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6~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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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청도리 동곡마을 도요지 출토 도자기의 고고화학적 특성 분석 (A Characteristics Analysis of Archaeological Chemistry on the Ceramics Excavated from Kiln Site in Dongkok-Town, Gimje in Korea)

  • 박영아;김규호;전유리;김나영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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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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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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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김제 동곡마을 도요지에서 출토된 15~17세기 분청사기와 백자에 대하여 색도와 비중 및 흡수율, 미세구조 관찰 등의 물리적 특성, 태토와 유약의 조성에 대한 화학적 특성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물리적 특성에서 가마운영 상황과 제작 시기에 따라 제작기술이 점차 발전되는 변화가 관찰된다. 원료적 측면에서 동곡마을 도요지는 동일기반암에서 생성된 점토를 사용하여 도자기 종류, 생산 가마, 시기 등에 따라 원료를 정제하거나 융제를 첨가하는 등의 제작기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백자는 분청사기와 비교하여 착색제 함량이 평균적으로 1.3% 이상 적고 융제 성분 $K_2O$ 함량이 1.2% 가량 많은 편으로 같은 온도에서 더 쉽게 자화될 수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와 같은 특성은 생산 시기가 늦어질수록 분명하게 나타난다. 유약은 자기 종류가 아닌 생산 시기에 따라 16세기 이후에는 MgO, $TiO_2$, MnO, $P_2O_5$ 등의 함량이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 이상 줄어들어 사용 원료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유학사에서의 김굉필(金宏弼)의 위상 (Status of Kim Goeng-pil in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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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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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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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은 고려 말엽 정몽주가 단서를 열어놓은 도학을 하나의 학문 경향으로 승화시켰다. 김굉필은 '조선도학의 시조'로 일컬어졌으며, 이후 4백여 년 동안 도학자의 전형으로 받들어졌다. 김굉필이 씨를 뿌린 도학은 학문과 정치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김굉필을 본받아 "소학"을 통해 근기(根基)를 배양하였고, 그 기운은 선비의 원기(元氣), 나아가 국가의 원기로 승화하여 국맥(國脈)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김굉필은 "소학"으로 학문 하는 방법을 제시하였고, "소학"에서 요구하는 강한 실천성을 바탕으로 도덕적 인간, 도덕적 이상사회를 추구하였다. 개인의 수양과 사회 개혁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다. 김굉필이 몸으로 보인 '자기 수양(律己)'의 정신은 조광조(趙光祖)의 단계에 이르러 도학적 이상국가의 추구로 발전하였다. 김굉필은 '경(敬)'을 통해 "소학"의 가르침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경'이라는 수양 방법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조선 성리학의 요체다. 김굉필은 조선의 유학을 '심학(心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김굉필 이전에는 심학의 모습을 제대로 선보인 학자가 없었다. 명종 선조 시기 이후로 조선의 유학은 심학으로 정초되어 갔다. 17세기 중엽 이후에는 '경'을 중심으로 한 심학 체계가 공고하게 구축되었다. 김굉필의 문인과 그들이 양성한 학인들은 16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학계 정계를 이끌었다. 이들은 선조 즉위 이후 사림파(士林派) 집권의 주인공들이었다. 조선을 도덕적 이상국가로 승화시키고 '사림의 나라'로 만든 그 기초는 사실상 김굉필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철비(鐵碑)의 조영(造營) 연구(硏究) (A Study on The Iron Monument in The era of Joseon Dynasty)

  • 홍대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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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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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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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우리사회에서 철을 자유로이 사용하게 된 것은 채 100년이 안 된다. 중세 이전 우리나라의 철 생산은 원시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태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407년 전국적으로 대규모 철장[철광산] 증설을 시행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때 개발된 철장의 수를 전국적으로 78개 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5세기에 편찬된 "농사직설"에 따르면 철재 농기구는 지주 등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는 중요한 재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 이었던 농기구마저 지주 등 일부에게 한정되어 사용되던 시절이었기에 다른 용도로 철을 사용한다는 것은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러한 상황은 16세기 말~17세기 전반기에 거듭된 전쟁으로 관영수공업이 파괴되었으며, 국가로부터 제철업경영권을 위임 받은 '별장'이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철소(鐵所)를 사적으로 경영하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철비는 크게 현감, 관찰사 등 지방수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와 1684년 제작으로 서당을 운영하기 위하여 창립한 전남 진도 학계(學契)비 등의 사적(史蹟)비, 보부상 들이 세운 송덕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철은 과거 부의 상징이자 나무나 돌에 비해 강하고 영원하다는 믿음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중요한 공덕비 건립이나, 맹세의 상징으로 철비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은 동양사상에서 악한 것을 물리치고, 지기(地氣)가 강한 곳을 누른다는 비보풍수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철비가 세워진 가문은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한다. 철비는 17~18세기 들어 제작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것은 선정을 베푼 수령의 증가가 아닌, 역설적으로 원성을 듣던 수령이 직접 세우는 사례가 증가하며, 부를 축적한 중인계층들이 양반으로 신분을 바꾼 후 조상의 정통성을 가공하기 위해 철비를 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떠한 이유로 철비를 제작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으나, 오행(五行)사상과 관련 깊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은 곧 금(金)이다. 오행에 있어 '금'의 기운을 보면 '금'은 대지를 뜻하며, 그 색은 황금이며 황금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찬란한 휘광이다. 또한 금은 모든 쇠, 또는 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음의 기운에 속한다. 금은 단단하고 변함없으며, 절대 부서지지 않는 강인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이승이 양이라면 저승은 음이다. 이러한 오행사상과 철이 지니는 가치 때문에 철로 비를 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급격한 생산력의 증대가 이루어진다. 세종대 이후 농업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바 크며, 17세기 이후 상업자본의 성숙과 함께 사대부와 견줄만한 재력을 모은 중인계층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사회여건 속에서 자신들의 권위와 부를 상징하기 위해 당시까지만 하여도 귀했던 철을 소재로 비를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전압 임펄스에 의한 스케일 제어 (Control of scale formation using high voltage impulse)

  • 양선희;장인성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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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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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01-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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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에서는 산업용수의 처리 및 운용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탄산칼슘에 의한 스케일 형성을 제어하기 위해 고전압 임펄스 (High Voltage Impulse, HVI)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평가하고자 하였다. 전원부, 고전압발생부, 축전기, 스위치 및 임펄스발생기로 구성된 HVI를 제작하여 17kV의 고전압 펄스를 생성시켰다. 반응조에 $Ca^{2+}$을 포함하고 있는 인공 시료를 투입한 후 HVI를 인가하였다. HVI 접촉시간 5분 후에는 $Ca^{2+}$ 초기값의 3.0% 가량만 감소하였으나, 접촉시간 60분 후에는 약 13.7% 가량 감소하였다. HVI 인가로 인해 용액의 온도와 pH는 증가하였고 전기전도도는 탄산칼슘 석출로 인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칼슘 이온의 감소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전계의 세기 및 접촉시간에 따른 제거율에 간한 구체적인 정보가 얻어진다면, HVI 기술을 적용하여 $Ca^{2+}$ 이온을 탄산칼슘으로 미리 석출시켜 제거하는 연수화 (softening) 공정이나 탈염 기술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키워드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한 유럽항만의 연구동향 분석 :발틱해를 중심으로 (The study on the research trend about Europe ports: focus on Baltic Sea using Keyword network)

  • ;마혜민;오재균;여기태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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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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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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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17세기 이후 항해기술의 진전과 더불어 국제무역은 증가되기 시작했다. 최근 해상운송은 화주 및 항만의 수요에 힘입어 운송모드 중 70%의 처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항만개발 즉 항만수심, 항만경쟁, 항만관리 등에 집중하고 있으며, 환경, 생태계 및 조화로운 개발 등의 분야는 연구가 미진한 상황이다. 본 연구는 발틱해를 중심으로 해운, 항만 생태계, 오염 등에 집중하여 SNA 방법을 이용한 키워드네트워크를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발틱해 지역의 가장 큰 관심은 환경문제로 나타났다. 10년간의 연구기간 및 현지어로 수행된 연구결과를 포함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16 ~ 17세기 조선의 벽역의서(闢疫醫書)를 통해 살펴본 온역학(瘟疫學)의 특징 (The Characteristics of Epidemiology Examined through Translated Medical Books in the 16th~17th Century in the Chosun Dynasty)

  • 조원준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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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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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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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Because the size of population was directly related to the power of the nation in the Chosun Dynasty, various efforts were exerted to maintain the size stable and the keys to the efforts were a high birth rate and a low death rate. However, in addition to wars, epidemic diseases had an enormous effect on the death rate. Particularly during the mid Chosun Dynasty, epidemic diseases were more prevalent than ever due to the abnormal climate called the little ice age. To cope with them, the government executed several medical relief policies and published medical books. In Chinese epidemiology, infectious diseases mean sicknesses caused by hot weather, but in Korean epidemiology, they indicate large-scale infectious sicknesses caused by both hot and cold weather. Therefore, as treatment methods for diseases from the cold were not applicable to the pathology of epidemic diseases, China developed separate epidemiology. In Korea, however, the main concern was how to prevent epidemic diseases, whether from hot or cold weather, that drove many lives into death.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epidemiology are as follows. First, whenever epidemic diseases were prevalent, in order to cope with them, translated medical books were promptly published including Ganibyeokonbang, Bunmunonyeokihaebang, Sinchanbyeokonbang, Byeokyeoksinbang and Byeokonsinbang. Second, those books were annotated in Korean so that people could read easily and accurately. Third, as an extension of the Hyangyak movement from the late Koryo Dynasty, Danbang was used a lot to treat and prevent epidemic diseases with less financial burden, and things obtainable easily according to individuals' situation were mentioned for anybody to overcome the emergent situation of epidemic diseases. Fourth, methods for praying to God were suggested for practitioners to work with sincere spirit and to keep themselves from epidemic dis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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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전기기구에서 발생하는 자장과 유도전압의 측정과 분석 (Measurement and Analysis of Magnetic Fields and Induced Voltages Caused by Home Appliances)

  • 이복희;이동문;장영태;장근철;엄주홍;강성만;이승칠;박정용
    • 조명전기설비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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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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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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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논문은 가전기구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유도전압 및 자장의 측정과 분석에 대한 것으로 본 실험에 사용한 유도전압과 자장 측정회로는 유도코일, 선행증폭기, 그리고 능동적분기로 구성하였다. TV와 퍼스널 컴퓨터용 모니터는 스위칭소자로 동작하는 전원장치를 사용하므로 고조파 성분을 많이 포함하는 강한 자장과 유도전압을 발생시켰다. 14"TV 주변에서 큰 자장과 높은 유도전압이 나타났고, 그 값은 측정거리 0.4 [m]에서 각각 2.1 [$\mu$Tp-p]와 140[mVp-p]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측정거리에서 단위 자장의 세기에 대한 유도전압은 17"모니터에서 약560 [mV/$\mu$T]로 가장 크게 나타났다.장 크게 나타났다.

유경종柳慶宗 1565-1623 묘 출토복식 고찰 (Costumes Excavated from the Tomb of yu gyeongjong (1565-1623))

  • 황진영;황소정;박승원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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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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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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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유물은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진주 유씨 유경종 柳慶宗, 1565-1623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3점이다. 이미 1차 보존처리가 완료되었으나 일부분에 대한 재처리가 필요하였고 의복의 형태 복원 및 유물의 안전한 보관을 위해 재보존처리를 진행하였다. 재보존처리가 완료된 복식 3점은 형태 복원을 통해 의복의 특징에 따라 단령 團領, 직령直領, 창의氅衣로 명칭을 정정하였다. 직물의 무늬에서는 지금까지 발표된 운문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는 새로운 패턴이 확인되었으며, 단령에 부착된 흉배 胸背 는 무늬 부분이 아닌 바탕 부분이 연금사 撚金絲로 직성 織成 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본 유물은 보존처리를 통해 원형을 회복하고 의복의 형태에 맞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16세기 후기에서 17세기 전기 직물의 무늬 및 의복의 형태의 유행과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Solar motion described in the Richan lizhi(日躔曆指) and the Richan biao(日躔表) of the Chongzhen reign treatises on Calendrical Astronomy(Chongzhen lishu 崇禎曆書)

  • Choe, Seung-Urn;Kang, Min-Jeong;Kim, Sukjoo;Suh, Wonmo;Lee, Myon U.
    • 천문학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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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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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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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명말(明末)에 역법(歷法)의 개정을 주장한 서광계(徐光啓, 1562~1633)의 기획과 총괄에 의해 편찬되었고, 이탈리아 선교사 로(Giacomo Rho, 羅雅谷, 1593~1638)가 주 저자로 보는 《숭정역서》에서 태양의 이론편인 <일전역지(日躔歷指)>와 계산 절차 및 계산수치표가 종합된 <일전표(日躔表)>의 내용을 정리, 분석하였다. <일전역지>와 <일전표>에 들어있는 몇 개의 내용과 표들은 대부분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에 걸쳐 서유렵의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 마기니(Giovanni Antonio Magini, 1555~1617), 메티우스(Adriaan Metius, 1571~1635) 등의 책에서 동일한 내용이 발견되었다. 판나이 휘집본(潘鼐彙集本; 프랑스 국립도서관본; 《숭정역서》 초기본), 규장각본(《숭정역서》의 후기본), 그리고 사고전서본(《신법산서》)의 내용을 빠짐없이 검토하고, 최근 발간된 《숭정역서합교》의 연구도 반영되었다. <일전역지>에 태양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Eccentic 모델을 사용하여 양심차(兩心差), 원지점의 방향, 가감차(加減差), 지구-태양간의 거리 변화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전표>에 나타난 가감차표와 지구-태양간의 거리표는 Equant 모델을 사용하였다. 비교를 위하여 70여년 뒤에 편찬된 《역상고성》 상편 제 4권 <일전역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모델인 본륜-균륜 모델이 사용되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위에 언급된 3 가지 모델의 차이를 설명하고, 가감차와 지구-태양간의 거리표를 이 모델을 이용하여 계산한 다음, <일전표>에 있는 가감차표와 지구-태양간의 거리표와 비교할 것이다. 《신법산서》에는 Equant 모델을 설명하고 있는데 어디서 오류가 발생하였는지도 규명한다. 그리고 3 가지 모델의 animation을 통해 가감차와 거리차를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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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체산자(砌山子)에 대한 연구 (A Study on Chesanja(Qìshānzǐ, The Looping stitch) of Joseon Dynasty)

  • 양수정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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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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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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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not only to trace the examples of 'Chesanja' from the texts and artifacts, but also to restore the terminology of the lost traditional Joseon embroidery technique. 'Chesanja' came on Mongolia and Yuan period affected embroidery techniques of the neighboring countries. Therefore, this study will focus on investigate the process of changing 'Chesanja' into Guya(Goya) through ${\ll}Barktonsa{\gg}$ the foreign language transcriptions of the Chosun dynasty, and examine the generation, fashion, and destruction of this technique with the social technical usage. Around the 16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Chesanja' had been actively used as a decorative techniques to dairy products as well as a Buddhist memorial goods embroidered. Accor- dingly, in the "Beonnyeok-Baktongsa"(1515) appeared together written records with 'Chesanja' 'Gwiyeo[귀여]' the Eonhae(Korean annotation) only had emerged in the Joseon Dynasty. It was still a technique to decorate the edges of royal pillow in the mid-17th century. And we have checked from the text "Baktongsaeonhae"(1677) also. Despite this by the mid-18th century, the term in "Baktongsa-sinseok"(1765) and "Baktongsa-sinseok-eonhae"(1765) had disappeared. This phenomenon suggests the possibility that the production and utilization of 'Chesanja' required the sophisticated process for the ruling class had been declined with the custom of embroidery based on the gradation by colorful threads as the preferred technique. Therefore, 'Chesanja' and 'Gwiyeo'[귀여] disappeared from the records but they can be found in the artifacts of the royal family of 19th century. So Chesanja is calls Guya(Goya) and exists as unique technic only in the royal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