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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르시펠트(C.C.L.Hirschfeld) 정원예술론의 의미와 가치의 현대적 해석 (Interpretation of C.C.L.Hirschfeld's Theory of Garden Art in Contemporary Meaning and Its Significance)

  • 조경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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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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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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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크리스티안 케이 로렌츠 히르시펠트(Christian Cay Lorenz Hirschfeld)(1742-1792)는 18세기 독일의 미학자이자 정원이론가로 당대에 '풍경식 정원예술의 아버지'라고 불리었다. 그는 '정원예술론'이란 5권의 저작에서 정원이론을 집대성하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가장 포괄적인 정원이론서로 여겨진다. 정원역사에서 식물소재, 공간구성요소와 정원유형 등을 다루고 있는 이 이론서는 당대에 유럽에 널리 알려졌고, 이로 인해 영국 풍경식정원을 널리 보급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그러나 히르시펠트의 정원론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이 논문은 히르시펠트 정원론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현대적 관점에서의 주요 쟁점을 해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히르시펠트 정원이론은 18세기 독일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에 태동되었고, 자연이 지닌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독일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당대 독서문화가 활성화되고 기행문학이 유행하게 된 사회 현상이 정원이론서가 소비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히르시펠트 정원론이 기여한 바와 이를 재해석할 수 있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원예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둘째, 히르시펠트는 정원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전제 아래 자연의 원형 경관과 고안된 정원과의 관계를 규명하였으며, 정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하고 끌어낼 때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주창하였다. 셋째, 히르시펠트는 특정 정원의 인상과 관념이 연합하여 화학적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그는 유쾌하고 쾌활한 축제와 같은 정원, 온화하고 멜랑코리한 정원, 낭만적인 정원, 장엄한 정원 등으로 구분하였다. 넷째, 그는 정원에서의 움직임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국면임을 강조하였다. 움직임이 중시되는 풍경식정원에서 풍경화식 재현방식이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다섯째로는 정원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신이 구현된 장소임을 환기시켰고, 나아가 삶의 은유로서 윤리적 정원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히르시펠트의 정원론은 18세기에 저술된 이론적 저작으로 현재적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실천적 함의가 부족하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공공 정원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19세기 도시공원운동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정원예술의 위상제고, 지역성의 강조, 실천이념으로 중재 개념이 그의 이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무엇보다도 정원문화가 새롭게 부각되는 오늘날 인문학적 조경론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말기의료의 경제적 요소에 관한 논의: 미국 메디케어 상황을 중심으로 (Health Economic Approach to End-of-Life Care in the US: Based on Medicare)

  • 석리언
    • 의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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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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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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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한 자료에 의하면 2011년 미국의 의료비 지출 총액은 국내총생산의 약 18 퍼센트에 달하였으며, 그 비율은 다른 대다수 선진국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중 메디케어 비용은 전체 의료비의 21 퍼센트인 5540억 달러 였는데, 환자의 최후 6 개월에 들어간 의료비는 그 5540억 달러의 28 퍼센트 (전체 의료비의 5.9 퍼센트)인 170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러한 말기의료의 고비용성은 어떤 사유에 기인하며, 그 해소 방안은 무엇인가. 지난 수십 년 간의 의료경제학적 연구는 말기의료가 일반적으로 공급민감성을 지니며 비용대비 효율성이 매우 낮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의료서비스 공급의 양은 질병의 정도나 환자의 선호도와는 무관하고, 그보다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말기의료에서는 의료자원이 과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더 많은 의료처치에 더 나은 효용"이라는 일반적인 추론과는 반대로, 많은 의료처치의 결과는 오히려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다. 실제 환자들의 선호와 관심사는 격렬한 말기의료가 기도하는 것과는 아주 달랐던 것이다. 이 논문은 먼저 말기의료에서의 공급민감성의 원인을 분석한다. 그 원인으로는 격렬한 치료와 그 효용성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의사들의 환자에 대한 직업적인 사명의식, 환자 자신의 말기의료 의향결정의 부재, 의사들의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 의료기관의 경영차원에서의 관리전략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논문에서는 말기의료의 공급민감성에서 연유하는 과잉진료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사전의료의향서 제도의 활성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기관 경영관리전략적 관점에서의 방안이다. 우선 사전의료의향서의 활용도를 제고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즉 의사들의 말기의료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하는 새로운 의료윤리 교육 실시, 의사와 환자 간 말기의료에 대한 소통 기회의 강화, 환자와 말기의료에 대한 대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의사에 대한 보상제도 도입, 일반 공공에 대한 관련 교육 확대, 온라인 등록시스템과 같은 용이하고도 공식적인 사전의료의향서 등록체제의 구축 확대 등이 필요하다. 경영관리적 측면에서는 대체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의료공급자로서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등의 새로운 재무전략과 경영교육계획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효과적으로 말기의료의 경제적 문제점을 해소하고 환자에게 더 나은 의료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료 환자 국가 등 모든 부문에서 관행과 오해에서 비롯된 신조가 시급히 수정되어야 하고, 그 기초 위에서 제도와 문화가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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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병서(兵書) 편찬(編纂)과 병학(兵學) 사상(思想) (Compilation of Books on Military Arts and Science and Ideology of Military Scienc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 윤무학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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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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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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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논문은 조선 초기에 편찬된 병서(兵書)를 통하여 지식인들의 병학(兵學) 사상을 개괄한 것이다. 선초는 대외적으로는 남북으로 외세(外勢)를 극복하고,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왕조(王朝)의 기반을 확립하는 상황이었으며, 이것은 병서 간행에 있어서도 전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병서는 병학 자체의 정립 목적과 아울러 여말(麗末)의 무장(武將)이자 조선(朝鮮)의 개조(開祖)로서 활약상을 반영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고려하고 있다. 선초에 출간된 병서는 일부 전쟁사 기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경칠서(武經七書)와 그 주해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병학 정립의 시급성과 아울러 우리나라 고래의 병서가 전해지지 않았던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은 무경칠서를 권모궤계(權謀詭計)에 치우친 것으로 평가하고 유가적 입장에서 병학을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로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리적(地理的) 차별성이 병학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병학과 음양가(陰陽家), 병학과 유가(儒家)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선초의 병서에서는 무엇보다 장수의 문무겸전(文武兼全)의 리더십과 군대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 측면에서 예악(禮樂)과 병형(兵刑)의 겸용(兼用)을 강조하고, 순자(荀子)의 '부민(附民)'(일민(壹民))의 사상을 대량으로 원용(援用)하고 있다. 이 점은 중국의 병가(兵家)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성리학의 정립 과정에서 맹자를 전제로 하는 것과는 다른 경향이다. 요컨대 선초 지식인들은 문무병용(文武竝用)이라는 전제하에 병학을 유가의 성현(聖賢)과 연계시키고, 양자의 접합점으로서 인의(仁義), 예악(禮樂), 충효(忠孝), 삼강(三綱), 오륜(五倫) 등의 덕목을 들고 있다. 특히 병학을 유가의 삼강이나 오륜과 연계시키는 것은 중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며, 한 마디로 조선 초기 병학의 특징은 '병학(兵學)의 윤리화(倫理化)'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상(喪)·제례(祭禮) 실천과 종통(宗統)의 이상 -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승중(承重)·입후(立後) 논의를 중심으로 - (The Practice of Funerary and Ancestor Memorial Service and the Theory of Jongbeob in the Eighteenth Century: Focusing on Seongho Lee Ik (星湖 李瀷)'s Discussion on Seungjung (承重) and Yiphu (立後))

  • 김남이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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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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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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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논문은 18세기에 예학을 대표하는 인물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예설 중 상제례(喪祭禮)와 관련하여 입후(立後)와 승중(承重), 곧 한 가문/국가의 후사를 세우고 종통(宗統)을 계승하는 문제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호 이익은 종통의 문제에서는 국가와 개인, 황실과 대부, 서인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대일통(大一統)의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성호는 이러한 대일통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각 계층마다 신분과 현실적 여건에 맞는 예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서인가례(庶人家禮)'의 이념과 실천을 내세웠다. 각 계층이 신분에 맞게 예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회의 기초 질서를 세우고 사회를 통합하는 길이라 여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의 논제로 승중, 입후와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의 부재'를 선고하는 시점, 그리고 이와 맞물려 누군가 그 가장의 부재를 대신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였다. 성호는 왕실이든 가문 내에서든 '종통을 잇는다는 것'과 '아버지의 후사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보았다. 성호는 기본적으로 종통의 문제를 왕실과 대부, 사서인 등 계층에 따른 별개의 문제로 구분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왕실과 대부, 그리고 사서인에게서 후사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그 양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성호 이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는 부자(父子)의 윤리'가 관통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대일통(大一統)의 종통(宗統)의 논리를 세우는 한편, 이를 계층별 예의 실천을 통해 사회의 기본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뜻에서 '서인가례'의 정신을 주장했던 예 정신 및 실천의 맥락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낙인효과와 적대적 배제 정치 - '종북좌파'/'친일독재 세력'을 중심으로 - (The Labeling Effect and the Politics of hostile Exclusion in Korean Society - Centered on 'Pro-North Korean leftist Forces'/'Pro-Japanese Dictatorship Forces' -)

  • 선우현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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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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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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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은 한국사회의 보수 집권 세력이 오랫동안 작동시켜 온, 동시에 그 정치 공학적 실효성이 여전히 발현되고 있는 이념적 정치적 낙인찍기의 횡행(橫行)과 그 효과에 기초한 적대적 배제 정치의 활성화 실태가 지닌 본질적인 난점과 그 부당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해 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로부터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잠정적' 결론을 이끌어냈다. 우선, 해방 이후 한국사회를 장악, 지배해 온 소위 '보수 집권 세력'은 본질상 외세 의존적 반민족적인 동시에 반민주 반민중적인 '친일 독재 (잔존 및 추종)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친일 독재 집단으로서의 보수 집권 세력은, 자신의 본질적 한계와 실체를 은폐하고 지배계급으로서의 지위와 기득권을 항시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통치 기법의 하나로, 자신을 향한 비판적 저항 세력을 반국가적 비국민으로 규정하여 그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배제가 불가피하고 정당한 것인 양, 구성원들로 하여금 오인케 만드는 낙인효과 및 그에 기초한 적대적 배제의 정치(술)을 구사해 왔다. 셋째, 독재 정권 등에 맞서 비판적 거부 투쟁을 전개한 민주(화) 세력에 대해 '종북좌파' 등으로 규정지어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행태는, 정치 공학적으로 기획 연출된 '근거 없는' 낙인찍기의 전형적 사례이다. 동시에 그에 따른 현실적 효과를 이용해 민주(화) 세력을 한국사회에서 영구히 배제 추방하고, 통치권과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장악, 향유하겠다는 것이 보수 집권세력이 구사한 적대적 배제 정치의 최종적 지향점이다. 넷째, 친일 독재 세력이라는 규정은 사실상 보수 집권 세력의 '본질적 실체'를 가리키는 바, 보수 지배층에 씌어진 '친일 독재 세력'이라는 낙인은 '결코'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치밀하게 기획된 '근거 없는' 낙인찍기에 해당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더불어 그것을 통한 정치 사회적 효과를 이용해 모종의 정당화될 수 없는 불순한 정략적 의도를 관철 지으려는 적대적 배제정치의 조작적 수법과도 연관성이 없음이 밝혀졌다. 끝으로, 일부 호남 출신 지식인 및 정치인들이 주축이 되어 제기한 '영남 패권주의' 담론, 특히 노무현 정권과 친노(친문)을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 세력의 하나로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사실상 노무현 및 친노(친문)에 대한 자신들이 지닌 '정서적 거부감'을 무리하게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는 기획의 '불완전한' 산물로서, '근거 없는' 낙인찍기 행태이자 그를 통해 모종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규범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정치적 배제술의 하나임이 확인되었다. 이후의 작업에서는, 특정 정략적 목적을 위해 치밀하게 기획되고 조작된, 정치 윤리적 차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낙인찍기의 효과와 그에 터한 적대적 배제의 통치술이 이 사회에서 종식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해 보는데 매진할 것이다.

사랑과 정의, 양립 가능한가 - 폴 리쾨르 이론을 중심으로 - (Love and Justice are Compatible ? - In Theory of Paul Ricœur)

  • 이경래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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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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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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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서구의 도덕 문화에서 사랑과 정의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두드러진 두 개의 명령이다. 하나는 헤브라이즘의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전통에 속한다. 그만큼 두 개념은 인간 공동체 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개념이다. 그런데 서로 배타적 관계로 보이는 이 두 명령은 양립 가능할까? 그들의 화해를 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 두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의 다층성으로 인해 그들 각각에 대한 정확한 개념 분석과 다각도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출발하여 이 두 개념이 무얼 말하는지 개념 분석 작업을 했으며, 그리고 사랑과 정의의 담론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폴 리쾨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끝으로 이 두 개념이 과연 문학 작품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그 문학적 형상화의 사례들(스탕달, 알베르 카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통해 허구적이나마 삶 속에 구현된 모습들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두 개념에 대한 개념 분석, 담론 분석, 이야기 분석을 차례로 살펴본 결과,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사랑과 정의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문제는 아니었다. 부정한 사랑의 문제점이나 사랑이 결여된 정의사회의 냉정함과 비현실성 등은 스탕달과 알베르 카뮈의 소설적 형상화나 그들의 실제 논쟁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정한 온정주의에서는 사랑의 힘이 정의의 손길을 일정부분 차단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차라리 사랑과 정의, 그 양자를 함께 보듬어 양립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 사회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여기서 우리는 폴 리쾨르의 표현처럼 '상황에 맞는 도덕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려 깊은 균형'에서 그 양립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러한 이상적인 상황은 차원 높은 시민의식이 발휘되는 연대의식과 상호 배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고통을 함께 하는 연민 등이 개입된 사랑의 형태가 분배적 정의 원리와 결합되었을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정의만을 추구하다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자비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이미 그는 이러한 상황에 따른 도덕적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사랑은 정의를 지켜주고, 정의는 사랑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한다. 정의는 초윤리적 사랑을 도덕 범주로 환원하는 데 일조하며, 사랑은 정의가 한껏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성주의(주지주의)'가 내포하는 3가지 의미 - 『진리론(이성, 양심과 의식)』을 중심으로 - (Three meanings implied by Thomas Aquinas' "intellectualism")

  • 이명곤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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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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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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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윤리 도덕적인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유는 '주지주의(지성주의)'라 불린다. 이는 다만 도덕적 실천에서 의지보다 지성이 앞서거나 중요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형이상학적으로 그리고 정신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앎의 확실성에 관한 문제'로 '앎의 제1원리들'을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토미즘에서는 이성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앎들이 존재하는데, 그 자체로 분명한 이러한 앎들은 그 확실성으로 인하여 이후의 다른 모든 앎들의 확실성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앎들을 알 수 있는 원리가 곧 앎의 제1원리인데, 이성과 양심이 그것이다. 따라서 토미즘의 '지성주의'는 곧 형이상학의 지반을 제공하는 근거가 된다. 이성의 경우 그 대상의 여부에 따라서 상위이성과 하위이성으로 구분되는데, 상위이성의 대상들은 인간의 자연적인 이성이 다룰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대상'이다. 이러한 상위이성에 대한 긍정은 도덕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에서의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적인 이성의 대상을 넘어서는 영역에서 조차 스스로의 추론을 통하여 확실한 앎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행위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선악판단의 제일원리로서의 양심은 상위이성과 하위이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직접적인 신의 계시에 의한 진리가 아닌 일체의 세상의 권위보다 앞서는 것으로, 올바른 양심에 의한 행위는 항상 진리와 선을 보증하고 있다. 이는 도덕적인 실천의 행위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으로 자기행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주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의식'은 양심을 그 지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원리적으로 토미즘에 있어서 올바른 행위 혹은 도덕적인 행위는 우선적으로 올바른 앎에서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유에 있어서 진정한 앎(의식적인 앎)은 곧 실천적인 행위와 일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앎은 실천을 위한 결정적인 '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토미즘이 '지성주의'라는 그 정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사형제도의 윤리적 정당성 - 사형에 대한 응보론적 논증을 중심으로 - (Ethical Justification of Capital Punishment - Retributive Argument against the Death Penalty -)

  • 이윤복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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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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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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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범)죄(crime)를 저질렀다면 (처)벌(punishment)을 받아야 한다. 그 근거는 무엇이며 또한 잘못에 합당한 형벌(penalty)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 형벌은 저질러진 죄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응보론의 주장이다. 응보론에 따르자면 양과 질에 있어서 서로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게 양과 질이 서로 다른 형벌이 과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와 같이 정확히 상응하는 형벌을 확정하는 데는, 즉 질과 양에 있어서 정확한 등가성을 확보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애매모호함이 있을 수밖에 없고, 여기서 응보론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고의 범죄에 상응하는 최고의 처벌로서의 사형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그야말로 핵심적 논란거리일 것이다. 최악의 범죄는 최고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극한 범죄(Capital Crime)에 대한 극한 처벌(Capital Punishment)로서의 사형 즉 죽음의 형벌(Death Penalty)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며 또한 반대의 입장에 설 것이다. 한편 또 다른 편에 선 많은 사람들은 극한 처벌로서의 사형은 응보론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으로서 적절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본 논문에서는 우선 이러한 문제, 즉 응보론적 처벌이론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사형이라는 형벌이 쉽게 혹은 당연하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응보론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보다 자세히 검토해 봄으로써 논증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응보론에서 제시하는 등가성의 원리나 비례성의 원리는 모두 그것만으로써는 사형을 완벽하게 정당화할 수는 없고 사형을 완전하게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원리 혹은 기준으로서 도덕성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는 결국 사형의 정당성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논의(처벌행위의 도덕적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또 다른 논의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두 가지 의문 즉, 1)정당방위나 혹은 범인에 대한 사살의 근거는 무엇일까? 2)처벌행위의 도덕적 정당성과 일반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은 동일한 차원의 것일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첫 번째 의문을 통해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즉 정당방위나 범인 사살의 정당성을 인정하지만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범죄는 처벌되어야 하되 그 형벌은 어떤 죄에 상응하는 것이든 죽음까지는 포함되어서는 않되지만 지금 저질러지고 있는 혹은 저질러질 더 큰 범죄 즉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생명의 박탈을 통해 미리 처벌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조건 아래서는 생명의 박탈이 가능함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그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즉 사형폐지론자들은 범인에 대한 사전처벌로서의 범인사살을 부정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든지 아니면 정당방위나 범인사살을 인정함으로써 사형폐지의 주장을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전처벌로서의 범인사살이나 정당방위는 극한 처벌로서의 사형에 그 정당성의 근거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안하고자 하는 고려사항 중 두 번째 의문 즉 일반적인 행위의 정당성과 처벌행위의 정당성은 과연 같은 차원의 정당성을 요구하는가의 의문은 '검증가능성의 원리도 검증 가능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두 정당성요구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서로 다른 근거에서 충족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응보론에서 사형의 완전한 정당성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는 그 시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숙의를 통한 합의에 의해 충족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즉 사형제도에 관한 문제는 안락사나 임신중절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 혹은 평가의 문제이며, 현실의 제도나 법의 문제이기에 그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는 그 시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숙의를 통한 합의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숙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결국은 그 사회의 제도와 법의 근거인 것이 현대 민주주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삼태극의 의미고찰 (Reconsideration of the Meaning of Sam-Tai-Ji)

  • 김명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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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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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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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서울 올림픽의 휘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문양 중의 하나로 삼태극이 사용되고 있다. 삼태극은 태극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철학적 규명없이 일부 종교단체나 지식인들에 의해 '천지인'이라는 삼재론으로 혹은 '천지인 조화사상'이라는 넓은 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삼태극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조선은 건국과 더불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나, 이념의 테두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곳에서는 노장과 불교, 무속 등을 묵인하여왔다. 그리하여 태극 문양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유교적 이념이 드러나야 하는 공식적인 곳에서는 이태극 문양을 사용하고, 왕릉과 같은 사적인 곳에서는 삼태극 문양을 새겨왔음을 밝혀 놓았다. 이와 같이 문양을 분리 사용한 이유를 규명해보기 위하여 태극의 변화 발전 과정을 고찰해 보았다. 동양(한 중 일)에서는 태극 문양을 우주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문양은 한당시대까지는 삼태극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도 "한서" "율력지" 속에서'음양덕(陰陽德)'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후 중국사에서 등장한 "고태극도" 속에서는 이태극 속의 흰점으로 문양이 변화되어 나타나며, 그 의미도 '음양과 생기'로 표현된다. 그러다 유가 사상이 자리 잡은 송대 이후로는 '음양과 리'로 그 해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리는 '생기'와 달리 비실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음양과 리'를 문양으로 표현할 때는 이태극으로 표현하게 되었음을 논해 놓았다. 결론적으로 삼태극은 '음양덕' 혹은 '음양생기', '음양무극' 등을 문양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영(靈)의 세계를 인정하는 도가와 불교의 사상 속에서 주로 발달하였으며 '기'를 본체로 하는 세계관이다.

조선후기 문풍의 변화와 이용휴의 글쓰기 (Changes in Literary Trend During the Late Joseon and Lee Yong-hyu's Writing)

  • 이은봉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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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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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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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글쓰기란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의 문풍은 그렇지 못했다. '문필진한(文必秦漢), 시필성당(詩必盛唐)'이라는 복고주의 문장론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문장의 법도를 무시한 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도그마에 빠져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성리학과 내용은 없이 껍데기만을 모의하는 의고적 글쓰기에 지친 문장가들은 익숙함과 전범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의 가운데에 있던 이용휴는 당시 수입된 최신의 중국 서적들을 통해 명말청초의 사조들을 익히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글쓰기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적 사유체계를 거부하고 인간성 본래의 측면에 관심을 가지며 주체 회복을 강조하였으며, 반의고적 글쓰기를 통해 허위에 찬 당시의 풍토를 비판했다.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천리(天理)]를 회복하고, 이를 위해서는 마음[심(心)]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심즉리(心卽理)'를 내세우는 양명학과 비슷했다. 양명학은 마음[심(心)]을 윤리의 준칙[이(理)]으로 삼고 있어서, '이(理)는 외재적이고 초월적이며, 이것은 성인에 의해 언어화되고, 경전으로 문자화 되어 있다.'는 성리학과는 확연히 갈라졌다. 그는 이들처럼 이(理)의 외재성을 부정하고 내재성을 강조하면서 성리학의 경전 중심주의를 해체했다. 그가 내세운 전범의 부정과 주체 회복의 글쓰기는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 때문에 그를 양명학자로 단정 짓거나, 그를 비롯한 반의고적 태도를 갖는 문인들의 사상적 근거를 양명학이라 확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문학을 주자학이든 양명학이든 단정 짓는 순간 그것이 또 전범이 되어 주체는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체의 전범을 부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우리가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