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onfucian Scholar

검색결과 90건 처리시간 0.027초

이제마의 사상철학(四象哲學)과 생활세계[몸-공동체] 패러다임 (Ijema(李濟馬)'s Philosophy of Four Constitution and Paradigm of Life World[Body-Community])

  • 정복철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 /
    • 제21권4호
    • /
    • pp.207-224
    • /
    • 2008
  • This study attempts to illuminate Ijema's philosophy of Four-Constitution as a new political theory of human beings as it has been regarded as the philosophy of Body-Politics and Life World[Body-Community], the notion of which was formulated quite uniquely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Post-Juhi(朱子) in Joseon(朝鮮) dynasty. The philosophy of Four-Constitution was the result of succession of and reflection upon a long tradition; since the crisis aroused of Confucianism as a pragmatic science and a pure theory of science, after having collided with the science of the west, Ijema as a Confucian scholar and a oriental medicine struck upon and opened a new way to a discursive solution, the philosophy of Four-Constitution as Body Politics and Life World of New Paradigm by reconsidering the fundamental spirit and ideology of the doctrine of confucian tradition.

  • PDF

최석정(崔錫鼎)의 산학연구와 ≪양와집(養窩集)≫의 저자 이세구(李世龜) (Mathematical work of CHOI Seok-Jeong(崔錫鼎) and LEE Se-Gu(李世龜))

  • 이상구;이재화
    • 한국수학사학회지
    • /
    • 제28권2호
    • /
    • pp.73-83
    • /
    • 2015
  • In this paper, we give answers to some interesting questions about a Confucian scholar and mathematician in the late Joseon Dynasty, CHOI Seok-Jeong(崔錫鼎, 1646-1715), who was inducted into the Science and Technology Hall of Fame (http://kast.or.kr/HALL) for his mathematical achievements in October, 2013. In particular, we discover that CHOI Seok-Jeong was able to devote his natural abilities and time to do research on mathematics, and that he frequently communicated with his friend and fellow scholar, LEE Se-Gu(李世龜, 1646-1700), who was an expert on the astronomical calendar and mathematics, based on at least 24 letters between the two.

18세기 노론 낙학파(洛學派)의 현실인식과 대응논리 ­- 『성리대전』에 대한 황윤석의 인식을 중심으로 - (Reality Awareness and Response of Noron Party Nakhak School in the 18th Century - Focusing on Hwang Yun-Seok's awareness to Seongridaejeon)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 /
    • 제50호
    • /
    • pp.139-169
    • /
    • 2016
  • 조선 후기 집권 노론의 낙학파는 성리학의 이념으로 국정을 이끌면서 종래의 '정신적' 측면에 급급했던 데서 벗어나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정계와 학계의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했던 세력이 김원행(金元行)을 중심으로 한 석실서원(石室書院) 계통의 학인들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진보적 학자-북학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낙학파 학자들은 청나라의 실체를 내심 인정하면서도 종래의 성리학적 전통에서 벗어 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정권의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북학론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종래의 성리학적 전통과 조선중화주의의 이념을 지키면서도 청나라의 문화 수준에 이를 방안을 모색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리대전"에 집약된 경세학 체계의 복구를 대안으로 인식하였다. 황윤석은 낙학파의 이런 대응논리를 대변하였던 성리학자다. 그는 성리학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상수학의 가치를 재발견하였고, "성리대전"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했다.

원굉(袁宏)과 갈홍(葛洪)의 유도(儒道)관계론 연구 (A study on the perspective of relationship between Confucianism and Taoism of Yuan-hong & Ge-hong)

  • 李溱鎔
    • 한국철학논집
    • /
    • 제27호
    • /
    • pp.293-326
    • /
    • 2009
  • 중국철학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는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이다. 두 학파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현실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상이한 이론체계를 세운다. 다만 중국철학의 발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상이한 이론을 하나의 체계 속에 엮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었다. 대표적으로 위진(魏晋)시기 현학(玄學)에서는 자연(自然)과 각수(名敎)의 관계를 토론하며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설정에 골몰한다. 동진(東晋)시기의 지식인들은 바로 전대(前代)의 이러한 정신을 이어서, 직접적 방식으로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설정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펼친다. 본 논문은 동진(東晋)시기 유도(儒道)관계론의 대표적 학자로 원굉(袁宏)과 갈홍(葛洪)의 이론을 살펴본다. 원굉(袁宏)은 명교(名敎)의 효용성과 가치를 충분히 긍정하면서, 다만 명교(名敎)의 근본과 근거 찾기에 골몰하여 전대(前代)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본유용(道本儒用)'의 관점을 제시한다. 갈홍(葛洪)은 신선도교(神仙道敎)의 입장에서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및 두 학파 이론의 직접적 비교를 통해 '도본유말(道本儒末)'의 이론을 정립한다. 이들의 이론은 근본과 작용, 근본과 말단의 관계 설정으로 유가와 도가 두 학파의 관계를 설정하는 동시에,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를 보다 심층적 방식으로 이론적 접근을 꾀함으로써, 향후 중국철학에서 유가와 도가의 상호 보완이라는 문제의식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가 문인예술에 나타난 선비정신의 특질 -조선조 유가 문인의 문인화를 중심으로- (The review of characteristic for 'SUNBI'spirit, seen literati arts of confucian scholar -focused on literati paintings of confucian scholar for chosun dynasty-)

  • 권윤희
    • 문화기술의 융합
    • /
    • 제7권1호
    • /
    • pp.117-133
    • /
    • 2021
  • 유가의 문인은 자신의 성정을 수양하고 학문을 바탕으로 한 인본주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지고와 지선의 삶을 추구하며 예술을 통하여 열락의 경계에서 삶을 향유하였다. 유가 문인의 예술은 주로 문인화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시서화가 어우러진 문인화는 문인의 인품과 학문을 전제로 한다. 이는 보통 여기(餘技)와 묵희(墨戱)·석묵(惜墨)으로 인한 신사(神似)의 기법을 바탕으로 한다. 유가 문인예술의 지향은 사의성(寫意性)의 추구(追求)·정신성(精神性)의 추구(追求)·유·도가미학의 혼융추구에 있다. 이는 유가 문인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학문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조 유가 문인의 선비정신은 우선 절의는 절개와 의리 그리고 충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의병활동과 구국을 위한 강학활동, 성정을 자연과 함께 한 풍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선비의 절의(節義)·충절(忠節)·의병(義兵)·강학(講學)·풍류(風流)등이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경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인화에 담겨진 화제이다. 여기에 유가 문인의 흉중을 바로 읽어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선비정신의 미의식은 풍류·충절·실학·애민·의리·사랑 등에서 그 미학을 새겨볼 수 있다. 선비정신의 예술적 구현을 위한 예술의 심미체험은 주로 감성지능에 의한 심미의 체험과 개인의 성향에 따른 심미체험이 있다. 이는 우리의 여러 문인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조 유가 문인예술에 드러난 선비정신은 정신 지향성이었으며 여유 지향성이었다. 나아가 사의 지향성과 실득 지향성이 있어 선비정신의 특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사칠논쟁(四七論爭)의 연원과 문제의식 - 『입학도설(入學圖說)』과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중심으로 - (On the Problems of Iphakdosoel and Chunmyongdosoel, as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of the Four-Seven Debate)

  • 장숙필
    • 동양고전연구
    • /
    • 제32호
    • /
    • pp.129-158
    • /
    • 2008
  • 본고는 "입학도설"과 "천명도설"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사칠논쟁의 연원을 밝힘으로써 조선유학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사칠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이론논쟁으로, 이로부터 파생되는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미발심체논쟁 등 심성설 중심의 이론탐구는 조선유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접근은 대체로 이러한 이론논쟁을 현실을 도외시한 조선성리학의 공리공론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이론논쟁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지닌 철학적인 사고능력을 보여주는 철학논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촌의 "입학도설"에서부터 나타나는 성리학에 대한 기본이해는 성리학이란 수기치인지학으로서 결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것이며, 이상사회는 통치계층의 도덕성실현위에 모든 사람들의 도덕성이 실현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를 밝히고, 수양의 목표를 제시하며, 선악의 유래를 명확히 함으로써 현실적인 악을 극복하고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추만의 "천명도설"에서도 그대로 계승된다. 추만의 "천명도설"은 우리의 도덕성은 천명으로서 주어져 있으며 이를 근거로 천인합일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본격적인 심성논쟁이 의리실천을 학문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도학의 전통이 세워진 이후 도학자임을 자부하던 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결코 현실과 유리된 공리공론이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조선유학이 가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의 실현을 통해 인간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인간에 대한 가치론적 이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3대문화권 사업 계획의 역사문화적 진정성 평가 - 한국문화테마파크 영주지구와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 봉화지구를 대상으로 - (The Evaluation of Historical and Cultural Authenticity of the Three Major Cultural Areas Projects - Targeting Korean culture theme park in Yeongju-Zone and World confucian scholar culture park in Bonghwa-Zone -)

  • 정경아;소현수
    • 농촌계획
    • /
    • 제22권1호
    • /
    • pp.25-35
    • /
    • 2016
  • This study targets Korean culture theme park in Yeongju-Zone and World confucian scholar culture park in Bonghwa-Zone among the Three Major Cultural Areas Projects supervised by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The study analyzes the Historical and Cultural Authenticity of each project on the basis of the reports and the report materials for meeting with related organizations.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drawn as follows. First, through the theoretical consideration, this study drew the types of authenticity: originality, identity, specificity and visibility, which are evaluation items on the Historical and Cultural Authenticity. Second, Bonghwa-Zone succeeded in acquiring originality with tangible cultural properties but Yeongju-Zone chose a project site without it. Third, with originality, Bonghwa-zone was evaluated as having resources and concept with high traditional culture connectivity and fulfilled identity. It led the feature showing the high affinity between originality and identity. Fourth, compared to the projects of Andong-Zone in the Three Major Cultural Areas Projects, these two projects failed to acquire the distinctions since the primary and the secondary influence area and major facilities & programs coincided with those of the projects of Andong-Zone. Fifth, compared to Bonghwa-Zone, Yeongju-Zone realized visibility faithfully by the conceptual flexibility of "Korean Culture" and a large-scale development. Sixth, in terms of the Historical and Cultural Authenticity of project plan, it is evaluated that Yeongju-Zone and Bonghwa-Zone only fulfilled visibility and specificity respectively.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도서간행(圖書刊行)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Guam LeeJung's Publication of Books)

  • 안현주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 /
    • 제42권1호
    • /
    • pp.339-367
    • /
    • 2011
  • 이 연구는 16세기 성리학자이며 문선이었던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도서간행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그 결과 구암은 20종의 도서 편찬 교정 간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3종의 서적을 편찬 간행하였고, 4종의 서적을 교정 간행하였으며, 12종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황, 남궁침, 김충갑, 김홍 등이 도움을 주었다. 간행된 서적들은 1종을 제외하고 모두 성리학관련도서였고, 서적의 간행사기는 1554년부터 1566년까지로 구암이 성주, 경주, 순천에서 지방관으로 재임할 때였다. 또한 서지사항이 확실한 19종은 모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중기 은거선비의 집터와 별자리의 관계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입암기(立巖記)"에 대해서 - (Astronomy and the Hermitages developed by Scholars in the Middle Era of Choseon -The case of Chang Hyon-gwang(1554-1637)-)

  • 김동욱
    • 건축역사연구
    • /
    • 제10권2호
    • /
    • pp.7-19
    • /
    • 2001
  • Ip-am valley, located at the eastern remote part of Korean peninsular was the place where a remarkable Confucian scholar Chang Hyon-gwang spent his secluded days. A large upright stone, called Ip-am, and undulating streams nearby were surrounded by mountains, which formed a large enclosed valley. After selecting 28 natural and artificial places, Chang named each of them. Chang compared the relationship between Ip-am and the 28 places with that of the Polestar and 28 Lunar Lodgings, which were known as the ancient Chinese astronomical concept. Also, Chang regarded the valley as a place where the Taoistic Deity could stay. Chang, who had deep knowledge of astronomy, wrote some books on it. It could be said that the comparison of his hermitages with the Polestar and the 28 Lunar Lodgings resulted from his deep passion for astronomy. He considered the Ip-am valley to be the core of the universe like the Polestar is the core of the celestial world. Some stars like the Polestar or the Dipper were regarded as the Deities of Taoism. We can find that Confucian scholars of the middle Choseon, like Chang Hyon-gwang, also tended to have some concern about Taoism.

  • PDF

송대 '대나무' 도상의 상징에 대한 고찰 - 『성화집(聲畵集)』의 '대나무' 제화시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ymbols of bamboo icon in bamboo paintings - Focused on 'bamboo' Ti-hua-shi(題畵詩) in 『Sheng-hua-ji(聲畵集)』)

  • 서은숙
    • 동양고전연구
    • /
    • 제35호
    • /
    • pp.471-498
    • /
    • 2009
  • 본고는 그림에 제하거나 그림을 대상으로 한 제화시(題畵詩)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묵죽(墨竹)의 형상성이나 형상 과정이 잘 묘사될 수 있다고 여겨, 송대(宋代) 제화시를 수록한 대표적 제화시집인 "성화집(聲畵集)"에 실린 '대나무' 제화시를 통해 북송대 이후 묵죽화의 발전 양상과 그것의 도상학적 의미를 살펴본다. 묵죽화 발전 양상과 그 유형을 살펴보면, 북송대에는 당시 어부(御府)에 148축의 묵죽화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묵죽화가 성행했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묵죽의 모습, 즉 그림 속의 '도상'은 와룡처럼 누운 횡죽(橫竹)이나 교룡처럼 굽은 우죽(紆竹)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많은 대나무가 겨울에 서리를 맞고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송대에 오면 '대나무' 도상에 대한 인식은 유가적 이상형인 군자라는 보편적 인식과 더불어, 대나무를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여기고 문인 사대부 특유의 문인성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게 된다. 그 결과, 전업화가들이 단청(丹靑)과 형사(形似)에 몰두해 그린 대나무가 아니라 문인 사대부 즉 자신들이 '묵죽'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묵죽에 대한 송대 문인사대부의 애호와 관심에는, 유가적 이상형인 군자 외에 시련에도 불요불굴하는 의지의 구현자이자, 부귀와 공명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도덕적인 책임과 문화적 과제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진정한 '문인성'의 체현자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