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이후 195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에서는 서클문학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고,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주체도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와 주장을 문학운동과 연동하여 서클과 기관지를 통하여 생산·확장시켜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정치적 주체와 문학서클 운동과의 교류, 갈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분석 연구한 사례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조련과 민전의 정치적 역학관계로 탄생한 '오사카 시인집단' 기관지『진달래』와 노선전환에 따른 조총련의 '재일조선 문학회' 기관지『조선 문예』의 성립과정과 두 잡지의 교류, 갈등, 해산 과정 등을 비교분석하여 그 실체를 규명했다. 즉, 해방 후 재일조선인 문학자들이 갖고 있었던 탈식민지화로의 끝없는 고민과 대립, 모순과 갈등의 실체를 '공화국공민과 재일', '주제와 창작언어'등으로 분석하여 '조총련과의 갈등'으로 결국 해산에 이르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본고에서 파악된 1950년대 재일조선인들의 시대정신은 향후 재일조선인문학의 출발점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본 연구는 조선학교 교육을 받았던 재일조선인들의 구술을 통해 일본 외국인교육정책의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일본 외국인교육정책의 전개과정을 시기별로 구분하고, 시기적 변화의 특성에 따른 재일조선인들의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구술자들은 일본 외국인교육정책의 전개과정과 조선학교 교육의 관계성은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 외국인교육정책이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배제로 일관하였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일본 중앙정부와는 달리 지방자치체 차원에서는 조선학교 보조금 지원, 조선학교 졸업생에 대한 공 사립대학 입학 허용 등 중앙정부와는 차별화된 정책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본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분석하였을 때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외국인교육정책 에는 일관된 배제와 동화정책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 교육은 교육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되지 않고 정치적 문제로 다뤄져 온 측면이 컸다는 것이다. 재일조선인이 일본 국민과 외국인 사이에서 이중 잣대의 적용을 받는 것처럼 조선학교 교육도 일본 교육과 다른 외국인학교 사이에 모호한 경계선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학교에 대한 교육정책이 다른 외국인교육정책과는 달리 이중적 구조로 존재해 왔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재일조선인 교육은 정치적 상황이 아닌 세계보편적인 인권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보장될 필요성이 있다.
해방 후, 일본에서 1948년 1월 민족문화운동의 성격을 갖은 여러 문학단체들이 합류해서 '재일조선문학회'를 결성한다. 그러나 '재일조선문학회'는 GHQ의 탄압으로 활발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1953년 한국전쟁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재결집을 하게 되었다. '재일조선문학회'의 기관지는 일본어의 "문학보"와 조선어의 "조선문학", "조선문예"로 잡지명을 바꾸어서 간행된다. 재일조선인민족운동단체와 문학단체는 일본과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연동하여 재편성되었다. '재일조선문학회'의 재결집도 '조총련'의 등장과 '노선전환' 에 의한 것이었다. 본고에서는 '재일조선인문학회'가 재일조선인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공화국공민'이라는 자부심의 고취문제와 민족운동의 주체로서 '조선어글쓰기' 운동의 의미, '조총련'과 '민단'과의 갈등의 실상을 파악하여 50년대의 재일 조선인문학연구의 공백을 메꾸어 보려한다.
식민지 시기 조선의 인구동태는 한반도 안과 밖에서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한편으로 자연성장률이 크게 성장하였고, 국내외 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연구는 식민지 시기 동안 정확히 얼마만큼의 조선인의 인구성장이 이루어졌고, 그 동태의 특성은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식민지 조선 인구 동태의 중요한 특성은 무엇보다 조선 안에서의 완만하거나 정체된 인구성장과 대비하여 만주와 일본에서의 조선인의 급속한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 조선내 인구의 자연성장율은 1910년-1915년 사이 10.57%o에서, 1935-1940년에는 20.4%o, 1940-1944년에는 24.4%o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식민지 시기 자연성장율이 실질적으로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내 인구성장이 1930년대 중반부터 떨어지고 이후 정체되었다. 이는 많은 인구가 만주와 일본에 이출한 때문이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집단적인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해방 이후의 정치 역학과 사회 구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귀환하지 않은 해외 조선인들의 국적과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긴장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일본 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중 재일 한국인/조선인(이하, 재일코리안)이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재일 코리안 중 65세 이상이 13%가 넘는다(재일고령자 조사위원회, 2003). 이런 재일한국인/조선인의 고령자(이하, 재일코리안 1세라고 말함)는 대부분 식민지시대에 조국에서의 생활기반을 잃어버리고 일본에 건너오게 되거나 혹은 강제연행으로 인해 일본에 거주하게 되었다. 재일코리안 1세는 연령적으로는 후기 고령자이며, 문화의 차이, 언어적 문제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 등의 어려움이 있다. 이런 많은 어려운 점 중에서도 특히 개호의 문제(노인수발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이런 문제들 중 먼저 역사적인 경위에 대해 선행연구 등을 통해 논해 보고자 한다. 또한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문제가 개호보험 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장애가 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으며, 대다수가 무연금자인 점(길영(吉永), 2004), 개호보험과 재일코리안 1세의 경제적인 요인이 심각한 문제인 점인것(북촌(北村), 2004)을 말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후꾸오까/나가사키 지역의 재일동포 1세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재일코리안 1세는 일본의 고령자보다 훨씬 개호보험 서비스 이용에 소외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재일코리안 1세의 개호의 문제는 한국에서가 아니라, 거주하고 있는 일본에서 해결되어 져야만 하는 문제이며 그 개선책 또한 논하였으며 향후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았다.
본 연구는 해외교포사회에 북한춤이 전파되는 과정과 그 발전양상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둔 것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민족집단으로서의 재외동포들의 무용문화, 특히 재중, 재일조선인들의 무용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필요성을 생각해보았다. 문헌연구 중심으로 살펴본 논점의 결과, 재일조선인사회와 중국조선족자치구의 무용문화의 출발점엔 공통적으로 최승희춤이 있었으며, 두 민족집단은 최승희로부터 직접·간접적으로 춤을 배우거나 작품을 전수받았으며, 최승희가 정리한 조선무용기본을 기초훈련으로 하여 무용을 습득했다. 또한 무용전수 및 훈련기관은 재일조선인사회의 경우 북한의 체계와 같이 무용소조를 따로 두고 그곳에서 무용훈련을 통해 재능있는 인재를 배출하여, 전문예술단에서 활동하게 하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이에 반해 중국조선족자치구는 연변대학과 중앙민족대학내에 무용학과가 배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조선춤을 전수 교육함으로써 재능있는 무용인재들을 배출해 왔으며, 한국의 무용교육체계와 유사한 면을 볼 수 있다. 무용기초훈련과 작품의 경향면에서는 재일조선인사회에서는 북한에서 실천하고 있는 무용기초훈련과 기본훈련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으며, 작품도 북한춤을 대표하는 명무나 민속무용을 그대로 전수받아 공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조선족자치구에서는 최승희가 정리한 조선무용의 기초와 작품을 그녀로부터 직접 훈련받거나 전수받았으나, 최승희의 제자들은 그녀가 세운 무용기초를 발전시켜 중국소수민족의 춤기법 등을 접수하면서 중국조선족만의 무용훈련체계를 세워나가면서 한국춤과의 교류도 성사시켜 북한춤보다는 자유롭게 창작성을 가미한 중국조선족 무용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전수된 시기로 보면, 재일조선인사회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직접적인 평양방문을 통해 전수와 교육을 받았고, 1990년대에는 북한무용가를 직접 일본으로 초청하여 무용기초훈련을 교육받음으로써 북한춤에서 볼 수 있는 스펙터클한 양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하겠으나, 중국조선족자치구에서는 1950년대에 평양과 북경에서 최승희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고, 이후에는 북한무용가들로부터의 직접적인 지도보다는 북한예술단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무용영향을 받는 한편, 199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춤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조선족만의 색다른 무용문화를 창조해 왔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살아가는 지역과 그 지역을 구성하는 민족집단의 구성체계 및 정치체제에 따라 북한춤의 전수과정 및 발전양상도 유사하지만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보장하는 독자적인 특색을 지닌 무용문화를 형성하며 발전시켜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재일조선인사회의 무용문화는 조총련의 통제하 강제적 문화접변에 의한 무용문화의 변동을, 중국조선족자치구의 무용문화는 자발적 문화접변에 의한 자유로운 차용과 발전으로의 변동을 살필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재일코리언 김시종의 장편시집 "니이가타"의 표현을 고찰해 식민 이후와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재일'의 의미를 생각해본 것이다. "니이가타"는 1959년에 니이가타 항에서 재일코리언이 북한으로 귀국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주 4.3사건 이후 정부 당국에 쫓겨 1949년에 일본으로 건너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일의 삶을 살고 있는 김시종의 '재일'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표명을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다. 김시종은 스스로를 재일 2세로 정위하고 일본사회 속에서 현실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길을 모색해왔다. 그는 남북 분단의 현장이며 38도 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니이가타에서 조국에서는 넘을 수 없었던 분단을 넘는 상상을 한다. 이는 재일의 삶을 살고 있기에 가능한 공간 확장의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니이가타"는 '재일'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정체성의 불안을 느끼는 네거티브한 존재가 더 이상 아니라,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을 모두 포괄하며 이들을 새로운 의미로 관련지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식민과 분단의 어두운 기억 속에서 살던 자아를 깨워 새로운 공간의 상상력을 펼침으로써 남북을 총칭하는 '조선'과 일본을 아우르는 지점에서 재일을 사는 의미를 찾고자 한 시인의 적극적 의지 표명을 읽어낼 수 있다.
본 연구는 일본에서 저술된 한국고전문학사를 중심으로 일본문학사와 남북한 문학사와의 문화횡단적 양상을 살핌으로써 한국문학사에 대한 인식과 서술양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 분석대상은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을 대상으로 일본어판 "조선문학사"를 저술한 김동욱과 변재수이다. 일본문학과의 비교문학적 관점인 김동욱의 "조선문학사"(1974)와 재일조총련계로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저술한 변재수의 "조선문학사"(1985)는 자국문학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과 인식이 서로 달랐다. 이것은 무엇보다 분단체제로 인한 남북한의 문학사가 이질적으로 전개되는 현실에서 그들의 "조선문학사"는 남북문학사의 균열상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한문문학의 가치와 향가, 한글창제, 그리고 판소리의 독자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문학으로서 한글문학과 한문문학이 서로 상호작용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본어판 "조선문학사"의 저술의의는 민족주의적 시각하에 일반적으로 한국문학을 중국문학의 아류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가치를 재정립시키고, 일본인에게는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재일동포에게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정부는 급격하게 고령화 되어가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인복지를 확대해왔다. 그리고 일본의 노인 복지제도의 바탕을 이루고 있던 조치제도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개호보험이라는 사회보험적 형태의 노인복지 시스템으로 변화, 정착되었고 일본의 노인복지 시스템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개호보험이 가지는 주요 특징 중에 특별히 주목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호보험은 사회보험시스템으로서 의무적인 가입을 해야 하며 상당한 양의 보험금과 자기부담금을 부담해야한다. 둘째, 복지제도의 이용자는 소비자로 인식되며, 그들은 다양한 소비자로서의 초이스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복지서비스 제공자는 자유시장에서의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의 조치제도 하의 복지서비스 제공자들이 정부 주도의 시설과 단체들로서 그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였다면, 개호 보험에서의 서비스 제공자들은 훨씬 유화되고 간단해진 관리와 규제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개호보험의 특징은 재일조선, 한국인 조직들이 재일 고령자라는 소비자에게 일본 복지서비스에서는 찾기 힘든 한민족의 민족적 콘텐츠를 노인 복지 영역에 도입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데 있어 그 동력을 제공하였다. 즉, 한민족 콘텐츠를 복지 서비스의 판매에 유리한 조건(selling point)로서, 동시에 예상되는 복지이용에서의 민족적 불이익에 대한 대안으로 삼음으로써 일본의 노인복지서비스 영역을 다양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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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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