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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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 신임과학기술부 서정욱 장관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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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호통권3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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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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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4월 1일 발족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정책과 사업에 대한 종합 조정을 철저히 하여 효율적인 과학기술행정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과학기술부 장관에 취임한 서정욱 박사는 본지와의 특별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장관은 이어서 "21세기의 지식기반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선 대학과 연구소가 새로운 산업기지가 되어야 하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과학기술의 대중화사업을 위해 과학축전, 과학영상프로그램 제작방영, 과학도서 보급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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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자조금정착을 위한 다짐의 말

  • 유해억
    • 월간낙농육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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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2호통권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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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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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환율이 1,000원대로 언젠가는 인하된다고 가정할때 미국과 캐나다에서 잉여 우유 수백만톤이 우리시장을 공략하려고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21세기 2000원년을 맞이하면서 낙농을 하는 우리생산자는 자조금을 또 다시 조성하고 정착하는데 있어 누락자가 전혀없는 일체감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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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항결핵단체의 발자취 - 세브란스항결핵회에서 대한결핵협회까지 -

  • 김대규
    • 보건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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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통권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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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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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6$\cdot$25 동란이 초래한 절박한 결핵사정은 전국의 결핵인들을 결속시켜 범국민적인 민간항결핵단체를 조직케한 촉매제가 되었다. 19세기 말 개화의 물결을 타고 이 땅에 서양의학이 전래된 이래 1920년대부터 싹튼 항결핵운동이 주로 서양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1930년대 후반에 총독부 관제단체가 만들어진데 반하여 대한결핵협회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함께 만든 자랑스러운 겨레의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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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재도약’릴레이 기고문(3)-문화콘텐츠 강국의 해답'여성인력 활용'

  • 이영남
    • 벤처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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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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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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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문화의 시대’라 말하는 21세기를 맞아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15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해서 얻는 이익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쥬라기공원’이 벌어들인 액수가 많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감성을 필요로 하는 이 문화콘텐츠분야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국여성벤처협회 이영남 회장에게서 여성인력의 활용방안과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가는 해답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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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프랑스 포스터에 표현된 패션 이미지 (Fashion Images of the France Posters of the Late 19th Century)

  • 최유진;최정화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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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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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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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article analyzed fashion representations in France posters, especially the late 19th century France when mass consumption cultures arose. That was analyzed by consumers' sexuality supposed in advertisement contents. Female models mainly figured in posters of the late 19th century France made a role to promote consumption, in which female models were emphasized on fashion, for example, erotic robe, unusual hair style and etc. Posters' type in this period were categorized in three types by presenting style of female body and fashion style. The first were targeting female consumers, and that posters represented bourgeois fashion styles and life styles to clear consumers' social status and to present women's consuming power. The second case was targeting male consumers, and that posters figured female models such as available products. In this case, poster artists emphasized female models' sexualities and used fantasies against eroticism of the legs and feet. And third case was targeting female consumers and males', in this case, two different aspects were required to appealing to consumers. One was to use a female sexuality to appeal for male consumers, the other was to modify female models as transcendental being such like a muse admirable and mysterious, through fashion styles for female consumers. In the late 19th century, female body and fashion were spectacular elements in visual arts specifically. This study clarified representations of female body and fashion in the late 19th century posters according to poster's contents and target consumer's sexuality. This was one of the aspects characterizing early advertisem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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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라미의 『수사학 또는 말하는 기법(1675)』에 관한 연구 (A Study on Bernard Lamy's La Rhétorique ou L'Art de Parler)

  • 이종오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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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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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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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자연과학이 새롭게 발달하던 시기인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수사법(전의나 문채)을 사용하는 장식적 문체가 객관적인 사고를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여 수사학 교육을 받은 이들의 권위가 비판, 부정되어왔다. 이에 반해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문체의 교육과 연구가 다시 활발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이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 시대의 수사학, 낭만주의 시대의 수사학을 거쳐 최근에는 수사학의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으로 전통적 수사학을 대신할 새로운 수사학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위와 같은 시대적 변동기를 맞이하여 수사학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교육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파편이 역사적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본 연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수사학자 베르나르 라미Bernard Lamy의 『수사학 또는 말하는 기법』을 해제, 분석함으로써 17세기 후반 프랑스의 고전 수사학을 조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생 오기스탱, 데카르트, 포르루와이알Port-Royal의 후계자임과 동시에, 루소의 스승인 라미는 언어는 이성과 재현의 요구 또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표현되는 정념들에 기인하는 것인가? 언어의 영역은 명제의 이성적인 영역과 일치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각 민족의 자연적인(타고난) 감성과 적합한가? 와 같은 테제를 중심으로 수사학에 관한 중요한 논거들을 조리 있게 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본 라미의 저서를 통해 17세기의 수사학, 특히 다양한 문체의 문채들과 관련되어있는 정념情念의 형식과 이론을 비롯하여, 인간언어의 기원과 역할, 17세기의 수사학 원리, 문법과 논리, 문채와 전의, 정념의 수사학(문채의 심리학) 등과 같이 '말하는 기법'으로 이해된 라미의 수사학과 언어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Taoism in Korea, Past and Present

  • Baker, Donald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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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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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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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조선 시대 중기에 한국은 도교의 내단에 흥미가 고조되는 것을 체험했고, 16~17세기 중에 많은 유교 학자들이 받아들인 호흡법과 심신 수련은 이미 초기 중국에서 고안된 심신 수련자의 신체에서 나오는 기의 순환과 양·질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8~19세기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양생법에 대해서 흥미를 잃게 되지만, 20세기의 지난 반세기 동안에 내단을 이채롭게 다시 부흥시킨 것이다. 여러 가지 새로운 조직체들이 단전호흡과 도인체조를 서울과 다른 도시에서 증진 시키고 있다. 국선도가 1970년에 처음으로 시행되었고 이것은 1984년 새로운 내단으로 되기까지 대중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심신수련이 새 조직인 단(丹)세계에 의해서 멀리 번창되어 나갔으며 이 조직의 지도자인 이 승훈에 의해서 흥미롭게 다시 소생되었다. 단 세계는 한국에서 무려 360개가 넘는 선원이 있으며 수련자들에 의해서 유럽과 북미에서도 선원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중국의 도교 보다는 고조선 시대 단군에 의해서 고안된 것이라고 말한다. 단 세계는 도교적 양생법 수련보다 한국의 전통적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장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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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서양 여성 재킷의 구성기술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onstruction Technique of Western Women's Jacket in the Late 19th Century)

  • 류경화;김양희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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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5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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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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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It is considered that jacket was widespread in the 19th century due to its simple and convenient production technique.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western women's jacket in the late 19th century, which is the basis of modern women's outwear, and we focused on the patterns and construction, the technical aspect of the jacket. We researched pattern books and preserved costume materials, and the study methods are as follows: First, we analyzed the pattern of the jackets from the pattern books and preserved costumes. Second, we analyzed the construction of the jackets from the preserved costumes and compared it to previous researches. The study results are as follows: 19th century jacket consisted of a bodice, a back bodice, a side panel, two-piece sleeve and a collar. The front bodice had cuttings and a dart to make the jacket fit the shape of the body and the two-pieced leg of mutton sleeve, puffed at the shoulder. Various styles of collar and neckline existed. The pattern suggested diverse ways of designing a jacket, such as cutting with partition, dart and pattern expansion that focused on three-dimensional effect at that time.

우육조리법(牛肉調理法)의 역사적(歷史的) 고찰(考察) - II. 우육을 사용한 포(脯)류의 조리법을 중심으로 - (The historical study of Beef Cooking - II. cookery of dried beef based on beef -)

  • 류경림;김태홍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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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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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7-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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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1943년 이전의 문헌을 통하여 우리나라 쇠고기 ${\ulcorner}$포(脯)${\lrcorner}$의 종류와 조리법, 조리법의 변천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쇠고기포는 조리법의 빈도 면에서 42회(12.2%)로 1위이고, 연대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조리법이다. 옛 문헌에 기록된 쇠고기포의 종류는 산포(散脯), 편포(片脯), 약포(藥脯), 장포(醬脯) 등이 있었다. 조리법과 모양에 따라 세분하면 9종류로 산포, 편포에는 다식모양, 네모진 모양, 대추모양의 작은 모양의 편포와 참기(塹機)모양, 반원주(半圓株)모양의 큰 덩어리 모양의 편포가 있고 약포에는 다져서 만든 약포와 얇게 저며서 만든 약포, 장포 등이 있다. 기록된 빈도면에서는 편포가 가장 많고 다음이 약포이며 산포, 장포의 순이다. 16세기 후반 처음에는 "고기 말리고 오래 두는 법"으로 기록되었으나 18C말부터는 포(脯)로 표현되어 일관성있게 19세기까지 포(脯)로 기록되어 있다. 17-18세기의 기록된 조리법이 거의 19세기까지 큰 변화 없이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고는 있으나 더러는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옛 것은 사라지고, 현대로 오면서 간편화되고 있다. 쇠고기포에 사용한 주재료는 모두 힘줄과 기름기를 없이한 쇠고기이고 부재료로 꿩을 19C중엽까지 4 문헌에서만 이용하였다. 양념은 19종이며 그 중 많이 이용된 것은 소금, 참기름, 후추, 간장의 순이고, 보통 육류에 사용하는 갖은 양념(간장, 후추, 참기름, 설탕, 깨소금, 파, 마늘)중에서 가장 적게 쓰인 것은 마늘이다. 고명은 3종이며 주로 잣가루를 이용하였고, 찍어 먹는 양념장은 진장과 초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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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朝鮮王室) 태실석함(胎室石函)의 현황(現況)과 양식변천(樣式變遷) (Taesil Seokham Styles of the Joseon Royal Family)

  • 심현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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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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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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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고는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에 유존하는 태실 석함(이하 태함)의 현황을 살펴보고, 제작연대를 바탕으로 형식을 분류하여 고고학적인 태함의 양식을 설정하고 그 편년을 시도한 것이다. 태함은 태실을 처음 조성할 때 매납하는 유물이지만 명문이 각자되지 않으므로 태함 자체만으로 연구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태실 조성 시 함께 제작하는 태지석과 아기비의 명문을 찾아 살펴보고 문헌기록을 대조하여 그 제작시기를 밝힘으로 인해 태함의 제작시기도 밝혀 낼 수 있다. 먼저, 편년의 결정적 요소는 태함을 구성하는 함개와 함신 모두임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태함의 변화와 양식은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조선 왕실의 태함의 변화는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아 상자형으로 만들었으나, 15세기 중 후엽에 과도기를 거쳐 15세기 후엽에 반원형 함개 원통형 함신이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16세기 후엽에는 앞 시기의 양식에서 발전하여 태함에 돌기가 부착되는 등 장식성이 가미되나, 이는 예술성보다는 기능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반원형 함개 원통형 함신이 다시 17세기 초에 재현되며, 17세기 중엽 후부터는 함개에만 돌기가 있거나 무보주의 원추형 함개 또는 절구형의 함신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과도기의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시 보주가 부착된 원추형 함개라는 새로운 양식이 18세기 전엽~18세기 중엽 초에 출현하며, 이것이 다음 시기인 18세기 중엽까지 지속되나, 함신의 감실이 일단벽호형의 방형으로 바뀐다. 계속해서 18세기 중엽에는 함개는 앞 시기의 양식을 유지하나 함신은 감실이 다시 한 면이 ㄷ모양의 열쇠구멍형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와서 다시 가장 전형적인 양식인 반원형 함개 원통형 함신의 태함이 재출현하여 태함의 양식이 이 형태가 가장 정형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19세기 중엽에는 함개가 반원형에서 상부가 편평한 장방형의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여 쇠퇴기를 맞는다. 그리고 이를 다시 양식상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선 초에는 태함이 아직 정형화되지 않아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았으나(I단계; 1401~15C 중엽), 15세기 후엽부터는 자체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정형화되고(II단계; 1477~1641), 시기가 지나면서 다시 일부 돌기나 보주가 부착되는 등 장식성이 가미되나(III단계; 1660~1754), 결국 18세기 말에는 정형화된 양식이 재출현하다가 조선 말기인 19세기 중엽에는 간략화되어 쇠퇴과정을 겪게 되는 것(IV단계; 1790~1874)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태함의 양식과 편년 결과는 문헌기록이 부족한 상태에서 앞으로 태실지에서 태함만 확인되더라도 그 조성시기와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