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Bro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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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빔 조사에 따른 잿빛곰팡이병원균 방제효과와 절화 장미의 수확 후 품질 (Control of Botrytis cinerea and Postharvest Quality of Cut Roses by Electron Beam Irradiation)

  • 권송;최경자;김기선;권혜진
    • 원예과학기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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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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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7-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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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전자빔 조사에 따른 잿빛곰팡이병 방제효과와 절화 장미의 수확 후 품질을 알아보고자 수행하였다. 10MeV 전자가속기를 이용하여 0.1, 0.2, 0.4, 0.6, 0.8, 1, 2, 10, 20kGy로 조사했을 때 전자빔 선량이 높아짐에 따라 Botrytis cinerea 포자 발아와 균사 생장은 억제되었다. 전자빔 조사가 B. cinerea 포자 발아와 균사 생장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했을 때, 포자 발아를 50% 억제하는 선량은 2.02kGy, 균사 생장을 50% 억제하는 선량은 0.89kGy였으므로 포자가 균사에 비해 전자빔에 대한 저항성이 더 높았다. 전자빔 조사후 배양온도에 따른 B. cinerea 균사 생장을 비교한 결과 잿빛곰팡이병균에 대한 전자빔 효과는 배양온도가 낮아질수록 증가하였으며, 특히 $10^{\circ}C$에서 가장 높은 균사 생장 억제효과를 보였다. 토마토 유묘를 이용하여 전자빔의 in vivo 살균활성을 검정한 결과 전자빔 선량이 높아짐에 따라 방제효과도 증가하였다. 절화 장미는 전자빔 선량이 높아짐에 따라 절화수명 및 생체중의 감소, 개화 지연 등을 보였으며, 'Decoration', 'Il se Bronze', 'Queen Bee', 'Revue'는 0.4kGy이하에서 전반적인 절화품질이 유지되었지만 'Vivian'은 0.2kGy 이하에서만 절화품질이 유지되어 장미 품종에 따라 전자빔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게 나타났다.

다호리 출토 칠초철검(漆鞘鐵劍)의 보존 (Conservation of Iron Dagger & Scabbard Excavated in Daho-ri, Changwon)

  • 심명보;임지현;마대완;김미도리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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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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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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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칠기검집에 철검이 끼워져 있는 상태의 칠초철검(漆鞘鐵劍)이 출토되어 이에 대한 보존처리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식되어 상태가 취약한 청동제검심(劍鐔)은 강화제로 사용 중인 Incralac을 도포한 후 현미경을 이용하여 표면의 문양을 노출하였다. 칠기검집의 표면은 이물질을 제거함과 동시에 HPC 2% 수용액를 도포하여 피막을 보호하였다. 이물질 제거가 완료된 칠 표면에는 Caparol binder 5% 수용액를 2~3회 도포하여 보호피막을 형성한 다음 한지와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 주었다. 이후 우레탄폼으로 유물을 안전하게 고정한 후 뒤집어 뒷면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두께가 얇은 유물을 지지하기 위해 검집의 뒷면에 한지를 3겹으로 붙여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내부의 철검은 검집에 도포한 HPC 2% 수용액를 주입하여 굳히는 정도로 마무리하였다. 이후 투명 아크릴 상자에 보관하여, 향후 전시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열처리 조건에 따른 재현 도금층의 표면현상 연구 (A Study on the Surface Phenomena of Re-creational Gilt Layer by Conditions of Heat Treatment)

  • 양석우;김수기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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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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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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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는 매장상태에서 출토되는 금동유물의 표면색이 고유한 금색 이외에 붉은 계열의 색들과 교반되어 나타나는 원인을 규명하고자 수은아말감도금법을 재현해 보고 완성품에 대하여 열처리 조건을 변화시켜 도금층의 표면색과 표면 및 단면의 상태변화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높은 열처리 실험조건 일수록 도금층에 검은 산화물층이 넓게 생성되었으며, 산화물층을 제거한 부분에서는 붉은색의 도금 표면색이 표출되었다. 또한 표면이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교반된 시료의 미세 표면관찰에서는 색상에 따라 표면상태의 변화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으며 단면에서는 도금층 공극의 밀도와 크기가 점차 커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열처리 실험 후 표면성분분석 결과 온도가 올라갈수록 Hg와 Au의 비율은 감소하였으나 Cu의 성분비는 증가하였다. 또한 단면분석 결과에서도 실험조건에 따른 층위별 Au와 Cu의 성분변화가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실험결과들을 볼 때 아말감을 이용한 금동유물은 생산과정이나 생산 이후에 열이 도금층의 표면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하며 도금층 상태에도 관계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국리유적 재고 (Reevaluation of the Songguk-ri site)

  • 손준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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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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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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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송국리유적은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석관묘가 발굴됨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획기를 이루는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송국리유적 보고문에는 전체 평면도조차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유적의 전모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송국리유적의 보고서와 관련 보고문을 재검토하여 발굴된 전체 유구의 배치도를 작성함으로써 연구의 기초자료를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과 개별 유구및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결과를 최근의 발굴.연구성과와 비교 검토함으로써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에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송국리유적에서는 주거지, 부속유구, 저장공, 요지, 목책렬, 녹채, 굴립주건물지 등의 생활 유구와 석관묘, 옹관묘, 토광묘 등의 분묘 유구, 그리고 대지조성면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의 증거들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유구의 분포 양상이나 유물상의 유사성 등을 통하여 볼 때 동일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에 의하여 대략 B.C. 850-550년의 범위로 산정되었다. 한편,송국리유적에서는 논농사의 집약화를 통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켰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력자또는 유력 집단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이를차지하기 위한 빈번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는 인구 증가에 의한 주거 공간의 확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송국리유적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변의 여러 취락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취락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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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반도 지석묘 사회의 계층구조 (Hierarchy of the dolmen society in Yosu Peninsula)

  • 이동희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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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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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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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고는 위세품이 풍부하고 타 지역보다 많은 지석묘가 발굴조사 된 여수반도를 대상으로 지석묘사회의 계층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수반도에서는 약 20개소의 지석묘 군이 발굴조사되었다. 지석묘의 수.상석.무게.입지 부장유물 등을 분석해 보면 지석묘군집별 위계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대개 지석묘의 수가 많아 집단이 크고 상석이 대형이며 입지가 곡간 평지나 구릉의 하단부에 자리잡은 집단이 부장유물이 풍부한 중심적인 집단으로 추정된다. 다만, 개별상석의 크기와 부장유물은 상호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상석의 규모와 부장유물의 관계에서는 개별 상석보다는 지석묘군 전체를 검토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집단별로 어느 정도 크기의 상석을 옮길 수 있는지는 그 집단의 위상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단위 지석묘군내에서도 상석, 매장주체부, 부장품 등의 차이에 의해 지석묘간의 차별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지석묘가 청동기시대 일부 주민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석곽에 비해 동검이나 옥, 석검이 부장된 석곽묘의 존재는 하나의 친족집단내에서도 부나 권위에 근거하여 한 세대를 대표하는 유력자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석묘 피장자 중 상석이나 매장주체부가 크고 위세품이 부장된 경우가 상층으로, 석곽이 비교적 작으면서 부장품이 없거나 빈약한 경우가 중층으로, 지석묘에 피장되지 못하는 다수의 계층이 하층으로 각기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3계층은 각기 삼한시대의 대인, 하호, 생구와도 연계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여수반도 지석묘사회는 단위 지석묘군내에서 계층구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간에도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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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 ${ZrO}_{2}, {Si}_{3}{N}_{4}$ 및 SiC를 SiC, AISI 4340 및 청동으로 윤활 및 건조조건에서 미끄름시험하였을 때의 마찰 및 마멸 거동 (Friction and wear characteristics during sliding of ${ZrO}_{2}, {Si}_{3}{N}_{4}$ and SiC with SiC, AISI 4340 and bronze under dry and lubricated condition)

  • 강석춘
    • 대한기계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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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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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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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본 연구에서는 공업용 세라믹(요업재료등)으로 개발된 것 중에서 가장 마찰특성이 우수할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SiC, Si$_{3}$N$_{4}$와 ZrO$_{2}$ 의 건조 및 윤활마찰특성과 금속과의 마찰특성을 실험적으로 밝히려 한다.

니조성(二條城)과 창덕궁(昌德宮)을 통해 본 한ㆍ일 궁궐의 의장 특성 - 건축 외장 재료와 색채를 중심으로 - (A Study on Materials and Colors between Nijo-Castle and Changdeok-Palace)

  • 김은정;박영순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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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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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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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 연구에서는 동일한 중국 건축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온 한국과 일본의 궁궐 건축에 대한 현장조사를 통하여 재료와 색채 특성을 연구함으로써 두 나라의 특징을 비교하고 이해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었다. 연구 대상은 각각 창덕궁과 니조성으로 선정하였고, 각 궁궐의 분석 대상 범위는 임금의 주요한 업무와 관련하여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전(殿)’으로 한정하였다(正殿, 便殿, 寢殿). 또한 색채 측정과 분석은 자연색체계가 사용되었다. 창덕궁과 니조성의 재료 사용 특성을 비교한 결과 창덕궁은 육송, 화강석, 기와, 청기와, 전돌, 흙, 석회, 짚, 한지, 청동 등을 사용하였고, 니조성은 편백나무, 화강석, 기와, 흙, 석회, 짚, 화지, 청동, 금 등을 사용하였다. 색상 분포에 있어서는 창덕궁이 Y에서 R사이의 영역, G∼G30Y, R80B∼B, B에서 G사이의 영역에서 나타났고, 니조성에서는 Y에서 R사이의 영역, B80G∼B90G, G30Y의 색상이 나타났다. 색조에 있어서는 창덕궁이 Deep chromatic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 나타난 반면, 니조성에서는 Greyish chromatic, Toned light grey, Dark deep, Toned dark grey, Toned grey의 영역 분포를 보였다. 본 연구는 건축물 외부구성요소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재료와 색채 특성을 동시에 연구하였는데, 본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한ㆍ일 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각각의 문화적 특성을 차별화하는 방향을 설정하는데 기초적인 자료를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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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유적지의 식물규소체(Phytoliths) 분석 연구 (A Study of the Phytoliths Analysis of Ga-dong Site in Gijang, Busan)

  • 최기룡;김진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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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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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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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부산광역시 기장군 가동 유적지($129^{\circ}\;10^{\prime}\;49^{\prime\prime}{\sim}50^{\prime\prime}E$, $35^{\circ}\;19^{\prime}\;39^{\prime\prime}{\sim}48^{\prime\prime}N$, 68.5~78.5m) 퇴적물의 식물규소체(Phytoliths) 분석을 통하여 조사지 일대의 벼농사 개시기와 국지적 식생 변화를 규명하였다. 식물규소체 분석용 퇴적물은 유적지 내 3개 지점의 수직 구덩이 벽면에서 총 82개의 블록형 시료를 채취하였다. 그 결과, 지점 1에서는 퇴적물 8에서 29까지, 지점 2에서는 퇴적물 6에서 20까지, 지점 3에서는 퇴적물 7에서 33까지 벼(Oryza sativa)의 부채형 규소체가 검출되었다. 3개 지점의 바닥 층과 바닥에 가까운 층에서는 물대아과(Arundinoideae)와 쇠풀족(Andropogoneae)의 식물규소체 출현율이 높은 것으로부터 본 조사지 일대는 농경 개시기 이전 매우 습한 토양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닥 층에서 표층으로 올라 갈수록 물대아과와 쇠풀족의 식물규소체 출현율은 현저히 낮아지는 반면 벼의 식물규소체 출현율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들 결과로부터 본 조사지 일대의 벼농사는 습지 혹은 매우 습한 지역을 이용하였고, 유물편년과 $^{14}C$연대분석에 따르면 벼농사의 개시기가 청동기시대부터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대 한국인이 선호한 기본도형의 의미와 유형 (Meaning of Basic Geometry Patterns to Ancient Koreans and Its Classification)

  • 박선화;김지수;나영주
    • 감성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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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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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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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오래전부터 한국인이 애용해 온 기본 도형을 분석하여 의미와 상징성을 밝히고 그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다. 선조들은 원, 네모, 세모 형태를 선호하였는데 한글에 'ㅇ, ㅁ, ㅅ'가 존재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위해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복식과 유물 등에 나타난 기본 도형을 고찰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도서, 인터넷 및 사진자료 등을 분석하였으며 도자기, 청동기, 복식 등 다양한 곳에 나타난 도형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 연구결과 첫째, 원은 하늘, 해, 달, 별, 청동거울, 얼굴 등을 상징하는데 일찍이 천문관측이 발달했던 사실과 원형제단이나 제사장의 표징인 원형 청동거울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땅(地)을 상징하는 것은 네모라고 보았다. 하늘과 땅신에게 모두 제사를 지냈었고 네모는 부족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담은 현실을 의미하는 형태이다. 마름모형이 더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는 힘을 상징하는 세모가 두 개나 들어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셋째, 빗살무늬 토기에서도 나타나지만 뫼 '산(山)'과 사람 '인(人)' 및 모자나 마늘의 형태 또는 나 '사(?)' 등으로부터 세모가 파생되었다고 보는데 하늘, 땅 다음으로 사람이 중요하다는 고대인의 사고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아름다운 유산인 기본 도형의 연구를 통해 한국역사의 오랜 전통과 정신을 이해하고 새로운 창조문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해(金海) 대성동(大成洞) 환호유적(環濠遺蹟) 연구(硏究) (A study on enclosure in Daesoeng-dong Site, Kimhae)

  • 정의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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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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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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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There is no definite theory, which archeologists have believed to be built either for the protection or ceremonial purpose, of enclosure historical site exhibited from Bronze Age to Samhan era in Korea. The main conditions of choosing right enclosure were natural levee-backswamp-plateau, which all found in village on a hill. For this reasons Kimhae Daesoeng-dong enclosure discovered in 2001 is not an exception, and therefore this enclosure has been believed to be a beginning point of the farming society. In Korea there have been 2 types of enclosure. One is that enclosure entirely surrounds whole historic site itself and the other is that enclosure partially does. Although Kimhae Daesoeng-dong historic site has been discovered only part of it, it's not believed to have the first type-which surrounds the whole enclosure historic site In this research, 3 developing steps of enclosure historic site were defined. Enclosure surrounds only a part of the historic site is 1st step. Enclosure surrounds all around the site is 2nd step. The site discovered with big round clay pottery and developed into multiple enclosure is 3rd step. Since some researches have not been accomplished, the hypothesis above was suggested to have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development of enclosure historic site. The purpose of enclosure has been separately explained for the protection or for the ceremony. It is difficult to assert that excavation sites could be applied to only one of two purposes. But it is possible that both purposes of enclosure such as protection and as division from ceremonial area could be applied together. Kimhae Daesoeng-dong enclosure was shown for the purpose of division from ceremonial area. But we can not ignore that since Kimhae Daesoeng-dong enclosure exposed to the Sea and dwelling area was not shown from village hill, it would be probably for the protection. However enclosure of Gujibong village area in Daesoeng-dong had used for ceremonial purpose since the Bronze Age, even this enclosure would be possible to play an important role of being a center of legend of Gaya foundation. Many unsolved questions are still lying ahead. The enclosure was used for a short time, even if dwelling area was found in and out of enclosure, there were no differences between them, and although duplicate and triplicate enclosure were found, we could not sure which were before and after. Also we could not confirm the type of enclosure with location condition which was the flat land or the top of hill on floodplain. We should not divide the types of enclosure historic site due to differences from cross section of stratum. And I expect that we will have much data such as distribution of enclosure historic site in Yeongnam area where is concerned with origin and diffusion of Japan and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