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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주 삼도 파초일엽 자생지 생육 및 관리 현황 연구 (The Study on Conservation and Management of Natural Habitat of Spleenworts on Samdo Island (Asplenium antiquum Makino), Jeju (Natural Monument No. 18))

  • 신진호;김한;이나라;손지원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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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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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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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파초일엽 자생지는 1949년 제주도 삼도에서 최초 발견된 이후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18호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삼도에서만 자생하며, 해방이후 땔감, 도취 등으로 자생지가 크게 훼손되어 거의 멸실에 이르렀으나 이식, 복원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상지는 2011년부터 공개제한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2000년대 자생지 복원 이후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파초일엽 생육실태 변화상에 대한 모니터링과 자생지 관리를 위해 이식, 복원의 기원 등 주요 관리이력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본 연구 결과 지정초기부터 현재까지 자생종 판별, 이식 복원 기록 등 문화재 관리이력을 확보하였고, 복원 이후 약 20년이 지난시점에서 파초일엽 생육변화상을 살펴보았다. 파초일엽 자생지 복원 이력을 살펴보면 1970-80년대에 이식된 개체들은 공식문서가 없었으며 1974년 복원 이식한 개체는 당시 일본 개체로 판단되어 자생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파초일엽 자생종 판별 연구를 통해 유전적으로 자생종으로 판명된 개체를 증식하여 2000년 156본, 2001년 150본을 이식하고 육묘장을 2004년 조성하여 파초일엽을 증식하였다. 자생지 내 파초일엽 생육지는 2곳으로 지점 1은 석축 위에 65개체가 3단에 나누어 밀식하여 자라고 지점 2는 29개체가 2열로 자라는 형태로 조사되었다. 파초일엽이 생육하고 있는 지역의 식생은 참식나무가 우점하는 상록활엽수림지대이며, 조사지점 외 자생 파초일엽 개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복원 후 최초로 자연 발생한 파초일엽 치수의 분포현황을 확인한 점이다. 치수 개체는 약 300개체 이상이었으며, 이 중 밀도가 높은 지점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위한 고정조사구 3개소를 선정하였다. 모니터링 1지점의 파초일엽 치수는 23개체로 개체당 잎수는 4~17장, 길이는 0.5~20 cm이었으며, 2지점은 88개체로 개체당 잎수는 5~6장 길이는 1.3~10.4 cm이었으며, 지점 3은 22개체로 잎 수 5~9장, 잎 길이 4.5~12.1 cm로 나타났다. 파초일엽 자생지는 2011년 공개제한 지역으로 설정되었으나 낚시, 스쿠버행위 등 일부 행위가 허가됨에 따라 자생지의 훼손 발생가능성이 크므로 법의 엄격한 적용과 함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충분한 교육과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학생의 경제이해력 측정 -대구 D대학을 중심으로- (Measure of economic literacy of college students -Focused on D college in Daegu city-)

  • 이상경;박수용
    • 한국정보컨버전스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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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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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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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대구광역시에 소재하고 있는 D대학 대학생 494명을 대상으로 경제이해력을 측정하고 측정된 결과를 통해서, 일반 사회적 특성, 금융경험, 경제생활 경험, 경제교육 경험 등이 경제이해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일반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경제이해력을 먼저 살펴보면, 성별로는 여학생이 평균 48.33, 남학생의 평균이 46.76으로 대체로 낮게 나타났다. 대학생의 전공계열별로는 간호계열 대학생의 경제이해력 평균이 58.67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인문 사회계열평균 53.56, 다음으로 공학계열 49.00, 보건계열 45.78, 예 체능계열 평균 39.64로 경제이해력 평균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부의 학력에 따른 대학생의 경제이해력 평균에 차이가 나타났다. 부의 학력이 중학교졸업 이하인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이 50.1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둔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은 49.57로 나타났으며, 대학원 졸업 학력을 둔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이 35.13으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모의 학력에 있어서도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둔 대학생의 이해력이 49.35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대학원 졸업 학력을 가진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이 40.00으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금융 경험적 특성에 따른 이해력에서는 통장을 개설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의 평균이해력은 48.47로 나타났으며, 개설한 경험이 없는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은 30.20으로 낮게 나타났다. 경제생활 변수에 따른 이해력을 살펴보면 용돈의 수령형태에 있어서 용돈을 거의 받지 않는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이 50.88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필요할 때 마다 수령하는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은 44.23으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경제 교육적 변수에 따른 이해력을 살펴보면 경제 교육을 받았는가의 질문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답한 대학생의 평균이 50.09로 나타났고, 경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답한 대학생의 평균은 45.23으로 나타났다. 경제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답한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은 50.24로 나타났고, 경제교육이 필요치 않다라고 답한 대학생의 이해력 평균은 44.29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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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우리나라 산업보건관리에 관한 문헌분류 및 연구동향 (Trends of Study and Classification of Reference on Occupational Health Management in Korea after Liberation)

  • 하은희;박혜숙;김영복;송현종
    •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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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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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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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산업보건관리영역의 범위를 정하고 이를 분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저자들이 정의한 산업보건관리영역의 범위에 따라 분류하고 이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재분류하였다. 이를 토대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보건관리문헌을 분류하여 연구동향을 파악하고자 정기간행물기사색인에 수록된 21종의 문헌을 분석하였으며 산업보건관리내용에 대한 우선순위 및 향후 산업보건관리 연구 방향을 조명함으로써 앞으로 산업보건관리의 방향설정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산업보건을 전공하고(71.6%) 있었고,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68.3%), 남자가 많았고 연령은 40세 이상이었다. 산업보건관리영역의 분류에 대찬 의견으로는 분류가 필요하다는 찬성의견이 70.0%였고 반대의견은 100.0%였다. 2. 응답자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재분류한 산업보건 관리영역을 크게 산업보건사법과 산업보건사업을 지지해 주는 산업보건관리체계 및 이를 평가하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방법론들로 구분하였다. 3. 산업보건관리 문헌 총 510편을 연도별로 살펴본 결과 연도별로 서서히 증가하다가 1986년 이후에 급격 히 증가하고 있었으며, 학술지별 분포는 대한산업의학회지(18.2%), 한국의 산업의학(15.1%), 예방의학회지(15.1%)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 내용별로는 산업보건관리체계에 대한 연구는 33편(6.5%)에 지나지 않았으며 산업보건사업에 대한 연구가 477편(93.5%)으로 주를 이루고 있었다. 산업보건관리체계에 대한 연구는 산업보건자원체계에 대한 연구가 15편(45.5%), 산업보건재원조달체계 8편(24.2%), 산업보건관리운영체계 6편(18.2%), 산업보건조직체계 3편(9.1%), 산업보건서비스전달체계 1편 (3.0%)의 순이었으며 산업보건사업에 대한 연구는 질병관리 269편(57.2%),보건관리 116편(24.7%),작업환경관리 85편(18.1%)으로 질병관리에 관한 연구가 가장 많았다. 연구대상별로는 일반근로자 대상이 185편(71.1%)으로 가장 많았으며 여성근로자, 전문직, 서비스근로자 순이었다. 4. 산업보건관리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한 의견으로는 산업장근로자들에 대한 건강관리, 작업환경관리, 보건교육 등의 산업보건사업이 가장 필요하다고 하였고 다음으로는 산업보건인력에 대한 교육훈련 및 직무내용, 성인병 및 직업병 의뢰체계, 산업보건조직 등에 관한 산업보건의료체계에 관한 분석 등을 순위로 제시하였다. 5. 산업보건관리영역의 향후 연구방향에 대하여 병의 응답자가 48건의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산업보건사업에 관한 실제적인 연구가 31.3%로 가장 많았으나 조직, 체계에 대한 연구(27.1%), 정보망구축에 관한 연구(8.3%) 등 산업보건체계에 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건강진단에 대한 비용-편익분석 (10.4%), 산업보건사업평가(4.2%), 유해물질폭로평가(2.1%), 노동조건에 관한 연구(6.2%)등 다양한 새로운 분야의 연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보건관리에 관한 연구는 1945년부터 서서히 증가하다가 1986년 이후부터 활발히 진행되어졌고, 대부분의 연구가 산업보건사업에 치중되어 있으며 산업보건관리체계에 대한 연구는 미약함을 알 수 있었다 산업보건사업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도 직업병 실태와 건강관련행태 및 실태를 파악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산업보건관리체계의 경우도 대부분 인력의 실태 파악에 그치고 있어 산업장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산업보건사업에 관한 연구는 계속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더불어 산업보건관리체계 및 근로자참여, 경제성분석, 보건사업 후 평가, 연구방법론(역학연구)등의 연구들도 산업보건관리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향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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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사국립애이미탑십박물관(俄羅斯國立艾爾米塔什博物館)·서북민족대학(西北民族大學)·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편(編) 『아장구자예술품(俄藏龜玆藝術品)』,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2018 (『러시아 소장 쿠차 예술품』) (The State Hermitage Museum·Northwest University for Nationalities·Shanghai Chinese Classics Publishing House Kuche Art Relics Collected in Russia Shanghai Chinese Classics Publishing House, 2018)

  • 민병훈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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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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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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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3층 맨 우측에는, 세계 유수의 실크로드 미술 컬렉션을 상설전시하는 "중앙아시아실"이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초 실크로드를 학술조사한 러시아의 코즐로프(Pyotr Kozlov), 베레조프스키(Mikhail Berezovsky), 올덴부르그(Sergey Oldenburg) 등에 의해 수집된 고고 미술품 들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의 방대한 이들 유물은 그 대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분류하여 공개중이며, 이제까지 독일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한국, 일본 등에서 개최된 특별전시를 통해 그 일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실크로드 탐험대의 성과물을 종합적으로 공개한 대형 기획전시 이 2008년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개최됨으로써, 러시아의 실크로드 관련 유물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번에 간행된 『아장구자예술품(俄藏龜玆藝術品)』(2018)은 중국의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공동으로, 당관 소장 실크로드 유물 가운데 쿠차 지역의 예술품만을 선정하여 출판한 도록이다. 이 도록의 편집과 논고 및 유물 해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 동양부(Oriental Department)의 시니어 큐레이터 키라 사모슉(Dr. Kira Samosyuk)이 담당하였다. 키라 박사는 하라호토(Khara-Khoto)와 서역(西域) 미술 전문가로, 그 이름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의 석학이다. 본서에는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의 쿠차 지역 출토 유물을 망라하여, 중앙아시아 불교미술에 있어서의 쿠차 지역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탐험대가 남긴 현장사진과 스케치 등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소개함으로써, 수집 유물 이외의 귀중한 정보도 아울러 제공하고 있다. 키라 사모슉 박사는 본서의 게재 논문 「The Art of the Kuche Buddhist Temples」에서,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의 개요를 소개하고, 주로 불교시대 쿠차의 역사 전개 과정과 쿠차에 전래된 불교의 양상 그리고 석굴의 벽화 묘사와 그 연대 문제를 논한 후, 벽화의 주제와 소상(塑像), 석굴사원이 예배의 장으로서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키라 박사는 결론으로서, 쿠차 문화는 불교 전파의 역사 가운데 독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유목세계의 여러 민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간다라 미술, 헬레니즘, 고대 이란, 중국 문화와의 관련성 속에서 독자적인 성격을 구축하였음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쿠차 지역에서 형성된 문화는 타림분지뿐만 아니라 돈황(敦煌)과 중원(中原) 지역의 석굴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으로 문장을 마감하고 있다. 키라 박사의 논고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쿠차 지역 석굴의 조성(造成) 연대(年代)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이제까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벽화의 조성 연대에 관한 견해를 소개하며, 벽화의 인물이 착용하고 있는 갑주(甲冑)의 도상(圖像) 특징 등을 소그드 미술 등 주변 지역에서 출토된 관련 자료와 비교하여, 키질의 조성 연대를 기존의 학설보다 백여 년 이상 소급해야 함을 주장하며, 5세기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쿠차 지역 석굴의 조성 시기의 문제는 석굴의 형식 문제를 비롯하여 불화(佛畫)의 주제(主題)와 양식(樣式), 안료(顔料)의 문제, 복식(服飾)이나 두발(頭髮), 제 장식(裝飾) 요소 등을 학제적(學際的) 연구 방법으로 재조명하고, 그 과정에 나타나는 주변 문화권과의 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위에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등 과학적 방법을 보조 자료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제2차세계대전 때 베를린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벽화편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일반인에게는 물론 학계에서도 그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이들 벽화편이 최근에 보존처리를 마치고 일반에게 상설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본서 출판의 경위를 서술한 서언(序言)에는 이번 간행이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쿠차 예술품의 제1차 출판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아마도 보존처리가 끝난 독일 컬렉션을 소개하는 도록의 편집도 예정되어 있는 듯하다. 아울러 투르판과 호탄 지역 문물을 소개하는 도록의 간행도 기대해본다. 현재 쿠차의 석굴사원에서 절취한 벽화편은 러시아와 독일, 한국 등 여러 국가에 분장되어 있다. 이번 도록 출판을 계기로 쿠차 현지의 키질 석굴을 비롯한 제 석굴사원의 잔존벽화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벽화를 함께 소개하여 이들 석굴사원 벽화의 원래 모습을 온전하게 소개하는 종합도록의 간행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동서의 문화가 혼합되어 있고 쿠차 지역 특유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석굴사원의 벽화류 등을 소개하는 도록에는, 각 유물에 대한 보다 상세한 해설이 요망된다. 그리고 미술사 이외에도 보존과학적 측면에서의 안료 분석 등 학제적 조사연구 성과도 포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금의 중국 서부 개발 정책에 따라, 신장 지역의 오아시스에 인구가 과밀 거주함으로써 유발되는 기후변화 등으로 석굴사원의 벽화는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문화계뿐만 아니라 문화재 보존수복(保存修復)의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여러 국가들이 실크로드 석굴벽화의 보존수복을 위해 공동 노력하고 아울러 관련 인적자원 양성 등을 위해 보존과학센터를 운영하는 등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할 때다. 본서는 20세기 초 서구 열강에 의해 추진된 실크로드의 고대 유적 조사 결과 가운데, 러시아 조사대가 쿠차 지역의 석굴사원을 중심으로 거둔 성과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출판물이지만, 향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의 독일 컬렉션 벽화까지 전부 소개될 경우, 쿠차의 불교미술과 실크로드 연구에 크게 공헌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이제까지 축적되어 온 쿠차 지역에 대한 고고미술 연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자 실크로드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서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실크로드 미술 연구의 성과물이자 새로운 편집 체계로서 학적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크로드 미술 연구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키라 사모슉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충남(忠南) 금산군내(錦山郡內) 보건시범부락(保健示範部落)에 대(對)한 기초조사(基礎調査) (A Basic Study on the Health Status in Villages of Kum San Goon, Chung Cheong Nam Do Area)

  • 고병훈
    •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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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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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9-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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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충남(忠南) 금산군내(錦山郡內) 1,141가구(家口) 7,050 가구원(家口員)에 대(對)한 조사결과(調査結果)를 총괄(總括)하면 다음과 같다. 1. 평균(平均) 가구원수(家口員數)는 6.18명(名)(${\pm}2.17$명(名))이며 성비(性比)는 105.5로 비교적(比較的) 높은 편(便)이며, 20세미만(未滿)의 인구(人口)가 51.6%를 점(占)하고 인구증대형(人口增大型)의 구성(構成)을 가지고 있었다. 2. 문맹률(文盲率)이 12.1%이며 고교졸업이상(高校卒業以上)의 부락민(部落民)은 4.1%에 불우(不遇)했다. 주민(住民)의 79.8%가 유직(有職)이며 이 중 농업(農業)이 46.1%였다. 가옥소유형태별(家屋所有形態別)로는 자택(自宅)이 95.2%이고 무주택률(無住宅率)은 4.8%였다. 3. 보건소(保健所)나 보건지소(保健支所)를 1년간(年間)($73.4.1{\sim}74.3.31$)에 이용(利用)한 가구(家口)는 72.0%였으며, 빈도(頻度)에 있어서는 $2{\sim}4$회(回)가 26.8%로 가장 높았고 이용목적(利用目的)은 예방접종(豫防接種) 35.7%, 치료(治療) 26.7%, 가족계획(家族計劃) 24.1%, 모자보건(母子保建) 10.5%의 순(順)이었다. 4. 주민(住民)들의 보건소(保健所)및 지소(支所) 이용도(利用度)는 연간(年間) 가구당(家口當) 4.4회(回)이며 주민(住民) 1인당(人當) 0.75회(回) 이용(利用)했다. 5. 출생률(出生率)은 人口(人口) 1,000명당(名當) 19.1, 사망률(死亡率)은 7.5로 자연증가율(自然增加率)은 1.16%였다. 6. 가임여성(可妊女性)($20{\sim}40$세)의 37.7%가 미혼자(未婚者)였고, 연령별(年齡別) 출산회수(出産回數)의 총계(總計)에 있어서는 $36{\sim}40$세의 17.1%가 가장 높았다. 7. 미혼자(未婚者)가 61.4%로 연소층(年少層)이 많은 인구구성(人口構成)을 가지고 있으며 남여별(男女別)로 보면 미혼남자(未婚男子)가 67.2%, 미혼여자(未婚女子)가 57.6%이었다. 8. 기혼자(旣婚者) 2,711명중(名中) 가족계획(家族計劃) 실시자(實施者)는 612명(名)(22.57%)에 불과(不過)하였으며, 남여별(男女別)로 보면 남자(男子) 8.33%, 여자(女子) 34.82%가 실시(實施)하고 있었다. 실시자(實施者)의 16.01%만이 영구피임방법(永久避妊方法)을 사용(使用)하였고 83.98%는 일시적(一時的)인 피임방법(避妊方法)을 사용(使用)하고 있었다. 9. 예방접종(豫防接種)은 대상자(對象者)의 57.7%에서 실시(實施)되었으며 종별(種別)로는 B.C.G vaccine 82.7%, D.P.T. vaccine 76.2%, Poliovaccine 67.9%, 종두(種痘) 62.6%의 순(順)이였다. 10. 의료기관리용(醫療機關利用)에 있어서는 약국(藥局) 32.16%, 병의원(病醫院) 28.65%, 보건소(保健所) 및 지소(支所) 17.96%, 한약방(漢藥房) 7.36%, 그리고 한의원(漢醫院) 6.31%이었다. 질병(疾病)으로는 신경통(神經痛)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소화기계질환(消化器系疾患), 호흡기계(呼吸器系) 및 피부병(皮膚病)의 순서(順序)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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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안전교육의 연구 동향 분석 (An Analysis of the Research Trends in Safety Education for Home Economics Education)

  • 김남은
    •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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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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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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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의 목적은 가정교과에서의 안전교육 관련 연구 동향을 파악하여 이 분야에서의 다양하고 균형 있는 연구개발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2001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게재된 가정교과 관련 15개 학회지의 논문 중 '안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경우와 안전교육 영역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논문(244편)과 '안전'을 키워드로 제시하여 검색한 석 박사학위 논문(179편)을 대상으로전집 표집하였다. 분석 내용은 안전교육 관련 논문의 연도별 주제별 연구동향과 안전교육의 영역별 연구방법별 연구동향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정과 교육에서 안전 교육에 관한 연도별 연구논문의 편수는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여 매년 14-52편으로 연간 평균 28.2편 정도 지속적인 안전교육에 관련된 연구가 이어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15년에는 논문 연구수가 2014년의 26편의 2배인 52편으로 가장 많은 연구가이루어졌는데 이는 정부의 안전종합대책 발표와 교육부의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의 안전내용 강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연구 주제의 동향을 살펴보면 안전교육관련 논문은 137(29%)편, 안전실태 관련 논문은 336편(71%)으로 2009년 이전에는 사고 실태나 인식 조사가 많은 비율을 차지(74.4%)하였고 반면, 2009년 이후에는 안전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나 효과 검증, 교육자료 개발, 교육방법 개발 등에 대한 연구가 증가(21편${\rightarrow}$53편)하였다. 안전실태 연구 중 가장 많이 다룬 주제영역은 안전사고와 관련이 있거나 영향을 주고 받는 변인에 대한 주제로(23.2%) 그 변인과 관련된 주제는 가정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인터넷 중독의 영향 요인, 부부 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위험 식품 구매 의사 영향 요인, 또래 괴롭힘 요인, 자살시도 요인 등과 관련된 연구 등이었다. 다음으로 안전 인식에 관련된 연구(13.9%), 안전지식 및 태도(7.4%), 안전행동(6.3%), 안전의식(2.3%)의 순으로 나타났다. 안전교육 관련 연구 중 가장 많이 다룬 주제영역은 안전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11%)로 연도별로는 2015년에 가장 많았다(21.1%). 셋째, 안전교육의 8개 영역 중 생활안전이 143편(33.8%), 폭력 및 신변 안전 106편(25.1%), 안전에 대한 일반적인 주제나 안전의 영역 전체를 다룬 논문 93편(22%), 약물 및 인터넷 중독 안전 58편(13.7%) 순으로 나타났고, 응급처치와 관련된 논문은 없었으며, 직업안전의 경우 1편(0.2%)이었다. 직업안전의 영역은 가정교과에 관련단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게 연구되고 있었고 응급처치는 가정교과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실습수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여 연구될 필요가 있다. 넷째, 연구방법별 연구동향을 살펴보면 연구유형은 양적연구가 대부분(89.1%)으로 조사연구(70.4%)와 실험연구(18.7%)가 대표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안전교육의 실태조사연구와 효과 검증인 실험연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질적연구로는 안전사고 실태와 관련된 현상학적 연구(3.1%)와 사례연구(3.1%)가 있었다. 양적연구와 질적연구가 혼합된 형태는 10편(2.4%)이며, 조사연구와 실험연구가 동시에 진행된 연구도 있었다(0.9%). 연구대상에서 인적환경에 대한 연구(87.5%)가 물리적 환경에 대한 연구(12.5%)보다 많았고 교사나 학부모에 대한 연구(20.6%)에 비해 학생에 관한 연구(48.4%)가 많았다. 물리적인 환경 대상은 학교(6.5%)가 가장 많았지만, 가정환경에 대한 연구는 하나도 없었다. 본 연구의 결과, 추후에는 안전교육을 평가하는 평가도구 개발 연구와 직업안전에 대한 연구, 평생교육 측면을 주제로 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연구대상을 전 생애 관점의 인적환경과 함께 가정을 대상으로 한 물리적 환경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학생 개개인을 관찰하고 면담을 통한 심도 있는 질적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농촌영유아의 영양상태(營養狀態)에 관(關)한 조사연구(調査硏究) (A Study on Nutritional Status of Young Children in Rural Korea)

  • 김경식;김방지;남상옥;최정신
    •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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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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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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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The writers have conducted the investigation to assess the nutritional status of young rural Korean children aged from 0 to 4 years old in August 1971. The survey areas were Kaejong-myon. Daeya-myon, Okku-gun, Jeonra-bukdo, Korea. These survey areas were typical agricultural plain areas. The total numbers of children examined were 2,706 comprising 1,394 male and 1,312 female. The weight, height, and chest circumference of children were measured and means and standard deviations. were calculated for each measurement. In addition, the nutritional status of each child was classified by the four levels of malnutrition and the Gomez classification, The examination of red blood cell count, haematocrit value, and intestinal parasite infection were carried out at the same time. In general, recent work tend to suggest that environmental influences, especially nutrition, are of great importance than genetic background or other biological factors for physical growth and development. Certainly the physical dimensions of the body are much influenced by nutrition, particularly in the rapidly growing period of early childhood. Selected body measurements can therefore give valuable information concerning protein-calory malnutrition. Growth can also be affected by bacterial, viral, and parasitic infection. For the field workers in a developing country, therefore, nutritional anthropometry appears to be of greatest value in the assessment of growth failure and undernutrition, principally from lack of protein and calories. In order to compare and evaluate the data obtained, the optimal data of growth from the off-spring of the true well-fed, medically and socially protected are needed. So-called 'Standards' that have been compiled for preschool children in Korea, however, are based on measurement of children from middle or lower socio-economic groups, who are, in fact, usually undernourished from six months of age onwards and continuously exposed to a succession of infective and parasitic diseases. So that, the Harvard Standards which is one of the international reference standards was used as the reference standards in this study. Findings of the survey were as follows: A. Anthropometric data: 1) Comparing the mean values for body weight obtained with the Korean standard weight of the same age, the rural Korean children were slightly haevier than the Korean standard values in both sexes. Comparing with the Japanese children values, the rural Korean children were slightly haevier in male and in the infant period of female but lighter in female of the period of 1 to 4 years old than Japanese children. 2) Comparing the mean values for height obtained with the Korean standard height of the same age, the rural Korean children were taller than the Korean standard values except the second half of infatn period in both sexes. Comparing with the Japanese children, the rural Korean children were slightly smaller than Japanese children except the first half of infant peroid in both sexes. 3) Mear values of chest circumference of rural Korean children obtained were less than the Korean standard values of the same ages in both sexes. B. Prevalence of Protein-Calory Malnutrition: Children examined were devided into two groups, i. e., infant(up to the first birthday) and toddler (1 to 4 fears old). 1) Percentages of four levels of malnutrition: a) When the nutrtional status of each child was classified (1) by body weight value, the percentages for male and female of children attained standard growth were 52.8%(infant 83.3%, toddler 44.4%) and 39.7% (infant 74.5%. toddler 30.5%), the first level of malnutrition were 31.9%(infant 13.7%, toddler 36.9%) and 31.7%(infant 15.3%, toddler 36,0%), the second level of malnutrition were 12.3%(infant 1.7%, toddler 15.3%) and 23.3% (infant 7.7%, fodder 27.5%), the third level of malnutrition were 2.7%(infant 0.7%, toddler 3.2%) and 4.6%(infant 1.8%, toddler 5.3%) the fourth level of malnutrition were 0.3% (infant 0.7%, toddler 0.2%) and 0.7% (0.7% for infant and toddler) respectively. (2) by height value, the percentages for male and female of children attained standard growth were 80.3% (infant 97.3%, toddler 75.6%) and 75.1% (infant 96.4%, toddler 69.5), the first level of malnutrition were 17.9% (infant 2.0%, toddler 22.3%) and 23.6% (infants 3.6%, toddler 28.8%), the second level of malnutrition were 1.2% (infant 0.3%, toddler 1.5%) and 1.1% (infant 0%, toddler 1.4%), the third level of malnutrition were 0.4%(infant 0.3%, toddler 0.5%) and 0.2%(infant 0%, toddler 0.3%), the fourth level of malnutrition were 0.1%(infant 0%, toddler 0.1%) and 0% respectively. (3) by body weight in relation to height, the percentages for male and female of children attained standard growth were 87.9% (infant 77.6%, toddler 87.9%) and 78.2% (infant 77.4%, toddler 78.2%), the first level of malnutrition were 12.2% (infant 18.4%, toddler 10.6%) and 18.2% (infant 17.9%, toddler 18.3%), the second level of malnutrition were 1.9%(infant 3.3%, toddler 1.5%) and 3.0%(infant 3.3%, toddler 2.9%), the third level of malnutrition were 0.1%(infant 0%. toddler 0.1%) and 0.5% (infant 0%, toddler 0.6%), the fourth level of malnutrition were 0.1%(infant 0.7%, toddler 0%) and 0.3% (infant 1.5%, toddler 0%) respectively. b) When the nutritional status of each child according to the mother's age at perturition, i. e., young aged mother (up to 30 years old), middle aged mother (31 to 40 years old) and old aged mother (41 years or above) was classified (1) by body weight, among infants and toddlers, at each year of age, with increasing the mother's age, there was an increase in percentage of subjects underweight. This tendency of increasing percentage of underweight was more significant in the infant period than the toddler period. (2) by height value, no significant differences between each mother's age group were found. c) When the nutritional status of each child according to the birth rank, i. e., lower birth rank (first to third) and higher birth rank (fourth or above) was classified (1) by weight value, children of higher birth rank were slightly more often underweight than those of lower birth rank, but not significant. (2) by height value, no differences were found between children of lower and higher birth rank. 2) Gomez Classification: When the nutritional status of each child was classified a) by body weight value, the percentages for male and female of children. attained standard growth were 53.1% (infant 82.6%, toddler 44.9%) and 39.2% (infant 73.4%, toddler 30.1%), the first degree of malnutrition were 39.4% (infant 14.7%, toddler 46.2%) and 47.1% (infant 21.9%, toddler 53.8%), the second degree of malnutrition were 7.3%(infant 2.3%, toddler 8.6%) and 12.9% (infant 4.0%, toddler 15.2%). and the third degree of malnutrition were 0.2%. (infant 0.3%, toddler 0.2%) and 0.8% (infant 0.7%, toddler 0.9%) respectively. b) by height value, the percentages for male and female of children attained standard growth were 80.8% (infant 97.0%, toddler 76.3%) and 73.8%(infant 95.6%, toddler 68.0%), the first degree of malnutrition were 18.5% (infant 2.7%, toddler 22.9%) and 24.6% (infant 4.4%, toddler 30.0%), the second degree of malnutrition were 0.6%(infant 0.3%, toddler 0.7%) and 0.5% (infant 0.1%, toddler 0.7%), and the third degree of malnutrition were 0.1%(infant 0%, toddler 0.1%) and 1.1% (infant 0%, toddler 1.3%) respectively. C. Results of clinical laboratory examination: 1) Red blood cells: The ranges of mean red blood cell counts for male and female were $3,538,000/mm^3\;to\;4,403,000/mm^3\;and\;3,576,000/mm^3\;to\;4,483,000/mm^3$ respectively. The lowest red cell counts were seen at the age of 0-3 months for male and 1-2 months for female. 2) Haematocrit value : The ranges of haematocrit value of male and female were 35.1% to 38.8% and 34.7% to 38.8% respectively. The lowest haematocrit values were seen at the age of 2-3 months for male and 1-2, months for female. 3) The prevalence rates of intestinal parasites for male and female children with Ascaris lumbricoides were 34.1% (infant 18.8%, toddler 38.1%) and 36.0%(infant 18.4%, toddler 40.7%), with Trichocephalus trichiuris were 6.8% (infant 2.9%, toddler 7.9%) and 9.0% (infant 3.0%, toddler 10.6%), with Hookworm were 0.3% (infant 0.5%, toddler 0.2%) and 0.3% (infant 0.5%, toddler 0.3%), with Clonorchis sinensis were 0.4%(infant 0%, toddler 0.5%) and 0.1%(infant 0%, toddler 0.1%) respe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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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Kim Eung-hwan's Official Excursion for Drawing Scenic Spots in 1788 and hi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 오다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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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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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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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은 금강산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그린 60점의 실경산수화와 51편의 기문(記文)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규모와 화풍에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림의 특징은 화면을 가득 채운 구성과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파격적인 화법, 산석(山石)의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표현 등이다. 1973년의 특별전, '한국미술이천년(韓國美術二千年)'을 처음으로 화첩의 일부만 공개되었던 작품은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그 전모가 공개되었다. 《해악전도첩》이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화첩의 마지막 장에 쓰여진 관지(款識)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칠보대>에 찍힌 '복헌'이라는 도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환을 지시하는 관지와 도장은 모두 후대에 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화첩을 둘러싼 여러 요소를 고찰하여 제작자를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악전도첩》 제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18세기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과 봉명사경을 살펴보았다. 정선(鄭敾)(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1711)을 비롯하여 심사정(沈師正)(1707~1769), 김윤겸(金允謙)(1711~1775), 최북(崔北)(1712~1786 이후), 강세황(姜世晃)(1713~1791) 등은 조선 후기 최고의 여행지였던 금강산을 유람하고 기행사경도를 제작하였다. 화가들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여 내금강의 명승명소를 주로 그렸고, 자신들이 경험한 장소를 새롭게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기행사경도는 여행을 기념하며 동행자나 후원자를 위해 여러 장면을 담을 수 있는 화첩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개별적인 금강산 기행사 경도의 제작이 증가하는 가운데 1788년에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도화서 화원인 김응환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에게 영동9군과 금강산의 명승(名勝)을 그려오도록 명한 일은 공적 업무였다. 정조는 이들의 관계 및 지방관으로서의 경력, 서로 다른 화풍 등을 고려해 봉명사경의 화원으로 선발하였다. 김응환과 김홍도는 영조(英祖)(재위 1724~1776)조부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선후배이자 동료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아가 이들은 영남 지역의 찰방(察訪)으로서 지방관의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두 화원의 화풍은 서로 달라 김홍도는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필선을 운용한 반면, 김응환은 굳세면서도 울창한 풍치를 잘 표현했다. 두 명의 화원은 각자의 개성으로 봉명사경 기간 동안 100여 폭의 초본을 그렸고, 이를 선별하여 60~70여 폭의 화첩 혹은 두루마리를 완성하였다. 이들의 그림은 18세기 전중반에 내금강과 관동팔경 위주로 제작된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영동과 외금강의 명승명소를 새롭게 발견하며 소재를 확장시켰다. 현재 《해악전도첩》은 원(元), 형(亨), 이(利), 정(貞) 4책으로 이루어졌는데, 원(元), 형(亨)책은 내금강의 그림 29점이며 이(利)책은 외금강의 장면 17점, 정(貞)책은 해금강과 관동팔경 14점으로 구성되었다. 비단 위에 그려진 각 그림은 기하학적으로 산석을 표현했으며, 연백으로 금강산의 암봉을 흰색 혹은 회청색으로 표현했다. 《해악전도첩》의 구도와 화법은 정선, 강세황, 심사정, 정충엽(鄭忠燁)(1725~1800 이후), 김응환, 김홍도의 화법과 비교할 수 있어 18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을 갖는다. 특히 화첩의 일부 그림은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海東名山圖帖)》(1788)과 구성 및 회화적 모티프가 매우 유사하여 두 화첩간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영랑호>, <해산정>, <월송정> 등은 김홍도의 그림과는 구별된다. 이를 통해 화가가 김홍도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첩을 제작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해악전도첩》에는 다른 화첩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운담>, <백운대>, <안문점망비로봉>, <백정봉>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장면마다 경물의 특징을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화가는 산석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선과 면을 도드라지게 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그는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확립했고 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화면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했다. 이처럼 60점의 그림은 거칠고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 안에서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본고는 화법과 봉명사경의 정황을 종합해 《해악전도첩》의 제작자를 김응환으로 추론하였다. 나아가 김하종(金夏鍾)(1793~1878 이후)의 《풍악권(楓嶽卷)》(1865년 이후)과의 친연성은 《해악전도첩》의 화가를 김응환으로 추정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해산첩》과는 달리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미비한데 김하종의 《풍악권》만이 《해악전도첩》의 소재와 화법을 따르고 있다. 김하종은 《풍악권》에서 50년 전, 춘천부사 이광문(李光文)(1778~1838)을 위해 제작한 《해산도첩》(1816)과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김응환의 《해악전도첩》과 유사한 구성과 회화적 요소, 화보식 인물표현을 따르면서 사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개성김씨의 일원이자 김응환의 종손인 김하종은 가문에 전해지는 《해악전도첩》류의 그림을 감상했고 이를 새롭게 번안했다고 추측된다. 화첩에 포함된 51편의 기문은 그림 다음 장에서 그려진 장소를 설명하고 있어 각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문은 그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앞의 장소로부터의 이동 정보, 이름의 유래, 지형적 특징, 관련 정보 등이 서술되었다. 이와 같은 백과사전식 혹은 지리지와 같은 기문은 19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금강산 화첩류에 더해졌다. 《해악전도첩》의 백화암 기문에는 1845년의 암자에 대한 중건 내용이 기록되어, 기문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김하종에게 《풍악권》을 주문한 이유원(李裕元)(1814~1888)도 각 그림에 글을 붙였는데 이 글들은 김응환의 화첩에 포함된 기문 51편과 내용 및 서술방식이 흡사하다. 이유원의 기문은 《해악전도첩》의 기문이나 그 초고(원본)와 관련성이 높지만 두 화첩의 기문 필사의 선후관계를 판정하는 데에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봉명사경 초본 및 김홍도의 영향으로 제작된 19세기의 금강산 화첩과는 구별된다. 이 화첩은 화원 김응환의 회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고 18세기 후반 실경산수화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 /
    • 제96권
    • /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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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16세기(十六世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畫) 이해의 확장 : <경포대도(鏡浦臺圖)>, <총석정도(叢石亭圖)>를 중심으로 (Broadening the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 이수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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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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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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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을 받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2019년)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인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조선시대 회화사 이해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지대하다. 두 작품이 1557년의 관동 유람을 계기로 그려진 병풍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어서 16세기 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밝히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에 담긴 경물의 내용을 살펴보고 제작시기와 양식상의 특징을 분석한 후,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 작품에 담긴 회화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은 <총석정도>의 발문으로 알 수 있다. 본고에서 박충간(朴忠侃)(?~1601)으로 비정한 정상일로(商山逸老)가 1557년 봄에 홍연(洪淵)(?~?)과 함께 금강산(풍악산)과 관동 지역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을 작성하였으며 시간이 흐른 뒤 그중 몇몇 명승지를 그려 병풍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연은 자가 덕원(德遠)으로 1551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84년까지는 생존했던 인물이다. 박충간은 호가 남애(南崖)로서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그 공으로 형조참판으로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된 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 글로 작품의 제작 시기를 1557년의 유람 후이자, 발문을 쓴 박충간이 50대 이상이 되는, 1571년 이후 곧 16세기 후반경으로 보았다. 산수나 나무 표현 등의 화풍을 기준으로도 16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과 부합한다. 전술한 발문의 내용으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가 병풍의 일부였던 것을 알수 있으며, 발문이 써 있는 <총석정도>가 마지막 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포대도>를 보면 구도면에서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편파(偏頗) 3단 구도의 요소를 찾을 수 있으나 실경(實景)을 대상으로 하여 그 배치와 화법이 현실화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시점(視點)에 있어서도 여러 경물간의 관계나 경관의 특징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도록 사선각(斜線角)의 부감시(俯瞰視), 정면시(正面視) 등을 활용하여 경포대의 넓은 영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다각적(多角的)인 관점(觀點)을 보여준다. 산의 형태나 태점(苔點)의 사용은 1557년작 <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매우 유사하다. 16세기 안견파의 특징인 짧은 선이나 점으로 질감을 내는 단선점준(短線點皴)과 구름 모양 운두준(雲頭皴)은 현장감 있게 변모되었다.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전통적인 구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경포대도>와 달리 <총석정도>는 그 구도가 매우 파격적이다. 화면에 중심축을 두고 돌기둥들이 첩첩이 도열하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데 근경(近景)의 돌기둥, 중앙의 사선봉(四仙峯), 절벽 위의 사선정(四仙亭)을 삼단계 정도의 깊이감으로 배치하여 화면에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중앙의 사선봉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고 있으나 수직적인 돌기둥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질적(分節的), 평면적(平面的)인 양상으로 그려져 아직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조성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둥의 아랫부분은 희게 하고 윗부분은 어둡게 하여 고원(高遠)의 상승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각 기둥을 묘사하는 준법을 보면 기둥으로 설정된 면에 담묵을 바르고 그 위에 농묵의 가는 선들을 그어 총석의 질감과 쪼개짐을 묘사하였다. 붓끝을 사선으로 누르며 수직으로 내려 긋고 있어서 부벽준(斧劈皴)의 초기적 양상을 보인다. 일관되게 보이는 이러한 흑백의 대조, 수직적 준법의 구사는 앞으로 전개될 절파계(浙派係) 화풍의 유행을 예시해준다. 한편 기둥의 윤곽 및 균열문이 각각 다 달라서 실제의 특징을 살리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에 올라앉은 새들의 묘사, 파도와 흰 거품의 표현 등에서 반복적인 붓질을 찾을 수가 없고 매우 생생한 묘사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경물 배치는 이후 변화를 보인다.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죽도(竹島)를 두고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 건물과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였다. 이러한 배치는 경포대를 화면 아래쪽에 두고 위쪽의 바다를 향하는 18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며 그린 <총석정도> 역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륙에서 바다를 향하는 것으로 관점의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정선(鄭敾)(1676~1759)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작품이 제작된 이후, 두 사람의 구도를 따라 관동도의 유형이 정착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라진 듯 했던 16세기 <경포대도>의 구도가 조선 말기 <강릉 경포대도>에서와 같이 민간 회화에서 전승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관동 지역의 명승도는 이른 시기부터 그려져 고려 김생(金生)(711~?)의 관동도(關東圖), 조선 초 안견(安堅)(15세기 활동)의 낙산사도(洛山寺圖) 등 여러 화가가 단폭이거나 여러 폭의 관동도를 병풍이나 첩 형태로 그렸던 것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많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본고에서 고찰하는 이 두 점은 현존하는 관동도 중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예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관동도(關東圖) 병풍(屛風)의 제작 양상을 알게 해주어 회화사적인 의미가 크다. 특히 발문의 내용에 따라 8폭 병풍일 것으로 생각되어 16세기 후반에 이미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형식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격에 있어서 현존하는 16세기 실경산수화의 예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모두 실용적, 공적인 목적의 계회도나 기록화로 제작되어 실경산수화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실제 경관을 대상으로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발문을 쓴 박충간은 유람할 때 지었던 감상시를 곁들여 자연의 진면목을 반추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기존에 알려진 실경산수화의 성격과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순수 감상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실경산수화의 예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이처럼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두 작품은 유람의 결과를 시화(詩畫)로 제작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존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지대하다. 또한 그간 확인할 수 없었던 16세기 실경 산수화의 다양한 형태와 구도 및 시점의 면모를 보여주어 한국 실경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