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역사 관념

검색결과 67건 처리시간 0.026초

자연과 인간의식과의 관계로 본 “취락경관에서의 내적의미”에 관한여 (Indication of Immanent Picture in Rural Settlement According to the Corelation between Man and his Environment)

  • 정기호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14권2호
    • /
    • pp.17-26
    • /
    • 1986
  • 최락구성의 주요요인과 구성요소로써 자연과 인간의식과의 관계를 통하여 생각해본 취락경관에 개제된 내적의미에 관한 본고찰은 그 근간에 $\ulcorner$원형$\lrcorner$(Archetypen)이란 개념을 둔 것이었다. 즉 원초적 심리에 있어서는 어떤 다양한 주위요인이 있더라도 원초적 심리에 있어서는 어떤 다양한 주위요인이 있더라도 근원적으로는 동일한 생각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민담에 있어서, 그 서술되는 있는 요소나 장소는 그곳을 대표할 수 있는 또는 인근에서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던 대상들이란 점에서는 그 차이점을 볼 수 없다. 인간의 의식이 직접 조형에 미치는 정원의 예에서도 그 구성의 궁극적 목푠느 $\ulcorner$인간과 자연$\lrcorner$또는 $\ulcorner$인간과 우주$\lrcorner$, $\ulcorner$만물의 본질$\lrcorner$에 관한 인간의식의 구체화란 데에 있었다. 취락을 이룸에 있어서 개재되는 개념은 크게 둘로 생각되어 $\ulcorner$순응$\lrcorner$$\ulcorner$표현$\lrcorner$이란 모습으로 나타난다. 독일의 경우를 통해, 볼 때 시대적인 요구성, 개별적인 제능력관계 그리고 내.외적으로 의도되는 형편화 공법등이 작용됨으로써 도시의 에에서는 주로 의도적인 게획하에 $\ulcorner$존재$\lrcorner$를 나타내 보이는 (과시적) $\ulcorner$표현$\lrcorner$의 모습으로, 반면에 농촌취락들에서는 자연의 조건에 공존 또는 의존하는 모습의 $\ulcorner$순응$\lrcorner$적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나라의 취락에 게재된 $\ulcorner$순응$\lrcorner$이란 큰 특징은 풍수적 개념 드에 의해 이루어졌던 형태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민담에서도 풍수가 주제가 되는 경우가 있고, 일반적으로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통하여 취락민이지녀온 자연요소에 대한 인식관 또는 그러한 생활에서 나타나는 윤리관 등이 암암리에 표현되기도 한다. 민담을 통하여 우리는 주민들 의식 속에 남아있는 취락의 중요한 요소나 장소들을 찾아볼수 있고 더불어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을지도 모를 생활모습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ulcorner$순응$\lrcorner$의 다른 일면 또는 때에 따라서는 극히 의도적인 $\ulcorner$표현$\lrcorner$적인 한 면모 - 그 대표적인 경우로 정원을 구성하는데 개재된 인간의 의미는 무언가를 표현 또는 표출하고자 함에 있다는 점 -라 볼수도 있을, 예로써 성리학적 사고관념으로써 집과 정사 그리고 주변 경관을 자신의 내적본직 또는 윤리적 영역으로 삼아 묘사.표현.구체화 시켜가기도 한다. 최소한 동족부락의 한두 예들에서 그러한 $\ulcorner$표현$\lrcorner$적 의도에 의한 경관구성의 일면을 확인할수 있지만 엄밀히 생각하여 보면 이러한 예의 경우도 최락의 총체적인 외형은 마찬가지로 $\ulcorner$순응$\lrcorner$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도 $\ulcorner$순응$\lrcorner$$\ulcorner$표현$\lrcorner$의 성격과 형태를 외형상으로 더욱이 공간상에서는 뚜렷하게 경계짓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 두 개념은 취락경관의 영역에 있어서 상호공존하고 있는, 외적으로 $\ulcorner$순응$\lrcorner$적 모습을 그리고 내적으로는 $\ulcorner$표현$\lrcorner$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양면적 요인은 아닐까 생각한다. 양면성을 지닌 경관구성의 성격은 석굴암의 조성을 두고 생각할 때 좀더 확실해 질것같다. 석굴암은 토함산과 동해안의 대왕포 그리고 석탈해와 관련된 설화 등 그 이면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는 진정한 $\ulcorner$순응$\lrcorner$의 모습, 즉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그 간에 내재된 조형의식을 토함산-동해안 간에 내재된 듯한 의미와 함께 생각해 볼 때 비로소 석굴암의 $\ulcorner$표현$\lrcorner$적 의도하의 경관구성-정확히 말하자면 $\ulcorner$경관의 인식과 해석$\lrcorner$에 해당하는 범역일지도 모르겠지만 - 은 근원적으로 석굴암에 개재되고 있을 성격과 동질의 경우는 아닌가 생각된다.

  • PDF

토양 및 식생변화에 따른 토지 사방 공사의 효과에 관한 연구 (Erosion Control Effect by Soil ansi Vegetation Transition in Mountainous Area after Soil Erosion Measures were Initiated)

  • 이천용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14권2호
    • /
    • pp.7-16
    • /
    • 1986
  • 산지사방공사후 시공년수 경과에 따른 토양 및 식생의 변화로서 사방효과를 구명하기 위하여 전국의 대규모 황폐지에 36개소의 plot를 설정하여 사방시공년차별로 식생의 피복도와 출현종 상장 및 토양을 조사하기는 시공후 7년으로 이후 임관의 소개가 필요하다. 1) 하중인관과 상층식생의 피복도가 가장 적당한 시공후 7년으로 이후 인관의 소개가 필요하다. 2) 하층식생의 종수는 임관울폐직전인 6년까지 증가하다가 울폐후 감소하였다. 3) 수고생장은 아까시나무, 물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 순으로 좋았으며 이까시나무는 초기에 왕성한 생장을 보이다 계속 감소하였고, 물오리나무는 시공후 12토양내 양료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다. 4) 사방수종은 식재후 8년내에 약 50%가 고사하였는데 물오리나무와 아까시나무는 그 후에는 계속 잔존본수가 감소하였고 리기다소나무는 시공10년후부터 ha당 500 본을 유지하였다. 5) 시공년수가 경과할수록 풍화토실이 깊어지고 견밀도가 낮아져 시공후 14년에는 토양의 물리적인 성질이 어느정도 개량되었다. 6) 토양내 pH는 시공직후 5.3에서 20년에는 5.1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7) 유기적과 질소함량은 시비의 영향으로 3년까지 급증하다가 그 후부터는 점증하였다. 그러나 임목생육에 필요한 양에는 20년이 되어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8) 토양내인산함량은 초기에는 시비의 영향으로 높았으나 급격히 감소하여 시공후 5년부터는 절대량이 부족하므로 지속적인 시비가 요구된다. 9) 물질생산량은 아까시나무가 가장 많은 양을 보이면서 20년까지 계속 증가한 반면 물오리나무는 15년간부터 감소하여 갱신이 요구도며 20년된 사방시 1ha의 지상부총물질생산량은 105.7 ton이었다.>$\ulcorner$표현$\lrcorner$의 모습으로, 반면에 농촌취락들에서는 자연의 조건에 공존 또는 의존하는 모습의 $\ulcorner$순응$\lrcorner$적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나라의 취락에 게재된 $\ulcorner$순응$\lrcorner$이란 큰 특징은 풍수적 개념 드에 의해 이루어졌던 형태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민담에서도 풍수가 주제가 되는 경우가 있고, 일반적으로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통하여 취락민이지녀온 자연요소에 대한 인식관 또는 그러한 생활에서 나타나는 윤리관 등이 암암리에 표현되기도 한다. 민담을 통하여 우리는 주민들 의식 속에 남아있는 취락의 중요한 요소나 장소들을 찾아볼수 있고 더불어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을지도 모를 생활모습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ulcorner$순응$\lrcorner$의 다른 일면 또는 때에 따라서는 극히 의도적인 $\ulcorner$표현$\lrcorner$적인 한 면모 - 그 대표적인 경우로 정원을 구성하는데 개재된 인간의 의미는 무언가를 표현 또는 표출하고자 함에 있다는 점 -라 볼수도 있을, 예로써 성리학적 사고관념으로써 집과 정사 그리고 주변 경관을 자신의 내적본직 또는 윤리적 영역으로 삼아 묘사.표현.구체화 시켜가기도 한다. 최소한 동족부락의 한두 예들에서 그러한 $\ulcorner$표현$\lrcorner$적 의도에 의한 경관구성의 일면을 확인할수 있지만 엄밀히 생각하여 보면 이러한 예의

  • PDF

남명 조식의 현실적 사회개혁론 - 경(敬)·의(義)를 중심으로 - (Nammyeong Jo-Sik's Practical Social Reformism)

  • 이미림
    • 한국철학논집
    • /
    • 제39호
    • /
    • pp.29-52
    • /
    • 2013
  • 남명의 경(敬) 의(義)철학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유학에서 지향하는 자신에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상통한다.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먼저 바로 보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수양은 곧 사회 전체의 수양, 사회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맥락이 전제되는 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수신(修身)'에서 출발해 '평천하(平天下)'로 가는 길, '수기(修己)'이후에 '안인(安人)'이 되고, '극기(克己)'이후에 '부례(復禮)'가 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개인과 사회를 분별하지 않고, 개개인의 모습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고, 개인이 바로 설 수 있을 때 사회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유학의 사회체계의 원리는 상호적, 또는 층차적 분화와 통합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를 개인 혹은 국가와 대립시키지 않으며, 같이 이루어나가는 도덕 공동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명에 있어서 경(敬) 의(義)철학이 가지는 실천성은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실천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성이 남명의 경(敬) 의(義)철학에서 '행의(行義)'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행의(行義)'는 후에 그의 문도들이 국가적 위기에 보인 행동으로 입증된다. 이 점에서 그는 퇴계나 율곡과는 다른 또 하나의 조선조 성리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행의(行義)의 사회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성리학자나 실천성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명은 특히 현실의 당면 문제에 구체적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관념적, 내면 지향적 사유가 갖는 기만성을 경고한다. 결과적으로 남명의 경의(敬義)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수양과 단련은 사회 역사적 장과 상관없는 진공상태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세적 공효 내지는 사회적 실천의 맥락에서만 평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남명의 경의(敬義)의 실천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 개혁론'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수험도(修驗道)와 노(能) - 노 <다니코(谷行)>의 작품분석을 중심으로 - (Syugendo(修驗道) and Noh(能) Performance)

  • 김현욱
    • 공연문화연구
    • /
    • 제23호
    • /
    • pp.37-61
    • /
    • 2011
  • 노(能)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연극으로 불교, 신도(神道), 수험도(修驗道)와 같은 종교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성립하였다. 이 중에서도 중세시대에 널리 확산되어 있던 수험도로부터 받은 영향은 현저하다. 수험도라는 종교사상을 배경으로 성립한 대표적인 노가<다니코(곡행(谷行))>이다. <다니코>의 내용 분석을 통해 중세의 수험문화, 특히 산악수행자인 야마부시(산복(山伏))의 수행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이 갖는 가치는 매우 크다. 본고에서는 이제까지의 <다니코>의 선행연구에서 간과되어 왔던 야마부시의 수행에 초점을 두고 수험도의 세계관이 노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극화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동시에 다니코에 있어서의 아쟈리와 동자의 관계에 착목하여 중세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치고(치아(稚児))문화의 투영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노<다니코>는 소년 와카마츠(약송(若松))가 어머니의 병환치유를 위해 스승을 쫓아 가즈라키산(갈성산(葛城山))에 입산하여 수행하던 차에 병에 걸리자, 야마부시 일행에 의해 '다니코(곡행(谷行))'를 당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야마부시 일행의 기도로 다시 소생한다는 이야기이다. 다니코는 병든 수행자를 계곡에 던지고 그 위에 토사나 돌을 덮어 산채로 매장하는 형법을 말한다. 노<다니코>의 제목도 바로 이 수험도의 형법에서 유래한 것이다.<다니코>는 수험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야마부시의 수행과 행법·와카마츠의 효심·치고 문화 등을 크로스 시키면서 일본중세의 사회문화의 특징을 조화롭게 담아낸 작품이다. 가혹한 형법을 소재로 하여 난행과 고행의 연속인 야마부시의 입산수행의 어려움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입산수행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수험도의 본질인 입산수행은 생명의 재생,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며, 심산에서의 고행을 통해 새로운 탄생에 이른다고 관념되어 왔다. 이러한 수험도를 이끌어 온 것은 산악수행에 의해 신령스런 힘을 획득한 야마부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활동은 산에 한정되지 않고, 사토(리(里))에 있어서의 서민의 신앙과도 깊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험도는 일본의 민속·문화의 특징을 찾는데 있어서 불가결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가혹한 다니코 형법에 의해 자칫 유쾌하지 않은 인상으로 끝나버릴 작품이었지만, 소생이라는 대반전을 통해 효심에 의한 미담을 담은 노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작가가 설정한 와카마츠의 소생이라는 극적효과는 본래 수험도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재탄생의 구조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제까지 노<다니코>에 있어서의 스승 아쟈리와 와카마츠의 관계를 치고 문화와 관련시켜 지적한 논문은 없었다. 이 작품의 어느 부분에서도 '치고'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중세의 관객들은 당시에 만연했던 치고 문화에 대한 이해 하에 아쟈리와 와카마츠가 치고 관계라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문화의 기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속의 인간심성과 문화를 넘어선 인간심성 - 동과 서의 보다 나은 만남을 위하여 - (Human Mind Within and Beyond the Culture - Toward a Better Encounter between East and West -)

  • 李符永
    • 심성연구
    • /
    • 제28권2호
    • /
    • pp.107-138
    • /
    • 2013
  • 현대 임상정신의학이 그동안 잊어버렸거나 소홀히 해온 문화와 심성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살펴보았다. 1. 문화 :01) 문화정신의학의 공적과 한계 및 그 해결책 ; 2) C.G. 융의 비 서구문화의 경험 ; 3)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본 문화 ; 4) 문화스펙트럼 모델 2. 심성 :01) 원시시대 및 고대의 심(心) 신(身)관 ; 2) 동양적 심성론 ; 3) 자기Self와 동양사상 문화정신의학은 정신건강문제의 문화적 요인을 규명함으로써 정신의학에 큰 기여를 해왔으나 문화적 차이에만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인류보편의 공통된 심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인간의 건강한 심성을 등한시하고 문화의 역사적 측면을 간과하였으며 문화 상호간의 역동적 상호관계의 무의식적 심층적 측면을 보지 못했다. C.G. 융의 여행을 통한 이異 문화 체험 양식과 C.G. 융의 분석심리학설은 이 점에서 문화정신의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인류학자들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개념 속에는 집단적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뿐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에 뿌리박은 내용이 발견된다. 저자는 이를 효孝를 예로 설명했다. 저자는 또한 문화 스펙트럼cultural spectrum이라는 설명모형을 제창하였는데 한국인의 경우 샤머니즘, 불교, 도교, 유고, 기독교 문화가 한 개체의 인격을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구성됨을 제시하였다. 주로 네 가지 유형을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1) 주로 불교문화가 우세한 사람, 2) 주로 유교문화가 우세한 사람, 3) 주로 샤머니즘문화가 우세한 사람, 4) 주로 기독교문화가 우세한 사람이다. 비록 의식표면은 하나의 종교문화가 우세하지만 내면에는 다른 종교문화가 섞이게 되며 가장 심층에 샤머니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문화와 정신건강의 관계를 이해하고 치유의 접근을 할 때 이러한 스펙트럼 시각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심성에 대한 고대중국의 개념과 동양종교의 관념, 그리고 C.G. 융의 자기개념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고 이에 비길 수 있는 전체정신의 중심에 관한 한국의 선사, 원효의 생각, 대승기승론의 일심(一心), 노자의 도(道), 이퇴계의 천명도(天命圖), 이기설(理氣說)을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궁극적으로 정신요법의 목적은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는 '하나가 되는 것' 이며 '하나'가 됨은 문화에 제약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문화를 포함하나 이를 넘어선 인간 심성 전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곡성 동악산 청류구곡(淸流九曲)의 형태 및 의미론적 특성 (Characteristic on the Layout and Semantic Interpretation of Chungryu-Gugok, Dongaksan Mountain, Gokseong)

  • 노재현;신상섭;허준;이정한;한상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2권4호
    • /
    • pp.24-36
    • /
    • 2014
  • 동악산 청류구곡 일원은 아름다운 계류를 따라 와폭(臥瀑)과 담(潭), 소(沼), 대(臺) 등의 암반경관과 성리문화의 전형으로 향유되어온 구곡문화가 실증적으로 대입된 사례로, 1872년 곡성현 지방도에서 "삼남제일암반계류 청류동(三南第一巖盤溪流 淸流洞)"으로 명기된 바와 같이 풍치가 탁월한 승경처임을 보여준다. 경물(景物)과 경구(警句)가 육로와 수로에 쌍으로 설정되어 차별성을 갖는 청류구곡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이전, 정순태와 조병순의 주도로 설정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성리학자들은 물론 불교지도자, 독립운동가 등 선현들의 장구처 등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명인(名人)들의 산수탐방과 은일처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림사계곡의 기반암 암상에 구성된 청류구곡은 산지형 하천으로 총 길이 약 1.2km, 평균 곡거리 149m로 국내 여타 구곡에 비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확증된 동악산 3개 구곡의 바위글씨는 총 165건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바위글씨의 집결지로 판단된다. 특히 112개소로 집계된 청류구곡 바위글씨의 내용 분석결과, '수신(修身)'의 의미가 49점(43.8%)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인명' 21건(18.8%), '경물' 16건(14.2%), 장구처 등 장구지소' 12건(10.6%) 등이었고 '시구(詩句)'가 차지하는 비율은 6건(3.6%)으로 나타났다. 육로상의 제1곡 쇄연문과 수로상의 제9곡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天)은 박세화(朴世和)가 충북 제천에 설정한 용하구곡(用夏九曲)의 제1곡 홍단연쇄(虹斷烟鎖) 및 제9곡 제시인간별유천과 일치하는 것으로 동일한 시원(始原)을 갖는 구곡명으로 유추된다. 또한 육로상 제6곡 대은병(大隱屛)은 주자 무이구곡의 제7곡과 일치하는 것으로 구곡원림의 거점으로 인식되며, 7곡과 8곡 사이의 '암서재(巖棲齋)'와 '포경재(抱經齋)' 바위글씨와 석축 흔적 등은 무이구곡 은병봉 아래 무이정사와 비견되는 것으로, 기호사림의 청류동 활동거점으로 파악된다. 선사어제(鮮史御帝), 보가효우(保家孝友, 고종), 사무사(思無邪, 명나라 의종), 백세청풍(百世淸風, 주자), 청류수석 동악풍경(흥선 대원군) 등 명인들의 명구들이 망라된 동악산 구곡은 높은 유가미학적 가치를 표출함은 물론 의미론적 상징문화경관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청류구곡은 수심양성을 위한 유가적 가치체계와 불교 및 도교적 관념 등이 공존하는 유불선(儒彿仙) 3교 문화경관의 결집체로 특성이 부각된다. 청류구곡은 최익현(崔益鉉), 전우(田愚), 기우만(奇宇萬), 송병선(宋秉璿), 황현(黃玹) 등으로 대변되는 조선 후기 사림계층이 성리학의 도통의식을 계승하고 '위정척사'와 '존왕양이(尊王攘夷)', '항일의지 고취' 등의 수단으로 설정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배태(胚胎)된 항일 역사문화 항쟁의 거점으로서 장소성과 의미론적 특성에 충일하다.

용주사(龍珠寺) <삼세불회도(三世佛會圖)> 연구의 연대 추정과 양식 분석, 작가 비정, 문헌 해석의 검토 (A Review Examining the Dating, Analysis of the Painting Style, Identification of the Painter, and Investigation of the Documentary Records of Samsaebulhoedo at Yongjusa Temple)

  • 강관식
    • 미술자료
    • /
    • 제97권
    • /
    • pp.14-54
    • /
    • 2020
  • 용주사 <삼세불회도>에 대한 연구는 연대 추정과 양식 분석, 작가 비정, 문헌 해석의 네 가지 핵심 사항이 실증적인 근거와 일관된 논리 아래 모두 일치되도록 정합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용주사 <삼세불회도> 연구에서 제기된 19세기 후반 화승 제작설과 1790년에 제작된 원본을 1920년대에 일반화가가 서양화법으로 개채한 것이라는 소론은 실증성과 논리성이 결여되어 성립되기 어렵다.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祝願文)은 세자(世子) 책봉을 받지 않은 원자(元子)만 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관습대로 의례적인 삼전(三殿) 축원문을 썼다가 이를 주사로 지우고 다시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자궁저하수만세(慈宮邸下壽萬歲), 왕비전하수만세(王妃殿下壽萬歲), 세자저하수만세(世子邸下壽萬歲)"라는 특별한 내용과 예외적인 순서로 개서(改書)했는데, 이는 조선후기 불화의 축원문 형식과 내용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정조대 왕실의 전례(典禮)를 면밀히 분석해 볼 때, 현존하는 <삼세불회도>가 1790년의 창건 당시에 그려졌던 원본 진작임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객관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삼세불회도의 형식(形式)과 도상(圖像), 양식(樣式), 미감(美感), 화격(畫格) 등을 18~19세기 불화나 궁중화원 양식과 다각도로 비교분석해 보면 용주사 <삼세불회도>는 1790년경 전후에만 나타나는 특징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축원문(祝願文)에 대한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 특히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종교적 위상에 따라 존상의 크기가 결정되고 화면 구성도 근하원상(近下遠上)의 고식(古式) 원근법에 따라 관념적, 평면적 조형 위주로 이루어져 왔으나 이 <삼세불회도>는 투시법적 원근법의 논리에 따라 구축된 입체적 공간 속에 존상들을 매우 체계적으로 배치한 뒤 서양화(西洋畫)의 음영식(陰影式) 명암법(明暗法)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흰색 하이라이트와 그림자까지 표현함으로써, 마치 삼세불회(三世佛會)의 장엄한 세계가 눈앞에 실제로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투시법적 원근법의 내적 질서와 음영식 명암법의 외적 착시는 골육합체(骨肉合體)처럼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흰색 하이라이트만 떼어내서 후대에 개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이 <삼세불회도> 같은 고도의 서양화법과 높은 화격(畫格)의 창의적 융합은 조선후기 회화사상 김홍도와 이명기, 김득신 같은 정조대의 궁중화원만이 이룩할 수 있는 고도의 양식이자 화격이다. 용주사 주지 등운(等雲)이 창건 이래 용주사에 전해져온 기록을 토대로 『용주사사적(龍珠寺事蹟)』을 정리하며 김홍도가 <삼세불회도>를 그렸다고 기록한 것은 이것이 당시의 역사(歷史)이자 실상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의 공식 기록인 『일성록(日省錄)』과 『수원부지령등록(水原府旨令謄錄)』에는 김홍도와 이명기, 김득신이 감동(監董)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의례 화승(畫僧)들이 그려왔던 불화를 관원 신분의 화원에게 그리도록 하는 것이 엄격한 관직 체제나 운영상 부당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명분상 감동으로 발령한 뒤 실제로는 불화를 직접 그리도록 했던 데서 나타난 결과였다. 영정조대의 어진(御眞) 도사 과정에서 감동으로 불러들인 문인화가 조영석(趙榮祏)과 강세황(姜世晃)에게 국왕이 직접 그릴 것을 요구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감동(監董)'과 '집필(執筆)'은 경우에 따라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개념으로서 '감동'이 '집필'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용주사사적』의 기록은 『일성록』이나 『수원부지령등록』은 물론 황덕순의 「닫집 원문」 기록과도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찾아 복합적으로 읽으면 각각의 맥락과 필요에 따라 동일한 내용의 표리를 다르게 기록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때 우리는 용주사 <삼세불회도>의 연대 추정과 양식 분석, 작가 비정, 문헌 해석의 네 가지 핵심 사항을 모두 실증적인 근거와 일관된 논리 아래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