Joseon Dynasty)

  • 석진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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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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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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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rituals that were celebrated in the palaces were mainly held inside the palace and in the courtyard of the palace. Mats were spread on the floor of the place where the ritual was held. The mats spread in the Joseon Dynasty rituals divided the space in various ways, and in particular, they were spread in a certain form in the spaces of royal wedding, customs, and court banquet. Mats were the primary physical element that divided the royal ritual space of the Joseon Dynasty, and functioned to elevate the general space to the ritual space. In the ritual space, mats were spread inside the palace, and divided the courtyard of the palace into left and right in a symmetrical form to distinguish the hierarchy of the participants. Mats with special and white patterns were spread in the external ceremonial space and mats with flower and colorful patterns were spread in the internal ceremonial space. This was the subdivision of the Confucianism's male-female division through the mat. The pattern of the mat that divided the space of the royal family elders also meant longevity to reflect the filial thoughts of the Confucianism through the mat. Mats were a physical element for subdividing the royal family and the participants in the hierarchy of the space where the ritual is held, and it also performed a subdividing function between the royal participants. In other words, in the Joseon Dynasty ritual space, mats were temporarily spread while the ritual is being celebrated and functioned to elevate the space to a ritual space. It is confirmed that the fact that the mats were temporarily spread to divide the space into the hierarchies according to the status and were subdivided into colors and patterns to perform the function to reflect the subdivision of the royal family according to Confucianism and the statue of filial piety in the ritual.

栗谷理气论视域观大巡思想 (Daesoon Thought from the Perspective of Yulgok's Theory of Reason and Energy)

  • 李红军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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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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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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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大巡思想是朝鲜朝晚期甑山姜一淳 (1871~1909) 为上帝的韩国本土宗教思想。它以 《典经》 为其经典。甑山的大巡思想从宗旨, 四纲领, 三要谛, 目的来看, 使用的概念和范畴以及文章结构, 都不无儒学没有关系。因为阴阳合德, 神人, 道统, 安心安身, 诚敬信等术语在儒学思想中普遍使用的概念和范畴。本论文从栗谷理气论的理气之妙, 气发理乘, 理通气局等论理, 考察甑山的大巡思想, 试图在「妙合」, 「气化」, 「道通」等方面寻求栗谷和甑山的相通性。本研究虽然在两者思想的比较上不无牵强附会的层面, 但是作为朝鲜朝的传统思想, 两者之间会有丝缕相连的关系。本论文的这一尝试对甑山思想的多视角研究具有一定的价值。

조선왕릉의 조영의도, 이념, 사상, 미의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Constructional Intention, Idea, Thought and Aesthetic Consciousness of Joseon Royal Tombs)

  • 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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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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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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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세계유산으로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정성, 완전성을 지닌 조선 왕릉의 입지, 배치 및 공간구성, 구성요소(건축, 조경, 석물, 조각) 등에 내재되어 있는 조영의도, 이념, 사상, 미의식 등을 구명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 40기를 연구대상으로 문헌조사와 현장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영의도, 이념, 사상의 기원을 살피기 위해 조선왕릉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왕릉과 통일신라시대의 왕릉도 살펴보았다. 조선왕릉은 고려왕릉, 특히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 능제를 많은 부분 계승하였으나, 불교국가였던 고려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예법에 따라 조영되었으므로, 공간구성이나 구성요소에서 특색이 나타난다. 조선왕릉의 선지와 입지에서는 풍수사상의 길지 즉, 배산임수의 지형을 잘 갖춘 곳을 택하였으며, 배치 및 공간구성은 유교사상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는 유교의 위계질서가 반영되도록 능역을 조성한 것이다. 공간구성요소에서는 건축, 조경, 석물, 역사경관림에서 유교사상, 불교사상, 도교사상이 각각 혹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유교적 예법에 따라 행해지는 제례의식을 통해 조선왕릉의 조영의도, 이념, 사상에 연결된다.

원천석(元天錫)의 역사의식과 유불도(儒佛道) 삼교관 (A Study on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View of the Three Religions of Won Cheon Seok)

  • 정성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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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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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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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의 목적은 고려 말과 조선초기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삶을 영위한 원천석의 역사의식과 유불도 삼교관을 탐구하는데 있다. 원천석은 당시 백성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려 하였다. 백성들을 고통과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권세가들의 전횡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그의 태도는 고려 말 신진사류들의 입장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는 요동정벌이 시행되자 고려의 기상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으나 현실상황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어 나갔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말을 돌려 회군을 함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원천석은 이성계의 행위에 대한 강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원천석은 유학자로서 불교와 도교를 부정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는 유불도가 하나의 이치로 통하는 것이라 파악하였다. 유학에 학문적 토대를 둔 그가 유교 그 자체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도모하여 유교적 사유체계에서 오는 현실적 갈등과 대립의식을 승화시키고 있었다. 열린사회와 글로벌화를 지향하며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현대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점차 민족 간 문화적 교류 빈도가 증대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변화과정으로 볼 때, 타자에 대한 넓은 이해와 소통, 그리고 상호존중의 교섭적 특성을 갖는 원천석의 유불도 삼교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조선 전기 '격치' 개념의 의미화 (The Conceptual Formation of 'Gyeokchi' in the Early Joseon Period)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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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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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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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대학" 8조목의 하나인 격물치지는 유학의 공부론이자 정치의 출발점이다. 유학의 목표는 수기안민, 내성외왕으로 집약된다. 조선 전기격치 개념은 이를 위한 학문과 위정의 시초로서의 의미가 강조된다. 이는 유학이 국가 운영의 핵심적인 가치 체계로 자리하게 되면서, 불교에 의지해 국가를 운영하던 시스템의 일대 변환과 사상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인륜 규범을 정하고 사회를 질서 짓는 근거로 유학이 부상하면서 유학의 경세론적 특성이 두드러진 것도 이 시기였다. 조선조 내내 "대학연의"는 제왕의 학문과 정치의 모범으로 경연에서 강론되었고, 그 출발점으로 '격치'가 논의되었다. 한편 '격치'와 관련한 다양한 해석과 논변은 경학사상사적으로 정주 성리학이 조선 성리학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격물'과 '물격' 해석을 둘러싼 논변은 인식 주체와 대상의 문제를 넘어 리의 본질을 궁구하는 문제와 맞닿았고, 기호와 영남 유학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다양한 해석과 논변에도 불구하고 앎과 실천을 통합하는 유학의 공부론은 인문학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시대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논리에 내맡겨진 과학기술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데에 대학과 인문학의 역할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하고,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를 재성찰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