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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 희랑대사상(希朗大師像)의 특징과 제작 의미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Huirang Daesa Sculpture at Haeinsa Temple in Hapcheon)

  • 정은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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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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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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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희랑대사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상으로 높이 82.4cm, 무릎폭 66.6cm, 앞뒤 최대폭 44cm에 이르는 등신상에 가까운 크기이다. 제작 기법은 승상의 앞면과 뒷면을 건칠과 나무를 접합하여 만든 것으로 동아시아의 유일한 사례로 주목된다. 유사한 기술이 나말여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에 이미 적용된 바 있어 이 시기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희랑대사상에 대해서는 18세기에 쓰여진 가야산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즉 승상의 가슴에 있는 구멍과 힘줄과 뼈가 울퉁불퉁하다는 등의 독특한 특징은 현재의 희랑대사상과 정확하게 부합된다. 가슴에 있는 구멍은 신통력의 상징으로 3~4세기에 활동한 서역의 승려 불도징(佛圖澄)의 가슴에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흑칠 상태였으며, 19세기에 현재와 같이 채색되었음도 알 수 있다. 봉안 전각은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과 진상전(眞常殿)이었으며, 이후 조사전과 보장전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승상의 제작과 봉안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문헌 기록에 등장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매우 드문 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승상의 초상조각은 고려시대의 희랑대사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제작된 나옹과 의상대사상 등 모두 네 구뿐이다. 이 가운데 희랑대사상은 고려 초기 10세기경에 제작된 상으로서 최고의 제작 기술과 사실적인 재현 그리고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승상을 제작하여 숭배하고 신성시하는 전통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다만 재료와 제작 기술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차이와 특이성을 보이며 발전하였다. 중국은 육신불(肉身佛)이 많은 편이며 일본은 건칠, 나무, 흙 등 시대마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많은 승상을 제작하였다. 저마다 다른 재료와 기법을 사용했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승상 제작은 승려의 참모습과 정신성의 성공적 표현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20-30대 성인의 밀키트 소비 실태와 밀키트 선택속성에 대한 중요도-만족도 분석 (Study on the consumption practices and Importance-Satisfaction Analysis of meal-kit selection attributes among adults in their 20s and 30s)

  • 김세은;배현주
    • Journal of Nutrition and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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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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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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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전국의 20-30대 성인남녀 249명을 대상으로 밀키트 소비 실태와 밀키트 선택속성에 대한 중요도-만족도 분석을 한 결과 조사대상자의 85.5%가 밀키트 구매 경험이 있었고, 밀키트 구매 경험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 (p < 0.01), 기혼자가 미혼자에 비해 (p < 0.05), 직장인이 직장이 없는 경우에 비해 (p < 0.05) 유의적으로 많았다. 밀키트는 주로 대형할인마트 (44.6%), 온라인 쇼핑몰 (33.3%)에서 식사용 (60.6%), 여행용 (18.3%), 야식용 (13.1%)으로 구매하였다. 밀키트 구매 이유는 재료 손질 및 조리가 간편해서 (89.2%), 여러 식재료를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어서 (60.1%), 요리를 잘 못해서 (27.7%)의 순이었고, 밀키트를 혼자 먹는 경우는 전체의 31.0%였으며 전체적인 만족도 (5점 척도)는 평균 4.11점이었다. 밀키트 중 구매 비율이 높은 제품은 한식 국물요리 (69.5%), 한식 주찬류 (47.4%), 분식류 (46.9%) 순이었고, 여자가 남자에 비해 분식류 (p < 0.01), 샐러드류 (p < 0.05), 동남아 음식 (p < 0.05)의 구매 비율이 유의적으로 높았으며, 서양식 육류요리의 구매 비율은 1인 가구가 다인 가구에 비해 (p < 0.05), 혼자 섭취하는 경우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섭취하는 경우에 비해 (p < 0.05) 유의적으로 높았고, 밀키트를 식사용으로 구매하는 경우는 20대가 30대에 비해 유의적으로 높았다 (p < 0.05). 밀키트 선택 속성에 대한 요인분석 결과 '식품의 품질', '포장과 다양성', '밀키트의 품질', '편리성과 가격'으로 4개 요인이 추출되었다. '밀키트의 품질'과 '편리성과 가격'은 중요도 평가 점수 평균이 4점 이상이었고 '식품의 품질'요인의 중요도는 다인 가구가 1인 가구에 비해 유의적으로 높았으며 (p < 0.05), '포장과 다양성'요인의 중요도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p < 0.01), 기혼자가 미혼자에 비해 (p < 0.05), 다인 가구가 1인 가구에 비해 (p < 0.05), 30-39세가 20-24세에 비해 (p < 0.05) 유의적으로 높았다. '밀키트의 품질'요인의 중요도는 기혼자가 미혼자에 비해 (p < 0.001), 다인 가구가 1인 가구에 비해 (p < 0.001), 30-39세와 25-29세가 20-24세에 비해 (p < 0.01) 유의적으로 높았다. 밀키트 선택속성에 대한 ISA 결과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된 항목은 '가격'이었다. 밀키트 이용 고객의 만족도 향상을 위해서는 가성비가 좋은 다양한 용도의 밀키트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원각사(圓覺寺)13층탑(層塔)에 대한 근대적 인식과 오해 (The Modern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about the Thirteen-story Stone Pagoda of Wongaksa Temple)

  • 남동신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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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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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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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고는 원각사탑에 대한 지난 백 년간의 근대 학설사를 층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먼저 제II장에서는 근대 개항기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이 종래 한성의 '비미(非美)'내지는 흉물로 간주되던 원각사탑을 한성의 '기관(奇觀)'내지 '위관(偉觀)'으로 재발견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들은 불탑에 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서양 출신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원각사탑에 대하여 객관적인 견문기를 남길 수 있었는바, 그들이 접촉한 조선 지식인들을 통하여 대체로 13층설을 받아들였다. 이어서 제III장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일인 관변학자들이 원각사탑을 본격적으로 학술 조사하고, 일제식민기 동안 조선총독부가 원각사탑을 문화재로서 관리하는 과정 및 그 문제점을 언급하였다. 특히 지난 100여 년 동안 원각사탑 층수 문제에 관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의 학설이 10층설에서 13층설로, 다시 다층설로 변하는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제IV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62년까지 원각사탑에 대한 인식이 다층설에서 10층설로 바뀐 경과를 정리하되, 선행하는 일제식민기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이 13층설 일변도였음을 특기해두었다. 다만 1962년 이후 지금까지 원각사탑에 관련하여 중요한 연구성과가 적지않이 발표되었지만, 층수에 관한 한 대부분 1962년에 확정된 10층설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따로 정리하지 않았다. 학설사 검토의 결과, 원각사탑이 13층탑으로서 건립되었다는 근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일제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백 년이 넘도록 13층설은 단 한 번도 공인받지 못하였으며, 학계에서 층수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각사탑과 경천사탑이 10층탑이라는 현재의 통설은, 백 년 전에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가 최초로 주창하였다. 세키노는 원각사에 남아있는 「원각사비」가 글자를 거의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였기 때문에 원각사탑의 현상만 건축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10층탑이라고 주장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에 발견된 『속동문선』에 실린 「원각사비」에서 '탑 13층을 세웠다.'라는 구절이 확인되었다. 또한 15세기 후반 왕명으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편찬자들도 원각사탑의 모범인 경천사탑 또한 '13층탑'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원각사탑 건립 직후 왕명으로 건립된 「원각사비」는 세키노의 10층설이 전제에 오류가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세키노는,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 올려져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13층탑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원각사비」는 세조가 처음부터 13층탑으로서 원각사탑을 건립하였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다만 이례적이게도 13층탑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을 올린 형태로 조성하였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세조는 왜 13층탑을 세웠으며, 왜 그것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라는 이례적인 형태로 구현하였는가? 세조가 원각사13층탑을 건립한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원각사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바, 그 첫 단추는 원래의 명칭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필자는 전제의 오류 위에 구축된 세키노의 10층설-나아가 절충적인 다층설-은 이제 폐기하고, 「원각사비」에서 말하는 13층설을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

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Kim Eung-hwan's Official Excursion for Drawing Scenic Spots in 1788 and hi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 오다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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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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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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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은 금강산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그린 60점의 실경산수화와 51편의 기문(記文)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규모와 화풍에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림의 특징은 화면을 가득 채운 구성과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파격적인 화법, 산석(山石)의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표현 등이다. 1973년의 특별전, '한국미술이천년(韓國美術二千年)'을 처음으로 화첩의 일부만 공개되었던 작품은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그 전모가 공개되었다. 《해악전도첩》이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화첩의 마지막 장에 쓰여진 관지(款識)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칠보대>에 찍힌 '복헌'이라는 도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환을 지시하는 관지와 도장은 모두 후대에 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화첩을 둘러싼 여러 요소를 고찰하여 제작자를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악전도첩》 제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18세기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과 봉명사경을 살펴보았다. 정선(鄭敾)(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1711)을 비롯하여 심사정(沈師正)(1707~1769), 김윤겸(金允謙)(1711~1775), 최북(崔北)(1712~1786 이후), 강세황(姜世晃)(1713~1791) 등은 조선 후기 최고의 여행지였던 금강산을 유람하고 기행사경도를 제작하였다. 화가들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여 내금강의 명승명소를 주로 그렸고, 자신들이 경험한 장소를 새롭게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기행사경도는 여행을 기념하며 동행자나 후원자를 위해 여러 장면을 담을 수 있는 화첩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개별적인 금강산 기행사 경도의 제작이 증가하는 가운데 1788년에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도화서 화원인 김응환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에게 영동9군과 금강산의 명승(名勝)을 그려오도록 명한 일은 공적 업무였다. 정조는 이들의 관계 및 지방관으로서의 경력, 서로 다른 화풍 등을 고려해 봉명사경의 화원으로 선발하였다. 김응환과 김홍도는 영조(英祖)(재위 1724~1776)조부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선후배이자 동료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아가 이들은 영남 지역의 찰방(察訪)으로서 지방관의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두 화원의 화풍은 서로 달라 김홍도는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필선을 운용한 반면, 김응환은 굳세면서도 울창한 풍치를 잘 표현했다. 두 명의 화원은 각자의 개성으로 봉명사경 기간 동안 100여 폭의 초본을 그렸고, 이를 선별하여 60~70여 폭의 화첩 혹은 두루마리를 완성하였다. 이들의 그림은 18세기 전중반에 내금강과 관동팔경 위주로 제작된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영동과 외금강의 명승명소를 새롭게 발견하며 소재를 확장시켰다. 현재 《해악전도첩》은 원(元), 형(亨), 이(利), 정(貞) 4책으로 이루어졌는데, 원(元), 형(亨)책은 내금강의 그림 29점이며 이(利)책은 외금강의 장면 17점, 정(貞)책은 해금강과 관동팔경 14점으로 구성되었다. 비단 위에 그려진 각 그림은 기하학적으로 산석을 표현했으며, 연백으로 금강산의 암봉을 흰색 혹은 회청색으로 표현했다. 《해악전도첩》의 구도와 화법은 정선, 강세황, 심사정, 정충엽(鄭忠燁)(1725~1800 이후), 김응환, 김홍도의 화법과 비교할 수 있어 18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을 갖는다. 특히 화첩의 일부 그림은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海東名山圖帖)》(1788)과 구성 및 회화적 모티프가 매우 유사하여 두 화첩간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영랑호>, <해산정>, <월송정> 등은 김홍도의 그림과는 구별된다. 이를 통해 화가가 김홍도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첩을 제작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해악전도첩》에는 다른 화첩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운담>, <백운대>, <안문점망비로봉>, <백정봉>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장면마다 경물의 특징을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화가는 산석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선과 면을 도드라지게 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그는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확립했고 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화면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했다. 이처럼 60점의 그림은 거칠고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 안에서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본고는 화법과 봉명사경의 정황을 종합해 《해악전도첩》의 제작자를 김응환으로 추론하였다. 나아가 김하종(金夏鍾)(1793~1878 이후)의 《풍악권(楓嶽卷)》(1865년 이후)과의 친연성은 《해악전도첩》의 화가를 김응환으로 추정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해산첩》과는 달리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미비한데 김하종의 《풍악권》만이 《해악전도첩》의 소재와 화법을 따르고 있다. 김하종은 《풍악권》에서 50년 전, 춘천부사 이광문(李光文)(1778~1838)을 위해 제작한 《해산도첩》(1816)과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김응환의 《해악전도첩》과 유사한 구성과 회화적 요소, 화보식 인물표현을 따르면서 사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개성김씨의 일원이자 김응환의 종손인 김하종은 가문에 전해지는 《해악전도첩》류의 그림을 감상했고 이를 새롭게 번안했다고 추측된다. 화첩에 포함된 51편의 기문은 그림 다음 장에서 그려진 장소를 설명하고 있어 각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문은 그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앞의 장소로부터의 이동 정보, 이름의 유래, 지형적 특징, 관련 정보 등이 서술되었다. 이와 같은 백과사전식 혹은 지리지와 같은 기문은 19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금강산 화첩류에 더해졌다. 《해악전도첩》의 백화암 기문에는 1845년의 암자에 대한 중건 내용이 기록되어, 기문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김하종에게 《풍악권》을 주문한 이유원(李裕元)(1814~1888)도 각 그림에 글을 붙였는데 이 글들은 김응환의 화첩에 포함된 기문 51편과 내용 및 서술방식이 흡사하다. 이유원의 기문은 《해악전도첩》의 기문이나 그 초고(원본)와 관련성이 높지만 두 화첩의 기문 필사의 선후관계를 판정하는 데에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봉명사경 초본 및 김홍도의 영향으로 제작된 19세기의 금강산 화첩과는 구별된다. 이 화첩은 화원 김응환의 회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고 18세기 후반 실경산수화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공군의 우주력 건설을 위한 정책적.법적고찰 (Research for Space Activities of Korea Air Force - Political and Legal Perspective)

  • 신성환
    • 항공우주정책ㆍ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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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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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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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1957년 이래 1999년 8월까지 약 313회의 우주발사 실패가 있었다. NASA의 '우주수송을 발전시킨다'라는 목표하에서, 제6의 목적은 우주선의 사고발생위험을 10년내에 1/40으로, 25년내에 1/140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주개발이 아직도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통계자료이다. 왜 이렇게 위험한 우주여행을 감수하면서, 우주개발에 뛰어드는 것인가? 우주개발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공위성을 이용한 통신 및 방송산업은 21세기 초에이룩될 우주산업의 가장 큰 분야가 될 전망이다. 특히, 우주의 특수한 환경인 무중력상태와 지구상보다 1,000 배나 높은 진공상태를 이용한 새로운 반도체의 개발 및 생산 그리고 신약의 개발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인데, 지난 1986년부터 지난달까지 운용되던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에서는 수정을 생산하여 판매 하였다. 현재 우주산업은 미국, EU, 일본 등 소수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세계우주산업 시장규모는 년 평균 10% 이상 지속적인 신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특히 민간용 이동통신산업 확대, 우주탐사활동 증대, 우주정거장사업 추진등으로 우주산업 규모는 비약적으로 신장할 것으로 예측되며, 최근 5년간 ED와 일본은 연평균 15${\sim}$20 %의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NASA가 1993년 가을부터 1996년 10월까지 3년동안 민간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결과를 보면,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우주산업을 추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NASA는 미국 전역에서 16,3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였으며, NASA 의 기술 이전으로 새로 생긴 상품은 938개에 달하며, NASA가 민간에 이전한 기술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매년 16억 달러에 달하며, 또한 기술지원을 받은 미국기업을 5,600개가 넘는다. 또한, 경제외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안보, 자주국방을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발사한 7개의 위성을 운영하고 있으며, '03년 8월 8일 고흥 외나로도에 인공위성발사장 기공식을 함으로써, 국내우주개발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았다. 이러한 국가적인 우주개발계획과 함께 공군의 우주력건설에 따른 고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MTCR 협의로 인하여, 사정거리 300km 이상의 미사일발사체를 개발하지 않도록 되어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국방부(공군) 자체에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 현대전에서 항공우주력은 곧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미 전장이 우주로 화대되어 있는 현실에 있어서, 군의 우주력건설은 '우주력건설의 당위성'을 논할 때가 아니고, '어떻게 군의 우주력건설'을 하여야 하는 가 '우주력건설의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되어야 할 때이다. 우주의 군사적이용에 대한 제한은 미국의 주장대로 "비침략적 이용(non-aggressive use)"이 옳은 판단이며, 구소련의 "비군사적 이용(non-military)"에 대한 주장은 옳지 않다. 이러한 구 소련의 주장은 러시아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도 않고 현실성도 없는 주장이다. 따라서, 미국의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개념에 의하면, 다목적위성의 군정찰목적으로의 이용이나, 상업위성의 군통신 이용은 자유롭다고 할 것이다. 즉, 공군은 군정찰위성, 통신위성 개발을 민간연구부서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미국과의 MTCR 협정상 우주발사체 개발에 대해서는 제한을 받고 있으나, 우주발사체개발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위임하고, 궤도에 있는 위성을 운용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목적위성은 주 임무가 Remote Sensing 인데 High resolution 특히 SAR 센서는 주로 군사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다목적위성은 공군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간의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 공군도 현재 사용 중인 발사체를 단계적으로 제거하며 기업 발사체 이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군 통신의 특수성 때문에 민수용 통신 및 방송 서비스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군 통신 중계기와 민간 통신 중계기가 혼합되어 운용됨으로써 군 위성 통신의 단독에서 오는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걸프전에서도 미국은 상용통신위성을 군 통신에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의 우주과학기술 연구에의 착수는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적 개발 정도와 비교해 볼 때 늦었으며, 우주개발예산 또한 상대적으로 일본은 2조원/년인데 비하여 우리는 5조원/15년으로 부족하다. 우주산업은 산업의 특성상 초기 육성기간은 산업체 수익사업으로 전개될 수 없으므로, 정부예산에 의한 사업추진이 불가피하다. 외국의 경우에도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모두 정부사업이며, 최근 들어 통신 방송위성 등 극히 제한된 분야에 한해 민간사업이 추진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우주산업이 초창기에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필요성이 더욱 절박하며, 정부사업의 추진 시에도 정부지원예산의 회수를 전제로 하지 않는 정부출현 혹은 투자사업으로 추진되어야하는 것이 필수적 요소이다. 우주연구인력수준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우주개발선전국들에 비하여 예산이 부족하며,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따라서, 국가 우주개발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추진과 사업 추진시의 힘의 분산 및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우주개발 체계에 대한 선명한 제시와 함께 국내 우주개발 관련 법령의 제정이 시급하다. 또한,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각기다른 법령하에 각기 다른 주무부처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국가적으로 집중적인 우주개발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주력건설을 위해서는 항공우주연구분야 즉 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항공우주분야를 어떻게 협력 또는 통합하느냐에 대한 연구이전에, 우주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과 정책을 수립할 '우주작전본부'를 공군에 설립하는 것이 선과제이다.'우주작전본부'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방부와 합참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특히, 일본의 군의 우주력건설에 대한 계획을 참고하여, 자주국방을 위한 최소한의 군사목적의 정찰위성, 통신위성, 우주감시체계의 확보가 필요하다. MTCR협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발사체개발을 이용하고, 또한 다목적위성, 통신위성개발을 활용하기 위하여 국방예산을 확보하여야 하겠으며, 우선적으로 일본의 정찰위성 운용예산인 약 2조 5천억원정도의 우주예산을 국방부에서 먼저 확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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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을 통한 만화 히어로 성장유형 연구 (A Study on Growth Type of Comic strips Heroes through Journey of Life)

  • 김미림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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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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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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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긴 이야기구조의 기승전결인 네 국면의 플롯은 패턴화 되어 도식화된 경향이 있다. 인물의 행동에는 인류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하게 되는데 장편연재만화 플롯은 기본적으로 4국면이지만, 단순 배열이 아닌 인류의 추진력이나 행동과 느낌의 패턴을 정리하여 개발한 복잡 배열이다. 이 연구는 만화전문대학생 설문과 답변으로 결과지를 얻은 후, 통합적으로 추출된 장편연재만화작품의 설문 자료를 통하여 장편연재만화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인 플롯의 국면, 네 단계와 캐롤 피어슨의 인물원형이론을 통한 4개의 인물의 유형화,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이론을 네 단계로 유형화한다. 복잡한 장편연재만화의 이야기 구조가 가진 요소 중 하나인, 인물이 겪는 삶의 과정을 제시하여 간략성과 체계적 기술을 통해 유형화하는 이 연구는 결국 만화작가가 장편연재만화의 복잡하고 긴 이야기의 구조에서 은유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이론을 근거로 하는 도입, 발전, 전개 결말구조의 의미가 인류의 삶과 운명의 메타포이며, 융 이론에 영향 받은 융 연구가 캐롤 피어슨의 인물 원형론의 성장단계가 인류의 삶과 운명의 메타포임을, 역시 융 이론에 영향 받은 인류학자 조셉 캠벨 이론들은 희노애락의 복합감정을 영웅원형에 투사하여 영웅의 여정이란 은유를 통해 인류의 삶과 운명의 메타포임을 밝히고 있다. 최종적으로, 제기된 이론들은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저서에 작가의 '시나리오작성법'으로 접근하여 소개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 메타포는 이 연구목표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연구에서 추출된 장편연재만화는 긴 이야기가 복잡하고 얽힌 듯이 보여도 인물이 집을 떠나 모험과 난관을 겪고 세계와의 또 다른 만남을 통해 거부와 갈등, 그리고 경쟁과 전쟁, 시련을 겪으며 보상을 얻어 귀환하는 여정의 과정 중 정신적, 심리적, 상징적 성장으로 결국, 영웅으로 획득되며 만화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 성찰에 대한 의미 부여를 플롯에 의해 서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복잡해보이지만 장편연재만화이야기의 기본구조가 플롯 4단계이며 장편연재만화작품에서 범상치 않은 인물이 여행과 모험을 떠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삶의 방식을 크게 나누어 볼 때, 네 단계의 영유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말년기의 상징성을 지닌 심리적 성장과정이며, 인물이 유형화된 특성도 크게 네 단계의 부류로 나누어 성장과정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성장할 인물의 표상화인 영웅의 여정, 역시 크게 네 단계의 여정으로 압축되어 설명된다. 즉 이론을 통하여 만화의 4국면의 플롯의 복잡 배열은 삶의 순서를 통한 성장구조의 진행과의 흐름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인물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성찰의 메타포이며 장편연재만화작가들의 작품을 통하여 인생국면 4단계인 인물의 성장과 삶을 통찰하는 은유를 발견하였다. 만화작가가 의도하는 장편연재만화작품의 긴 이야기란, 플롯의 논리적구성법에 의해 인물이 여정을 떠나 역경과 어려움을 겪으며 삶이 변화되고 그의 성장과정은 유형화된 이미지로 제시하여 성찰에 도달함을 영웅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독자는 삶과 인생에서 만화이야기의 이미지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동시에 감동을 통하여 정서상 인물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음을 인식하게 한다.

울산지역 성인 남녀의 스트레스와 식습관 (Relationship between Stress and Eating Habits of Adults in Ulsan)

  • 김혜경;김진희
    • Journal of Nutrition and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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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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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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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울산지역에 거주하는 20대 이상 성인 남녀 412명을 대상으로 건강관련요인, 식습관, 스트레스 점수, 스트레스원인 및 증상 등을 알아보고, 스트레스와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봄으로써 건강한 식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본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대상자는 남자 188명, 여자 224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대학교 재학생이 24.5%, 전업주부 18.9%, 사무직 18.0%, 서비스 판매직 17.0%, 전문직 8.3%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월평균가계수입은 200$\sim$299만원이 전체의 31.1%로 가장 많았다. 82.0%가 핵가족이었으며, 종교가 없는 조사대상자가 전체의 45.1%, 불교 42.5%로 나타났다. 비만도를 살펴보면 정상 54.4%, 저체중 9.7%, 과체중 20.1%, 비만 15.8%로 과체중과 비만군이 비교적 많이 나타났으며, 남자의 경우 과체중과 비만군이 많았으며, 여자의 17.0%가 저체중인 것으로 나타나 성별에 따른 차이를 보였다 (p < 0.001). 전체의 57.0%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으며 (남자: 61.7%, 여자: 53.1%), 주로 걷기 (43.4%), 헬스 (22.6%), 등산 (11.5%), 수영 (8.9%)의 순이었으며, 남 녀 간에 유의적인 차이를 보였다 (p < 0.001). 하루 평균 1/2$\sim$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있었으며,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운동에 할애하였다 (p < 0.001).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미만이 68.2%로 가장 많았으며, 7$\sim$8시간은 29.9%로 나타났다. 건강관심정도는 보통이다 48.5%였으며, 자신이 건강하다는 조사대상자는 34.7%, 보통이다 53.9%로 나타났으며, 전체의 21.6%가 현재 질병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매일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조사대상자는 55.1%였으며, 여자보다 남자가 더 규칙적이었지만 외식빈도는 남자가 더 높았다. 식생활 중 문제점으로는 폭식이나 과식이 30.1%로 가장 많았으며, 불규칙한 식사시간,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선호의 순으로 나타났다. 음주와 흡연정도에서 남 녀간의 유의적인 차이가 나타났으며 남자의 48.9%, 여자의 5.8%가 흡연을 하고 있었으며 (p < 0.001), 남자의 6.9%, 여자의 34.4%가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응답하였다 (p < 0.001). 조사대상자들의 스트레스 원인으로는 개인적 요인, 사회적 요인, 가족관계, 신체적요인, 업무나 학업 순이었으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주로 신경예민 걱정 근심 불안, 두통, 목이나 어깨 등의 통증, 소화불량, 우울, 불면 등을 호소하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휴식, 음주 흡연, 야외 활동 (여행, 운동), 실내활동 (PC 게임, 영화나 TV감상, 노래부르기)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맵고 뜨거운 음식, 술이나 커피 등의 음료, 단음식 등을 선호하였으며, 남 녀 간에 다소 차이를 보였다. 전체의 55.8%가 조금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하였으며, 스트레스 점수는 높을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으로 최고 100점 중 전체 평균 58.3점으로 조사되었다. 각 영역별 점수를 살펴보면 음주와 흡연이 12.8 $\pm$ 4.8점으로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정서적 활동 14.0 $\pm$ 2.6점, 식생활 15.2 $\pm$ 3.3점, 육체적 활동 16.4 $\pm$ 4.4점의 순으로 나타났다. 평균 식습관점수는 41.1 $\pm$ 7.1점이었으며, 스트레스 점수 '상'인 그룹 36.8 $\pm$ 6.3점, '중' 40.5 $\pm$ 6.0점, '하' 47.3 $\pm$ 6.4점으로 나타나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식습관 점수가 낮은 것으로 유의적인 차이를 보였다 (p < 0.001). 식습관점수 '상'인 그룹의 평균 스트레스 점수는 46.7 $\pm$ 11.8점 '중' 55.0 $\pm$ 9.8점, '하' 63.5 $\pm$ 8.3점으로 식습관 점수가 좋은 '상' 그룹에서 가장 낮은 스트레스 점수를 보였다 (p < 0.001).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식사량 (p < 0.01)이 증가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32.0%, 음주량 (p < 0.001)의 증가 44.9%, 흡연량 (p < 0.001)의 증가 22.8%, 신체활동량 (p < 0.001)의 증가 22.8%로 나타났지만, 스트레스 점수가 낮은 '하' 그룹에서는 식사량 (58.1%), 음주량 (45.7%), 흡연량 (90.7%), 신체활동량 (53.5%)이 동일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식사량이 감소한다는 응답이 23.3%로 나타났다. 연령이 높은 군에서 식습관점수가 유의적으로 높았으며(p < 0.001), 스트레스 점수는 30대, 40대, 20대, 50대의 순으로 증가하여 연령대별로 유의적인 차이를 보여주었다(p < 0.001). 학생, 자영업, 판매영업직에서 낮은 식습관 점수와 높은 스트레스 점수를 보여주었으며 (p < 0.001), 독신가정이고 운동을 하지 않거나 (p < 0.001), 수면시간 (p < 0.05)이 적을수록 스트레스 점수는 높아지고, 식습관 점수는 낮았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볼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불규칙적이며 자극적인 식사를 선호하고 음주와 흡연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이러한 생활이 반복될 경우 비만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적절한 영양섭취가 필요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운동이나 사회활동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비만 등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관리 및 생활습관을 가지기 위한 지속적인 영양교육이 실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석재 서병오(1862-1936)의 1889년작 난죽석도 연구 (A Study on the 1889 'Nanjukseok' (Orchid, Bamboo and Rock) Paintings of Seo Byeong-o)

  • 최경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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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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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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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서병오(徐丙五, 1862-1936)는 서구적 '미술' 개념의 도입으로 일본화 내지 서양화로 기울던 일제강점기 시서화일치의 대구 문인화단이 형성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1879년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의 만남을 계기로 서화계에 입문하였으나, 문인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세 시기로 구분되며, 학습기인 1879년부터 1897년까지는 관직 진출을 목표로 하였던 때문인지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이하응의 영향 아래 사군자화를 여가에 그리는 정도였다. 발전기는 1898년부터 1920년까지로 그는 애국계몽운동 등 사회적 지도자로 활동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삶의 방향을 문인화가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중국 여행에서 다시 만난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운미란과 포화(蒲華, 1830-1911)의 묵죽법을 근간으로 새로운 화풍을 적극 모색함과 동시에 산수, 화훼, 기명절지 등의 화목도 다루었다. 완숙기인 1921년부터 1936년까지는 대구와 한양을 오가며 근대 한국 화단의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묵란과 묵죽에서 윤묵의 호방한 필법을 특징으로 하는 개성적 화풍을 완성하였다. 특히 학습기의 경우 관련 기록이나 현전작품이 드물어 서병오의 창작활동이나 화풍 등에 관한 것은 추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석죽도 11점은 학습기의 화풍 연원이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889년작 난죽석도 가운데 묵란도는, 이하응이 1882년 7월 청군에 의해 체포되기 이전에 그린 초기 군란도와 석란도에서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묵죽도는 한양에 널리 알려진 양주화파 정섭(鄭燮, 1693-1765)과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 1809-1892)의 화법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하응의 석란도 형식을 응용하여 변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석도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성은 찾지 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청나라의 괴석화가 주당(周棠, 1806-1876)과 여항화가 정학교(丁學敎, 1832-1914) 등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죽석도는 학습기에 그려진 것으로 운현궁을 찾았던 허련과 정학교 같은 동시기 화가들이나, 한양에 작품이 유입되었던 정섭과 주당 등의 중국 작품을 실견하며 이들의 화풍을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시장 참관객의 계획되지 않은 방문행동에 있어서 부스추천시스템의 영향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Effect of Booth Recommendation System on Exhibition Visitors Unplanned Visit Behavior)

  • 정남호;김재경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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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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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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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국가신성장동력으로MICE(Meeting, Incentive travel, Convention, Exhibition) 산업이각광받으면서국내전시산업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 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전시산업(domestic exhibition industry)도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전시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 중에서도 전시환경이나 전시기법 등에 따라 관람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지능형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전시장에 방문한 참관객의 참관패턴을 분석하여 참관객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참여업체 간의 연관관계 도출 및 전시회의 성과를 높이고자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부스추천시스템과 관련된 연구를 살펴보면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추천의 정확성만을 논하고 있을 뿐 추천을 통한 참관객의 행동이나 인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하고 있지 못하다. 부스추천시스템(Booth Recommendation System)은 참관객의 부스방문 정보를 바탕으로 참관객에게 적절한 부스를 추천하기 때문에 참관객은 사전에 계획하지 않은 전시장을 방문하게 될 수 있다. 이 때 참관객은 계획하지 않은 방문행동을 통해서 만족할 수도 있지만 추천과 정이 번거롭다거나 자유롭게 참관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참관객의 자유로운 관람보다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부스 추천시스템을 전시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요인이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부스추천시스템이 참관객의 계획되지 않은 방문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부스추천시스템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론과 기존문헌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참관객의 지각된 부스추천시스템의 성과가 참관객의 계획되지 않은 행동에 대한 만족도와 부스추천시스템의 재사용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론적 프레임워크로 본 연구는 계획되지 않은 행동이론(Unplanned Behavior Theory)을 도입하였다. 계획되지 않은 행동(unplanned behavior)이란 "소비자들이 사전에 계획하지 되지 않은 채 실행된 어떤 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계획되지 않은 행동은 그 동안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어 왔다. 특히, 마케팅에서는 계획되지 않은 행동 중 계획되지 않은 구매(unplanned purchasing)에 많은 관심을 두어 왔는데 이 개념은 종종 충동적 구매(impulsive purchasing)와 혼동되어 사용되곤 하였다. 그런데, 충동적 구매가 갑자기 무엇인가 구매를 해야하는 강하고 지속적인 충동(urge)이라고 본다면 계획되지 않은 구매는 구매의사결정의 시점이 상점에 들어가기 전이 아닌 상점 내에서 수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즉, 모든 충동적 구매는 비계획적이나, 모든 계획되지 않은 구매가 충동적인 구매는 아니다. 그런데, 왜 소비자들은 계획되지 않은 행동을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소비자가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따라서 중간에 계획을 변화시킬만한 유연성(flexibility)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일관된 의견을 보인다. 즉, 계획되지 않은 행동을 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면 소비자들은 사전에 수립한 계획을 변경하기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전시장 역시 참관객들은 방문하기 전에 전시장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어떤 부스를 방문할지를 사전에 계획하게 된다. 그 이유는 참관객들이 전시장 방문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전시회는 대규모의 다양한 부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참관객들이 모든 부스를 참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부스추천시스템이 참관객이 선호할 만한 부스를 추천하게 되면 참관객은 자신의 계획을 변화시켜서 부스추천시스템이 추천한 부스를 방문하게 된다. 이러한 방문행동은 소비자가 상점을 방문하거나, 관광객이 관광지에서 계획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과 유사한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하며 특히 최근 여행소비자들이 정보기기의 영향으로 계획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부쩍 증가한 추세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에 다음과 같은 연구모형을 설정하였다. 이 연구모형은 참관객이 지각한 부스추천시스템의 성과(performance)를 매개변수로 하고 있는데 이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부스추천시스템에 대한 신뢰(trust), 전시장 참관객의 지식수준 (knowledge level), 부스 추천시스템의 기대된 개인화 (expected personalization) 그리고 부스추천시스템의 자유위협(threat to freedom)을 영향요인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지각된 부스추천시스템 성과와 계획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참관객의 만족도와 향후 부스추천시스템의 재사용의도간의 인과관계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 때 부스추천시스템에대한신뢰는권한(competence), 자선(benevolence), 그리고진실(integrity)의2차요인(2nd order factor)으로구성하고, 나머지 요인들은 1차 요인으로 구성하였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2011 DMC Culture Open 행사에서 부스추천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시스템을 개발하고, 101명의 참관객을 대상으로 실증조사를 하여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첫째, 부스추천시스템에 있어서 참관객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실제 해당 부스추천시스템을 이용한 참관객들은 신뢰를 통해 부스추천시스템이 성과 있다고 인식하였다. 둘째, 참관객의 지식수준 역시 부스추천시스템의 성과에 유의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추천의 성과가 전시장에 대한 사전적 이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즉, 전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은 참관객이 부스추천시스템의 유용성을 더 잘 파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기대된 개인화 수준은 성과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데 이는 기존 연구와 다른 결과로 본 연구에 사용된 부스추천시스템이 충분히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넷째, 부스추천시스템의 추천정보는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거나 제한한다고 느끼지 않음으로 충분히 유용한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부스정보시스템의 높은 성과는 참관객들의 계획되지 않은 행동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향후에도 부스추천시스템을 재사용할 의도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본 연구는 부스추천시스템이 야기하는 참관객의 계획되지 않은 부스방문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하기 위해 계획되지 않은 행동이론을 중심으로 실증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하고, 이를 통해 향후 부스추천시스템의 구축 및 설계에 유용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향후에는 보다 정교한 설문구성과 측정대상을 이용하여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모란봉>(1958)과 음반 (1960) 수록 <춘향전>을 통해 본 1950년대 북한 창극의 실제적 양상 (The actual aspects of North Korea's 1950s Changgeuk through the Chunhyangjeon in the film Moranbong(1958) and the album Corée Moranbong(1960))

  • 송미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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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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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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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영화 <모란봉>은 1958년, 아르망 가티, 크리스 마커, 클로드 란츠만, 프랑시스 르마르크, 장 클로드 보나르도가 조선필름의 초청으로 떠났던 북한 여행의 산물이다. 그러나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는 바로 개봉되지 못했고, 2010년에야 다시 발굴되어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란과 동일의 서사가 저 멀리 조선의 고전 춘향전 속 춘향과 몽룡의 서사와 포개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때 조선의 고전은 두 주인공의 서사와 시간대를 공유하는 극중극 <춘향전>의 형태로 재현되며, 두 서사는 총 6개 장면에서 포개어진다. 영화에는 두 겹의 중층적인 액자가 존재하는데, 1950년대의 북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란과 동일의 서사가 가장 바깥에 있다면, 그 안에 창극 <춘향전>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만들어 가는 서사가 있고, 가장 안쪽에 온전한 작품으로서의 창극 <춘향전>이 배치된다. 영화 가장 바깥의 액자에서는 동일이 주인공이지만, 안쪽 두 겹의 액자에서는 창극 <춘향전>과 함께 성장하는 배우이자 창극 <춘향전>의 등장인물인 영란이 중심이다. 다음 이 영화의 OST 음반으로는 프랑스에서 1960년 발매된 , 1970년 발매된 , 그리고 일본에서 1968년 발매된 <朝鮮の伝統音樂-唱劇 「春香伝」と伝統樂器-> 3종이 있다. 은 영화 <모란봉>의 음악으로만 구성된 반면, 이후 나온 두 음반은 평양국립방송을 통해 수집 및 녹음한 곡을 추가로 포함하였다. 다만 일본에서 발매된 음반에는 영화 <모란봉>에 관한 정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정황상 음반사나 음반 해설지의 필자도 영화 <모란봉>의 존재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며, 영화의 개봉 자체가 금지되었던 배경 때문에 의도적으로 관련 내용을 배제한 것일 수도 있다. 본고에서 영화 <모란봉> 또는 OST 음반에 수록된 창극 <춘향전>의 세부 장면 <이별가>, <십장가>, <춘당시과>, <박석티>, <옥중가>를 분석한 결과를 1950년대 북한 창극계의 변화와 관련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50년대 북한 창극 <춘향전>의 정립 과정을 확인하였다. 1955년에 『조선창극집』을 통해 정리된 희곡이 1956년~1958년 사이 『조선민족음악전집(창극 및 민족가극편)1: 창극 <춘향전>(초고)』에 이르러 실연 가능한 창극 형태로 정착하였고, 영화와 음반에 수록된 부분은 1950년대 말 그 완성판의 한 예시에 해당한다. 1960년대 이후 <춘향전>은 더 이상 기존의 판소리식 창극으로 공연되지 않았기에, 영화 <모란봉>과 음반 은 창극 <춘향전>과 그 음악을 오롯이 담아낸 거의 마지막 기록물이 된다. 둘째, 1950년대 북한 창극계의 탁성 논쟁과 관련한 창극 배우들의 대응 양상을 확인하였다. 1959년까지도 북한에서는 탁성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와 이것도 민족적 특징이라는 옹호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공존했다. 맑고 높은 성음의 구사로 탁성 제거에 일정한 성과를 보인 신우선, 분명한 변화를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발성을 달리한 공기남, 탁성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배역을 선택한 조상선, 당이 요구하는 발성법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자기 원 음색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임소향, 이들의 판단과 대처는 영화 <모란봉>과 음반 속 소리에도 오롯이 반영되어 있었다. 한편 조상선과 임소향은 그들의 소리를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배역을 보장받았지만, 영화 <모란봉>에 나타난 선택/배제의 양상은 이와 별개로 1950년대 월북국악인들에게 요구되었던 탁성 제거 지침과 그대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