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창덕궁(昌德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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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정원의 원형경관 복원을 위한 제안 (A Proposition on Landscape Restoration of Joseon Dynasty's Palace Gardens)

  • 안계복;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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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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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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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궁궐의 원형 복원문제와 관련된 논리적 판단의 준거들을 추출하고, 이를 경복궁과 창덕궁에 적용시켜 봄으로써, 그 효용성을 확인하는데 있다. 또한 궁궐의 원형 복원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 방향을 제안하는데 의의가 있다. 우선 원형을 판단하기 위한 준거로는 "통시성과 공시성, 시원성과 시대성, 불변성과 변형성"의 6 개념을 추출하였다. 현재 경복궁은 1888년을 시대성 기준으로 복원하고 있지만, 1395년의 시원성을 갖는 원형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현재 경복궁의 복원은 건물 위주로 복원하고 있지만, 추후 연구에서는 근대 촬영된 경복궁 사진을 밑바탕으로 경복궁의 원형경관이 복원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창덕궁 존덕정 일원은 약 240년 동안 통시적 불변성을 지닌 원형이 1884년경에 변형된 것이다. 1884년이라는 시대성보다는 통시적 불변성을 더 중요하므로 동궐도의 원형대로 복원되어야 한다. 창덕궁 연경당 일원 원형에 대한 문제는 효명세자의 시원적 원형과 고종 때의 시대적 원형이 동일한 지역에 중복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므로 복원을 위해서는 새로운 해결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옥류천 지역은 1636년(인조 14년)에 시작하여 숙종, 정조를 거치면서 적어도 1884년(고종 21년)까지 약 250년간 불변성(不變性)과 통시성이 돋보이는 원형이다. 1884년 이후 옥류천 지역에 이루어진 변형은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옥류천 지역의 원형 회복을 위해서는 동궐도를 기준으로 변형된 경관을 복원해야만 한다. 그 밖에 옥류천을 건너는 다리, 샘, 담장, 초가들도 동궐도 기준으로 원형을 복원해야만 한다.

니조성(二條城)과 창덕궁(昌德宮)을 통해 본 한ㆍ일 궁궐의 의장 특성 - 건축 외장 재료와 색채를 중심으로 - (A Study on Materials and Colors between Nijo-Castle and Changdeok-Palace)

  • 김은정;박영순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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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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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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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 연구에서는 동일한 중국 건축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온 한국과 일본의 궁궐 건축에 대한 현장조사를 통하여 재료와 색채 특성을 연구함으로써 두 나라의 특징을 비교하고 이해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었다. 연구 대상은 각각 창덕궁과 니조성으로 선정하였고, 각 궁궐의 분석 대상 범위는 임금의 주요한 업무와 관련하여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전(殿)’으로 한정하였다(正殿, 便殿, 寢殿). 또한 색채 측정과 분석은 자연색체계가 사용되었다. 창덕궁과 니조성의 재료 사용 특성을 비교한 결과 창덕궁은 육송, 화강석, 기와, 청기와, 전돌, 흙, 석회, 짚, 한지, 청동 등을 사용하였고, 니조성은 편백나무, 화강석, 기와, 흙, 석회, 짚, 화지, 청동, 금 등을 사용하였다. 색상 분포에 있어서는 창덕궁이 Y에서 R사이의 영역, G∼G30Y, R80B∼B, B에서 G사이의 영역에서 나타났고, 니조성에서는 Y에서 R사이의 영역, B80G∼B90G, G30Y의 색상이 나타났다. 색조에 있어서는 창덕궁이 Deep chromatic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 나타난 반면, 니조성에서는 Greyish chromatic, Toned light grey, Dark deep, Toned dark grey, Toned grey의 영역 분포를 보였다. 본 연구는 건축물 외부구성요소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재료와 색채 특성을 동시에 연구하였는데, 본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한ㆍ일 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각각의 문화적 특성을 차별화하는 방향을 설정하는데 기초적인 자료를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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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덕수궁·창덕궁에 유입된 리놀륨(Linoleum) 바닥재 연구: 리놀륨의 제작 방식과 특성 및 사용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Linoleum of the Deoksugung and Changdeokgung Palaces in the Early 20th Century: focusing on its manufacturing process, characteristics, and usage)

  • 최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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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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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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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리놀륨은 실용적이고 위생적이며 친환경적인 바닥재이다. 영국의 월튼(Frederik Walton)에 의해 1863년에 개발된 이것은 코르크와 아마인유, 삼베를 주 재료로 한 유연한 방수 재질로서 20세기 초반 전 세계에서 유행했다. 화학제품인 장판과 달리 뒷면의 삼베 바탕을 한 리놀륨은 병원, 사무실과 같은 상업 공간뿐만 아니라 부엌, 욕실, 심지어 거실과 같은 주거 공간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글로벌한 소재의 하나로서 리놀륨은 20세기 초 국내에도 수입·유통된 정황이 파악되고 우리나라의 덕수궁과 창덕궁 내의 여러 건물에서도 쓰였다. 덕수궁의 경우 1915년에 작성된 『덕수궁원안(德壽宮原案)』에 의하면 함녕전, 덕홍전, 정관헌과 같은 주요 전각을 비롯한 여러 곳에 리놀륨이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주로 청색과 갈색 무지로서 영국의 제품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 수출입 자료에 따르면 리놀륨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내에 수입되었다. 창덕궁의 경우 이왕직청사의 건물 평면도에는 곳곳에 리놀륨이 표기되어 있으며 대조전과 희정당 일곽에는 그 원형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대조전과 희정당은 1920년에 개수될 당시 서양식 실내 장식과 근대적 설비를 갖추면서 화장실, 이발소, 서행각과 같은 일부 공간에 리놀륨을 사용했다. 여기에 사용된 것은 검정색 무지, 검정 패턴, 그리고 다색 꽃무늬 타일 패턴으로서 아메리칸 리놀륨 매뉴팩처링 컴퍼니(American Linoleum Manufacturing Company)나 암스트롱 코르크 컴퍼니(Armstrong Cork and Tile Company of Lancaster)와 같은 미국 제품들과 유사성이 크다. 본 연구를 통해 리놀륨의 특성과 사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기초로 향후 창덕궁의 복원·재현뿐만 아니라 리놀륨이 사용된 근대 실내 복원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의 비파괴 재질 분석과 국가지정 측우대와의 비교 (Non-Destructive Material Analysis and Comparative Study of the Changdeok Palace "Chugudae" and National Designated "Chugudae")

  • 안유빈;유지현;이명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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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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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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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국보 제331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그러나 국가지정 측우대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부족한 실정이며, 보다 정밀한 분석과 보존과학적 고찰이 요구된다. 따라서 문화재의 특성을 고려하여 정밀 육안 관찰을 통한 암석기재적 특징 조사, 휴대용 X-선 형광 분석, 전암대자율, 감마스펙트로미터 등의 비파괴 분석을 수행하였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의 암석기재적 특징 분석 결과, 대리암으로 동정되었다. P-XRF 분석 결과를 GSJ Reference Samples(JLs-1, JDo-1)의 측정값과 비교한 결과, 백운암질 대리암으로 판단된다. 국가지정 측우대(국보 제330호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보물 제843호 관상감 측우대, 보물 제1652호 통영 측우대)에 대하여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반화강암, 관상감 측우대는 중립-조립질 담홍색 흑운모화강암으로 동정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의 구성 암석이 유일하게 대리암으로 제작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선행 연구 사례를 참고할 때, 경복궁 근정전 품계석 중 동반의 정1품 품계석,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구성 암석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와 동일한 재질인 백운암질 대리암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구분되므로, 대리암은 시대적인 배경에서 신분적인 특수성을 가지는 재질로 해석된다. 또한 왕실에 의해 제작된 대리암 문화재들이 백운암질 대리암과 연관되는 경향을 고려할 때 특정 암종을 선택적으로 수급하였을 가능성에 대한 심화 연구가 필요하다.

A Study of Psychiatric Impotance on the Openning of Nae-ui-won(內醫院)

  • Lyu Yong-Su;Lyu Hui-Yong
    •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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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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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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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내의원(內醫院)은 병원과 약국을 겸비한 일종의 궁중의료기관으로 의사를 비롯하여 여러의원들이 임금과 왕비 및 왕자들의 약을 조제하여 달이던 곳으로, 일명 내국(內局) 또는 약원(藥院)이라고 내의원 앞에 예시되어 있다. 그러나 내의원은 현재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단지 관광지의 유물로만 여겨지고 있다. 현재의 내의원은 창덕궁(昌德宮)에 위치하고 있다. 내의원은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을 지나, 인정전(仁政殿)을 거쳐 희정당(熙政當) 좌측에 있으며, 왕비의 거처인 대조전에 가장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내의원은 조선왕조 세종25년(1443)에 개원하게 되었으니, 이때는 정치, 문화적으로 안정이 이루어져 가는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 왕이나 왕비 기타 왕족들의 여러 가지 정신적인 갈등으로 인한 질병이 많았으며, 이로인해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왕실의료기관의 필요성에 의해 내의원이 독립적인 개원이 이루어졌으리라 사료된다. 이로인하여 저자가 내의원에 관한 자료조사와 실제답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수 있었다. 1) 내의원의 개원은 조선왕조 초기 중앙의료질서 성립을 통한 봉건왕조의 절대왕권확립을 의미함으로 사료된다. 2) 내의원의 위치가 창덕궁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특히 어전(御殿)과 내전(內殿) 가까이에 위치함은 왕실의 질병을 신속하고도 중요하게 다루기 위함으로 사료된다. 3) 특히 의인을 내전에서도 대조전(大造殿) 가까히 둔것은 왕실의 질병중 왕비의 정신신체질환의 치료를 위함으로 사료된다. 4) 내의원의 진료형태는 왕진(往診)이었으며, 이는 당시 의원신분이 중인층이었음으로 사료된다. 5) 내의원의 이용중에서 평민에게는 왕명에 의해서만 이루어졌음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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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존덕정 일원 지당의 변형과 조영경위에 관한 고찰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Ponds and the Account of Reconstruction at Jondeokjeong Area in the Rear Garden of Changdeok Palace)

  • 정우진;송석호;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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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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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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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고종 연간 변형된 창덕궁 존덕정 일원의 지당을 대상으로 변모된 내용과 경위를 구명하고 조선시대 궁원 조영의 통시적 차원에서 이의 내적 맥락을 고찰한 것이다.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존덕정 일원의 지당이 변형되기 시작한 시점은 19세기 후반에 촬영된 사진과 "고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고종 21년(1884년)으로 판단하였다. 둘째, 개축 존덕정 일원의 지당은 향원지와 유사한 공간구성을 갖도록 정비되어 갔던 바, 고종이 창덕궁 환어 후 착수한 존덕정 일원 지당의 개조는 경복궁 건청궁과 향원지의 정감을 재현한 결과물로 판단된다. 셋째, 개축 존덕정 일원 지당의 교량은 연경당과 존덕정 영역을 통합하는 후원 기능 확장의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은 경복궁에서 건청궁이 향원정을 잇는 취향교를 통해 일대의 공간을 점유했던 방법과 같았다. 넷째, 고종때에 조성된 존덕정 일원 지당과 향원지는 연경당과 건청궁의 이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두 일곽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다섯째, 개축 존덕정 일원의 지당은 단순히 고종의 경관을 감상하는 취향에 따라 필요한 공간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선대부터 전승되어온 후원정당의 맥락상에 있는 조영체로 판단된다.

중건 경복궁 후원 오운각(五雲閣) 권역으로 조명한 조선시대 궁궐 별원(別苑)의 특성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Byeolwon (別苑: A Separate Garden Made Away from Living Space) in Palace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Illuminated by the Oungak Area at the Rear Garden of Reconstructed Gyeongbokgung Palace)

  • 정우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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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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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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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고종 연간 경복궁 후원의 북쪽에 조성된 오운각 권역의 특성과 창덕궁 후원 옥류천에 구비되어 있던 기능적 요소가 경복궁 후원으로 치환되었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오운각 권역은 샘과 천하제일복지 각자가 있던 기존의 공간을 활용하여 왕의사적인 공간으로 정비된 공간이었다. 고종은 오랫동안 창덕궁 옥류천이 담당했던 왕실의 휴식과 위락기능을 중건 경복궁에 그대로 옮기려 하였다. 그 결과, 옥류천과 유사한 기능을 하도록 조성된 오운각 권역이 후원의 별원으로 개발되었다. 양자 간에는 후원의 최북단에 조성된 입지 외에도, 건물의 구성 및 유배거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상용 수경설계 등에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오운각 권역은 옥련정, 오운각, 벽화실과 천하제일복지천의 수경시설로 구성되었다. 이중에서 벽화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옥류천과 직간접적인 관련성을 갖되, 지형의 굴곡, 경사, 수계의 상황 등 주어진 입지조건에 따라 조성되어 색다른 정감을 갖는 공간으로 개발되었다. 먼저, 옥련정은 남산에 이르는 서울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해 높은 언덕에 입지하였고, 천하제일복지천의 독특한 형식의 수로는 위이암의 유배거의 기능을 모방한 형태로 추정된다. 한편 오운각은 옥류천의 농산정과 같이 주거가 가능한 집으로 조영된 것이었다. 이러한 구성요소는 다분히 옥류천의 기능과 위상을 경복궁에 치환하기 위한 조성목적을 표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궁궐 후원의 기능 공간이었던 별원의 특성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