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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문서 정보패키지 구축 사례 연구 - '공인전자문서보관소 전자문서 정보패키지 기술규격 개발 연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Case of Technical Standard for Electronic Record Information Package)

  • 김성겸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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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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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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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업무 과정에서 생산되는 모든 기록들은 대부분 종이 형태로 작성, 관리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자적 형태의 기록이 종이를 대신하는 추세이다. 전자기록은 종이기록과 달리 생산과 보관의 편리성을 갖고 있어서 업무 효율성 극대화에 기여한다. 그러나 종이기록처럼 원본과 사본의 뚜렷한 구분이 어렵고 전자적 환경에서 외부 영향에 의해 변경, 훼손될 수 있으며 S/W, H/W 환경이 변화할 때 마다 즉각적인 조치를 취함에 있어 어느 경우에는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의 편리성과 생산비용의 효율성으로 인해서 현재 업무 환경에서 전자기록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와 민간, 학계에서는 전자적 형태의 기록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본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공인전자문서 보관소 사업(이하 공전소 사업)이다. 원활한 공전소 사업를 위해서 행정적으로는 전자기록의 법적 효력 보장과 기술적으로는 전자기록의 신뢰성, 진본성 보장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공전소 사업 주체인 산업자원부와 한국전자거래진흥원은 2005년 전자거래법 개정을 통해서 전자기록의 법적 효력 보장 규정을 보완하고 2006년에는 공전소 이용자의 요구인 전자기록의 장기보존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러한 공전소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공전소 전자문서 정보패키지 연구에서는 디지털 형태의 장기보존을 위한 표준인 ISO 14721 정보패키지 모델을 적용하여, 전자기록이 생산 시점의 SIP, 보관 시점의 AIP, 이용자 활용 시점의 DIP 메타데이터 기능을 마련하고 이들이 공전소 정책에 따라 구현될 수 있도록 정보패키지를 생성, 관리하는 프로세스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그동안 진행되었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공전소 전자문서 정보패키지의 생성, 진행 과정과 적용 방법, 패키지 간의 흐름도를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록관리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이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측면 지붕부 결구의 구성방식에 관한 재고(再考) - 중국 원대(元代) 이전 목조건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Hipped-and-Gable-Roof Framework of Muryangsujeon of Buseoksa Temple)

  • 차주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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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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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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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 구조에 관한 연구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일제시대에 해체 보수한 기록이 있으며, 팔작지붕의 측면 지붕부 결구 구조기법과 추녀, 귀서까래 등의 결합 수법들이 정연한 형태로 결구되지 않고, 조선시대 팔작지붕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와 이질적인 요소가 많아 원형이 아닌 것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그 편년에 대해 다양한 의견(13세기, 12세기 건축)들이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어 왔었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목조건축 구조틀이라는 관점에 근거하여, 중국 당 송대 팔작지붕에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 기법과 유사한 건축을 대상으로 평면비 및 어칸과 퇴칸의 비례를 상호 비교하여 살펴 본 결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는 팔작지붕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판단하였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측면 서까래가 내부 보(량(梁))에 직접 접하는 기법은 중국 당 송대 팔작지붕 건축에서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수법으로, 중국의 팔작지붕은 당대(唐代) 이후에 산화(山花, 합각) 양가(梁架)를 구성하여 팔작지붕의 측면을 구성하는 기법이 발달되어, 명청대 이전까지 크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귀서까래의 발달과정 중 평행서까래에서 말굽서까래로 전환되기 이전 방식인 평행복사연(平行輻射椽)이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의 귀서까래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녀의 중간부분부터 귀서까래가 걸치지 않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방식은 중국에서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특성으로 보인다. 이런 기법들을 살펴본 결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는 중국 남방지역에서는 볼 수 없으며, 북방 지역의 당 송대(唐 宋代) 및 요대(遼代) 시기에 볼 수 있는 기법으로, 건축물의 편년시기와 평면에서 어칸과 퇴칸의 비례 관계를 고려해볼 때 동아시아 북방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구조 기법으로 판단된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가 변형된 것이 아니고, 팔작지붕 고유의 방식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향후 부석사 무량 수전의 평면과 어칸 및 퇴칸의 비례,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를 중심으로 고려시대 이전 폐사지 중 팔작지붕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에 대해 복원 설계에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유교식 감실(龕室)의 수용과 변용 (The Acceptance and Transition of Confucian Gamsil in Joseon period)

  • 박종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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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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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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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감실은 고조부모부터 부모까지 사대 신주를 모시는 의례용구로 사당 안에 배치하였다. 구조와 형태는 고려시대에 수용된 주자의 "가례"의 도설에 따르면 네모반듯한 네 칸으로 구성되었다. 감실은 고조부터 아버지 대까지 사대 조상의 신주를 각 칸 마다 한 대씩을 남향으로 세워서 서쪽에서 동쪽의 순서로 안치하며 후손이 없는 조상의 신주도 함께 모셨다. 감실은 신주를 봉안하는 단순한 공간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영혼이 깃든 공간이자, 가족 내 위계질서가 살아있는 공간이다. 사당 건립과 관리는 후손의 사회적 신분과 가정 경제력 등으로 일정부분 제약을 받았다. 조선시대 조정은 관직자의 품계에 따라서 조상의 봉사 대수와 건축을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관직자는 녹을 받음으로써 일정부분 경제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집안이어서 사당을 건립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집안은 자신의 살림살이 집 한 곳에 감실을 배치하고 신주를 안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과정에서 감실은 배치 장소, 크기, 구조와 형태 등이 변하는 특징을 보였다. 구조적으로 건물형상을 띤 감실은 가옥과 사당형으로 영혼불멸사상과 조상관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사당 밖에 배치된 감실은 탁자를 들여놓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에서 신주를 안치할 수 있는 크기로 변하였다. 이런 감실은 이동하기 편리하고 거주공간의 너비와 높이를 고려해서 제작하였다. 감실의 변용으로 사회변화와 제도, 가정 경제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 초기에는 "가례"를 바탕으로 한 가묘 건립과 조상의 봉사 정책을 사대부가에서 결과가 나타났다. 서인들은 사회적, 제도적으로 제약을 받음으로써 실질적으로 정책에 부응할 수 없었다. 사당을 갖지 못하는 집안도 감실의 변용을 통해서 그들에게 4대를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가졌다.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명분과 현실을 절충하여서 사대봉사가 보편화되는 기반이 되었다. 감실의 변용은 혈연의 정통성 찾기와 가문의 위신 노출, 사대봉사의 확산계기 마련, 신성공간화, 가정경제력 증대 등으로 사회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아산 외암마을 토속경관의 문화유산적 가치 (The Landscape Value of Asan Oeam-ri's Folk Village as Cultural Heritage)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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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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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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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농촌마을은 문화경관적 건전성을 상실한 채 변질이나 해체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충청남도 아산에 위치하는 외암마을(국가지정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은 신전통주의 부흥을 추구하며 지속성을 유지한 채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암마을은 예안이씨 동족마을로 500여년의 긴 역사 동안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성과 건전성을 지켜온 민속마을로서 문화유산적 가치 측면에서 '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토속경관 사례이다. 유교적 문화경관 지표물(종가, 사당과 묘역, 신도비, 정려와 송덕비, 정자 등)과 다양한 민간신앙 요소(장승과 솟대, 당산목, 산신당, 마을숲 등), 그리고 유 무형의 생활문화(활발한 문중활동과 엄정한 조상숭배 의례, 가계계승의식, 공동체 농경문화 및 생태환경의 보존 등)를 지속성있게 전승함으로써 전통시대 양반촌을 상징하는 보편성과 완전성, 그리고 진정성을 유지한 채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의 독특한 환경설계원리인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마을을 자리 잡기하여 환경적으로 건전한 정주공간(nature + economy + environment + community)을 구축함으로서 토속성 짙은 문화경관을 완성한 사례가 되는데, 외암오산(광덕, 설아, 송악, 월라, 면잠)과 외암오수(용추, 인곡, 반계, 역천, 온정)와 같은 광역 생태문화경관의 보전과 같은 자연환경의 절제, 그리고 생태환경의 질서와 문화적 가치를 중시하는 환경관(capacity + healthy + sustain-ability)을 결합하여 지속성과 진정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암마을 토속문화경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기준 IV(인류역사의 발달단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유형의 건축물이나 건조물 집합체 또는 조경유산)와 V(뛰어난 유형의 전통 인간 거주지 또는 급격한 변화로 파괴의 위험에 직면한 문화의 대표적 유산으로서 토지에 기반을 둔 유산)의 범주에 포함되는 우리나라 공동체 사회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

동궐도상의 존덕정 영역에 나타난 무편액 건물의 조영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Nameless Buildings at the Jondeokjeong Area in Donggwoldo)

  • 정우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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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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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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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창덕궁과 창경궁이 공유하는 후원인 동궐 후원은 조선왕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술과 사상이 집약된 후원으로서 단연코 한국 조경문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왕실의 휴식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상징적 의례와 인재양성의 장이 되었던 동궐 후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훼철되어 과거의 면모가 일축되었다. 창경궁 북쪽의 후원권역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변형되어, 현재는 주합루에서 옥류천에 이르는 몇 개소의 영역이 후원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존덕정 영역은 인조 연간에 옥류천 개발이 완료된 직후부터 화원(花園)으로 조성된 정원으로서, 심추정, 척뇌당, 폄우사, 망춘정, 천향각, 청심정 등의 정자가 존덕정을 중심으로 승경의 요점지에 자리 잡은 화목류와 연지 중심의 공간이었으나 현재 존덕정과 심추정, 폄우사만이 남아 있고, 그 외의 정자들은 멸실되거나 변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각 건축물에서 감상되는 수요소, 식생, 점경물 등을 분석함으로써 원형적인 조영의도를 구명하는데 주력하였으며, 동궐 후원의 진정성 있는 복원 정비와 조경 시설물을 둘러싼 환경의 보전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정보 구축을 위하여 존덕정 영역의 정자인 심추정, 망춘정, 척뇌당, 천향각, 청연각의 5개 정자의 역사적 기록과 조영실태가 고찰되었다. 이들은 "궁궐지"와 실록에는 명칭이 언급되어 있지만 "동궐도"에는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데, 관련된 문헌자료가 망라되어 고증이 시도되었다. 이중 척뇌당과 심추정은 동궐도상에서 추정 건물을 뚜렷하게 밝힐 수 있었고, 존덕정 서북쪽에 위치한 용도가 불분명한 건물은 천향각 내지는 망춘정이었다고 추정하였으며, 태청문의 담장이 본래 청연각에 둘러쳐져 있었던 담장이었다는 가설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동궐도와 동궐 후원연구에서 난관으로 여겨졌던 창덕궁 동북쪽 모퉁이에 위치한 용도와 명칭이 불분명한 건물일곽에 대해서는 연산군과 숙종이 사용했던 기록이 발견되었고, 궁궐 사람들 모르게 유희생활을 하는 임금만의 별당이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무형문화재 보호제도의 이행과정과 그 성과에 관한 검토 (Review on the Implementation Process and Achievement of ICH Safeguarding System)

  • 이재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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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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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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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무형문화재 보호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무형문화재 보호제도는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 기 예능 보유자를 인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중요무형민속문화재, 선정보존기술, 기록작성 등 4가지의 무형문화재 보호제도를 채택하여 다원화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무형문화재 보호제도를 도입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벤치마킹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도 하나만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로 특징되는 우리의 무형문화재 보호제도는 무형문화재 종목의 기예를 발현하는 기 예능 보유자를 인정하고, 그 보유자가 전승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호제도이다. 그 결과 전승자의 확산 및 이와 관련한 관계기관의 설립 등 무형문화재를 전승하는 내재적인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전승자를 중심으로 한 보호제도가 50여 년간 지속되면서 종목 지정의 한계성, 파편화된 지정방식, 무형문화재의 문화 권력화, 종목지정(보유자 인정)조사 평가방식 등 무형문화재의 보호방법과 전승현실의 난맥상이 지적되고 나아가 무형문화재 전승의 진정성 문제와 관련하여 보호제도 자체의 정당성 문제 등 제도에 대한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본 글은 무형문화재 보호제도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와 그 원인을 검토하기 위하여 그간의 제도 이행과정과 성과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문화재위원회 회의자료, 문화재 정책 담당자, 문화재위원 전문위원들의 저술 등을 기초 자료로 활용하여 제도운영의 전반적인 사항보다는 제도의 핵심인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보유자 인정)과 관련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특정 기 예능 보유자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이 가능하므로 현실적으로 무형문화재 보호범위를 확대하기 어려운 제한성, 보유자를 정점으로 한 위계적 폐쇄적 전승구조로 인해 다수의 전승자 접근이 제한되는 문제점 그리고 무형문화재 전승원리로 채택한 '원형' 개념이 무형문화재의 실제전승과 맞지 않는 부적합성 등을 현제도의 문제점으로 상정하고, 이러한 문제점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임을 밝혀서 향후 우리 무형문화재 보호제도의 확장을 위해 보유자 인정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할 제도이고 그 외에 다원화된 보호제도가 수립되어야함을 강조하였다.

국산 육송 특대재 수급 현황 분석 및 문화재 수리의 활용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Supply of Large Korean Pine Timber)

  • 정영훈;윤현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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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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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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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그동안 우리나라 문화재 수리에 필요한 국내산 육송 특대재는 국내에서 수급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북미산 더글라스 퍼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많았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국산 육송 특대재보다 구하기 용이한 북미산 더글라스 퍼로 대체하여 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문화재 원형 보존의 원칙 훼손뿐만 아니라 재료의 진정성 측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국산 육송 특대재의 수급 현황을 기존 연구와 목재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점검해보고, 실제 국산 육송 특대재가 부족한지와 부족하지 않다면 어떠한 원인으로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사용되기 어려운지를 파악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사용되는 국산 육송 특대재의 취득 경로를 살펴보고, 산림청 산하 공공 기관들과 문화재청의 연구 자료, 제재소의 견적가를 수집하여 원목 가격의 변동 폭을 조사하였다. 또한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사용되기 어려운 원인을 기존 문헌 연구와 문화재 수리업계 종사자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기존 문헌과 인터뷰 조사 결과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주된 원인으로써 첫 번째로는,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필요한 수량보다 부족하여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쓰이기 어렵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국산 육송 특대재의 비축량은 충분하나 국산 육송 특대재의 가격이 입찰제도와 견적의 문제로 구매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두 가지 의견에 대한 검토 결과, 첫 번째 원인보다는 두 번째의 원인이 국산 육송 특대재의 문화재 수리 현장 적용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앞선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써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의 국산 육송 특대재의 공급과 실거래가 조사 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결 방안을 통해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목조문화재에서 재료의 진정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후기 문풍의 변화와 이용휴의 글쓰기 (Changes in Literary Trend During the Late Joseon and Lee Yong-hyu's Writing)

  • 이은봉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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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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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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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글쓰기란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의 문풍은 그렇지 못했다. '문필진한(文必秦漢), 시필성당(詩必盛唐)'이라는 복고주의 문장론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문장의 법도를 무시한 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도그마에 빠져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성리학과 내용은 없이 껍데기만을 모의하는 의고적 글쓰기에 지친 문장가들은 익숙함과 전범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의 가운데에 있던 이용휴는 당시 수입된 최신의 중국 서적들을 통해 명말청초의 사조들을 익히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글쓰기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적 사유체계를 거부하고 인간성 본래의 측면에 관심을 가지며 주체 회복을 강조하였으며, 반의고적 글쓰기를 통해 허위에 찬 당시의 풍토를 비판했다.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천리(天理)]를 회복하고, 이를 위해서는 마음[심(心)]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심즉리(心卽理)'를 내세우는 양명학과 비슷했다. 양명학은 마음[심(心)]을 윤리의 준칙[이(理)]으로 삼고 있어서, '이(理)는 외재적이고 초월적이며, 이것은 성인에 의해 언어화되고, 경전으로 문자화 되어 있다.'는 성리학과는 확연히 갈라졌다. 그는 이들처럼 이(理)의 외재성을 부정하고 내재성을 강조하면서 성리학의 경전 중심주의를 해체했다. 그가 내세운 전범의 부정과 주체 회복의 글쓰기는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 때문에 그를 양명학자로 단정 짓거나, 그를 비롯한 반의고적 태도를 갖는 문인들의 사상적 근거를 양명학이라 확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문학을 주자학이든 양명학이든 단정 짓는 순간 그것이 또 전범이 되어 주체는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체의 전범을 부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우리가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의 제문(祭文) 연구(硏究) - 호소력의 근원에 대한 탐색 - (A Study on Gusadang Kim Nakhaeng's Writing for Ancestral Rites - Exploring the source of his appealing)

  • 정시열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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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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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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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고는 구사당 김낙행의 제문이 갖는 호소력의 근원에 대한 탐색을 목적으로 한 연구이다. 구사당은 18세기 영남의 유학자로서 지행합일과 실천궁행의 학덕으로 칭송받은 분이다. 구사당의 제문과 그의 스승인 밀암 이재의 서찰은 '구제밀찰'이라는 별호가 붙여질 정도였지만 현재 구사당의 제문에 대한 연구 성과는 전무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구사당의 제문 가운데 감정 표현이 특히 풍부한 3편을 논의 대상으로 했다. 제2장에서는 '미시적 관점에서 기억의 재구'라는 제목하에 구사당의 제문이 호소력을 갖춘 한 편의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존재하는 데서 제문은 시작된다. 고인과의 일화가 제문이라는 무대에서 상세하게 재구성되는 데는 저자의 기억이 큰 역할을 한다. 제3장에서는 '고조된 감수성의 수사적 재구'라는 제목으로 제문에 필요한 수사적 장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문의 격을 높이고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사가 필요하다. 제문은 양식적 특성상 슬픔을 드러내는 글이지만 단순히 감정의 배출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제4장에서는 '애상적 분위기의 서사적 재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산 자의 손짓이 호소력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서술의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구사당은 서술 방식을 명확히 한 상태에서 고인의 인품과 안타까운 죽음, 지난 시절의 인연과 남은 자의 그리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제문은 글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산 자의 슬픔을 재현하는 장이다. 이렇게 재현된 글이 제문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호소력을 지녀야 한다. 본고에서는 제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호소력이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내 흰개미(Reticulitermes speratus kyushuensis)의 최소 통과 직경 연구 (Study of Minimum Passage Size of Subterranean Termites (Reticulitermes speratus kyushuensis))

  • 김시현;이상빈;임익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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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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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8-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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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흰개미는 산림생태계의 분해자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목조건축물과 농작물의 중요 피해 요인으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힌다. 현재 국내에서는 지중흰개미 2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으며 기후변화와 산림비옥화, 산림과 인접한 문화재의 입지적 특성 등과 맞물려 목조건축문화재의 흰개미 피해가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중흰개미는 땅 속이나 목재 내부에 서식하며 땅 속으로 이동하여 지면과 인접한 기둥 하부, 하인방 등을 통해 목조건축물로 유입된다. 흰개미 피해를 입은 목부재는 내부가 공동화되어 문화재 고유의 진정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재료의 강도 저하로 인해 구조적 안정성 또한 저해되므로, 흰개미 피해가 발생하기 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흰개미 방제와 피해 예방을 위해 국내에서는 훈증, 토양 처리, 군체 제거 등 화학적 처리 방법들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흰개미 피해 예방을 위해 화학적 약제 처리와 함께 흰개미가 목조건축물로 유입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물리적 장벽이 활용되고 있다. 물리적 장벽은 흰개미가 통과하지 못하는 망이나 입자 등을 건물 하부, 배관 주변, 건물 가장자리나 외벽과 내장재 사이 등에 설치하는 방법으로 설치 후 장기간 효력이 유지되며 약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이라는 장점이 있다. 물리적 장벽의 적용을 위해서는 흰개미 종의 생태적 특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국내 전역에 서식하는Reticulitermes Speratus kyushuensis를 대상으로 각 계급별 통과 가능한 최소 직경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통로가 0.1mm 단위로 좁아지는 아크릴 평면 실험 장치를 이용하여 흰개미 계급별로 통과할 수 있는 최소 직경을 평가한 결과, 일흰개미는 0.7mm, 병정흰개미는 0.9mm, 2차 생식흰개미는 1.1mm까지 통과할 수 있었으며 일흰개미의 머리 높이가 최소 통과 직경을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인임을 확인하였다. 이 결과는 향후 흰개미 피해 예방을 위해 망 형태의 물리적 장벽을 적용할 때 각 눈의 최대 크기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