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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조개 (Potamocorbula amurensis)의 생식주기에 관한 조직학적 연구 (Histological Study on the Reproductive Cycle of Potamocorbula amurensis (Bivalvia: Corbulidae))

  • 이주하
    • 한국수산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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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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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9-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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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1996년 11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전북 부안군 문포 앞바다의 갯벌에서 채집된 계화도조개, p. amurensis를 재료로하여, 그들의 생식소발달과정, 생식세포형성과정, 생식주기, 난경의 월별변화, 비만도 및 군성숙도 둥을 조직학적으로 조사하였다. 계화도조개는 자웅이체이며 난생이다. 난소와 정소는 각각 수많은 난자형성소낭과 정자형성소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낭에는 간충직과 호산성 과립세포들이 들어 있는데, 이들은 초기 생식세포의 형성과 발달에 영양을 공급하는 영양세포로 생각된다. 분열증식 중인 초기 활성기의 난원세포는 $9\~12\mu$m로서 6$\mu$m 내외의 크고 뚜켠한 핵과 호염기성 단일 인을 가지고 있었다. 직경 $30\~32\mu$m로 성장한 난모세포는 난병을 소낭벽에 부착한 채 소낭의 내강을 향해 긴 타원형으로 성장하였다. 난모세포가 $43\~45\mu$m로 성장하면 소낭벽으로부터 유리되며, 완숙란의 크기는 $50\~60\mu$m이었다. 정자형성소낭의 벽에는 정원, 정모, 정세포 및 완숙정자 순으로 충상배열을 하며 성숙되었다. 생식소의 발달, 생식세포형성과정, 난경의 월별변화, 조직분화과정 및 세포학적 특성에 따라, 생식주기를 초기 활성기, 후기 활성기, 완숙기, 부분 산란기 및 회복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산란기는 5$\~$7월과 9$\~$10월 사이이며, 주산란은 수온이 $18^{\circ}C$ 이상인 5$\~$6 및 10월에 2차례 일어났다. 비만도지수의 월별변화는 생식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군성숙도가 $50\%$를 넘는 개체는 암, 수 모두 각장 8.1$\~$10.0 mm인 개체들로 조사되었다. 생식세포형성은 두 가지 방법 즉 1. 산란 후, 생식세포형성소낭내에 잔존하던 미방출란과 미방출정자는 퇴화, 흡수되지만 기존의 소낭은 크게 위축되지 않고, 2$\~$3개월 동안 (특히 여름)에 곧 회복되면서 새로운 생식세포형성에 참가하는 방법, 2. 산란 후 기존의 각 소낭은 위축되고 새로운 소낭의 형성과 더불어 새로운 생식세포가 형성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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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보호수의 현황분석 및 활용방안 (Analysis of Current Status and Utilization of Protected Trees in Gyeongsan City)

  • 김근호
    • 농업생명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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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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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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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경산시 보호수의 환경분석, 보호관리 및 활용 실태 등의 조사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관리 및 활용방안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시하는데 있다.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산시가 지정한 41개소에 보호수 55주가 있고 총 종수는 8종이며, 수종으로는 회화나무 (30.9%)와 느티나무 (23.6%)순으로 가장 많았다. 보호수의 유형으로는 당산목이 45.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풍치목이 36.7%를 차지하였다. 200년~300년 사이의 보호수가 21주로 전체 38.2%를 차지하였고, 수고는 15 ~ 20 m 사이의 보호수가 경산시 보호수의 54.6%를 차지하였다. 보호수의 입지 유형을 보면 마을형이 3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도로변형이 19.5%로 많았다. 식재유형은 독립수가 전체 보호수의 78%를 차지하였다. 보호수의 근원부는 나지상태가 58.5%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쇄석 및 자갈이 19.5%를 차지하였다. 토양경도는 평균 9.64 mm로 나타났고 보호책은 9곳에 설치가 되어있고 석축이 있는 곳은 22개소로 전체 53.7%로 조사되었다. 외과수술을 받은 보호수는 38주로 전체 70.9%를 차지하였고 표지석은 보호수 전체의 80.5%인 33개소에 설치되어 있었다.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곳은 13곳으로 전체 31.7%를 차지하였고 시설물은 주로 정자, 의자, 간단한 체육시설, 야외테이블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 연구에서 기존쉼터를 정비하거나 보호수 주변을 정비해서 소규모 공원화가 될 수 있는 지역을 제시하였다. 향후 농촌지역 공원녹지 공간 확보 및 지역민의 공동체회복을 위한 보호수 주변 소공원 조성 가능성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사료된다.

조선시대 지방 옥(獄) 구조에 관한 고찰 - 발굴 유적과 고지도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tructure of a Local Prison in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comparison of excavation sites and antique maps)

  • 이은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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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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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6-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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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시대 지방 읍성에 대한 연구는 다방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그 내부 관청 건물의 하나인 옥(獄)에 대해서는 고고학적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죄인들이 머무는 옥사의 배치나 구조, 옥리(관헌)들이 사무를 보거나 숙직 근무를 서는 집무소, 탈출을 방지하는 담장의 구조 등에 대해서는 1997년 경주에서 옥이 처음 발굴된 이후 연구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 왔으나 비교 대상이 없어 답보 상태였다. 그러나 그 후 발굴된 연일옥 자료와 공주옥 등의 사진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축조된 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은 전국의 죄수들을 잘 관리하도록 1426년 표준적인 설계도인 안옥도(犴獄圖)를 배포하였고, 동·하절기 처우 개선 등을 위해 1439년 한 차례 수정하기도 하였다. 1421년부터 1743년까지 운영된 연일옥은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까지 운영된 경주옥과 비교할 때 원형 담장, 동서 옥사의 배치와 구조 등 그 형식이 매우 유사하며 규모만 작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 말기 사진으로 남아 있는 공주옥까지 계속 그 형식이 유지되고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조선시대 옥은 타원형의 담장과 남녀를 구분하여 수용하는 건물이 나누어져 있었고, 담장의 높이는 약 3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옥사는 동쪽이 남자, 서쪽이 여자 옥사로 구분되며 지붕으로 탈출이 어려운 기와집 구조였다. 원형 담장 앞에는 옥리(押牢)들이 근무하는 초가 지붕의 집무소가 있었는데, 2중의 옥문을 통해야만 옥의 출입이 가능하였다. 조선시대 왕들은 인본주의 유교 사상을 구현하고자 미결수들이 머무는 옥의 환경을 개선하고 남녀를 구분하여 수감토록 한 것이 건축물의 배치에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석인상의 조영시기와 훼손도 진단 및 보존관리 (The Damage Assessment, Construction Point of Time and Deterioration Diagnosis and Conservation Maintenance of Stone Statues Around the Stone Pagoda in Mireuksaji Temple in Iksan)

  • 이동식;이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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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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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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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석인상은 639년경 석탑이 조영된 이후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탑 주변에 조성되었다. 이 석인상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탑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석인상의 표면은 삭박되어 뚜렷한 도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다. 그러나 남서 석인상은 세 방위(서북 북동 동남)에 놓인 석인상에 비해 물성은 약하지만 도상이 뚜렷하게 잘 남아 있다. 이러한 석인상의 표면 상태는 석인상이 위치한 노출환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세 방위에 놓인 석인상은 그동안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남서쪽에 놓인 석인상은 17세기경 석탑 주변에 석축을 축조하면서 석축 안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외부 저해환경으로부터 차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약 400여 년간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던 석인상은 차별적인 풍화현상을 보인다. 즉 세 방위(서북 북동 동남; $176{\cdot}109{\cdot}273kgf/cm^2$)에 놓인 석인상은 원래 물성이 좋았지만 삭박에 의해 도상이 불분명하고 생물의 침해가 심한 반면, 남서쪽에 놓인 석인상은 원래 물성($133kgf/cm^2$)은 좋지 않았지만 흑색오염물과 입상 분해 현상이 관찰될 뿐 도상형태가 잘 남아 있다. 석인상을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켜 보존하는 것은 석인상의 형태적 보존을 위해서 권장할 만한 보존 관리방안이라 할 수 없다. 미륵사지 주변에 대한 미기후 환경 데이터를 적용해볼 때 미륵사지는 해를 거듭할수록 강산성비가 내리는 강한 풍화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인상의 형태적 보존을 위해서는 석인상이 있었던 원래의 위치를 고려한 보존 관리방안보다는 현재의 도상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는 보존 관리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밀양 국전광산의 녹-청색 구리-아연 수화황산염 광물 (Green-blue Coloured Cu-Zn Hydrated Sulfate Minerals from Gukjeon Mine in Miryang)

  • 구효진;장정규;도진영;정기영;조현구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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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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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3-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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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경남 밀양시에 소재한 납-아연 스카른 광상인 국전광산의 갱내 벽면을 따라 지하수로부터 침전된 청-녹색의 광물들이 암반을 피복하고 있는데, 이 광물들은 과거 문헌에서 남동석과 공작석으로 기재되어 왔으나, 최근 연구를 통해 녹색의 광물은 데빌린(devilline), 청색의 광물은 수화구리아연황산염 광물들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동정이나 광물학적 특성은 알려지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청-녹색 이차 광물들을 외형적 특징에 따라 5개 그룹으로 구분하고, X-선회절분석와 주사전자현미분석을 실시하여 정확한 광물 동정과 광물학적 특성을 규명하였다. GJG-1은 밝은 청록색을 띠는 그룹으로 브로칸타이트(brochantite)와 석영, GJG-2는 연두색을 띠며 쉽게 부스러지는 특징을 가지는 그룹으로 슐럼버가이트(schulenbergite)와 소량의 석고(gypsum)로 확인되었다. 연한 청색의 GJG-3와 유리광택을 가지는 청록색의 GJG-4는 외형적 특징은 달랐지만 구성 광물은 서피어라이트(serpierite)와 석고로 동일하고, 석고의 함량이 달라 특징이 다르게 나타난다. GJG-5는 연한 청색과 진한 청색의 광물들이 혼합된 겔(gel)상으로 하이드로우드워다이트(hydrowoodwardite), 글로코세리나이트(glaucocerinite), 베체러라이트(bechererite), 서피어라이트와 석고로 구성된다. 국전광산에서 산출되는 6가지의 녹-청색 광물들은 Cu:Zn 비, (Si+Al) 함량 및 Si:Al 비, Ca 함량 등에 의해 구분될 수 있으며, 각 광물들의 형성 환경은 주변 유체 내에서 이와 같은 지화학적 요인들에 의하여 조절된 것으로 사료되고,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정확한 형성 환경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에서 확인된 서피어라이트, 글로코세리나이트, 베체러라이트 등의 수화황산염 광물들은 국내에서 최초로 보고되며, 해외에서도 보고된 사례가 매우 적어 광물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를 통해 본 운조루(雲鳥樓)의 공간배치계획과 경관 고찰 (A Study on the Space Planning and Landscape of 'Unjoru(雲鳥樓)' as Illustrated in the Family Hereditary Drawing, "Jeolla Gurye Ohmidong Gado(全羅求禮五美洞家圖)")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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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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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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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계화기법(界畵技法)으로 그린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를 통해 운조루(雲鳥樓) 살림집의 공간배치계획과 경관 기법을 고찰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미동가도'는 창건주 류이주(柳爾?)가 용천부사로 재임할 때(1782년) 설계도면을 보내 집을 짓게 하였다는 점, 정형화된 풍수적 사신사 구조의 자리잡기와 기본계획도 성격이 농후한 점, 그리고 합각지붕이 1804년에 솟을대문으로 중수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운조루 창건시기(1776~1783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운조루는 지리산 노고단(祖山)과 형제봉을 주산(主山)으로, 오봉산(案山)과 계족산(朝山)을 안대로 자리했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동방천(外明堂水)을 표현하는 등 배산임수 풍수국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셋째, 운조루는 직교 축선에 위계를 설정하여 품(品) 자형 건물군이 5영역으로 분화된 구조인데, 바깥뜰 외원과 뒤뜰 후원을 갖춘 5동(棟) + 6마당(庭) + 2원(園)의 토지이용체계를 가진다. 넷째, 심미성과 풍수적 화기비보(火氣裨補)를 겸한 바깥뜰(외원)의 조성은 연못(방지원도형)을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적 관념 등 상징적 경물(景物)을 대입시켜 지속 가능한 생태정원을 구축하고 있다. 다섯째, 사랑마당에는 화계(花階)와 화오(花塢)를 가꾸었고, 괴석, 학과 매화나무, 소나무, 위성류, 초화류 등 조경 요소를 활용하여 선경의 이상세계를 구축함은 물론 정심수를 도입하는 등 형이상학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랑채 누마루에서 조망되는 원경과 중경, 그리고 앙부(仰俯) 경관 등 자연의 경(景)이 내부로 관입되거나 외부로 확장되는 차경(借景)과 관경(觀景)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여섯째, 북쪽 담장 밖의 소나무 총림과 조산(造山)은 주거환경의 쾌적성 제고 측면은 물론 풍수적 채움의 미학이 고려된 전통조경기법 사례라 하겠다.

고려 말 청동용기에 적용된 제작기술의 다양성 연구 - 고양 더부골 고분군 출토 청동용기를 중심으로 - (Technological Diversities Observed in Bronze Objects of the Late Goryo Period - Case Study on the Bronze Bowls Excavated from the Burial Complex at Deobu-gol in Goyang -)

  • 전익환;이재성;박장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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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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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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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고에서는 더부골 고분군 출토 청동용기 27점에 대한 미세조직과 성분분석을 통해 고려 말 민간에서 사용된 청동용기의 제작방법과 기술체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본 연구대상 청동용기는 합금조성과 제작공정을 고려하여 네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구리-주석(22% 정도) 합금을 이용한 주조${\rightarrow}$고온단조${\rightarrow}$담금질, 2) 구리-주석(10% 이하)-납 합금을 이용한 주조${\rightarrow}$서냉, 3) 구리-주석(10~20%)-납 합금을 이용한 주조${\rightarrow}$담금질, 4) 구리-주석(10~20%)-납 합금을 이용한 주조${\rightarrow}$고온단조${\rightarrow}$담금질이 있다. 청동용기의 제작방법과 기술체계의 연구에 있어서 합금조성과 제작공정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본고에서 확인되었다. 합금조성에 있어서 납의 첨가는 담금질 처리온도, 불순개재물의 차이, 청동용기의 표면색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담금질 처리는 납을 첨가한 경우 $586{\sim}520^{\circ}C$에서 실시되었고, 납을 포함하지 않은 경우 $799{\sim}586^{\circ}C$에서 수행되었다. 미세조직 내에 존재하는 불순개재물에서도 합금재료로서 납의 첨가 유무에 따라 셀레늄의 존재 유무가 나타났는데 이는 구리-주석(22% 정도) 합금의 경우 구리제련과정에서 이미 납이 포함되지 않은 구리광석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청동용기가 매장환경하에서 부식될 때 합금재료로서 납의 첨가 여부로 인해 표면색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합금 조성에 따른 표면 색상분석에서 납이 첨가되면 청동용기의 표면색이 연녹색 또는 암녹색을 띠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암갈색 또는 검은색을 띠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작공정에 있어서는 담금질 처리 유무에 따라 청동용기의 두께 차이가 나타났는데 주조 후 서냉시켜 만든 용기의 두께는 1mm 이상이었지만 담금질 과정이 포함된 용기의 두께는 대부분 1mm 이하였다. 제작공정은 사회적 분위기도 반영하는데, 고려 말 동과 숙련된 장인이 부족했지만 청동용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비싼 주석 대신 납을 사용하고, 고온에서 형태 가공을 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결과는 고려시대 장인들이 여러 가지 합금비율에 따른 다양한 제작기법을 사용한 기술혁신으로 부족한 원료상황을 극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많은 양의 청동용기들이 발굴 조사되고 있다. 본 연구는 적절한 분석방법을 통해 관련 기술 특성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술체계가 확립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백제 한성기 취사용기에 대한 검토 - 심발형토기와 장란형토기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oking Vessel of Baekje Hanseong Period)

  • 정수옥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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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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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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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고에서는 백제 한성기 중심지역에 해당되는 서울 몽촌토성, 서울 풍납토성, 서울 석촌동고분군, 하남 미사리유적에서 출토된 취사용기의 형태, 제작기법 등을 분석하여 그 전개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형태적 분석에서는 심발형토기는 동최대경이 동체상부에 위치하고 장란형토기는 동최대경이 동체중부에 위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경부잘록도는 두 기종 모두 미비한 편이었다. 유적별로는 심발형토기의 경우 서울 석촌동고분군이 용량이 적고, 심도가 깊으며, 동최대경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장란형토기는 서울 풍납토성이 하남 미사리유적보다 심도가 깊고, 동최대경은 동중부에 위치하며 경부잘록도가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작기법 분석에서는 심발형토기는 용량군의 폭이 커질수록 유문내박자를 이용하여 타날하였는데, 외면에는 승문이 주로 확인되었다. 또한 기벽이 가장 얇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술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시간성을 포함하고 있다. 장란형토기에서도 유문내박자를 사용한 토기가 기벽이 가장 얇고 경부의 잘록도는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구순부에 강한회전력에 의한 정면흔적이 관찰되었다. 두 기종 모두 유문내박자를 사용하면서 더욱 기벽을 얇게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백제 한성기 중심지역에서 출토된 심발형토기와 장란형토기는 태토나 소성에서는 시간성이 명확하지 않지만 제작기법상에서 그 전개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제작기법의 변화양상에는 시간성도 반영되어 있는 점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라이프스타일 기반 다학제적 청년층 1인 가구의 주거 환경 선호 및 요구 분석 (A Study on the Residential Environment Preference and Needs of the Multi-academic Young Single Family Based on Life Style)

  • 임준형;최인영;박혜경
    • 한국과학예술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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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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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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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우리나라 1인가구의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2035년에 들어서는 34.6%로 증가할 것이라 예측되며 이들 중, 우리나라 높은 주택가격으로 인하여 청년층 1인가구는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청년 주거지원을 확대실시하여, 공공지원 임대주택과 민간 청년임대주택, 청년 기숙사 공급 등 다양한 정부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다른 연령대와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청년층 1인가구의 정확한 주거요구를 파악하여 향후 보급될 청년 주택 계획 방향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한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고찰을 통해 청년층 1인가구의 현황과 특성을 파악하였다. 둘째, 청년층의 라이프스타일과 주거선호 관련 선행연구 고찰을 통하여 청년층 1인가구의 주거환경 선호 및 요구에 대한 조사도구를 구성하였다. 셋째, 청년층 1인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공간사용특성과 평면구성 선호 및 요구, 실내디자인 선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2018년 12월에서 2019년 1월 초까지 학생과 직장인을 포함한 20세에서 39세 사이의 청년층 1인 가구 150명을 대상으로 SNS를 이용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공간사용특성을 살펴본 결과, 작은 면적인 청년 1인 주거에서 침실과 거실이 기본적 기능 외 다양한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계획시 이에 대한 추가적 고려가 필요함을 파악하였다. (2) 평면구성 선호 및 요구를 살펴본 결과, 별도의 침실과 거실 공간 확보를 요구하며,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거실공간에 대한 확장요구와 침실공간의 드레스룸 등의 수납 추가 요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 실내디자인 선호를 살펴본 결과, 모던스타일과 대표적 컬러인 무채색계열 색채를 선호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거공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마감재료를 선호하며, 조명은 간접조명 및 벽면을 이용한 은은한 조명을 선호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청년층 내에서도 라이프스타일 특성에 따른 학생과 직장인의 차별적 실내디자인 선호 특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향후 실제 공공임대주택의 사례분석과 사용자 범위확대를 통하여 실질적인 주거환경니즈와 계획방안 제안을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고대 종묘제도의 좌조우사(左祖右社)와 전묘후침(前廟後寢) 설에 대한 일고찰 (A Study on the Theories of Jwajowusa(左祖右社) and Jeonmyohuchim(前廟後寢) of an Ancient Jongmyo Shrine System)

  • 서정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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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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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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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주대(周代)의 종묘(宗廟)는 '조(朝)의 의례(儀禮)' 등 수많은 의례들이 이행되는 장소인 군주의 정전(正殿)으로, 태침(太寢) 로침(路寢) 정침(正寢) 등은 그것의 또 다른 명칭들이다. 보다 더 이전 대(代)에서는 태실(太室)과 세실(世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태실(太室)의 용어는 서주시대(西周時代) 초기에 대한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서경(書經)"에서는 노침(路寢)은 물론 '침(寢)'자의 사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반면, '실(室)'자는 우서(虞書)를 제외한 모든 서(書)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선군(先君)의 신주(神主)를 모신 종묘(宗廟)는 좌측에, 토지와 곡식의 신(神)을 모신 사직단(社稷壇)은 우측에 세운다'고 하는 "좌조우사(左祖右社)"라는 언급이 처음으로 기록된 곳은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에서의 '장인영국(匠人營國)' 부분이다. 아울러 일명 '좌묘우사(左廟右社)'라고 하는 "우사직(右社稷) 좌종묘(左宗廟)"의 언급은 "춘관종백(春官宗伯)"에 수록된 제사를 주관하는 소종백(小宗伯)의 여러 직분들 중의 하나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에 출현한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의 "좌조우사(左祖右社)"라는 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현(鄭玄) 등 한대(漢代) 이후의 많은 예학자(禮學者)들이 여기서의 '좌(左)'와 '우(右)'를 종묘 사직의 좌우 배치 관계로 해석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직에서의 (제사의) 일을 돕고[우(佑)], 종묘에서의 (제사의) 일을 돕는다[좌(佐)]."라는 의미로 보아야 '종백(宗伯)'의 직분에 부합된다. '전묘후침(前廟後寢)'은 "주례" "하관사마(夏官司馬)"와 "예기(禮記)" "월령(月令)"편을 설명한 정현(鄭玄)의 주(注)에서 "전왈묘(前曰廟) 후왈침(後曰寢)"이라는 표현에서 시작된 말이다. 정현과 동시대의 채옹(蔡邕)은 "전유조(前有朝) 후유침(後有寢)"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본고에서는 전묘후침(前廟後寢) 설(說)에 대해 두 가지 가설(假說)을 논하였다. 하나는 '앞쪽에는 정무(政務)를 보는 조정(朝廷), 뒤쪽에는 편안한 실내 공간'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포함된 두 가지 시설을 표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앞쪽에는 치조(治朝) 영역으로서의 종묘 건축물, 뒤쪽에는 사친(私親)들과의 거주 영역인 주거용 건축물'로서, 독립된 별개의 두 가지 건축물을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