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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 안사국(安邪國) (A Study of Dohang-Ri wooden coffin and Anya-Kuk)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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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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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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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격과 성립시기(成立時期)에 대하여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는 상황이나 모두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헌자료의 기록과 고고자료상에서 서로 공통적으로 관련지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연(燕)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갖춘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성립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 뿐 만 아니라 중 남부지역에 이르기까지 큰 파장을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기문화(鐵器文化)의 도입단계에는 철기(鐵器)의 실용적이고 희소적인 가치에 의해서 매장유구(埋葬遺構)에는 쉽게 부장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기원전 2세기 전반경부터는 일부 한정된 철기(鐵器)만이 매장유구(埋葬遺構)에 부장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립시기는 철기의 도입과 보편적인 활용으로 보아야하며 목관(木棺)을 사용한 서북한지방(西北韓地方)의 토광묘문화(土壙墓文化)를 포함하여 중남부지역(中南部地域)에 있어서 목관(木棺)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 단계, 즉 기원전 3세기전반대의 어느 시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한편 함안(咸安) 도항리고분군(道項里古墳群)에서 확인된 목관묘(木棺墓)는 목관(木棺)의 형태에 있어서 판재조립식목관(板材組立式木棺)과 통나무목관(木棺)의 2종류가 확인되며, 판재목관(板材木棺)의 사용 비율이 3배 이상 높은 편이다. 출토유물(出土遺物)은 비교적 단순한 조합상(組合相)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영남지역(嶺南地域)을 중심으로 한 목관묘유적(木棺墓遺蹟)에서도 모두 확인되고 있는 특징이므로 전반적으로 변(弁) 진한사회(辰韓社會)의 매장문화는 동일한 흐름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나무로 제작한 목관(木棺)은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므로 한국식동검문화(韓國式銅劍文化)와 함께 목관(木棺)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되며,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과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만 이러한 목관(木棺)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는 것은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양지역간(兩地域間)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피는데 있어서 주목되어야 한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 출토되고 있는 철기류((鐵器類)도 거의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그것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항리(道項里) 67호묘(號墓) 출토 주조철부(鑄造鐵斧)는 다호리 1호분에서 출토된 주조철부(鑄造鐵斧)와 같은 지금(地金)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소형철부(小形鐵斧)의 구성비율이 다른 철기류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것과 기경구(起耕具)로 이용되는 철제따비의 출토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단계에는 목제농기구(木製農器具)의 제작과 사용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 비해 절대적으로 빈약한 철기유물은 안사국(安邪國)의 내적(內的)인 한계(限界)를 보여주는 것이며 소국(小國) 수장(首長)의 신분적(身分的)인 상징(象徵)으로서 사용하였던 동경(銅鏡)과 의기류(儀器類)의 출토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를 조영한 집단(集團)은 당시 대외문화교류(對外文化交流)의 중심적인 선진지역(先進地域)에 비해서 사회문화적(社會文化的)인 변동(變動)이 덜한 주변 지역적인 성향이 강한 집단(集團)일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후 2세기 후반경 영남지역의 목관묘(木棺墓)는 목곽묘단계(木槨墓段階)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서도 목관묘(木棺墓)는 2세기대를 종점(終點)으로 사라진다. 고고자료상으로도 3세기에서 4세기대에 해당되는 적극적인 유구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3세기 전반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일어났던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과 관련지어 합리적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즉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양집단(兩集團)은 낙동강(洛東江)과 남강수계(南江水系)를 장악한 교역(交易)의 중심지(中心地)로서 서로 경제적(經濟的) 정치적(政治的)인 공조체제(共助體制)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에 보이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대상국은 가나(加羅)와 아라국(砑羅國)이며, 가나(加羅)는 다호리집단(茶戶里集團)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시기도 기원 3세기 전반대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3세기 전반대 이후의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4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양지역(兩地域)에서 뚜렷한 목곽묘(木槨墓)의 축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두 집단(集團)이 전쟁(戰爭)의 피해를 직접 받은 당사자였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韓國) 고대(古代) 궁원지(宮苑池)의 전개양상(展開樣相)과 사상적(思想的) 배경(背景)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aspect of development and the ideological backgrounds of a pond a place of Korea)

  • 오승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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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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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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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지금까지 한국 고대 궁원지에 대한 연구는 조경학의 분야에서 주로 다루어 왔으나 고고학적 발굴을 직접 담당하는 연구자들에 의해서는 단편적인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었을 뿐 전반적이거나 종합적인 연구는 미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궁원지의 분류작업을 통해 한국 고대 궁원지의 계통관계를 파악하고, 궁원지 조영의 사상적 배경을 밝히고자 시도하였다. 한국의 고대 궁원지는 평면형태에 따라 방지계(I)와 곡지계(II)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방지계(I)는 다시 섬 가산 정원석의 존재 여부에 따라 IA식과 IB식으로 세분되었다. 그리고 곡지계(II)는 호안이 곡선만으로 구성된 IIC식과 호안에 곡선과 직선이 함께 사용된 IID식으로 구분되었다. 또 규모에 따라서 최대직경 45m 이상의 대형(a)과 20m 미만의 소형(b)으로 구분되므로 결국 한국 고대 궁원지는 IAa IAb IBa IICa IICb IIDa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궁원지가 처음 확인되는 초창기부터 방지계와 곡지계는 공존하고 있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궁원지의 계승 및 변화의 양상이 나타난다. 즉, 통일신라에서는 평면형태가 직선+곡선으로 이루어진 궁원지를 주로 받아 들이는 반면, 발해에서는 고구려계의 방형플랜을 가진 궁원지를 계승하는 점은 앞 시기로부터의 연속성이 엿보인다. 한편, 평면형태의 계승관계와 달리 구성요소 면에서는 삼국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섬상부의 정자터, 원지내 교각시설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양상은 이웃한 일본에서도 동시에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 7세기 후반~8세기 전반에 한 중 일 궁원지 조성에 새로운 변화의 동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궁원지 조영의 사상적 배경은 신선사상과 불교로 대별된다. 한국과 중국의 궁원지에 관한 기록이 모두 신선사상의 용어가 사용되는 점이나 한국 궁원지에서 섬 가산 정원석과 같은 구체적인 표현기재가 나타나고 있는 점, 그것이 제외된 궁원지와 뚜렷히 구분된다는 점등을 고려하면, 섬 가산 정원석이 사용된 궁원지는 신선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섬 가산 정원석이 제외된 궁원지는 동시기 신선사상이 반영된 곡지계 궁원지와 형식상 명확히 구분되고 있는 점과 동시기 사원지와 형태 구조상 동일하다는 점에서 불교저 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다.

현장실증시험에 의한 단일 및 이중필터층 우물의 해수 여과 특성 연구 (A Study on the Seawater Filtration Characteristics of Single and Dual-filter Layer Well by Field Test)

  • 송재용;이상무;강병천;이근춘;정교철
    • 지질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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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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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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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내에서는 바닷가 주변의 상가나 수협 등의 활어 위판장 등에 많은 양의 해수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해수는 기상악화나 태풍 등에 의해 관련시설이 수시로 파손되고 조기 폐색되어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오염된 해수가 그대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아 환경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본 연구는 직접적인 해수취수의 대안으로 이중필터취수정을 적용한 해변여과 방식의 해수취수 적용성을 평가하고자 수행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토층으로 이루어진 해변의 자유면대수층에서 필터조건을 달리하여 실규모의 이중필터취수정과 단일필터취수정을 각각 설치하고 설치된 우물에서 단계 및 연속대수성시험을 실시하여 필터재 조건에 따른 투수특성 및 적정양수량을 평가하였다. 단계대수성시험 분석결과 이중필터 취수정에서 우물 개량의 정도가 양호하여 단일필터 대비 110.3%의 투수계수 상승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동일 양수량 대비 이중필터의 투수계수가 높게 나타나며, 이는 이중필터가 단일필터에 비해 투수성이 개선된 영향으로 판단된다. 연속대수성시험 분석결과 관측정 및 양수정을 이용한 투수계수 분석에서 이중필터취수정(SD1200)이 단일필터취수정(SS800)에 비해 높은 투수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이중필터가 단일필터 대비 평균 110.7%의 투수계수 상승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수위강하량 분석을 통한 양수량 평가결과, 수위강하 2.0 m일 때 이중필터 취수정이 단일필터 취수정 대비 122.8% 양수량이 증대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비수위강하량을 이용하여 적정양수량을 산정한 결과 이중필터취수정이 단일필터취수정에 비해 136.0% 높은 양수량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변곡점을 이용한 양수량 평가결과 이중필터가 단일필터에 비해 160.0% 높은 적정양수량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적정양수량의 경우 분석방법에 따라 단일필터 대비 122.8~160.0%의 개선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이를 평균한 단일필터 대비 이중필터의 양수량 개선율은 139.6%이다. 즉, 이중필터 설치만으로 일반적인 우물 대비 취수효율이 40% 정도 개선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변곡점을 이용한 이중필터취수정의 적정양수량은 2843.3 L/min로써 이중필터취수정 단일공의 일 해수취수량은 약 $4,100m^3/day$ (${\fallingdotseq}4094.3m^3/day$)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와 같이 공당 다량의 취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해수취수의 적용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중필터취수정을 이용하여 해수취수를 수행하는 경우 기존에 문제시되었던 기상악화나 태풍 등에 의한 파손우려를 해소할 수 있으며, 해변의 모래층이 필터재 역할을 하여 오염정도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기존 해수취수기술에 대한 환경적인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고, 설치비용 및 파손등과 관련된 장기적인 유지관리비용 면에서도 유리하여 경제적 측면에서 그 적용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의 결과는 추후 수행예정인 이중필터취수정의 강변여과수 적용을 위한 현장실증시험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며, 그 결과를 종합하여 강변여과 및 해변여과기술과 관련된 우물의 설계 및 시공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식품섭취량을 활용한 우리나라 식이 패턴 분석 - 김치류 및 주류 중심으로 (Analysis of Korean Dietary Patterns using Food Intake Data - Focusing on Kimchi and Alcoholic Beverages)

  • 김수환;최장덕;김신희;이준구;권유진;신춘식;신민수;천소영;강길진
    •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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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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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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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에서는 식품섭취량 데이터를 활용하여, 한국인의 식습관을 분석하고 관리방향을 제안하였다. 국민건강영양조사의 원시자료를 활용하고, 국내 대표적 식품 분류체계인 식품공전을 반영해서 품목수 839개(세부품목수 1,419개)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일일 총 식품섭취량은 1,585.77 g/day이고, 그 중 원재료식품은 858.96 g/day(54.2%), 가공식품은 726.81 g/day(45.8%)로 산출되었다. 식품군별 식품섭취량은, 곡류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식품섭취량 상위15위 식품군 중 90% 이상의 대상자가 섭취하는 목록으로는 곡류(99.06%), 근채류(95.80%)로 나타났다. 품목별 분석에 의하면 주요 다소비(일일식품섭취량 1%이상 섭취, 158.6 g/day) 및 다빈도(일일평균 국민 25% 이상 섭취, 5,168명)품목은 쌀, 배추김치, 사과, 무, 달걀, 고추, 양파, 밀, 두부, 감자, 오이, 돼지고기로 산출되었다. 섭취빈도 중심의 상위순위 목록은 주로 한식양념 재료들이 포함되었다. 김치류는 배추김치(64.89 g/day)의 섭취량 비율이 6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주류의 경우 섭취량 및 섭취빈도 모두 상위 5위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세부적인 섭취량은 맥주(63.53 g/day), 소주(39.11 g/day), 막걸리(19.70 g/day) 순으로 높았고, 섭취빈도는 소주(11.3%), 맥주(7.2%), 청주(6.6%)순으로 높게 산출되었다. 2010년부터 2015년도 식품섭취량 추이에서 곡류는 꾸준하게 감소하고, 음료류는 다소 증가하는 추세였다. 주류의 섭취빈도에서는 일부 종류인 막걸리, 와인, 청주, 복분자주에서 년도별로 감소하는 경향이었고, 김치류도 감소하는 추세였다. 식품 섭취패턴은 체내노출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으며, 식품섭취량이 높은 식품과 섭취빈도가 높은 식품 모두 관리가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섭취 특성을 고려하여 국내에 적합한 안전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식품 섭취로 인한 유해오염물질의 노출량 관리를 위해서 다소비 식품은 섭취용량과 관련이 높으므로 식품의 오염도 관리 중심으로 다빈도 식품은 섭취기간과 관련이 높으므로 섭취시 장기노출로 인한 체내축적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권장한다.

정릉(貞陵) 이장과 광통교(廣通橋) 개수를 통해 본 조선 초기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립 (Collision of New and Old Control Ideologies, Witnessed through the Moving of Jeong-regun (Tomb of Queen Sindeok) and Repair of Gwangtong-gyo)

  • 남호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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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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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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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정릉(신덕왕후릉)의 축조와 이장에 얽힌 논란은 조선 초기, 신구(新舊)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태조의 경처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은 도성 안에 조성되지만 태조 사후, 태종에 의해 도성 밖으로 이장되고 그곳에 남아 있던 석물들은 청계천의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쓰인다. 야사에서는 태종이 강씨를 저주하기 위해 도성 밖으로 능을 옮기고 남은 석물들로 광통교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고 전한다. 태조 말년, 강씨와 태종은 대립하던 관계였으나 태조가 왕으로 옹립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정릉이나 광통교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은 더 담백하다. 정릉의 천장은 능묘가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정부의 상언을 따른 것이다. 광통교 개수를 위해 정릉을 격하하고 이장시켰다는 주장에는 사실 관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논자는 광통교 개수에 정릉의 석물이 재사용된 것에 대해 당시 도성 안팎에서 건축자재소요량이 급증하여 효율적인 조달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도성 바깥으로 이장된 원인은 태조와 태종이 가졌던 사상적 배경의 이질성에서 찾았다. 태조는 유교국가의 통치자였으나 죽은 왕비를 위해 도성 내에 원찰과 무덤을 조성한다. 여기에는 불교의 힘을 빌려 죽은 신덕왕후의 권위를 위의하고 지지세력을 규합하고자 한 노림수가 있었다. 원의 다루가치 집안에서 태어나 지방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는 높은 유학적 소양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호불적 성향을 띄는 구체제의 인물이었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고려 말 과거시험에 급제했던 엘리트 유생이었으며 주자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유교국가에서 도성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율령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시스템이 정립된 이래로 도성 바깥에 무덤을 만드는 경외매장의 원칙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져 왔다. 정릉은 태조 개인의 강한 의지로 도성 내부에 조성되지만 왕 이전에 유학자였던 태종에게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태종은 즉위 후, 주도적으로 도성 재정비를 추진하는데 이는 '예치'를 강조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한양도성의 경관에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한 의지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정릉의 이장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진행되었던 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실과 개선에 대한 연구 (Les problèmes et les solutions de thèâtre musical corèen)

  • 김균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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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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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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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현재 국내에는 크게 세 종류의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대본이나 음악을 순수하게 창작하여 공연하는 창작 뮤지컬, 외국 작품이 그대로 수입되어 공연되는 오리지널 뮤지컬 그리고 외국의 공연을 국내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무대화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모두 중요한 공연이고 필요한 공연일 것이다. 그러나 특히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다소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들의 경우, 그 공연을 국내에서 제작함에 있어 국내의 작품성이나 아이덴티티는 완전히 무시되고 원작을 있는 그대로 복사할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완전히 서로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외국의 공연을 시청각적인 모든 면에서, 연기와 행동의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재생산을 요구하는 것은 그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사회에서 보다 강력하게 흡수되고 예술적인 영향력을 강하게 끼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문화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주의 깊게 관찰되고 경계되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공연들로 인하여 국내의 문화적인 지형이 파괴되거나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적인 정체성을 보다 확고히 확립하고 문화에 근거를 둔 예술교육을 진행함과 동시에 문화적인 작품들의 제작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가(儒家)의 전인적(全人的) 지도자상(指導者像) 고찰(考察) (A Study on the Ideal Leadership whole person of Confucian philosophy)

  • 김경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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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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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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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고는 개인의 덕성(德性)과 사회적 덕행(德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 제시되어 있는 유가(儒家) 경전(經典)을 토대로 군자(君子)다운 지도자상은 어떠한 것인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인간다움을 참다운 것으로 삼고, 인간관계의 사회성을 제대로 실천하는 유덕자(有德者)의 가치관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 군자상의 진면목은 조화의 균형 감각이 있고 자기 수양에 엄격하며 인간관계의 상생적 가치를 창출하는 등 진선미가 삼위일체로 융합되는 '성기성물(成己成物)'의 참된 인물상(人物像)이라는 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성인(聖人), 현인(賢人), 대인(大人), 군자(君子) 등은 인간세상을 이끌어가는 사회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사회풍토를 아름답게 교화하고 정신과 물질(物質)의 조화(調和) 인격(人格)과 능력(能力) 경제(經濟)와 도덕(道德)을 겸비한 인물로 지목(指目)하고 있다. 현대 사회인들은 순수한 지성(知性)문화의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의 선호도(選好度)에 따라 개인적인 성장(成長)을 꾀하고,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외형적인 무한경쟁(無限競爭)에 편중되어 있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자신의 개성을 연출하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외모(外貌)에 집착(執着)하여 지나친 다이어트로 건강미를 상실하고, 그로 인(因)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외모 집착과 외모중시의 병적인 폐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克復)하기 위해 절실하게 요청되는 대안으로 내적 소양과 외적 전문성을 고루 겸비한 온전한 인격체, 즉 이른바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한 진선미(眞善美)의 융합적 지도자상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유교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道)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수기는 개인적으로는 덕성적 능력을 계발하여 도덕적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며, 치인은 사회적으로는 함께 일하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갖도록 소통(疏通)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leader 또는 지도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감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수기치인은 '스스로의 덕성을 가다듬어 다른 사람들을 이끈다.'는 의미이다. 참다운 지도자는 수기(修己)를 통해 자기성찰과 자기정립을 한 다음에 치인(治人) 또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안인(安人)의 경지에 서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값어치가 있고 나름대로의 德이 있듯이. 인간 역시 인격과 덕성(德性)을 갖추고자, 배우고 익혀 자신만의 전문성 신뢰성 그리고 인격과 능력을 겸비하여, 자신만의 브랜드(Brand)가치를 창출해 내고자 한다. 개인의 인격(人格)은 높은 지위나 재력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격이란 개인의 덕성으로서 자기수양을 통하여 마음에 조금도 티가 없는 상쾌함으로,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맑고 깨끗한 '소쇄(瀟灑)'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天性으로 품부 받은 덕성인 지(知) 인(仁) 용(勇)을 겸비한 지극히 인간다움의 인격(人格)을 지닌 지도자상으로 군자상(君子像)을 제시한다. 자아개발은 self leader, 즉 수기(修己)를 통하여 덕성수양과 자아경영의 힘을 기르게 된다. 관계영역의 leader(治人)는 자신(自身)의 덕성(德性)을 덕행(德行)으로 미루어 가는 즉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확대(擴大) 시킬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리더십을 "대학(大學)"에서는 "혈구지도(?矩之道)"라고 한다. 논자의 견해는, 인격미(人格美)는 지(知) 인(仁) 용(勇)'으로 덕성(德性)의 씨앗을 일구고 상생미(相生美)는 '서(恕)'로써 타인(他人)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덕행의 마땅한 올바름을 구현하며 조화미(調和美)는 '혈구지도(?矩之道)'로써 남을 나처럼 아끼고 사랑하여 나와 같은 마음 즉 보편적 원리인 덕화(德和)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처럼, 지도자상의 자질은 자신의 소양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총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룰 때 지도자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무한히 발휘하며, 많은 사람들과 공생(共生) 공존(共存)하며 서로 승승적(乘勝的)관계로 거듭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한대(漢代) 이전에 형성된 천체력(天體曆) 기년(紀年) 원리 고찰의 필요성에 대한 소론(小論) (Discussion on the Necessity of the Study on the Principle of 'How to Mark an Era in Almanac Method of Tiāntǐlì(天體曆)' Formed until Han dynasty)

  • 서정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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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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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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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10천간 12지지를 합성한 60개의 서수부호(序數符號)로 각각의 연월일시를 표현하였던 간지(干支) 책력(冊曆)에서의 그 기호는, 동양의 전통 의학(醫學) 분야에서 발병과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표식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술수(術數) 분야에서의 길흉화복(吉凶禍福) 예단 지표로도 사용되었다. 이 간지력(干支曆) 부호를 기준으로 삼은 많은 술수 이론들이 한대(漢代) 이전까지 상당부분 갖추어졌던 것에 반해, '그것이 그렇게 된' 근원적 원리에 대한 이후의 책력학적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성(歲星)(목성)이 황도대의 12개 '자리[차(次)]' 중에서 어느 곳에 있는 것인지로 그 한 해의 연명(年名)이 정해지는 천체력 기년 방식에는, 크게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 태세기년법(太歲紀年法)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 등이 있다. 태세기년법과 명칭만 다를 뿐 실제로는 동일한 기년법이라 할 수 있는 간지기년법에서는 다시 세 가지 이상의 방식이 존재하며, 그 중 하나가 한대(漢代) 이래로 현재까지 중국과 우리나라 등지에서 끊김 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올해의 간지 연명이 무술(戊戌)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본 논의에서 필자는, 연월일시의 간지 부호를 가지고 고유 이론들을 구성하는 각종 전통 술수 분야에서 이에 대한 자각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하였다. 만 12년에 조금 못 미치는 목성의 1주천(周天) 주기 때문에, 천여 년에 한 번씩 약 85년 동안만 '황도대에서의 세성(歲星) 위차(位次)'와 '12지지(地支) 부호(符號)의 연명(年名)'이 서로 부합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최근의 수십 년이 그 시기가 됨을 확인하였다. 아울러서 28수(宿)를 바라보는 적절한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논하였다. 간지 책력이 각종 술수는 물론 전통 의술의 이론적 기반과도 결부된 것이니 만큼, 고대(古代) 천체력(天體曆)의 근원적 이론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동양 전통 학문과 문화의 계승 발전 차원에서도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조선 후기 종부사(宗簿寺) 낭청(郎廳)의 실태 및 운영체계 - 장서각 소장 『종부사낭청선생안(宗簿寺郎廳先生案)』을 중심으로 - (The Characteristics and Operation System of the Staff Officials at Jongbusi (Court of the Royal Clan) in the Late Joseon Period - Based on Jongbusi nangcheong seonsaengan (Register of Staff Officials at the Court of the Royal Clan) Kept at Jangseogak Archives)

  • 김동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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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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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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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종부시의 관원, 그 중에서도 실무를 담당했던 정 이하의 관원에 대한 실태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종부시는 왕실 보첩을 편찬하고 친진 범위 내의 종친들을 규찰하던 정3품 당하 관서이다. 조선 후기 종부시의 낭청으로는 정3품 당하관 정, 종6품 주부, 종7품 직장이 있었다. 이러한 체제는 조선 시대 내내 유지되다가 1864년(고종 1) 종친부에 합속 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유일본인 "종부시낭청선생안"은 1794년(정조 18)부터 종친부에 합속 될 때까지 낭청에 대한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관직, 성명, 자, 생년, 본관, 전직, 이직 등의 기록들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종부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들의 출신 성분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문과 출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직장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소과 출신자들이었는데, 관직을 제수 받을 때에는 문음의 자격으로 임명되었다. 이들의 전직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해당 관직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낮은 품계에서 차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부의 전직 관서로는 청요직 관서에서의 차출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각종 행정아문에서의 차출도 많았다. 직장의 경우 1품아문인 의금부의 도사가 가장 많이 차출되었는데, 이러한 낮은 관서로의 차출은 관직 고하를 떠나 실직을 제수한 것으로 보인다. 종부시 관원의 이직을 살펴보면, 종부시 정은 낮은 직급으로의 이직을 많이 하였는데, 정3품 당상관의 자리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주로 청요직 관서로 이직한 것으로 보아 정3품 당하관의 청요직 관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외관으로의 이직도 많았는데 인사 적체 현상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이해된다. 주부와 직장은 대체적으로 승진을 하거나 유사한 관품의 직급으로 이직을 하였다. 특히 종7품인 직장은 절대 다수가 승육을 하였다. 종부시 관원을 가장 많이 역임한 가문은 전주 이씨로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종부시 관원을 역임한 성관은 조선 후기 문과 급제자의 출신 성관과 대부분 겹치는데, 문과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성관에서 종부시 관원을 많이 배출해 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상위 20개 가문의 역임 횟수가 전체 50% 정도에 이르는데 특정 가문의 관직 독점 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종부시낭청선생안"의 기록에 나와 있는 승진, 승육, 가자 등의 사유를 살펴보면 90% 가까이 선원보략 수정 후의 일로 나와 있다. 종부시의 두 가지 직능 가운데 종친 규찰 업무가 조선 후기에 상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대기 자료에서도 조선 후기 종친 규찰 업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17세기 인조 대부터 종친의 수가 급감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종친의 수가 왕실 의례를 거행하는데 미치지 못할 만큼 줄어들게 되자, 종부시에서의 종친 규찰 업무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왕실보첩 편찬 업무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이렇듯 종친의 위상이 격하되자, 흥선대원군은 종친의 위상 강화 및 왕실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종친부와 종부시를 통합하게 되었다.

사료용 벼 주요 품종의 수확부위 별 사료가치 (Feed Value of the Different Plant Parts of Main Forage Rice Varieties)

  • 안억근;원용재;강경호;박향미;정국현;현웅조;이윤승
    • 한국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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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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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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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사료용 벼 주요품종의 최적수확 시기인 출수 후 30일에 수확한 부위 별 사료성분을 분석 후 사료가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수요자 용도에 맞는 사료 제조에 활용하고자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수원 벼 시험 포장에서 숙기별 대표 사료용 벼 4품종으로 시험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조단백질, 조회분 등 6개 사료성분 함량은 수확 부위별로 차이가 뚜렷하였다. 식물체 부위 중 이삭은 조단백질(6.97%), 리그닌(3.11%)은 유의하게 가장 높았던 반면 조회분, NDF 함량이 유의하게 낮아서 결과적으로 TDN 함량이 77.29%로 줄기(64.82%), 엽신+엽초(63.57%)보다 사료가치가 월등히 우수하였다(p<0.05). 반면 조지방 함량은 부위별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p<0.05). 이삭에서 품종별 TDN 함량은 '조농', '녹양', '영우'의 경우 78.48~79.07%로 품종 간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목우'의 경우 조단백질 함량이 8.70%로 타 품종의 6.24~6.64%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p<0.05). 이러한 사료성분 함량 분석은 육용우, 돼지, 닭 등의 영양가와 사료 설계 시 유용하게 활용 될 수 있다. 2. 줄기와 잎의 사료가치가 우수한 품종은 '목우'였다. '목우'의 경우 TDN 함량은 이삭에서 72.95%로 다소 낮았으나 줄기, 엽신+엽초에서는 각각 75.37%, 66.49%로 타품종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며 조회분, NDF, ADF, 리그닌의 함량도 타 품종에 비해 매우 낮아 줄기와 잎의 사료가치가 우수하였다. '목우'의 총건물중은 주당 123 g으로 타 품종의 82~105 g/주 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부위별 1주 건물중 분포는 엽신+엽초(56.9 g)>줄기(36.8 g)>이삭(29.3 g)으로 이삭을 제외한 경엽 부위가 타 품종의 43~57%보다 월등히 많아(조고비율: 76%) 농가에서 조사료로 볏짚 이용 시 수량이나 사료가치 면에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3. 부위별로 상대적사료가치(RFV)는 86.79~403.74까지의 범위를 보이고 있으며 RFV가 100이상인 3등급 이상의 건초는 줄기와 잎 모두에서 출수가 늦어질수록 증가하였고 이는 등숙이 진행됨에 따라 알곡으로의 전분질 축적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고 이는 '조농'과 '녹양' 이삭의 RFV가 출수가 빨라질수록 높아진 사실이 뒷받침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