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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지게 식립된 임플랜트 모형에서 지대주를 인상용 코핑으로 이용한 새로운 인상법의 정확성 비교 연구 (Comparative accuracy of new implant impression technique using abutments as impression copings with an angulated implant model)

  • 이혁재;김창회;임영준;김명주
    • 대한치과보철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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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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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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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연구목적: 시멘트 유지형 지대주를 인상용 코핑으로 이용하고 레진이나 금속 구조물에 접착하여 스플린팅하는 새로운 인상법을 시도하였다. 연구의 목적은 첫 번째, 3개의 임플랜트가 $15^{\circ}$ 경사지게 식립된 모형에서 closed tray 인상법과 레진 스플린팅한 open tray 인상법의 정확성을 비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새로운 인상법의 정확성을 앞의 두 가지 인상법과 비교하는 것이다. 연구 재료 및 방법: 3개의 임플랜트 아날로그가 선상으로 배열되고 가운데 아날로그는 모형에 수직이고 양쪽 끝 아날로그는 이것에 앞뒤로 $15^{\circ}$ 경사지게 배열된 주모형과 주모형에 잘 적합되는 기준구조물을 제작하였다. closed tray 인상법, 레진 스플린팅한 open tray 인상법, 지대주-레진구조물 접착 인상법, 지대주-금속구조물 접착 인상법, 각 10개씩 40번의 인상을 채득하여 복제모형을 제작하였다. 이미지 처리할 수 있는 광학 현미경을 이용하여 기준구조물과 복제모형내의 아날로그와의 수직간격을 측정하여 인상의 정확성을 평가하였다. 통계처리는 one-way ANOVA와 사후 검정으로 Tukey test를 5% 유의수준으로 시행하였다. 결과: closed tray 인상법;74.3 (${\pm}33.4$)${\mu}m$의 간격은 레진 스플린팅한 open tray 인상법과 다른 두 가지 새로운 인상법보다 간격의 크기가 통계적 유의성 있게 컸다(P<.05). 지대주-금속구조물 접착 인상법;42.5 (${\pm}11.9$)${\mu}m$은 다른 인상법들 보다 간격의 크기가 통계적 유의성 있게 작았다(P<.05). 지대주-레진구조물 접착 인상법;51.0 (${\pm}14.1$)${\mu}m$은 레진 스플린팅한 open tray 인상법50.3 (${\pm}16.9$)${\mu}m$과 통계적 유의성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P>.05). 결론: 이 연구의 한계 내에서, 레진 스플린팅한 open tray 인상법은 closed tray 인상법보다 우수한 정확성을 나타내었고, 지대주를 금속구조물에 접착하는 새로운 인상법의 정확성은 레진 스플린팅한 open tray 인상법보다 우수하였다.

다목적실용위성탑재 전자광학카메라(EOC)의 성능 특성 (Characteristics of the Electro-Optical Camera(EOC))

  • Seunghoon Lee;Hyung-Sik Shim;Hong-Yul Paik
    • 대한원격탐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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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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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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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1999년에 발사될 다목적실용위성1호의 주 탑재체인 전자광학카메라는 한반도의 디지털 지도(입체지도 포함) 작성을 위한 영상자료를 획득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있다. 센서부와 전자부로 구성된 전자광학카메라는 파장 510∼730nm의 가시광선영역에서 6.6m의 지상해상도와 관측 폭 17km 이상의 흑백영상을 위성체 자세제어에 의한 조준과 푸쉬브룸 방식으로 촬영한다. 3년 이상의 임무수명을 가진 본 기기의 고해상도 흑백영상 촬영시간은, 98분인 위성궤도 당 2분간 연속 수집되어 그 지상영상의 길이는 800km에 이르며, 운용 중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이득률과 옵셋, 그리고 자체 내에 영상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F수 8.3인 비차폐 3면 반사식 광학계에 의해 수집된 영상은 각각 8 bit 전자신호로 처리되어 25Mbps의 송신율을 가지고 지상국으로 보내진다. 제작된 전자광학카메라는 각종 시험을 통하여, 그 설계에서 요구되었던 기술사양을 만족하거나 능가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전자광학카메라로 획득된 영상자료의 최종 사용자들을 위하여 그 분광특성, MTF(Modulation Transfer function), 2592개 CCD 화소의 상대적 반응비등의 중요 성능특성 측정값을 설명하였다. 이득율을 변화시키며 측정한 분광특성 결과는 전자광학카메라의 영상자료 사용자가 더 정확한 흑백영상을 만드는데 이용되리라 본다. 영상품질을 가름하는 중요한 특성인 MTF는 시계각 전부에 걸쳐 Nyquist 진동수에서 측정값이 요구값 10%를 넘어 16% 이상을 보이므로써 이 전자광학카메라가 우수한 성능을 가진 것이 입증되었고, 각 CCD 화소들의 상대적 반응도를 측정한 결과에서도 상당히 고른 특성을 확인함과 함께, 차후 전자광학카메라의 영상자료 처리과정을 위하여 정밀한 상대 비교값을 제공하였다.

지능형 전망모형을 결합한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 (Robo-Advisor Algorithm with Intelligent View Model)

  • 김선웅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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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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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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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은행과 증권회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로보어드바이저 금융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사람 대신 컴퓨터가 포트폴리오 자산배분에 대한 투자 결정을 실행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산배분 알고리즘이 활용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표적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인 블랙리터만모형의 강점을 살리면서 객관적 투자자 전망을 도출할 수 있는 지능형 전망모형을 제안하고 이를 내재균형수익률과 결합하여 최종 포트폴리오를 도출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자산배분 알고리즘을 새로이 제안하며, 실제 주가자료를 이용한 실증분석 결과를 통해 전문가의 주관적 전망을 대신할 수 있는 지능형 전망모형의 실무적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동안 주가 예측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었던 기계학습 방법 중 SVM 모형을 이용하여 각 자산별 기대수익률에 대한 예측과 예측 확률을 도출하고 이를 각각 기대수익률에 대한 투자자 전망과 전망에 대한 신뢰도 수준의 입력변수로 활용하는 지능형 전망모형을 제안하였다. 시장포트폴리오로부터 도출된 내재균형수익률과 지능형 전망모형의 기대수익률, 확률을 결합하여 최종적인 블랙리터만모형의 최적포트폴리오를 도출하였다. 주가자료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의 132개월 동안의 8개의 KOSPI 200 섹터지수 월별 자료를 분석하였다. 블랙리터만모형으로 도출된 최적포트폴리오의 결과가 기존의 평균분산모형이나 리스크패리티모형 등과 비교하여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In-Sample 자료에서 최적화된 블랙리터만모형을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Out-Of-Sample 기간에 적용한 실증분석 결과에서 다른 알고리즘보다 수익과 위험 모두에서 좋은 성과를 기록하였다. 총수익률은 6.4%로 최고 수준이며, 위험지표인 MDD는 20.8%로 최저수준을 기록하였다. 수익과 위험을 동시에 고려하여 투자 성과를 측정하는 샤프비율 역시 0.17로 가장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증권계의 애널리스트 전문가들이 발표하는 투자자 전망자료의 신뢰성이 낮은 상태에서, 본 연구에서 제안된 지능형 전망모형은 현재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실무적 관점에서 본 연구는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경복궁 건물 유형에 따른 적심 연구 (The Study on Foundation Remains(Jeoksim) According to Types of Buildings of Gyeongbok Palace)

  • 최인화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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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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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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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현재 경복궁에 대한 연구는 건축사 문헌사 미술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연구는 현전(現傳)하는 건물과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음으로 궁궐 전체를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양호한 상태로 잔존해 있는 경복궁 건물지 유구, 특히'적심(積心)'은 이러한 연구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고고(考古)학 자료라 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경복궁의 '적심'에 대하여 분석하여, 형태 규모 재료 축조방식에 따라 그 형식을 분류하고, 이것이 건물 기초로써 상부 건물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궁궐 건물 유형별 사용된 적심을 검토하고, 시기별 변천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복궁 건물지 적심은 총 21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각 건물 유형에 따라 건물의 기초 즉 적심도 달리 축조되며, 시기별로도 적심의 축조방식 및 재료 등이 변화하여,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적심의 형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복궁 적심은 평면 형태에 따라 원형(I), 말각방형(II), 세장방형(III), 방형(IV), 통적심(V)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다시 축조방식과 사용된 재료에 따라 21가지 형식으로 세분된다. 특히 조선전기 14~16세기에는 원형 잡석 적심(I-1), 말각방형 장대석(II-1), 말각방형 잡석+와전(II-2a) 세 가지 형식의 적심만 축조되다가, 조선후기 19세기에 들어 21가지 분류한 모든 적심이 다양하게 축조된다. 19세기 고종연간 내에서도 연대별로 각기 다른 형식의 적심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재료에서 두드러진 차이점이 확인된다. 경복궁을 재건한 고종 2년(1865)~고종 5년(1868)에 축조된 적심 10가지 형식 중 무려 7가지가 와전편을 섞어 넣은 형식인 반면, 고종 10년(1873)과 고종 13년(1876) 혹은 고종 25년(1888)에는 축조된 5가지 형식 중 3가지가 강회를 섞어 넣은 사질토를 사용한 형식으로 대조를 이룬다. 궁궐 건물은 '주인의 신분과 용도'에 따라 건물의 서열이 정해지고, 건물의 이름 뒤에 가장 중요하고 격이 높은 순서대로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 등의 명칭이 붙어 그 유형이 구분되며, 그 격에 맞추어 건축물이 축조된다. 이 건물 유형별 사용된 적심을 검토한 결과, 건물의 유형(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에 따라 그 기초, 즉 적심도 달리 축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 자료의 한계 상'전', '당', '각', '방'등 일부 건물 유형만 확인되었는데, '전'과 '각'의 경우 장대석으로 축조한 방형 적심(IV)이, '당'과 '방'의 경우 기와와 잡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말각방형 적심(II)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기타 건물명을 알 수 없는 경우는 대부분 조선전기 선대(先代) 건물지의 적심임으로, 조선전기에 원형 잡석 적심(I-1)이 많이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주인의 신분이 높고 격이 높은 건물일수록 건축물도 격이 높듯이, 그 기초부, 즉 적심 또한 가장 견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당'과 '방'은 같은 말각방형 적심이 사용되었지만, '당'은 잡석과 와전편을 주재료로 사용한 II-2a(잡석+와전편 말각방형 적심)형식이, '방'은 II-2a형식의 상면에 15~20cm 가량 와전편을 깐 II-2b(와전편+(잡석+와전편 말각방형적심)) 형식이 많아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건물 유형별 적심은 시기별로 축조되는 형식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과 '각'의 경우 모두 14~15세기 조선전기에는 I-1형식(원형 잡석)의 적심을 축조하다가, 19세기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형식의 적심이 축조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방형 적심(IV)이 많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의 경우 조선후기의 변천양상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고종 4년(1867) 축조된 적심은 잡석과 와전편을 섞어 넣은 형식의 적심이 많이 축조되고, 이후 고종 13년(1876) 혹은 고종 25년(1888)에는 다른 건물 유형에서 확인되지 않는 강회사질토 및 탄축 적심이라는 독자적인 형식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전기에 비해 후기에 적심의 다양한 축조방식과 재료가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궁궐건물 기초 축조 기술 수준의 변화가 있었음을 대변해 준다. 또한 건물 유형별로 사용되는 적심의 형식이 다른 것이 확인되어, 건물의 기초를 축조할 때 미리 계산된 건축 공법을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여름철 낮 그늘시렁의 차양이 온열쾌적 지표에 미치는 영향 (Pergola's Shading Effects on the Thermal Comfort Index in the Summer Middays)

  • 류남형;이춘석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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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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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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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여름철 낮 그늘시렁의 차양이 온열쾌적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수행하였다. 이를 위해 여름철 차양 및 겨울철 방풍을 고려하여 갈대발로 천개면 등을 차폐한 3가지 유형의 그늘시렁(가로 4m${\times}$세로 4m${\times}$높이 2.7m) I(천개면 차폐) II(천개면, 서향면 차폐) III(천개면, 서향면, 북향면 차폐)을 4층 옥상에 구축하였다. 그리고 1차 실험은 2013년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대조구, 그늘시렁 I, III을 대상으로, 2차 실험은 2013년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대조구, 그늘시렁 I, II를 대상으로 기상변수(기온, 습도, 복사, 풍속)를 측정하였다. 그늘시렁의 차양이 인체가 흡수하는 복사환경과 $T_{mrt}$$SET^*$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그늘시렁의 차양으로 인해 인체가 흡수한 복사량의 저감은 단파복사가 장파복사에 비해 훨씬 크게 나타났다. 대조구 대비 인체가 흡수한 단파복사량 차이의 최댓값 ${\Delta}K_{abs,max}$는 그늘시렁 I과 III에서는 $-119W/m^2$$-158W/m^2$였으며, 그늘시렁 I과 II에서는 $-145W/m^2$$-159W/m^2$였다. 대조구 대비 인체가 흡수한 장파복사량의 차이의 최댓값 ${\Delta}L_{abs,max}$는 그늘시렁 I과 III에서는 $-15W/m^2$$-17W/m^2$였으며, 그늘시렁 I과 II에서는 $-8W/m^2$$-7W/m^2$였다. 그늘시렁의 차양에 의해 인체가 흡수한 $T_{mrt}$$SET^*$ 값도 낮아졌다. $T_{mrt}$는 1차 실험에서는 그늘시렁 I과 III에서 각각 최대 $16.0^{\circ}C$$21.4^{\circ}C$, 그리고 2차 실험에서는 그늘시렁 I과 II에서 각각 최대 $18.8^{\circ}C$$20.8^{\circ}C$ 저감되었다. $SET^*$는 1차 실험에서는 그늘시렁 I과 III에서 각각 최대 $2.9^{\circ}C$$2.6^{\circ}C$ 그리고 2차 실험에서는 그늘시렁 I과 II에서 각각 최대 $3.5^{\circ}C$$2.6^{\circ}C$ 저감되었다. 대조구 $SET^*$ 대비 그늘시렁 II, III의 $SET^*$ 저감효율은 그늘시렁 I에 비해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풍속의 차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늘시렁 수직면의 차폐시에는 차양 못지않게 통풍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대조구의 3일간 평균 최고기온이 $37.5^{\circ}C$였던 1차 실험기간 결과에서는 $SET^*$ 값이 하루 중 대부분 시간대에서 온열 쾌적대 및 수용대의 상한 값인 $28.7^{\circ}C$$30.4^{\circ}C$를 초과하였다. 반면에 대조구의 3일간 평균 최고기온이 $34.4^{\circ}C$였던 2차 실험결과, $SET^*$ 값이 그늘시렁 I에서는 18~12시와 오후 14~18시, 그늘시렁 II는 15~18시에만 온열 쾌적대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그늘시렁 I, II에서 $SET^*$ 값은 하루 중 대부분 시간대에서 온열 수용대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혹서기에 그늘시렁의 온열쾌적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갈대발 등에 의한 차양뿐만 아니라, 덩굴식물이나 녹음수에 의한 차양을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늘시렁의 차양효과를 평가하는 지표로서 $T_{mrt}$$SET^*$는 실효성이 있었다고 판단되며, 향후 옥외 조경공간의 온열환경 평가 지표로서 활용이 기대된다.

Indonesia, Malaysia Airline's aircraft accidents and the Indonesian, Korean, Chinese Aviation Law and the 1999 Montreal Convention

  • Kim, Doo-Hwan
    • 항공우주정책ㆍ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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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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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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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인도네시아의 에어 아시아 QZ8501 제트여객기가 2014년 12월 28일, 오전 5시 35분에 인도네시아, Surabaya도시에 있는 Juanda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8시 반 싱가포르 Changi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에어아시아(에어버스 A320-200) 여객기는 인도네시아 제 2의 도시인 수라바야공항에서 승개 162명을 태우고 싱가포를 향하여 비행도중 동년 12월 28일 Java 바다에 추락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에어아시아 제트여객기의 잔해가 Juanda 국제공항에서 약 66 마일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12월 28일 지상에 있는 항공교통관제관 (ATC) 과 조정사간에 교신이 끊겼다. 레이더에서 사라진 여객기 (QZ 8501)에는 승객 155명과 승무원 7명이 탔으며 희생된 여객 가운데에는 155명의 인도네시아어인, 3명의 한국인, 싱가포르인, 말레이시아인, 영국인이 각각 1명이었다. 말레이시아여객기 추락사건을 살피어 본다면, 말레이시아 여객기 (MH370)는 현지 시간 2014년 3월 8일 밤 12시41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새벽 6시 30분 (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수도국제공항에 착륙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여객기 (MH370) 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베이징수도국제공항을 향하하여 비행도중 (쿠알라룸푸르와 북경 간에 비행거리: 4,414km 2,743마일) 갑자기 살아져 3월 8일 남인도양에 추락하였다. 이 말레이시아여객기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이륙한 후 1시간 만에 지상에 있는 항공교통관제관 (ATC) 과 조정사간에 교신이 두절되었으며 이 여객기에 227명의 승객 (15개국)과 12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상기 227명의 승객가운데에는 중국인 153명, 말레이시아인이 38명, 인도네시아 인이 7명, 호주인이 6명, 인도인이 5명, 프랑스인이 4명, 미국인이3명, 이란인이2명, 캐나다인이2명, 뉴질랜드인이 2명, 우크라이나인이 2명, 러시아인이 1명, 네덜란드인이 1명, 대만인이 1명이었음으로 중국인 승객이 거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본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사건에 있어 승객 및 승무원들은 전원 사망하였고 가해자(국)인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피해자(국) 인 중국, 한국, 호주인, 인도, 프랑스, 미국,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등이 모두 1999년의 몬트리올조약의 가맹국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의 항공사들은 동 조약 제21조에 따라 손해배상금액으로서 113,100 특별인출권 (SDR, 계산단위, 미화 155,000달러)를 유족들에게 무조건 지급하여야만 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사건에 있어 유족들은 상기 배상금액에 만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승객사망자에 대한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사건에 있어 일부 유족들은 자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는 손해배상금액을 많이 탈수 있는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국제항공운송에 있어 항공여개운송인의 책임이 국제조약에 따라 유한책임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내항공운송에 있어서는 항공여개운송인의 책임이 무한책임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현재 미국법원은 국제 및 국내항공운송을 막론하고 항공여객운송인이 Wilful-misconduct (인식이 있는 중대한 과실) 범하였을 때에 무한책임을 인정하여 손해배상금액에 관한 판결내용이 30만 달러 내지 50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음으로 유족들은 몬트리올조약 제33조 (재판관할권) 및 미국에서 제조한 여객기의 결함을 이유로 한 "제조물책임법"에 근거하여 본 소송사건에 있어 일부 유족들은 미국이변호사에 소송사건을 의뢰하여 미국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사건을 제기한바 있다. 한편 필자의 의견으로는 1999년의 몬트리올조약 제17조에 규정되어 있는 국제항공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사유로 bodily injury라고 신체상의 상해만을 규정하고 있어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할 수가 없음으로 앞으로 ICAO 법률위원회에서 가까운 장래에 몬트리올조약을 개정 할 때에 이 문구를 피해자의 정신적손해도 다 포함될 수 있도록 personal injury 라는 문구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16세기(十六世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畫) 이해의 확장 : <경포대도(鏡浦臺圖)>, <총석정도(叢石亭圖)>를 중심으로 (Broadening the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 이수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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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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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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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을 받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2019년)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인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조선시대 회화사 이해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지대하다. 두 작품이 1557년의 관동 유람을 계기로 그려진 병풍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어서 16세기 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밝히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에 담긴 경물의 내용을 살펴보고 제작시기와 양식상의 특징을 분석한 후,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 작품에 담긴 회화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은 <총석정도>의 발문으로 알 수 있다. 본고에서 박충간(朴忠侃)(?~1601)으로 비정한 정상일로(商山逸老)가 1557년 봄에 홍연(洪淵)(?~?)과 함께 금강산(풍악산)과 관동 지역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을 작성하였으며 시간이 흐른 뒤 그중 몇몇 명승지를 그려 병풍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연은 자가 덕원(德遠)으로 1551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84년까지는 생존했던 인물이다. 박충간은 호가 남애(南崖)로서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그 공으로 형조참판으로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된 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 글로 작품의 제작 시기를 1557년의 유람 후이자, 발문을 쓴 박충간이 50대 이상이 되는, 1571년 이후 곧 16세기 후반경으로 보았다. 산수나 나무 표현 등의 화풍을 기준으로도 16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과 부합한다. 전술한 발문의 내용으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가 병풍의 일부였던 것을 알수 있으며, 발문이 써 있는 <총석정도>가 마지막 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포대도>를 보면 구도면에서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편파(偏頗) 3단 구도의 요소를 찾을 수 있으나 실경(實景)을 대상으로 하여 그 배치와 화법이 현실화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시점(視點)에 있어서도 여러 경물간의 관계나 경관의 특징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도록 사선각(斜線角)의 부감시(俯瞰視), 정면시(正面視) 등을 활용하여 경포대의 넓은 영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다각적(多角的)인 관점(觀點)을 보여준다. 산의 형태나 태점(苔點)의 사용은 1557년작 <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매우 유사하다. 16세기 안견파의 특징인 짧은 선이나 점으로 질감을 내는 단선점준(短線點皴)과 구름 모양 운두준(雲頭皴)은 현장감 있게 변모되었다.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전통적인 구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경포대도>와 달리 <총석정도>는 그 구도가 매우 파격적이다. 화면에 중심축을 두고 돌기둥들이 첩첩이 도열하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데 근경(近景)의 돌기둥, 중앙의 사선봉(四仙峯), 절벽 위의 사선정(四仙亭)을 삼단계 정도의 깊이감으로 배치하여 화면에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중앙의 사선봉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고 있으나 수직적인 돌기둥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질적(分節的), 평면적(平面的)인 양상으로 그려져 아직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조성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둥의 아랫부분은 희게 하고 윗부분은 어둡게 하여 고원(高遠)의 상승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각 기둥을 묘사하는 준법을 보면 기둥으로 설정된 면에 담묵을 바르고 그 위에 농묵의 가는 선들을 그어 총석의 질감과 쪼개짐을 묘사하였다. 붓끝을 사선으로 누르며 수직으로 내려 긋고 있어서 부벽준(斧劈皴)의 초기적 양상을 보인다. 일관되게 보이는 이러한 흑백의 대조, 수직적 준법의 구사는 앞으로 전개될 절파계(浙派係) 화풍의 유행을 예시해준다. 한편 기둥의 윤곽 및 균열문이 각각 다 달라서 실제의 특징을 살리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에 올라앉은 새들의 묘사, 파도와 흰 거품의 표현 등에서 반복적인 붓질을 찾을 수가 없고 매우 생생한 묘사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경물 배치는 이후 변화를 보인다.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죽도(竹島)를 두고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 건물과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였다. 이러한 배치는 경포대를 화면 아래쪽에 두고 위쪽의 바다를 향하는 18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며 그린 <총석정도> 역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륙에서 바다를 향하는 것으로 관점의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정선(鄭敾)(1676~1759)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작품이 제작된 이후, 두 사람의 구도를 따라 관동도의 유형이 정착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라진 듯 했던 16세기 <경포대도>의 구도가 조선 말기 <강릉 경포대도>에서와 같이 민간 회화에서 전승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관동 지역의 명승도는 이른 시기부터 그려져 고려 김생(金生)(711~?)의 관동도(關東圖), 조선 초 안견(安堅)(15세기 활동)의 낙산사도(洛山寺圖) 등 여러 화가가 단폭이거나 여러 폭의 관동도를 병풍이나 첩 형태로 그렸던 것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많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본고에서 고찰하는 이 두 점은 현존하는 관동도 중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예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관동도(關東圖) 병풍(屛風)의 제작 양상을 알게 해주어 회화사적인 의미가 크다. 특히 발문의 내용에 따라 8폭 병풍일 것으로 생각되어 16세기 후반에 이미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형식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격에 있어서 현존하는 16세기 실경산수화의 예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모두 실용적, 공적인 목적의 계회도나 기록화로 제작되어 실경산수화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실제 경관을 대상으로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발문을 쓴 박충간은 유람할 때 지었던 감상시를 곁들여 자연의 진면목을 반추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기존에 알려진 실경산수화의 성격과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순수 감상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실경산수화의 예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이처럼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두 작품은 유람의 결과를 시화(詩畫)로 제작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존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지대하다. 또한 그간 확인할 수 없었던 16세기 실경 산수화의 다양한 형태와 구도 및 시점의 면모를 보여주어 한국 실경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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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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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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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