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후기 독서론의 변화 양상과 그것의 사상사적 의미를 추적하는 데 목표를 둔다. 이를 위해 사상 경향이 서로 다른 박세채, 정약용, 홍길주 세 사람을 선정하여 그들의 독서론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박세채는 전적으로 주자학의 범위 안에서 학문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의 독서궁리론은 독서의 범위가 주자학적 교학체계를 벗어나지 않고, 독서법이 경서의 도덕적 함의를 완미하고 체득하는 데 집중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는 경세에 대한 관심에서 예학을 중시하고 양명학 비판과정에서 지식 탐구의 중요성을 인정하였지만, 이 모두 도덕적 실천에 필요한 지식 즉 도학적 지식을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의미의 독서궁리론은 이미 이황 이이 단계에서부터 확립되어 왔던 것으로서 박세채의 경우는 물론, 19세기 말까지 조선의 대다수 학자들을 통해 주자학적 세계관을 확산 강화해 가는 장치로 작동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다른 한편에서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여러 각도에서 시도되었다. 이러한 주자학 비판은 당연히 종래의 독서궁리론에 대한 재검토를 수반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 예를 정약용과 홍길주 등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경학을 최고의 사상적 원천으로 삼았던 정약용은 학문방법론상에서 박람의 특징을 보였다. 그에게서 박람은 학문의 실용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면서, 동시에 경학의 탈주자학적 성격을 강화해 가는 통로였다. 문장가인 홍길주는 독서에서 특별히 깨우침을 강조하였다. 그는 한편에서 주자학적 형이상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을 조목조목 비판 부정하고 있는데, 결국 그가 말하는 깨우침은 통체로서의 천리에 대한 깨우침이 아니라 개체 하나하나의 이치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조선후기 사상사가 주자학으로부터 탈주자학으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고는 박세채의 예론과 고금절충론적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박세채는 현종대 기해예송, 민신의 대복사건, 갑인예송 등에서 송시열의 주장 및 서인예론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다가 이후 숙종 대 효종세실의, 태조추시의 등에서 송시열의 주장에 대한 신중론 및 비판을 제기하여 서인예론에서 탈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그가 저술한 예학설을 통해서도 검토할 수 있다. 생애 전반에 저술한 "복제사의(服制私議)"(1660), "부사위조위모이복의(父死爲祖爲母異服議)"(1667) 등과 생애 후반에 저술한 "국휼졸곡전장제설(國恤卒哭前葬祭說)"(1683), "관서혼상계약속(關西昏喪契約束)"(1686), "상제치역두설(喪祭値疫痘說)"(1690) 등을 비교함으로써 그의 고금절충론적 특징에 미묘한 변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예론은 고례(古禮)["의례(儀禮)"], 금례(今禮)["주자가례(朱子家禮)"], 시제(時制)[국제(國制)]를 절충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현종대 서인예론을 주장하던 시기에는 금례를 중심으로 고례와 시제를 절충하다가, 숙종대 서인예론을 탈피하면서 점차 시제를 중시하는 경향을 띄기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그의 예론은 금례를 중심으로 고례와 시제를 검토하던 고금절충론에서 시제를 중심으로 고례와 금례를 검토하는 고금절충론으로 변화해갔다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대(古代)의 의례(儀禮)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민속학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에 주목하고, "삼국유사"에 나타난 의례(儀禮), 특히 관(冠) 혼(婚) 상(喪) 제례(祭禮)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관례는 왕이나 귀족계층들의 자제들이 행했으며, 그 연령도 13세, 15세, 18세로 추정되는데 확실하지 않다. 고대에는 우리 나름대로의 관례를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혼례, 그 중에서 수로왕과 허황옥의 혼례 절차에 대한 기록은 고려 이전의 왕실의례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초의 왕실 혼례 절차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유화와 해모수의 사통 내용을 통해 당시의 혼인이 중매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려 초에 근친혼을 했다는 기록은 자료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상례 가운데 혁거세왕의 상례에 대한 기록은 최초의 상례(특히 왕실 상례)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로왕의 장례 내용을 통해 제후에 준하는 봉분을 사용했다는 점과, 탈해왕의 장사 기록을 통해 세골장 풍속과 소상을 만들었다는 것 등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대의 상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바, 자료적 가치가 높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제례, 특히 수로왕의 제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 예컨대 제사방식과 절차, 제전(祭田), 제수(祭需), 사당(祠堂), 진영(眞影) 등에 대한 기사들, 그리고 고대의 국가 제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삼국유사"는 신화, 설화적인 요소와 후대의 문식이 가미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대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민속학적으로나 예학사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본 연구는 가는장구채(Silene seoulensis) 추출물을 기능성 화장품소재로 개발하기 위해 isoscoparin을 지표성분으로 선정하고, 품질관리를 위해 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HPLC)를 이용하여 분석법을 개발하였다. 분석용 칼럼은 Unison US-C18을, 이동상은 0.05% (v/v) trifluoroacetic acid (TFA)와 메탄올을 사용하여 컬럼 온도는 35 ℃ 에서 유속 1.0 mL/min 로 검출파장은 330 nm에서 검출하였다. International conference on harmonization (ICH) 가이드라인(version 4, 2005)을 근거로 하여 특이성, 직선성, 정밀성, 정확성, 검출한계 및 정량한계를 분석하여 분석방법을 검증하였다. 분석결과, 검출한계 및 정량한계는 0.02 및 0.07 mg/mL로 나타났으며, 검량곡선은 상관계수 값이 0.99988로 양호한 직선성을 보였고 정밀성 분석결과도 0.46% 이하로 확인되었다. 또한, 회수율은 99.10 ~ 101.61% 범위로 정확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본 분석법은 가는장구채 추출물 지표성분의 분석법으로 적합한 시험법임이 검증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16-17세기 청주 사족의 동향을 이해하기 위한 사례 연구의 하나로 선행연구와 경주이씨 익제공파 대동보를 중심으로 서계 이득윤(1553-1630)의 생애와 학맥을 살펴보았다. 서계 이득윤은 일찍이 부친 섬계 이잠과 서기, 박지화로 부터 수학 하였으며, 학문의 근본지향을 '위기지학'에 두었다. 그리하여 그는 소학을 특히 강조 하였으며, 소학에 수록된 여씨향약을 보급하여 주자학적 세계를 구현 하려 하였다. 더욱이 부친의 뒤를 이어, 후생을 훈도하는 것을 자기의 책무로 삼아서 청주지역의 교육에 힘썼다. 그리하여 서계는 수기에 힘을 쏟았던 유학자 일 뿐만 아니라 치인, 계도에 있어서도 사회적 책임의식을 다 하였던 실천적 사림으로서 17세기 전반 청주 지역의 재지 사족의 학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득윤은 문인 이덕수와 함께 낭성팔현의 일인으로 청주지역에 기호학파 와 호서사림이 형성 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신항서원의 창건에 주역으로서 청주지역의 기호학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당파를 가리지 않고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예학정신을 계승한 기호사림 이다. 자신의 문인 이었던 이덕수가 기호학파의 학맥과 연이 닿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그의 역할을 통하여 김장생, 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와 호서사림은 비교적 쉽게 17세기 후반부터 청주지역에 그 기반을 마련하고 세력을 형성 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18세기에 예학을 대표하는 인물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예설 중 상제례(喪祭禮)와 관련하여 입후(立後)와 승중(承重), 곧 한 가문/국가의 후사를 세우고 종통(宗統)을 계승하는 문제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호 이익은 종통의 문제에서는 국가와 개인, 황실과 대부, 서인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대일통(大一統)의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성호는 이러한 대일통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각 계층마다 신분과 현실적 여건에 맞는 예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서인가례(庶人家禮)'의 이념과 실천을 내세웠다. 각 계층이 신분에 맞게 예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회의 기초 질서를 세우고 사회를 통합하는 길이라 여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의 논제로 승중, 입후와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의 부재'를 선고하는 시점, 그리고 이와 맞물려 누군가 그 가장의 부재를 대신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였다. 성호는 왕실이든 가문 내에서든 '종통을 잇는다는 것'과 '아버지의 후사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보았다. 성호는 기본적으로 종통의 문제를 왕실과 대부, 사서인 등 계층에 따른 별개의 문제로 구분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왕실과 대부, 그리고 사서인에게서 후사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그 양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성호 이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는 부자(父子)의 윤리'가 관통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대일통(大一統)의 종통(宗統)의 논리를 세우는 한편, 이를 계층별 예의 실천을 통해 사회의 기본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뜻에서 '서인가례'의 정신을 주장했던 예 정신 및 실천의 맥락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주대(周代)의 종묘(宗廟)는 '조(朝)의 의례(儀禮)' 등 수많은 의례들이 이행되는 장소인 군주의 정전(正殿)으로, 태침(太寢) 로침(路寢) 정침(正寢) 등은 그것의 또 다른 명칭들이다. 보다 더 이전 대(代)에서는 태실(太室)과 세실(世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태실(太室)의 용어는 서주시대(西周時代) 초기에 대한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서경(書經)"에서는 노침(路寢)은 물론 '침(寢)'자의 사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반면, '실(室)'자는 우서(虞書)를 제외한 모든 서(書)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선군(先君)의 신주(神主)를 모신 종묘(宗廟)는 좌측에, 토지와 곡식의 신(神)을 모신 사직단(社稷壇)은 우측에 세운다'고 하는 "좌조우사(左祖右社)"라는 언급이 처음으로 기록된 곳은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에서의 '장인영국(匠人營國)' 부분이다. 아울러 일명 '좌묘우사(左廟右社)'라고 하는 "우사직(右社稷) 좌종묘(左宗廟)"의 언급은 "춘관종백(春官宗伯)"에 수록된 제사를 주관하는 소종백(小宗伯)의 여러 직분들 중의 하나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에 출현한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의 "좌조우사(左祖右社)"라는 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현(鄭玄) 등 한대(漢代) 이후의 많은 예학자(禮學者)들이 여기서의 '좌(左)'와 '우(右)'를 종묘 사직의 좌우 배치 관계로 해석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직에서의 (제사의) 일을 돕고[우(佑)], 종묘에서의 (제사의) 일을 돕는다[좌(佐)]."라는 의미로 보아야 '종백(宗伯)'의 직분에 부합된다. '전묘후침(前廟後寢)'은 "주례" "하관사마(夏官司馬)"와 "예기(禮記)" "월령(月令)"편을 설명한 정현(鄭玄)의 주(注)에서 "전왈묘(前曰廟) 후왈침(後曰寢)"이라는 표현에서 시작된 말이다. 정현과 동시대의 채옹(蔡邕)은 "전유조(前有朝) 후유침(後有寢)"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본고에서는 전묘후침(前廟後寢) 설(說)에 대해 두 가지 가설(假說)을 논하였다. 하나는 '앞쪽에는 정무(政務)를 보는 조정(朝廷), 뒤쪽에는 편안한 실내 공간'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포함된 두 가지 시설을 표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앞쪽에는 치조(治朝) 영역으로서의 종묘 건축물, 뒤쪽에는 사친(私親)들과의 거주 영역인 주거용 건축물'로서, 독립된 별개의 두 가지 건축물을 표현한 것이다.
본 논문은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소론(少論) 계열 인물인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을 대상으로, 그가 남긴 산문 가운데 논설류 문장을 고찰한 글이다. 최석정은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제자이면서 조선 중후기 소론의 영수로 활약한 인물이다. 남구만-최석정-조태억(趙泰億, 1675~1728)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소론의 계보를 잇는 중심인물로서 정치사와 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존의 연구는 주로 정치사적, 사상사적 입지와 의의를 밝히는 데에 치중하였고, 학문적으로는 예학(禮學), 산학(算學), 어학(語學)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소략하다 못해 전무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석정의 문학 가운데 논설류 문장에 집중하여 그 문학성을 가늠하고자 한다. 그 예비적 고찰로서 1장에서는 최석정의 문학에 대한 제 평가들을 살펴보았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최석정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일정 수준을 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장에서는 "명곡집(明谷集)" 소재 논설류 산문을 개관하였고, 3장에서는 최석정의 논설류 문장의 특징적인 면모를 살펴보았다. 최석정이 지은 논설류 문장은 총 14편으로, 그 창작시기는 문과에 급제한 1671년 즈음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걸쳐있다. 이 가운데 본 논문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글은 "순욱론(荀彧論)", "부자대가론(夫子待賈論)" 그리고 "문언계사변(文言系辭辨)"이다. 기존의 논의를 뒤집는 역발상이 돋보이면서 구성면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이는 글이 "순욱론"이라면, 설득력을 높이는 유비(類比)를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하되 기존의 시각을 전환시킨 글이 "부자대가론"이다. 또한 상대방 주장의 대전제(大前提)를 무너뜨려 반박하는 논리적 정합성을 보이면서도 어휘나 문장, 구성의 형식미에서도 그 공력을 들인 글이 "문언계사변"이다. "순욱론"은 순욱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제시한 논설류 문장이다. 그의 재능과 행적, 처세와 절의에 대해 다양한 평가들이 있었는데, 이처럼 첨예하게 갈리는 논란 속에서 자신의 식견과 통찰로 순욱의 인물상을 새롭게 제시한 글이 바로 "순욱론"이다. 특히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보이는데 '재능을 구사하는 어려움[재난(才難)]'이라는 의제 안에 다시 '순욱에 대한 논의[순욱론(荀彧論)]'를 개진한 점이 특징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부자대가론"은 어제응제(御製應製)로 지은 글인데, 공자(孔子)의 "팔아야지, 팔아야겠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고지재고지재(沽之哉沽之哉), 아대가자야(我待賈者也).]"라는 언급을 의제(議題)로 삼은 것이다. 이 글은 무엇보다도 유비(類比)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이러한 유비의 활용은 주제를 구현함에 있어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한편 최석정은 기존의 논의와 궤를 같이 하여 공자의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다가 끝부분에서는 군주의 입장에서 논의를 전환시켜 군왕에 대한 권면으로 논설류 문장을 끝맺음하였다. "문언계사변"은 "주역(周易)"의 "문언(文言)"과 "계사(系辭)"가 공자의 저술이 아니라는 구양수(歐陽修)의 논의에 정면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글이다. 이 글의 특장은 반박하는 논리의 정합성도 있겠지만 어휘나 문장, 단락 구사의 측면에서도 탁월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최석정은 구양수가 대전제로 삼은 논리를 반박하는 기제로 삼았다. 또한 이 글은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총 다섯 단락으로 구성하되 각 단락은 정연하게 안배하였다. 또한 순차적으로 논거들을 제시하되, 뒤로 갈수록 논거의 중요도가 강화되는 점층법을 구사하였다.
본고는 조선 중기 사대부 여성 윤씨부인의 일생을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선비정경부인행장(先?貞敬夫人行狀)"을 주 자료로 하여 재구하여, 아들에 의해 형상화된 사대부 여성의 여사(女師)적 이미지를 고찰하였다. 윤씨 부인의 삶은 한 마디로 여사적(女師的) 삶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녀는 당대 최고 명문가인 해평 윤문의 외동 딸로 태어나 할머니인 정혜옹주에게 엄격한 훈육을 받고 강한 의지력과 절제력을 지닌 사려 깊은 여성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조선 최고의 예학 집안인 광산 김문으로 출가하지만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에 남편 김익겸이 순절하여, 윤씨부인은 남편,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여 가문의 여사가 되었다. 집안의 정신적 지도자, 여사로 윤씨부인은 손녀 딸 인경왕후를 덕망을 갖춘 왕가의 여인으로 훈육하였다. 그녀는 손자, 조카들의 교육에도 열과 성을 다하였는데, 그 결과 두 아들과 손자가 대제학에 오르는 가문의 번성을 이루게 된다. 만년에 연이은 정변으로 가문에 위기가 닥쳤을 때도 윤씨부인은 집안의 여사로서 중심을 잡고 법도를 준수하여 가문의 앞날을 기약하였다. 손자와 종손들에게 학업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고, 며느리, 손부들에게는 근검한 집안의 법도를 지킬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보통 사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고난과 좌절을 강인한 의지로 극복해 낸 윤씨부인의 삶은 가부장 제도에 순종한 여성의 수동적 선택으로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녀는 아름다운 자질을 지니고 태어난 현명한 여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능동적으로 걸어간 것이다. 윤씨부인은 고난과 궁핍을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하며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는 삶에 진정한 가치를 둔 진정한 스승, 여사(女師)였던 것이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게시일 2004년 10월 1일]
이용약관
제 1 장 총칙
제 1 조 (목적)
이 이용약관은 KoreaScience 홈페이지(이하 “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이하 '서비스')의 가입조건 및 이용에 관한 제반 사항과 기타 필요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제 2 조 (용어의 정의)
① "이용자"라 함은 당 사이트에 접속하여 이 약관에 따라 당 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회원 및 비회원을
말합니다.
② "회원"이라 함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하여 당 사이트에 개인정보를 제공하여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부여
받은 자를 말합니다.
③ "회원 아이디(ID)"라 함은 회원의 식별 및 서비스 이용을 위하여 자신이 선정한 문자 및 숫자의 조합을
말합니다.
④ "비밀번호(패스워드)"라 함은 회원이 자신의 비밀보호를 위하여 선정한 문자 및 숫자의 조합을 말합니다.
제 3 조 (이용약관의 효력 및 변경)
① 이 약관은 당 사이트에 게시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회원에게 공지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합니다.
② 당 사이트는 이 약관을 개정할 경우에 적용일자 및 개정사유를 명시하여 현행 약관과 함께 당 사이트의
초기화면에 그 적용일자 7일 이전부터 적용일자 전일까지 공지합니다. 다만, 회원에게 불리하게 약관내용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최소한 30일 이상의 사전 유예기간을 두고 공지합니다. 이 경우 당 사이트는 개정 전
내용과 개정 후 내용을 명확하게 비교하여 이용자가 알기 쉽도록 표시합니다.
제 4 조(약관 외 준칙)
① 이 약관은 당 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관한 이용안내와 함께 적용됩니다.
② 이 약관에 명시되지 아니한 사항은 관계법령의 규정이 적용됩니다.
제 2 장 이용계약의 체결
제 5 조 (이용계약의 성립 등)
① 이용계약은 이용고객이 당 사이트가 정한 약관에 「동의합니다」를 선택하고, 당 사이트가 정한
온라인신청양식을 작성하여 서비스 이용을 신청한 후, 당 사이트가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합니다.
② 제1항의 승낙은 당 사이트가 제공하는 과학기술정보검색, 맞춤정보, 서지정보 등 다른 서비스의 이용승낙을
포함합니다.
제 6 조 (회원가입)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은 당 사이트에서 정한 회원가입양식에 개인정보를 기재하여 가입을 하여야 합니다.
제 7 조 (개인정보의 보호 및 사용)
당 사이트는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회원 등록정보를 포함한 회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회원 개인정보의 보호 및 사용에 대해서는 관련법령 및 당 사이트의 개인정보 보호정책이 적용됩니다.
제 8 조 (이용 신청의 승낙과 제한)
① 당 사이트는 제6조의 규정에 의한 이용신청고객에 대하여 서비스 이용을 승낙합니다.
② 당 사이트는 아래사항에 해당하는 경우에 대해서 승낙하지 아니 합니다.
- 이용계약 신청서의 내용을 허위로 기재한 경우
- 기타 규정한 제반사항을 위반하며 신청하는 경우
제 9 조 (회원 ID 부여 및 변경 등)
① 당 사이트는 이용고객에 대하여 약관에 정하는 바에 따라 자신이 선정한 회원 ID를 부여합니다.
② 회원 ID는 원칙적으로 변경이 불가하며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변경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해당 ID를
해지하고 재가입해야 합니다.
③ 기타 회원 개인정보 관리 및 변경 등에 관한 사항은 서비스별 안내에 정하는 바에 의합니다.
제 3 장 계약 당사자의 의무
제 10 조 (KISTI의 의무)
① 당 사이트는 이용고객이 희망한 서비스 제공 개시일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② 당 사이트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보안시스템을 구축하며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공시하고 준수합니다.
③ 당 사이트는 회원으로부터 제기되는 의견이나 불만이 정당하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 즉시 처리하여야 합니다. 다만, 즉시 처리가 곤란한 경우는 회원에게 그 사유와 처리일정을 통보하여야
합니다.
제 11 조 (회원의 의무)
① 이용자는 회원가입 신청 또는 회원정보 변경 시 실명으로 모든 사항을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하여야 하며,
허위 또는 타인의 정보를 등록할 경우 일체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② 당 사이트가 관계법령 및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의거하여 그 책임을 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회원에게 부여된
ID의 비밀번호 관리소홀, 부정사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회원에게 있습니다.
③ 회원은 당 사이트 및 제 3자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제 4 장 서비스의 이용
제 12 조 (서비스 이용 시간)
① 서비스 이용은 당 사이트의 업무상 또는 기술상 특별한 지장이 없는 한 연중무휴, 1일 24시간 운영을
원칙으로 합니다. 단, 당 사이트는 시스템 정기점검, 증설 및 교체를 위해 당 사이트가 정한 날이나 시간에
서비스를 일시 중단할 수 있으며, 예정되어 있는 작업으로 인한 서비스 일시중단은 당 사이트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공지합니다.
② 당 사이트는 서비스를 특정범위로 분할하여 각 범위별로 이용가능시간을 별도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그 내용을 공지합니다.
제 13 조 (홈페이지 저작권)
① NDSL에서 제공하는 모든 저작물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KISTI는 복제/배포/전송권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② NDSL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상업적 및 기타 영리목적으로 복제/배포/전송할 경우 사전에 KISTI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③ NDSL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할 수 있습니다.
④ NDSL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무단 복제, 전송, 배포 기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
저작권법 제136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제 14 조 (유료서비스)
① 당 사이트 및 협력기관이 정한 유료서비스(원문복사 등)는 별도로 정해진 바에 따르며, 변경사항은 시행 전에
당 사이트 홈페이지를 통하여 회원에게 공지합니다.
②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려는 회원은 정해진 요금체계에 따라 요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제 5 장 계약 해지 및 이용 제한
제 15 조 (계약 해지)
회원이 이용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때에는 [가입해지] 메뉴를 이용해 직접 해지해야 합니다.
제 16 조 (서비스 이용제한)
① 당 사이트는 회원이 서비스 이용내용에 있어서 본 약관 제 11조 내용을 위반하거나,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 2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없는 경우
- 기타 정상적인 서비스 운영에 방해가 될 경우
② 상기 이용제한 규정에 따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에게 서비스 이용에 대하여 별도 공지 없이 서비스 이용의
일시정지, 이용계약 해지 할 수 있습니다.
제 17 조 (전자우편주소 수집 금지)
회원은 전자우편주소 추출기 등을 이용하여 전자우편주소를 수집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제 6 장 손해배상 및 기타사항
제 18 조 (손해배상)
당 사이트는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와 관련하여 회원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당 사이트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손해발생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합니다.
제 19 조 (관할 법원)
서비스 이용으로 발생한 분쟁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민사 소송법상의 관할 법원에 제기합니다.
[부 칙]
1. (시행일) 이 약관은 2016년 9월 5일부터 적용되며, 종전 약관은 본 약관으로 대체되며, 개정된 약관의 적용일 이전 가입자도 개정된 약관의 적용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