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실천윤리

검색결과 256건 처리시간 0.021초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과 척사논리(斥邪論理)의 상관(相關) 관계(關係) (A study on the mutual relation between logic of Simjuriseol and the movement to "reject heterodoxy" of Yi, Hang-no)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 /
    • 제34호
    • /
    • pp.257-286
    • /
    • 2009
  • 이항로는 태극(太極), 즉 이(理)가 지닌 주재(主宰)와 묘용(妙用)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그것을 명덕(明德), 즉 심의 본질이라고 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것은 리와 기를 상보적인 것으로 보는 기존의 심설에서 벗어나 리와 기의 차별성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함이었다. 특히 그는 학문의 목표는 대인(大人)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며, 그것은 먼저 인심과 도심의 구별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즉 인심과 도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하는 당시의 특수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항로는 리로 표현되는 물아일체적(物我一體的) 도덕률(道德律), 즉 천명의식(天命意識)을 부정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서양인들의 윤리관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었다. 이항로는 그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태극이 곧 우리 마음의 본체라는 점을 일깨우려고 한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도덕심(道德心)이란 것은 인간이 사사로이 거스를 수 없는 태극의 원리, 즉 천명(天命)'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이항로가, 인간이 사사로이 거부할 수 없는 도덕심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은, 그것 이외에는 당시 조선사회를 격동시키던 서양 문화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병인양요(丙寅洋擾)(1866)가 발생하자, 이항로는 동부승지로 발탁되어 상소(上疏)와 주차(奏箚) 등을 통해서 척사의 방책을 진달하였다. 평소 인심과 도심의 구분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도심을 준수해야 한다고 역설한 그의 주장은 척사 상소에서도 그대로 전개되었다. '양이(洋夷)'의 침투에 맞서 주전론(主戰論)과 통상불가론(通商不可論) 등을 피력한 이항로의 척사소는 그 궁극적인 해결책으로서 군주의 도심을 강조하는 형식을 띠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항로의 심설은 그대로 병인양요 때에 제시된 척사소에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이론과 실천이 일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항로 심주리설의 특징이었다.

해원 개념의 용례와 종교적 전환 (Usages and Religious Takes on the Concept of Haewon)

  • 고병철
    • 대순사상논총
    • /
    • 제39집
    • /
    • pp.1-32
    • /
    • 2021
  • 이 연구의 목적은 해원(解冤)의 용례를 검토하고, 그 개념적 변화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시대(제2장)와 일제강점기의 해원 용례들(제3장), 그리고 『전경』과 주요 선행연구의 내용(제4장)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대순진리회에 이르기까지 해원의 용례와 개념적 변화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원은 역사성, 사회성, 문화성을 지닌 용어이다. 이는 해원이 조선시대 이후부터, 그리고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집단적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사용된 용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문화를 집단적 의식이나 물질적 산물로 본다면, 해원은 사회적·문화적 열망을 담은 용어였다. 둘째, 해원은 역사적으로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이는 해원 개념의 적용 범위가 문제 영역(법적 영역, 자연재해 영역, 제도 영역 등)에 따라 달랐다는 점,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상 언어와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의 적용 범위가 달라졌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해원은 증산의 등장 이후에 교리 체계에 담긴 종교 언어로 전환된다. 조선시대에 해원이 주로 일상 언어로서 법적 차원에서 죽은자와 산자의 원통함을 드러냈다면, 증산의 등장 이후에는 해원이 초인간적 존재에 의한 선천의 혼란 해소와 후천이라는 변혁된 세계의 등장을 매개하는 교리적 차원의 종교 언어가 된 것이다. 이어, 『전경』과 대순진리회의 선행연구들은 해원 개념이 교리적 차원에서 정교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해원 개념에 담긴 사유의 역사적 전환을 보여준다. 해원은 교리 체계에 포함된 종교 언어로서, 원통함을 푼다는 내포를 유지하면서도 개인과 사회를 넘어 세계라는 외연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해원 개념은 교리 체계에서 세계의 변혁을 매개하고, 이러한 변혁의 과정에서 수련과 윤리적 실천 등이 필요하다는 사유를 지속적으로 창출한다.

풍수지리로 본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Daesoon Jinrihoe Yeoju Headquarters Temple Complex as Viewed within Feng-Shui Theory)

  • 신영대
    • 대순사상논총
    • /
    • 제33집
    • /
    • pp.91-145
    • /
    • 2019
  • 본 논문은 구천상제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을 종지로 하여 상생의 등불, 수도의 터전, 인존시대를 여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풍수학의 형기(形氣)적 이치를 통해 개벽공사 성지(聖地)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지리적 위치, 산수의 음양관계, 지맥(地脈)의 행도(行度) 과정 등 풍수지리 전반에 걸쳐 고찰이 필요하다 하겠다. 동시에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 구제창생(救濟蒼生),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목적으로 포덕(布德)·교화(敎化)·수도(修道)의 기본사업과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의 3대 중요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이 후천개벽의 인존시대를 열어갈 풍수적 적지임을 말해주는 용(龍), 혈(穴), 사(砂), 수(水)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도 매우 중요하다. 종단의 중심인 여주본부도장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적 국세를 두루 갖추고 있다. 인류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중심인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에 대한 풍수적 고찰을 통하여 풍수적 상징성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의 윤리 실천을 통해 미래를 밝혀 나갈 생왕지지(生旺之地)에 대해 탐색하고, 팔방(八方)의 상서로운 기운이 모인 이곳 본부도장의 영험한 명당국세의 수도처적(修道處的) 지세와 형국, 맑은 수기(水氣)와 어울린 지맥(地脈), 산수유정한 국세, 용혈사수(龍穴砂水)의 이치에 부합한 여주본부도장의 풍수적 입지를 밝히고자 했다. 따라서 본 논문의 주제인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풍수적 입지와 관련하여 현장을 중심으로 산과 물의 흐름을 풍수지리 이치에 근거하여 살피고 주변의 산세가 어떤 형태로 호응하고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여주본부도장을 중심으로 사신사(四神砂)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포국(布局)과 입지의 연관성을 고찰하고자 형기론(形氣論)을 중심으로 전래 된 전통 지리서(地理書) 등을 토대로 여주본부도장의 풍수적 연구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성인들의 과학문화 활동 경험에서 나타난 과학 관련 태도 -과학소설 독서토론 활동 사례를 중심으로- (The Science-Related Attitudes from Adults' Experiences during Science Cultural Activities: Focusing on the Case of Science Fiction Discussions)

  • 강은지;신채연;송진웅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 /
    • 제43권2호
    • /
    • pp.139-150
    • /
    • 2023
  • 본 연구는 과학교육의 다양한 모습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문화 활동에 대한 실천적인 연구의 필요성에 따라 수행되었다. 이에 성인 4명의 과학소설 독서토론을 연구 사례로 선정하고 과학문화 활동에서 나타나는 과학적 태도와 과학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는 과학 관련 태도를 질적으로 탐색하였다. 참여자들은 과학기술 전문가가 아닌 30대 직장인으로 독서와 토론 활동에 익숙하며 이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다. 작품 선정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연구 참여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3권의 과학소설을 선정하였다. 4개월 동안 총 3회차의 독서토론 활동, 각 회차에 대한 사후 면담, 전체 활동 종료 후 개별 심층 면담의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독서토론은 자유롭게 논제와 의견을 제시하는 비구조화된 자유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연구 과정에서 녹음 및 전사된 독서토론 담화, 사후 및 심층 개별 면담, 연구자의 관찰 기록지, 참여자들의 독서기록과 같은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수집한 자료들은 지속적 비교 방법을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참여자들은 과학소설 독서토론에서 과학적 태도를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자들이 보인 과학기술 비판과 윤리적 성찰, 합리성에 대한 문제인식과 근거 제시, 과학적 호기심 해소와 추론은 과학소설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참여자들은 과학소설의 텍스트적 특징인 이야기를 통해 과학 이해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흥미의 발달을 보이며 과학을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은 이해와 학습 대상으로서의 과학이 아닌 문화로서 과학을 즐기는 활동 자체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태도 변화를 나타내었다. 위 결과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학교 교육 이후에도 성인을 대상으로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신장하기 위한 과학문화의 의미를 밝히고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동학교 '도로 선천(先天)'사상의 내용과 의의 (The Essence and Significance of the Concept of 'Return to the Former World' in Donghak-gyo)

  • 김탁
    • 대순사상논총
    • /
    • 제48집
    • /
    • pp.199-237
    • /
    • 2024
  • 동학교는 김주희가 세운 동학계 신종교단이다. 동학교가사에 나타난 사상의 요체는 용어의 빈도수와 읊어진 구절의 내용을 고려하여 '도로 선천(先天)'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동학의 시운관(時運觀)이 '다시 개벽(開闢)'사상이라면, 동학교의 시운관은 '도로 선천(先天)'사상이다. 동학교에서는 선천이라는 용어를 특히 강조했고, 역학(易學)을 활용하여 노래했으며, '음양의 마주 봄'으로 개벽의 상황을 읊었다. 동학교에서는 후천의 운수마저 다한 다음에야 비로소 '도로 선천'이 이루어지리라고 강조한다. 이 '도로 선천'의 운수가 회복되면 목덕(木德)으로 상징되는 '봄<춘(春)>'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동학교에서는 새로운 운수(運數)의 전개를 '역(易)의 회복'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질서와 규범이 전개될 새 세상을 '도로 선천'으로 부르는데, 이때가 되면 '도덕세계'가 이루어져 도덕 문명이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로 선천'을 회복하는 운수가 바로 천도(天道)가 회복되는 일과 같다고도 노래한다. '도로 선천'사상의 특성은 첫째, 복고적 체계를 지향한다. 둘째, 과거지향적 사상이다. 셋째, '도로'는 '근원으로 돌아가자.', '근본을 회복하자.'라는 실제의 행동을 유발하고 권유하는 생각이다.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당대의 여러 신종교와는 다르게 선천(先天)에 대해 독창적인 관념과 인식을 부여했으며,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했다. 선천을 폐기해야만 할 낡은 시대로 규정했던 일에서 벗어나 지향해야 할 새 시대로 이해했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동양 전통의 과거로의 회귀와 복귀를 추구하던 일을 계승한 사상의 하나로 재평가되어야 하겠다. 하지만 '도로 선천'사상에 구체적 방법론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에는 윤리의식이나 도덕적 덕목이 부족하며, 정작 선천(先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선언적 구호에 그친 감이 있다.

허규 연출 '완판 창극'의 특징과 의의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Wanpan Changgeuk' Written by Heogyu)

  • 김기형
    • 공연문화연구
    • /
    • 제20호
    • /
    • pp.5-30
    • /
    • 2010
  • 허규는 80~90년대 창극 연출을 담당하며 왕성한 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그는 전승 5가 뿐만 아니라 실전 판소리를 창극화 하였으며, 창작 창극 작품도 다수 무대에 선보였다. 특히 '완판 창극'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 <흥보전>을 무대에 올린 후 1985년 <적벽가>를 공연함으로써 전승 5가의 창극화 작업을 완결지은 것은 그가 남긴 큰 업적 가운데 하나이다. 허규는 주체적 민족문화의 정립과 한국 전통연희의 창조적 계승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실천적인 연극인이다. 그는 창극을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창극 작품은 그 연원에 따라, (1)전승 5가의 창극화 (2)실전 7가의 창극화 (3)창작 창극으로 세분해 볼 수 있다. 허규가 연출한 작품에는 이 3가지 유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전승 5가를 창극화한 작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허규가 시도한 '완판창극'은 한국의 전통유산 가운데 빼어난 예술적 성과를 거둔 요소들을 집대성하여 무대에 올림으로써, 창극을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정립해 보고자한 것이다. '완판창극'에 나타난 특징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전통을 중시하는 연출 태도, (2) 전통연희 요소의 적극적 수용, (3) 격조와 윤리의식의 중시, (4) 해학의 강조와 보조인물의 적극적 활용이 그것이다. 허규가 시도한 '완판창극'은 창극이 성취할 수 있는 예술적 수준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판소리 유산을 망라하고 나아가 전통연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창극을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정립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허규는 '완판창극'에서 판소리의 진정성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대목도 빠뜨리지 않고 장면화 하려고 했다. '완판창극'의 공연 시간이 4~5시간이나 소요되었다는 것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허규가 완판창극에서 거둔 성과는 이후 창극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에 시도된 '완판장막창극'도 그 모태는 허규의 '완판창극'에 두고 있다. 창본을 종합해 내고 판소리의 좋은 점을 모두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렇지만 90년대 '완판장막창극'은 대형 무대화를 지향했으며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그리고 버라이어티한 요소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완판창극'과 대비된다. 허규의 완판창극이 끼친 중요한 영향 가운데 하나는 판소리의 '열린 형식'을 창극의 공연 문법으로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허규는 극의 전개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통연희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극적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창극 극작술의 한 방식으로 인식되어, 이후 창극연출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창극은 어떻게 하면 청중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감동받는 창극' 보다는 '재미있는 창극'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공연 시간도 최대 2시간을 넘지 않으려고 하며, 관현악 반주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는 허규가 '완판창극'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창극의 지향점은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