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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선언문과 폐정 개혁문의 모달리떼와 그 상징성 (The modality and the symbol of the reform in donghak and the declaration in K. Marx)

  • 선미라
    • 기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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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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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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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칼 맑스의 선언문과 폐정 개혁문의 모달리떼와 그 상징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한 텍스트로는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 동맹 선언문과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과 개혁문은 이 논문에서 1800년대의 철학적 실천담론을 모달리떼 양상으로 전개하며 기호학적 의미에서 그 공통의 상징성을 도출하고, 소유와 소외 그리고 계급에서 자유로워지는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사상적 흐름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 궁극적으로 동시대의 숨결 속에서 발표된 이 두 선언문은 감시와 처벌이라는 비인륜적 정책에 대한 고발장이다. 1일 2회 교회에서의 공간이 공장으로 바뀌고, 자본과 노동으로 2분법적 사고로 갈라치기 해서 이 범주 안으로 몰아넣는 행위가 마치 사회 윤리인 냥 치장되었으며, 사냥하는 식의 강요는 처벌 방식으로 이루어져 더 이상 사람이 존재하기 힘든 구조가 제도화 되어버린 현상에 대한 대항이다. 이 사냥의 틀을 깨부수려는 혁명운동이 바로 위 두 선언문으로 나타나며 칼 맑스는 자신의 존재를 '영원한 난민'의 위치에 둠으로서 공산동맹 선언을 통해 이루고자 한 유토피아의 절정을 완성하며, 동학농민군은 전봉준의 재판 취조과정에서 전개되는 그의 자유함에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민중의 혁명정신을 완성한다. 동서양에서 동시에 폭발한 억압의 형태는 지배와 통치의 자본에 대한 철퇴이며,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사람이 가장 큰 자본이다'로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철학적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그 의의를 ?고 있다.

20세기 회화공간에서 시지각과 신체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interaction between visual perception and the body in contemporary painting space)

  • 이금희
    • 조형예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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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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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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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20세기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시작된 후기미술은 그린버그적인 시각의 순수성과 자율성에 대한 비판으로 시각예술에서 재현과 시각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형식논리를 문제시하게 되고, 시각을 다른 감각들이나 신체, 삶 현실, 역사 등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는 시각(Vision) 혹은 시지각(Visuality)을 신체와 결부시켜 시각의 신체성의 가능성을 회화 공간 속에서 드러난 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시지각과 신체의 상호작용성을 검토하여 지각과 그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의 신체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신체성은 남성적 시각중심주의에 대해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적 신체성, 즉 물질성, 촉각성 등의 공감각적 감각의 세계를 강조하며, 후기 미술의 파편적 특성은 통일성과 게슈탈트를 지향하는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해체를 지향하고 있고, 참조와 파스티쉬 역시 시각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부인하는 경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세스 아트가 성행한다든지, 무정형 (formless), 혹은 앱젝트 미술(Abject Art)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시각중심주의를 허물고 거기에 신체성, 즉 행위와 물질성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지미술이나 설치미술 등은 적극적으로 관람자의 신체의 개입을 요구하게 되고, 실제적 공간과 환경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지각을 경험하게 한다. 이렇듯 현대미술은 의식적 공간보다는 실제 공간으로, 순수기호적인 공간보디는 신체적 느낌의 공간으로, 눈이 만들어낸 공간보다는 손의 행위와 물질이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통일적 공간보다는 혼연하며 애매한 공간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거리를 두는 공간보다는 신체적으로 상호 얽히는 공간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지각과 신체에 관한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해 준 사람은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이며, 구체적인 작업으로 길을 예시한 사람들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다. 메를로 퐁티는 후설과는 다르게 세계인식의 근원적 토대로써 명증한 의식보다는 혼연하며 애매한 지각과 그 배경으로서 신체를 내세웠는데, 이는 할 포스터 등이 말하듯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배경이 되면서 또한 모더니즘의 논리에 반기를 드는 후기미술에 적합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 메를로 퐁티의 $\ulcorner$지각의 현상학$\lrcorner$은 지각의 근원성과 그 신체적 배경에 관한 중요한 이론으로 지각에 있어서 신체의 작용과 특징에 대한 논의는 시각예술에 적용될 때 지각의 신체론의 회화적 함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적 회화론은 신체적 표현성과 화가의 회화적 표현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목되었으며, 그는 세잔의 회화를 살의 존재론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회화의 신체적 존재론적 측면 역시 검토될 것이다. 스텔라의 경우, 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이 전기 작업과는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것, 이를테면 틀의 해체, 탈중심적 공간표현, 역동적이며 혼합적인 표현, 중첩에 의한 실재 공간의 허용 등이 지각의 신체성을 용인하는 쪽으로의 전향이라고 판단되었으며, 베이컨의 경우, 회화적 구조, 즉 형상(figure), 삼변화, 아플라, 우연에 의한 제작방식 등이 메를로 퐁티의 살(la chair)적인 상호교착(chiasme)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고 이해되었다. 본 연구는 먼저 현대 미술의 흐름에서 시지각과 신체의 상호작용, 혹은 신체성의 개입에 대한 변화를 확언하기 위하여 지각과 신체의 위치를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후기미니멀리즘, 그 이후의 미술이라는 사적인 흐름의 큰 틀 속에서 살펴보았으며, 이를 지각과 신체에 관한 담론과 연결시켰다. 이에 대한 근거로 지각에 관한 이론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았는데, 지각심리학 중에서도 지각의 신체성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를 제공해주는 형태심리학적 논의들을 다루고, 이어 형태심리학을 주로 시각예술의 차원에서 예시해 보여주었던 루돌프 아른하임의 논의를 다루었다. 또한 신체와 시지각의 상호작용 분석을 위한 사례로, 신체지각적인 요소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후기 스텔라와 베이컨의 회화를 중심으로 시각의 신체성의 문제를 예시하며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신체성과 관련하여 봄의 문제를 규정지으려는 작업들, 신체의 축적으로서의 신체의 역할, 신체의 배경으로서의 현실적, 일상적 삶과의 결부로부터 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 위상변화를 확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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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 - 종교학적 의의에 대한 고찰 - (The Incarnation of Jesus and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A Study of Religious Significance)

  • 김종만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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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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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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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는 기독교와 대순진리회의 중요한 신(교)학 이론이다. 두 이론은 각 종교의 신앙적 서술을 위해 필요한 교리적 장치들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연구는 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변증, 설명하려는 신학적 종교연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본 논문은 신(교)학적 방법인 아닌 종교학적 방법으로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탐구한 논문이다. 그러므로 각 종교를 대표하는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모를까 종교학적 연구방법으로 보자면, 한 종교의 관점에서 다른 종교의 이론을 거대 담론적 성격으로 규정하는 작업은 불가능하고 큰 의미가 없다. 우선 성육신은 전통 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유일신 하느님이 원죄를 지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라는 인간을 통해 유일회적으로 하강한 사건이다. 인신강세는 그 종교적 특징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 둘을 통일적으로 고찰하려는 시도 자체가 객관적인 종교연구 방법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본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특정한 신(교)학적 입장들이 아닌 3인칭, 즉 종교적 관점으로 이해함으로써 거기에 나타난 종교적 의의를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증산의 인신강세 개념은 예수의 성육신 개념에서 차용되었다는 김종서의 입장을 연구방법의 전제로 활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신(교)학적 입장에 따른 성육신 신학이나 인신강세의 교학적 관점에서의 연구, 즉 예수와 증산의 신적인 요소(vere Deus)와 인간적 요소(vere Homo) 전부를 통합하고 조망하는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나 "전체 증산"에 대한 탐구를 지양한다. 대신 예수와 증산의 신적 선재성을 논의하는 초월적 요소나 형이상학적 측면은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검증적 기술이 가능한 형이하학적 차원에서 성육신과 인신강세의 의의를 해명한다. 이러한 연구방법론에 따라 본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각각 "성육신 종교학", "인신강세 종교학"이라는 가설적 명칭으로 전제한 후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성육신과 인신강세 종교학은 신적인 차원이 철저히 거세된 유물론적 해석이라는 비판의 요소가 내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성의 현재적 이입성을 부정하며 지금 여기로서의 철저 현재성을 지향하는 성육신과 인신강세 종교학은 검증적 학문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돌 타래의 디아스포라 서사와 미학 (The Diaspora Narrative and Aesthetics in Handol's Tarae)

  • 신사빈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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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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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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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글은 한돌 이흥건의 타래를 서사와 미학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 때 등장하는 분석 요소는 자연과 인간, 소외와 관심, 분단과 통일, 디아스포라와 겨레 등 이항 대립의 현상과 본질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타래는 군사 독재 때부터 발생한 산업화와 도시화, 난개발, 서구화, 입시 위주 교육, 빈부 차, 인간 소외, 분단 갈등의 사회 문제를 무저항과 불복종의 정신으로 맞서는 상실과 고통의 체험 서사를 노래하였다. 그리고 창작 의욕이 단절된 공백기를 자기 성찰과 노력으로 극복한 이후의 타래는 '자연의 울림과 자기의 참모습', '디아스포라 의식과 겨레의 얼'을 일체화하는 디아스포라 서사시의 느낌이 두드러진다. <터>에서 시작한 조국과 국토, 겨레에 대한 서사시는 <한뫼줄기>를 전환점으로 뿌리보다 길을 찾는 디아스포라 의식이 선명해진다. 한돌은 음악보다 서사의 원천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의 타래는 '노랫말을 위해서 리듬이 곁들어지는 것'에 치중한다. 이 때문에 타래가 갖는 기호학적 특성은 내재적 의미(슬픔의 정서)가 오묘해도 외형적 음운이 단순한 것이 한계다. 공감과 더불어 감동까지 끌어내는 데는 내포적(의미론적)인 부분과 외연적(음운론적)인 부분의 조화가 필요하다. 슬픔의 정서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려면 음운론적 요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슬픔에 대한 공감과 감동은 동일한 경험의 이야기보다 비슷한 정서의 분위기에 이끌리는 경우가 더 많다. 타래 속 슬픔의 미학은 유년 시절부터 겪은 상실과 고독, 가난의 맥락에서 표출된 원초적인 체험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긴 공백기를 거치면서 심화한 슬픔의 미학은 타인(실향민, 해외 입양자, 러시아 고려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의 디아스포라 경험까지 자기화하면서 궁극적인구원 서사를 지향한다. 이로써 타래는 잠재적으로 민족의 한계를 뛰어 넘을 가능성도 지니게 되었다. '이산되는 소리'로서의 타래는 다른 세계 음악과의 접점에서 깊은 슬픔의 호소력으로 유리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반다문화주의가 아닌 상호문화주의의 지향으로 글로벌 디아스포라 담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한돌의 타래는 디아스포라 음악으로서 지속적으로 공감의 영역을 찾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이 향후 과제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