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영상 극작물인 방송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점을 통해서 콘텐츠 생산의 중핵인 방송드라마 극본과 영화의 시나리오의 특성을 알아보고 '갑'의 위치인 방송 드라마 작가와 '을'의 위치인 시나리오 작가의 위상과 현실의 권력구조를 비교 분석해 본다. 갈수록 심해지는 고비용 드라마 제작의 문제점과, 날로 어려워지는 시나리오 작가의 처우문제, 방송사와 영화계의 관행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의 총체적 문제와 균형적 성장을 고찰해본다. 그리고 비교 점으로 할리우드와의 집필 차이점을 통해서 개선방향을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나라 영상산업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행태를 모색해 본다.
감독은 영화의 예술적 질을 책임지는 지휘자이다. 할리우드에서 감독은 주어진 시나리오를 영상화하는 일종의 기술자로 간주되었다. 1950년대 후 일 누벨바그의 중심이 되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비평가들이 히치콕, 혹스, 포드 등 몇몇 할리우드 감독에 대해 재평가를 내리면서 감독의 위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알렉상드르 아스트뤽, 프랑수아 트뤼포, 앤드류 새리스 등을 거치며 확립된 감독-작가의 개념은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다. 작가로서 감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할리우드 감독들처럼 필모그래피 전체를 통해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보여주는 감독들이다. 또 하나는 시나리오에서부터, 촬영, 후반작업까지 영화 제작전반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각인시키는 감독들이다. 본고는 프랑스에서 통용되고 있는 영화 감독의 개념에 집중한다. 감독-작가의 개념이 탄생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감독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실제로 시용되고 있는 두 가지 종류의 감독계약서를 통해 감독이 영화 제작에 있어 갖는 권한에 대해 알아본다. 이는 감독-작가 그리고 감독-기술자로 요약되는 시나리오 집필한 감독이 맺은 저작권 양도 계약서와 감독의 연출행위에 대한 도급 계약서이다.
본 연재는 앞으로 2회에 걸쳐 '네덜란드의 건축정책(Architectural Policy)'과 '네덜란드의 건축센터(Architecture Centers)'의 역할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각각 중앙 정부와 지역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맺으며 네덜란드의 건축과 도시를 조율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건축 정책의 중요한 주체로서 작용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층위의 역할과 그 협력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 건축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네덜란드의 건축문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정부 주도로 수립된 건축정책을 통해 지난 20여 년 간 건축의 공공성을 표방하며 자국의 건축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네덜란드의 건축문화는 개별적인 작가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건축가(군), 건축기관, 정부 등 여러 주체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건축 정책을 통해 지속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건축정책을 수립하고 그 실행을 전문적 건축기관에 일임함으로써 전문가들이 분야의 전문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지향하고 건축실천의 방향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지역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설립, 운영되는 지역 건축센터들은 지역의 폭넓은 커뮤니티에의 접근성을 바탕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중앙의 건축정책의 방향성을 지역의 커뮤니티에 전달하고 지역의 이슈를 발굴하고 발전시킨다. 본 연재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개별적 주체들의 의식 성장으로 하향식 주도가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들며 관심과 동기가 다른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의와 협력이 불가피해지고 공공성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건축, 도시계획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공공성에 대한 이해의 재정립이 요구되는 현 시대에 네덜란드의 건축정책과 건축센터의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찾고자 한다.
이 논문은 일러스트레이션 전공교육을 위한 교과과정 개발이 주목적이다. 지난 30년 동안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유형도 매우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단체에서 수상을 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라진 환경과 시대에 필요한 교과과정의 연구와 이에 걸맞는 교수진의 전문성 화보가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언어인 일러스트레이션 교육의 핵심은 소통의 본질과 객관성 확보, 그리고 표현 방법론의 전문화이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 양성을 위한 기초조형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의 교육과정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양질의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의 배양을 위해서 독립된 장르의 위상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한 때이다. 아울러 이 졸고가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의 교육뿐만이 아니라 인접한 만화나 애니메이션 분야의 교육방법론으로도 접목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본고는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프랑코 정권이 들어선 후 1944년에 발표된 소설 "나다"를 한국의 인문학계에 소개하며 이 작품의 다양한 의미를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에 비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무명의 젊은 여성 카르멘 라포렛이 이 소설을 문학상에 투고하여 당선되자 사회 전체에 "나다" 붐이 일었다. 작가의 젊음도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이전까지의 스페인 소설 전통과 단절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새로운 관점과 내용을 독창적인 문체로 표현했고, 그럼으로써 사회 발전과 함께 정체되어 있던 문학사의 흐름에 혁신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7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스페인 현대소설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고전의 위상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그 의미의 다성성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는 특유의 모호성을 통해 서로 상반되는 복수의 해석을 허락하고, 또한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제공한다. 주인공의 성장을 그린 소설 혹은 반대로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의 좌절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며, 기괴한 개인들을 그린 고딕소설이면서 전후의 황폐화된 스페인을 묘사하는 사회비판소설이고, 가부장제의 이성애신화의 허구를 드러내면서 나아가 동성 간 연대 혹은 욕망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가치들을 추가적으로 포섭해 가는 텍스트의 넓은 다성성이야말로 "나다"를 진정한 의미의 고전이 되게 하는 속성이다.
일본의 대중 미술로서의 판화는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의 우키요에 판화부터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인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우키요에(浮世繪) 판화는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이후 새로운 인쇄 기술의 발달과 서구적 예술의 도입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였다. 그 이후 다이쇼시대(大正時代 1912~1926)가 되면서는 야마모토 카나에(山本 鼎)가 ${\ll}$명성${\gg}$지에 발표 했던 <어부(漁夫)>라는 작품을 계기로 한 창작 판화 운동이 일어났다. 창작 판화는 복제 우키요에 판화와는 달리 한 사람이 원화부터 인쇄까지를 스스로 제작하는 것으로, 작가가 주체가 되어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복제판화에 대해 반성하고 판화의 예술성을 인식하고자 한 이 운동을 시작으로 점차 많은 작가들이 판화 작품을 제작하였고 전시회를 통해 발표하였다. 사실 1900년대 전후만 해도 일본에서 판화는 서양화나 조각 등에 비해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부터 다수의 일본 판화가들이 국제 전람회에서 수상한 사실들은 국제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1957년에 첫 국제 미술제인 동경 국제 판화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점차 일본에서도 판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미술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의 판화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판화가 독립된 장르가 아닌 현대 미술의 표현 양식의 하나로 종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판화가들과 대학 교육 차원에서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위기를 뛰어넘고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전통적인 기법과 현대적인 표현 방식을 접목하여 새롭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판화가들이 등장하여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활약 했다.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해외 활동과 판화에 대한 연구, 신진 판화가들의 양성을 통하여 일본의 현대 판화는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일본의 현대 판화가 발생되었던 역사적인 과정을 되짚어보고, 국제적인 위상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최근에는 회화과 같은 미술 작품들을 디지털 형태로 재현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디지털 형태로 재현된 회화 작품들은 저장하거나 전송하기에 편리한 장점을 가진다. 반면에 알렉산터 칼더(Alexander Calder)가 창시한 모빌, 즉 움직이는 조각은 그 특성상 기존의 방법으로는 컴퓨터에서 재현하기가 까다롭다. 모빌은 바람과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각각의 조각이 움직이도록 제작되어 있으므로, 사진이나, 정지 영상과 같은 고정된 형태로는 작가의 제작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기에 미흡하다. 본 논문에서는 컴퓨터상에서 재현된 모빌을 사용자들이 사실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물리 기반의 가상 모빌 시스템을 제안한다. 실세계의 모빌을 3차원 모델로 구성한 후, 가상의 바람을 생성하여 그 모빌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였다. 모빌의 움직임을 운동학 방법들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기존의 제약조건을 가지는 동역학(Donstraint dynamics)방법과 충격역학(impulse dynamics)방법들을 모빌의 구조에 적합하도록 개선하여, 모빌의 움직임을 PC 환경에서 대화형으로 재현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제안하는 속도 향상 방법들을 모빌과 유사한 위상 구조를 가지는 3차원 모델에서도 적용 될 수 있다.
본고는 곽지균 감독의 <두 여자의 집>(1987)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우울과 죽음의 정서가 1980년대 후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제작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곽지균은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한국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기수라 할 만한 대표적 멜로드라마 작가이다.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는 이전까지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를 완전히 지배했던 신파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한국영화의 과잉된 감정으로부터 벗어난 세련된 멜로드라마를 지향한다. 이러한 감정적 정교함은 죽음을 통한 이별로 인해 생기는 영화 속 인물들의 상실감이나 우울과 직결된다. 곽지균의 <두 여자의 집>은 이러한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죽음 충동과 상실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의 내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본고는 <두 여자의 집>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곽지균의 영화세계와 뉴 센티멘털리즘의 영화사적 위상을 재고해 볼 것이다.
조선 후기 불화 조성 불사(佛事)는 화승(畫僧)과 승려(僧侶) 문중(門中)의 유기적 관계 속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불사에서 승려 문중은 사상을 담기 위하여 주제와 도상을 선택하였고, 화승과 화파는 이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기에 조선 후기 불화의 이해를 위해서는 작가인 화승 및 그의 양식적 특징뿐만 아니라 조성 당시 사찰의 상황, 불사의 참여자 등을 파악하여, 조성 배경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호남 및 인근 지역에서 부휴문중과 불사를 함께 진행했던 18세기 대표 화승 의겸(義謙)을 중심으로 한 의겸파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의겸파는 부휴문중의 종찰(宗刹)인 순천 송광사에서 1724년부터 1725년까지 2년간 진행된 불화 조성 불사에 참여하였다. 본 불사를 앞서 언급한 다각적 접근법을 통해 해석한 결과, 송광사 불화 조성 불사에 부휴문중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송광사 불화 조성 불사를 기점으로, 의겸파는 계속해서 호남, 호서, 영남 지역 등 부휴문중 영향권 내의 사찰과 그들이 주도한 불사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부휴문중 사상 시각화에 주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의겸은 부휴문중으로부터 '호선(毫仙)', '존숙(尊宿)', '대정경(大正經)' 등의 화승으로서는 이례적인 존칭까지 부여받았으며, 그의 화풍은 삼남(三南)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처럼 순천 송광사 불화 조성 불사는 부휴문중이 의겸파와 협업하여 문중의 사상을 시각화한 대표 사례이며, 의겸파에게 인맥적, 지역적 기반을 제공하여 의겸이 조선 후기 대표 화승의 위상에 오를 수 있도록 일조하였다. 의겸의 이와 같은 위상과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이후의 조선 후기 불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순천 송광사의 불화 조성 불사는 미술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용주사 <삼세불회도>는 유교적 이념과 불교적 이념, 궁중화원 양식과 산문화승 양식, 고유한 전통화법과 외래적 서양화법 같은 다양한 이원적 요소들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이룩된 기념비적 걸작으로서 조선 후기의 회화 발달과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의 하나이다. 그러나 화기(畫記)가 없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와 작가를 비정하고 양식 특징을 분석하는 문제를 놓고 연구자마다 견해 차이가 심해 지난 50여 년 간 논쟁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회화사적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는 모든 논의의 기본적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화기(畫記)가 없고, 작가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다르며, 화승들의 전통적인 불화 양식과 화원들의 혁신적인 서양화법이 혼재되어 있어 작가와 양식을 일치시켜 이해하는 문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는 특히 논란이 많은 쟁점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현존 <삼세불회도>는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수미단 중앙에 왕실(王室) 존위(尊位)의 축원문(祝願文)을 써놓아 주목되며, 애초에 썼던 "주상전하(主上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전하(世子邸下)"의 삼전(三殿) 축원문을 지우고 '자궁저하(慈宮邸下)'를 '왕비전하(王妃殿下)' 앞에 추가해서 고쳐 써넣어 더욱 주목된다. 따라서 이 축원문은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단서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새롭게 제시된 19세기 후반 제작설은 1790년의 용주사 창건 당시에는 순조(純祖)가 '원자(元子)' 신분이었고 1800년 1월 1일에야 '세자(世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세자(世子)'라는 존호가 쓰여있는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은 세자 책봉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하며, 형식과 도상이 19세기 후반기 화승들이 그린 청룡사나 봉은사의 <삼세불회도>와 유사하고 서양화법은 후대에 개채된 것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는 19세기 후반기의 화승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불화(佛畫) 화기(畫記)의 축원문을 광범위하게 조사해보면, 불화 제작 시점에 왕실에 실존한 인물의 신분(身分)과 생년(生年), 성씨(姓氏)까지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는 용주사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처럼 수십 년 전에 승하한 사람들을 생전의 존호(尊號)로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1790년 전후에는 원자(元子)나 세자(世子)의 유무(有無)와 무관하게 의례적으로 "주상전하(主上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삼전(三殿) 축원문을 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에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존호가 쓰여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왕실 위계와 달리 '자궁저하(慈宮邸下)'가 '왕비전하(王妃殿下)'보다 앞에 쓰여있는데, 이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극으로 인한 정조와 혜경궁(자궁(慈宮)), 왕비 세 사람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정조가 혜경궁의 왕실 위상을 왕비 앞에 오도록 하여 정조대에만 사용된 특별한 왕실 전례였기 때문에 현존하는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은 정조대에 개서(改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애초에는 당시의 일반적인 불화 축원문처럼 의례적인 삼전(三殿) 축원문을 썼다가 이를 지우고 다시 '자궁저하(慈宮邸下)'라는 특별한 존호를 넣어 개서(改書)하는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는 현륭원(顯隆園)의 재궁(齋宮현륭인 용주사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와 부인인 혜경궁(惠慶宮)(자궁(慈宮))임에도 불구하고 축원문에 의뢰적인 삼전(三殿)만 쓰여있고 혜경궁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정조가 지시하여 개서(改書)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개서(改書)는 정조가 현륭원과 용주사가 준공된 뒤 처음으로 현륭원에 원행(園幸)하여 원소(園所)를 두루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용주사에 들러 <삼세불회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견했던 1791년 1월 17일에 정조가 지시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어진다. 따라서 이와 같이 특수한 내용과 형태로 이루어진 축원문은 현존 <삼세불회도>가 1790년의 창건 당시에 그려진 원본 진작임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객관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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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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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사이트는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와 관련하여 회원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당 사이트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손해발생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합니다.
제 19 조 (관할 법원)
서비스 이용으로 발생한 분쟁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민사 소송법상의 관할 법원에 제기합니다.
[부 칙]
1. (시행일) 이 약관은 2016년 9월 5일부터 적용되며, 종전 약관은 본 약관으로 대체되며, 개정된 약관의 적용일 이전 가입자도 개정된 약관의 적용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