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ingdom of Cambo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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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정보 오픈플랫폼의 국가별 해외 수출 전략 연구 -캄보디아와 아부다비 에미리트를 중심으로- (A Study on Abroad Export Strategy by Country of Spatial Open Platform -Focused on the Kingdom of Cambodia and the Emirate of Abu Dhabi-)

  • 김걸;정진도;이재용
    • Spatial Information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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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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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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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공간정보 환경이 최근 플랫폼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공간정보 인프라를 구축할 경우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간정보 인프라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공간정보 오픈플랫폼(V-World)을 구축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 수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개발도상국가인 캄보디아와 신흥선진국인 아부다비 에미리트의 공간정보 인프라 현황을 구성요소별로 비교하여 국가별 해외 수출 전략을 도출하는데 있다. 캄보디아는 해외 원조를 통해 공간정보 사업을 수행하는 개발도상국이며, 아부다비 에미리트는 풍부한 오일머니의 자금력으로 해외 선진기술과 고급 인력의 적극적인 유치를 통해 공간정보 사업을 수행하는 신흥선진국이다. 이 연구에서는 두 개의 국가별 공간정보의 특성을 고려하여 캄보디아 모델과 아부다비 모델이라는 수출 모델을 정립하고, 각각의 모델에 대한 공간정보 오픈플랫폼 수출 방식과 해외 진출 전략 및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하였다.

Articulations of Southeast Asian Religious Modernisms: Islam in Early 20th Century Cambodia & Cochinchina

  • Noseworthy, William B.
    • 수완나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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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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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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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This article is about the emergence of Islamic modernism among Cham Muslim communities in Cambodia and Cochinchina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Based on a combined critical reading of existing scholarship, historicized first-hand anthropological accounts, as well as archival sources from the National Archives of Cambodia and the Vietnam National Archives II, it argues accounts of modernists in these sources were either (1) cast through a French colonial reading of a Buddhist state lens and (2) cast through a Malay lens, based upon the Kaum Muda/Kaum Tua divide. First, it proceeds with a historical explanation of the emergence of Islam and the discourse used to describe Muslim communities in Vietnamese, French, and Cham language sources. Then, it turns the narrative toward an examination of the emergence of the "Kaum Muda" or "New Group" of reformist-minded modernist Muslims in early 20th century Cambodia. Delineating the networks of these intellectuals as they stretched across the border through Cochinchina, also highlights a pre-existing transnational element to the community, one that well predates current discussions of twenty-first-century transnationalism. Through a combination of the study of multiple language sources and historical methods, the article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polylingualism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Muslims in Sou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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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ruction of Cham Identity in Cambodia

  • Maunati, Yekti;Sari, Betti Rosita
    • 수완나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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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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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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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Cham identities which are socially constructed and multilayered, display their markers in a variety of elements, including homeland attachment to the former Kingdom of Champa, religion, language and cultural traditions, to mention a few. However, unlike other contemporary diasporic experience which binds the homeland and the host country, the Cham diaspora in Cambodia has a unique pattern as it seems to have no voice in the political and economic spheres in Vietnam, its homeland. The relations between the Cham in Cambodia and Vietnam seem to be limited to cultural heritages such as Cham musical traditions, traditional clothing, and the architectural heritage. Many Cham people have established networks outside Cambodia with areas of the Muslim world, like Malaysia, Indonesia, southern Thailand and the Middle Eastern countries. Pursuing education or training in Islam as well as working in those countries, especially Malaysia has become a way for the Cham to widen their networks and increase their knowledge of particularly, Islam. Returning to Cambodia, these people become religious teachers or ustadz (Islamic teachers in the pondok [Islamic boarding school]). This has developed slowly, side by side with the formation of their identity as Cham Muslims. Among certain Cham, the absence of an ancient cultural heritage as an identity marker has been replaced by the Islamic culture as the important element of identity. However, being Cham is not a single identity, it is fluid and contested. Many scholars argue that the Cham in Cambodia constitute three groups: the Cham Chvea, Cham, and Cham Bani (Cham Jahed). The so-called Cham Jahed has a unique practice of Islam. Unlike other Cham who pray five times a day, Cham Jahed people pray, once a week, on Fridays. They also have a different ritual for the wedding ceremony which they regard as the authentic tradition of the Cham. Indeed, they consider themselves pure descendants of the Cham in Vietnam; retaining Cham traditions and tending to maintain their relationship with their fellow Cham in Central Vietnam. In terms of language, another marker of identity, the Cham and the Cham Jahed share the same language, but Cham Jahed preserve the written Cham script more often than the Cham. Besides, the Cham Jahed teaches the language to the young generation intensively. This paper, based on fieldwork in Cambodia in 2010 and 2011 will focus on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the Cham identity, especially of those called Cham and Cham Ja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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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ODA 수원마을 조성사업에 관한 사례 연구 (A Case Study on the Development of Suwon Village in ODA Project in Cambodia)

  • 강용규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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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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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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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캄보디아 왕국 씨엠립주에서 공적개발원조를 수행하고 있는 수원시의 "수원마을 조성사업"의 단계별 사업을 분석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개선방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본 연구를 위하여 현장을 방문하고 담당자를 면담함으로써 사실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공적개발원조 사업은 중앙정부의 ODA 정책 아래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세부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선심성 또는 일회적인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들의 대외 이미지 제고라는 명분 아래 경쟁적으로 벌이는 사업이 아닌 수혜국에 대한 투자적 성격을 지닌 만큼 사업의 성과에 대한 평가체제와 평가결과를 토대로 사업의 지속 여부와 보완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 부처간, 지방자치단체별로 산발적인 원조가 아닌 경제 및 사회개발 부문 ODA는 중앙정부와 KOICA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소규모. 소프트웨어적 부문에 집중하여 개발협력을 이루게 된다면 가시적 결과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다는 지적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를 통하여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ODA 계획의 수립과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시사된다.

무왕(武王, 1738-1765) 시기 메콩 델타에서의 영토 확장 추이: 제국으로 가는 길, '잠식지계(蠶食之計)'와 '이만공만(以蠻攻蠻)'의 변주 (Territorial Expansion the King Võ (Võ Vương, 1738-1765) in the Mekong Delta: Variation of Tám Thực Chi Kế (strategy of silkworm nibbling) and Dĩ Man Công Man (to strike barbarians by barbarians) in the Way to Build a New World Order)

  • 최병욱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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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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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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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베트남이 메콩 델타로 영토를 팽창하는 역사 속에서 완거정은 두 개의 얼굴을 갖는다. 하나는 현재 베트남 영토 내에 있는 메콩 델타 거의 전부를 획득하는 데서 그의 공헌이다. 또 하나는 베트남 역사를 읽는 독자들의 눈을 현재의 베트남 영역에만 머물게 하는 그의 역할이다. 독자들에게 완거정의 메콩 델타 획득은 베트남 남진사의 마지막 단계로 인식된다. 그러나 완거정의 업적은 부분적이었을 뿐이다. 이 연구는 메콩 델타에서의 영토 팽창 추이에서 완거정 보다 무왕에 주목한다. 무왕의 목표는 완거정의 공헌에 의해 성취된 영토 획득보다 더 야심적이었다. 그리고 이 야심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국제 질서를 건설한다는 그의 꿈에 의해 추동된 것이며, 그가 건설한 수도 푸쑤언은 이 새 국제 질서의 중심지였다. 여기서 그는 황제가 되기를 희망했다.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필자는 세 가지의 요소를 검토하고 있다. 첫째는 무왕 왕권의 성격이다. 두 번째는 메콩 델타에서의 군사 작전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셋째는 새로이 무왕의 판도로 편입된 땅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북부 홍하 델타에 근거한 레 황실의 신하를 자처하던 선대 지배자들의 태도와 결별하면서 무왕은 즉위한 지 6년 뒤인 1744년 자신이 왕임을 선포했다. 행정 조직이 개편되었고 의복과 풍속도 북부의 것을 버리고 남국의 것을 제정하였다. 무왕은 캄보디아, 참파, 수사, 화사, 만상, 남장 등 조공국도 충분히 확보했다. 레 왕조와 비교해 이 조공국의 숫자는 더 많았으며 19세기 대남 제국의 조공국 수와 맞먹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무왕이 실제로 원했던 자리는 왕이 아니라 황제였음을 지적한다. 비록 무왕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는 자신을 천왕이라고 칭함으로써 통상적인 왕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캄보디아 왕이 캄보디아 영토 내의 참족을 공격한 게 무왕에게는 캄보디아에 개입하는 충분한 이유로 작용했다. 무왕은 이 참족이 자신의 신복이라 여겼다. 왕은 그들이 자신의 판도 내에 있는 참 즉 순성진 참인의 일부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무왕은 1750년에 캄보디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동시에 그는 태국왕에게 외교 서한을 보냈는데 여기서 그는 캄보디아가 자신의 배타적 조공국임을 천명했다. 캄보디아의 영토였던 메콩 델타에의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무왕은 푸쑤언을 새로 건설해 제국의 위상에 걸맞는 권력중심지로 삼았다. 인플레이션, 기근, 경제 왜곡 등도 이 시기를 특징짓는 면모였다. 그러나 이 연구는 무왕의 메콩 델타 진출 이유라고 이야기되어 온 이런 경제적인 측면보다 제국 건설자로서 무왕이 보이던 적극적 정책에 더 관심을 가지며 이런 정책에 기초한 영토 팽창의 욕구가 메콩 델타의 광활한 땅을 차지하고자 하는 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1754년부터 3년 동안 현재 베트남의 영토에 해당하는 메콩 델타 대부분이 무왕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여기에는 완거정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무왕이 차지하고자 한 영역의 범주는 여기에 더해 메콩 오른편에 해당하며 현재의 사이공보다 위쪽에 있는 껌뽕짬, 프레이비엥, 스바이리엥을 포괄했다. 많아진 조공국의 수에 걸맞게 제국의 영토는 넉넉히 확대되어야 했다. 무왕의 전략은 '잠식지계'와 '이만공만'의 변주곡이었다고 이 글은 주장한다. 무왕은 하부캄보디아에 해당하는 델타를 야금야금 차지했다. 이는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게 일반적인 이해 방식이다. 그러나 무왕의 최종적 목표는 위에서 언급한 메콩 델타 세 개의 주까지 다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다 먹어치운다'는 건 '잠식'의 또 다른 의미이자 적용이었다. 무왕은 현 롱안 지역으로부터 쩌우독에 이르기까지의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참인을 이용해 캄보디아를 쳤다. 이것은 '이만공만'의 표준적 적용이었다. 이에 더해 그는 막씨가 관할하던 중국인 망명자들을 이용해 하띠엔과 그 주변 지역을 캄보디아 왕으로부터 취했다. '이만공만'의 또다른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19세기에 출현할 응우옌 왕조의 제국 질서 뿌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주장한다. 제국 질서는 홍하 델타에 근거한 대월 제국 왕조들의 오랜 역사의 결과물이 아니라 푸쑤언에 앉은 무왕의 신 세계질서를 계승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만공만'과 '잠식지계'는 무왕의 후손들에게 여전히 유용했다. 그의 손자인 쟈롱은 타이, 크메르, 라오, 중국인, 산지민, 유럽인 같은 '만'을 이용해 또다른 '만'인 '떠이썬 도적떼(西賊)'를 이겼다. 떠이썬에는 수많은 중국인 및 중국 해적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참인, 산지민이 있었다. 무왕의 증손자인 민망 황제는 화려한 제국을 건설했다. 동시에 그는 캄보디아와 참 영역을 몽땅 먹어치우면서 영토 확장에도 골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항공사와 저가항공사의 지각위험에 대한 비교분석 (The Comparative Analysis of Perceived Risks in South Korean Low Cost Carriers and Full Service Carriers)

  • 최휴종
    • 한국항공운항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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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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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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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한국항공시장의 지각위험에 대한 실증적 연구이다. 김포국제공항 및 인천국제공항에서 수집한 316부의 설문지를 다중회귀분석, 분산분석, 상관분석, 및 T-test 기법을 동원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 승객간의 지각위험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대형항공사 승객은 재무적 위험에 민감한 반면, 저비용항공사의 승객은 기종 및 물리적 위험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대형항공사에서는 섬세한 서비스 제공이 더욱 요구되며, 저비용항공사가 신항공기를 사용하는 것이 저비용항공사의 안전성 인식 제고에 효과적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