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간 로맨스를 다룬 GL(Girls' Love)은 서브컬쳐 시장에서 규모가 작고, 마이너한 문화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속에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GL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탈BL'을 선언한 사람들이 남성 캐릭터 대신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GL을 소비해야 한다고 권장하는 것이다. 여성창작자가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여성 서사를 소비하고, 이를 통해 여성 서사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2018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웹툰 <그녀의 심청>은 신화 다시 쓰기를 통해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효녀, 열녀 등 여성에게 주어진 젠더 규범은 <그녀의 심청>에서 모두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착한 딸은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고, 현숙한 부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심청 외에도 뺑덕어미나 장승상 부인, 장승상의 며느리까지 여성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함으로써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 사이의 연대는 자연스레 GL적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심청>은 여성 사이의 키스나 포옹 등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표현하며, 남자 없는 세계의 여성 간 로맨스를 보여준다. 여성들 사이의 연대가 종종 '위험하지 않은' 우정이나 소녀적 감수성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그녀의 심청>의 여성 간 로맨스는 여성 거래의 문화적 규칙을 깨는 여성 성장 서사다. 이를 통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중심으로 여성을 거래해온 공모적 남성 연대의 모순이 드러난다. 이처럼 GL 서사는 로맨스가 불가능한 시대의 서브컬쳐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픽 노블은 시각적 표현 부분 및 서사적 가치의 측면에서 대개 일반 만화와 다르다고 인지된다. 그러나 이 모호한 기준 때문에 각 작품을 통해 그래픽 노블의 잠재성을 제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그래픽 노블로 널리 인정받은 작품인 크레이그 톰슨의 "하비비"를 대상으로 표현양식과 서사 양쪽 면에서 그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미국 작가가 아랍권의 여성을 그려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표현양식이 어떻게 서사와 연계되는지 분석함으로써, 그래픽 노블이 가질 수 있는 서사적 전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하비비"에 나타난 아랍 문자의 이미지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표현양식을 연구하고, 게일 루빈의 여성 거래 이론으로 "하비비"에 투영된 여성 성장서사를 살펴, 이것이 어떻게 그래픽 노블의 표현양식과 결합하였는지 연구하였다. 본 연구는 독자적 서사 형식을 지닌 만화 매체로서 그래픽 노블이 가진 표현양식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서사의 잠재성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서사민요가 어떤 방식으로 전승, 향유돼 왔는지를 문헌 및 현장조사 자료를 통해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서사민요가 지니고 있는 교육적 의의에 대해 논의하였다. 서사민요는 평민 여성들의 공동체 내에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내면을 표출하는 노래에서 시대에 따라 궁중의 상층계층까지 즐기는 노래로 상승되기도 하고, 평민 남성까지 향유하는 노래로 확대되기도 했다. 또한 연행 상황에 따라 고난과 시련을 한탄하는 비극적 노래에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억압을 해소하는 신명의 노래로 탈바꿈하며 그 영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구비전승의 틀을 넘어 매체를 통한 전달 방식으로 향유되기도 했다. 즉 서사민요는 한 가지 고정된 방식으로 향유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되면서 서사민요의 주 향유층인 평민 여성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해왔다. 따라서 서사민요는 문학 교육에서 학습자들로 하여금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와 상호소통하며 바람직한 공동체 생활에 기여하는 태도를 기르게 하는 데 매우 적절한 제재로 활용할 수 있다. 서사민요의 다양한 향유방식을 직접 체험해봄으로써, 학습자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페미니스트 범죄서사인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1990년대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대중화, 강남 중산층 소비 문화와 미디어 문화의 전면화를 배경으로 중산층 가정의 사회적 도덕적 규범성이 강화되는 맥락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고자 하였다. 이 소설의 여성 주인공인 강민주와 백승하는 모두 1990년대 텔레비전과 광고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한 강남의 거주자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녀 주인공에게 각각 할당된 페미니스트이자 강한 소비적 정체성을 지닌 여성과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성은 모두 당대 여성운동의 성장과 대중화된 페미니즘의 이슈를 체현한다. 소비주의 미디어 문화, 여성운동, 민주화의 결합은 무엇보다 중산층이라는 물질적 토대를 가시화하는 가운데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성상을 창출했다. 이 소설에서 가정적 남성상은 페미니스트 범죄 서사를 중산층 가정의 안정과 위엄을 공격하는 팜므 파탈의 서사로 전화시키며, 바로 그 전화의 순간에 강민주는 자신을 흠모해온 하층계급 남성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양귀자의 이 소설은 1990년대 본격화된 강남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의 사회문화적 재현과 페미니즘 이슈를 중첩시킨 텍스트로서 시사적일 뿐만 아니라 징후적이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에서 펼쳐질 범죄 서사의 핵심 코드로서 여성 혐오 살인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벌새>는 십대 소녀의 시선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역사를 교차시키며, 가부장제와 한국적 자본주의가 여성 주체의 성장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흔적과 내상을 남기는지를 면밀하게 탐색한다. 이 영화는 성장 서사에서 서술 주체를 소년에서 소녀로 전환시켰을 때, 그리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기입하였을 때, 어떤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텍스트이다. <벌새>는 에피소드적 서사 구성 속에서 십대 소녀의 시선을 통해서 가부장제적 상징 질서의 취약함을 드러내기도 하며, 또한 그 틈새들 속에서 여성들 간의 긴밀한 관계성과 유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특히 주인공 소녀 은희의 한문학원 강사인 영지라는 인물은 그동안 한국 청소년 영화에서 유례가 없었던 새로운 여성 인물로서 은희의 내면성의 발견과 사회화를 연결 짓고, 궁극적으로 영지의 성장을 이끄는 이상적 조력자이다. 결과적으로 동시대 남성 십대 주체들의 반-성장서사와는 달리, <벌새>에서 우리는 성장의 고통을 '그런대로 괜찮은' 상태로 협상하는 새로운 여성 주체를 만나게 된다.
본 연구는 <온달설화>를 활용하여 국내 결혼이주여성의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학치료적 접근을 시도했다. 연구에서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의 한국문화 적응과정에서 건강한 정체성형성의 어려움에 대하여 제시하고 온달설화의 서사적 구조를 활용한 문학치료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연구에서는 검증된 서사인 고전문학을 활용하여 결혼이주여성들의 건강한 자기서사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도와주며 나아가 건강한 정체성 재확립에 대한 가능성을 그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연구에서는 자기서사를 통하여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학치료적 대안을 마련함으로써 그들이 행복한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결혼이주여성을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프로그램구성에서 고전문학을 활용하여 그들의 한국문화 이해 그리고 한국어능력 향상까지 기대효과를 걸 수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부분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이 글은 1990년대 이후의 초국적 '한류' 현상을 한국 문화의 세계적 진흥이라는 메타서사의 창출과 더불어 살펴본다.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호감은 인근 지역 여성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곧 IMF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문화 산업 자체를 '굴뚝없는 공장'으로 주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계무대를 향한 열망으로 한류가 공식화됐고, 지난 20여 년간 한류 1.0, 한류 2.0, 그리고 한류 3.0이 쉼없이 전개됐다. 이제 K-드라마, K-pop 등을 포괄하는 'K-엔터테인먼트'가 주창되고, 한국적인 모든 것으로 K-컬쳐도 내세워지고 있다. 이 글은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행위성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대중문화의 흥기와 그 초국적 진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 팬과 걸 그룹을 여성주체의 역량 및 여성노동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우선 구체적으로 한류의 전사(前史)로서 초국적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여성 팬이 부상하는 맥락을 톺아본다. 또 K-엔터테인먼트의 전사(戰士)였지만 후경화되고 소략화됐던 걸 그룹과 여성 청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논의했다. 결론적으로 이들 여성 팬과 걸 그룹, 그리고 여성 청년들을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주체로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존의 민족 혹은 계급 논의를 대체하는 세대 논의에서 여성은 여전히 재생산 영역에 머물러 있다.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이를 반박하는 『82년생 김지영』 등 여성서사에 대한 관심이 동아시아를 넘고 있다. 이 흐름에서 여성 청년이기도 한 여성 팬과 걸 그룹 당사자들이 페미니즘 지향의 독자로 조우하기도 했다. 애초 한류가 여성들의 의해 가능했듯, 초국적 K-엔터테인먼트 장에서 새로운 여성서사가 생성 중인 것이다. 이 글은 여성 팬, 걸 그룹, 여성 청년이 사회학적 각론에서가 아니라, 젠더화된 메타서사에 대항하는 행위성으로 읽혀져야한다고 했다.
이 글은 국가폭력에 관한 서사에서 폭력을 전시하거나 고발하는 장소로 나타나는 '여성의 몸'을 분석하고 이를 젠더 비평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여기서 대표적으로 살펴볼 국가폭력 서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혹은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서사들이다. '5.18'에 초점을 두는 까닭은 이것이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가폭력의 사건인 동시에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대부분의 시민 저항 운동에서 상징적 표상성을 지닌 사건으로 재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표상하는 상징성은 '폭력'과 '저항'으로 압축되는데 이 '폭력'과 '저항'의 서사에서 재현된 '여성의 몸'은 중요한 상징적 효과를 창출한다. 최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과 서술을 둘러싼 학술적 논의는 공식 기록에 등재되는 연대기적 사건 구성에 초점을 두는 방향과 반대로 개별적이고 구체적 장면에 뒤얽힌 개인의 기억과 감정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개별 사건에 참여한 개인들의 구술과 이를 통해 드러난 사회적 기억의 내용이 연구 주제로 초점화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연구 경향의 결과로 사회 다방면에서 그동안 소외되던 이들의 구술을 청취하는 작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글에서는 타자화된 '여성의 몸'이 국가폭력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장소로 재현되는 양상을 밝히고 이와 길항(拮抗)하는 구술 서사의 '여성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또다른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폭력과 저항을 재현하는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 폭력과 저항을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와 발화의 구체적 내용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재현된'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 '말하는' 여성의 입을 통해 폭력과 저항의 서사 속에서 '여성'들이 고통의 기억을 어떻게 서술하는지, 그리고 사건을 서사화하는 전략 수행의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분석하게 될 것이다.
본 연구는 TV 드라마 <마인>을 대상으로 이 드라마가 최근의 여성주의적 요구를 수용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해 어떤 서사 전략을 사용하는지 분석하였다. 그 결과 가부장제가 견고한 재벌가를 배경으로 부계 혈통인 아들이 아닌 두 며느리를 서사의 주체로 호명하고, 이들이 가부장제 질서에 도전, 사건 해결의 주체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며 기존 가부장제 드라마의 클리셰를 파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남성들의 권력이 거세되고 대리인 역할을 해왔던 여성들이 희화화됨으로써 젠더 권력이 전도되었다. 또한 기존의 친모-양모, 동서 간 등 여성 간 갈등 구조의 인물관계를 파기하고, 이들 간의 끈끈한 연대를 통해 부계 혈통주의를 상징하는 남성을 단죄하고 진정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결말을 통해 가부장제 질서를 전복하며 두 가지 성취를 일궈낸다. 하나는 가부장제의 원형인 부계 혈통의 아버지가 아닌 양모와 친모가 아이의 공동양육을 하게 됨으로써 비혈연 모계가족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이다. 다른 하나는 부계 혈통으로 승계되던 재벌가의 후계 자리가 장자나 부도덕한 아들이 아닌 레즈비언 며느리에게 승계됨으로써 가부장제가 고수해온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전복했다는 점이다.
이 논문은 <설인귀전>의 여러 이본과 <당태종전> <울지경덕전> <천개소문전> <서정기> <설정산실기> <번리화정서전>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설인귀 서사의 대중화 양상과 시대의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설인귀는 여 당 전쟁 당시 활약했던 당나라 장수이다. 적국의 장수였던 설인귀에 대한 서사가 조선시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임병양란 이후 강성한 국력을 지녔던 고구려사를 재인식하고 고토회복 담론의 부각으로 인해 가능했다. 또한 설인귀 서사와 유사하게 전개되는 <소대성전>이 인기를 확보하고 있었고 설인귀와 함께 여 당 전쟁에서 활약했던 당태종과 울지경덕에 대한 고사가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설인귀의 요동 정벌 서사와 영웅성이 점진적으로 부각되고 <설인귀전>에 등장한 당태종 울지경덕 합소문에 대한 독립 서사가 형성되며 여성 영웅들이 서번을 정벌하는 서사로 확장된 설인귀의 후속 서사가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설인귀 서사의 대중화 양상에는 민중과 여성의 등용과 이민족 세력 통합의 필요성과 국력이 약화된 조선의 현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국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시대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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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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