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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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안운마을 백운동원림의 승경과 수공간의 조영 특성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Water Space and Scenic Spot of Baegun-dong Wonlim in Gangjin Aaun Village)

  • 박율진;김홍균;노재현;김화옥;고여빈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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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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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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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여러 시문과 옛 그림 속에 나타난 백운동8영과 12승경 등 백운동원림의 내경과 외경의 고찰을 통해 조망경관과 식재경관 등 백운동원림의 전통 조경적 특질을 검토함으로써 복원의 진정성 제고할 수 있는 자료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1. 백운동원림의 장소성은 백운사지(白雲寺址) 및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이 화양(華陽) 은거고사 그리고 원림입구의 백운동(白雲洞) 각자에서 근원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 백운동8영은 백운동유서기(白雲洞幽棲記)의 표제어를 그대로 차운하고 있으며, 백운동8영의 요소인 소나무 매화 대나무 난 연꽃 국화 그리고 영산홍은 관상학적 측면은 물론 의미경관요소로 지속적으로 원림의 내경을 구성하였던 조경 식물로 보인다. 3. 백운동12승경으로 볼 때, 약 1.6km 권역의 원경인 옥판봉을 외경으로,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풍단 등은 전이공간으로 설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초당과 정자를 비롯하여 국화, 모란, 영산홍, 왕대, 소나무 그리고 연못 등을 내경의 경관요소로 구성함으로써 백운동원림은 별서를 중심으로 구심적이며 다층적 경관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두 개의 방지(方池)가 곡수거로 연결되는데 상지는 크기 $3.5m{\times}4.5m$ 크기이고, 하지 또한 장방형에 크기 $3.6m{\times}5.7m$ 로 실측되고 있으며, 서측을 흐르는 계곡수를 끌어 원내로 유도한 유로(流路)는 $90^{\circ}$의 직각 형태를 보이고, 원내에서 총 5번의 굴절(屈折)을 이루는 곡수로 구성되어 있다. 5. 현재 유구가 남아있는 국내 대부분의 곡수거(曲水渠) 형태는 유선형인데 반하여 백운동의 곡수거는 반듯한 직선으로, 내원(內園)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형태와 규모를 갖는 이채로운 발상과 디자인으로 주목된다. 백운동원림의 진정한 복원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옥판봉을 비롯한 12승경 중 외경의 경물요소에 대한 점진적인 경관연출을 도모하기 위한 조망 관리적 배려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전주팔경의 시원(始原)과 변용(變容)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Origin and Transformation of Jeonju-Palkyung)

  • 노재현;손희경;신상섭;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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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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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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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전주를 대상으로 한 11개 집경(集景)의 표제어 및 시어(詩語) 분석과 해석을 토대로 전주 팔경의 형식과 내용상의 시원 및 변용과정을 시계열분석으로 살핀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팔경시 이전에는 전주팔경의 골격과 유사한 형식의 집경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추재집"에 실린 여덟 편의 시를 전주팔경의 시원(始原)으로 보기에는 큰 무리가 없으며 그 시기는 1829년경으로 추정된다. 이후 19세기 말 작품인 '완산승경'과 '열녀춘향수절가에 기재된 팔경'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시인 신석정이 전하고 있는 팔경' 중 '동포귀범'만이 행정구역의 변화에 따라 동지포에서 봉동의 동촌으로 대상장이 변용되었지만 모두 조수삼의 팔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표제어 일치율 분석 결과, 전주팔경은 최소한 19C 후반에 정착(定着)된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줄곧 전주를 대표하는 경관으로 지속된 것으로 확인되며 이후 '남천표모'와 '곤지망월'이 추가되어 전주십경으로써 외연(外延)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팔경 제영의 형식성에도 불구하고 "패향십영(沛鄕十詠)"이나 "견도십영(甄都十詠)" 그리고 "빈일헌십영(賓日軒十詠)" 등 조선 전기의 집경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인 나루시마 슈쿠시(成島淑士)의 집경 속에도 경기전 건지산 조경단 오목대 그리고 기린봉 덕진연 만경대 등 조선왕조의 발생지이자 전라감영의 수부(首府)로서의 상징성이 높고 전주십경의 연원(淵源)이 되는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때 전주팔경의 의미론적 태동기는 조선 전기까지로 그 전범이 소급(遡及)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에는 견훤도(甄萱都)와 같이 후백제 도읍지로서의 회고(懷古) 관성(慣性)이 큰 승경 뿐 아니라 만경대와 같이 고려말 정몽주와 이성계를 상기시키는 내용의 경물 또한 전주 팔경에 등장함으로써 후백제 도읍지로서의 전주의 위상을 높이고, 조선 왕조의 발흥지로의 역사적 간극을 좁히고 있음이 확인된다. 전주팔경은 후백제 이후 조선시대 역사문화를 담는 유기체적 존재로 다소 부침(浮沈)을 거듭하였지만 지역의 대표적인 승경으로 꾸준히 변용되어 왔다. 전주 팔경은 '전주 한풍경(韓風景)'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족보로,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을 사는 전주인의 몫이라 판단된다.

<황강구곡가>의 창작 배경 및 구성 방식 (Background of creation and composing method in )

  • 장정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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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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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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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고의 목적은 <황강구곡가>의 창작 배경과 구성 방식, 내용상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황강구곡가>는 권상하의 유풍이 쇠미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구곡가의 전승을 통해 기호학파의 도맥을 재확인하고 백부인 권상하를 추숭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옥소 권섭이 창작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작품은 각 승경처를 권상하의 삶의 궤적과 연관지어 서술하는 회고의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에는 권상하의 도학자적 삶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권상하가 은거했던 황강 구곡은 선경(仙境)으로, 그의 삶은 신선적 풍류로 그려냄으로써 간접적으로 입증하였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자연에 대한 인식 태도를 통해 볼 때 <황강구곡가>는 권상하를 위해 창작된 작품이지만 권섭의 의식 세계를 표출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세계와 연장선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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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민속박물관 소장 <해주팔경도(海州八景圖)>에 표현된 조선 후기 해주의 풍경과 풍물 (Expressions of the , Owned by the Onyang Folk Museum Haeju's Scenery and Custom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노재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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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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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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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해주팔경도(海州八景圖)>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해주팔경의 기원과 제작 시기를 유추하고, 팔경도에 담긴 경물과 풍물을 비정(批正)함으로써 해주팔경의 경관상과 집경(集景) 의의를 탐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알려진 해주 집경의 원전(原典)은 구사맹(1531~1604)의 「해주팔영」으로 확인된다. 1782년에 쓰인 유만주의 『흠영』에서는 이를 고팔경(古八景)으로 지칭하고 해주팔경을 금팔경(今八景)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문헌으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 해주의 읍치팔경이다. <해주팔경도>는 '남강에서의 뱃놀이(南江泛舟)', '부용당에서의 연꽃 구경(芙蓉賞蓮)', '광석천에서의 발 씻기(廣石濯足)', '해운교에서의 석별(泣川送客)', '해운정에서의 낚시(東亭釣魚)', '남산에서의 바다 구경(南山望海)'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본된 2폭은 '영해루에서의 달 구경(瀛海玩月)'과 '백림정에서의 백일장과 활쏘기(栢林觀德)'를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해주팔경에서 배제된 고팔경의 수양채미, 신광제설, 지성폭포는 모두 수양산을 대상장으로 펼쳐진 풍경이다. 이렇듯 <해주팔경도>는 수양산 권역에서 벗어나 읍치(邑治) 중심의 승경 재편(再編) 결과로 부용당, 영해루, 백림정과 읍성 주변의 탁열정, 해운정 등의 누(樓)·정(亭)·당(堂)의 읍치 내외 누정이 명실상부한 해주의 승경으로 부상되었을 뿐 아니라 완사석, 비류담, 석빙고, 봉대, 탁마지, 읍수, 부용당, 해운정의 지당과 중도의 형태, 다양한 형상의 선박, 특산주 등 해주를 대표하는 세부 경물을 담고자 한 치밀함이 드러난다. <해주팔경도>에 묘사된 풍경은 해주목의 유서 깊고 탁월한 명소가 대부분이지만 일상 생활과 관련된 생활경(生活景)의 모습도 적절히 안배되었다. 또한 탁족(濯足), 조어(釣魚), 표모(漂母), 상련(賞蓮), 송객(送客), 주유(舟遊), 음주(飮酒), 망해(望海), 완월(玩月), 사예(射藝), 시작(詩作), 음다(飮茶), 가무(歌舞) 등 다채로운 풍류 행위를 담고 있다. 고팔경과 비교해볼 때 해주팔경은 4계절 경관 배분을 고려치 않았을 뿐 아니라 소상전형(瀟湘典型)의 결속성 또한 와해(瓦解)되었다. 해운정의 건립과 영해루의 퇴락(頹落) 시기에 착안할 때 <해주팔경도>는 18세기 초·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된다. <해주팔경도>는 관념적 이상향에서 벗어나 명승고적과 풍물 등 해주의 대표적 풍광을 골라 보여줌으로써 지역민에게 친밀감을 강화시키고 해주인(海州人)으로서의 긍지를 진작(振作)시키는 데 이바지한 그림으로 판단된다.

'함양 용유담(咸陽 龍遊潭)', 전래명승으로서의 의의와 가치 구명 ('Yongyudam of Hamyang', the Significance and Value as a Traditional Scenic Place)

  • 노재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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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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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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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함양 용유담'에 얽힌 유래와 전설, 지리산유산기 속의 경관 인식, 지형지질학적 특성 그리고 주변 유구(遺構)와 바위글씨의 해석과 분석을 통해 이곳의 경관 특성을 밝히고 이를 근거로 용유담의 명승적 가치와 경관보존의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시도된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함양의 대표적인 전래승경 '금대지리(金臺智異)'가 천왕봉과 용유동에 대한 묘사이듯, 고지도나 고문헌에서 또한 엄천강의 중심 '용유동(龍遊洞) 용유담'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승경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왔다. '구룡과 마적도사' '가사어' 전설과 기우(祈雨)의 주술신인 '용신(龍神)의 성소(聖所)'로서의 경관적 은유는 용유담의 본질일 뿐 아니라 신령함과 장소성을 심화시키는 촉매였다. 선인들의 지리산유산기 속에 드러난 용유담의 핵심적 이미지는 '자맥질하는 용과 관련된 지형경관적 특이성', '다양한 모습과 크기의 포트홀', '와류현상에 의한 여울목의 폭음(瀑音)' 그리고 '용 전설의 경관적 은유' 등으로 이들 이미지는 용유담의 장소관성(場所慣性)을 이끌어 왔다. 또한 이곳의 장구소(杖?所) 바위글씨는 김종직을 비롯하여 김일손 조식 정여창 그리고 강대수 등 지리산을 생활경관으로 체험하고 인식하였던 경상우도 사림(士林)들의 '장구 상영지소(杖? 觴詠之所)'로서 기념비적 석문(石文)이자 추모의 표식이다. 또한 용유담 주변의 3단 층계(層階)와 '용유담(龍遊潭)' 바위글씨 그리고 샘[泉]물을 모으기 위해 가공된 수반(水盤)은 제의터로서 영역성이 감지되는 전통조경적 유구이다. 더불어 본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용유동문(龍遊洞門), 방장제일산수(方丈第一山水) 등의 바위글씨는 선경지처(仙境之處) 용유담을 알리는 표식이자, 용유담이 지리산의 대표적 승경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밖에 심진대 영귀대 강화대 등의 대(臺)는 옛 선인들의 풍류처이자 유계(遊契)의 흔적으로 용유담의 의의를 더해 준다. 용유담의 기묘하고 독특한 경관은 수려한 자연을 바탕으로 오랜 역사를 두고 이어져 온 장소관성의 산물이자 문화경관의 총체(總體)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 연구를 통해 지리산 용유담은 '물리적 실체' 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적 가치의 중첩을 통해 꾸준히 전승되어온 복합유산으로 명승 지정 조건에 충일(充溢)함이 확인되었다. 단언컨대 용유담이 갖는 장소성은 물론 지질지형 역사문화적 가치는 그 어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나 논리로도 폄하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될 전래 명승의 진수(眞髓)이다.

지리산 유람록에 나타난 이상향의 경관 특성 (The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Utopia Shown in the Travel Records of Jirisan Mountain)

  • 소현수;임의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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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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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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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지리산 유람록 23편을 대상으로 하여 문인들이 인식한 이상향의 경관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문장 속에 묘사된 '무릉도원(武陵桃源)', '별천지(別天地)', '동천(洞天)', '청학동', 그리고 '은거지'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지리산 이상향의 유형으로 이해하고, 이들의 경관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문인들이 꿈꾼 지리산의 '무릉도원'은 신비감을 주는 깊은 산속, 협곡 안에 마련된 넓고 평평한 터, 감나무와 밤나무 등 향토식생, 닭과 소 등 생리(生利)를 만족시키는 토속경관이 반영된 이상향이다. '별유천지(別有天地)'의 '별천지'는 선경(仙境)과 승경 개념이 결합된 이상향이다. 또한 문인들은 은일에 적합한 위요된 지형 구조를 가진 곳에 이름을 붙이거나 일정한 영역의 승경지를 한정하는 개념으로 '동천'을 사용하였다. 지리산에 설정된 '청학동'은 불일암 일대 협곡과 불일폭포로 이루어진 수석(水石)경관, 소나무와 대나무 등 식생경관을 토대로 하여 최치원의 설화와 바위글씨로 전승되었다. 문인들은 지리산에서 배산임수형 지세, 교역 가능한 하천, 대숲으로 위요된 평평한 토지, 유실수 위주의 식생, 아름다운 산수를 갖춘 마을을 지상에 실현된 이상향으로 인지하였다. 이것은 대자연 안에서 적당하게 노동하며 사는 인간 세상의 모습과 같다. 살펴본 바와 같이 본 연구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유산(遊山) 문화와 이상향의 관련성, 그리고 선계(仙界)로 인식한 지리산의 여건을 파악하고, 중국에서 전래된 개념부터 토착화된 현실적 이상향까지 다양한 전통적 이상향을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조선시대 산수화의 경관관이 원림양식에 미친 영향 (The Influence of Landscape Paintings in Joseon Dynasty on the Styles of Landscape Garden)

  • 김한배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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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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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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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조선시대의 산수화의 시대별 대표유형들은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이상향의 역할을 해왔으며, 동시대 원림양식의 형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쳐 왔다. 특히 조선초기의 대표적 산수화인 <몽유도원도>는 소형 계류부에 입지하면서 은둔지향적인 '도원형 원림'을 형성시키는 배경이 되었으며, 이는 지속적으로 조선조 원림의 보편적 원형의 역할을 해왔다. 조선중기에는 <무이구곡도>의 전파와 함께 '구곡형 원림'이 등장한다. 구곡형 원림은 굴곡이 많은 대규모 계류에 입지하면서 은둔형의 '곡(曲)'과 조망형의 '경(景)이 결합된 복합적 경관특성을 보여준다.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는 승경탐사를 통해 팔경문화를 토착화 시키면서 '조망형 원림'을 촉발시켰고, 사회적으로 원림이용이 보다 개방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진경산수화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났던 민화풍의 <풍수명당도>는 '길지형 원림'을 통해 원림과 주변부 지역간의 풍수적 형국을 강화하게 하였으니, 내명당 외명당의 구조에 따르는 내원과 외원의 이중구조가 그것이다. 이렇게 조선조 전반의 원림경관은 시대별 산수화 대표유형의 영향 아래 은신과 조망의 양면적 가치를 시기적, 지역적 특징으로 부각시키면서 변화해 왔다고 판단된다.

전통조경공간(傳統造景空間)에서 나타난 동천(洞天)의 조영(造營) 특성(特性) (A Study on the Construction Characteristics of Dongcheon in the Traditional Space of Landscape Architecture)

  • 이혁종;최기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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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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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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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선조가 꾸민 전통조경공간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적인 바위글씨인 동천(洞天)을 대상으로 하여 그곳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어떠한 목적으로 동천을 조영(造營)하였는지, 또한 조영함으로써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였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집중적인 연구대상지인 25개소의 동천을 선정하고 이곳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자료에 대한 문헌분석, 그리고 현지답사를 통해 동천의 경관과 유형을 살펴봄으로써 나타난 조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천은 조성 목적에 따라 가거지형(家居地型), 은서지형(隱棲地型), 산수유람형(山水遊覽型)에서 승경형(勝景型)과 수신형(修身型), 수도지형(修道地型)으로 나눌 수 있었다. 즉, 동천은 우리의 생활하는 장소에서, 현실의 불합리나 재난을 피하기 위한 은서의 장소에서, 자연과의 화합에 의한 풍류생활의 장소에서, 그럼으로써 자신을 수양하려는 수신의 장소에서, 속세를 벗어난 수도의 장소에서 조영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입지유형에 따라 심산동구형(深山同口型), 계류인접형(溪流隣接型)에서 연계형(連繫型)과 단일영역형(單一領域型), 평지형(平地型)으로 나눌 수 있었다. 특히 심산동구형은 무릉도원, 몽유도원, 오복동에서 보여주는 공간설정과 상당히 유사하게 전개되어 동천이라는 것이 선조가 사유했던 이상향의 공간구조임을 알려준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의 계곡, 승경처에 동천이 조영되었는데, 이는 신선사상에서 말하는 선계의 모습을 원림에서 가꾸어 나감으로써 신선의 경지를 추구하고자 한 바램으로 파악된다. 셋째, 동천이라 명명함으로써 그곳은 이상향이 되며, 그 스스로 선경을 유발시키게 된다. 즉, 눈에 보이는 동천각자를 통해서 이면의 심층에 있는 이상향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것이며, 공간을 만든 조영자가 추구했던 이상적 세계에 대한 갈망에 지극히 기여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영남루시운(嶺南樓詩韻)』의 서지적 특징과 자료적 가치 - 수록 인물 분류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Bibliographic Characteristics and Data Value of YoungNamRooSiun(嶺南樓詩韻) - focusing on the classification of the recorded characters -)

  • 전재동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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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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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3-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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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최근에 소개된 필사본 "영남루시운(嶺南樓詩韻)"의 서지적 특징과 자료적 가치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영남루시운"은 영남루 본당 마루를 비롯하여 능파당(凌波堂), 침류각(枕流閣), 객사동헌(客舍東軒), 덕민정(德民亭), 람수정(攬秀亭) 등 6개 건물을 대상으로 임진왜란 이전에 창작된 기문(記文), 상량문(上樑文), 제영시(題詠詩) 등을 수록하고 있다. 수록 작가는 누적 인원 412명이며, 작품 수는 산문(散文) 11편, 운문(韻文) 559수(首) 등 총 570편이다. "영남루시운(嶺南樓詩韻)"에 수록된 제영시(題詠詩) 작가(作家)는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를 비롯하여 밀양(密陽), 청도(淸道), 경주(慶州), 창원(昌原) 등지의 지방관, 선위사(宣慰使), 경차관(敬差官), 어사(御使), 선전관(宣傳官), 호송관(護送官) 등 문무(文武)관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누적인원 412명 가운데 318명이 중앙과 지방의 관원들이며, 이 수치는 전체 작품의 77%를 차지한다. "영남루시운"에 수록된 작가들의 관직별 분류를 통해 조선전기 영남루 제영시(題詠詩) 작가들은 일반 시인묵객들보다 특정 임무를 띠고 밀양 지역에 파견된 관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을 통해 영남루는 승경(勝景) 감상의 목적 이외에 관찰사나 도사의 집무 공간, 왜국 사신 접대 등의 공무가 이루어지던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쇄원30영(소쇄원삼십영(瀟灑園三十詠))>을 통하여 본 소쇄원 외원(外園)의 공간구성 (A Study on Exterior Configuration of Soswaewon in <30 Poems of Soswaewon>)

  • 천득염;정지윤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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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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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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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e purposes of this study are to analyze the spatial composition of the outer garden of Soswaewon that appears in Gyeong-Ji Yang's "30 Poems of Soswaewon" and examine its significance and symbols. These poems by Gyeong-Ji Yang are important historical records that portray the appearance of Soswaewon and the space outside it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Unlike "48 Poems of Soswaewon" or "Soswaewondo," these poems arenot limited to Soswaewon and its surroundings; theyalso include areas from the village entrance upwardto the peak of the mountain behind the village. These poems can be divided into three main parts. Jiseok-ri and Changam-dong in poems 1 and 2 provide first impressions of the village in which the main Soswaewon garden is located, whereas poems 3 to 8 and poems 10 to 12 describe the space inside Soswaewon. Poems 13 to 30 depict the beautiful scenery around the outer garden of Soswaewon. In general, about 30% of the compilation in "30 Poems of Soswaewon" celebrates the inner Soswaewon, and the remaining 70% depicts the scenery around Soswaewon (i.e., views of the outer garden). It is presumed that Gyeong-Ji Yang employed this structure to achieve some type of order. Between the "48 Poems of Soswaewon" - also describing Soswaewon - and "Soswaewondo," which is a woodprint drawing of Soswaewon, "30 Poems of Soswaewon" offers the widest coverage of Soswaewon. Compared to "48 Poems of Soswaewon," which addresses the scene inside Soswaewon, new buildings such as the Jaeweoldang, Buhweondang, and Hancheonsa appear in "30 Poems of Soswaewon." Thus, the latter covers a much wider range. Chimgye Munbang - Gwangpunggak, Yangdandongo - Aeyangdang, Byeongseogjuggeun - Jajukchong, etc. are mentioned in both compilations. The use of a wide range of natural objects in these 30 poems, including mountains, birds, and the sky (instead of trees and flowers), shows that the author perceived Soswaewon as an area with a much higher and wider view than that of a typical living space. Moreover, natural regression ideologies, or seclusion ideologies, are evi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