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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디자인을 활용한 시설보안시스템 구축 방안 (A Study on the construction of physical security system by using security design)

  • 최선태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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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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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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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시설보안은 항상 보안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합적 보안계획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시설보안, 인사보안, 정보보안이 포함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상호간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 시설과 기업의 유형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운영된다. 통합보안프로그램에서 시설보안요스는 대체적으로 정책과 절차, 사람, 방벽, 장비와 기록물로 구성된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자신과 부족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쉼 없는 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어떻게 견고한 집을 짓고 거주지를 어떻게 요새화하는지를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보호를 자연에 의존하였고 추운 날씨에는 동굴들을 보호나 피난처로 활용하였다. 인류사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부족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보호대책을 수립하여 왔다. 이러한 보안대책의 기본에는 시설보안대책이 자리하고 있다. 중세시대의 유럽의 대군주들은 성곽 둘레를 파내어 해자를 건설하거나 도개교를 만들어서 성 주위를 강화하고 거주자들에게 이러한 보호를 제공하고 경작된 농산물을 제공받았다. 20세기 들어 미국의 에드윈 홈즈는 미국의 보안산업발전에 혁신적인 전자경보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전자보안시스템의 효시이며,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해당 시설물에 다양한 전자보안시스템을 조합한 형태의 보안시스템이 보안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류는 태초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보호대책을 수립하여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은 생명과 자산의 보호와 다양한 사회병리현상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국 방방곡곡 대부분의 시설물에 CCTV가 설치되어 현대인의 일상을 보호 감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부분의 시설보안시스템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설치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모든 비용 또한 우리가 지불하여야 한다. 따라서 효과적인 시설보안시스템의 구축은 매우 중요한 당면 과제이다. 이 연구에서는 현대사회의 필요성에 의해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시설보안시스템의 효과적인 구축방안에 대하여 보안디자인의 원리에 시스템 통합을 활용하여 효과적인 시설보안시스템 구축방안에 대하여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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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과 특징 (A Review of Archaeological Research on Silla in North Korea)

  • 윤상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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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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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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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북한에서 이루어진 신라(통일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을 정리하고 그 특징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자료가 남한에 있어 그동안 우리 학계는 북한의 신라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에 향후 북한 자료를 다루기 위한 기초 연구로써 북한 학계의 연구를 검토하였다. 연구 현황은 우리가 주로 다루는 고고학 주제에 맞춰 무덤, 성곽, 왕경, 토기, 와전, 장신구, 무구, 마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연구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주체사상이 북한 학계의 삼국통일 해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1955년에 처음 제기된 '주체'는 사대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중소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주창되었다. 이에 따라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와 결탁한 사건으로 보고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1962년 자료부터 확인된다. 두 번째, 반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삼국문화의 '고유성'과 '단일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과는 다른 고유성을 가지며, 삼국의 문화는 상호간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일성'의 원천은 고구려의 '우수한' 선진 문화이며, 백제와 신라, 가야에 전파되어 '민족 문화의 단일성'이 형성되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고구려의 선진 문물이 발해와 '후기신라(통일신라)'에까지 전해지고 다시 고려로 이어져 민족 문화의 진정한 통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네 번째는 남한 학계에 비해 신라의 무덤이나 유물의 연대를 상당히 올려 보는 점이다. '조선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신라의 건국을 1세기 초·중엽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국가 형성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의 연대를 올려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고구려 석실분이 신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기 위해서도 신라 석실분 연대의 상향이 필수적이다. 1960년대에 형성된 연구 특징은 지금까지도 북한 학계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지침이 되었다.

정조대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장용영(壯勇營) 하급 군사(軍士)의 군복(軍服) 고증 (Features of the Military Uniforms of the Low-Ranking Soldier Belonging to Jangyongyoung in the King Jeongjo Period Seojangdaeyajodo)

  • 이경희;김영선;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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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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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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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1795년 윤2월 12일 정조가 친림하여 행한 장용영 외영의 군사 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를 중심으로 장용영 하급 군사들의 위치와 역할, 역할별 군복의 구성과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장대야조도>에서 정조가 자리한 서장대 앞에 2열로 마주보도록 배치된 등롱군·뇌자·순령수·대기수와, 서장대를 둘러싸고 정조를 호위한 군사들은 모두 장용영 소속 하급 군사들이었다. 정조 앞에 배치된[御前前排] 등롱군의 군복은 전립,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하급 군사들의 협수는 기존 학계에 알려진 관직자들의 무가 있는 협수와는 달리 소창의형 협수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등롱군은 칼을 차고 손에는 홍사촉롱을 들었다. 뇌자는 신전수와 주장수가 있었다. 왕 앞에 배치된 뇌자의 군복은 주전립,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뇌자는 칼을 차고 신전기 또는 주장을 들었다. 왕 앞에 배치된 순령수는 순시기수와 영기수가 있었다. 순령수의 군복은 전건,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순령수는 칼을 차고 홍순시기 또는 홍령기를 들었다. 왕 앞에 배치된 대기수의 군복은 전건, 흑색 협수, 청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왕 앞에 배치되는 다른 군사들과 달리 대기수는 정조대에 와서야 왕 앞에 배치됨으로써 괘자의 색상이 청색인 점이 달랐다. 대기수는 칼을 차고 대기치를 들었다. 서장대를 둘러싼 군사들은 전초군과 좌초군이었고, 성곽을 방어하는 군사들은 좌·우·전·후 초군으로 보았다. 초군의 군복은 전립, 흑색 협수, 호의,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짚신으로 고증하였다. 호의는 방위에 따른 색을 사용하였기에 좌초군은 청색, 우초군은 백색, 전초군은 홍색, 후초군은 흑색이었다. 초군이 소지하는 무기는 조총과 칼이었다. 성정군들은 조총과 칼 외에도 훈련 상황에 따라 횃불이나 등이 달린 기창을 들기도 하였다. 이상의 고증 결과를 반영한 시각화의 기본 원칙은 3D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실물 제작까지 가능하도록 시대와 신분에 적합한 형태·색상·재질 기준을 제안하였다. 역할별 복식 착장도에 무기와 군기(軍器)를 갖춘 앞·옆·뒤 모습으로 표현하고 색상을 RGB와 CMYK로 제안하였다.

문헌으로 찾은 양근·지평 관아의 흔적 - 관아의 연혁·규모·터[址]를 중심으로 - (Traces of Gwan-a in Yanggeun and Jipyeong in Literature - with the Focus on the History, Scale and Sites of Gwan-a -)

  • 유동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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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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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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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전근대 사회에서 지방고을의 중심공간은 官衙(관아)가 있던 邑治(읍치)였다. 해안가 고을의 읍치는 읍성 안에 있었으나, 내륙 고을의 읍치는 성곽이 없이 관아만 있었다. 현재 양평군(楊平郡)인 양근군(楊根郡)과 지평현(砥平縣)은 관아만 있던 고을이었다. 양근군과 지평현에 관아가 정식으로 설치된 시점은 조선 초기이다. (1)조선 초부터 두 지역에 수령(守令)이 정식으로 임명되었던 점, (2)1703년(숙종 29)과 1465년(세조 11)에 양근군 동헌(東軒)과 지평현 객사(客舍)가 중수(重修)되었던 점, (3)조선 초부터 향교가 있었던 점 등이 조선 초부터 두 지역에 관아가 존재하였음을 증명한다. 조선시대 양근 지평관아의 주요건물은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객사(客舍) 군관청(軍官廳) 등의 공해(公?), 향교 등의 교육시설, 사직단(社稷壇) 성황사(城隍祠) 여단(?壇) 등의 제단(祭壇)이었다. 현재 양근관아와 지평관아의 흔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공간구성 원칙 속에서 남아있는 문헌 고지도 유물 등을 분석한다면, 두 관아의 터[址]는 대략 찾을 수 있다. 문헌상 양근 아사[동헌] 터로 지목된 지역은 '현 양근중학교 앞 양평읍 관문1길 15(양근리 151)'이다. 실제 관문1길 일대에서 조선시대 백자편 기와편 등이 발견되며, 일부 주택에서 옛 동헌의 장대석을 재활용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한편 양근 객사 터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 양평경찰서 주변'이다. 하지만 양평경찰서 주변에서 객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양평경찰서 근처의 양평역 앞에 천주교 성지 표석이 있어, 이 일대가 관아 터였음을 알 수 있다. 지평관아의 주요건물(동헌 내아 작청 장청 군향고 연무정 화약고 향청 객사 등)은 현 관교길(지평리 238~250)을 따라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건물 터는 객사와 아사[동헌] 터이다. 객사 터로 지목된 지평리 238번지는 주민의 구술과 문헌 내용이 일치하며, 아사[동헌] 터로 추정된 지평리 248~250번지 일대는 백자편 기와편 옛 동헌의 담장 등이 발견된다.

목조 건축문화재의 범죄예방환경설계 평가지표에 대한 기초연구 (A Basic Study on the Evaluation Index of the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of Wooden Cultural Buildings)

  • 김충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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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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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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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문화재 범죄로 인한 문화재의 소실과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문화재 범죄예방환경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문화재의 범죄양상을 분석하고 범죄환경유형을 분류하여, 범죄예방환경설계 요소를 도출함으로써 범죄예방환경을 평가하는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서 도출된 결과는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문화재 CPTED에서 고려해야 할 범죄는 도난, 방화, 훼손, 침입이며, 야간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이러한 범죄에 취약한 건조물 문화재 189개소에 대한 범죄예방환경을 분석하여 10개의 유형을 도출하였다. 둘째, 비문화재 CPTED에 적용되는 6가지 원리 중에서 '활동 증대', '유지 관리' 등은 문화재에 적용되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문화재 CPTED에서 적용되는 주요 원리가 '접근 통제', '감시 강화'인 것으로 밝혀졌다. 부가적으로 '입지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접근 통제는 문화재 영역에 따라 '내부 영역', '경계', '외부 영역', '주변 환경' 부문으로 구분되며 22개의 평가지표가 분류되었다. 감시 강화는 비문화재와 동일하게 '자연적 감시', '조직적 감시', '기계적 감시' 부문으로 구분되며 21개의 평가지표가 포함되었다. 넷째, 10개의 유형에 CPTED 부문을 적용하여 14개의 문화재 CPTED 환경을 분류하였으며, 각 환경별로 적합한 평가지표를 도출하였다. 서원 향교 관아 유형은 43개의 평가지표가 요구되지만, 성곽은 10여 개의 평가지표만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째, 모든 평가지표를 사용해야 한다고 판단된 서원 향교 관아 유형에 해당되는 돈암서원에 대해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검토 결과 CPTED의 평가지표를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음이 검증되었다. 그러나 조명, CCTV, 침입센서 등에 대해서는 3차원적인 별도의 평가기법을 개발하여 적용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추후 연구에서 문화재 유형별로 면밀한 현장조사를 거쳐 평가지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문화재 전반에 대한 범죄예방환경설계의 평가지표를 제시한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명승시선(朝鮮名勝詩選)』에 나타나는 명승고적의 문화경관 연구 - 충청남도 천안을 사례로 - (A Study on the Cultural Landscapes of Scenic Sites on 『Joseon myeongseungsiseon(朝鮮名勝詩選)』 at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A Case of Cheonan, Chungnam Province -)

  • 이행열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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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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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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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명승시선(朝鮮名勝詩選,1915)"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조선환여승람(朝鮮?與勝覽)"을 이용하여 충청남도 천안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 나타나는 명승고적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조선명승시선"이 발간된 시대적 상황을 검토해 본 결과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淸日戰爭)'에 대한 기억이 기록된 내용으로 발간되었으며, 한일강제합방(1910) 이후의 조선총독부 '동화주의 교육'과 궤를 같이 하였다. 저자인 나루시마 사기무라(成島鷺村)에 대하여는 서문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었다. "명승시선"에서 각 명승고적을 기술하는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곳은 '안성도(15줄)'로, 일본의 '청일전쟁'과 같은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여지승람"과 "환여승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명승고적은 천안의 경우 모두 13개소가 된다. 대부분 내용이 비슷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기술되었다. 다만 '홍경원'과 '성환역'은 기존의 명승고적이 가지고 있는 조선의 산수관에 대한 층 위에 '정유재란' 또는 '청일전쟁'이라고 하는 새로운 전쟁의 역사층을 덧씌워서 전혀 새로운 명승고적의 '장소성'으로 전환시켜 기술하였다는 점이다. 새롭게 기술된 명승고적 중 '안성도'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첫 패배를 안겨준 '안성천전투'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본문 중에 시노부 순페이의 시를 소개하여 장소성과 시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강조하여 시 감상의 묘미를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하도록 기술되었다. 반면 조선의 시는 모두 10편으로 제목과 소재가 대부분 역사적 장소와 연관되며, 내용 또한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때 시 감상의 묘미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실제 구성은 전혀 페이지를 달리함으로써 그러한 맥락 관계가 무시되었다. 이러한 명승고적들이 가지는 장소성에 대하여 살펴보면 장소의 위치, 의미, 규모, 주변의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 공간, 조망과 휴식 또는 회고를 위한 공간, 예불 또는 추모를 위한 사찰공간, 방어와 보호를 위한 성곽시설, 또는 임금의 어가공간 그리고 옛날 전쟁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공간으로는 은둔과 동학농민의 투쟁공간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안이라는 지역의 문화경관으로서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점을 토대로 하여 지역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제철유적 조사연구법 시론 (Proposals on How to Research Iron Manufacture Relics)

  • 김권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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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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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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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고는 1970년대 이래 제철유적에 대한 조사가 꾸준히 증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사방법에 대한 연구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제철유적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전국적으로 조사가 급증하였으며, 특히 최근에는 생산유적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유적의 하나이다. 하지만 분묘유적이나 취락, 성곽유적 등에 비해 제철유적의 조사방법에 대한 소개와 연구는 크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제철조업의 프로세스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할 뿐 아니라, 공정의 이해를 위해서는 금속공학적인 기초지식까지 학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고고학 조사와 연구에 있어 제철과 관련된 유구 유물의 성격이 이러한 프로세스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밝히기가 몹시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생산 및 철기제작의 공정과 철재, 철괴 등 관련유물의 금속학적 특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철유적 발굴조사의 순서와 방법, 유물의 분류 및 정리방법에 대한 시론을 제시함으로써 정밀한 조사와 심도 있는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본고에서는 제철유적을 조업공정에 따라 채광, 제련, 정련, 단야, 용해, 제강유적의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후, 사전조사와 지표${\rightarrow}$시굴${\rightarrow}$발굴조사로 이어지는 각 단계별 조사방법에 대해 정리하였다. 또한 가장 대표적인 제철관련유물인 철재의 분류 및 정리에 있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더불어 유적의 성격파악에 필요한 자연과학분석 및 제철로 복원실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으며, 내용의 구성에서는 사례 제시와 도면 사진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본고에서는 다양한 조사연구방법의 응용과 개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지는 못하였지만, 유구 유물의 세밀한 관찰을 통해 공정에 따른 다양한 제철유적의 조사연구 방법론 개발이 매우 시급한 과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유적의 종합적인 성격규명을 위해서는 고고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가 다양하게 응용되어야 하며, 더불어 실험고고학의 측면에서도 지속적인 제철로의 복원실험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부산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의 진정성(authenticity) 회복방안 고찰 (Present State of the Dangsan Forest at 'Jwasuyeongseongji' in Busan and the Perspectives on It's Authenticity Restoration as a Historic Remain)

  • 최재웅;김동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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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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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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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연구대상지인 부산시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는 현재 대부분의 성곽 시설물은 소실되었으며, '수영 사적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좌수영성지'의 가장 큰 장소성은 이곳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임란 성지(聖地)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좌수영성을 함락시킨 왜군에 의해 좌수영성 안팎의 수 많은 주민들이 무참히 살륙 당한 곳이다. '좌수영성지'는 국가사적(國家史蹟)급 유적이지만 마을놀이터로 오용되고 있다. 공원내 과다한 통행로와 보도블럭으로 인해 숲이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어 있고, 체육 시설물들의 난립 및 음주가무 등이 일상화되고 있다. "유적의 진정성"을 중시하는 국제적 관리사례에서는 원래의 용도에 어긋나는 이러한 이용행태는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본 논문은 지금은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부산에서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은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좌수영성지와 당산숲의 현황을 조사 분석함으로써, 상실된 채 관리되고 있는 좌수영성지 및 당산숲의 진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좌수영성지의 당산숲은 곰솔림으로 되어 있으며, 약 $230{\times}130m$ 규모로 남아 있다. 좌수영성지는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수영 사적공원으로 이용되고 있고, 좌수영성지 당산숲 안의 당산나무 두 그루는 각각 천연기념물 제270호, 제3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복잡한 관리체계는 '부산 구포동 당숲'(천연기념물 제309호)의 예와 같이 현재 남아 있는 좌수영성지 전체를 '부산 좌수영 당산숲'으로 명명하여 천연기념물이나 국가사적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당산숲은 당산신(堂山神)과 자연을 위해 할애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당산숲 공간 안에 있는 제반 시설물들이 제거되고 숲으로 이루어진 원래의 모습이 회복되면 좌수영성지의 진정성이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좌수영성지의 관리 주체는 부산광역시 수영구청에서 문화재청으로 이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제 지하저장시설(地下貯藏施設)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검토 (A Study on the Structure and Function of the Underground Storage Facility in Baekje)

  • 신종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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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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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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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최근 백제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에서는 토광형태 또는 목재나 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지하식의 저장시설이 발견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백제시대 지하저장시설을 형태 및 축조방법별로 복주머니형(플라스크형), 목곽형, 석곽형 시설로 구분하고 각각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복주머니형 저장공은 백제 한성시기~사비시기의 금강 및 한강유역의 많은 유적에서 현재까지 600기 이상 조사된 백제의 가장 대표적인 지하저장시설로 3~7세기대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의 백제의 독특한 저장문화를 구성하는 유구로서 그 구조나 중국의 예를 통해 볼 때 곡물의 장기저장을 위한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외에도 토기의 저장 등 다양한 물품이 저장되었다고 보인다. 목곽형과 석곽형의 저장시설은 사비시기의 유적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어 6세기 이후 복주머니형 저장공의 축조가 줄어들면서 그 기능을 일부 대체했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그 축조방법이나 구조상 공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으로 도성이나 성곽유적에서 공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곽형 저장시설은 평면 장방형인 것과 방형인 것, 축조방식에 따라 가구식(架構式)과 주혈식(柱穴式)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축조하고자 하는 지점의 지형이나 지질에 의해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목곽형 저장시설은 관북리유적과 월평동유적의 예를 통해 볼 때 과일과 같은 식품류의 저장과 군사주둔지에서의 중요물품 저장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품목의 물건이 저장된 것으로 보인다. 지하 저장시설의 기능적 특성상 식품류의 장기저장과 일본의 예를 통해 볼 때 화재시 중요물품의 안전한 보관과 관련하여 목곽이나 석곽의 저장시설이 채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서양 해자(垓字)의 역사와 문화적 해석 (An Historical and Cultural Analysis on the Eastern and Western Moat)

  • 정용조;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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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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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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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해자란 성벽 외곽에 파 놓은 못 또는 물길로 적이 성벽에 직접 접근할 수 없도록 하거나 이를 경계로 공간을 구분하고자 설치된 시설의 하나로,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 서양에서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방어 기능으로부터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 수단으로, 지반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역사적으로 고대로부터 중세, 유럽, 아시아, 미국 등에서 존재하였다. 또한 해자는 물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 활동과 동물들의 서식처 장소를 제공하는 등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복원 계획에 있어 해자의 복원에 대한 고려가 미비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동 서양 해자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여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해자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연구로 해자의 기원, 시대적 고찰, 사상적 배경, 서양 해자의 역사와 문화, 동양의 한국, 중국, 일본 해자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나라의 해자는 고구려 도성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의 도성에 모두 존재하였으며, 천연의 해자인 넓은 강을 끼고 적들이 기어오르기 힘든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은 자연적 해자와 성벽 밖에 인공적 해자를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방지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해자를 방어적 기능으로 활용하였다. 2. 해자의 설치는 성벽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넓고 깊게 파는 것이 보통이며, 성의 외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시설이 설치되었는데, 성 밖에 있는 해자는 방어력을 높이는 것 외에도 지반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자는 물이 있어 접근을 제한하며, 낮은 벽이나 담장은 경계를 물리적으로 분리시키지만 해자는 열린 공간으로 시각적 특성을 살려 경계 및 방어 수단을 가지면서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나 근처의 나무도 정원 안으로 차경할 수 있게 한다. 3. 낙안읍성은 풍수지리적으로 청룡(동천)의 기가 드센 관계로 청룡의 흐름을 "S"자로 꺾어 흐르게 함으로써 기를 꺾을 수 있었으며, 몽촌토성은 해자의 복원으로 공원에 풍부한 수경 요소를 제공하는 경관요소로 활용하였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는 자연이라는 진경 속에 선조들의 삶과 문화가 공간 속에 설득력 있게 배어든 역사와 문화적 경관이 표상이다. 4. 중국의 자금성 성벽은 찹쌀에 흙을 반죽하여 다져 넣어 매우 견고하며, 해자의 폭은 52m, 깊이는 6m로 자금성 성벽을 에워싸고 있어 적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었다. 5. 일본의 해자는 도시에 있어 수로 역할을 하였으며, 보트놀이, 배낚시, 레스토랑 등의 레저시설이 설치되어 도시민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6. 한국의 해자는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에도성, 오사카성보다 규모가 작으며 동양의 해자는 왕궁이나 읍성을 보호하기 위해 해자를 설치하였으나, 서양에서는 왕이나 영주, 대저택, 부호들의 저택 등을 보호하기 위해 해자를 설치하였다.