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전각평면

검색결과 7건 처리시간 0.019초

기문(記文)으로 본 세조(世祖)연간 왕실원찰(王室願刹)의 전각평면과 가람배치 (Architectural Plan And layout of Buddhist Temples(Wangsil-Wonchal) on through the Study of Records about Temple's Foundation during King Sejo(世祖) Period)

  • 이경미
    • 건축역사연구
    • /
    • 제18권5호
    • /
    • pp.81-100
    • /
    • 2009
  • The study on Buddhism architecture in early Joseon dynasty was inactive. The period of King Sejo is important for studying the trend of Buddhism architecture in early Joseon, that was transmitted from the end of Goryeo dynasty, but it was difficult to know its exact situation due to lack of related records. The records were all written by Kim Su-ohn, which are Wongaksabi' 'Sangwonsajungchanggi' 'Bongseonsagi 'Geonginsajungchanggi'. The main hall was mainly second floor and there were necessarily annexed buildings at the right and left of the main hall. So the plane figure of $\Box\Box\Box$ was shown. It was a main stream for main hall. This layout may be referred to search for the origin of the layout in courtyard based structure(中庭形) in the late Joseon dynasty. Most of temples had 3 gates. Some part of horizontal corridor was used as 2 gates and the outer gate, far from main hall, was without corridor. The gate leading to front yard of main hall was called front gate, the next middle gate and the outer gate was Oisamun(外沙門) or Samun(沙門). Im most of the temples, people could enter into the front yard through pavilion which had the function of bell tower. The pavilions were located between front gate and first corridor. It is thought that this layout of the place for making bean curd outside the temple area will contribute to different studies on temples making bean cure in the future. The records about temples's foundation studied above are a little different between temples, but have more similarities. There common denominators represent the architecture tendency of Buddhist temples in the related period. It is thought that such a tendency was also shown on architecture of other temples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as well as Buddhist temples.

  • PDF

러버쉬팅변환을 통한 「동궐도(東闕圖)」의 평면도 제작 가능성 연구 - 창덕궁 금천교 주변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Producing a Floor Plan of 「Donggwoldo(東闕圖)」 through the Use of Rubber Sheeting Transformation - With a Focus on the Surroundings near the Geumcheongyo Bridge in Changdeokgung Palace -)

  • 이재용;김영모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0권4호
    • /
    • pp.104-121
    • /
    • 2017
  • 본고는 "동궐도(東闕圖)"의 작도원리를 기반으로 러버쉬팅변환(Rubber Sheeting Transformation)을 통해 조선후기 창덕궁 금천교 주변의 평면도 제작을 시도하였으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궐도(東闕圖)" 제작 당시부터 현존하는 주요 전각의 실제 크기와 그림에 묘사된 크기를 비교하여 전각의 정입면이 약 1/200으로 축소되어 작성되었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측입면에서는 동일한 제작 비율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측입면의 길이가 실제의 약 절반 정도로 그려지고, 사선 각도가 평균 $39^{\circ}$로 파악됨에 따라 캐비닛 투영(Cabinet Projection)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동궐도(東闕圖)"의 작도 원리를 역추적하여 "사투영평면도"를 작성하고 러버쉬팅변환을 통해 "동궐도(東闕圖)"의 창덕궁금천교 주변 평면도를 제작하였다. 변환 시 투영변환(projective transformation)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표준 오차는 2.1208m로 비교적 높은 정확도를 나타냄으로써 "동궐도(東闕圖)"의 평면도 제작이 유의미하였다. 이는 "동궐도(東闕圖)"뿐만 아니라 평행사선도법으로 작성된 각종 기록화의 평면도 제작 가능성을 시사한다. 셋째, 작성된 평면도가 제공하는 공간 정보의 정확성을 검토하기 위해 금천교의 위치, 금천교와 진선문의 배치, 금천의 석축 위치를 시기에 따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작성된 평면도의 내용이 금천교 발굴조사결과와 그 맥락을 함께 함으로써 러버쉬팅변환이 "동궐도(東闕圖)" 제작 당시 모습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검증되었다. 본 연구는 러버쉬팅변환을 적용하여 "동궐도(東闕圖)"에 수록된 공간정보를 2차원 평면도로 제작하기 위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조선후기 동궐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박벽(薄壁) 공간(空間)뼈대구조(構造)의 횡좌굴(橫挫屈) 해석(解析) (Lateral Buckling Analysis of the Thin-Walled Space Frame)

  • 김문영;신현목
    • 대한토목학회논문집
    • /
    • 제13권1호
    • /
    • pp.13-24
    • /
    • 1993
  • 가상(假想)일의 원리(原理)를 이용하여 강절(剛節)-힌지단(端)을 갖는 평면(平面)뼈대요소(要素)와 비대칭(非對稱) 박벽단면(薄壁斷面)을 갖는 공간(空間)뼈대요소(要素)의 접선강도(接線剛度)매트릭스가 유도된다. 양단(兩端) 구속(拘束)된 비틂을 무시하는 경우, 구속(拘束)된 비틂을 고려하는 경우, 그리고 왼쪽단은 구속(拘束)된 비틂을 고려하고 오른쪽단은 구속(拘束)된 비틂을 무시하는 경우 각각에 대하여 박벽공간(薄壁空間)뼈대요소(要素)의 탄성(彈性) 및 기하적(幾何的)인 강도(剛度)매트릭스를 산정한다. 이때, 휨을 받는 평면(平面)보의 처짐함수를 적절히 선택하여 공간(空間)뼈대요소(要素)의 세방향처짐과 비틂회전각에 대한 형상함수(形狀函數)로 사용한다. 공간(空間)뼈대 구조물(構造物)과 원형(圓形)아아치의 횡좌굴(橫挫屈)문제를 해석(解析)하여 본(本) 연구(硏究)에 의한 해석결과(解析結果)들과 엄밀해(嚴密解) 또는 다른 문헌(文獻)의 결과(結果)들과 비교(比較) 분석(分析)하여 본(本) 연구(硏究)에서 제시한 이론(理論)의 정당성(正當性)을 입증(立證)한다.

  • PDF

비대칭(非對稱) 박벽(薄壁)보 요소(要素)를 이용(利用)한 원형(圓形) 아치의 횡좌굴(橫挫屈) 해석(解析) (Lateral-Torsional Buckling Analysis of the Circular Arches Using Unsymmetric Thin-Walled Beam Elements)

  • 김문영
    • 대한토목학회논문집
    • /
    • 제13권5호
    • /
    • pp.39-52
    • /
    • 1993
  • 비대칭단면(非對稱斷面)을 갖는 박벽공간(薄壁空間)뼈대와 원형(圓形)아아치의 휨-비틂 좌굴해석(挫屈解析)을 수행하기 위하여, 가상(假想)일의 원리(原理)를 이용한 공간(空間)뼈대요소(要素)의 접선강도(接線剛度)매트릭스가 유도(誘導)된다. 양단(兩端) 구속(狗束)된 비틂을 무시(無視)하는 경우와 구속(狗束)된 비틂을 고려(考慮)하는 경우 각각에 대하여 semitangential rotation and moment에 대응(對應)하는 박벽공간(薄壁空間) 뼈대요소(要素)의 탄성(彈性) 및 기하적(幾何的)인 강도(剛度)매트릭스를 산정한다. 이 때, 휨을 받는 평면(平面)보의 처짐함수를 공간(空間) 뼈대요소(要素)의 축방향(軸方向) 및 횡방향(橫方向) 처짐과 비틂회전각에 대한 형상함수(形狀函數)로 사용한다. 순수휨과 균일한 압축력을 받는 도형(圖形)아아치의 횡좌굴문제(橫挫屈問題)를 해석(解析)하여 본(本) 연구(硏究)에 의한 해석결과(解析結果)과 문헌(文獻)의 엄밀해(嚴密解)에 의한 결과들을 비교(比較), 분석(分析)하여 본(本) 연구(硏究)에서 제시한 이론(理論)의 정당성(正當性)을 입증(立證)한다.

  • PDF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경우궁도(景祐宮圖)'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Painting of Gyeongwoo-gung Shrine (景祐宮圖))

  • 김경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4권1호
    • /
    • pp.196-221
    • /
    • 2011
  • 조선시대 종묘(宗廟)에 모실 수 없는 왕의 사친, 등극하지 못한 세자와 같은 왕족의 신위를 모신 공간, 사묘(私廟)는 왕명에 의해 건립되고 관리되었다. 또한 사묘의 영건은 각 의궤(儀軌)에 담겼고 이와 함께 왕실사묘의 평면배치도 등이 남겨졌다. 정조의 후궁으로 순조(純祖)를 생산한 수빈박씨(綬嬪朴氏)의 신위를 모신 경우궁의 영건기록인 1824년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顯思宮別廟營建都監儀軌)"가 현존하기에 그간 소개된 바도 없고 연대조차도 알 수 없었던 <경우궁도(景祐宮圖)>의 제작 연대, 사용재료 및 장황(粧潢)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경우궁도>는 1822년에 타계한 수빈박씨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궁내에 설치했던 혼전(魂殿)을 폐하고 궁밖에 별도로 마련한 터에 왕명에 의해 1824년 현사궁별묘를 영건하면서 영건도감(營建都監)에서 제작한 <현사궁별묘전도>인 것으로 확인된다. 영건도감에서 <경우궁도>의 제작이 이루어졌을 것이기에 의궤에 제시된 화원(畵員)들이 주목되지만 이들의 현존작이 없어 화풍을 비교할 수 없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경우궁도>는 <동궐도(東闕圖)>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한 평행사선구도로 일목요연하게 많은 전각 등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양식적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주지하듯 건축물을 다룬 그림들은 해당 건축그림 제작 의도에 맞게 시점을 택해 그리거나 아니면 다시점을 이용해 그리게 된다. 우리 회화에서 건축물을 다룬 그림은 일찍부터 평행사선구도, 정면부감시 또는 다시점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18세기에 이르면 평행사선구도로 정확하게 그리면서도 회화성도 높은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19세기 전반기에 이와 같은 현상이 최고로 발전한 듯 <동궐도>가 등장한다. <경우궁도> 또한 완성된 평행사선구도로 200칸 가까운 많은 전각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치밀하게 표현하고 있어 <동궐도>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건축그림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수지법, 옥우법, 지면의 표면질감 표현 등 구체적 화법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만 사당공간 중 가장 중요한 정당권역만은 의궤도설 '정당이하제처(正堂以下諸處)'라는 평면배치도와 그대로 일치하여 평행사선구도를 버리고 정면부감시 및 사방전도식묘법으로 표현된 점은 <경우궁도>만이 갖는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동시대 영건과 관계된 그림은 아닌 개인의 거주지를 표현한 그림에 이와 같이 시점을 각각 달리하여 표현한 예가 있기도 하여 사당공간을 그린 그림만이 가지는 특성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한편 왼편 하단으로 향하는 평행사선구도를 택해 그릴 경우 화면 왼편 상단과 오른편 하단은 비게 된다. 경우궁도가 이에 부합되는 화면을 보여주는데 반해 동궐도는 다양한 나무 등을 채워 빈 여백 없는 완벽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현상은 두 작품의 장황의 현황과도 일치하는데 지본 낱장으로 완성된 경우궁도는 화첩으로 표제까지 달아 완성된 동궐도와는 완성도의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마치 동궐도가 그 묘사의 사실성, 기록성을 넘어 감상의 목적까지도 고려하여 작품제작 및 장황까지 마친 것이었다면 경우궁도는 영건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겨 그리는 기록이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고려 강도궁궐의 위치와 범위 검토 (The Location and Range of Goryeo Palace in Gangwha)

  • 이상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7권3호
    • /
    • pp.108-127
    • /
    • 2014
  • 강화는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궁궐을 비롯한 여러 시설물이 즐비한 고려의 도성이었다. 하지만 도성의 핵심시설인 궁궐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세도성으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강도궁궐은 개경궁성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제한다면, 강도궁궐의 실체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개경궁성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개경궁성의 특징은 도성의 남북중심 축선에서 서편으로 치우친 곳에 입지하고, 궁성의 동편에는 '동지(東池)'가 위치한다. 그리고 궁성의 중앙부에는 탁월한 고도의 구릉이 남쪽으로 돌출되어 있고, 이 구릉을 감싸고 두 줄기의 가지하천이 흘러 주류하천에 합수된다. 강화에서 이상 개경궁성의 특징들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곳은 관청리 '궁골'일대이다. 이곳에서는 예로부터 많은 청자들이 수습되었다고 하며, 중앙부에는 탁월한 고도의 구릉이 남아있다. 이 구릉을 감싼 두 줄기의 하천은 남쪽으로 흘러 주류하천인 동락천에 합수된다. 한편 관청리 405번지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는 이곳이 연못이었음을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이 유적은 궁궐의 동편에 입지하는 개경의 '동지'와 같은 성격의 유적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지적도에서 확인한 대형도로는 개경도성의 남북방향 주간선도로에 비견된다. 그러므로 강도궁궐은 개경궁성과 같이 이 두 유구의 서편에 입지하여야만 한다. 그곳이 바로 '궁골'인 것이다. 지적도에는 '궁골' 일대에 호상(弧狀)의 도로에 의해 구획된 복주머니 형태의 평면이 확인되는데, 개경의 궁성모습과 흡사하다. 이 호상도로 내부에 궁궐 전각의 일부로 생각되는 관청리 659-2번지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개경궁성의 특징, 고지도 및 지적도, 고고자료의 검토를 통해 얻은 결론은 강도궁궐이 강화읍 관청리 '궁골'일대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며, 그 범위는 상기한 호상도로의 내부라는 것이다.

근대적 예술 개념으로서의 서예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aligraphy as a modern concept of art)

  • 김희정
    • 동양고전연구
    • /
    • 제50호
    • /
    • pp.295-318
    • /
    • 2013
  • 본 논문을 '근대적 예술 개념으로서의 서예'를 정의해 보고자하는 글이다. 근대성의 지표로서의 '자율성'에 근거하여 '순수예술로서의 서예성'과 배치되는 요소들을 제거해 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시대의 서예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반추해보자는 의미이다. 근대예술 개념으로서의 서예를 '글자를 쓰는 예술'로 정의하고, 이를 성격과 형식, 내용적 측면으로 분류하여 논의하였다. 먼저 성격적 측면에서 서예는 마땅히 공간예술이어야 하지만, 시간의 추이와 함께 창작되고 감상되는 시간예술적 속성도 또한 지닌다. 따라서 공간예술 가운데 2차원적 공간예술인 회화와 가장 유사하며, 시간예술 가운데 리듬성(운동성)과 추이성을 내재한 음악과 유사하여 시공간예술로서의 무용과 유사함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서예는 '회화와 같이 눈에 보이는 글자를 음악과 같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평면)공간에 써가는 사이에 살아있는 작가의 생명감이 표현되는' 무용과 같은 '시공간 예술'이라 하였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서예를 전각 서각 문자디자인과의 비교를 통해 동이점을 도출함으로써 '순수예술'로서의 서예 개념을 도출하였다. 서예의 내용적 측면은 문학과의 비교를 통해서 동이점을 논설하였다. 근대예술 개념으로서의 서예, 즉 서예의 자율성 문제는 순수예술이냐 응용예술(실용예술)이냐의 문제와 어울려 서예의 소재인 문자의 가독성(可讀性)과 문의(文意) 문제를 들었다. 문자의 가독성과 문의는 서예를 존재케 하는 요소임과 동시에 서예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일종의 파라독스다. 즉 문자의 가독성과 문의의 수용 여부는 서예를 응용예술 혹은 문학예술의 부용으로서의 서예인가, 순수조형예술인가의 가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하여 서예의 창작과 감상 부분에서는 2차원적 공간예술인 회화와 시간적 예술인 음악과 대비시킴으로서 문의로부터 자유로운 '순수조형예술로서의 서예'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