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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D와 FT-IR을 이용한 백제시대 옛사람 뼈의 화장(火葬) 온도 추정 - 서울 석촌동 고분군 1호 매장의례부 출토 옛사람 뼈를 중심으로 - (Estimation of cremation temperature on Baekje human bones from Seoul Seokchon-dong Ancient Tomb No.1 using XRD and FT-IR analysis)

  • 유지아;박세린;신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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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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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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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화장(火葬) 뼈를 연구하는 것은 당시의 화장 의례와 장례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화장 뼈에 대한 연구가 주로 고고학적 맥락을 확인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피장자의 생물학적 정보와 화장 온도 추정 등을 위한 체질인류학적 연구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화장 뼈에 분광학적 분석 방법을 적용하여 피장자들이 화장되었는지 여부와 화장 온도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한성백제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한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는 대규모 연접식 적석총이 발견되었고, 이 중 매장의례부에서 백제시대 옛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화장 뼈가 발견된 유구 내에서 불의 흔적은 없었고 외부에서 화장 후 유물과 함께 퇴적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 중 뼈의 표면 색상에 따라 4점을 선별하여 X-선 회절 분석(XRD)과 적외선 분광 분석(FT-IR)을 수행하였다. 분석 결과 석촌동 화장 뼈 4점은 모두 화장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XRD를 이용한 결정화지수를 통해 700℃ 이상의 온도에서 화장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FT-IR 분석 결과 역시 석촌동 화장 뼈 4점 모두 700℃ 이상 1,000℃ 이하의 온도에서 화장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700℃에서 생성되는 적외선 흡수 피크가 관찰되었고 뼈가 1,000℃ 이상을 경험하였을 때 생성되는 변화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렇게 고온으로 화장하는 것은 큰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석촌동 고분군 피장자 집단이 백제시대에 매우 중요한 위치였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국내 유적에는 처음으로 XRD와 FT-IR 분석을 적용하여 화장 여부와 화장 온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당시 화장 의례 등 장례 문화 복원에도 핵심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근대 '격물치지학(格物致知學)[science]'에 대한 유학적 성찰 (Neo-Confucian Study of Modern 'Science of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格物致知學])

  • 박정심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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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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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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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근대 science를 '격물치지학'으로 번역한 것은 객관사물[만물(萬物)]에 내재한 보편적 천리[리일(理一)]를 과학적 자연법칙으로 국한시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적 문명국이 신학의 효력 때문이라고 판단한다면, 신학(新學)을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근대적 문명에 이르는 지름길일 수밖에 없었다. 신학의 정수(精髓)였던 격물치지학[science]은 전근대적인 유학의 도덕(道德)문명에서 서구적 근대문명[civilization]으로 '보편문명의 전이(轉移)'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서구근대적 문명인식과 과학적 사유방식은 인간 역시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기게 하였다. 몸에 관한 과학적 탐구는 해부학에서 생리학 및 인종학 등으로 발전하였다. 인간에 관한 과학적 탐구는 사회다윈주의 수용과 맞물려 더욱 공고화되었다. 사회다윈주의적 현실인식은 그들처럼 되는 것[문명화]만이 가장 시의적절한 선택인 것처럼 오도(誤導)하였으며, 더 나아가 강자의 침략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였다. 그러나 과학적 보편주의는 곧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침략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폭력적 야만이었다. 격물치지학의 근대적 폭력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했던 사유가 바로 유학이었다. 당시 서구적 문명과 삶이 곧 진보요 발전이 되면서 유학은 전근대적 삶의 양식으로서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문명성과 폭력성을 동시에 지닌 야누스적 타자에 대한 주체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이념으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이항로가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서양의 과학기술을 양화론(洋禍論)으로 규정하였다면, 박은식은 과학기술이 군국주의의 도구로 전락했던 측면을 비판하였다. 그동안 우리는 서구적 근대성을 전범으로 삼아 전통철학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치중하였다. 한국 근대를 서구문명에 대한 모방과 번역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은 식민주의를 재생산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근대 유럽중심주의의 폐해를 넘어서 한국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유학적 자산은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무성무물(無誠無物)'은 과학기술이 삶을 도리어 황폐화시키는 기술만능주의시대에 문명다움 즉 이시대의 바람직한 인간다움과 기술다움을 성찰할 수 있는 도덕성의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바른 몸-사람다움[성신(誠身)]'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이 마주하고 선 '참된 자연'에 대한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성(誠)] 때문이다. 삶의 맥락에서의 바른 몸은 성(誠)하고자 함[성지(誠之)]을 통해 시중(時中)을 실현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비로소 물(物)과도 바른 관계맺음이 가능할 것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교육관 탐구 - 성리학적 본질의 심화 - (Quest for Yeoheon Jang Hyeon-gwang's View on Education - Deepening of the intrinsic nature in accordance with the Neo-Confucianistic thought)

  • 신창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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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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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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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여헌 장현광은 조선시대 여타의 유학자에 비해 철저하게 성리학의 본질을 충실하게 탐구하고, 심도 있게 학설을 확장시킨 학자이다. 여헌은 성리학적 교육의 기본 체계인 "대학"과 "중용"에 의거하여 자신의 학설을 강화한다. 이러한 사유의 전개에 근거하여 여헌의 교육사상은 세 측면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여헌은 교육의 기준으로서 성인군주론(聖人君主論)을 심화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존천리알인욕(存天理?人欲)을 추구하며, 도덕적 각성과 덕치주의를 강조한다. 둘째, 여헌은 교육의 양식으로서 성경(誠敬)의 공부론을 강조한다. 여헌은 마음에 성(誠)과 경(敬)을 세울 것을 강조하고, 두 가지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한다. 셋째, 여헌은 교육의 방법으로서 분합(分合)의 조화를 주창한다. 여헌은 그의 독특한 리기경위설(理氣經緯說)을 통해, 역(易)의 논리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지나치지 않는 중용의 관점을 유지한다. 이러한 여헌의 교육적 사유는 현대 교육적 의미에서 볼 때, 교육의 표준을 도덕의 확립에 두고, 교육의 양식과 방법에서 중용적 통찰을 고려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요컨대, 여헌의 교육사상은 일관성을 지닌 전통 성리학의 교육적 지혜를 담고 있는데, 현대 교육의 기준 혼란, 내용의 비체계화, 방법적 치우침에 대한 균형 감각의 중요성을 재검토하는 데 주요한 시사점을 준다.

연천 홍석주의 예술론(藝術論)에 대한 일고찰 - 정약용(丁若鏞)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 (A study about art theory of Yeoncheon Hong Seok-joo - Focused on difference with Jeong Yak-yong丁若鏞)

  • 윤종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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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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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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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연천 홍석주(淵泉 洪奭周: 1774-1842)는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에 충실한 수행자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1794년 이래 초계문신으로 정조를 가까이 대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조 사후(1800) 이래 비교적 순탄한 사환기(仕宦期, 1795-1836)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관을 정립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홍석주는 성리학적 문학론의 핵심개념인 '도본문말(道本文末)' 사상에 바탕을 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이론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문(文)과 시(詩)의 기능을 명교(明敎)와 감인(感人)으로 구분한다. 문의 방면으로는 교훈적 대사회적인 기능을, 시의 방면에서는 성정과 천기를 중시하는 감성적 이해에 주목하였다. 홍석주는 세교설(世敎說)에 입각하여 도덕적 감발과 그를 통한 사회적 교화를 예술 창작의 핵심에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작품의 중요 요소로 언급되고 있는 '흥관군원(興觀群怨)'이나 '여항구요(閭巷謳謠)'와 같은 표현은 예술행위에 있어서의 객관적 대상의 실재를 중시하고 그 실상과 부합되는 묘사를 요구하는 태도에 연결되는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마치 회화에 있어서 그가 풍속화적(風俗畵的)인 특성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미망으로도 추정된다. 반면 정약용은 성리학적 문이재도론의 입장에서 주희의 '시경론'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시경"의 시편과 일반시의 정치사회적 기능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주희의 시에 관한 담론을 자신의 견해에 의하여 재해석한다. 작자(作者)가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행한 것이 국풍의 시라는 것이다. 정약용의 국풍론은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사대부 계층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는 정약용의 사상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禮)의 본질(本質)과 일상성(日常性) - 율곡(栗谷) 예교(禮敎)의 실학적(實學的) 성격(性格)과 일상성(日常性)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essence of Ye and its usualness - With focus on Shirak's feature of Yulkok's Yegyo)

  • 이행훈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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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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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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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유학 특히 주자 성리학의 예(禮)는 절대적 보편적 이치로서 천이(天理)와 상대적 관계적 규범 형식으로서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으로 개념 규정된다. 예의 본질은 이렇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되는데, 절대성과 상대성이 중층적으로 혼합되어 있지만 단순한 양가성(兩價性)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예가 발현되는 과정에는 천리(天理)와 인성(人性)이라는 본질 외에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이라는 일상성(日常性)이 매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예(禮)의 현실적 효용이 극대화될 수 있다. 물론 예(禮)는 구분의 원리이고, 악(樂)은 조화의 기능을 수행하여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예의 본질은 신분, 계급, 귀천 등 현실적 차이 속에서도 쌍무호혜적(雙務互惠的)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 유학은 일반인은 물론 최고 통치자에게도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를 요구하며 이를 상실한 인군(人君)은 일개 필부(匹夫)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예를 제정하는 주체가 통치자가 아니라 성인(聖人)인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이다. 예의 현실적 효용은 '예교(禮敎)'를 실현하는 것이다. 예교는 예의 본질과 일상성이 발현되는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기제이다. 구득된 인간 본성의 발현, 주체와 타자의 소통을 매개하는 문화의 형성, 윤리 도덕적 규범에 기초한 정치행위 등이 활발한 사회가 예교가 지향하는 유교적 공동체의 본모습이다. 유교적 공동체의 원리로서 예교의 특징을 민본성(民本性)과 시의성(時宜性)을 중심으로 고찰한 이유는 예의 본질이 구현되는 일상성(日常性)의 측면에 착안한 것이다. 이는 유교가 지닌 본원적 특질인 동시에 천리(天理)와 인성(人性) 자체에 대한 원리적 탐구에 머물지 않고 인정(人情)과 시속(時俗)이라는 현실을 실천의 장으로 고민하는 실학적(實學的) 성격인 것이다. 16, 7세기를 거치며 조선사회에서는 예의 일상화(日常化)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세종조 이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가 지속적으로 보급되어 도덕수신서(道德修身書)로 활용되었고 도덕성과 호혜성에 기반한 향촌자치규약인 향약(鄕約)이 보급 시행되었다. 율곡 이이는 중국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전범으로 하여 해주향약(海州鄕約)을 완성하였는데, 예교의 본질을 일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실학적 특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상사(思想史)의 맥락에서 본 19세기 심설논쟁(心說論爭) - 사칠논쟁(四七論爭)에서 심설논쟁(心說論爭)까지 - (19th-Century Morality Dispute in Context of History of Thought - From Four-Seven Dispute to Morality Dispute)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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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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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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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조선성리학사를 보면 수백년 동안 굵직한 주제의 논쟁이 이어졌다. 16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던 사단칠정 논쟁은 '정(情: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18세기 초에 등장했던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사람과 사물의 '성(性: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주안이 있었다. 이 두 논쟁은 이후 조선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쟁점이 확실하게 부각되면서 조선성리학의 특징적 부면이 아울러 잘 드러났다. 18세기 중엽 이래로 서양세력이 밀려오면서 조선성리학은 서양 세력에 맞설 논리를 개발해야 했다. 성리학에서의 주리론(主理論)이 그 대응 논리의 하나로 제기되었다. 특히 '심(心)'에 대한 각종 논의들이 폭넓게 다루어졌다. 심(心)이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는 의미의 심통성정(心統性情)의 개념으로부터, 심을 '리(理)'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 심은 기본적으로 '기(氣)'라는 주장이 나와 대립하였다. 또 심과 명덕(明德)은 같은 개념인가 다른 개념인가의 문제, 명덕은 '리'로 보아야 하는가, '기'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들이 제기되어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 말기의 심설논쟁을 사단칠정논쟁, 호락논쟁과 함께 '조선성리학의 3대 논쟁'으로 규정하고 그 위상과 실상, 의의를 조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심설논쟁은 단순히 이론 논쟁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사성(時事性)'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서양과 일본 세력을 배척하는 운동, 의병운동과 독립운동 등에도 직, 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다. 심설논쟁은 사칠논쟁이나 호락논쟁에 비해 논쟁의 성격이 복잡하고 범위가 넓다. 게다가 자료의 체계적인 정리를 필요로 한다. 삼대 논쟁에 대한 상호 비교문제는 조선성리학의 특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주제의 하나다.

근대적 절대군주제와 국왕모독죄: 타이 정치체제 재검토 (Modern Form of Absolute Monarchy and Lèse-Majesté Law: Thai Political Regime Reconsidered)

  • 박은홍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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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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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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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타이 정치체제가 관료적 정체(bureaucratic polity) 혹은 반민주주의(semi-democracy)로 회귀하였다고 얘기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은 국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Privy Council)의 정치적 개입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은 근대적 절대군주제라는 분석적 개념을 통해 타이식 입헌군주제의 독특한 특징을 밝히고 있다. 요컨대 '네트워크 정치'(network politics)에 기반하는 타이식 입헌군주제(Thai way of constitutional monarchy)는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규범에 토대한 전형적인 입헌군주제와 배치된다. 이는 타이 국왕이 실제로는 정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안에 있음을, 또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고 군주제를 보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국왕은 불교의 교리를 실천하는 반인반신이자 국가통합의 중심으로 추앙되었다. 심지어 왕실이 관여된 1976년 10월 6일 유혈참사 이후에도 국왕의 신성한 지위는 도전을 받지 않았고 국왕모독죄는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국왕모독죄는 군부 쿠태타의 주된 명분이 되었다. 특히 군주 네트워크와 근대화 과정에서 성장한 탁신 네트워크에 기반한 부르주아 정체 간의 대격돌로부터 야기된 2006년 쿠테타와 이후 친탁신계 정부를 전복한 2014년 쿠테타를 계기로 국왕모독죄 사례가 급증하였다. 관료적 정체, 반민주주의,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타이에서의 근대적 절대군주제는 군부, 지식인, 민주당, 심지어 일부 시민사회조직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국왕모독죄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서울어젠다 기반 문화다양성 미술관교육 프로그램 분석 및 방향 - 국립현대미술관 사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rt Education Program Based on Cultural Diversity: Focused on the Case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 황지영;홍해지
    • 예술경영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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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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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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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2010년 발표된 <서울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가치 확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문화예술교육 맥락에서 문화다양성은 중요한 의제로서, 국립현대미술관 문화다양성 프로그램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행연구 조사를 통해 문화다양성 교육의 핵심가치 관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문화다양성 미술관교육프로그램의 내용 분석 후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7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운영된 문화 다양성 교육프로그램 <어떤 시선>은 주제 중심 접근을 통한 문화다양성의 이해와 증진, 협동학습을 통한 공동체 의식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영천(2012)의 연구결과에 따른 문화다양성 교육 핵심가치를 토대로 2017-2019년까지 총 80회 운영된 교육프로그램 <어떤 시선>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포용, 대화, 시민성, 공존, 인권, 차이, 평등, 협력, 연대 9가지 문화다양성 교육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이 분석되었다. 문화적 포용력을 증진시키는 공간으로서 미술관은 문화다양성에 대한 가치가 실현되는 곳이므로 문화다양성과 문화예술교육을 아우르는 공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포용, 대화, 시민성, 공존, 인권, 차이, 평등, 협력, 연대의 방향성을 미술관교육에 담고 있었으며 우리 사회 내 다양한 집단, 공동체의 관점으로 문화다양성과 문화예술교육의 논의가 확장됨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화예의 정체성 탐구를 위한 연구 - 창작의 탈형식과 자유정신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exploration of the Identity of Korean Floral Art : Focusing on the creator's beyond form and free spirit)

  • 문영란
    • 한국화예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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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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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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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논문은 우리의 화예가 극복해야할 현실의 문제를 서구중심의 형식주의(기능주의) 꽃문화의 팽배로 인해 야기되는 화예정신의 상실로 보고, 화예정신의 회복을 위한 논의를 낯설게 바라보기의 탈형식성과 노마디즘의 자유정신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꽃을 매개로 창작자의 심미적 정신세계를 작품화 하는 화예(華藝)는 창작 주체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심상예술에 해당한다. 이것은 대상 세계를 재현하는 '닮음의 표현'을 넘어 대상 세계를 '자기화'하는 의상(意象)예술로서 작가의식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화예창작 과정들을 살펴볼 때 한국화예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서구식 표현 기법과 창작방법에 경도된 국내 화예작가들의 창작수련과 작품활동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것은 플라워디자인이라는 서구의 꽃문화에 경도된 우리의 문화의식에 대한 문제점을 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의 플라워디자인에 의해 경도된 한국화예의 현실정을 이해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를 구성해 나아가야할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한국 화예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한국 화예의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일환으로 우리의 화예가 극복해야할 문제점을 서구의 문화수용에 대한 비판을 통해 고찰한다. 이것은 한국화예가 회복해야할 본질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되는 동시에 심미예술로서 화예가 견지해야할 자유로운 창작정신에 대한 의미를 규명하는 과정이 된다. 더욱이 이와 같은 한국의 화예문화에 대한 비판과 자기성찰의 논의는 한국화예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 하는 동시에 화예를 위한 학문적 담론체계를 더욱 확대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대 한국의 안티 종교운동 (Anti-religious Movements in Contemporary Korea)

  • 강돈구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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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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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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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논문은 한국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의 대대적인 표출 현상(안티 종교운동)을 정리하고 유형화한 뒤 그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 이를 위해 먼저 현대의 범세계적인 종교변동부터 살폈다. 세계종교는 지구촌 의식 출현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 결과 그들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유지한 채 여러 종교의 공통 기반 위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려들거나, 전통을 재창조하려하거나 혹은 현대에 맞게 변용시키거나, 혁신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거나, 민족주의와 결탁하거나 하는 여러 유형으로 중첩되어 나타나곤 한다. 세계종교에서 살필 수 있는 이러한 변동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관찰되는가? 대체로 현 시대의 한국 종교상황은 개신교에 대한 비판이나 혁신 요구, 소수종교에 대한 공격, 학계와 언론의 종교 개혁요구, 종교무용론 전파, 유튜브 등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종교 비판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교 비판은 안티 종교운동으로 읽혀진다. 종교 외적으로는 서구 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종교무용론이나 과학 또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종교 비판 이론이 서점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종교 내적으로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자신의 내부를 반성하고 새로운 초종교적 영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과거에도 물론 종교 일반과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그 내용과 맥락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반적인 비판 운동은 분명 새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개신교가 주요 대상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변동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