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전면

Search Result 2,245, Processing Time 0.026 seconds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하는 고농축 잉여슬러지의 열적가용화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Thermal Solubilization Characteristics of Highly Thickened Excess Sludge in Municipal Wastewater Treatment Plant)

  • 김은혁;박명수;구슬기
    • 유기물자원화
    • /
    • 제30권4호
    • /
    • pp.5-13
    • /
    • 2022
  • 현대의 환경문제는 다량의 폐기물의 발생과 무분별한 에너지의 소비로 인한 환경오염이 가속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생산 연료인 화석연료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연소가 이루어져 다량의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최종적으로 기후변화를 야기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의 양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처리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유기성 폐기물의 에너지화 및 감량화이다.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하는 하수슬러지는 해양매립이 전면 금지된 이후로 다양하게 처리되고 있으나, 그 발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수슬러지는 유기물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혐기소화를 통하여 하수슬러지를 에너지화 하고 최종 배출되는 폐기물을 감량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잉여슬러지의 경우 대부분이 하수처리에 이용되었던 미생물 덩어리로써 잉여슬러지가 혐기성소화 되기 위해서는 먼저 미생물의 세포벽이 파괴되어야 하는데 세포벽 파괴에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혐기성 소화 과정만으로는 높은 바이오가스 생산율이나 폐기물 감량율을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잉여슬러지를 가용화하는 전처리 공정이 필요하며, 여러 가지 가용화 공법 중에서 열적 가용화 공정이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검증되었고, 혐기성소화 공정의 전처리 과정으로써 열적가용화 공정을 이용하여 잉여슬러지에 포함된 세포벽을 파괴한 후 전처리 된 잉여슬러지를 혐기성소화 함으로써 높은 바이오가스 생산율과 폐기물 감량율을 달성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열적 가용화장치를 통하여 TS 10%의 농축 잉여슬러지를 전처리하는데 있어서 체류시간 및 운전온도 변수에 따른 가용화 특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열적 가용화장치의 체류시간에 대한 실험변수는 운전온도를 160 ℃로 고정한 상태에서 각각 30분, 60분, 90분, 120분이었다. 실험 결과로 도출된 TCOD와 SCOD를 통해 계산된 가용화율은 각각 12.11%, 20.52%, 28.62%, 31.40% 순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운전온도에 따른 변수는 반응시간을 60분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각각 120℃, 140℃, 160℃, 180℃, 200℃였으며 가용화율은 각각 7.14%, 14.52%, 20.52%, 40.72%, 57.85% 순으로 증가하였다. 이 외에 TS, VS, T-N, T-P, NH4+-N, VFAs를 분석하여 농축 잉여슬러지를 대상으로 하는 열적 가용화 특성에 대한 평가를 수행 했으며, 그 결과 TS 10%의 농축 잉여슬러지에 대한 열적 가용화를 통하여 30% 이상의 가용화율을 얻기 위해서는 운전온도를 160℃로 고정할 경우 120분의 체류시간이 필요하며, 운전시간을 60분으로 고정할 경우 170℃ 이상의 운전온도가 요구되어 진다.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 디지털 판독의 성과와 고찰 (A Study on the Digital Decipherment of the Goguryeo Stele in Chungju)

  • 조영훈;권다경;안재홍;고광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4권2호
    • /
    • pp.240-253
    • /
    • 2021
  •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는 발견 이후 탁본(拓本)과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판독(判讀)을 시도하였으나 여전히 판독되지 않거나 서로 이견이 있는 글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연구에서는 반사율변환이미징(RTI)과 3차원 스캐닝 기반의 디지털 가시화 결과를 이용하여 학제 간 디지털 판독을 수행하였다. 이를 근거로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가 주관하여 작성된 2019년 공동 판독안을 1979년과 2000년의 선행 결과와 정량적으로 비교하여 글자 변화에 따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판독 성과를 고찰하였다. 공동 판독회의 중요한 성과는 기존에 판독되지 않았던 4개의 글자가 새롭게 확정되고, 28개의 글자가 처음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선행 판독안에서 이견이 있었던 전면 68자와 좌측면 20자가 합의 과정을 통해 각각 한 글자로 확정되었다. 선행 판독문과 비교하여 '확정'으로 합의된 글자는 총 89자(22.6%)가 증가하였으며, '이견' 글자는 126자(32.0%)가 감소하였다. 이처럼 충주고구려비의 디지털 판독은 RTI와 3차원 스캐닝을 통해 선행 판독문을 재검토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정되지 못한 채 판독이 유보된 상태로 남아 있는 글자들이 123자(31.3%)나 존재하므로 판독률을 높일 수 있는 연구가 꾸준히 필요하다. 향후 충주고구려비를 비롯한 금석문 판독의 고도화는 인문학과 이공학의 융합 연구가 기반이 되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개발되는 영상 분석 기술의 적용뿐만 아니라 글자 신호를 좀 더 가시화할 수 있는 판독 맞춤형 기술 개발에도 노력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매천별업(梅川別業) 퇴수정원림(退修亭園林)의 의미경관론적 해석 (Interpretation on the Theory of a Meaning Landscape in Maechun-Byulup Toesu-jeong Wonlim)

  • 이현우;김재식;신상섭;노재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29권3호
    • /
    • pp.22-32
    • /
    • 2011
  •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 퇴관(退官) 선비의 장구지소(杖屨之所) 매천별업 퇴수정원림의 조영요소와 이곳에 투영된 작정의도 및 의미경관적 요소의 추적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퇴수정원림은 매천 박치기가 퇴관 후 은거를 위해 1870년 조영한 별서형 누정원림으로, 별업 경영의 면모를 기록한 '퇴수정기(退修亭記), 반선대기(伴仙臺記), 반선대10영(伴仙臺十詠), 퇴수정상량문(退修亭上樑文), 퇴수정원운병소서(退修亭原韻幷小序) 그리고 기타 현판과 주련 등의 기문에서는 조영자와 별업 조영의지 및 자연친화적 산수경영의 의도가 읽혀진다. 퇴수정원림의 공간구성 체계는 '퇴수정권역, 관선재권역, 계정권역' 등 세 권역으로 대별되며, 원림 주변에 새겨진 '매천별업(梅川別業) 반선대(伴仙臺) 심진암(尋眞巖) 야박담(夜泊潭)' 등의 암각서는 원림의 영역성을 규정하는 동시에 원림 작정과 관련한 다양한 의미경관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유상하며 곡수연회를 베푼 곡수유거(曲水流渠)의 조탁 흔적은 문화경관으로서의 별업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켜 주고 있다. 더불어 '반선대기'와 '퇴수정원운'의 반선대10영 등의 시문에서는 공간의 의미부여 및 자연 관조를 통해 신선지향적 별업원림(別業園林)을 구축하고자 했던 매천 박치기의 조경가적 면모가 읽혀질 뿐 아니라 귀거래(歸去來)하여 퇴수(退修)하는 은사지소(隱士之所)이자 풍류지처(風流之處)로서의 현학적 의미경관 요소들이 추출된다. 퇴수정원림의 현존 식물상 및 주요 식생요소는 후원에 펼쳐진 송림을 비롯하여 느티나무, 산벚나무, 살구나무 그리고 물가 쪽으로 굽은 소나무 등이 파악되는데, 도입종인 미류나무와 퇴수정 전면으로의 경관 조망에 장애가 되는 일부 수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연에 의탁하여 이루어진 천연적 경관 면모를 보여준다.

무당 다큐멘터리 영화에 투사된 전통음악 - <사이에서>와 <땡큐 마스터 킴>을 중심으로 - (Traditional Music Reflected in the Shaman Documentary Films - Focusing of and -)

  • 이용식
    • 공연문화연구
    • /
    • 제34호
    • /
    • pp.111-131
    • /
    • 2017
  • 무교(巫敎)는 오랫동안 사회의 주도세력에 의해 주변종교 또는 미신으로 치부되었다. 이는 사회를 주도하는 대중매체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투영된 잔상이기도 하다. 특히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첨단 대중매체인 영화에서 무교는 부정적 이미지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객관성과 사실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무교에 관한 입장이 비교적 중립적이고, 어느 정도 무교 친화적인 정치색을 갖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들은 무교의 정신세계 또는 전통성 등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이글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투영된 무교와 전통음악의 가치를 살펴보았다. 이글에서 다루는 영화는 <사이에서>와 <땡큐 마스터 킴>이다. 이 둘의 비교를 통해 내부인(한국인 감독)과 외부인(외국인 감독)이 각각 투영하고 싶어 하는 무교의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사이에서>는 기승전결을 갖춘 '뮤지컬'로서의 굿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영화감독은 굿에서 핵심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굿음악의 예술성을 전혀 부각시키지 못했다. 무당과 굿에 관한 <사이에서>의 관점은 철저하게 신비함과 영적 능력에 맞춰져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 굿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와 반대로 <땡큐 마스터 킴>은 음악인의 시각으로 무당과 굿을 바라다보니 무당과 한국의 예술세계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굿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 갈래의 전통적 미학을 소개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우리 문화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큰 무당을 찾는 서사적 여정으로서 서사무가인 <바리공주>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찾는 미학은 외국인의 시각에 비친, 이제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동체'의 음악적 산물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찾는 '마스터 킴'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탈(脫) 영토화'된 음악적 영웅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음악적 흐름을 통해 외국인 관객들도 굿음악과 무교 세계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은 '만국공통어(universal language)'이면서도 '비보편적 언어(non-universal language)'로서 한 공동체집단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문화이다. 우리의 굿음악은 다른 사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매우 비보편적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이에서>의 한국인 감독은 굿의 핵심적 요소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굿의 본질을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이에 반하여 <땡큐 마스터 킴>의 외국인 감독은 음악가로서의 배경을 통해 굿의 핵심적 요소인 음악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굿의 본질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낭자(娘子)농악'과 '소녀(少女)농악'을 통해본 여성 농악예인의 활동 (Nong-ak Artist's Activities seen from the perspective of "Maiden's (娘子) Nong-ak" and 'Girls' (少女) Nong-ak")

  • 박혜영
    • 공연문화연구
    • /
    • 제32호
    • /
    • pp.209-241
    • /
    • 2016
  • '낭자군(娘子軍')과 더불어 '여성농악'이 탄생했다. 본고에서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농악의 주체로서 여성이 등장한 내력, 특히 국극단 출신 여성농악예인의 출현이 주목된다. 이 연구에서는 낭자농악대와 소녀농악대의 활동 내력에 대하여, 새로이 발굴한 기사자료들을 전면에 제시하고 실증적으로 다루었다. 본고에 소개하는 '여성 농악예인'들은 기존에 알려진 남원여성농악단 성립 이전의 여성 농악인들과, 그 이후의 세대들을 아우른다. 여성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누린 예인들은 각종 농악경연에 참가하고 포장걸립을 전전했다. 여성농악인들은 우도농악 명인들로부터 전수를 받아 기량을 갖추고, 화려한 복색으로 이목을 끌었다. 농악계의 여성들은 특히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여 활동무대를 넓히고,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면서 융통성과 순발력을 발휘했다. 여성 농악인들은 세대와 성별,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소녀부터 기혼녀에 이르기까지 팀원으로 편성될 수 있었고, 때로는 어린 소년들을 영입하거나, 원로 남성농악인들과 연대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지역을 넘어, 국내외의 무대를 누비면서, 해외 순방에도 박차를 가했다. 특히 어린 소녀농악인들은 한국문화의 상품성을 선보이고, '순결한 농악예술무대'를 장식하는 문화적 매개자로 동원되기도 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실리와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거나, 정치적 선동을 할 수 없는 '천사 같이 춤추는 예쁜 인형'이나 다름없었고, 그 후원자는 국내외 정계 인사들이었다. 여성농악인들은 국내외 전반에 걸쳐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농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해외로 파견된 소녀들의 농악공연이 대개 어린이들이나 학생들 위주였던 반면, 국내에서 기성세대와 연합하여 공연활동을 하던 소녀들은 그저 농악이 좋아서 여성농악단에 입단하여 기예를 습득하고, 공연하며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입지를 다져갔다. 해방 이후 낭자농악, 소녀농악이라는 이름을 걸고 농악의 무대화를 선도한 여성예인들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어 농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사당패, 협률사, 낭자농악대, 소녀농악대, 여성농악단 등 한 세기를 풍미한 여성 농악예인들은, 농악판에 팽배하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습을 뒤틀고 농악문화의 새 전통을 일군 주인공들이다.

북인(北人) 학파의 연원과 사상, 그리고 현실인식 (The Origin and Philosophy of the "Northerners School(北人)," and their Perception of the world)

  • 신병주
    • 한국철학논집
    • /
    • 제32호
    • /
    • pp.43-78
    • /
    • 2011
  • 조선중기 북인의 모집단을 형성하는데 주축이 되었던 학파는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였다. 경의(敬義)의 실천을 강조한 남명의 사상은 임진왜란 때 다수의 의병장을 배출하였고, 광해군대 정인홍이 북인의 영수로 활약하면서 그 사상이 이어졌다. 이외에 성리학을 절충적으로 이해하고 개방적 성향을 보인 화담의 사상이 북인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광해군대에 북인이 정국을 운영할 때 실천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성리학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스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에는 남명이나 화담의 사상적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된다. 대북(大北)의 정인홍과 허균, 소북(小北)의 김신국, 남이공 등은 북인의 사상과 현실인식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인물이었다. 1623년의 인조반정이후 사상계가 퇴계학파나 율곡학파가 주축이 된 주자성리학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시대의 주류적 흐름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치사상에도 자파(自派)만이 군자당(君子黨)이라 확신하고 타 정파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점 또한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인조반정과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사상계가 주자성리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역사의 전면에서 밀려나 저류적인 흐름으로서 그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북인(北人)의 사상은 17세기 중, 후반 근기남인 학자들이나 18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흐름이 일부 이어졌다. 북인은 조선중기 서인, 남인과 함께 정치, 사상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정파이자 학파였다. 최근 북인의 뿌리가 되는 조식과 서경덕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북인 정치사상의 계승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조선중기 이후 정치사와 사상사 연구의 폭을 보다 확대 줄 것이다.

신채호의 「독사신론」의 구성과 '민족사'의 재구 (The organization of Shin ChaeHo's Doksasillon and reorganization of the Nation history)

  • 김수자
    • 동양고전연구
    • /
    • 제36호
    • /
    • pp.203-228
    • /
    • 2009
  • 신채호의 한국 역사에서의 주된 관심 분야는 고대사였다. 그리고 그의 역사 서술의 특징은 민족을 역사의 중심에 두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목적의식적으로 강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당시의 민족주의론은 신채호의 경우에서처럼 '강한' 민족을 강조하고, 동시에 그것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사회진화론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었다. 사회진화론과 결합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를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선망하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신채호의 고대사 연구라 할 수 있는 "독사신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부여족을 한국 고대사의 주류로 '재발견'하고 고대사를 재구성, 구체화 시킨 신채호가 '부여족'을 한국 고대의 주 종족으로 선택하고 부여족을 한국 민족의 대명사처럼 사용한 이유는 부여 고구려가 가장 강성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강성한 민족의 강조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구한말 시기 자강운동가의 면모를 잘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신채호는 국권이 침탈당하는 상황에서 근대화에 뒤쳐진 민족으로서 유일하게 동원할 수 있는 무기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밖에 없었던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 간주된다. 이와같이 독사신론에서 보여지고 있는 단군, 부여족의 역사의 재구성과 민족의 구원자로 중시했던 영웅을 발견해 내는 과정 등이 신채호에게는 역사를 쓰는 이유였던 것이다.

화서(華西) 이항노(李恒老)의 정전제(井田制) 주장과 그 함의(含意) (Review of context & meaning of Jeongjeonje by Yi Hang-no)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 /
    • 제48호
    • /
    • pp.195-223
    • /
    • 2012
  • 종래에 이항로의 통상불가론(通商不可論)이 서양의 경제적 도전에 직면하여 자국 산업 보호라는 경제적 자존을 그 역사적 임무로 하여 제기된 근대 민족주의적 성격의 것이라는 평가가 있어왔고, 한편에서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조선사회정체성에 맞서는 진보적인 경제사상이라는 평가도 있어왔다. 그렇지만 필자는 본고에서 이러한 시각들이 조선유학사상사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결론의 도출이라고 파악하고, 이항로의 경제인식에서 핵심어라 할 수 있는 정전제(井田制)에 관련한 논의들을 다루면서, 그것이 철저하게 유학사상에 근거하여 당시 사회를 경장(更張)하기 위한 사회개혁책으로서 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서양 제국과의 통상불가론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점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항로의 정전제 주장은 전반적인 국가제도와 그것의 운영원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제도개혁을 지향하는 변법적(變法的) 경세학(經世學)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전제를 통한 균등한 부의 분배는 병농일치의 관점에서 볼 때 강한 군사력을 형성하는 배경이 됨과 동시에 사람이 도덕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이항로의 경제인식은 자본주의 맹아론적 성격을 띤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도덕적 관점에서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항로에게 있어서 공전제(公田制)와 절검(節儉)의 태도를 축으로 하는 정전제의 시행문제는 곧 인심(人心)에 상대되는 도심(道心)의 함양을 위한 기본적 전제로서 인식되어진 것이다. 정전제라는 도구를 통해서 도심을 확립하려는 도학적(道學的) 관점이 이항로 경제인식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서양의 통상 요구는 이익을 도모하는 욕망을 부채질하여 도심에 상대되는 인심의 발호를 촉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항로가 전수설(戰守說)을 주장하면서까지 꼭 서양 세력의 접근을 막아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상소(上疏)를 통해 본 조선후기 지식인의 재편 - 이경석·박세당 평가와 관련한 노론계의 상소를 중심으로 - (Memorials to the King and the Intellectual histo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송혁기
    • 동양고전연구
    • /
    • 제59호
    • /
    • pp.121-156
    • /
    • 2015
  • 본고는 지식권력과 정치권력이 만나는 장(場)의 하나인 상소를 대상으로 삼아서 특정 정파가 지식 논쟁을 주도하고 지식인 집단을 재편하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한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택한 사안은 이경석과 박세당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공방(攻防)이다. 이 사안의 발단은 이경석의 차자(箚子)에 반박하여 올린 송시열의 상소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송시열에 대한 평가로 점차 논란이 확대되어 노론과 소론의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달았고, 결국 박세당의 저술인 "사변록"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검열로까지 이어졌다.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노론계 인사들의 상소 행위이고, 그 중에서도 이 사안의 핵심에 놓이는 안동(安東) 김문(金門)의 역할이다. 소론 측의 계속되는 송시열 비판에도 불구하고, 안동 김문은 송시열에 대한 노론계의 요지부동한 지지를 대변하였다. 이 사안의 직접적 계기가 바로 김창흡의 서신이었고, 이후의 상소 과정에서 안동 김문과 그의 문도들이 막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이 사안을 중심으로 연이어 올라간 양측의 상소들은 대체로 특정 인물 및 저작에 대한 날선 논평들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이 상이한 내용의 상소들은 기존의 정파(政派)가 낳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새롭게 진행된 지식인 재편(再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상소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상소에 동원된 표현과 논법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노론계에서 올린 일련의 상소문들에서 구사한 표현과 논법들은 주희(朱熹)를 기준으로 삼아 당대의 인물과 저작들을 양단간(兩端間)에 재단(裁斷)해 버리는 것이었다. 소론계 상소들의 다양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 논법의 칼날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당시 지식인들을 재편하였으며, 이로 인해 학술적 판도 역시 새롭게 만들어져 갔다.

신라성덕대왕신종(新羅聖德大王神鍾)의 명문(銘文) 연구(硏究) -'사상성(思想性)' 탐색을 겸하여- (Study on the Words Carved on Seongdeokdaewang-Shinjong (Divine Bell of King Seongdeok) with a New Viewpoint)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 /
    • 제56호
    • /
    • pp.9-46
    • /
    • 2018
  •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중대(中代)의 사상사, 불교사, 정치사, 공예사, 한문학사, 서예사, 금석학사 등 여러 면에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그러나 신종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에 비추어 명문(銘文)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명문에 대한 판독과 번역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초한다. 부제(副題)를 '사상성의 탐색'으로 한것은 제2차 연구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종래의 판독과 역주(譯註)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였다. 변려문(騈儷文)의 문체적 특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약 20건 정도의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특히 '工匠?模', '日月?暉' 등 중요한 문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은, 명문 해석의 중요성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종의 명문은 사상사의 측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높다. 명문에는 불교사상, 유교사상, 도가사상은 물론 우리나라 고유사상 등이 서로 걸림이 없이 무르녹아 있다. 전반적으로 철학성이 높은 글이다. '원공(圓空)'을 주제어로 신종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울러 불교사상의 핵심과 통치철학을 제시한 것이 돋보인다. 한편 성덕왕의 정치이념, 통치원리가 우리 고유의 풍류도(風流道)에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 것은, 풍류도 전승의 맥락을 추적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혜공왕 대에 유교사상에 입각한 개혁파와 민족 고유사상에 기반을 둔 보수파와의 대결을 시사한 대목도 함께 보아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