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10년대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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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의 면적 변화와 연안침식지역 해안선의 속성 분포 (Area Change and Coastline Attribute Distribution of Coastal Erosion Zone in Anmyondo)

  • 김백운
    • 한국해안·해양공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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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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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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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1910년대에 제작된 지형도와 2003년에 구축된 해안선 조사측량 DB를 비교하여 안면도의 해안선 길이 및 면적 변화와 해안선의 속성 분포를 산정하였다. 안면도의 해안선은 수많은 간척사업으로 단순화되어 58%정도 감소하였으나, 면적은 36%정도 증가하였다. 2003년에 자갈 해안선의 분포가 가장 우세하였다. 방조제 해안선의 길이도 전체 해안선의 33%에 달하였다. 자갈 해안선은 안면도 동측 해안에, 모래 해안선은 안면도 서측 해안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해안선 속성을 연안침식지역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과거의 해안선이 요구되는 바, 1910년대에 제작된 지형도는 이러한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GIS를 활용한 하구의 습지추정 및 변화추이 분석에 관한 연구 (Using GIS to Estimate Estuarine Wetlands in Three Major Estuaries and to Quantify Wetland Changes over the Last Century)

  • 노백호;이창희
    • 한국습지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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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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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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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하구습지는 육지생태계와 해양생태계가 만나는 전이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생태계에 비해 겨울철새를 비롯한 많은 생물종이 도래 서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구습지에 대한 공간적 분포나 시간에 따른 하구습지 변동추이를 분석한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지리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한강, 섬진강, 가화천의 하구습지를 파악하였으며, 이때 구한말 이후 일관되게 제작되는 국가기본지형도를 이용함으로서 표준화된 방법으로 하구습지의 시대별 변화추이를 분석하였다. 특히 1910년대 제작된 고지형도와 197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제작된 지형도를 획득하여, 하구 내 갯벌, 습지, 모래에 대한 공간분포와 하구별 하구습지의 훼손실태를 파악하였다. 한강 및 영산강 하구와 같이 대하천 하구는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습지면 적이 감소되었으나, 감소율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하구둑 건설과 영산강유역종합개발계획 등 각종 개발사업이 이루어진 영산강의 하구습지는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한강 하구도 남북긴장 완화와 접경지역 개발지원에 따라 습지훼손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하구둑이나 주변 개발사업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가화천은 하구습지의 훼손이 낮은 상태인데, 아직도 1910년대와 비슷한 형태의 갯벌과 갯골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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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역특성에 따른 한강하구 습지의 공간분포 및 변화분석 (Spatio-Temporal Dynamics of Estuarine Wetlands Related to Watershed Characteristics in the Han River Estuary)

  • 노백호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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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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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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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연구는 한강하구역에 위치한 33개 표준유역을 대상으로 1910년대, 1970년대, 2000년대 지형도를 이용하여 하구습지를 추출하여 공간적 분포특성과 시기별 변동추이를 분석한 것이다. 또한 하계밀도, 유역의 위치 및 크기, 경사도, 평균표고 등 유역특성이 하구습지 분포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개발사업 등 인위적 교란이 하구습지 훼손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였다. 지형도 분석결과, 하구습지는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완만하게 감소하였으며, 수도권이 팽창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한강하구의 습지는 급속하게 훼손되었다. 표준유역의 위치에 따라 하구습지를 구성하는 퇴적물 구성비율도 다르게 나타났는데, 해안에 인접한 유역에서는 갯벌(펄)의 구성비율이 높고 한강본류 및 지류에 인접한 유역에서는 사구나 습지(식생군락)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역면적이 넓고 경사가 급하며 평균표고가 낮은 지역에서 하구습지는 광범위하게 분포하였다. 1970년대 이후 하구습지는 인위적 교란이 높은 한강서울, 한강서해, 한강고양 권역에서 크게 훼손된 반면 군사적 이유로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된 임진강하류 및 한강하류 권역에서는 감소폭이 낮았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인구증가율이 높으며 인공적인 토지피복 구성비율이 높아진 유역에서 하구습지의 훼손이 높게 나타났다.

1910년대 지형도를 이용한 근대화 이후의 도시 변화 분석 (Urban Change Analysis using the 1:50,000 Topographical Map which is Produced at 1910's)

  • 배선학
    • 한국지리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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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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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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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일제가 한반도를 본격적으로 수탈할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1914년에서 1918년까지 5년간 제작한 축척 1:50,000의 '근세한국 오만분지일 지형도'는 근대적인 토목공사에 의한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인 구한말 한반도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자료이다. 이 연구에서는 1910년대의 경관을 담고 있는 근세한국 오만분지일 지형도 이미지에 좌표를 부여한 후, GIS 환경에서 오늘날의 지도와 중첩하여 토지이용변화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근대적인 토목공사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개발이 어려웠던 구릉지역과 잦은 침수로 인하여 방치되고 있던 하천부지,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경쟁력을 상실한 농경지 등이 오늘날에는 도시지역으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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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의 간석지(干潟地) 분포(分布) (Spatial Distribution of Tidal Flats in Korea)

  • 조명희;조화룡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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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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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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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1910년대 지형도와 1990년대 지형도 및 위성영상을 기본도로 하여 한국의 각 지역별 간석지 분포와 간척 현황을 GIS로서 계량하고 지역별 간석지 발달조건을 고찰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간석지 자원은 1910년대 이후 간척된 것을 포함하여 약 $3,800km^2$이고 전남 서해안, 경기만, 아산만, 전남남해안, 군산만, 천수만, 경남부산해안 순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현재 공사중인 것까지 합하면 50% 이상 간척되고 있다. 간석지 발달조건의 측면에서 경기 아산만은 모든 조건이 고루 갖추어져 있고, 군산만은 육상퇴적물 공급체계가, 전남 해안은 해안선 조건이 각각 두드러지게 양호하여 간석지가 발달했다. 군산만을 사례로 간석지 발달의 경년변화를 살펴본 결과 간석지 모양은 계속 변해가고 있으며, 면적이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20C 전반부에는 면적증가율이 비교적 높은 데 비하여 후반부에는 훨씬 낮아져 거의 정체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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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고 지형도를 이용한 행정리 경계 구축에 관한 실험적 연구 (An Experimental Study on the Construction of Administrative Boundaries Using Old Topographical Map in the 1910s)

  • 엄성준;조숙영;유수진;안필균
    • 한국농촌건축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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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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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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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This study aims to establish administrative boundaries by utilizing digitalized old topographical map. Various problems have arisen due to unclear administrative boundaries. For example, there are various problems such as conflict amongst residents to occupy a larger area, unnecessary waste of administrative power, and difficulty in collecting various data for administrative units (farm area, statistical data, spatial analysis, living ara analysis). Therefore, in this study, an experimental study was conducted to establish administrative boundaries by using an old topographical map containing information on villages before administrative reform in 1914. As a result, the boundaries of towns, towns and villages were largely consistent. In order to divide the administrative boundaries based on the legal district boundaries, the administrative boundaries were established by referring to the contents of village introduction and natural boundaries (roads, rivers, mountain ranges, etc.) provided in towns and villages. However, there was a limit in establishing a precise boundary as it was not possible to secure a high-quality digitalized old topographical map.

1910년대 전후 전남 영광지역의 종교지형과 민족사회·경제운동 (Topography of Religion and National, Social & Economic Movements in Chonnam Yeonggwang before and after the 1910's)

  • 김민영
    • 한일민족문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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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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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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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is paper is to take note of national, social and economic movement, social & economic publicness of religion surrounding Yeonggwang, Joennam around 1910s. At first I would like to look at this period because regional society was in the middle of change of large transition before and after Japan's forced occupation of Korea in 1910s and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In particular we focus on spatially Yeonggwang in Joennam because this area is not only called as advent area of Buddhism earlier but also is unique regional culture and ideological topology where Donghak, Protestantism, Catholic, Institute of Won Buddhism and etc. Through casting light upon the above, it is expected to offer one clue for the question of internalizing value to be sought for in the national and social and economic movement by Korean religion around 1910 and public goods in the strategy and tactics to be selected and further publicness and practice lying in their awareness and behavior. In particular it is thought to have advanced the accumulation of case study of Yeonggwang in Joennam with representative 'place-ness' related to this. Along with this it is considered that our challenge is to restore and casting light again on common foundation of existence shape and publicness of various religions in the middle of national and social movement and economic movement in Yeonggwang of Joennam area. In other words, we expect that religions will continue individual efforts and common practices to urge social justice for historic and public value based on common good encompassing historic value, in other words, individual responsibility and social justice among social and economic conditions originated from Japanese colonial era.

낙동강 삼각주의 경관변화에 관한 연구 -명지동을 사례로- (A Study on the Landscape Change in Nakdong River Delta The Case of Myeongjidong)

  • 허민석;손일;탁한명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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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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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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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공간적 변화가 이루어진 명지동을 사례로 낙동강 삼각주의 거시적 공간 변화와 지역주민들의 적응과정을 미시적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명지동의 공간적 변화는 1910년 발행된 구한말 지도집, 지형도, 지지(地誌), 시사(市史) 등에서 지도를 수집하고 GIS 프로그램의 지리참조 기능을 이용해 좌표를 부여한 후, 각 지역의 시계열적 변화를 확인하였다. 조선총독부, 김해수리조합, 국가의 계획이나 정책에 의해 추진된 공간변화는 이전과 다른 환경적, 인문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지역과 주민들의 토지이용, 주택, 산업 등에 다양한 적응과정을 불러왔다. 이러한 적응과정은 문헌을 수집하고 비교한 후, 현지조사에서 실시한 지역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 자료를 보충하였다. 연구지역은 1935년 낙동강제방과 명지방조제 축조를 시작으로 1940년대 후반 김해수리조합의 구역확장공사가 이루어진 이후 형성된 농업적, 전원적 경관이 1970년대 이후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발전계획에 따라 상업적, 도시적 경관으로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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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공통형' 군청사의 배치 유형과 유형별 증·개축 경향 (Site-Plan Types of Common Design's Goon Office Buildings and their Addition & Remodeling in Japanese Colonial Period)

  • 김명선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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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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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29-7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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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공통도면을 사용해 계획된 군청사에 대해 본가-부속가 연결방식을 기준으로 그 배치유형을 정리하고 각 유형별 증 개축 방향을 고찰하는 것이다. 우선, 디지털이미지로 제공되는 국가기록원 소장 1910년대 작성된 군청사 관련 건축도면을 분석하여 공통형 군청사의 배치유형 세 가지를 확인하고, 기타 자료를 통해 두 가지 배치유형을 추가발굴한다. 이어서, 각 배치유형을 본가-부속가 연결방식을 기준으로 세분한 후 그 증 개축경향을 정리한다. 연구방법은 군청사 관련 건축도면 디지털이미지, 그 해제, 조선총독부와 각 도가 주고받은 문서, 신문과 잡지의 기사 도면 사진 등을 분석하는 문헌연구방법이다. 공통형 군청사의 다섯가지 배치유형은 13가지로 세분되고, 각 세분된 유형에서 증 개축은 각 부지의 지형 형상 기타 사정에 따라 달랐지만, 본가는 신축 및 증 개축 상황에서 항상 전면 중앙에 위치하여 관청사로서 상징성과 중심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일관된다. 공통형 군청사의 계획은 1930년대 초반까지도 꾸준히 이어진다.

안확의 '조선' 인식과 '조선철학' (An Hwak's Recognition of 'Joseon' and 'Joseon Cheolhak')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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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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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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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한 일제의 '조선' 연구가 식민 정책의 일환이었다면 그에 대항하는 조선 연구는 국권 회복과 자주 독립의 염원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당대 '조선'이라는 개념이 발화주체에 따라 그 안에 내포된 의미와 지향이 상이했음을 의미한다. 대한제국의 소멸과 함께 근대 국가 건설은 좌절됐지만 민족의 이념 지형 안에서 '조선'은 새롭게 발견되었다. '조선'은 과거의 경험을 응축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는 역사적 기본개념이 되어갔다. '조선학'은 학술의 장에 국한된 지식인들 사이의 담론이었으나, '조선'은 그 내 외부의 보다 다양한 사회 주체들의 발화를 포괄한다. 더욱이 개념과 담론의 상호 연관을 고려한다면 '조선학'은 '조선'의 역사적 의미론 속에서 독해되어야 마땅하다. 1920년대 문화운동의 흥기 속에서 안확은 "조선문명사"를 통해 고대 신화의 시대로부터 당대까지를 '조선'이라는 기표 아래에 묶어낸다. 역사 실증주의의 미명 아래 자행된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서 조선의 역사를 서양 민주주의 정체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문명으로 이상화한다. 안확은 '조선' 연구를 문화 전반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조선의 미술과 문학을 넘어 조선철학의 탄생을 예고했다. "조선철학사상개관"은 '조선철학'을 하나의 독립적 학문영역으로 사고한 최초의 기술로써, 조선의 학술과 사상의 특수성을 인류의 보편적 문명사의 관점에서 파악하려했던 작업의 일환이었다. 안확은 철학을 조선의 3대 발달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조선 철학사의 특색을 서양과 비교하여 특정함으로써 조선철학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주장했다. '종(倧)'을 조선철학의 시원이자 근세에까지 이르는 사상적 근저로 파악하면서 불교와 유교의 수용도 조선철학의 발전으로 인식했다. 전통 지식체계의 근대적 전환과정에서 탄생한 '조선철학'은 전통 지를 근대적 학문 분류 체계에 적용하여 재해석하고 재구축하는 지적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