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온유돈후(溫柔敦厚)

검색결과 8건 처리시간 0.021초

장육당(藏六堂)의 육가(六歌)와 완세불공(玩世不恭) (JANG-YOOK-DANG's and Irreverence by casting upon the world)

  • 윤영옥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 /
    • 제25집
    • /
    • pp.101-127
    • /
    • 2006
  • 장육당은 이별의 호이다. 그는 재사당(再思當) 이원의 아우다. 이원은 성종 20년에 급제하여 김종직의 문인으로 몰려 갑자사화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별은 형 원이 나주로 귀양감에 교외에서 눈물로 이별하였다. 이로부터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황해도의 평산에 집을 짓고, 그 집의 이름을 장육당이라 하였다. 늘 소를 타고 술을 싣고 향사의 기로들을 이끌고 낚시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냥도 하였다.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해가 저물어도 돌아가기를 잊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취하고, 취하면 노래하고, 혹 눈물 흘리며 울어 슬퍼하였다. 이별이 당호를 장육당이라 함은 $\ulcorner$잡아함경$\lrcorner$의 '거북이 있었는데 야간(野干)이란 짐승에게 잡히었다. 머리와 꼬리 그리고 네 발을 껍질 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으니 야간이 성을 내다가 가 버렸다. 부처님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거북이 머리와 꼬리 그리고 네 발을 감추듯이 스스로 육근(六根)을 감추고 있으면 마귀가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에서 취한 것이리라. 장육당은 재사당의 아우요 사육신인 박팽년의 외손자이다. 갑자사화에 형이화를 입음에 그의 형제들도 연좌되었다. 연산군이 폐위된 뒤에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장육당의 <육가>라는 것이 세상에 전파되었다. 퇴계는 이 이별을 평하여 ' 매우 오만하게도 세상을 버리고 자취를 숨겼다' 하였다. 퇴계는 노래 부르기(부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말로 가사를 짓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래하는 우리의 가곡이란 대체로 그 말이 음왜하기 때문에 말할 것이 못되었다. 그가 말한 우리말의 노래란<쌍화점>과 같은 비문인들의 가사를 가리킨 것이다. 그래서 문인들이 지은 <한림별곡>을 거론하게 되었는데, 그것마저 긍호방탕하고 설만희압하여 군자들이 마땅히 숭상할 바가 못된다고 거부하였다. 이 때 눈에 띈 것이 이별의 <육가>였다. 이별도 문인이었기에 한림들의 <한림별곡>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육가>가 더 낫다고 판단하였다. 판단의 기준으로는 형식과 내용이 다 고려되었을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육가>가 더 낫기는 하지만, 아깝게도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내실(內實)이 적다는 흠결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퇴계는 이 <육가>를 약방(略倣)하여 <도산육곡> 두 편을 지었다. 그러고도 이것이 료단(鬧端)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걱정하였다. 퇴계가 말한 '온유돈후'는 시교(詩敎)의 이상(理想)이다. 이 시교는 이미 한대(漢代)의 $\ulcorner$예(禮)$\lrcorner$에서 표방되어 온유돈후(溫柔敦厚) 시교야(詩敎也)'라 못박고. 플어서 '온(溫) 위안색온윤(爲顔色溫潤) 유(柔) 위청성화유(爲情性和柔), 시의위풍간(詩依違諷諫) 부지절사정(不指切事情) 고운온유돈후시교지야(故云溫柔敦厚是詩敎也)' 라 하였다. <육가>에는 이 시교의 외면적인 따스함과 내면적인 정(情)과 성(性)의 부드러움이 적고. 그 반대로 풍간하여 지절사정(指切事情)함이 강하였던 모양이다. 풍간하여 사정(事情)을 매몰차게 지적하여 논평하였음을 퇴계는 '완세불공(玩迷不恭)'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장육당은 청(淸)과 탁(濁)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것의 분별도 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완농(玩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진환(塵 )에서 초연(超然)했던 것이다. 천석고황(泉石膏 )으로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사시가흥(四時佳興)을 한가지로 하는 퇴계와는 그래서 다르다. 퇴계는 순풍(淳風)과 어진 인성(人性)을 긍정하였기에 만족하고. '고인(古人)의 녀던 길'을 끊임없이 행(行)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완세불공(玩世不恭)'과 '온유돈후(溫柔敦厚)'가 판별되어진다. 장육당이 '완세불공(玩世不恭)'했다면, 그것은 자취(自取)한 것이요. 퇴계의 '온유돈후(溫柔敦厚)'함도 스스로 취한 태도이다. 이 자취(自取)항에 시비(是非)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장육당이 너무 우뚝하기에 퇴계는 '위태견연(爲太傲然) 위태오연(遺世放跡)'이라 비판하였다.

  • PDF

인의 흡착능 평가를 통한 인공습지 하수처리 시스템의 여재 선발 (Screening of the Optimum Filter Media in the Constructed Wetland Systems through Phosphorus Adsorption Capacities)

  • 이홍재;서동철;조주식;허종수
    • 한국환경농학회지
    • /
    • 제22권2호
    • /
    • pp.148-152
    • /
    • 2003
  • 인공습지 하수처리장에 축적되어 하수처리장 수명의 제한인자로 작용하는 인의 포화치를 조사하기 위해 여재 입경별 최대 인 흡착능을 조사하여 최적의 여재를 선정하였고, 또한 유기물과 굴패각의 인 흡착제로서 사용가능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최대 인 흡착능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인공습지 하수처리장에서 하수처리장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여재별로 흡착제인 유기물 양을 달리하여 최대 인 흡착능을 조사하였고, 최적으로 선정된 여재에 Ca, Mg, Al, Fe 및 굴패각 첨가에 따른 최대 인 흡착능을 조사하였다. 여재 입경별 최대 인 흡착능을 조사한 결과 여재 입경이 작아질수록 최대 인 흡착능이 증가하는 경향으로 여재 대($4{\sim}10\;mm$), 중 ($2{\sim}4\;mm$) 및 소($0.1{\sim}2\;mm$)의 최대 인 흡착능은 각각 8, 10 및 22 mg/kg로서 여재 입경이 $0.1{\sim}2\;mm$인 여재소(C)가 최적의 여재이었고, 유기물과 굴패각의 최대 인 흡착능을 조사한 결과 유기물이 1,00 mg/kg 및 굴패각이 833mg/kg이었다. 입경별 여재에 유기물을 첨가하였을 경우 모든 여재에서 유기물 첨가량이 증가할수록 최대 인 흡착능이 점점 증가하였다. 따라서 인공습지 하수처리장에서 수초에 의해 쌓여 부식된 유기물은 인의 흡착능을 증가시켜 인 처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었다. 최적 여재인 여재 소(C)에 Ca, Mg, Al 및 Fe를 첨가하였을 경우 모든 조건에서 첨가량이 증가할수록 최대 인 흡착능도 점점 증가하였으며, 특히 Ca 0.1% 첨가시 인 흡착능이 885 mg/kg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굴패각을 여재에 첨가하여 흡착능을 조사한 결과 굴패각을 2% 첨가시 인 흡착능이 약 22 mg/kg에서 약 36 mg/kg으로 약 14 mg/kg이 증가하였다.기의 텍스트 레이아웃 디자인에 충분히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강조하고 있으나 친환경성이 입증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도 친환경 소재임을 내세워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칼리를 시용한 구보다 유의하게 높았는데(p<0.05), 이러한 경향은 이른 봄에 액상구비를 시용한 구에서 더욱 뚜렷하였다. 불과하였고 설명 후 이의 필요성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는 135명(71.4%)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동의서의 길이가 길어진다면 스스로 읽겠다(30명, 15.9%)기보다는 84.1%가 구두설명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임상시험시 발생하는 부작용 또는 문제점의 발생시 의사나 회사에 책임을 묻겠다는 대답이 76명(40.2%)으로 이 중 17명(9.0%)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다. 결 론 : 본 설문조사는 임상시험과 피험자 동의서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설문 조사로 대상인 암환자와 가족들이 비교적 정확하고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임상시험과 피험자 동의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며 피험자동의서의 간편성과 이해력의 향상에 대한 연구가 요구됨을 보여주었다. 논평하였음을 퇴계는 '완세불공(玩迷不恭)'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장육당은 청(淸)과 탁(濁)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것의 분별도 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완농(玩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진환(塵 )에서 초연(超然)했던 것이다. 천석고황(泉石膏 )으로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사시가흥(四時佳興)을 한가지로 하는 퇴계와는 그래서 다르다. 퇴계는 순풍(淳風)과 어진 인성(人性)을 긍정하였기에 만족하고. '고인(古人)의 녀던 길'을 끊임없이 행(行)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완세불공(玩世不恭)'과 '온유돈후(溫柔敦厚)'가 판별되어진다. 장육당이 '완세불공(玩世不恭)'했다면, 그것은 자취(自取)한 것이요. 퇴계의 '온유돈후(溫柔敦厚)'함도 스스로 취한 태도이다. 이 자취(自取)

시조와 별곡의 장르적 특성 (The Characteristics in the Genres of Sijo and Byul-gok)

  • 이찬욱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 /
    • 제22집
    • /
    • pp.143-171
    • /
    • 2005
  • 시조와 별곡은 정곡인 중국의 아락에 대립하는 한민족 고유의 속락으로 가창된 음락이다. 동시에 시조와 별곡의 노랫말 가사는 민간에 유전하던 속락의 곡조에 원래의 노랫말 가사와는 다른 새로운 노랫말 가사를 붙인 악곡의 창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조와 별곡은 가창을 전제로 한 시가문학이며 그 노랫말 가사는 선곡후사의 특징을 지닌다. 즉 모든 작품이 각각 서로 다른 개별악곡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에게 선험적으로 체득되어진 보편화된 장단으로 연행된 것이다. 민간에 유전하던 향락이 궁중에 인입되면서 5절의 구현에 맞지 않는 음락이라 하여 속락으로 판하되어서, $\lceil$고려사$\rfloor$ $\lceil$악지$\rfloor$$\lceil$악장가사$\rfloor$ 등에 별곡이란 제목으로 전하는 시가는 그 형식적 특징에 따라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청산별곡)$\cdot$(서경별곡)과 같은 고여속요와, (윤림별곡)$\cdot$(관동별곡)$\cdot$(죽계별곡)과 같은 경기체가가 그것이다. 그리고 별곡이라는 명칭이 붙은 또 다른 시가로는 조선조에 주로 사대부들에 의하여 왕성하게 창작된 가사가 있다. 이들 세 유형의 시가는 음악적 측면에서 보면 아락에 대립하는 속락으로서의 공통성을 지니기에 모두 별곡이라는 공통된 제목이 붙는다. 그러나 문학적 측면에서는 그 형식이 판연히 다르므로 별곡을 문학의 갈래를 규정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리하여 현재 별곡이라 명명된 시가를 그 형식적 특징, 작자와 향유층의 이념 및 사상 그리고 연행된 시대에 의거하여 속요, 경기체가, 가사로 일반화 하여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우리말 시가로 가창된 시조와 별곡은 인간의 성정을 온유돈후하게 교화하는 예락위정 사상과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기는 여민동락 정신을 구현한 민족예락의 정수이다.

  • PDF

시조의 사회적 기능 고찰 - 조선조 사회와 시조의 관계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ocial Functions of Sijo)

  • 박규홍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 /
    • 제19권1호
    • /
    • pp.127-153
    • /
    • 2003
  • 시의 사회적 기능이 있듯이, 조선조의 시조도 나름의 사회적 기능이 있었다. 16세기에 들면서 시조는 사대부들에 의해 특정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르로 주목을 받았다. 유교적 이념을 전달할 적절한 도구로 본 것이다. 특히 퇴계는 시조가 온유돈후한 내용을 담아 가자나 청자가 모두 유익함이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유교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시조나 훈민가는 향유자들로 하여금 이념적 동질성을 확인토록 하여 조선왕조체제유지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당시 경기체가는 그런 기능을 갖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신분질서의 요동, 통화경제의 발달, 부의 편재, 향락 추구 등의 변화가 초래된 조선 후기에 들면 조선 전기에 억제되었던 남녀성애를 노래하는 사설시조가 성행한다. 성애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이들 시조는 당시의 향락적 분위기, 부패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결국 조선조 붕괴에 일조하게 된다. 유교이념의 시조와 남녀성애의 시조, 양자는 한쪽이 성하면 한쪽이 쇠하는 상관관계는 조선조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진행되었다. 사설시조 담당층의 문제는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다. 향유계층의 폭이 넓어 꼭히 어느 계층을 담당층이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그 작자는 전문가들일 가능성이 많은데, 현인군자의 정음을 찾기를 표방하는 박효관 쪽보다는 그가 비난한 격낮은 소리패일 가능성이 크다. 망국의 노래쯤으로 여겨지는 고려 속가에 비해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가 훨씬 더 음설한 데도 사설시조를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각이 용인되는 것은 고려 속가가 고려왕조의 멸망에 일조한 데 그쳤다면, 사설시조는 조선왕조의 몰락과 봉건체제의 붕괴에 아울러 영향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 PDF

음악요약 생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Music Summarization)

  • 김성탁;김상호;김회린;최지훈;이한규;홍진우
    • 방송공학회논문지
    • /
    • 제11권1호
    • /
    • pp.3-14
    • /
    • 2006
  • 음악요약이란 주어진 음악 컨텐츠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한 부분이나 여러 부분들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요약 기술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음악요약을 위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다. 음악 컨텐츠 내에서 반복되는 구간을 음악요약으로 제공하는 기술과 특정이 다른 부분들의 일정구간을 모두 제공하는 기술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요약을 제공하는 알고리즘들을 제안하고 평가하였다. 반복되는 구간을 음악요약으로 제공하는 다중 레벨 벡터양자화를 이용한 알고리즘은 고정된 길이와 최적의 길이를 가지는 음악요약을 제공하는 알고리즘들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성능을 평가하였고, 음악 내에서 특정이 다른 부분들을 일정부분씩 취합하여 제공하는 2-D 유사도 행렬과 k-mean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집단화 방법을 이용한 방법의 평가는 주관적인 평가인 MOS 테스트로 평가하였다. 다중 레벨 벡터양자화를 이용한 음악요약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에서 고정된 길이의 음악요약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은 사람이 직접 요약한 결과와 제안한 방법으로 구한 요약과의 중첩도 (Overlapping Ratio)를 이용한 결과 기존의 방법들이 42.2% 와 47.3% 임에 비해 제안된 방법은 67.1%로 높은 성능을 보여주었고, 최적의 길이를 가지는 음악요약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은 음악에 따라 다른 길이를 가지는 반복되는 부분의 포함 정도를 나타내는 최적 중첩비율 (Optimal Overlapping Ratio) 을 측정한 결과 고정된 길이를 가지는 음악요약 보다 최적의 길이로 음악마다 다른 길이 의 반복되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표현함을 알 수 있었다. 집단화 방법을 이용한 알고리즘은 두 가지 질문들 (제공된 세그먼트들 중 특정이 비슷한 것의 개수, 제공된 세그먼트들 중 같은 구조에 속하는 것의 개수)을 이용한 MOS 테스트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환자에서 완전관해를 보였고, 원격전이와 국소재발이 각각 2명과 1명에서 관찰되었다. 결론: SMART를 사용한 IMRT를 도입하여 임상적으로나 선량측정상 이하선의 기능 보존이 가능하였으며, 또한 생물학적으로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향후 정확한 종양억제 효과와 만기 독성을 알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대상과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ty modulated radiation therapy, IMRT)를 이용한 최근의 결과와 비교하여 CK를 이용한 정위 방사선 치료는 생존율 측면에서 비슷하거나 나은 결과를 보였다. 또한 심각한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으며 짧은 기간의 치료로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치료 방법은 국소 진행된, 절제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에서 심각한 부작용 없는 효과적인 치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계획용 표적 체적은 CK 치료의 유용한 예후 인자로 사용될 것이다.인위적 활동에 의한 부분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었다.가>에는 이 시교의 외면적인 따스함과 내면적인 정(情)과 성(性)의 부드러움이 적고. 그 반대로 풍간하여 지절사정(指切事情)함이 강하였던 모양이다. 풍간하여 사정(事情)을 매몰차게 지적하여 논평하였음을 퇴계는 '완세불공(玩迷不恭)'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장육당은 청(淸)과 탁(濁)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것의 분별도 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완농(玩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진환(塵 )에서 초연(超然)했던 것이다. 천석고황(泉石膏 )으로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사시가흥(四時佳興)을 한가지로 하는 퇴계와는 그래서 다르다. 퇴계는 순풍(淳風)과 어진 인성(人性)을 긍정하였기에 만족하고. '고인(古人)의 녀던 길'을 끊임없이 행(行)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완세불공(玩世不恭)'과 '온유돈후(溫柔敦厚)'가 판별되어진다.

4개 간척 지구에 분포하는 식생과 토양 염류농도 (Soil Salinity and Vegetation Distribution at Four Tidal Reclamation Project Areas)

  • 이승헌;지광재;안열;노희명
    • 한국환경농학회지
    • /
    • 제22권2호
    • /
    • pp.79-86
    • /
    • 2003
  • 토양 제염이 토양 화학성 변화와 식물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간척농경지의 효율적인 관리방안에 대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본 연구를 실시하였다. 방조제 체절전후 자연식생이 존재하는 9개 지점에서 식생분포 특징을 조사하고 2개 지점에 대해서는 토양과 식생간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9개 조사지점에서 11목, 14과, 46속, 49종, 8변종, 1품종등 총 58종류의 식생분포가 관찰되었고 자연상태를 잘 유지한 대호식생보전구와 석문 국가공단 예정 부지에서의 출현종수가 다양하게 분포하였으며 해수를 유통시키고 있는 홍보지구나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식생은 10여종정도로 단순하였다. 9개 조사지점에서 가장 빈도가 높게 출현한 종은 벼과, 명아주과, 국화과에 속하는 나문재(Suaeda asparagoides (Miq.) Makino), 갯개미취(Aster tripolium L.), 갈대(Phragmites australis Trin.), 해홍나물(Suaeda maritima Dum.), 칠면초(Suaeda japonica Dum.), 천일사초(Carex scabrifolia Steud.)등이었다. 통양의 제염에 따라 염류-나트륨성(Saline-내??) 토양에서 염류(Saline) 토양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일반 토양으로 변화하였다. 명아주과의 식생은 염도(ECe)가 30 dS/m 전후인 토양에서 출현하여 10 dS/m까지 지속되고, 20 dS/m 전후에서 갯개미취, 산조풀, 사데풀 등이 출현하였으며 10 dS/m 이하에서는 일반육상에서 볼 수 있는 식생종들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토양제염과 동시에 식생의 천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외부에서 종자 등의 식물이 유입될 확률이 있어야하므로, 초기간척지의 식생을 조기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토양검정을 통해 적정 염도에서 정착할 수 있는 식생의 인공식재 내지 종자 산파를 통해 촉진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25\;{\pm}\;0.32$분, 제 2 군이 $3.05\;{\pm}\;0.34$분으로 두 실험군간 통계학적으로 유의성 있는 차이가 없었다. 근관 충전재의 제거 후 근관 벽의 청결도는 두 실험 군 모두에서 치관부 1/3이 중간이나 치근단 1/3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였으며 두 군 간의 차이는 없었다. 본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근관 충전 재료인 Resilon이 기존의 가타퍼챠와 실러를 사용한 충전과 비슷한 정도의 제거 용이성 및 근관 벽의 청결도를 보였음을 알 수 있었다.0 일 ), $1.1{\sim}5.6$ ( 평균: 2.9, 표준 편차: 0.8) 이었다. 단변 수 분석상 FRS, PVC, 체외 순환시간 (CPB) 및 술 후 12 시간째의 중심 정맥압 등이 LIT와 연관되었으나, 다변수 분석상 PVC (p=0.0018) 및 CPB (p=0.0024)만이 독립적으로 LIT를 예측하였다. 두 변수는 LIT 변이에 대하여 21.7%의 설명력이 있었으며, 두 변수를 이용한 회귀 분석식은 다음과 같았다. LIT=2.74-0.0158 PVC+0.00658 CPB. 결론: 새로이 정의된 폐혈관 유순도는 심장 외 도관을 이용한 단심실 교정 후의 흉관 거치 기간을 결정하는 중요한 예측 인자로서, 수술 전 위험 인자 분석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그것의 분별도 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완농(玩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진환(塵 )에서 초연(超然)했던 것이다. 천석고황(泉石膏 )으로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사시가흥(四時佳興)을 한가지로 하는 퇴계와는 그래서 다르다. 퇴계는 순풍(淳風)과 어진 인성(人性)을 긍정하였기에 만족하고. '고인(古人)의 녀던 길'을 끊임없이 행(行)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완세불공(玩世不恭)'과 '온유돈후(溫柔敦厚)'가 판별되어진다. 장육당이 '완세불공(玩世不恭)'했다면, 그것은 자취(自取)한 것이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광자(狂者)' 성향에 관한 연구 (A Study on Maewoldang, Kim Si-seup's Maniac Tendency)

  • 조민환
    • 대순사상논총
    • /
    • 제35집
    • /
    • pp.331-358
    • /
    • 2020
  • 이 논문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광자 성향에 관해 연구한 것이다. 광기의 속성에 대해 구분할 때 크게 마음에 품고 있는 광기를 드러내는 경우인 심광(心狂)과 행동거지의 광방함으로 표현되는 광기 차원의 형광(形狂)이 있다. 본고는 조선조 역사에서 보기 드문 형광과 심광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낸 김시습의 광기를 '장왕불반(長往不返)'과 '색은행괴(索隱行怪)'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김시습은 어렸을 때는 신동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책을 모두 불태우고' 그 길로 집을 떠나 승려가 되어 속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과거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미친 척[양광(佯狂)]'하고 숨어 살면서 괴팍하고 기이한 행적으로 괴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후회하지 않았다. 결연히 오랫동안 속세를 벗어나 돌아오지 않는 장왕불반의 삶을 지향하면서 유명한 산천을 두루 다니고, 아무런 욕심이 없이 '세상 밖[방외(方外)]'을 노닐었다. 때론 「대언(大言)」과 「방언(放言)」 같은 시를 통해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과 광기를 진솔하게 표출하였다. 이런 삶은 유가의 온유돈후(溫柔敦厚)함을 추구하는 중화미학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삶이다. 때론 '청광(淸狂)'이라고도 일컬어진 김시습은 '양광', 괴이한 행동, 방외적 삶, 속세와 관계를 끊어버리는 장왕불반의 삶 등을 통해 자신의 광기를 표출하였다. 김시습의 이 같은 광기어린 삶은 단순히 미친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조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깊은 뜻이 있었는데, 이런 김시습에 대해 이황은 색은행괴한 인물이라고 비판한다. 이황과 달리 선조의 명으로 「김시습전」을 쓴 이이는 김시습을 '심유적불(心儒迹佛)'이라 보면서 제한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 두사람이 김시습을 평가하는 내용은 달랐지만 김시습이 광자 성향을 가진 인물로 본 것은 동일하다. 이처럼 심광이면서 형광의 삶을 살았던 김시습은 주자학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조선조 유학사에서 볼 때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시조의 변이 양상 (The Aspects of Change of Sijo)

  • 강명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 /
    • 제24집
    • /
    • pp.5-46
    • /
    • 2006
  •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당대의 역사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틀과 내용이 조금씩 변하면서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이런 점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 실태 등을 반영해서 당시의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조를 시조답게 하는 시조성만은 그대로 고수해 왔기에 '시조'라는 장르가 현재까지도 생존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어떤 배경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3장이라는 정형성은 지켜졌으며, 3, 3조나 3, 4조를 유지했고, 또 종장의 첫 구 3자도 고수했다. 이러한 시조성은 시대적인 간극에도 불구하고 '시조'라는 공분모 안에 모두 수렴시킬 수 있는 동인을 마련했다. 한국시가에 있어서 시조는, 공적 기능에서 사적 기능으로 변모가 이루어진 최초의 양식으로서. 그 변이과정을 살펴본 결과. 고려말${\sim}$조선조의 평시조는 그 당시 조류에 부합해서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보아 이중적인 의미의 채색, 상징성 부여, 다채로운 문장 수식 등은 나타나지 않지만, 명천도(明天道) 정인륜(正人倫) 지향하는 성현의 가르침을 온유돈후(溫柔敦厚)하게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주제는 주로 그 당시 상황과 부합되는, 송축, 절의, 정쟁, 훈민, 한정, 강호도가, 안빈낙도, 애정 등이었다. 조선조 후기에 오면서는 사설시조(辭說時調)가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사림파의 득세와 양란(兩亂), 실학의 도입 등으로 조선조 후기에는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가 시가 양식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설시조는 당대의 봉건주의 파괴, 유교적 모랄에 대한 반발, 근대적 특성 보유 남녀평등등 사상, 지배층에 대한 고발 및 저항정신 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저항적 리얼리즘적 현실지향적인 성향을 띠며 특히 고발문학 저항문학의 지반을 형성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 그에 대한 사실적, 구체적 표현은 사실주의 정신의 매개항이 된다는 점에서 근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1905년 이후 신문에, 형식이나 내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평시조나 사설시조에서 변이된 형태를 취하는 일군의 시조가 등장했다. 변이된 형태는 시조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뿐만이 아니라, 수용적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이때부터 시조는 '읊고 부르는 형태'에서 주로 '읽는 기록물'로 인식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변이 된 시조 형태란, 당대의 시대를 풍자하는 '흥, 내지 흐응'이 삽입된 것, 종장의 어미가 생략된 것 등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긴박한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고시조의 틀, 즉 율격이나 자수에서 많이 이탈되어서인지, 그 생명은 길지 못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시조 창작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는데, 시조부흥운동은 최남선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작(詩作) 초기에는 서구지향의 시와 시조들 병행해서 쓰던 육당 최남선이, '조선국민문학(朝鮮國民文學)으로서의시조(時調)'라는 글을 통해 시조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시조부흥 운동을 선도한다. 그는 시조집, '백팔번뇌'도 출간하는데. 그의 전 시조집을 관통하는 것은 '조국 사랑'이라는 일 주제였다. 결국 육당은 고시조를 민족정신의 일환으로 보고, 시조양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의 역사 사회적인 상황에 부합되는 주제를 표출한다. 결국 육당도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의 시조는 현대성(現代性)과 시조성(時調性)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전자에만 치중한다면 자유시와의 변별성이 문제가 되며, 후자를 고수하려니 고루하고. 시적 묘미가 없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에 의해 평시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가 지니는 원형성에 대한 매력을 감지해서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 중 특히 선정주의 작품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특히 근대의식, 사회비판정신, 고발의식, 사실주의 정신 구현, 서민의식, 산문체 ·일상어 지향 등, 사설시조의 특징 및 성향을 잘 구현, 반영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듯이 현대의 시조 작가들은 우리의 고시가 형식을 다양하게 선택해서 다양한 주제를 표출하고 있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시조의 유연성은 앞으로 시조의 생명을 항구적으로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 시대적 변화와 상황 하에서 다시 새로운 양상을 취할 가능성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 '시조'는 한국인의 '영원한 정형시 장르'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