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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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그 뿌리와 현주소 - 화학편(중)

  • 김희준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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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통권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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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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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보통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구분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이후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주기율표를 따져보면 불을 일으킨 부싯돌이나 돌도끼의 주성분이 실리콘(규석)이기 때문에 석기시대를 실리콘시대로 볼 수 있으며 청동기를 거쳐 철기시대인 현대엔 다시 실리콘시대로 돌아와 탄소에서 일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본다. 탄소는 21세기에도 과학기술의 핵심 원소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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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지역과 시대에 따른 한국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류 특성 (Lead isotope ratios characteristics of Excavated bronzes from Korea peninsula)

  • 김소진;한우림;황진주;정연중;한민수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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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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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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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한반도에서 출토된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자료 673건을 이용하여 시대별,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납동위원소비 특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초기철기시대는 한반도 남부의 전역에 걸쳐 넓게 분포하는 반면, 조선시대의 납동위원소비는 대부분 zone 3로 대변되는 충청남 북도와 전라남 북도에 분포되었다. 또한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한반도 전역의 원료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나, 북한의 경우 경상남 북도의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연구결과를 기초자료로 하여 시대가 명확한 출토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자료를 추가적으로 확보한다면 청동기 원료의 이동 경로 뿐만 아니라, 납이 혼합되고 재활용되는 시기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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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우리나라 건축

  • 장경호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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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호통권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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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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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
  • 우리나라에서 선사시대라고 하면 대체로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비롯하여 청동기와 초기철기시대를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 시대의 건축을 논함에 있어서는 통틀어 원시시대의의 건축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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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靑銅器) 화문(花紋) 연구 비교 고찰 (Comparative Study of Research for Bronze Ware Decorative Patterns)

  • 오제중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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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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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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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의 목표는 송대(宋代)와 민국(民國) 이후의 청동기 화문(花紋)의 내용과 성과를 대상으로 이들 두 시대의 학술적 성취를 비교하여 고찰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중국의 청동기 연구 역사에서 청동기 화문(花紋) 연구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비교하여 살펴보고 이들의 학술적 가치를 알아보았다. 청동기를 연구하는 것은 종합적 성격의 학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청동기 위에 새겨진 명문(銘文)이나 청동기를 분류하는 것을 위주로 연구되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청동기 화문(花紋)에 대해서는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진행되었다. 청동기 화문(花紋)은 고고학(考古學)과 신화학(神話學) 등의 학문과 연관되어 있으며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에서 본격적인 청동기 연구는 송대(宋代)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청대(淸代)에는 청동기에 대한 연구가 다시 부흥했지만 청동기 화문(花紋)에 대해서는 특별한 학술적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민국(民國) 시기에 이르러 청동기 화문(花紋) 연구는 송대(宋代)의 뒤를 이어서 수준 높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충남 아산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 밀집 구역의 지형환경 분석 - 용두천과 온양천 유역을 사례로 - (Analysis of the Geomorphological Environments of High-Density Residential Zone in Bronze Age around Asan City, Central Korea - A Case Study of Yongdoocheon and Onyangcheon Basin -)

  • 박지훈;박종철
    • 한국지리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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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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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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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충남 아산과 온양 근교의 용두천과 온양천 유역 그리고 천안 백석동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다수 발견되었다. 백석동에는 약 $1.3km^2$에 207기의 주거지가 집중해 있고 용두천과 온양천 유역에는 $49.2km^2$에 177기의 주거지가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다. 이 지역들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구릉지에 입지해 있으며, 구릉지의 지형환경은 일부 지질적 차이를 제외하고는 매우 유사하다. 본 연구에서는 충남 용두천과 온양천 유역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 밀집 구역의 지형환경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백석동 연구 결과와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이 지역들의 주거지 밀집구역은 정부평탄면과 정부사면, 상부곡벽사면의 사면 미지형과 남동 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면경사는 완경사지가 많이 나타나지만 사면 미지형과 사면방향에 비해 특정 경사면에 편중되는 경향이 적어 주거지 밀집 구역의 특징적인 지형환경으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본 연구에서 도출한 지형환경 특징은 일부 사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충청남도 일대의 구릉지에 입지했던 청동기 시대 주거지들의 밀집에 주요한 요인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이전의 식생 간섭사 (Vegetation Disturbance of Korea during the Pre-Chosun Dynasty Period)

  • 공우석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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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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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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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자연식생 간섭사를 시공간적 관점에서 복원하였다. 자연식생 간섭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되었으며, 간섭은 초기에 저지와 해안에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밭의 개간이 활발해지고, 특정 수종에 대한 선택적 이용에 따른 간섭이 있었다. 철기시대에는 밭농사를 위한 개간이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져 자연식생의 파괴가 계속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별채, 목재 가공, 철제 농기구 사용, 가축에 의한 땅 갈기 등이 도입되면서 경작지 확대를 위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개간이 장려되면서 다락밭이 조성되고, 땔감, 조선, 광업, 목판 인쇄, 개간 등으로 자연식생의 간섭이 심각해졌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농경 및 벌채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었고, 그 외 일상생활과 산업에서도 산림 식생의 간섭은 발생했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괭이농사, 후기의 보습농사, 청동기시대의 가축에 의한 보습농사, 철기시대의 농기구를 이용한 농사와 삼림 벌채 등으로 농경에 의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논농사와 밭농사, 신라의 밭농사, 통일신라 때 밭의 확대 개간, 고려 때 개간 장려에 따라 다락밭이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산림 훼손 피해가 심하였다 벌채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본격화되어 후기에는 섬이나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밭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벌채는 계속되었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목공구가 발달하면서 자연식생의 제거가 쉬워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앞선 목재 가공 기술, 신라와 가야의 광물 생산, 목재 가공, 개간에 따라 식생 파괴가 심했다. 고려 때에는 연료와 개간으로 나무가 벌채되었고, 대신 산에 소나무 등을 심으면서 마을 주변에서 소나무 숲 경관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기타 활동으로는 구석기 전기의 석기와 불,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과 관련된 활동, 청동기시대의 제련, 철기시대 철제 생활용구 제작, 고조선의 온돌난방, 삼국시대의 아궁이·굴뚝을 갖춘 온돌방, 신라의 많은 숯 사용, 고려의 선박 건조, 전란, 목판 인쇄, 연료, 경제작물 재배, 전면적인 온돌난방 보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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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백석동 청동기 시대 주거지 밀집 구역의 지형 환경 (Geomorphological Environments of High-density Residential Zone in Baekseokdong, Cheonan, Chungnam in the Bronze Age)

  • 박종철;박지훈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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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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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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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현재까지 발굴된 고고 유적을 대상으로 고대 취락의 분포 및 입지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고대 취락의 형성과 소멸과정을 밝히기 위한 기초 연구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들은 개별 주거지의 입지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주거지가 밀집한 구역의 지형 환경을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지역은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백석동유적그룹이며, 이 지역에서 발굴된 205기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이 연구에서 고려한 지형 환경은 사면 미지형, 지형경사, 사면방향이다. 연구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밀집한 주거지 밀집 구역의 지형 환경은 주로 정부사면 또는 정부평탄면의 파랑성 평야~준완경사지, 남향(남동향-남향-남서향) 사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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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고학 성립 시기 청동기 연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 - 윤무병(1924~2010)의 연구를 중심으로 - (A new glimpse on the foundation of the Bronze Age concept in Korean archaeology)

  • 강인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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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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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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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해방 직후 한국 고고학의 성립기에서 청동기시대의 설정은 가장 핵심적인 성과중 하나이다. 일본의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금석병용기시대를 반박하고 청동기시대라는 개념을 안착시키고 청동기 연구의 기반을 수립한 대표적인 인물은 윤무병이라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윤무병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꼽히는 세형 동검의 형식분류와 전개과정이외에도 청동기시대의 설정도 주요한 성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지석묘 연구 프로젝트로 일환으로 진행된 파주 옥석리의 발굴이 한국 청동기시대의 설정에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윤무병의 성과를 그와 함께 한국 고고학계를 주도한 김원룡과 비교하여 살펴보고, 아울러 해방이후 한국 고고학을 둘러싼 환경도 고려하여 그 현상을 해석했다. 윤무병의 연구는 동아시아재단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재정적 지원이라는 하드웨어적 기반과 일본 고고학에서 출발한 정치한 형식적 기법이 결합된 것이다. 한편 자료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울러 195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된 북한연구의 소개와 북방 지역 자료를 소개한 김원룡의 역할 등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이 윤무병의 연구는 1960년대 탈식민지라는 주요한 과제를 한국 고고학계가 어떻게 성취했는가를 볼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다만, 일본 편년관의 의존으로 청동기시대의 편년관을 지나치게 낮게 잡아서 한반도 청동기의 편년을 '문화지체 현상'에 근거하여서 만주나 북한과는 동떨어지게 본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물론, 21세기의 시각으로 윤무병의 연구를 재단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윤무병이 견지했던 유물에 대한 천착이라는 고고학적 전통을 새로운 연대관과 거시적인 안목에 결합하여 새로운 연구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1세기 세계화와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국 고고학의 저변을 확장해야하는 시점에 윤무병의 연구를 다시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속의 과학 - 집짓기 문화와 첨단 기술

  • 정동찬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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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7호통권3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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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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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인류가 처음 이 땅에 나타난 구석기시대엔 '동굴'에서 살다가 불을 발견하면서 '막집'을 짓고 살았으며 청동기 철기시대에는 '움집'을 짓고 살아왔다. 이때부터 우리 선조들의 집짓기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집이 지상으로 올라오고 '초가집'과 '기와집'이 등장하게 된다. 터를 닦고 기둥세우기, 문의 구조, 구들과 마루, 지붕의 곡선과 서까래 등을 살펴보면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환경보전정신과 과학기술이 응어리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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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굴산사지에서 출토된 청동기의 제작: 제작기술 및 원료산지 (Producing of Bronze Artifacts Excavated from Gulsansa Temple Site in Gangneung: Technology and Provenance)

  • 한우림;김소진;이은우;황진주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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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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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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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강릉 굴산사지에서 출토된 청동기 25점은 에너지분광분석기(EDS)와 전자탐침X선분석기(EPMA)를 이용하여 성분분석해준 결과 출토된 청동기가 구리-주석의 2원계 혹은 구리-주석-납의 3원계 합금임을 알 수 있다. 합금 이후 주조 혹은 단조공정이 진행되었으며 청동고리의 경우, 금도금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납 동위원소는 열이온화질량분석기(TIMS)와 레이저삭막 유도결합플라즈마질량분석기(LA-MC-ICPMS)를 이용해 주었으며, 분석결과 출토지와 근거리의 납 원료를 사용한 것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연구 데이터가 많지 않은 강릉지역 청동기의 제작기술 및 산지추정에 연구 목적이 있으며, 굴산사 실체의 확인 및 12~13세기 고려시대 청동기의 분석자료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