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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통음악공연의 형태와 특징 - 서양식 장르와의 혼성공연형태를 중심으로 -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Music Performance of the 1920s - Focused on the mixed performances type in the western-style genre -)

  • 금용웅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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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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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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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일제강점기 전통음악공연은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서 점차 축소, 약체화 되어 갔고, 개화기 이후부터 사회전반에 꾸준히 확산되기 시작한 서양문물의 영향으로 서양식 장르의 공연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통음악공연은 단독공연형태보다는 서양식 장르와 함께 연행되는 혼성공연(混成公演)형태를 보이는데, 특히 서양음악과의 혼성공연형태가 주를 이루었고 이 밖에 연극, 강연, 영화, 댄스, 마술과 같은 장르와도 함께 공연되었다. 이와 같은 서양식 장르와의 혼성공연형태는 1920년대에 들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전통음악공연의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서양식장르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에 대한 연구는 한국근대음악사에서 아직 조명되지 않은 전통음악의 공연형태를 밝혀, 일제강점기 전반적인 전통음악공연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으나, 지금껏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1920년대 서양식 장르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에 대해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중심으로, 서양식 장르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 활성화 배경과 형태별 특징에 대해 고찰하였다. 서양식 장르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 활성화 배경에서는 1920년대에 들어 서양식 장르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가 이전에 비해 활성화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원인은 1920년대에 들어 공연의 주최나 후원 단체들이 늘어남에 따라, 전반적인 공연의 개최 수가 이전보다 급격히 증가하였고, 증가한 공연의 양상이 서양문물의 확산으로 더욱 다양해진 대중들의 기호 충족을 위해 대부분 혼성공연형태로 이루어진 데에 기인하고 있었다. 서양식 장르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별 특징에서는 전통음악과 함께 공연된 서양식 장르들을 분류하여, 전통음악이 개개의 서양식 장르와 함께 공연되었을 때 어떠한 특징이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첫째,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에서는 전반적으로 서양음악의 프로그램 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당시에 흔치 않았던 서양악기와 전통악기의 합주가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부제나 날짜별로 두 장르를 구분하여 공연되기도 하는 특징을 보였다. 둘째, 연극과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에서는 전통음악이 창극과 유사한 형식으로 연극에 직접 참여하거나, 연극의 무대전환을 위한 막간공연의 역할로 연극과 독립되어 공연되기도 했고, 관객모집이나 여흥을 위해서도 공연되는 특징이 있었다. 셋째, 강연과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에서는 전통음악이 강연의 전이나 후에 연주 되어서 강연의 분위기 조성과 여흥의 역할을 하는가 하면, 관객모집을 위해서도 공연되는 특징을 보였다. 넷째, 영화와 전통음악의 혼성공연형태에서는 전통음악이 영화에 직접 참여하거나, 독립적인 공연의 성격을 띠기도 했고, 영화 상영 후 여흥을 위해서도 공연되는 특징이 있었다.

한중합작 영화의 스토리텔링 콘텐츠개발을 위한 중국 100대 영화연구 1 -193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Study 1 of The 100 Best Chinese Films for Storytelling Content Development of Korea and China's Collaborative Film Production -Focused on Films in 1930's-)

  • 한달호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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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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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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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논문은 한국영화 제작의 다양성을 위하여 새로운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는 한중합작 영화의 콘텐츠개발 및 확장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중국영화 속 스토리텔링을 살펴보고 한중합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대한민국은 일본에서 한류열풍이 식어갈 즈음, 점차 새로운 한류의 물꼬를 튼 중국을 통해 한국드라마의 매력을 어필하면서 다양한 영상분야로 확장시켜 주목받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영화콘텐츠는 방송콘텐츠보다 한중합작의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었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고, 오히려 합작형태가 적은 방송콘텐츠가 시나브로 중국에게 더 어필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중합작 영화의 새로운 제작방향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한중합작 영화는 그동안 꾸준히 제작되어 왔으나 한국과 중국, 두 국가의 관객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 중국이 주목한 100대 영화 속 작품 이야기로 들여다보았다. 그 가운데 중국이 2005년에 선정한 '중국 100대 영화' 중 부흥기를 가져왔던 초기, 중기, 후기작품 가운데 초기 1930년대 영화를 1단계로 선정하였고, 당시 영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중국영화 속 스토리텔링 의미를 살펴보았다. 중국이 선택한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그들의 영화 속에 어떠한 고민이 있는지 인물, 사건, 배경 그리고 엔딩을 중심으로 점검해보았다. 1930년대 중국영화는 가난, 사회현실, 죽음, 비극 또는 희비극으로 이어지는 극 전개과정을 통해 시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정치극의 전개 양상 -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정치극운동을 중심으로 - (The Development Aspects of Korean Political Theatre Movement)

  • 김성희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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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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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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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is paper investigates the development and aesthetics of Korean political theatre from its quickening period 1920s to democratization era 1990s. Political theatre before 90s developed an antithesis resistant movement toward Korean modern history that had been scattered with suppressing political circumstances such as colonial era and dictatorial government, the movement has powerful activity and social influences. Just like the 20 century political theatre had been quickened under the influence of Marxism at Russia and Germany in 1920s, Korea's political theatre began in socialism theatre movement form around the same time. Proletarian theatre groups had been founded in Japan and Korea, and developed into practical movement with organized connection. However, the political theatre movement in Japanese colonial era was an empty vessel makes great sound but not much accomplishments. Most performance had been canceled or disapproved by suppression or censorship of the Japanese Empire. The political theatre in liberation era was the left drama inherited from Proletarian theatre of the colonial era. Korean Theatre alliance took lead the theatrical world unfold activities based on theatre popularization theory such as 'culture activists' taking a jump up the line and 'independent theatre' peeping into production spot as well as the important event, Independence Movement Day Memorial tournament theatre. Since 1947, U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strongly oppressed the left performances to stop and theatrical movement was ended due to many left theatrical people defection to North Korea. The political theatre in 1960s to 70s the Park regime, developed in dramatically different ways according to orthodox group and group out of power. The political theatre of institutional system handled judgment on sterile people and had indirect political theatre from that took history material and allegory technique because of censorship. In political theatre out of institution, it started outdoor theatre that has modernized traditional performance style and established deep relationship with labor spot and culture movement organizations. Madangguek(Outdoor theatre) is 'Attentive political theatre', satirizing and offending the political and social inconsistencies such as the dictatorial government's oppression and unbalanced distribution, alienation of general people, and foreign powers' pillage sharply as well as laughing at the Establishment with negative characters. The political theatre in 1980s is divided into two categories; political theatre of institutional system and Madangguek. Institutional Political theatre mainly performed in Korea Theatre Festival and the theatre group 'Yeonwoo-Moudae' led political theatre as private theatre company. Madangguek developed into an outdoor theatrical for indoor theatre capturing postcolonial historical view. Yeonwoo-Moudae theatre company produced representative political plays at 80s such as The chronicles of Han's, Birds fly away too, and so on by combining freewheeling play spirit of Madangguek and epic theatre. Political theatre was all the rage since the age of democratization started in 1987 and political materials has been freed from ban. However, political theatre was slowly declined as real socialism was crumbling and postmodernism is becoming the spirit of the times. After 90s, there are no more plays of ideology and propaganda that aim at politicization of theatre. As the age rapidly entered into the age of deideology, political theatre discourse also changed greatly. The concept 'the political' became influential as a new political possibility that stands up to neoliberalism system in the evasion of politics. Rather than reenact political issues, it experiments new political theatre that involves something political by deconstructing and reassigning audience's political sense with provocative forms, staging others and drawing discussion about it.

우에르따의 신고전주의 비극 『라?』에 나타난 대중적 성공 요인에 관한 연구 (A Study on Popular Success Factors Shown in Raquel, Huerta's Neoclassical Tragedy)

  • 윤용욱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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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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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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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스페인의 18세기 극작가 비센떼 가르시아 델 라 우에르따의 대표작 "라?"은 상연 당시 커다란 흥행 성공과 대중적 인기를 얻은 연극으로, 당시의 주된 미학적 조류였던 신고전주의의 규범을 충실하게 따른 가장 이상적인 극작품으로 여러 학자와 비평가들에 의해 평가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 연극의 대중적 성공을 가능케 한 요인은 삼단일성의 원칙이라든지 희극적 인물의 배제 등과 같은 신고전주의의 외적 규범에 대한 준수에 있었던 게 아니라, 여전히 이전 시대의 바로크 연극적 성향에 열광하고 있었던 당시의 스페인 관객들의 독특한 경향과 기호에 맞도록 그 주제나 내용을 전통극에 맞도록 조화시켰던 데에 있었다. 즉, 당시의 스페인 관객은 자신들 고유의 극적 취향과는 무관하게 이전 시대의 바로크적 연극을 미신과 비이성, 비논리와 무질서로 가득 찬 연극으로 간주하며 이러한 연극에 열광하는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계몽하려는 신고전주의자들의 연극을 철저히 외면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고전주의 비극과 스페인 연극적 전통의 조화를 이루어낸 우에르따의 비극 "라?"은 극적 성공에 대중의 지지와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극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라?"에 나타난 전통극적 요소로는 크게 명예, 시적 정의, 그리고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 요소들은 공히 스페인의 바로크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극적 코드들인 것이다.

뮤지컬 양식사 전개에 나타난 특성과 전략 - 통합과 해체의 관점을 중심으로 - (Characteristics and Strategies Shown in the Development of the History of Musical Styles - Focused on the Perspective of Integration and Deconstruction -)

  • 이은혜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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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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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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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현대 뮤지컬사에서 대두되는 뮤지컬 양식을 통합과 해체란 관점으로 분석함으로써, 각 양식에 내포된 특성과 전략을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데 있다. 뮤지컬의 양식은 시대에 따라 이합·통합 ·해체·융합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뮤지컬 양식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으로 양식의 발현시기와 의미를 고찰할 수 있다. 모더니즘은 '통합'과 '집중'의 에너지가 주조를 이루며, 전기 포스트 모더니즘은 '해체'와 '분산'의 동력이, 후기 포스트모더니즘은 양 사조의 변증법적 결과물로서 '융합'과 '조화'의 철학이 주조를 이루며 작동하고 있다. 뮤지컬의 창작 원리인 통합과 해체 원리는 뮤지컬 태동기의 불안정한 이합의 양식의 발전기를 지나 발현하였다. 이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등장으로 인해 드라마의 선형성이 강조되는 북 뮤지컬의 통합 원리를 구축하였고, 새로운 내용을 담기위해 콘셉트 뮤지컬의 해체 원리가 탄생하였다. 이후 뮤지컬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융합성'은 이합에서 통합으로, 해체에서 다시 통합으로 선회하는 것으로, 좀 더 발전적인 의미에서 통합이 해체를 다시 포용하고 있다. 이렇듯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융합적 절충은 뮤지컬 양식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인단오제 큰굿의 구조 정립 모색 (Seeking an Establishment of Structure in the Big-gut, Jaindanoje)

  • 홍태한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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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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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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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글은 현재 연행되고 있는 자인단오제의 큰굿의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구조를 새롭게 정립해야 함을 주장한 글이다. 현재 자인단오제에는 큰굿이 연행되고 있으나, 굿거리와 공연물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굿거리의 성격이 모호하다. 그러다보니 한국 무속의 구조에 맞지 않은 이상한 굿거리들이 연행되고 있는데, 패왕별희, 어우동 거리 등이 그 예이다. 세부적인 절차도 어색하여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기보다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무속 양상이 혼합되어 있다. 바라를 팔다가 고를 푸는 칠성거리가 그 예이다. 또한 개별 굿거리에 다수의 무당이 등장하여 춤을 추면서 굿을 연행하고 있어 굿이라기 보다는 무용극 내지는 춤공연으로 보이는 것도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극복되어야 큰굿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굿의 구조를 고려할 때 초반부, 중반부, 종반부의 구성을 지키면서 굿거리의 층위를 신령의 체계와 맞출 필요가 있다. 굿거리가 아닌 것들은 과감하게 빼버려서 굿거리 중심의 연행물이 되어야 한다. 개별 굿거리를 담당하는 주무를 설정하고 주무 중심으로 굿을 진행해야 한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문제가 있다면 경상도 내륙의 무속 사정을 잘 아는 새로운 연행담당층을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자인단오제 큰굿은 이제 무형문화재의 일부이다. 과거처럼 사람들의 흥미에 부응하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공연물이 아닌 우리의 전통 문화를 대표하는 전승물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연행된 굿거리를 재검토하여 획기적으로 다시 재편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동시대극의 관객역할 연구 - 펀치드렁크 극단의 <슬립 노 모어>를 중심으로 (A Study on audience role of Contemporary Theatre - Focused on Punchdrunk's )

  • 전윤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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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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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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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동시대극에서 관객과 공연의 직접적인 소통을 유도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관객은 개인화된 경험을 원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이머시브 극'은 동시대극을 대표하는 장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머시브 극'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극단이 영국의 펀치드렁크 극단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공연 <슬립 노 모어>는 2003년 영국 '런던'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에까지 영역을 넓히며 2019년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슬립 노 모어>에서 관객의 역할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관객의 참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가 동시대극에서 강조될 수밖에 없다. 관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동시대극은 점점 어떤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다. 본 고에서 살펴볼 <슬립 노 모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는 관객마다 개인화된 경험을 바라고 있고 관객 또한 자라 온 환경이나 보유한 지식이나 문화수준, 취향에 따라 경험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동시대극을 대표할 수 있는 공연으로 펀치드렁크 극단의 <슬립 노 모어>를 선정하고 이 작품을 중심으로 동시대극에 나타나는 관객역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관객역할에 대한 과거의 논의들을 역사적으로 탐색하여 동시대극에 나타나는 관객역할의 특징에 대해 논의하였다. 다음으로<슬립 노 모어>에서 나타나는 관객 역할에 대해 연구자와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한 연구자 '그'의 경험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였다. 결론적으로 <슬립 노 모어>에서 관객의 경험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났다. 즉 포스트 드라마 극에서 주목하는 참여자로써의 관객뿐만 아니라 프로시니엄 극에서의 전통적인 관객의 역할 또한 공연 내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성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펀치드렁크 극단의 기획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대극에서 나타나는 관객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때 자칫 단순히 관객을 참여자로 바라보는 시각 하나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을 통해 동시대 극에 나타나는 복잡한 특성들을 명확히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논의들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음반 창극 <사명대사>(1971)의 형식적·내용적 특징과 자료의 의미 (The formal and intrinsic characteristics of the Changgeuk album (1971) and the meaning of the material)

  • 송소라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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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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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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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1971년에 음반으로 제작, 발표되었던 음반 창극 <사명대사>를 대상으로 자료가 갖는 형식적·내용적 특징을 살피고,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음반 <사명대사>는 '창극'을 표제어로 제작, 발표되었지만 해설과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판소리 창은 부분적으로만 쓰였다는 점에서 무대극으로 다루어지는 창극의 양식과는 차이를 갖는다. 1930년대 무대극으로서 창극의 양식, 이른바 '판소리 음악을 중심으로 하여 판소리 창자가 중심이 되어 꾸민 연극'이 성립되기 이전, 그리고 이후 유성기 음반과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 나아가 현대의 창극에 이르기까지 창극의 양식은 매우 다채로웠다. 판소리 음악만이 중심이 아니었고, 등장인물로서 전통연희자가 주요 구성원이지만도 않았다. 음반 창극 <사명대사>의 형식적 특징은 1950~60년대 낭독극, 라디오 드라마의 성행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나타난 새로운 시도이다. 본고는 20세기 중·후반 음반과 라디오를 통해 다루어진 '창극'의 실질적 형태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명대사>가 갖는 의미를 조망하였다. 더불어 새롭게 유입되는 문화와 매체 속에서 창극이 행한 다양한 양식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명대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였다. 음반 창극 <사명대사>의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이종익의 장편소설 사명대사(1957)를 수용하되, '사명대사'의 일대기적 삶에 중심을 두고 서사를 전개했다. 그리고 원작이 추구한 사명대사의 구도자적 삶과 구국 충신으로서의 삶을 80분의 음반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이러한 내용적 구성은 이 음반을 제작한 소리꾼 이용배의 창작 의지와 당대 구국의 역사 영웅을 무대로 소환하는 역사극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소리꾼 이용배는 사명대사의 구도자적 삶을 통해 탐욕과 자만심이 가득했던 창극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대사의 인격적, 사상적 면모에 큰 감화를 받았다. 1971년에 음반을 발표하고 약 30년이 지나서는 사명대사를 창작 판소리로 만들어 공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다음으로 창극 <사명대사>는 1970년대 민족과 국가, 민중의 담론 아래에서 국란의 민족영웅을 소설과 극, 영화, 등의 매체로 소환하는 과정에서 음반과 전통극도 이에 함께 응한 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중' 영웅을 강조하는 역사극이 대두되는 흐름을 볼 때, <사명대사>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민중' 영웅으로서 사명대사를 극으로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그리고 전통의 소리와 음악으로 이를 구현하여 전통음악의 가치 역시 드높이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다.

한중에서의 일본 고전극 노(能) 연구의 성과와 경향 (Results and Trends of Research on Japanese Traditional Theatre 'Noh' in Korea and China)

  • 강춘애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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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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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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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was to summarize Korea and China's researches on Noh and to examine main domain in this field, by investigating the academic books and articles published in two countries. In 1960s, since Nohgaku has been introduced to China, academic articles on Zeami's theories and aesthetics have emphasized on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Chinese plays and Japanese Nohgaku through the similarities of oriental plays. The number of researches on Kabuki is almost twice as that of researches on Noh in China. While most researches on Kabuki were compared with the styles and music of Pecking Opera and the theatrical theories of liyu[李漁], those on Noh has been highlighted the comparative studies on $Y{\bar{o}}kyoku$[謠曲], Chinese Noh plays. The main difference among the researches on $Y{\bar{o}}kyoku$ in Korea and China was the material regarding characters of Noh. Because song yuanzaju[宋 元雜劇]and Nohgaku in Chinese-Japanese plays were the mature form of the classic plays and those were representative of traditional nation plays, this researches tried to ascertain the cultural origins of two countries regarding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by referencing lyrical and narrative features[曲詞] of yuanzaju[元雜劇]and the classic waka of Nohgaku. While the comparative studies on Noh and song yuanzaju and kunqu[昆劇] in China were prevalent, national researches have emphasized on the inner world of the main character and dramaturgy through the verbal description of Noh. Especially, this research tried to investigate the inner world of the main character and the intention of the writers through the verbal description of Noh authorized in the history of the works. Also, the researches on Buddhism in the Middle Ages and religious background were examined significantly. In addition, the $Y{\bar{o}}kyoku$ has influenced on European modern playwrights and the comparative studies between the materials of $Y{\bar{o}}kyoku$ and Western modern plays were concerned. In Korea, the comparative studies on Noh between Korea abd Japan has been most focused on the origin theory of Noh. The fact that appearance theory of Noh had originated from Sangaku was common opinion among Korean, Chinese, and Japanese scholars. However, they are agree with the opinion that according to the formation of the different genres, Noh's mainstream was different among three countries despite of the same origin. Yuan drama and Noh play have the same origin, but different branch. In relation to the Noh's origin theory, there are literature comparative studies in religious background, the studies presumed the origin of instrumental music related to those in mask plays, and the comparative studies between Korean mask plays and $ky{\bar{o}}gen$ of Nohgaku. Kyogen is the Comedy inserted among the stories in Nohgaku performed in just one day. Therefore, $ky{\bar{o}}gen$ must be discussed separately from the relations of 'shite[任手]'s inner action veiled with masks. This research figured out that the lacking points of the two countries' researches were the acting methods of Noh. Academic articles written by foreign scholars studying Korean and Chinese theatres should be included when this issue will be dealt with. In Korea and China, translation studies and writings regarding Nohgaku have studied by those who are major in Japanese literature or oriental literature. This case is the same in Korea in that scholars whose speciality is not theatre, but Japanese literature has studied. Therefore, this present study can give a good grasp of whole tendency on Nohgaku's research in theatre fields.

공연에서 나타나는 '전이'와 배우의 '심리적 경계'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Performer's Transference and Mental Borderline in a Performance)

  • 김종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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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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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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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일반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은 처음 텍스트(희곡)를 접하면서 배역과 배우 자신과의 경계를 허물려는 노력을 통해 일상의 공간에서 극중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심리적 전이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전이'는 실제로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무대에 서기전까지 분장실이나 윙(무대에 등장하기 직전의 공간), 그리고 무대(관객을 접하는 공간)라는 물리적 공간이 그것이다. 공연을 하는 배우는 공연기간이 완전히 종료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심리적 물리적 공간들을 이동하게 된다. 이렇게 각각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전이'이며, 이 '전이'과정 속에서 배우들이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변화의 지점을 '심리적 경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경계'는 실제 배우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전이되는 순간 느끼는 심리적 양상들을 통해 그 존재 자체를 유추할 수 있다. 배우의 '심리적 경계'를 알 수 있는 변화 양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긴장', '불안' 등으로 표출되는 '무대공포'인데, 연구에 따르면 가장 많은 수의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기 직전의 공간에서 이 같은 심리적 양상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즉 회피의 감정이 높게 나타났다. 본 연구는 공연을 완성해 무대에서 구현하기까지 과정 중에서 배우가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물리적 공간과 이를 관통하는 전이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경계'와 배우의 심리적 변화에 대한 관계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선행연구를 통해 심리적 경계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배우가 경험하는 '공간'과 그 전이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경계'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였다. 둘째, 공연과정에서 나타나는 '전이영역'을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으로 재분류하여 개념 정리를 하였다. 셋째, '심리적 경계'를 체험하는 배우들의 실제 사례 분석을 통해 긍정적 요소로 작용가능한 '경계'의 다각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해 본다. 공연을 하는 배우가 경험하는 심리적 현상은 무대공포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외에도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전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긴장이 배우에게 긍정적이고 에너지화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이'와 '심리적 경계'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공연중 배우가 경험하는 '심리적 경계'에서 실제 배우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며 심리상태가 유지되어 공연의 전 과정을 수행하는 것인지를 분석하여 무대공포, 부끄러움 등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집중력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체성의 다변화와 방어기제로 활용되는 무대 현존의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