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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성장과정을 통해 본 조선후기 왕위계승교육 (On the curriculum for the succession to the Korean throne - focusing on the growth process of King Jeong-jo in the late Joseon)

  • 육수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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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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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9-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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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정조는 1752년(영조 28) 9월 22일에 탄강하여, 8세에 왕세손 책봉례, 10세에 입학례와 관례를 치르고,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훙서(薨逝)하자 왕세손이면서 동궁(東宮)으로 진봉(進封) 되었고, 24세에 왕위계승자의 실무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리청정 수행을 거쳐 25세에 등극하였다. 조선왕실의 왕위계승교육은 성장과정에 따라 기관의 명칭과 위상을 달리하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곧 보양청(보육기관)${\rightarrow}$강학청(조기교육기관)${\rightarrow}$세손강서원(왕세손교육기관)${\rightarrow}$세자시강원(왕세자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거쳐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과정 외에도 책례 입학례 관례 등과 같은 의례를 거행하게 되는데, 이는 왕위계승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내면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책례는 왕위계승자를 미리 결정함으로써 정국의 혼란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일찍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예비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과 덕목을 쌓아 군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려는 교육적 의미가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등극 전에 이루어지는 대리청정은 왕위계승을 위한 실무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전기에 비해 왕위계승에 있어서 종법적 정통성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였으므로, 군왕으로서의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료들을 제압할 수 있는 지적능력이 요구되었다. 때문에 특히 영 정조대에는 왕실교육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왕실의 위상제고와 왕권강화에 주력하였으며, 의례정비를 통해 국가기강과 통치질서를 확고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시대 왕세손 책례도감의궤에 나타난 복식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the costumes in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왕세손) Chac-Rae-Do-Gam Eui-gue(책례도감의궤))

  • 이민주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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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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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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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is very important social status next to the crown prince deciding fundamentals of a state in Chosun dynasty which laying stress royal authority. Accordingly, Chakbong(冊封) of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has been done independently like as Chakrei(冊禮) of the crown prince. The existig record of Chakrei(冊禮) of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The existing record of Charkrei(冊禮) of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are Hyunjongwangseon(顯宗王世孫), Euisoseson(懿昭世孫), Youngjowangseson(英祖王世孫), Hungjongwangseson(憲宗王世孫) of 4 books for Chakreidogameuigue(冊禮都監儀軌) being preserved in Kyujangkak(奎章閣). The transition of classified clothes are stated on Wangse sonchakreidogameuiguebanchado(王世孫冊禮都監儀軌班次圖) for Chakrei(冊禮) of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Its details are as below. Finally, there is no changes in constitution of the costume of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Chakrei(冊禮) called as Ssanggodong(雙童髮)·Gongjungchak(空頂 )·Ojangbok(五章服) on documentary records depsitefo no explanation of Banchado(班次圖). Secondly, The classified clothes of the eldes sion of the crown prince Hcakreibanchado(冊禮班次圖) are on . We have acknowledged that Kwanmo(冠帽) of Dangbukwanwon(堂部官院) has been changed from Heugrib(黑笠) to Samo(紗帽) since Youngjowangseson(英祖王世孫), Euibok(衣服) from Chungpo(靑袍) to Nokdanryung(綠團領), the costume of Euijangsu(儀仗手) from Chunggun(靑巾) to Whangchorib(黃草笠) and changed again to Hongpimoja(紅皮帽子), Chungeui(靑衣) changed to Hongeui(紅衣). Also we know that Kwanmo(冠帽) of Kyogun(轎軍) has been changed to Pimoja(皮帽子) with high top, Chungeui(靑衣) changed to Hongeui(紅衣). The costume of Byulgam(別監) has been changed from Nokgun(綠巾) to Jogun( 巾), Nokpo(綠袍) changed to Pimoja(皮帽子) with high top, Chungeui(靑衣) changed to Hongeui(紅衣). The costume of Byulgam(別監) has been changed from Nokgun(綠巾) to Jogun( 巾), Nokpo(綠袍) changed to Hongpo(紅袍), that of Suri(書吏) changed from Chungeui(靑衣) to Huekeui(黑衣). Accordingly, the transition of costume color to red stands for the briliance. Thirdly, regarding the constitution of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Chakrei(冊禮), that of Euisoseson(懿昭世孫) & Youngjowangseson(英祖王世孫) are same for Unggolta(態骨朶), Youngjagi(令字旗), Keumdungja(金 子), Eundungja(銀 子), Mojul( 節), Jaksun(雀扇), Chungkae(靑蓋), Chungyangsol(靑陽率). In case of Hunjongseson(懿昭世孫), Baktakgi(白澤旗) is added. On Youngjowangseson(英祖王世孫), Chungilsol(靑日率) and Kiringi(麒麟旗) are added. However, we know that the constitution of the eldestson of the crown prince Hunjong(憲宗) Chakrei(冊禮) is quite different that of previous constitution. i.e. : Hongae(紅蓋), Baktakgi(白澤旗), Samkaggi(三角旗), Kagdangi(角端旗), Byukbonggi(碧鳳旗), Jujakgi(朱雀旗), Kuemdungja(金 子), Eundungja(銀 子), Eunribgwa(銀立瓜), Kuemhwanggwa(金 瓜), Eunhwhanggwa(銀 瓜), Kuemwolbu(金鉞斧), Bongsun(鳳扇), Huegkae(黑蓋). Also the kinds of Eujanggi(儀仗旗) are various which are similar to the constitution of The Crown Prince(世子) Chakrei(冊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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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잠·친잠의례와 음악의 역사적 변천 (The Historical Changes of Seonjam·Chinjam Ritual and Music in the Joseon Dynasty)

  • 송지원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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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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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9-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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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 초기부터 행해진 양잠 관련 국가의례는 의식주의 '의(衣)문화'로서 '입을 거리'를 중요시 여기던 국가의 의지를 드러내는 의례로 자리매김 되었다. 성종 대에는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는 절차'를 추가하여 그 중요도를 높였다. 영조 대에는 의례의 의미가 더 확대되어 왕비가 양잠신에 직접 제사하는 '작헌례' 절차를 더하여 '여성'이 '여성신격(神格)'에 직접 제사를 올리는 최초의 의례로 자리하게 되어 조선시대 국가제사의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였다. 이는 영조가 선농제를 행한 후 직접 밭을 가는 친경의례와 위상을 맞춘 것으로서 농사와 양잠행위의 중요성을 아울러 부각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 결과 영조 대에 정비된 친잠 관련 의례는 그 내용이 확대되어 11가지 의례로 정착된다. 이는 의례를 행하러 가기 위한 출궁 절차부터 왕세손, 혜빈궁이 왕비를 수행하는 절차, 왕비가 작헌례를 올린 후 친잠하는 의례, 왕이 교서를 반포하는 의례, 친잠을 마친 후 행하는 조현의(朝見儀), 왕비가 누에고치를 담은 상자를 받는 의례까지이다. 이러한 의례는 그 이전에 행해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규모로 확대된 것으로서 이는 영조 대 의례 정비 양상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들 의례의 주요 절차에는 음악이 수반되며 그 음악은 속악, 그리고 고취(鼓吹) 등을 포함한다. 영조 대의 친잠 관련 의례는 선잠제의 신격인 여성을 여성이 직접 제사하는 의례로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제정됨으로서 그 명분과 실제가 비로소 일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