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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두행렬(街頭行列)과 전통연희 (Korea's Street Processions and Traditional Performing Arts)

  • 전경욱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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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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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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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행렬도는 묘 주인의 등급에 따라 인원수와 각종 대열 및 인원 배치가 규정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가두행렬에 동반되는 연희들은 대부분 산악 백희의 종목들이었다. 특히 안악 3호분의 악대는 고취와 횡취를 갖추고 있어서, 이 행렬의 국제적 교류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호위병, 의장대, 악대, 연희자를 갖춘 고구려의 행렬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어가행렬과 일치하므로 그 영향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가두행렬은 왕의 어가행렬이다. 연등회에서 왕이 봉은사나 흥왕사를 다녀올 때, 왕이 지나는 차도의 좌우에는 등산과 화수를 설치했으며, 그 가두행렬의 규모가 매우 컸고 다채로운 음악과 공연을 연행했다. 나례는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고려시대의 궁중의례에 수용되었다. 고려의 나례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가두행렬과 연희를 행했다. 그리고 정초에 풍물패가 행하는 지신밟기도 나례의 유풍이다. 조선전기의 궁중나례에는 방상시 12지신 이외에 판관 조왕신 소매 등 새로운 배역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례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모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환궁행사에서 왕이 탄 가마는 전후의 고취악대가 행진음악을 연주하고, 산붕이 인도하는 가운데 대궐을 향해 가두행렬을 진행했는데, 이때 각종 연희도 공연되었다. 이 환궁행사는 고려 의종 때의 환궁행사와 매우 유사하다. 조선시대의 삼일유가와 문희연은 양반층의 축제였다. 급제자는 악사와 연희자들을 대동하고 서울 시가를 3일간이나 돌아다니며 가두행렬을 벌이면서, 자기 가문의 경사를 축하하고 가문의 위세를 과시했다. 조선시대의 동제와 읍치제의에서는 사당의 신상이나 신대를 앞세우고 가두행렬을 진행했다. 중국의 마을제사인 영신새회가 후대에는 나례의 연문축역과 융합되었듯이, 한국의 마을제사도 지신밟기와 결합되어 마을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신대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가두행렬이 형성되었다. 수영야류의 가두행렬은 가면극 공연의 홍보 효과가 있었고, 참가자들의 일체감을 조성하면서 축제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북청군 토성리 관원놀이의 중심은 관원의 행차를 모방한 가두행렬이었다. 토성 관원놀이는 인명의 안과와 마을의 오곡 풍성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의 기능, 가두행렬과 여러 연희들을 통해 흥과 신명으로 즐기는 오락적 기능, 주민들의 단결과 화합을 조성하는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가두행렬은 자생적 가두행렬과 외래 기원의 가두행렬이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렬도의 고취와 횡취, 고려시대에 상원이라는 연등회의 시기와 왕이 참석한 가운데 행해지는 교방가무희 및 백희 공연, 동제의 지신밟기 등을 통해서 국제적 교류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상원연등회는 중국에서 유입되었지만, 왕이 선대 임금들의 초상화를 모신 봉은사에 다녀올 때의 가두행렬과 그 노변에 설치되는 등산과 화수 및 수많은 등은 고려 연등회의 특징이다. 이상의 모든 행사에서 가두행렬은 축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고, 행렬의 중간이나 행렬이 끝난 후 펼쳐지는 전통연희의 공연에서 참가자들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가두행렬의 참가자들은 각 행사를 통해 문화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자기들의 역량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의 부활과 키노와 륄리의 『앗티스』 분석 (Rebirth of the French baroque opera and analysis of Quinault and Lully's Atys)

  • 강희석
    • 한국프랑스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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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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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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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의 부활에 신호탄이 된 1987년 키노와 륄리의 『앗티스』 공연 이후 그들의 모든 오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여러 극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무대에 오르거나 연주되면서 조명을 받았다. 2012년의 『앗티스』 재공연은 1987년 공연에 감명을 받은 부유한 미국인 사업가의 후원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1676년 『앗티스』 초연 당시 세비녜 부인은 희극적 역할을 맡았던 가수가 앗티스 역을 맡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경탄할만한 무대장치와 훌륭하고 화려한 의상, 잠의 신과 꿈 장면에 주목한다. 세비녜 부인의 평가는 당시 관객들이 오페라를 평가할 때 드러나는 고전주의와 바로크적 취향을 동시에 보여준다. 1987년의 『앗티스』 공연을 위해 윌리암 크리스티가 연주에 있어 복원의 원칙에 기반을 둔 반면에 장마리 빌레지에는 기계장치 없이 단일 무대장치를 설정하면서 고전주의 원칙에 의거해 연출하였다. 연출가는 퀴벨레 여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벽화에서처럼 신성한 옆모습을 통해 걸어서 등장하게 한다. 『앗티스』 초연 후 20년이 지난 시기에 상중에 있는 궁정의 분위기를 상기시키는 그의 연출은 줄거리의 단일과 비극적 결말이 특징인 작품 분위기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작품의 고전주의적 성격은 줄거리에 잘 통합된 디베르티스망과 더불어 충동에 사로잡힌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는 상당 부분 신화와 그 변용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키노와 륄리의 연구는 1987년 그의 사망 300주년 공연 『앗티스』와 학술행사 이후 활성화되는데, 출전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앗티스』의 중요한 출전으로 오비디우스의 『축제달력』을 꼽고, 주인공의 소나무로의 변신과 잠의 신의 등장에서 부분적으로 『변신 이야기』를 언급한다. 분명 오페라에서 앗티스를 사랑하는 퀴벨레가 그에게 신전을 지키는 직책을 부여하고, 서로 사랑하는 앗티스와 요정에 대해 분노한 여신이 복수하는 부분은 『축제달력』에 의거하고 있다. 하지만 오비디우스의 텍스트만 가지고는 작품에 반영된 신화적 요소들을 설명할 수 없다. 앗티스가 여신의 육체적인 사랑과 적극적인 성적인 제의를 거부하는 부분과 여신이 요정을 죽이는 대신 앗티스를 미치게 한 대목은 나탈레 콘티의 『신화』에 의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앗티스의 애인이 하신의 딸이라는 점과 자살하는 (자살하기 직전의) 앗티스를 불쌍히 여겨 그를 소나무로 변하게 한 점, 퀴벨레가 앗티스와 요정이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발견하는 것 등은 이 『신화』에서 자양분을 가져온 것이다. 키노와 륄리는 문단에서 큰 권위를 누리고 있는 오비디우스의 작품보다는 17세기에 널리 퍼진 나탈레 콘티의 신화개론서의 번역본을 창작을 위해 더 많이 활용한 것이다. 카툴루스의 앗티스의 잠과 잠의 궁전에서의 세 아들의 묘사, 유쾌한 꿈과 불길한 꿈을 다룬 미셸 드 마롤의 『무사이 신전의 그림들』은 오페라의 중심을 이루는 앗티스의 꿈 장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키노와 륄리는 이러한 출전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창작하지만 신화의 변용은 불가피하다. 퀴벨레의 가차 없는 복수에서 여신의 잔인한 면모가 드러나지만 사랑하는 이의 무심함에 탄식하고 거부에 좌절하는 그녀는 사랑하는 연약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오페라는 제4의 인물인 켈라이노스를 창안하면서 앗티스와 상가리데의 사랑을 일종의 금지된 사랑, 더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나탈레 콘티의 『신화』에 어느 정도 언급된 앗티스의 자살은 오페라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의 자살은 사랑하는 이를 뒤따라가는 점에서 사랑의 행위이며, 퀴벨레를 피하려하는 점에서 복수의 행위이다. 퀴벨레의 사랑을 받지만 죽음을 선택하면서 그는 자신의 자살에 여신에 대한 반항과 복수의 의미를 담는다. 이러한 신화의 변용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그 깊이와 복잡함으로 현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륄리의 음악은 그들의 다양한 감정이 가장 매력적으로 증폭되도록 한다.

필담(筆談)을 통한 조일(朝日) 의원(醫員) 간 소통의 방식 - 1763년 계미사행(癸未使行)의 필담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mmunication between the medical staff of Chosun and Japan to conversation by writing)

  • 김형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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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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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7-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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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논문은 1763년 계미사행(癸未使行) 중 의원필담집(醫員筆談集)인 키타야마 쇼우[北山彰]의 "계단앵명(?壇?鳴)"과 야마다 세이친[山田正珍]의 "상한필어(桑韓筆語)"와 이 빈케이[(井敏卿]의 "송암필어(松菴筆語)"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18세기에 의원을 포함한 조일(朝日) 지식인들의 소통 방식 및 대립과 갈등, 교류와 협력의 상황을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들은 미지(未知)와의 조우를 통해 나누고, 시문(詩文)을 창화(唱和)했으며, 해부학 등 당시 서양의학에 눈뜬 일본의 상황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또한 각 나라의 풍습을 접하고 비교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아울러 한글에 대한 일본인의 증폭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대립과 갈등은 주로 두 나라의 역사 인식과 학술적 차원의 관점 차이에서 비롯되었는데, 특히 당시 일본의 고학(古學)적 학풍이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금고문(今古文) 논쟁이나 두 나라의 음악 비교, 일본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삼한(三韓) 정벌설 및 오규 소라이[荻生?徠]와 다자이 준[太宰純]의 학문에 대한 논쟁 등으로 상호 날선 공방이 오고갔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중에는 한문에 의한 필담이란 제한 때문에 빚어진 상호 오해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교류와 협력은 전문 지식과 기술을 지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인삼 제법(製法)이나 질병의 치료 방법을 확인하는 절차로 구체화되었다. 또한 일본에서의 서적 구입 방법 문의 및 실제 치료 등을 통해 양국 우호의 분위기를 연장시켜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들 사이에는 간혹 오해와 불신도 있었지만, 양국의 인사들은 한문이란 동아시아 공통문자를 통해 소통했고, 심도 있는 정보와 의견을 교환했다.

조선 후기의 산수(山水) 와유(臥遊)와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의 <속어부사(續漁父詞)> (Wayu during the late Chosun Period and Gyeongsan Lee Han Jin's )

  • 조은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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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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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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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이한진 편 "청구영언(靑丘永言)"의 편찬자인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1732~1815)의 <속어부사(續漁父詞)>가 이한진의 문예 활동과 풍류적 지향, 그리고 조선 후기 사족들의 산수(山水) 와유(臥遊) 취미를 배경으로 창작되었으리라 보고 <속어부사>를 살폈다. 이한진은 외가인 안동(安東) 김문(金門)의 혈연을 바탕으로 연암 일파와 교유하였는데, 이들의 풍류 현장에 대한 기록에서 이한진의 음악적 기질과 풍류적 지향을 알 수 있었다. 이한진은 노년에 경기도 영평에 은거하였는데, 이때 편찬한 가집인 이한진 편 "청구영언"에 수록된 작품들의 주제적 지향과 이한진이 창작한 시조 작품들에서도 역시 이한진의 풍류적 모습이 확인 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은 번화한 도시 공간을 떠나 자연 속에 머물 수 없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산수 자연을 추체험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와유(臥遊)였다. 이들에게 산수 유람의 실제 경험 유무는 그리 긴치 않은 문제였으며, 이들은 효과적인 와유를 위해 제 문예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한진과 그 주변 인물들의 문예 활동은 이 같은 당시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한진이 경기도 영평에서의 산거(山居)에도 불구하고 <속어부사>를 창작한 것 역시 현재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하나의 자연 형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추체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한진의 <속어부사>는 어부 형상을 소재로 한 여타의 국문시가에 비해 좀 더 초속적인 자연 형상이 그려졌다. 실재의 자연 형상을 볼 수 없다는 현실적 정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핍진하게 묘사하여 효과적인 와유를 가능케 하고자 했던 욕망 사이의 긴장은 집구시의 성격을 강하게 띤 <어부사>라는 형식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곡의 시조시 주제 연구 (A Study on Sijo Poem's Subject of Gagok)

  • 신웅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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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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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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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가곡이 음악과 문학이 하나가 될 때 그 의미가 발현된다고 본다면 그 동안 전승되어온 가곡 중에서 선정되고 악보화된 현재 불리워지고 있는 가곡들의 주제 분석은 가곡사에 나름대로의 의미와 자리매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가곡 향유층들의 생활상과 풍류상이 무엇이고 곡과 가사 내용의 상관성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취지가 여기에 있다. 텍스트는 김기수편 정가 남창 100선, 여창 88선이다. 김기수는 두봉 이병성, 운남 이주환, 운초 장사훈의 채보분을 참고하여 남창 26곡 여창 15곡을 한바탕으로 정리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남창 가곡은 우조 11곡, 계면조 13곡, 변조 2곡 모두 26곡이다. 여창 가곡은 15곡으로 우조 5곡, 계면조 8곡 변조 2곡이다. 남창 26곡과 여창 15곡 도합 현전 가곡은 모두 41곡이다. 주제 분류는 서원섭의 평시조 분류를 따랐다. 비슷한 주제를 유형화하여 9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비교 대상은 $\lceil$교본역대시조전서$\rfloor$과 남창 가곡,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이다. 분류 결과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lceil$교본역대시조전서$\rfloor$과 남창 가곡의 비슷한 주제 분포이다. 이는 가곡의 향유층이 주로 선비층이었던 관계로 정치적인 이유로 향리로 돌아와 자연과 벗삼았던 선비들의 생활상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남창과 여창 가곡에 있어서의 남녀 사랑의 주제의 현격한 차이이다. 이는 당시 성윤리에 억눌려 있던 조선 여인들의 놀이 문화가 흔치 않았던 관계로 인간적인, 어쩔 수 없는 표현 본능을 그녀들의 놀이 문화인 가곡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셋째는 가곡 진행상의 주제 변화이다. 가곡은 대체로 빠르기 순서 만$\cdot$$\cdot$삭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게 곡과 가사내용이 대체로 부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넷째는 농$\cdot$$\cdot$편으로 가면서 무명씨의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농$\cdot$$\cdot$편 이후 외설의 주제가 노골화되고 있는 것은 당시의 윤리관으로 인해 실명으로 거론하기에는 선비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섯째는 인생행락의 주제인 태평가가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 $\cdot$$\cdot$편 이후 외설의 주제가 노골화되고 있는 것은 당시의 윤리관으로 인해 실명으로 거론으로 거론하기에는 선비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섯째는 인생행락의 주제인 태평가가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평가는 이삭대엽의 변화곡으로 매우 느리고 화평스러운 곡이다. 처음 선비들의 근엄한 자세로 다시 돌아간다. 농$\cdot$$\cdot$편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마지막 곡인 젊잖은 태평가로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선비들의 풍류과 생활상이 어떤 것이였는 지를 가곡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생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음악이 가곡임을 입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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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무형문화재 공작부채를 활용한 지역문화 콘텐츠 개발 사례 연구 (Case Study of Regional Cultural Contents Development Using Peacock Fan Intangible Cultural Asset)

  • 김대기;손지영;백유영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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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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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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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문화 원형을 보존한 콘텐츠 제작으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재고하고자 지역 문화가 살아 있는 문화예술교류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콘텐츠 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역의 특성을 찾음으로써 지역을 대표하는 춤과 음악, 미술, 대중문화, 축제, 역사기록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원천으로 하였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창의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 지역의 대표브랜드이자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였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 지역 문화자원의 원초적 근원을 찾고, 그에 대한 흔적을 보전하고자 서천지역을 중심으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를 활용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춤 움직임을 통해 서천공작부채춤 모형을 콘텐츠 개발하였다. 현시대 보존가치가 있는 충남 무형문화재 제21호 이광구 장인의 작품 서천공작부채는 둥근 모양 부채로 손으로 쥘 자루와 공작새 머리의 모양을 하고 있는 공예작품이다. 무형문화재인 공작부채 공예작품을 소재로 활용 제작된 다양한 예술 장르 개발이 문화상품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콘텐츠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는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들이 잘 엮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또한 문화콘텐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본 연구는 역사 속에서 내려져 오면서 원형을 보존해온 충남 서천지역의 무형문화재 공작부채가 급속한 도시화와 현대화의 변화에도 지역의 관심을 받고 재조명되기 위해 개발된 지역춤 콘텐츠로 총 4개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적인 4개 연작의 형식은 독무, 2인(人)무, 군무, 창작으로 이루어지며 각 작품의 제목은 기본 형태의 춤 <서천공작부채춤>, 남·녀 사랑의 춤 <월·하·정·인>, 군무 형태의 춤 <바람의 멋>, 마지막으로 한국 창작 춤 <휘영>이다. 4개 연작의 공통점은 공작부채를 활용한 전통춤으로 각각의 춤은 형식이 다른 주제와 음악, 의상 및 무대 등을 통해 고유한 정서와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전통문화자원인 무형문화재를 활용해 다른 지역적과 차별화된 지역춤 콘텐츠 개발을 통해 콘텐츠로서 국제교류와 미니어처, 캐릭터 제작을 통해 문화상품으로서의 성장 가능성과 지역과 국가 경쟁력을 제고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지역경제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문화예술 현장뿐 아닌 국제교류를 통한 세계화 작업을 통해 대중이 접근하기 용이하도록 콘텐츠로 제작하여 지역 고유문화를 이용한 지역춤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로 개발 활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역 문화유산의 특성을 반영하여 재창조된 지역 춤 콘텐츠 개발이 앞으로도 현대화 작업으로 꾸준히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우리의 전통문화자원인 무형문화재를 활용해 지역적 차별화라는 성장 가능성과 지역과 국가 경쟁력을 제고 하는데 기여 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세계화 작업을 위해 현존하는 문화자원을 보존하고 이를 대중이 접근하기 용이하도록 콘텐츠로 제작한다면 지역 고유문화를 이용한 지역춤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신찬(日本神饌)을 통(通)한 한국고대식(韓國古代食)의 추정연구(推定硏究) -일본춘일신사약궁제(日本春日神社若宮祭)- (Study on Korean Ancient Dietary Culture through Japanese Sacrificial Offering Kasugadaisha Wakamiyasai (I))

  • 김천호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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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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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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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일본(日本) 내량시대(奈良時代)를 대표(代表)하는 춘일대사(春日大社) 약궁제(若宮祭)는 한반도(韓半島)와 종교적, 문화적 문류(文流)가 빈번하던 시대에 형성된 등원가(藤原家)의 씨사(氏社)로서의 제사이며 역사적(歷史的)으로도 백제인(百濟人)과의 관계가 밀접하여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식생활(食生活)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리라 보아 조사한 것이다. 1. 좌속신(坐俗神), 불교(佛敎), 유교식(儒敎式) 제사(祭祀) 및 경사스런 축하연에 쓰이는 종이, 실크, 떡으로 만든 조화(造花)장식은 최초에는 계절에 맞는 생화(生花)를 쓰다가 차츰 다양하게 변화했음이 보인다. 본(本) 약궁제(若宮祭)에서의 도라지꽃은 한반도에서 쓰여진 흔적이 없으나 일본(日本)에서는 제사(祭祀)로 쓰였다. 2. 소(小), 대어반(大御飯)은 시루떡의 시작이였고 백미(白米) 이전에는 현미(玄米)로 만들었다. 다시 쌀 외에 찹쌀, 팥 등 여러가지 곡물을 가미하게 됐다. 3. 채소의 종류는 근채류(根菜類)가 귀중한 채소로 꼽혔고 극히 단순한 조리법이였으리라 본다. 4. 당과자(唐菓子)는 쌀가루를 여러가지 형을 만들어 쪄서 튀겨서 먹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의 과자와 전병의 원조임을 알 수 있다. 5. 8의 어과자(御菓子)에서 둥근 메떡은 현재의 절편이나 가래떡의 시작이였으며 일본(日本)은 기호상 찰떡으로 변했다고 본다. 6. 제사에 최근에도 쓰여지는 곶감, 밤은 고대(古代)부터 이어온 식품으로 밤은 그 껍질채로 쓰여졌고 그 외의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과일이 쓰여진 것으로 본다. 7. 염분(染分)과 사색(四色)은 적(赤), 황(黃), 청(靑), 백색(白色)을 말하며 그 색채가 원시적인 선명한 색깔로 본제(本祭)의 상징이며 대표적인 제물이다. 한반도에서는 과자, 사탕, 떡, 과일 등을 주로 이 4가지 색깔로 물들여 제사뿐만 아니라 경사스런 잔치에도 높이 고여서 축하의 뜻으로 차렸다. 8. 성물(盛物)에서는 검은콩, 흰콩, 팥, 비자로서 그 당시 중요한 곡물로서 나타났다. 9. 술은 청주(淸酒)를 쓴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시대의 고도(高度)의 제조법이 백제로부터 전해져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끝으로 신찬(神饌)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사진 1, 2, 3에서 보여주듯이 직접 본(本) 행사(行事)에 참여하면서 제단형태, 의상, 절차, 그 외의 음악과 무용, 장식 등이 현존하는 한국의 전통적 풍물과 그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본 제사를 통하여 고대식(古代食)을 추정하는데 간접적인 뒷받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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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테마골목 이미지 및 만족도에 관한 이용 후 평가 -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대상으로 - (Post Occupancy Evaluation of Image and Satisfaction for Storytelling Theme on the Kim Gwang-Seok Street)

  • 구민아;엄붕훈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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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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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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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최근 도시재생사업으로 재개발, 계획되고 있는 가로 중 스토리텔링에 의한 테마골목인 '김광석다시그리기 길'을 대상으로 이용 후 평가를 이미지와 만족도를 중심으로 시행하였다. 이는 새로운 장소성을 가진 공간으로 스토리텔링 테마골목 중 낙후된 골목재생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대중가수의 음악과 예술에 관한 주제로 스토리텔링 장소로써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계획, 관리에 필요한 자료가 되기 위해서이다. 이용자 200명을 대상으로 인구통계문항과 이용행태, 동기는 빈도분석을 실시하였으며, 이미지선호도와 만족도평가는 신뢰도분석, 평균치 분석, 요인분석,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하여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추출하였다. 또한, 성별, 연령별, 지역별 그룹의 이미지와 만족도 차이를 분산분석과 독립표본 t-검정과 분산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용자 특성은 20대 학생이 가장 많았고, 이용 동기와 활동유형은 산책과 구경, 사진촬영 순으로 분석되었다. 이미지평가 변수들은 매우 높은 신뢰도를 보였으며, 평균치들은 상징적인(5.03), 친근한(4.84), 아름다운(4.71), 밝은(4.63) 등의 순으로 높았다. 요인분석 결과, 거리의 분위기, 디자인성 및 역동성 등의 3개 요인이 추출되었다. 다중회귀분석 결과, 상징적인(${\beta}=.314$), 안정된(${\beta}=.248$), 친근한(${\beta}=.204$), 시원한 (${\beta}=.142$)과 같은 이미지 변수들에 의해 이미지 선호도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만족도평가 또한 매우 높은 신뢰도를 가지며, 요인분석 결과, 시설관리측면, 체험 요인, 이미지 요인 3가지로 분류되었고, 시설물디자인(3.81), 대표거리(3.78), 거리이미지(3.81), 지속적 이용(3.66), 체험관광(3.53) 순으로 만족도를 보였다. 다중회귀분석 결과, 거리이미지(${\beta}=.296$), 관리(${\beta}=.277$), 지속적 이용(${\beta}=.205$), 대표거리(${\beta}=.183$)에 관한 4개 변수가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따라서 김광석다시그리길 스토리텔링 골목의 재생사업 이후, 골목의 이미지는 상징성과 경관미, 친근감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미지 개선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고, 만족도에 있어서는 시설물디자인의 개선, 대표거리로서의 상징성과 이미지의 강화, 다양한 체험 등에서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추후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계획과 관리에서는 좀 더 스토리텔링을 통한 장소성을 확립하고, 그로 인해 골목의 정체성과 상징성 또한 높아질 수 있도록 해 나가야 함을 말해 주는 결과로 사료된다.

웹툰의 사운드 표현에 관한 연구 (A Study of Sound Expression in Webtoon)

  • 목혜정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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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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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9-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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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웹툰은 출판만화에서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방법을 발전시켜왔으며, 웹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직접 소리를 들려주기까지 한다. 직접 들리는 소리는 당연히 사운드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사운드도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의 이론적 토대를 인지심리학의 이중부호 개념에 둔다. 작가는 자신의 청각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기호화할 수 있고, 독자는 기억과 인출의 과정을 통해 시각화된 기호를 보고 사운드를 떠올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웹툰의 들리지는 않지만 떠올릴 수 있는 사운드와 직접 들리는 사운드 두 경우를 본 연구는 함께 분석대상으로 한다. 구체적 분석을 위해서는 이론적 성과물이 있는 영화 사운드 분석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소리를 구성하는 세 요소인 음량, 음조, 음색은 음향학에서는 주파수 등으로 설명되고 직접 들을 때는 느낌으로 알지만, 시각적으로는 사운드를 표현한 글자나 이미지의 선의 굵기와 위치, 음원의 이미지 등으로 알 수 있다. 내화면 사운드와 외화면 사운드의 시각적 표현은 만화의 칸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칸 외부로 외화면 사운드를 표현하지만 웹툰에서는 듣는 자를 강조하는 방법으로 칸 내부에 외화면 소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의 호러 장르가 장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운드를 많이 사용하는데 웹툰에서도 호러 장르가 같은 효과를 위해 사운드를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영화 사운드 분석 방법을 활용해 사운드를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들을 분석해볼 때, 초창기 출판만화에서부터 시작한 사운드의 청각적 표현들이 계속 발전해서 웹툰에서 창의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세로 이동을 활용한 칸의 배치 및 소리표현의 방식들은 웹툰이 보여준 새로운 방법들이며, 칸 모양도 훨씬 다양해졌다. 직접 들려주는 소리로는 BGM이 가장 먼저 사용되었는데 최근에는 한 회의 분위기에 맞춰 음향효과까지 섞어 맞춤 작곡된 곡들이 사용된다. 그리고 스크롤 이동에 맞춰 소리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특정 순간의 음향효과나 특정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호러 장르에서는 특정한 이미지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운드를 같이 사용하여 장르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렇게 웹툰에서는 다양한 사운드 시각화 방법이 계속 창조되고 있으며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웹툰이 하나의 문화콘텐츠로서의 융합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근대 '전통춤'의 발견 - 우라야스무(浦安の舞)를 중심으로 - (The discovery of the 'traditional dance' of modern Japan - mainly on Urayasu-no-mai Dance -)

  • 남성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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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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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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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940년 침략전쟁의 소용돌이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일본에서는 '기원이천육백년축전(紀元二千六百年祝典)'이라는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거행되고 있었다. 국민총동원을 위한 정신적 통합과 정치에 대한 국민 불만과 전쟁에 지친 피로감을 해소시키려는 의도였다. 본고는 이 축전행사의 일환으로 일본 전국의 신사에서 연행된 우라야스무가 어떻게 창작되고 보급되었는가를 검토한다. 우라야스무는 일본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아악 형식의 음악과 미코마이(巫女舞)에 기초를 둔 새롭게 창작된 춤이다. 전시상황에서 창작 보급된 우라야스무는 '만들어진 전통'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또 우라야스무야말로 근대시기 창작된 전통이자 국가이데올로기의 선전도구로 이용된 불우한 유산으로 현재까지 온존하는 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경위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오늘날 확산일로에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보다 가속화될 것이다. 즉,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창조된 우라야스무가 어느새 새로운 민속으로 자리매김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당시 흥아(興亞)의 기치를 내건 일본제국주의의 흐름 속에서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고 정치적 정통성 확보를 위한 국민총동원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우라야스무를 창조 보급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시기에 창작된 우라야스무는 각 지역의 신사에서 오랫동안 계승해온 고유의 제례악무를 대신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사회의 우경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문화권력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오늘날 재생산되고 확산되고 있는 전통의 재창조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