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정약용(丁若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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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성취자를 키운 동서양 양육자의 특성 비교 (Comparison of the Rearers of Creative Achievers in the East and the West)

  • 문윤희;한기순
    • 영재교육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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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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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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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연구의 목적은 성공적인 영재 양육 사례라 할 수 있는 창조적 성취자의 부모를 동서양으로 구분하여 고찰함으로써 영재 양육의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견하는데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서양 인물로는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 에디슨, 뉴턴을 동양 인물로는 이황, 이이, 정약용, 허난설헌의 부모를 대상으로 선정하여 창조적 성취자를 키운 양육 특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양육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 자녀인 창조적 성취자의 전기, 평전, 자서전, 저서, 양육자와 주고받은 편지 외에 필요에 따라 국내외 연구 논문, 단행본, 영재교육기관의 간행물 등의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였다. 동서양 8인의 양육자가 보인 양육 방식의 공통점은 자녀의 재능 영역에 대한 교육적 역량 소지, 재능 영역에서의 학습 가능 환경 또는 기회의 제공, 강요하지 않는 교육, 독립심 강인한 정신력의 강조, 혁신 개방적 사고방식, 한쪽 부모의 절대적 지지를 들 수 있다. 동서양 양육 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들은 서양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의 목표로서 재능 개발 및 성취를 장려했으나 동양의 부모들은 자녀의 전인적 발달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 서양의 부모가 자녀와 수평적 관계로 상호 작용 하였음에 반해 동양의 부모들은 자녀와 수직적 관계를 보였다는 점, 서양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양육 방식을 보였으나 동양의 부모는 정서 표현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 그리고 서양의 부모가 자녀에게 실수하는 모습, 잘못된 모습까지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준 것에 비해 동양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 등이 두드러진 차이점으로 나타났다. 각각과 관련하여 영재양육과 관련한 시사점이 논의되었다.

벼농사의 기후스마트농업을 위한 의사결정지원시스템 MP-MAS 활용 연구 (The Study of MP-MAS Utilization to Support Decision-Making for Climate-Smart Agriculture in Rice Farming)

  • 김학영;김준;최성원;요하나 마리아 인드리와티
    • 한국농림기상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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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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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8-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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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국제사회는 현재 1) 지속가능한 생산력 및 소득의 증대, 2)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탄력 구축, 그리고 3) 온실 기체 방출의 감축을 함께 달성하는 기후스마트농업(Climate-Smart Agriculture, CSA)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협력하고 있다. 이는 200여 년 전 다산 정약용이 강조한 후농(厚農), 편농(便農), 상농(上農)의 3농의 비전과 맥락을 같이 할 뿐 아니라, 성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할 총체적 지수의 개발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실용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기후스마트농업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행위자 기반 모형인 MP-MAS를 소개하고, 국내 적용을 위해 구축한 초기 모형을 벼농사에 적용하여 도출한 예비 결과를 제시하였다. MP-MAS는 농민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선택 사양을 고려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추후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탄력 구축과 온실기체 방출의 감축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확장될 경우, 국제적인 압박으로 다가오는 기후스마트농업의 목표 달성뿐만 아니라, 다산의 3농 비전인 지속가능한 농업-사회시스템을 구현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산(茶山) 우화시(寓話詩)의 확장(擴張)과 전이(轉移) -<오즉어행>과 <리노행>을 중심(中心)으로- (Expansion and Transition of Tasan's Allegoric Poetry)

  • 이경아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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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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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9-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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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asan Jeong Yak-yong is great scholar, who makes a synthesis of Sil-hak[實學, Practical Science of Korea], reformer of society, and a poet in the Joseon Dynasty. He expressed contradiction and conflict of those days by intellectual language, and reperceived basic ideology of the Joseon society. Also he theorized dissatisfaction of the people about those days and its system as form of religion. We can divide Tasan's life into two times. The first part is his ages 16~39 in the period of Jeong-jo(1777~1800). The second part is in the period of Sun-jo(1801~1834). In this period, he was exiled into Gang-jin for 17 years. After banishment, he lived a quiet life for the rest of his life in his hometown. His allegoric poetry were written in this second period. The special feature of allegoric poetry is strong satire. An allegory would be that is 'king's ear', which the barber has sight, or the barber's voice, which has divulged king's secret among the bamboos. Otherwise it would be that is the sound 'king's ear is donkey's ear' in the bamboos. This sound is divulging of the true donkey's ear. It doesn't travel to audiences, but travels trough wind in the bamboos. The narration exists just as story that barber can't stand to keep silence about king's secret. There are exposure of true and critical motive as allegoric expression. Tasan's allegoric poetry stand on the basis of his love for the people. Also there reveals his thought deeply with an enormous amount of reading and self-communion. Moreover there are his warm mind with his sharp insight in which captures alive lives as allegoric materials. Most of allegoric poetry satirize actuality of those days to make an excuse for external distinguishing marks of animals and plants. However Tasan's poetry are different from them. After he grasped serious problems from his contemporary actuality, and then choosed allegoric media to express correctly. Because he grasped the special features of lives after minute observation, he could exposure controversial point of the actual. His sharp insight was not limited to allegoric media. He noticed his period and the current of his society sensitively. It made his allegoric poetry as important materials to make us to know the condition of the people in the Joseon Dynasty. Tasan's allegoric poetry is inherited by Baek Seok[白石, 1912~1995] as regular juvenile literature. Baek Seok's juvenile stories are the results of expansion and transition for Tasan's allegoric poetry. Allegoric poetry was the shout of barber to prosecute about social irregularities and contradiction, and the sound of the bamboos to travel moaning of the people in the past. Now allegoric poetry create new emotion to make us to speculate ourselves with our surrounding. This changes are caused by special feature of allegoric poetry as a form to reflect our general lives.

문일평(文一平) 근대사학(近代史學)의 본령(本領), 조선학운동(朝鮮學運動) (The Characteristic of Mun Il-pyeong's Modern History, Joseonhak Campaign)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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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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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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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호암(湖岩) 문일평(文一平)(1888-1939)은 민중을 계몽하고 역사를 대중화하는 데 앞장선 민족주의 사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이 글은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문일평 사학의 특징과 본령을 종합적 관점에서 언급하고자 하였다. 문일평 사학의 특징은 계급투쟁을 의식하는 사회과학적 민중주의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또 역사의 주체인 민중 계몽을 위한 역사 서술 방법으로서 통속화와 과학화를 주장하게 되었다. 또 민족주의사학과 실증사학의 결합을 주장한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일평 사학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문화사를 강조하였다는 점에 있다. 정치사적 측면에서의 정체성을 문화적 측면에서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조선 문명은 굴종의 역사가 아니라 찬란한 전통으로 재탄생하였다. 또한 종래 지배계급 중심의 역사의식을 극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국수주의를 극복하여 세계와의 소통을 강조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추구하였다.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문일평 사학의 본령에 관한 것이었다. 문일평은 근대사나 외교사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저술의 양보다 그 사학사적 의미로 미루어 볼 때 필자는 문일평의 조선후기 실학 연구가 그의 학문적 본령에 해당하지 않나 진단하였다. 유학 이전부터 근대주의를 지향했던 문일평의 가치관은 조선후기 문화의 근대지향적 성격을 규명하려던 조선후기 실학 연구의 사조와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1934년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이하여 발표한 문일평의 논설은 당시 한국학의 지형을 뒤흔든 조선학운동의 일 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의 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일평 사학의 정수가 아닌가 한다.

다산 정약용의 『논어』 「학이(學而)」 및 「부지명(不知命)」장(章) 주석에 대한 고찰 (Dasan's commentary on The Meaning of learning(學) and ming(命) in Confucius Analects analects)

  • 임헌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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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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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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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논어"의 시작이 되는 "학이"1:1은 학(學)을 통하여 군자에 도달하는 과정을 서술하였다면, 마무리가 되는 "요왈"20:3은 군자의 요건을 진술하는 것으로 상호 보완관계에 있는 구절이다. 이 글의 목표는 이 두 구절에 대해 다산의 주석이 지닌 의의를 고주(古注) 및 주자(朱子)의 주석과 대비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논어"를 시작하는 장과 마치는 장에 대한 고주 및 주자의 주석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다산의 비평과 주석을 검토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먼저 "학이"1:1장에 대해 고주는 선왕의 경업을 평생 연중 일중에서 연령-시기별로 송독(誦讀) 수습(修習)하여, 사(師) 장(長) 군(君)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기술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주자는 여기서의 학(學)은 자기완성의 성학(聖學)으로서 천명(天命)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본성의 선을 밝혀 그 처음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 장은 자기완성(成己)에서 시작하여 남에게 미치고(及人), 그런 다음 덕을 완성(成德)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다산은 전체적인 구조상에서는 주자의 해석에 동의하지만, 여기서 제시된 학(學)의 개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여, 주자가 미미한 것으로 간주한 어떤 대상에 관한 학(농학 등)에 대해서는 그것이 지닌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려고 시도하였다. 마지막 장(부지명(不知命))의 해석에서 고주는 여기서의 명(命)을 궁곤(窮困) 현달(顯達)의 천분(天分)으로 해석하였고, 주자 또한 기(氣)의 측면으로 사생 요수 부귀 귀천의 운명(運命)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다산은 경전에 제시된 명(命)은 이러한 운명의 개념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하늘의 명령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내재적인 명(命)(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의미를 우선적으로 제시하여 이 구절을 해석하였다. 다산은 이러한 명(命)개념 재정립은 군자를 주체적 자각적 인간으로 재정립하는 데에 기여하였다고 하겠다고 생각된다.

목민심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인적자원 관리에 대한연구 (A study on human resource management in the Joseon Dynasty through Mokminsimseo)

  • 김봉화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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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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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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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의 목적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통해 조선시대 인사관리 흐름을 이해하고 이는 현대의 행정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조직에서도 어떻게 활용되어지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데 있다. 그 결과 첫째, 조선시대의 인적자원관리는 대부분 공공 종사자들의 청렴과 관련되어있었다. 이는 오늘날 평가의 방법과 범위, 가치기준, 평가 활용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내용들로 우리 전통적인 가치와 사상이 오늘날 까지도 사회복지조직 등 공조직의 종사자들의 평가에서 이어져 옴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조선시대의 인재 모집과 채용에 대해서는 적재적소의 인재등용이라 할 수 있는 적실성과 채용의 공정성, 인적 자원 채용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 등이 제시되어 있었다. 이는 인사가 만사임을 강조하는 인적자원의 적절한 등용과 규모에 대한 언급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보상과 징계영역에서는 보상보다는 징계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공직자들의 경각심을 주고 능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강화 또는 보상보다 징계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종사자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징계보다는 보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 나타나고 있음은 조선시대의 인적자원 관리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공직자들의 교육과 훈련 부분에서는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었고 몸가짐과 마음가짐의 품위 유지와 리더십을 강조하여 오늘날에도 사회복지조직을 비롯하여 공조직의 종사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면면히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茶山) 『소학지언(小學枝言)』의 수신론(修身論)과 도덕교육적 함의 (The Moral Training Theory and the Moral Educational Implication on Dasan's 『Sohakjieon』)

  • 김혜련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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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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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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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은 인성교육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저술한 "소학지언(小學枝言)"의 수신론에 관한 견해를 윤리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도덕 교육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동양철학에서 수신론은 인성론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다산의 수신론 역시 그의 인성론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성리학적 수신론과의 차별성은 실천을 중시하는 그의 수신론(修身論)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산은 성리학적 수양론(修養論)이 내적으로 마음을 관조하는 정적(靜的)인 수양론임을 비판하면서 덕(德)은 구체적 실천을 통해 비로소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다. 다산의 수양론이 성립되는 근거는 그의 성기호설(性嗜好說)에 있다. 다산은 인간에게 주어진 성(性)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으로 보지 않고, 선(善)을 좋아하는 기호(嗜好)로 보고 있기에 인간에게는 본래 완전한 본성이나 이(理)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어야 할 지향성이 있을 뿐이며, 그 지향성의 함양을 통한 덕(德)의 형성은 수신론(修身論)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소학" '소도(小道)를 따르고 소예(小藝)를 익히는 것'으로서 학문적인 추구보다 오히려 가까운 현실로부터 실천을 통해 인격을 성숙시키는 도덕실천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입장 속에서 다산은 "소학지언(小學枝言)" 저술 전체를 관통하여 정확한 훈고(訓?)와 고증(考證)을 바탕으로 의리(義理)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전해석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권형(權衡)의 행사(行事)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는 "소학지언(小學枝言)"에서 성기호설(性嗜好說)을 바탕으로 한 본연성(本然性)을 함양하며, 윤리적 존재로서의 관계성을 인식하고, 자학(字學)과 도학(道學)의 조화을 추구하는 전인교육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소학지언(小學枝言)"에는 그가 추구하는 실천 중심의 도덕교육 철학이 구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무 구조 분석 시론 - 문헌과 음악을 중심으로 - (The Structural Analysis and Criticism of Geommu (Korean Sword Dance) - Focusing in Literary Works and Music -)

  • 김영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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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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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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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한국의 검무는 조선시대까지 의례, 민속예능, 궁중연향, 풍류 등에서 다양하게 추어졌다. 그 중 기생들이 민간과 궁중에서 추었던 여기(女妓) 검무가 현재까지 전승되었는데, 조선 후기 문학작품들에 기록된 검무들은 현행 검무보다 역동적이고 검기(劍氣)를 가득 담은 춤이었다. 하지만 현재 전승되고 있는 기녀 검무들은 의식(儀式)성이 강하고 단아하다. 시대적 변화를 겪으며 검무의 정조(情調)가 변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검무의 핵심적인 구조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 하에 검무의 내적 구조를 시론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이를 위해 현행 검무와 조선 후기 검무의 구조를 교차하여 연구하였다. 조선후기 문학작품 중 박제가의 <검무기>와 정약용의 <무검편증미인>을 분석했고, 무보로 "정재무도홀기"에서 <검기무>와 "교방가요"의 <검무>를 분석하였다. 도입과정에서는 춤꾼이 등장하여 절을 하고 춤꾼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무진 무퇴하며 손춤이나 한삼춤을 춘다. 전개과정에서는 춤꾼과 검이 만나는데, 검을 잡을 것인지를 갈등하다가 양 손에 칼을 잡고 춤춘다. 절정과정에서 숙련된 검술과 교전(交戰)의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연풍대까지 춘다. 결말과정에서는 궁중에서 추었던 경우 인사를 하고 마치지만, 교방에서 추었던 경우 칼을 던지고 춤을 마무리한다. 검무의 구조를 도입 - 전개 - 절정 - 결말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네 단계의 전개 구조에 현행 검무(진주검무, 통영검무, 해주검무, 호남검무, 국립국악원의 검기무)의 춤사위 진행을 결부시키고, 반주 장단인 염불 - 타령(또는 늦은타령) - 자진타령 - 타령 - 자진타령의 순서에 따라 검무의 전개를 분석해보았다. 도입과정은 염불이나 타령의 초입부분이다. 기생이 등장하면서 캐릭터가 제시되고, 2열로 나뉘어 상대(相對)하며 춤춘다. 염불과 타령의 도입과정은 여유롭고 우아하게 진행된다. 전개과정은 타령의 중간이나 자진타령에 해당한다. 춤꾼들이 검 앞에 앉아 있거나 앉게 되는데, 칼을 잡기(집검(執劍))까지 갈등의 과정이 보여지다가, 결국 쌍검을 잡고 춤춘다. 타령에서 자진타령 장단으로 속도를 점차 높이며 검을 잡는 과정의 갈등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 자진타령의 탄력 있는 장단이 춤의 전개를 조금씩 진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속도를 갑자기 늦추어 타령장단이 3~4장단 배치되었다. 자진타령의 빠른 장단에서 타령의 느린 장단으로 전환되는데, 그 이유는 검무의 진전되는 긴장감을 잠시 끌어내 숨을 고르게 했다가, 다시 속도를 높여서, 이 춤이 절정으로 가기 전에 검무의 묘미를 높이는 효과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다시 자진타령으로 속도가 빨라지면 검무의 동작들은 더욱 폭이 크고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고조된 자진타령의 빠르고 힘 있는 장단에 맞춰 추면서 절정과정의 최고조에 이르는 것이다. 마지막 결말은 잦은 타령이 고조되고, 연풍대의 여세를 몰아 일렬로 서서 검을 휘두르며 춤추다가, 인사를 하고 춤을 마친다. 여기까지 자진타령이 이어진다. 이상 검무의 전개 과정에서 염불 - 타령 - 자진타령 - 타령 - 자진타령으로 이어지는 반주음악은 검무의 도입, 전개, 절정, 결말이라는 구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각 과정을 선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후기 문헌에 기록된 기녀들의 검무와 현행 검무가 진행상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검무의 핵심적인 내적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정약용(丁若鏞)의 『소학지언(小學枝言)』 · 『심경밀험(心經密驗)』에 관한 연구(硏究) - 윤리적(倫理的) 실천론(實踐論)을 중심(中心)으로- (A Study of Jeong Yak-yong's Minor Annotation of Elementary Learning and Private Examination of Classic of the Mind)

  • 서근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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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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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7-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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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소학지언(小學枝言)"과 "심경밀험(心經密驗)"을 윤리적(倫理的)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소학지언(小學枝言)"과 "심경밀험(心經密驗)"은 경학(經學)과 경세론(經世論)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역할을 하는 저술이다. 이 두 저술은 경학(經學)을 통해 연구한 것을 세론(經世論)을 통하여 실천하기 위하여 저술된 것이다. "소학지언(小學枝言)"이 외면(外面)의 수양(修養)을 위한 책이라면, "심경밀험(心經密驗)"은 내면(內面)의 수양(修養)을 위한 책이다. 이 두 저작을 통해 다산(茶山)이 강조하고 있는 '실천'은 선(善)을 향해 끊임없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은 선(善)을 향한 적극적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윤리적(倫理的) 실천(實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茶山)은 "소학지언(小學枝言)"과 "심경밀험(心經密驗)"에서 적극적 활동을 통해 선(善)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선악(善惡)의 문제는 마음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실천과 관련된 것이다. 즉, '윤리적(倫理的) 실천(實踐)'을 통해 선(善)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산(茶山)에게 있어서 선(善)을 향한 '윤리적(倫理的) 실천(實踐)'은 자신 자신의 수양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다산(茶山)의 이러한 주장은 개인윤리(個人倫理)와 사회윤리(社會倫理)가 밀접하게 연관 속에서 선(善)을 향한 '윤리적(倫理的) 실천(實踐)'이 이루어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다산(茶山)은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강조한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따라 선악(善惡)이 결정됨을 의미하며, 그 책임 역시 인간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다산(茶山)은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지닌 인간이 '윤리적(倫理的) 실천(實踐)'을 통해 '군자(君子)'가 되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장흥 보림사(長興 寶林寺)의 경관요소 해석 (Interpretation of Landscape Elements in Borimsa Temple after 17th Century)

  • 김규원;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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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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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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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 장흥 보림사는 문화 생태경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도 조경분야의 연구가 부족하다. 본 연구로 17세기 이후 장흥 보림사 경관요소의 변화를 고찰하여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조경사적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전남 장흥 보림사 일원의 경관요소에 대해 현장답사와 사적기(事蹟記), 중창기, 1928년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郞)의 보림사 실측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등의 관련 고문헌과 보림사정밀지표조사보고서, 국가기록원 및 전남 장흥의 과거 사진자료를 통해 경내 건축물과 지당, 사찰림 등의 경관요소의 변화를 고찰해보고자 하였으며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림사의 입지는 보조선사탑비의 내용을 통해 풍수적으로 길지에 위치함을 알 수 있으며 십육나한상과 천불로 비보하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의 남화선사와 비교했을 때, 주변의 환경구성은 비슷하지만 단을 쌓아 건물을 배치한 것은 차이점으로 보였다. 둘째, 보림사의 건축경관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현재까지 경관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상태이므로 과거 경관자료 아카이브 구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셋째, 보림사의 지당은 보림사사적기의 내용으로 보아 가장자리에 돌을 쌓아 만든 부정형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중창기의 내용을 통해 지당의 이름을 용천(湧泉)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경관은 과거의 사진과 비교해보았을 때 경내 지반사업으로 인한 지표의 상승으로 변형을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넷째, 보조선사탑비와 보림사사적기에 언급되고 있는 장생표주(長生標柱)는 한국전쟁 이전 사진자료에서 나타난 대웅보전 앞의 마른 향나무로 추측하고 있으나 도갑사의 국장생과 황장생을 참고하였을 때 석비형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보림사 중창기에 나타난 홍살문은 병자호란이후 승군의 충성에 대한 사액으로 세워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섯째, 보림사 중창기에서 보림사의 연못 조성 등 사찰경관요소 조성 시 풍수지리를 고려하였음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소나무, 보리수, 감나무의 식재기록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섯째, 차나무림은 정약용의 구증구포법 전수와 초의선사의 보림백모차, 이유원의 가오고략 등 관련 문헌을 통해 통일신라부터 시작된 선차일여의 다맥을 이어오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일곱째, 비자나무림은 관련 고문헌을 통해 비자가 국가의 제사와 의료약품으로 쓰였고 항공사진 및 보호림 지정구역의 위치를 통해 비자림이 내화수림대의 역할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