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eon gil (a.k.a. Mongsoo), who was the pioneer of measles treatment in the 18th century, is the 14th generation of the Deokcheongun branch of the Lee family from Jeonju, living from August 25, 1738 (14th year of King Yeongjo) to April 29, 1784 (8th year of King Jeongjo). Under his teacher Lee Cheol hwan, the eldest grandson of Lee Yik, he learned medicine and studied it deeply. His medical service was most remarkable when measles was prevalent in 1775 (51st year of King Yeongjo) at his age of 38. It seems that he wrote books on measles based on his experiences at that time. Lee Heon gil's academic background can be inferred from his relation with Lee Cheol hwan and Jeong Yak yong. Associating with Lee Cheol hwan, he established close relationships with many scholars including the Lee family from Yeoju, who were the descendents of Seongho Lee Yik, and through this fellowship he was influenced directly and indirectly by Seongho Lee Yik. In addition, he maintained close contact with Jeong Yak yong while treating him several times. As Jeong Yak yong was also in close academic association with scholars in the Seongho School and Lee Yik's pupils, he had a philosophical consensus with Lee Heon gil. These academic backgrounds show that the philosophical flow of the Seongho School from Seongho Lee Yik to Jeong Yak yong also reached Lee Heongil.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수많은 사회개혁책 중에서 세법의 부분은 바로 기본 전세 외에도 갖가지 명목으로 납부하게 되는 부가세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본 연구는 다산 정약용의 세법에 대한 개혁책 제시를 기초로 하여 조선시대 백성의 부담을 가중시켰던 각종 부가세를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참고하여 검토하였다. 본 연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당시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가중시켰던 것에는 기본 전세 외에 지방재정기구였던 민고에서 징수한 각종 부가세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부가세들을 연일현감 정만석이 올린 상소내용과 정약용의 전라도 강진 유배시절 조사한 조세자료를 기초로 작성한 금산현 민고절목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전세 외에도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던 민고의 폐단을 개혁하려는 다산 정약용의 참된 실학자다운 면모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공자가 '중용'을 언급하고 자사가 「중용」을 저술한 이래로, 특히 주희가 『소대예기』의 한 편목이었던 「중용」을 사서 중의 하나로 편집하고 재해석한 이래로 중용은 도덕의 극치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학사상의 중요한 범주로 간주되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장악'과 '도덕적 행위', 그리고 '습관'이라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정약용이 어떻게 주희의 중용해석을 비판했는지를 검토하고, 더 나아가 정약용의 중용해석과 그것의 특징을 밝히는 데 있다. 주희는 중용의 중을 양단의 중간과 미발의 본연지성으로 해석하고, 용을 평상지리로 해석하여 중용을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절대적 이치로 보았다. 따라서 주희의 중용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당면한 도덕적 문제 상황에 대한 장악과 노력이 들어있지 않는 절대적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정약용은 중을 신독하는 군자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유지하는 집중의 공부 상태와 상황에 대한 장악으로 이해하고, 용을 사람의 도덕적 행위를 꾸준히 하려는 의미가 들어있는 '항상' 혹은 '경상'으로 이해하여 중용을 장악을 통한 도덕적 행위의 습관화로 이해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다방면에 걸쳐 많은 저술을 하였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학문의 산맥이 되었다. 이를 살펴보면 그의 미학사상은 첫째, 담(淡)에서 담(澹)(담박(澹泊))으로, 더 나아가 담(膽)(담역(膽力))에까지 나아갔다. 이는 변화를 도모하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둘째, 운(韻)의 미학이다. 이는 운치를 추구하는 그의 생활에서 알 수 있다. 다산은 유배로 인하여 현실참여가 어려웠기에 많은 저술을 통하여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특성이 되었다. 첫째, 이는 남종 문인화의 시원이다. 이는 소치 허유의 운림산방이 남종 문인화의 발원처로 그 시원이 다산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실학을 추구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시키는 실사구시의 체현이다. 셋째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추구이다. 이는 다산 미학사상의 한국적 특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연천 홍석주(淵泉 洪奭周: 1774-1842)는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에 충실한 수행자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1794년 이래 초계문신으로 정조를 가까이 대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조 사후(1800) 이래 비교적 순탄한 사환기(仕宦期, 1795-1836)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관을 정립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홍석주는 성리학적 문학론의 핵심개념인 '도본문말(道本文末)' 사상에 바탕을 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이론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문(文)과 시(詩)의 기능을 명교(明敎)와 감인(感人)으로 구분한다. 문의 방면으로는 교훈적 대사회적인 기능을, 시의 방면에서는 성정과 천기를 중시하는 감성적 이해에 주목하였다. 홍석주는 세교설(世敎說)에 입각하여 도덕적 감발과 그를 통한 사회적 교화를 예술 창작의 핵심에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작품의 중요 요소로 언급되고 있는 '흥관군원(興觀群怨)'이나 '여항구요(閭巷謳謠)'와 같은 표현은 예술행위에 있어서의 객관적 대상의 실재를 중시하고 그 실상과 부합되는 묘사를 요구하는 태도에 연결되는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마치 회화에 있어서 그가 풍속화적(風俗畵的)인 특성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미망으로도 추정된다. 반면 정약용은 성리학적 문이재도론의 입장에서 주희의 '시경론'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시경"의 시편과 일반시의 정치사회적 기능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주희의 시에 관한 담론을 자신의 견해에 의하여 재해석한다. 작자(作者)가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행한 것이 국풍의 시라는 것이다. 정약용의 국풍론은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사대부 계층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는 정약용의 사상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유배시기에 크나큰 위기와 고통을 겪으면서 많은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그것을 성공적으로 치유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을 구현하였다. 이 논문은 다산의 자기치유 방법과 행복관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산은 "주역" 연구를 통해 사물의 변화 법칙에 대해 달관함으로써 현재의 어려움이 영원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반전될 수 있음을 알고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글쓰기와 저술을 통해 경세에 대한 관심을 저술로 표현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경세에 대한 꿈을 실현하여 자기치유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많은 시련을 겪은 역사적 인물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유배지에서 자신의 고통을 상대화 객관화 시켜서 조망함으로써 고통스런 시련을 자기 단련의 계기로 이해하였다. 또한 다산은 유배시기에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는 것을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상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속에서 대화를 통해 다산의 상처를 위로하고 희망을 갖게 한 존재였다. 다산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은 도심(道心)에 따라서 살아가는 도덕적 삶이다. 도덕적 삶은 의무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주고 행복으로 인도한다. 그 외에도 독서나 학문적 탐구를 통한 지적 만족,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김도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다. 다산은 복을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으로 나눈다. 열복은 세속적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복이고, 청복은 자연과 전원 속에서 자유로움을 누리는 복이다. 다산은 청복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실학자로서의 다산은 백성을 위한 공공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백성의 행복을 위한 제도적 구조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본고에서는 <수오재기(守吾齋記)>의 내용을 분석한 후, 이 작품의 특징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수오재기>를 가지고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찰하였다. <수오재기>의 내용을 보면 정약현이 정약용과는 달리 자기를 지키는 집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 또한 '나'를 잃지 않고 지조를 지킨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잃어 버려 지금 장기에 유배를 온 자기와는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다. 즉, <수오재기>에서는 정약현을 통해 '나'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수오재기>의 특징과 의미에서는 정약용이 한문양식 중 하나인 '기(記)'를 매개로 하여, 귀양지에서 본질적 자아인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등 표현상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수오재기>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반성과 성찰의 행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수오재기>의 교육적 활용에서는 자(字)와 호(號)를 짓는 방법과 자기소개서 쓰는 것을 학생들 교육에 활용하고자 한다. 자와 호를 짓도록 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적지만 어떻게 짓는가를 알려주어 선인들이 자와 호를 짓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자기소개서는 요즘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인데, <수오재기>에서처럼 '나'를 먼저 파악한 후에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그 효능이 클 것이다. 이를 교육에 활용하면 국어교육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후반의 조선왕조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지리적 가치와 담고있는 다산의 지리적 사고 내지 철학에 대한 종합적 조명을 통해, 속에 담긴 지리관을 알아보는 것에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목민심서에서 실학자 정 다산의 지리적 관심은, 지리지식을 실학의 실용적 지식으로 보고 있고, 이러한 실용적이고 유용한 지리지식을 바탕으로 농촌사회를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특히 권농정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토지정책과 영농기술, 농구제작, 주요 과일의 분업적 전문생산, 농촌사회에서의 부업장려 등 농업 경제의 활성화 방안에 두루 이르렀다. 목민관으로서의 다산의 주요 관심과 사상의 흐름은 현실세계에 대한 개혁적 대안을 제시하여 부국과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리지식 내지 지리적 사고에 대한 그 후 생각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의 지리적 식견과 이해는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중심을 꿰뚫는 논리적 명쾌함과 정확한 지리적 사고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의 지리적 사고와 지리관은 당대의 농촌주민들의 생활에 개혁적 변화를 유도한 것이며, 행정관으로서의 리더십을 빛나게 만드는 실사구시적 도구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목민심서를 통해 목민관은 민간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적극 보호하되 그것은 국가 재정체계와 직결된 합법적인 형태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하는 한편, 노동의 분업과 기술개발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청사(廳舍)의 보수와 환경미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간접적으로 거의 환경관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상공업 활동에 필요한 도로(道路) 개발을 서두를 것을 권장한 것은 그가 이미 상대적 입지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In order to unravel the implication on the Hwang Jahu's, a well-known medical doctor, critique of "HyangYakJibSungBang(鄕藥集成方)"(Compendium of Prescriptions from the Countryside)'s publication, this essay calls for an investigation of socio-economical situations and systematic support for the development of native herbal drugs of that time. In the period of King SeJong various systematic aspects supporting the development and utilization of native herbal drugs were created. In this ambient, Hwang Jahu also dedicated his life in the application of native herbal drugs. Though Hwang strongly recommended the use of native herbal herbs while importing insufficient resources from China. He gave a critique of "HyangYakJibSungBang(鄕藥集成方)"'s publication. Hwang's critique didn't lie on the book itself but on the practicality of this large volume from the public. He insisted more on the necessities of practical and easy accessible books for emergency situations. Throughout the emphasis on wide distribution of compact medical books and the utilization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 in part reveals his pragmatic stand.
성호학파에서 다산역학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립되었는지를 살펴 보았다. 다산의 역학은 성호와 하빈으로부터 호체와 효변의 방법을 물려 받았고, 다산은 이러한 1가지 방법으로 "주역"을 아우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역리사법이라고 하는 4가지 방법을 제시하였고, "독역요지"를 통해 18가지 방법으로 보완하였다. 이에 다산의 역학이 성립하게 되는 과정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성호학파의 종장(宗匠)인 성호 이익으로부터 다산은 호체의 방법을 물려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은 호체의 방법은 주자에게서 왔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다산의 주장은 정조의 학술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산은 "주역"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하빈으로부터 효변의 방법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다산은 효변을 주자의 뜻이라고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정조의 학술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다산은 성호로부터는 호체의 방법을 물려받았고 하빈으로부터는 효변을 물려받았지만 다산은 역리사법이라고 하는 4가지 핵심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다산의 현대적 관점은 모기령과 비슷하게 역학사상을 전개했다는 점이 여러 연구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다산 스스로가 서하의 경학관을 비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비슷하다고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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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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